경찰관으로 36년간 근무하고 퇴직한 강일수 씨(63)와 KT에서 30년간 고객을 응대하고 은퇴한 김인순 씨(69)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차피 살아갈 거라면’ ‘즐기면서’라는 마음으로 지낸다는 점이다.
또한 ‘나이 듦’에 머뭇거리지 않고 도전하는 삶을 통해 일상에서의 즐거움을 만끽한다는 것이다.
살아가는 동안이라는 과정에 집중하는 삶이기 때문일 것이다.
전북혁신도시 라온체육센터에서 수영장 시니어 라이프가드(인명구조요원)로 활동하며 인생 2막을 살아가고 있는 김인순, 강일수씨를 만나 도전하는 시니어의 얘기를 들어봤다.
△“야금야금, 지금의 행복과 즐거움 누리며 살 것"
수영장 인명구조와 물놀이 안전을 책임지는 라이프가드는 대개 근육질 몸매와 강인한 인상을 풍기는 젊은 남성들의 전유물로 비춰졌다. 그러나 라온체육센터에서 만난 김인순 씨는 60대 여성 시니어 라이프가드다. 취미활동으로 30년간 수영을 해온 그는 운동 이상의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겨 수상안전요원 자격증을 따게 됐다.
“수영을 오래 하다 보니 안전요원 자격증 취득으로까지 이어지게 됐어요. 그리고 우연한 기회에 서원시니어클럽에서 시니어 라이프가드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봤고 응시해서 합격하게 됐죠.”
김 씨는 시니어 일자리 창출에 앞장서고 있는 전주서원시니어클럽의 도움을 받아 ‘시니어 라이프가드’로 일하고 있다.
수영장 내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수강생들을 관찰하고 관리하는 일이 그의 주된 업무. 강일수 씨와 2인 1조로 짝을 이뤄 수영장 안에서 위급한 사항이 닥쳤을 때 안전요원에게 상황을 전달하고 응급처치 업무를 돕는다.
30년 넘게 회사원으로 살아온 김 씨는 명예퇴직 후 사회활동을 쉬었다.
수십 년간 소모해온 자신을 살리려는 본능이었다.
가족들을 보살피느라 앞만 보고 달려왔던 스스로에게 쉼과 여유가 절실했기 때문이다. 퇴직 후 그가 매진한 일은 봉사활동. 피폐해진 마음의 안식을 되찾기 위해 꾸준히 봉사를 실천했고 자연스럽게 시니어 활동으로 이어지게 됐다.
“쉰다섯 살에 퇴직하고 5년 동안은 봉사활동을 하면서 지냈어요. 그러면서 평소에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배우고 익히는 시간을 보냈죠. 시니어 활동은 예순 살이 넘어서 시작했어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휴식을 취했던 시간들보다 다시 사회활동을 하고 있는 지금이 훨씬 뿌듯하고 보람 있는 것 같아요."
김인순 씨는 앞으로도 야금야금 현재의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고 싶다고 했다. 사회활동을 중단한 ‘덕분’에 일하는 기쁨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물 가까이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하루하루 시니어 라이프가드로서의 임무를 수행하고 싶다고 했다.
“일을 하다 보면 가끔씩은 사람들의 무심한 태도에 기운이 빠지기도 해요. 사고를 대비해 주의해달라고 요청하거나 제가 어떤 행동을 제지하면 예민하게 반응하는 분들이 계세요. 순간 속상한 마음이 생기지만 결국에는 수영장에 오시는 분들 덕분에 제가 힘을 얻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시니어 라이프가드 업무를 하는 동안에는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임하고 싶어요."
△ “가장의 무게 내려놓은 뒤 비로소 원하는 일 찾게 돼”
김인순 씨와 시니어 라이프가드로 호흡을 맞추고 있는 강일수 씨는 경찰관으로 보낸 시간만 36년이다.
지난 2021년 12월 퇴직 후 2년 동안은 행정사로 일했다.
행정, 지능범죄, 마약, 강력범죄 등 수사경찰로 복무한 그가 시니어 라이프가드를 지원하게 된 계기는 단순하다.
평소 수영을 좋아했기 때문. 사실 강 씨의 삶에는 여유가 없었다. 자신의 어깨를 짓누르던 가장의 무게를 내려놓은 뒤 비로소 그는 스스로 원하는 일을 하겠노라 다짐했다. 그렇게 선택한 일이 ‘시니어 라이프가드’였다.
“경찰관 일을 할 때도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임했지만 처자식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부담도 컸어요. 힘들어도 앞만 보고 달려갈 수 있었던 이유죠. 하지만 지금은 제가 좋아하고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다짐했고, 우연한 기회에 시니어 라이프가드 공고를 보고 '이거다' 싶었어요."
그가 시니어 라이프가드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단순하지만, 일을 대하는 태도와 방식은 진중하다.
5분 일찍 출근하고 5분 늦게 퇴근하려 노력하고, 수영장 내부에서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꼼꼼하게 주위를 둘러보고 사람들의 반응을 살핀다. 일과 시간 동안에는 수강생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선택한 일에 책임감을 가지고 일하려 한다는 강 씨는 시니어 라이프가드의 업무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업무는 아니기에 더욱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고 있다고 했다.
그가 이토록 시니어 라이프가드에 진심인 이유는 오늘만을 살아왔던 지난날에 대한 반성 때문일지 모른다.
푯대 없이 그저 바쁘고 정신없이 마무리 지었던, 그래서 힘겹게 버텨냈던 지난날의 땀 속에서 보람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시니어 라이프가드는 퇴직 후 자신이 ‘좋아하고’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조건에 꼭 맞는 일이었다.
강 씨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오랫동안 시니어 라이프가드로 일하고 싶다"는 짧은 바람을 전하고 다시 일터로 돌아갔다.
인생 2막에 들어선 어르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니 어쩌면 이것은 진리에 대한 얘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이들이 놓치고 있는 '인생의 진리'. 과거에 대한 집착, 오지 않은 일에 대한 걱정을 버리면 비로소 행복이 보인다는 진리. 그렇기에 오늘의 고통을 감내하며 내일의 헛된 희망을 품지 않아야 한다는 인생의 조언처럼 느껴졌다.
오늘이 쌓여 내일이 되는 것처럼, 시니어 라이프가드로 인생 2막을 펼쳐가고 있는 김인순, 강일수 씨의 오늘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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