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께서 향년 92세로 지난주 세상을 뜨셨다. 평소 건강하셨는데 폐렴으로 병원 입원 3일만에 작고(作故)하신 것이다. 장례는 병원에 딸린 장례식장에서 치렀다. 처가에 아들이 없어 자연히 상주(喪主)는 내 몫이었다. 모든 절차는 급히 모인 친인척들과 장례식장에 소속된 장례지도사의 의견에 따르기로 했다. 하지만 내가 결정해야 할 것도 있었다. 우선 몇일 장으로 할 것인가 하는 게 문제였다. 금요일 밤 12시 직전에 돌아가셔서 삼일장은 좀 망설여졌다.
그러나 장례를 최대한 짧게 하기로 했다. 일요일 아침에 발인키로 한 것이다. 가능한 주변에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부고(訃告)도 최소화하기로 했다. 휴일인데다 여름 휴가철이고 장맛비가 쏟아져 나부터도 부고를 받으면 짜증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장지문제인데 다행히 장인께서 종중산에 당신이 들어갈 자리를 만들어 놓아 한시름 놓았다. 집에 영정 사진도 준비되어 있었다. 발인날은 비한테 들키지 않고 모든 일을 무사히 마쳤다.
5년 전 장모님은 병원 입원 이틀 후 심장 시술 중 돌아가셨다. 감기가 심해 병원에 갔는데 심장이 좋지 않다며 시술을 권해 입원한 것이다. 결국 의사의 말을 믿고 따랐는데 의료사고로 의심되는 심정지로 사망에 이르렀다. 너무 황당해 화가 치밀었고 나 때문에 돌아가신 것 같아 심적 고통이 꽤 오래갔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이번 장인상을 치르면서 찾아온 지인의 말은 큰 위로가 되었다. 두분 다 죽을 복을 타고 났다고. 후손들 고생 시키지 않으려고 일찍 가신 것이라고. 반드시 그럴까 하면서도 내심 고마웠다.
이제 나는 친가와 처가 부모님 네분이 모두 안 계신다. 미안한 표현이지만 홀가분하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부터다. 다음은 내 차례가 아닌가. 땡감이고 익은감이고 어느 게 먼저 떨어질지 모르지만 나도 순번을 탄 것이다. 정말 어떻게 죽어야 하나? 아직은 건강해 활동이 자유로우나 팔다리가 내 마음 같지 않고 치매 등이 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흔히 태어나는 것도 죽는 것도 마음대로 못한다고 한다. 하지만 죽음에 대해서는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는 게 시대적 흐름이다. 그러기 위해서 죽음도 준비가 필요하다. 미리 유언을 해두고 매장 또는 화장을 할 것인지, 선산 또는 추모관에 들어갈 것인지, 장기를 기증할 것인지 등 살아있는 동안 능동적으로 생각을 해둬야 한다. 지금 상황으로는 호스피스 완화의료를 받다 고통없이 가는 게 최선이 아닐까 싶다. 나아가 우리나라는 아직 ‘조력존엄사법’이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으나 안락사 또는 존엄사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일이다.
한편 한국노인들의 좋은 죽음에 대한 인식조사를 보면 흥미롭다. 2002년 조사(한나영 외)는 적절한 수명, 무병사, 자손이나 배우자보다 먼저 죽는 것, 자손들에게 폐 끼치지 않고 죽는 것, 가족들이 다 있는 앞에서 죽는 것, 자손들이 잘 사는 것을 보고 죽는 것, 수면사, 무통사 등 8가지를 꼽았다. 2013년 조사(이명숙·김윤정)는 주변 사람을 배려하는 죽음, 천수를 누리는 죽음, 내 집에서 맞이하는 죽음, 편안한 모습의 죽음, 준비된 죽음, 원하는 삶을 누리다 가는 죽음 등 6가지를 들었다. 그리고 2018년 조사(신향숙)는 준비된 죽음, 원하는 곳에서 맞이하는 죽음, 자연사 등이었다. 갈수록 죽음 준비와 장소를 강조하는 추세다.
무소유를 설법한 법정스님은 ‘미리 쓰는 유서’에서 “죽음이 언제 어디서/ 내 이름을 부를지라도/ ‘네’하고 선뜻 털고/ 일어설 준비만은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고 했다. 나도 ‘네’할 준비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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