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우리 사회의 균열을 드러낸 큰 사건이 있었다. 바로 미투운동.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오랜 시간 방치되어온 구조적 불평등이 표면 위로 떠오른 일이었다. 그것은 권력과 젠더의 문제이자 우리가 외면해온 고질적인 사회문제이기도 했다. 우리 전북 문화예술계도 예외는 아니었다. 자유와 창의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예술계는 이상적 이미지 뒤에 감춰져 있던 권력 구조와 불평등을 정면으로 마주해야 했다.
그 틈새를 드러낸 것은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고백이었다. 그들의 고백은 단순히 사건을 밝히는 데 그치지 않고 상처를 드러내고 고통을 나누며 더 나은 현장을 모색하기 위한 담론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2020년, 전북지역 내 광역‧기초문화재단, 전북대학교, 여성단체 등 민관학이 협력해 ‘전북성평등네트워크’가 출범하였다. 이 네트워크는 전북 문화예술계의 문제를 기록하고, 공론화하며, 변화의 첫걸음을 내딛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그리고 지난 5년간의 여정을 기록한 전시가 전주한옥마을에 자리한 하얀양옥집에서 열렸다. ‘2024 전북 성평등 문화예술 아카이빙展: 수선(修繕)’이라는 이름 아래, 그동안의 발자취와 노력을 담아낸 전시다. 이 전시는 단순히 기록을 나열하는 것을 넘어, 부서지고 잊힌 것들을 다시 꿰매고 다려내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표현하였다.
전시의 네 가지 섹션은 ‘터짐’, ‘고침’, ‘다림’, 그리고 ‘되살림’으로 나뉜다. 성평등의 길 위에서 맞닥뜨린 상처와 고통은 ‘터짐’으로, 그 상처를 마주하고 치유하는 노력은 ‘고침’으로, 연대와 협력의 실천은 ‘다림’으로, 지속가능한 변화를 향한 희망은 ‘되살림’으로 표현되었다. 각각의 섹션은 단순한 문구와 사진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것은 문화예술계 성평등 실천의 여정을 상징하며, 이 길을 함께 걸어온 사람들의 연대와 노력을 시각적으로 보여주었다.
‘수선’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망가진 물건을 고치는 행위를 넘어, 본래의 의미를 되살리는 깊은 울림을 준다. 찢어진 옷을 꿰매는 일이 그렇듯, 사회의 균열을 메우는 일 역시 쉬운 과정이 아니다. 이는 지속적인 관심과 실천 없이는 결코 완성되지 않는 길이다. 특히 지역사회라는 특수한 맥락 속에서 관계의 촘촘함과 이해관계의 복잡성을 넘어서야 한다는 점은 더 큰 도전을 의미한다.
전북의 문화예술계에서 성평등의 문제를 공론화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온 과정은 단순한 용기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관계의 그물망 속에서 상처를 드러내야 했던 피해자들의 고통과, 그 고백에 손을 내밀고 함께 걸어온 사람들의 연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전북에서 시작된 이 작은 네트워크의 움직임은 거울을 닦고 다시금 올바른 방향으로 세우기 위한 시도였고 그러한 의미에서 ‘2024 전북 성평등 문화예술 아카이빙展: 수선(修繕)’ 은 지역 문화예술계가 당면한 문제를 어떻게 마주하고 해결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전시다.
성평등을 향한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균열은 여전히 남아있고, 새로운 상처가 생길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것이다. 꿰매고 다려내는 과정은 어렵지만, 그 속에서 더 나은 사회를 향한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전북에서 시작된 이 작은 움직임이 더 큰 물결로 확장되고, 우리가 수선한 자리에서 새로운 희망이 싹트길 바란다.
임진아 전북특별자치도문화관광재단 문화예술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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