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22대 총선 결과를 대표하는 말은 단연 ‘정권심판’이었다. 서울중앙지검장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윤석열 대통령과 ‘악연’이 시작된 전주을 이성윤 당선인은 항상 그 바람의 중심에 서 있었던 인물이다. 2022년 바뀐 정권은 역설적으로 이 당선인에겐 파란만장한 정계 진출의 길을 열어주는 통로가 됐다. 국민의 눈도 일제히 쏠렸다. 평범한 일상도 완전히 사라졌다. ‘이성윤’이라는 한 인간의 하루 일거수일투족이 대중에게 노출됐고, 진보진영의 응원을 받은 만큼 보수진영 지지자들에겐 저주에 가까운 비난을 들었다. 전북 국회의원으로서 첫 발걸음도 남들과는 사뭇 달랐다.
‘10일 천하’는 이성윤 당선인의 민주당 공천과정을 잘 나타내는 단어다. 이 당선인은 지난 2월 23일 민주당 26호 인재영입 인사로 들어온 열흘 뒤인 3월 4일, 압도적인 득표율로 100% 국민경선에서 승리했다. 이 당선인의 공천이 결정되기 전날에는 공교롭게도 법무부가 현직 검사장 신분이었던 그의 해임 징계안을 의결했다.
16일 만난 이성윤 당선인은 인터뷰가 진행되는 내내 ‘정권심판이 곧 전북의 자존심 회복’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책적인 역량과 관련해서도 자신감이 넘쳤다. 평생 검사로 살아왔던 자신의 전문성을 발휘해 법과 국민감정의 괴리도 최소화하는 데 앞장서겠다고도 했다.
당선을 축하드립니다. 검사에서 국회의원으로 우여곡절 끝에 변신하셨습니다. 고향인 전북에서 특히 학창시절을 보낸 전주에서 당선되셔서 의미가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저는 고창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8남매 중 일곱째로 출생신고도 없이 무적자로 초등학교에 재학하다 뒤늦게 출생신고를 할 정도로 가정형편이 좋지 못했습니다. 제게 어린 시절은 그만큼 춥고 배고픈 기억입니다. 단순히 전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해서 이곳과의 인연을 강조하는 게 아닙니다. 고등학생 때 동생의 암 투병으로 가세는 더 기울었어요. 이 당시 전주는 배고플 때 먹여주고 아플 때 감싸주던 어머니 같은 존재였어요. 군대도 전주에서 현역병으로 근무했죠. 전주에서 공부해 경희대 법대 장학생으로 선발돼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검사로 재직 시에는 군산지청과 전주지검에서 근무도 했습니다. 지금은 아내와 함께 전주 서신동에 터를 잡고 살고 있는 전주사람입니다.”
나를 국회의원으로 만든 것은 ‘대통령 윤석열’이라고 강조하셨던데요.
“윤석열(대통령)이 저를 국회로 부른 장본인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저는 윤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인데요. 고작 바른말을 했다는 이유로 제가 받은 모욕과 모멸은 그렇다 치더라도 (대통령이 되고 서도) 국민이 준 권력을 사유화하는 것을 보고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새만금 잼버리 보복을 위한 ‘전북 예산삭감’은 그가 어떤 인물인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대표적 사례 아닐까요. 원래는 평생 검사를 천직으로 삼으면서 공직에서 퇴임하면 고향에서 좋아하는 야생화를 가꾸며 살고 싶었습니다. 그 꿈을 접고 이 자리에 서게 된 거지요.”
당선되자마자 위대한 전주 시민이 '윤석열 검찰 정권심판'과 '전북 몫 확보'라는 두 가지 명령을 내렸다고 말씀하셨는데.
“출마를 결심하자마자 전주에서 최대한 많은 시민을 만나서 대화를 나눴습니다. 수만 명 가까이 선거 기간에 만나서 이야기를 들었어요. 정말 많은 이해관계와 다른 생각이 있었는데 일치하는 부분이 딱 두 가지 있었습니다. 바로 ‘윤석열 심판’과 ‘전북·전주의 자존심 회복’입니다. 만나는 시민 10명 중 8명이 ‘당선되면 윤석열(대통령) 빨리 끌어내 달라’고 다그치실 정도였습니다. 이것도 제가 순화해서 표현하는 것입니다. 현장에서 들은 전주 시민의 분노는 극에 달했습니다. 전주 시민의 상실감도 컸어요. ‘전북이 그리고 전주가 무시당하고 있다’면서 제발 골목대장 정치하지 말고 중앙에서 우리 자존심 좀 살려달라고 호소하셨습니다. 울분이 찬 거지요. 저를 선택해주신 시민들을 위해서 끊임없는 투쟁과 노력으로 보답하고자 합니다.”
전북발전을 위해선 ‘실용적인’ 협상과 논리적인 ‘설득’이 중요하다는 반론도 있습니다.
“전북과 전주의 현안을 끊임없이 공부하고, 어떻게 하면 지역을 발전시킬까 고민했습니다. 단순하게 ‘투쟁이 답’이라고 결론지은 게 아닙니다. 과거 30년을 돌아보면요. 새만금 개발의 당위성 전북과 전주라는 도시의 상징성 그리고 균형발전의 대명제에 대해 정치인들이 얼마나 논리적으로 설득하려 했습니까. 논리적으로 설득될 정부였다면 잘 진행되던 새만금 국제공항 사업을 갑자기 멈춰 세우려는 짓을 했을까요. 논리도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논리나 인맥만 가지고는 지역 현안을 해결하기엔 부족한 시대입니다. 적극적으로 속도감 있게 우리의 전북도민에 마땅히 배분됐어야 할 권리를 쟁취해야만 합니다. 그 역할 전북도민과 전주시민을 대신해 저 이성윤이 하겠습니다. 각오는 돼 있습니다.”
국회의원에 앞서 이성윤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한 분들이 많습니다.
“저를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아무래도 검사 시절 저의 행동과 철학이겠지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검사를 천직으로 알고 충성했던 제가 왜 검찰개혁을 외치는지도 더 잘 이해하실 수 있다고 봐요. 일생을 ‘진짜 검사’란 무엇일까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원칙대로 피의자가 승복할 수 있는 수사를 하자’입니다. 제 검사로서 철칙은 ‘찌르되 비틀지 말자’였습니다. 수사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피의자를 찌를 수밖에 없게 되는데 여기서 비틀어서 왜곡하거나 자의적인 판단이 들어가면 수사가 혼탁해집니다. 국민이 준 권력을 함부로 남용하는 거죠. 저는 좀 우직한 사람입니다. 수사가 어렵더라도 원칙에 근거해서 한 수사에 한 사건을 파헤쳤고, 곁가지를 파는 일은 하지 않았어요. 국민이 지금 검찰개혁을 원하는 것도 본질이 아닌 곁가지 수사에 검찰이 치중하는 과정에서 무고한 피해자가 양산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검사 윤석열’을 ‘무도(無道)하다’라고 표현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였어요. 개혁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어렵지만 바른길로 가야 하고, 정도가 아닌 길은 쳐다보지도 않으려고 했습니다.
국민 다수가 느끼는 법에 대한 감정과 법조인과 정치인의 법에 대한 인식이 크게 다른 것과도 관계가 커 보이는 말씀입니다.
“국민은요. ‘같은 범죄에 같은 구형’ ‘같은 범죄에 같은 판결’을 기대합니다. 한마디로 법 ‘정의’를 원하신다는 거예요. 그런데 언론에 비치는 현실은 다르니 실망을 하시는 것이죠. 쉽게 말하면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선택적 정의’에 질리신 겁니다. 저 역시 이제는 법 집행자에서 입법자가 된 만큼 입법에 대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이 문제도 고민해봐야겠지요. 법이라는 건 국민께 겸손하고 친절해야 합니다.”
심판론에 다소 가려진 이성윤의 ‘전북발전 방법론’을 궁금해 하는 도민 분들도 많습니다.
“정치하자마자 뻔한 약속드리는 게 죄송해서 평소에 잘 말하지 않은 거 같네요. 전북과 전주에 급한 일은 단연 ‘양질의 일자리’입니다. 그렇다면 기업유치를 해야지요. 아까도 말씀드렸는데 일단 저는 전북에 적합한 산업과 정책에 대해 많이 공부하고 있는데, 어느 정도 얼개 잡히면 기업의 문을 직접 두드리는 지역구 의원이 되고자 합니다. 전북에 필요한 기업이면 지겨울 정도로 찾아가려고요. 절실함이 통하면 시스템이 됩니다.”
의원 수가 부족한 전북에선 상임위의 고른 배분이 큰 과제인데.
“법률가로서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법사위를 희망했던 건 맞는데 고집할 생각은 없습니다. 제 맘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보고, 시민의 명령에 따라 어떤 상임위를 가도 상관없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어디 가도 자신 있습니다. 어떤 상임위를 가도 윤석열 정부 심판 누구보다 잘 해낼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어요. 전북 당선인 10명 모두 결기가 가득합니다. ‘전북이 죽으면 나도 죽는다’는 그 절실함이 느껴집니다. 우리 민주당 당선인 10명이 국회 상임위를 각개격파할 수 있도록 협조하겠습니다.”
앞으로 할 일이 정말 많으시겠습니다. 향후 계획은.
“검사 재임 시절에도 전주에 자주 와서 그 변화를 지켜봐 왔습니다. 이제는 우리 전북에는 ‘외부인의 시선’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뒤처지고 있는지 시민들이 다른 지역에 비해서 얼마나 불편을 겪고 사는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전주만 해도요. 작은 거 같지만 큰일이 많아요. 시민 수는 적은데 도심지 불법 주차는 전국 최고 수준입니다. 이거 해결해야죠. 전주 출퇴근 지옥도 해소해야만 합니다. 도시가 잘 개발되고 발전하려면 제대로 된 도시계획이 뒷받침돼야 합니다. 작은 공약 같아 보여도 결코 쉽지 않은 문제라는 걸 잘 압니다. 전주에 와서 놀란 일이 하나 있었는데. 전주 아이들이 아직도 ‘신발 가방’을 들고 다니더라고요. 서울이나 수도권에선 90년대에나 있던 낮 선 풍경인데요. 왜 신발 가방을 가지고 다니냐 물어보니 학교에 신발장도 없답니다. 이게 전주의 현실을 보여주는 단면입니다. 하나하나 고쳐나가겠습니다. 22대 국회 개원 전에 준비할 사안들도 잘 마치고, 귀를 열고 발로 뛰겠습니다. 이해관계 조정 과정에서 숨지 않고 합리적인 방안을 도출하겠습니다.”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