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끝자락, 한 달이 채 남지 않았다. 늘 정신없이 몰아치던 연말 일 더미에서 벗어나, 올해는 프리랜서로 일을 하다 보니 시간적 여유가 많아졌다. 늘 바빴던 연말과 달라 조금 낯설기도 한 올해 연말이다. 이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까 고민하다 지난 몇 년간 마음의 여유가 없어 하지 못했던 일들을 11월부터 하나둘씩 시작해보기로 했다. 오래전부터 좋아하는 영화 수록곡을 피아노로 연주해 보고 싶었던 마음을 들춰보았다. '언젠가'라는 말 뒤에 숨기 바빴던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고민한 시간이 무색하게도 학원에 등록하고 나니 그 자체로 이미 목표를 달성한 것 같았다. 왕초보 기초반부터니 원하는 곡을 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테지만 첫발을 내디뎠다는 것이 뿌듯했다.
그간 나를 위해서 하고 싶었던 일들을 많이 미루어왔다. 소속되어 일할 땐 근무시간과 환경이 여의치 않다고, 제대로 하지 못할 거면 하고 싶지 않다는 어설픈 완벽주의가 발목을 잡았다. 핑계는 쉽고 시작은 날이 갈수록 어려워졌다. 내 상황에 변동이 생기면 지속이 어려울 텐데 하는 막연함도 컸다. 피아노 학원 등록은 그러한 핑계들로 벗어나 무언가를 시작하는 새 마음 그 자체였다. 피아노 학원을 등록하고 나자 시작이 어려운 것도 아니고 혹시나 하는 생각 자체를 두려워 말자는 용기가 생겼다. 그리고 참 신기하게도 기회가 된다면 해야지 하던 공부를 시작할 기회가 생겼다.
얼마 전의 나라면 고민하다 공부 기회를 다음으로 미루었을 것이다. 첫발을 내딛자 다음은 확실히 수월했다. 그렇게 공부도, 시간 되면 다시 해야지 하던 봉사활동도 정식으로 시작하게 됐다. 물론 지금이 전과 비교해 시간 여유가 많아져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작년처럼 일하고 있었더라면 피아노가 아니라 피가 말리는 시간과 싸움 속에 살았을 것이다. 모든 것이 다 내 계획과 딱 맞아떨어지는 것은 환상에 가까울 것이다.
올해 상황이 달라지며 시간적 여유가 생기자 반대로 재정적으로 불안정해졌다. 그로 인해 일 인분의 삶을 잘 살아가고 있는지 회의감이 들기도 했고, 괜스레 초라해지는 나를 마주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포기해야 하는 것, 포기되는 마음들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시작하자, 다음을 위해 준비하고 성장하는 사람이라는 용기가 채워진다.
‘언젠가’로 미루어두지 않는 것, 그 ‘언젠가’로부터 한 발짝 나아가는 것이 새해를 준비하는 마음에 걸맞다는 생각이 든다. 거창하지 않다도 좋다. 책장에 쌓인 책 한 권을 읽기 시작하거나 주변에 전할 크리스마스 카드를 손으로 써보는 것도 좋은 시작이 되지 않을까? 한 해를 잘 보내주고 새해를 시작하는 기쁜 마음으로 무엇이든 시작해보자.
이 지면을 끝으로 청춘예찬의 연재를 마무리하게 됐다. 나의 고민과 생각의 조각들을 나눌 수 있어 감사하고 동시에 부끄럽기도 했다. 부족함이 많은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께 감사를 전한다. 모두 평화롭고 충만한 연말이 되시길!
조아란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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