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푸른 잎이 더 아름다운 신록의 계절이다. 농촌에서는 한 해 영농을 시작하는 시기, 모내기철이다. 최근 수년간 이맘때면 극심한 봄가뭄으로 농심이 타들어갔다. 다행히 올해는 물 걱정이 없다. 유난히 봄비가 잦았다. 들녘에서 쌀농사를 준비하는 계절, 도시의 거리에서는 쌀밥이 꽃으로 쏟아진다. 화려한 봄꽃이 다 지고 나면 그 아쉬움을 달래주면서 여름의 문을 여는 이팝나무 꽃이다.
이팝은 이밥의 사투리고, 이밥은 입쌀(멥쌀)로 만든 밥을 가리킨다. 꽃 모양이 흰 쌀밥을 닮았다고 해서 이팝나무다. 쌀이 귀했던 시절, 나무를 올려다보며 사발에 소복이 담긴 흰 쌀밥을 연상했을 옛사람들의 고달픈 삶이 엿보인다. 게다가 반세기 전까지만 해도 힘겹게 보릿고개를 넘고 있을 때가 아니던가. 예전에는 이팝나무 꽃송이를 보고, 풍년과 흉년을 점치기도 했다고 한다. 절기상 입하(立夏) 무렵에 꽃이 피기 때문에 이팝나무라 불렀다는 설도 있다. 입하인 5일, 이미 절정을 넘긴 꽃무더기에 거센 빗줄기가 쏟아졌다. 한층 빨라진 여름의 문턱, 상춘(賞春)의 계절은 갈수록 짧아진다.
몰랐다. 주변에 이팝나무가 이렇게 흔했는지⋯. 쌀밥 같은 꽃을 무더기로 피워내야 비로소 눈에 띄고, 봄철 꽃놀이가 끝난 후에야 제철을 맞으니 꽃이 필 때까지는 관심을 끌지 못한다. 그래서 몰랐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확실히 개체수가 늘었다. 가로수로 인기를 끌면서다. 우리나라 자생종이고 병충해와 대기오염에 강하다는 게 장점이다. 예전 도로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플라타너스와 은행나무가 도심에서 조용히 쫓겨났다. 꽃가루와 악취 때문이다. 그리고 이 자리를 이팝나무가 속속 차지하고 있다. 가로수의 세대교체다.
전북에도 이팝나무 명소가 많다. 1960년대 일찌감치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고창 중산리 이팝나무와 진안 평지리 이팝나무군을 먼저 꼽을 수 있다. 또 전주 팔복동 이팝나무 철길도 사진 명소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이팝나무 꽃이 만발하면 그 해엔 풍년이 든다’고 했다. 올해는 유난히 이 쌀밥꽃이 풍성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풍년이 들어도 농민들은 웃을 수 없다. 쌀값 폭락이 거듭되는데 마땅한 대책이 없다. 쌀값이 폭락할 경우 초과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사들이도록 하는 내용의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지난해 봄 우여곡절 끝에 국회를 통과했지만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다. 논란은 해를 넘겨서도 거듭되고 있다. 민주당이 지난달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단독 의결해 본회의에 직회부했다. 그러면서 쌀을 비롯한 농산물 수급 안정 정책이 다시 뜨거운 감자가 됐다.
쌀은 생명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했지만 쌀 부족은 과잉공급과는 비교할 수 없는 문제다. 이팝꽃이 다 떨어지고 무성한 잎만 남으면 모내기가 끝난 들판도 온통 푸르게 변할 것이다. 올해도 이팝꽃처럼 풍성한 결실을 기대한다.
/ 김종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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