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무렵이니까 십여 년 전 일이다. 청바지를 한꺼번에 두 벌이나 샀다. 하나는 평범한 디자인이지만 하나는 허벅지 부분에 메이커의 로고가 새겨지고 헤짐이라는 찢어짐이 있는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스타일이었다.
튀는 것을 자제하는 공직사회의 조직 문화 탓인지 당시의 공무원은 대부분 정장 차림으로 근무했다. 그런 속에서 삼십 년 넘게 세월을 보낸 나의 양복장엔 검정, 감색, 진회색의 어두운 색깔 일색이 양복이 점잖을 떨고 있을 뿐 간편복이라면 어쩌다 입는 점퍼 정도가 고작이었다.
나의 청년기부터 청바지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지금처럼 멋으로 입는 청바지가 아니라 일 년 열두 달 주구장창 입고 지내는 내구성 최고의 해군작업복이었다. 그래서 명칭도 지금처럼 청바지가 아니라, 해작 바지라고 했었다. 그나마도 가격이 비싸서 없는 집 아이들은 청바지 대신에 군복에 검정 물을 들여 입고 지냈던 기억이 새롭다. 나도 그중 한사람이었다. 결국, 중년을 넘어 은퇴의 시점까지 청바지를 한 번도 입어보지 못하고 세월을 보내버린 것이 한이 되었다. 오죽하면 은퇴한 다음에 하고 싶은 일의 목록 윗줄에 “청바지 입어보기”를 올렸을까….
청바지는 질기고 일하기 편하게 만든 작업복에서 유래되었다, 구김이 안 가고 때도 잘 타지 않는다. 한 벌을 사서 오래 두고 입을 수 있고, 오래되면 딱딱하고 갑갑한 느낌이 없어져서 세월이 지날수록 더 좋아지는 묘한 매력이 있는 옷이다. 청바지의 젊고 활동적인 이미지 때문인지 나이 든 사람보다는 한참 힘이 왕성한 젊은이에게 더 어울린다. 그것도 키가 크고 다리가 긴 사람 젊은 사람이 입으면 스마트한 멋이 저절로 뿜뿜거린다. 그런데 나는 현역에서 은퇴한 늙은이인 데다가 다리마저 짧으니 청바지가 어울릴 턱이 없다.
아무렴 어떠냐. 얼마나 입고 싶었던 청바지인가? 사들인 청바지를 수선집에서 맞춤하듯이 몸의 치수에 맞게 고쳤다. 청바지를 입은 나를 전신거울에 비쳐도 보고, 패션쇼를 하듯이 거실을 돌아다녀 보았다. 신축성이 좋아서 쪼그려 앉아도 불편하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내 마음이었다. 남들이 “채신머리없이 웬 청바지야?” 하며 나만 쳐다볼 것 같고, “어울리지 않는다.”라는 말은 물론이고 “원래 똘끼가 있었다.”라며 등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릴 것 같아서 입고 나설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토록 청바지 타령을 하더니 사놓고 왜 안 입어?”
조롱인지 채근인지 모를 아내의 말에는 “몸에 익지 않아서 그런지 어찌 불편하네.”라는 말로 체면 땜방을 해놓고 방안 퉁소처럼 집안에서만 입고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사랑땜을 했다. 그까짓 청바지가 뭐라고 남의 이목에 나를 스스로 가둔단 말인가?
우리는 살면서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지나치면 자신의 인생을 자의적으로 살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자신을 보여주기 위해 사는 꼴이 되기 쉽다. 남을 의식한다는 것은 사람의 도리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한 노력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꽤 오랜 주저 끝에 용기를 냈다. 나이가 비슷비슷한 동창 모임에 청바지를 입고 참석했다. 나는 왠지 쭈뼛거리고 부자연스러운데 친구들은 내 청바지에 관심도 없었다. 내가 청바지를 공식적으로 처음 입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무엇이나 처음 한 번이 어렵다. 무슨 일이나 일단 저지르고 나면 그 뒤론 익숙한 일처럼 쉬워진다. 그 뒤로 나는 청바지 애호가가 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윤철 수필가는 진안군 부군수를 역임했다. <에세이스트>로 등단했으며 전북수필문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현재는 전북문인협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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