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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기고

[금요수필]골목길 트로트 삼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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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희

21C 후반, 거나해진 3사람은 신났다. 전주곡 넣는 사람, 온몸을 들썩거리며 리듬 타는 사람, 본곡을 개성 넘치는 제스처 섞어 간드러지게 부르는 사람을 보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씨익-' 웃는다.

미스터트롯 삼총사 그룹이 부른 <삼포로 가는 길> 때문이다. 고성방가는 불가하지만 흥에 겨운 품새에 어깨춤까지 들썩거리는 이들도 있었다. 두 사람과는 전언(傳言)으로만 들어 아는 정도였지만, 같은 학교에 근무하게 되면서부터 금방 친해졌다.

빨리 친해진 이유는 술의 힘이었다. 상급자가 우리 셋을 보고 하는 말이 맛있게 마시는 사람들, 거포들, 재밌게 마시는 사람들이라고 각각 별칭까지 붙여줄 정도로 궁짝이 맞았다. 마실수록 분위기가 익어지니 술이 술을 마시고 우리의 우정(友情)은 주정(酒情)이 되었다.

술이라면 김제에서도 둘째 가라면 서운할 정도로 우정(友情)과 주정(酒情)을 마셨으니 무성한 소문도 오갔을 터다.

하루는 상급자 집으로 다른 직원 두어 명과 함께 초대를 받았다. 집에 들어서니 진수성찬으로 준비한 상이 양주 1병, 맥주 2박스와 함께 거실 가운데 놓여 있었다. 저녁 식사 겸 술자리를 물리치고 고스톱판은 당연한 과정이었다.

점심 식사 시간이면 식당 가서도 30분만 치자며 판을 벌일 정도로 고스톱이 유행이었던 시절이었다. 고스톱을 하면서 승자라 한 잔, 먹고 싶다고 한 잔, 저녁 내내 수많은 핑계로 마신술 때문에 술병이 바닥나고 말았다.

이날을 시작으로 이런 자리는 가가호호(家家戶戶) 방문까지 이어졌다. 직원 회식이 있는 날이면 거나해진 J선생이 일어난다. 그러면 나와 C선생은 약속이라도 한 듯 따라 일어선다. 그리고 내가 먼저 강은철 가수가 노래한 <삼포로 가는 길>을 전주곡으로 시작한다. 전주곡이 끝나면 J선생이 멋들어진 춤사위와 함께 '본곡(本曲)'을 부른다.

 

바람 부는 저 들길 끝에는/ 삼포로 가는 길 있겠지/

굽이굽이 산길 걷다 보면/ 한발 두 발 한숨만 나오네/

아 뜬 구름 하나 삼포로 가거든 정든 님 소식 좀 전해 주렴/

나도 따라 삼포로 간다고/ 사랑도 이젠 소용없네/삼포로 나는 가야지...

 

H선생의 작은 눈이 위, 아래가 붙은 듯 지그시 감고 리듬에 맞춰 몸을 움직인다. 동행 직원들도 박수를 맞추며 거들어 흥을 돋우니 분위는 최고조에 이른다. 그 이후로 직원 회식이 있는 날이면 단골 메뉴가 되어버렸다. 

하루 종일 아이들과 답답한 교실에서 해방되어 마시는 한 잔 술이라니 우리들에게는 피로 회복제였다. 처음에는 트롯가요 <삼포로 가는 길>도 누가 불렀는지도 몰랐다. J선생이 발단부터 확산까지 원흉인 셈이다. 요즘은 미스터트롯 출신 가수들이 주름잡는 시대다.

설운도 가수가 부른 <보랏빛 엽서>를 임영웅 신인가수가 맛깔나게 불러 히트를 쳤고, 조항조가 부른 <고맙소>는 김호중 신인이 불러 대중들에게 열렬히 호응을 받으며 재탄생했다.

 <삼포로 가는 길> 가요도 위의 경우처럼 대박은 아니었지만 J선생이 흥겨운 춤사위와 함께 불러 우리들의 호응을 불러낸 노래다. 노래는 부르는 가수에 따라 색깔이 다르다는 것은 어렴풋이 알고, 노력해 왔지만, 요즘 그런 재미를 미스터트롯 출신가수들이 주고 있다.

우리의 고스톱 모임도 어언 40여 년이 흘렀지만, 지금도 분기별로 만나 <삼포로 가는 길>을 부르며 <삼포로>로 빠진다.

 

△이종희 수필가는 김제 출신으로 2011년 종합문예지 《대한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현재 전북수필문학회장이다. 안골은빛수필문학회장, 전북문협자문위원장, 영호남수필부회장, 김제 난산초 교장을 역임하고 홍조근정훈장, 전북수필문학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수필집 《하얀 90분》 외 3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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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몰길 #금요수필 #이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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