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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보아야 보이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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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덕성 우송대학교 총장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봄이 와서 들판에 꽃이 피기 시작하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라는 시구다. 매년 꽃들이 만개할 즈음이면 학교도 새 학기를 맞아 수업과 행사 등으로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가곤 한다. 하지만 올 봄에는 그 계절의 아름다움을 자세하게 그리고 오래 볼 수 있었다. 10년 이상 필자를 괴롭히던 무릎 통증을 치료하고자 약 2개월 전에 수술을 받았다. 그 후 회복하는 동안 지팡이에 의지해 걷다보니 아무리 바쁜 일이 있더라도 천천히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니 그동안 잊고 있었던 봄의 화사함, 마른 가지에 싹이 돋고 꽃이 피는 자연의 신비함, 캠퍼스에서 명랑하게 재잘거리는 학생들의 모습이 자연스레 눈에 들어왔다. 

그동안 바쁘게 살아온 시간을 잠시 멈추고 나의 삶을 돌이켜보았다. 지금까지 앞만 보면서 달려오다 보니 무심히 지나쳤던 일, 중요하지만 우선순위에 밀렸던 일 등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고, 주변의 따뜻한 봄날과 활기 있는 삶의 모습에 눈길을 돌리게 된다.

담장에 피어있는 라일락의 그윽한 향기를 맡다보니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교수가 생각이 났다. 그는 비교적 젊은 시절에 의과대학 교수로 임명되어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도 방학이 되면 제자들과 함께 필리핀 무의촌으로 의료봉사를 나가곤 했다. 대학병원 특성상 여름휴가는 일주일 남짓했는데 그 황금 같은 휴가를 의료 봉사하는데 다 쓰고 돌아와서는 소진된 기력을 회복하려고 애쓰는 모습이었다. 이러한 모습은 여름휴가 기간 가족과 여행을 다녀온 필자를 매번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는 퇴직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시점에 정기 건강검진에서 암이 발견되었고 치료를 위해 휴직 신청을 하였다. 그 해에는 해외 봉사가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는데, 평소와 다름없이 의료 봉사를 다녀왔다. 친구들은 그에게 ‘몸이 아프면 좀 쉬어야지, 왜 무리를 해서 해외 봉사를 다녀왔냐?’, ‘나이가 들면 자기 자신에게도 신경을 써야한다.’라는 걱정 어린 충고를 했지만 돌아오는 그의 대답은 비교적 간단하였다. ‘지금까지 여름방학이면 매년 가던 의료봉사여서 올해도 가야될 것 같아 조심하면서 다녀왔다.’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것이었다. ‘몸이 안 좋으면 이기적이고 소심한 마음으로 바뀌어서 하던 일도 소극적으로 대처하는데, 어떻게 저렇게 의연한 삶을 살 수 있는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그의 병은 치유되었고 정년퇴직 후, 신변을 정리하고 본격적으로 의료 활동을 위해 해외로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에 대한 추억은 무릎통증 하나 때문에 소심하게 작아지는 나를 바라보면서 다시 생각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잠깐 멈추어 생각해보니, 무릎 수술로 인해 일상생활이나 움직임 등에 다소 불편함이 있지만 오히려 바쁘게 살아왔던 과거보다 조금 더 여유가 생겼고, 주변의 풍경을 바라보며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친구들과 이웃, 봄의 아름다운 모습을 기억하며 빙그레 웃을 수 있게 만들어준 전환점이 되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몸과 마음이 약해지다 보니 자연스레 이기적으로 변하고 소심해지는 경향이 생기지만,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나에게 감동을 주었던 벗들의 귀한 모습을 생각해보고 다시 한 번 힘을 내봐야겠다고 다짐한다.

계절의 여왕인 5월, 하루가 다르게 초록이 짙어지고 라일락, 아카시아 꽃향기가 퍼지는 거리를 천천히 걸어보자. 바쁘게 지내왔던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나와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걸어야 보이는 것’들을 느끼고 자신을 회복하는 따뜻한 봄날 을 맞이할 수 있는 5월이 되기를 바란다.

/오덕성 우송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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