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악한 백성이 나라를 어지럽힌 반란을 일으킨 것'
과거 동학농민혁명은 이와 같은 의미에서 동학 '민란(民亂)'으로 불렸고, 역사 교과서에서도 '동학란'으로 지칭됐다. 1894년 갑오년 이래 1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역사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오랜 기간 정치적인 도구로 이용됐으며 이 시기 교육과정을 이수한 세대뿐만 아니라 현재까지도 대중의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인식은 여기에 멈춰 서있다. 나아진 인식마저도 '농민들이 탐관오리에 저항해 공주까지 진출했다가 패전하고 해산했다'는 정도다.
무장기포지는 단순히 고창 지역의 역사 유적이 아니라 한국 근대사의 중요한 한 획을 그은 상징적인 장소다. 따라서 무장기포지에 대한 관심과 참여는 전국적인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역사적 가치와 중요성에 비해 혁명의 현장들이 제대로 관리되고 보존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어, 무장기포지를 비롯한 동학농민혁명 유적지에 대한 적극적인 관리와 관심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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