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녀리다. 무녀리의 어원은 문(門)+열(開)+이(접사)로써 ‘문(門)열이가 무녀리로 되었다. 개‧ 돼지 등은 여러 마리 새끼를 낳는데 그 가운데 가장 먼저 나온 새끼를 말한다. 그런데 사람은 한 태에서 여럿이 태어나지는 않지만 맨 먼저 낳은 큰아들 큰딸은 무녀리 자식이라고 사랑받아 왔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어원과는 다르게 한 태에서 태어났지만 유난히 못생기고 허약하여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다른 형제들 사이에서 뒤처지는 자녀가 무녀리로 불리게 되었다.
나는 어린 시절 건강한 자매들과는 달리 잔기침을 많이 하면서 자랐다. 그런 데다가 음식을 맛있게 먹는 편도 아니었고, 깨작거리다가 숟가락을 내려놓기가 일쑤였다. 풍요롭지 않은 시기에 입맛마저 까탈스러우니 다른 자매들보다 작고 허약할 수밖에 없었다. 양푼에 밥을 비벼서 함께 먹을 때는 씹는 속도가 느려서 몇 번 먹다 보면 그릇은 텅 비어 있곤 했다.
또한 네것 내것 구분 없이 필요에 따라서 옷을 바꿔 입기도 하고 물려주고 받기도 했지만 나는 내 것이 아니면 안 되었다. 심지어 숟가락도 내 것을 정해놓고 그 숟가락이 아니면 밥을 먹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자매들의 미움을 받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투덜거리면서도 당연한 일로 여겼는지 내 숟가락을 챙겨주곤 했다. 하지만 위생을 고집했음에도 허약했다. 내 몸에 있어야 할 유익균이 까탈스러운 성격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가는 바람에 면역력이 약해진 탓이다.
그래서 허약하고 시원찮다는 이유로 휴일에는 자매들처럼 논이나 밭에 가지 않고 집에서 마당에 널어놓은 고추, 호박고지, 벼 등 계절에 알맞은 농작물을 지켜야 했다. 개와 고양이가 똥 누지 않도록 감시하고, 닭들이 허비지 못하게 하고, 방문객을 살펴야 하는 막중한 임무가 주어졌다. 나는 논밭에 세워놓은 허수아비와 같다고 생각했다. 물론 자매들은 이런 나를 몹시 부러워했다. 하지만 혼자 남아 농작물을 지키는 일은 외롭고 따분했다.
저녁노을이 산마루에 내려오고 산 그림자가 어둑어둑 마을을 덮고 있을 무렵에야 부모님과 자매들이 대문을 밀고 들어왔다. 자매들의 고단한 눈빛은 나에게 쏠려왔고 나는 눈치를 보면서 물을 떠다 주기도 하고 주변에서 서성거렸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흐르고 우리가 철이 들어갈 즈음에서야 내 역할이 얼마나 중요하게 작용했는가를 놓고 이야기하면서 서로의 수고로움에 대하여 위로해 주었다.
밖에서 열심히 일하여 수확물을 가져온다고 해도 닭들이 허비거나 개와 고양이가 분비물을 쏟아놓고 낯선 방문객이 농작물을 가져가 버린다면 헛일이라는 것을 가족 모두가 알았다.
무녀리의 어원이 언제부터 다르게 해석되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이다.
나는 우리 자매들 사이에서 여전히 무녀리다. 어차피 무녀리가 되었으니 이제부터라도 대단한 무녀리, 근사한 무녀리, 눈부신 무녀리, 겸허한 무녀리가 되고 싶다. 우리 사회가 모두 자기 욕심부리지 않고 서로를 감싸주고 양보하는 무녀리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노은정 수필가는 <대한문학>에서 등단한 수필가로 전북문인협회, 행촌수필문학회, 영‧호남수필문학회 회원이며 현재 한국 아동문학회 디지털 문화위원, 해법 글사랑 논술 교습소원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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