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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기고

겨울 감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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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 시인

감나무는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다. 마을 어디서 나 쉽게 볼 수 있는 나무지만 조금만 자세히 보면 격 있는 나무가 감나무다. 감나무 모습 중에서 가장 문기가 넘치는 모습은 뭐니 뭐니 해도 붉은 감이 몇 개 달린 눈 쌓인 감나무 가지에 까치가 앉아 우는 새 아침의 모습일 것이다. 다른 나무에 비해 실 가지가 굵은 감나무는 눈을 많이 받는다. 검고 굵고 짧고 뭉툭한 가지에 가만가만 내려 눈은 소복하게 얹힌다. 가지에 얹힌 눈이 녹을수록 감나무는 눈 녹은 물로 젖어 더 검어지고 눈은 희게 빛난다.

내가 오랫동안 근무했던 초등학교 주위에 감나무들이 많았다. 그 감나무들은 내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부터 거기 있었다. 나는 계절을 따라 아이들과 감나무를 바라보는 것을 좋아하였다. 감잎이 진 가을이면 점심시간에 아이들과 함께 학교 뒤에 있는 감나무를 향해 돌멩이를 던져 감을 따 먹다가, 감나무 주인인 강 건너 우리 고모가 운동장에 들어서며 누가 우리 감 따 먹었느냐고 고함을 치기도 해서 달려가 내가 그랬다고 늦가을 소동을 무마 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내가 유리창을 열어 놓고 감나무를 보고 있으면 아이들이 하나둘 감 같은 얼굴로 내 곁에 모였었다. 겨울이 와서 감나무 가지 사이로 쏟아지는 눈을 바라보거나, 가지마다 가만가만 쌓인 눈이 여기저기서 천천히 허물어져 떨어지는 모습은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가 아득해지는 고적함을 가져다주었다.

감나무는 나이가 들수록 몸이 검어진다. 다른 나무에 비해 몸이 검고, 투박하고 까만 가지들은 세월이 갈수록 단아해져 가고 품위를 갖추어 간다. 감나무는 찢어지지 않고 부러진다. 찢어지지 않고 뚝! 부러진 내면은 얼마나 고운, 흰색인가. 뻗어나가며 적당한 길이로 구부러진 멋스러운 마디의 검은 가지에 얹힌 흰 눈의 대비는 수묵의 경지다. 감나무도 나이가 들고 고목이 되어 이 가지 저 가지가 죽어가는 그 꾸밈새 없는 모습은, 자기가 태어난 곳에서 자라 평생을 살면서 마을을 이해하여 그에 알맞은 마음을 곱게 쓰며 살아 온 선량한 동네 어른처럼 믿음이 간다. 나이가 들어가며 자기 생각을 버리고 가다듬어 살아 온 세월의 자세로 다문다문 열린 감 같은 시를 쓰고 싶을 때가 있다.

새잎 피는 봄날, 내 책을 들고 온 사람들에게 사인을 이렇게 해 준다. ‘감나무에 새잎 피어 좋은 날, 임 만나러 가고 싶은 날’. 잎이 피면 잎이 피고, 감꽃이 피면 감꽃 핀대로, 땡감이 열려 있으면 그런대로, 감잎이 다 지고 붉은 감만 달고 서 있으면 또 그런대로, 빈 나무로 서 있으면 그런대로 검고 단단한 골격을 갖춘 자세를 견지한다. 지금은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은 재래종 붉은 감들이 가시덤불 속에서 눈을 하얗게 쓰고 꽁꽁 얼어 있는 모습을 보면 우리나라 농부들의 일평생 같아 눈 맞는 감처럼 마음은 춥다.

감나무는 농촌 사람들에게 그리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얻을 수 있는 소득원이었고, 농촌의 풍경을 사시사철 소박하고도 조촐하게 그려주던 나무였다. 옛날에는 집집이 마당 가나 뒤 안에 감나무들이 있었다. 큰 집 뒤 안 장독대에 감나무가 있었다. 뒷짐 지고 서서 서리맞은 붉은 감을 바라보던 큰아버지의 등은 얼마나 다정하고 말라가는 곶감이 걸린 처마 밑들은 얼마나 정다웠던가. 감나무는 순박한 삶을 가꾸어 온 우리네 저 유구한 농부들과 그 운명을 같이 해 온 셈이다.

마을 사람들은 이제 김장까지 끝내고 회관 아랫목에 여기저기 누워 ‘비상 계엄’ 텔레비전을 보다 잠이 들기도 한다. 가누기도 힘든 몸으로 자다 일어나 묻고, 뒤척이다 잠결에 눈을 비비며 나라의 안부를 묻는다“어치게 되어가? 날씨도 추운디, 많이 모였네”

오늘 밤도 마을 회관에 모여 텔레비전 보다가 어둑어둑 집으로 돌아 들 간다. 희끗희끗 눈 발이 날린다. 어둠 속이다. 강물 소리가 휘몰아친다. 감나무를 올려다보았다. 감나무가 어둡게 서 있다.

김용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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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감나무 #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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