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의 가치가 새로운 콘텐츠로 주목받은 지 오래다. 판소리가 뿌리인 창극도 그중 하나다. 여러 해 전 호평을 받으며 창극의 미래를 제시했던 창극이 있다. 2011년 발표된 국립창극단의 <몽유도원도>다. 창작 창극 <몽유도원도>는 한국의 집과 국립창극단이 공동제작 했던 작품이다. 당시만 해도 낯설기만 했던 3D와 현대적인 IT 기술을 접목해 만든 새로운 영상과 창극이라는 고전적 양식의 결합은 흥미로웠다. 볼거리에 비중을 두다 보니 서사적 구조의 예술적 완결성이 부족했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우리 시대의 창극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여과 없이 제시했던 이 무대는 그 뒤 국립창극단의 대표작이 되었다.
창극은 판소리를 바탕으로 하는 우리 고유의 음악극이다. 판소리에 극의 양식을 도입한 창극의 시작은 180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름을 널리 알렸던 명창들은 대화창이니 입체창이니 하여 극장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맞는 양식을 개발했다. 이들이 본격적인 창극 무대의 시작이었다.
창극 무대를 본격적으로 연 대표작은 1908년 원각사에서 공연된 <은세계>다. 이후 창극은 대중들의 큰 관심을 받으며 성장했다. 신문물이 밀려오고 우리 전통문화가 철저히 말살되었던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도 살아남았으니 창극의 대중적 기반이 얼마나 탄탄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대중문화가 밀려 들어오면서 창극은 쇠퇴하기 시작했다. 다행스럽게도 1962년 국립창극단이 만들어지면서 창극은 단절되지 않은 우리 고유한 연행 문화로 성장해왔다.
그렇다면 창극은 우리 시대 관객과 호흡하는 예술로 정착했을까. 아쉽게도 창극의 오늘은 명쾌하지 않다. 신명은 있으나 감동은 그에 미치지 못하고, 소리꾼의 절창에 가슴 뜨거워지지만, 창극은 여전히 친숙하지 않다.
지난 주말, 전북자치도립국악원 창극단이 창극 <춘향>을 올렸다. 국악원의 관현악단, 무용단이 함께한 창극 <춘향>은 그동안 올려온 창극 중에서도 가장 많이 공연된 국악원의 대표작이다. 1986년 문을 연 도립국악원은 올해 38주년을 맞았다. 함께 성장해온 창극단, 관현악단, 무용단의 연륜도 깊으니 단원들의 공력 또한 만만치 않다. 단원들의 고른 역량은 이번 창극 무대에서도 빛났다. 객석을 꽉 채웠던 관객들이 단원들의 내공에 보냈던 큰 박수가 그것을 증명한다. 그러나 무대로서의 창극 <춘향>은 갈 길이 멀게 보인다. 창극 대중화가 아직 멀리 있는 탓이다.
궁금해지는 것이 있다. 일제강점기에도 살아남은 창극은 왜 살아있는 장르로 이 시대와 호흡하지 못하는 것일까. 마침 새로운 환경을 맞은 도립국악원이 그 답을 찾았으면 좋겠다. /김은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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