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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는 장수가야 제철기술의 뿌리를 찾기 위해 5차례에 걸쳐 아이언 로드를 거슬러 올라가며 쫓았다. 장수가야 제철유적 현장에서는 찬란했던 테크노밸리의 영광을 돌아봤고 전주완주(오늘날 전북혁신도시)에서는 26자루의 중국식 청동검 등 유물로부터 이곳 잡단세력과 장수가야 세력의 연결고리를 찾았다. 군산 어청도에서는 전횡사당, 불탄여 등 중국 한나라의 공격에 바다 건너 망명 온 전횡 무리의 흔적을 발견했다. 전횡의 제나라가 존재했던 중국 산동성 제남(濟南)과 치박(淄博)이 아이언 로드의 마지막 거점이었다. 이곳에서 전북혁신도시에서 발견된 중국식 동검과 제나라 동검을 비교해 외형상으로 일치함을 알게 됐다. 아이언 로드 가설을 주장한 곽장근 군산대 가야문화연구소장, 전북의 초기철기문화 전공자인 한수영 호남문화재연구원 책임연구원으로부터 아이언 로드 주요 거점에서 찾은 성과와 의의, 발전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 전북가야사 복원에 있어서 아이언 로드가 왜 중요합니까. △한수영 연구원: 아이언 로드는 해로로 왔다는 것이 관건입니다. 인류사에서 가장 충격이 큰 것, 고대국가에서 가장 강력한 국력이 철이었습니다. 철을 선점한 집단이 크게 성장했죠. 한데 철기문화가 육로로 오면 한반도 이북을 지나 서울, 충청 그리고 다음이 전북입니다. 이미 위에서 2차3차 재지(在地) 토착화가 되고 전북은 간접적인 영향을 받는 것이죠. 하지만 해로는 훨씬 경로가 다이나믹한 데다 적극성이 드러납니다. 더욱이 전북혁신도시에서 발견된 중국식 동검 26자루를 보면 당시 중국 사람과 문물이 곧바로 들어왔단 걸 알 수 있죠. 이는 충분히 독자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원재료가 들어온 셈입니다. 전라도의 가장 찬란하고 앞선 역사로 여겨지는 백제 역시 전라도에 와서 뿌리를 내린 것은 한성, 부여, 공주를 거쳐 그 이후였습니다. 하지만 전북 가야사는 전북이 온전히 중심입니다. 더욱이 당시의 전북은 철을 통해 수도권보다 훨씬 큰 세력이었죠. - 전북가야사 복원에 있어서 아이언 로드 추적은 어떤 의미를 갖습니까. △한: 전북가야사는 문헌이 없기 때문에 오직 유물유적을 통해서만 과거를 재해석할 수 있습니다. 또 고고학에서 가장 중요한 게 설문조사입니다. 마을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 설화도 무시 못 하죠. 따라서 직접 아이언 로드 주요 거점을 방문해 유적유물을 비교대조하고 토착민들을 인터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를 종합해 가능성 높은 역사적인 맥락을 추측, 유적 발굴의 방향성을 도출할 수 있기 때문이죠. 10년 전만 해도 이런 가설을 세우지도 못했습니다. 전북 가야의 유적들이 땅속에 2000년 넘게 있었지만 드러난 것은 10년도 안 됐습니다. 아이언로드 가설은 심지어 그 유적들이 드러난 후에 세워졌기 때문에 이제 시작인 셈입니다. - 보완해야 할 점이 있다면요. △한: 아이언 로드를 하나의 긴 서사로 꿰기에는 중간에 시기적 공백이 존재합니다. 그 틈을 메울 수 있는 지속적인 유적유물 발굴과 조사가 필수입니다. 실용적인 연구와 자연과학, 암석, 철 등 다른 분야 전문가와도 연계하면 좋습니다. 이를 위한 정부와 자치단체의 관심과 지원, 연구 인력 확보도 수반돼야 합니다. - 곽장근 교수님은 취재가 진척되는 동안 전북 가야의 아이언 로드를 동북아 아이언 로드로 확장시켜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곽장근 교수: 그렇습니다. 두 가지 유물을 통해 전북가야와 일본간 교류가 왕성했음을 파악했습니다. 일본에서 복발(覆鉢)형 투구가 많이 나오는데 이게 우리나라 남원 운봉고원에서만 나오는 투구와 모양이 같아요. 제작 시기도 운봉가야에서 나온 것과 시기가 일치하죠. 또 하나는 역자형 비대칭 철촉입니다. 일본에서 많이 나오는 유물로 이 또한 우리나라에선 남원 운봉고원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유물입니다. 공교롭게도 일본 칠기문화가 6세기 중엽 흥하는데, 전북 가야가 바로 그 시기에 망합니다. 신라에 편입되는 서기 554년 무렵이죠. 즉, 전북 가야의 철 장인들이 신라가 아닌 바다 건너 일본으로 건너갔을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최고의 장인집단 일본에서 철기문화를 비약적으로 발전시킨 것이고요. - 이를 뒷받침하는 데 필요한 점은 무엇입니까. △곽: 기록은 없습니다. 역시 유물을 통한 고증만이 답입니다. 지속적인 발굴조사를 통해 유물 데이터를 쌓는 것이 답을 찾는 길이겠죠. 또 하나는 유물의 성분검사입니다. 철도 사람처럼 DNA가 있습니다. 생산지별로 다 다르죠. 전북 동부의 철은 니켈이 풍부한 것이 특징입니다. 전북, 영남, 일본 등의 철기 유물 성분을 비교해보면 철의 고향이 어디인지 명확하게 나올 것입니다. 오히려 성분 검사가 발굴에 드는 예산보다 효율적이죠. 이에 대한 예산 마련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전북 가야 아이언 로드 역시 현재는 걸음마 단계지만 장기적으로 동북아 아이언 로드까지 발전시켜야 합니다. 중국에서 한국, 일본으로 이어지는 동북아 철기문물 교류, 그 중심에 있었던 전북 가야의 국제성을 밝혀야 합니다. - 전북 가야 제철유적은 세계적으로도 유일한 고대 제철유적 단일 밀집지역이기도 하죠. △곽: 현재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1100여 건 중 고대 제철유적은 한 곳도 없습니다. 전북 가야는 전세계에서 극히 이례적이고 중요한 유적지입니다. 전북 동부권에서 최근까지 발굴된 제철유적이 현재 230개소에 달합니다. 계속 찾고 연구한다면 두 배까지 늘어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의미와 가치를 공유하고 제대로 평가 받아야 합니다. 시간예산이 들더라도 전북 동부권의 전북 가야 제철유적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해야 합니다. - 전북 가야 제철유적의 세계유산 등재에서도 아이언 로드가 중요한 키워드입니까. △곽: 물론입니다. 중국 제나라라는 족보뿌리가 생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철기문화 집합체가 어느 날 갑자기 생겼을 리 있겠습니까. 이게 설명이 되지 않으면 가설에 불과합니다. - 찬란한 전북 가야사의 복원이 기대됩니다. △곽: 전라도 천년 이전의 전북이야말로 한반도를 이끌었던 강력한 중심이었습니다. 번성했던 가야문화 자원이 재현돼 백두대간에 살아 숨 쉴 생각을 하면 벅찹니다. 옛 전북 가야의 1500개 봉수가 복원돼 태양열로 가동하는 레이저 쇼가 펼쳐진다면요. 철 박물관을 선점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전북 7개 시군에 분산형으로 조성해 관광과 상생을 동시에 이루는 겁니다. 전북 가야사 복원이 바로 전북 몫 찾기입니다. 미래발전 동력이자 지역 화합의 연결고리죠. <끝>
2018년은 전라도가 탄생한 지 1000년이 되는 해다. 고려 현종9년(1018)에 전주와 나주 첫 글자를 따서 전라도라고 명명했다. 전라도 탄생 1000년을 기념하고 전북의 역사를 재조명하는 전시회가 열린다. 전주역사박물관(관장 이동희)은 전라북도박물관미술관협의회와 공동으로 20일부터 오는 12월 9일까지 전라도 천년 특별전- 오지고 푸진 전북을 개최한다. 개막식은 19일 오후 4시. 도내 40여 개 박물관미술관이 유물을 출품하고 기획한 전시는 전북의 역사를 총체적으로 바라본다. 전시 제목 오지고 푸진 전북에서부터 주제가 드러난다. 매우 야무지고 실속 있다는 뜻의 오지다와 매우 많아서 넉넉하다는 뜻의 푸지다라는 전라도 방언에서 가져왔다. 조선 제일의 곡창지대, 후백제의 도읍이자 조선왕조의 발상지로 정치적 위상이 높았던 고장인 전북을 비유적으로 표현했다. 전시는 전라도의 탄생, 조선 제일의 곡창지대, 왕재(王才)를 지닌 땅, 전라도 천년의 중심 전주, 국난 극복의 주역, 변혁의 땅, 풍류의 고장 등 7개 섹션으로 구성된다. 전라도 1000년 역사 속에서 전북은 어떤 역사문화적 특질을 형성해 왔는지, 전북의 위상은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왜 그런 부침을 겪어야 했는지에 대해 초점을 맞췄다. 전라도가 된 과정과 역사적 의미를 설명하는 사서와 시기별 지도 등의 유물이 전시된다. 농장문서, 도량형 등을 통해 전라도의 역사문화 기반이었던 경제적 풍요를 보여주고, 어제수덕전편, 태조어진 등으로 역대 왕조의 탄생과 멸망 과정을 보여준다. 전라도 천년의 중심 전주 섹션에서는 전라도 일도를 관할했던 호남의 수부(首府) 전주의 모습을 호남제일성 편액 탁본, 전라감영 문서 등을 통해 볼 수 있다. 특히 호남제일성 편액의 탁본은 전라도 으뜸 도시라는 전주의 위상을 보여주는 대표적 유물이다. 풍남문 안쪽에 걸려 있던 편액을 탁본한 것으로 가로길이 3.38m, 세로길이 1.05m에 달한다. 전라감사였던 서기순이 쓴 것으로 알려졌다. 풍류의 고장답게 예술품도 선보인다. 익산 미륵사의 보살상 파편과 부안의 청자화분받침대, 낭곡 최석환의 묵포도도 등 쉽게 볼 수 없던 전북의 대표 유물 60여 점을 한자리에 모았다. 체험 행사도 있다. 전북의 역사 속 인물들과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자랑스런 전북인 포토존과 포도시맥없이시방 등의 전라도 방언을 배울 수 있는 전라도 방언 한마당, 전라도 천년 기념 손도장 나무 만들기 등이다. 이동희 전주역사박물관장은 전라도 천년 기념 사업은 화려했던 역사로 전북의 낙후된 이미지를 타개하고 발전동력을 얻을 수 있는, 천년에 한번 오는 기회라며 자치단체와 도민들도 적극적으로 관심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전북 가야사 복원 사업이 탄력을 받는 가운데 장수에서 다수의 제출 유적이 발굴돼 관심이 집중됐다. 기존에는 철기문화가 중국 요동반도를 통해 한반도에 전파됐다고 알려졌다. 한반도 이북과 한강 유역에서 발전한 철기문화가 뒤늦게 한강 이남으로 내려오는 셈이다. 하지만 장수가야의 제철기술이 바닷길을 통해 육로보다 먼저 직접적으로 전파되고, 이를 바탕으로 독자적인 제철문화를 꽃피웠다는 학설이 나왔다. 일명 아이언 로드(iron road)다. 청동기와 초기 철기시대에 존재했던 중국 제나라의 전횡이 군산 어청도로 망명하면서 26자루의 청동기초기 철기시대 청동검과 제철기술을 가져왔다는 것. 이후 선진 토착 세력이 있던 내륙, 현재의 전북혁신도시로 건너와서 약 100년간 선진기술 문화를 꽃피우다 철광석(철기 원재료)이 풍부한 장수지역으로 이동했다는 주장이다. 장수가야 제철기술이 독자성과 선진성을 증명한다면 당시 삼국(고구려백제신라) 못지않은 중심축으로 떠오른다. 이에 따라 전북일보는 장수가야 제철기술의 뿌리를 찾기 위해 6차례에 걸쳐 아이언 로드를 거슬러 올라가며 쫓아 왔다. 마지막 거점은 전횡의 제나라가 존재했던 중국 산동성 제남(濟南)시와 치박(淄博)시다. 한국과 가장 가까운 중국의 산동성. 김포부산 간 거리보다 인천산동 간 거리가 더 짧을 정도다. 산동성의 성도인 제남은 4000여 년의 역사를 간직한 도시다. 제나라의 수도였던 치박은 제남에서 동쪽으로 1시간 반가량 차로 이동하면 나온다. 중국 동서 교류의 중심이자 실크로드의 중추적인 통로였던 곳으로, 상업과 다양한 문물 교류전파가 활발했다고 한다. 기자는 중국 산동성박물관과 제국역사박물관을 방문했다. 중국에서 가져온 유물로 추정되는 전북혁신도시에서 발견된 중국식 동검 26자루와 실제 같은 시대 중국식 동검을 비교하기 위해서다. 또 아이언 로드의 현실 가능성에 대한 중국 전문가들의 의견을 묻고자 했다. 제나라의 철기유물을 볼 수 있는 곳. 춘추전국시대(초기철기 시대) 당시 산동성 일대에 번영했던 제(齊)나라와 노(魯)나라를 중심으로 시대별 산동성 지역 유물유적을 총망라한 중국 산동성박물관이다. 28만 여 점의 유물문건자연표본 등이 시대별주제별로 15개 전시실에 보관돼 있다. 산과 바다, 평야를 두루 끼고 있는 산동성 일대는 사람이 많이 살고 농경문화가 가장 융성했다. 춘추전국시대는 전쟁도 빈번했다. 따라서 제나라 유물로는 청동기와 철기 농기구무기가 가장 많았다. 이곳에서도 전북혁신도시에서 발굴된 26점의 중국식 도씨검과 형태가 동일한 다수의 청동검을 볼 수 있었다. 수옥결(修玉決) 중국 산동성박물관 큐레이터는 수많은 전쟁으로 당시는 무기가 많았고, 또 각 지역마다 검의 형태도 다양했다며 전시장에 있는 검과 전북혁신도시에서 발굴된 유물을 비교했을 때 하단부 손잡이 등 특정 형태가 동일하다. 시기나 디자인 등으로 미루어 추측할 때 춘추전국시대(초기 철기시대)에 제작된 중국식 청동검이 전북혁신도시에서 발견된 것과 동일하다고 말했다. 이어서 중국 국학박물관이나 군사박물관을 통해 철기 성분 등을 연구해보면 더 정확한 결과가 나오겠지만, 당시 멀리 떨어져 있던 두 지역에서 이정도로 유사한 유물이 나온 것은 직접적인 교류가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치박에 있는 제국역사박물관에서도 의미 있는 성과가 있었다. 2016년 말 현대식 건물로 새로 지은 제국역사박물관은 800년의 휘황찬란한 제나라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15개 전시실에 각각 300여 점 이상의 문화재가 시대분야별로 전시돼 있다. 이곳에서도 전북혁신도시에서 발굴된 검과 형태가 일치하는 중국식 동검들이 발견됐다. 제나라 역사 연구의 권위자인 주옥덕(朱玉德) 제국역사박물관 관장은 몇 가지 특징에 따라 두 지역의 유물이 동일하다고 판단했다. 주옥덕(朱玉德) 제국역사박물관 관장. 한나라 시대 검은 길이가 75~85cm인데, 전횡이 있던 춘추전국시대는 길이가 50cm 전후 정도였다는 것, 칼날 가운데 부분이 길게 나뉘어 있는 점, 손잡이가 일체형이면서도 쉽게 잡을 수 있게 모양이 독특하게 만들어진 점 등이다. 그렇다면 이를 가져온 인물은 전횡이 맞을까. 이에 대해 주옥덕 관장은 중국 산동성 지역의 고위층이 가져온 것은 확실하다고 본다. 그러나 전횡일 가능성은 절반이다고 말했다. 제나라 전횡 시기에는 이미 무기, 농기, 생활용품 분야에서 철기문화가 확산돼 있었습니다. 또 전횡이 망명한 시기도 맞아떨어지죠. 따라서 충분히 가능성이 있기도 하지만 중국에서는 전횡이 망명해 도착한 곳을 청도로 보는 견해가 더 큽니다. 하지만 전횡이 아니더라도 전횡의 측근 세력이 바다를 건넌 것으로 봅니다. 군산 어청도에 있는 전횡 사당을 세운 것도 자신들이 모시던 전횡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봐요. 주 관장은 비슷한 시기 제나라와 일본과의 교류도 빈번했다며 아직 자료유물 등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옛 장수가야 일대와도 해상 교류가 있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제나라 시기 일본과의 교류도 일본 학계가 적극적으로 연구하면서 밝혀졌습니다. 아직까지 옛 장수가야 일대인 장수남원 등이나 전북혁신도시 일대에서는 기원전 1세기 전후 시기의 발굴연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사료가 없다면 유물유적 발굴만이 실마리가 되겠죠. 전북에서도 아이언 로드거점지역 조사발굴이 활발히 이뤄지길 바랍니다. 현재 발굴된 제철유적 외에 철기 유물과 제작 용품 등을 찾는 것이 관건일 것 같습니다. 당시 바다를 통해 다양한 집단과 문물 전파교류가 있었다는 것은 우리에게도 큰 의미입니다.
국립전주박물관(관장 천진기)이 여유와 낭만을 즐기는 쉼터로 변했다. 박물관은 10월 31일까지 야외정원에 해먹 10여 개를 설치해 운영한다. 방문하는 누구든 해먹에 누워 책을 읽거나 쉴 수 있다. 드넓은 뜨락과 고목이 어우러지는 야외 전경은 심신의 안정을 느끼게 한다. 박물관이 30년 가까이 가꿔온 정원을 시민의 휴식 공간으로 내어 준 이유는 수동적이고 고전적인 이미지에서 탈피하기 위해서다. 천진기 국립전주박물관장은 도민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서 박물관은 오래되고 어려운 곳이 아니라 생활문화와 밀접한 곳이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며 바쁜 현대인들이 해먹에서 멍 때리기를 통해 지친 뇌를 쉬게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갈한 매력이 있는 박물관 정원을 배경으로 뜨락 음악회도 열린다. 15일 오후 7시 30분에는 국악과 클래식, 아카펠라, 어쿠스틱 기타의 감성까지 만날 수 있다. 전북 출신 음악가들로 구성된 국악앙상블국악&홀릭, 유재하 음악가요제에서 은상을 수상한 음악가 루빈(Ruvin), 유주환 음악감독을 중심으로 구성된 현악 3중주 트리오 코뮤니타스 등이 나선다. 공연은 (사)마당이 공동 개최한다.
국립미륵사지유물전시관이 고려 개국 1100주년을 맞이해 9월 11일부터 12월 30일까지 특집전 고려시대의 미륵사를 개최한다. 이번 특집전에서는 익산 미륵사지뿐만 아니라 익산 사자암, 부안 유천리 청자 가마 출토품 등 고려시대 유물 200여 점을 엄선해 선보인다. 디지털 돋보기를 설치해 청동제 보살 손, 금동제 허리띠 꾸미개, 청동 보살 머리 등 주요 전시품의 세밀한 장식과 무늬를 자세히 감상하도록 했다. 특히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납석제 불상, 고려청자, 중국 도자기, 진단구(재앙을 막기 위한 공양물) 등도 처음 전시한다. 특집전은 불교를 장려했던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를 거치며 새로운 역할을 요구받았던 미륵사의 위상을 재조명한다. 미륵사의 청자, 미륵사의 중국 동전, 미륵사의 차(茶) 도구, 미륵사의 수입품 등 다양한 소주제로 이해를 돕는다. 특집전 기간에는 전시 연계 강좌로 10월 11일 전북대 하태규 교수의 고려시대의 전북과 익산, 10월 18일 국립문화재연구소 한주성 학예연구사의 고려시대 미륵사의 변화와 불교사상을 개최해 전시에 관한 이해를 도울 예정이다. 국립미륵사지유물전시관 이병호 관장은 고려시대 민중의 삶 속에 뿌리내린 미륵사의 위상을 재조명해 관람객들에게 삼국시대와는 다른 고려시대 미륵사의 친근한 매력을 소개하겠다고 밝혔다.
전라도천년사는 지역학적 시각에서 편찬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또 주민들의 지역 역사에 대한 인식 확대와 개선도 전제돼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전북도 주최, 전북연구원 주관으로 지난 7일 국립전주박물관 대강당에서 열린 학술대회에서 이동희 전주역사박물관장은 전라도지역사 정립을 위한 과제와 방향 주제발표에서 중앙에 기준을 두지 말고 지역 관점에서 전라도를 해석하면 전라도의 역사문화가 달리 보이는 점이 있고, 더 풍요로우며 자유로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전라도천년사가 전라도를 중심에 두고, 전라도의 시각에서 편찬되어 전라도의 역사문화를 새롭게 조명하는데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홍성덕 전주대학교 교수는 전라도 천년사의 문화콘텐츠 활용방안주제발표에서 교육문화학술관광콘텐츠 구축 방안을 설명하며 전라도천년사 편찬은 새로운 지역 패러다임의 출발이다. 지역의 눈으로 지역을 바라보고, 지역의 미래를 바라본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21세기 왜 전라도를 다시 봐야하는지에 대해 합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라도 정명 천년을 맞아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재조명하기 위해 마련된 이번 학술대회에는 관계자와 시민 등 200여명이 참가했으며, 전라도가 역사에서 갖는 위상 등을 되짚고, 전라도의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방안 등에 대해 논의했다. 학술대회는 이종범 한국학 호남학진흥원장의 기조강연, 이동희 전주역사박물관장조법종 우석대 교수홍성덕 전주대 교수곽장근 군산대 교수의 주제발표와 토론 등으로 진행됐다. 한문종하태규 전북대 교수와 한규무 광주대 교수, 김종수 군산대 교수, 김경옥 목포대 교수, 허인욱 한남대 교수, 송화섭 중앙대 교수, 한수영 호남문화재연구원 팀장이 토론자로 나섰다.
최근 전북 가야사 복원 작업이 탄력을 받은 가운데 장수에서 다수의 제출 유적이 발굴돼 관심이 집중됐다. 선진 기술이자 문물인 철기는 강력한 국력. 장수가야 제철기술의 독자성과 선진성을 증명한다면 당시 삼국(고구려백제신라) 못지 않은 중심축으로 떠오른다. 그렇다면 장수가야의 제철기술은 어디에서 전파됐을까. 중국에서 바닷길을 통해 군산으로 유입돼 풍부한 철 산지인 장수까지 전파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일명 아이언 로드(iron road)다. 아이언 로드는 기원전 2세기 중국 산둥성 일대에 있던 제나라 왕의 동생 전횡이 군산 어청도로 망명길에 오르면서 루트가 시작된다. 어청도를 통해 한반도에 도달한 전횡의 후예들과 철기 문물은 내륙인 전주완주(오늘날 전북혁신도시 일대)로 이동한다. 이미 전주완주 일대에서 뛰어난 청동 주물 기술을 갖고 있던 토착세력과 만나 화려한 청동기철기 문화를 꽃피운다. 이들 세력 일부는 1세기 후 풍부한 철광석(철기 원재료)을 찾아 이동한다. 정착한 곳이 바로 장수무주진안에 걸친 진안고원 일대, 그 중 특히 장수지역이다. 그리고 이곳을 기반으로 한 선진집단은 장수가야로 발전했다. 전북일보는 장수가야 제철기술의 뿌리를 찾기 위해 6차례에 걸쳐 아이언 로드를 거슬러 올라가며 쫓고 있다. 장수가야 제철유적 현장에서는 찬란했던 테크노밸리의 영광을 돌아봤고 전주완주(오늘날 전북 혁신도시)에서는 이곳 잡단세력과 장수가야 세력의 연결고리를 찾았다. 세 번째 아이언 로드 거점은 바로 군산 어청도다. 기원전 2세기 전횡은 중국 산둥성 치박시에 수도를 두고 제나라를 다시 일으켰다. 그러나 당시 한나라 유방이 천하를 통일했고 제나라도 위협했다. 제나라의 왕제 전횡은 군사 500여 명을 이끌고 망명길에 올랐다. 산둥반도를 지나 바다를 건넌 전횡 세력은 중국을 떠난 지 3개월 만에 한 섬을 발견한다. 바로 중국과 가장 가까운 서해바다의 섬, 군산 어청도다. 군산항에서 배를 타고 서쪽으로 2시간 30분 이동하면 U자형 어청도항이 나타난다. 물색이 맑고 푸르러서 어청도(於靑島)인가 싶지만, 지명의 유래도 전횡과 관련돼 있다. 기원전 2세기 전횡이 군사들과 바닷길로 망명에 올랐을 때 안개 낀 바다 위에서 푸른 산 하나가 우뚝 나타났다고 한다. 이들은 그 섬을 푸른 청(靑)자를 붙인 어청도라고 이름 짓고, 정착했다. 전설 같은 이야기는 실제 마을 곳곳에서 드러나는 전횡 세력의 흔적을 통해 현실로 여겨지고 있다. 이들은 섬에서 조류의 흐름을 이용, 해적선을 약탈하고 불태웠다. 이를 통해 섬의 안전을 지켜주고 이익을 얻었다. 섬 주민 사이에서는 이곳이 지금의 불탄여라고 전해진다. 어청도 내 불탄여 구역은 지금도 조류의 흐름이 좋아 낚시하기 좋은 포인트로 많은 사람이 찾는다. 남서풍이나 파도 높은 날에는 오르는 것을 삼가야 할 정도다. 더 중요한 것은 전횡을 모시는 전횡사당(치동묘)이 존재한다. 풍어와 해상 안전을 지켜주는 당신으로 모시며 매년 당제를 지낸다. 1960~70년대 고래잡이가 활발할 때까지만 해도 풍성하고 화려하게 제사를 지냈다. 고래잡이가 금지되면서 매우 약소해지긴 했지만 지금도 매년 이어지고 있다. 작은 섬인 어청도에서는 주민들이 대부분 항구 근처에 모여 산다. 배에서 내려 주택 골목길 안으로 5분가량 걸어 들어가자 전횡사당(치동묘)이 모습을 드러냈다. 굳게 닫힌 대문을 열자 잡초가 무성한 마당과 사당이 보였다. 이제는 사람이 잘 찾지 않는 사당은 먼지가 두텁게 내려앉았다. 벽면은 군데군데 벗겨져 깨져 있었다. 그나마 수년 전 군산시청에서 부분 보수를 해 기둥이나 단청, 창호지는 제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사당 문을 여니 덩그러니 놓여 있는 전횡의 초상화. 문을 열면 정면으로 마주치는 얼굴이 어쩐지 쓸쓸하게 느껴졌다. 초상화 앞에 놓인 막걸리와 소주 한 병, 말라비틀어진 곶감 다섯 덩이, 유통기한이 반년은 지난 주전부리 등이 감정을 달랬다. 고평국 어청도 주민자치위원장(69)은 가끔 전횡사당을 조사하거나 취재하러 오는 사람들이 두고 간다고 말했다. 기자도 간식으로 챙겨온 과자 두 봉지를 올려놓았다. 전횡대감에게 만선으로 돌아오길 빌던 주민의 마음이 이랬을까. 내가 국민학교 다닐 땐 풍어제가 대단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전횡대감이라고 불렀죠. 치동묘에 포경선이 맨 처음 잡은 고래를 바쳤어요. 농악대는 사물놀이를 하며 온 마을을 휘젓고, 배 모양으로 만든 그릇에 고래 고기와 각종 음식을 담아 전횡대감에게 올리고 바다로 띄웠어요. 고 씨가 사당 한켠에서 제기를 꺼내 보여줬다. 스물 둘에 어청도로 시집왔다는 고영아(72) 씨도 젊었을 적 기억을 떠올렸다. 시어머니도, 마을 사람들 모두 전횡대감에게 고마워했어요. 바다를 건너온 대감이 예부터 마을 주민들이 배 타러 가면 안전하게 다녀오도록 도와줬다고 전해내려 왔고 주민들은 그렇게 믿었죠. 다들 전횡대감을 마을 수호신처럼 여겼습니다. 당시 중국 산둥반도에서 한반도 서해까지 바다를 건너는 것이 정말 가능했을까. 고평국 위원장은 중국 어선이 충분히 올 수 있는 거리라며 여름엔 태풍으로 풍랑이 심하지만 가을엔 돛단배로도 한두 달 만에 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받았습니다.
전주시가 조선왕조 발상지임을 상징하는 조경단과 조경묘의 가치를 재조명, 국가지정문화재 승격을 추진한다. 전주이씨 시조묘소와 사당인 조경단과 조경묘는 전라북도지정문화재로 지정돼 있지만 그동안 역사학술적으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전주시는 31일 전주역사박물관에서 전라북도 지정문화재인 조경단(도 기념물 제3호)과 조경묘(도 유형문화재 제16호)의 문화재적 가치를 재평가해 향후 국가지정문화재로 승격시키기 위한 학술회의를 연다. 이번 학술회의를 통해 시는 조경단과 조경묘의 문화재적 가치와 활용방안 등을 재조명해 향후 국가지정문화재 승격을 위한 단초를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조경묘는 1771년(영조47)에 세워진 것으로 영조의 친필 위패를 봉안하고 있으며, 조선시대 건축 양식을 유지하고 있어 문화재적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조경단은 1899년(광무 3)에 조성된 것으로 고종의 친필인 대한조경단비가 있으며, 같은 시기에 조성된 태조 이성계의 5대조가 되는 이양무와 그의 부인 평창이씨의 묘소인 강원동 삼척의 준경묘와 영경묘는 이미 국가지정문화재(사적 제524호)로 지정돼있다.
최근 전북 가야사 복원 작업이 탄력을 받은 가운데 장수에서 다수의 제출 유적이 발굴돼 관심이 집중됐다. 선진 기술이자 문물인 철기는 강력한 국력. 장수가야 제철기술의 독자성과 선진성을 증명한다면 당시 삼국(고구려백제신라) 못지 않은 중심축으로 떠오른다. 그렇다면 장수가야의 제철기술은 어디에서 전파됐을까. 중국에서 바닷길을 통해 군산으로 유입돼 풍부한 철 산지인 장수까지 전파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일명 아이언 로드(iron road)다. 아이언 로드는 기원전 2세기 중국 산둥성 일대에 있던 제나라 왕의 동생 전횡이 군산 어청도로 망명길에 오르면서 루트가 시작된다. 어청도를 통해 한반도에 도달한 전횡의 후예들과 철기 문물은 내륙인 전주완주(오늘날 전북혁신도시 일대)로 이동한다. 이미 전주완주 일대에서 뛰어난 청동 주물 기술을 갖고 있던 토착세력과 만나 화려한 청동기철기 문화를 꽃피운다. 이들 세력 일부는 1세기 후 풍부한 철광석(철기 원재료)을 찾아 이동한다. 정착한 곳이 바로 장수무주진안에 걸친 진안고원 일대, 그 중 특히 장수지역이다. 그리고 이곳을 기반으로 한 선진집단은 장수가야로 발전했다. 전북일보는 장수가야 제철기술의 뿌리를 찾기 위해 6차례에 걸쳐 아이언 로드를 거슬러 올라가며 쫓고 있다. 전북 혁신도시는 오늘날 전주시의 남서쪽인 전주시 덕진구 만성동완산구 중동 그리고 완주군의 동쪽인 완주군 이서면 일대를 일컫는 곳이다. 2000년~2010년대 초 전북 혁신도시 일대에서 기원전 2세기 전후 청동기와 철기들이 잇따라 발굴되면서 관심이 집중됐다. 완주전주는 한반도에서 가장 발달된 청동기와 철기를 가진 집단이 모여 살던 선진지역이었다. 최근 전북가야사 연구가 진척되면서 당시 완주전주에 머물렀던 선진 세력이 전북가야사와 연관돼 있음이 드러나고 있다. 기원전 2세기 완주전주에 있었던 선진 기술자들이 1세기가 지난 후 원재료를 찾아 옛 장수가야 지역으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 당시 완주전주 살았던 세력의 기술 수준은 오늘날 전북 혁신도시 일대는 예부터 완만한 구릉과 구릉 사이의 충적지에 위치할 뿐만 아니라 만경강 본류와도 가까워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잡기 좋은 곳이었다. 이러한 자연환경을 바탕으로 이 일대에서는 선사시대 이래 끊임없이 생활문화 활동이 이뤄졌다. 특히 청동기초기철기 시대에는 한반도 최고의 테크노밸리였다. 제철기술뿐만 아니라 모든 선진 기술의 중심이었다. 완주지역에서 출토된 청동거울은 선진기술의 정수다. 컴퍼스 원리를 이용해 정교한 무늬를 새긴 기법은 당시의 높은 기술력을 말해준다. 완주 갈동의 잔무늬거울은 남한에서 발견된 청동거울 중 가장 정교하고 뛰어나다. 한수영 호남문화재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기원전 2세기에 제작된 세문경(잔무늬거울)이 남한에 70점 밖에 없다. 그런데 전북 혁신도시에서만 20점이 나왔다. 당시 첨단기술의 중심지였던 것이다. 철을 다루는 것보다 청동거울을 만드는 게 기술적으로는 더 어렵다. 그러니 이들의 제철기술 수준은 말할 것도 없다. 철기 문화가 전파됐을 때 이를 다루는 것은 더 쉬웠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 세력집단은 제철기술을 누구로부터 얻었나 그렇다면 기원전 2세기 전주완주에서 살았던 이들은 어떻게 제철기술을 얻었나. 발굴 조사 결과, 중국 산동반도에서 전파된 것으로 확실시 되고 있다. 바로 완주 상림리에서 출토된 중국식 청동검 26자루(청동기초기 철기시대 제작)를 통해서다. 한 연구원은 대량의 검이 완전한 형태로 출토된 적이 없다며, 성분모양개수 등 전반적으로 파악했을 때 완주에서 제작된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가져온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검의 생김새에도 주목해야 한다. 보통 한반도 초기철기시대 문화가 중국 요동반도에서 육로로 유입됐다고 알려져 있지만 요동반도에서는 청동검이 거의 발굴되지 않는다. 동시에 중국은 지역별로 각자 자신들만의 독특한 동검이 제작됐다. 한 연구원은 비슷한 시기의 중국 동검 분포도를 보면 완주에서 출토된 중국식 동검 26자루가 산동반도에서 일반적으로 제작되는 것과 모양이 일치한다며, 요동반도에서 대륙을 통한 유입 외에도 산동반도에서 바다를 건너 완주전주로 온 세력이 기존 토착세력과 함께 기술을 발전시켰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중국 산동반도에서 바다를 건너 온 세력은 누구인가. 전문가들은 지위가 높은 지배계층으로 판단하고 있다. 아무나 소유할 수 없는 청동검을 대량으로 가져 올 수 있을 정도면 보통 세력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 시기의 중국 역사를 뒤져보면 나오는 인물이 바로 제나라의 전횡이다. 그가 한나라와의 세력 다툼에 밀려 바다를 건너 망명했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제나라는 오늘날의 중국 산동성 치박시에 수도를 둔 나라였다. △ 전횡 후예들, 1세기 후 장수로 이동해 제철문화 꽃피워 바다 건너 중국에서 온 전횡의 후예들과 전주완주의 높은 기술력을 가졌던 토착세력은 시너지를 내며 오늘날의 전북 혁신도시 일대를 당대 최고의 테크노밸리로 이끌었다. 그리고 이들은 세력집단은 1세기 후 원료가 풍부한 장수남원 등(옛 장수가야 지역)으로 이동해 더 큰 철기문화를 꽃피웠다. 한 연구원은 장수 남양리에서도 세형동검, 세문경, 토기 등이 담긴 초기 철기시대 고분이 발견됐는데 완주에서 발견된 것보다 제작시기가 약간 늦다며 세력의 이동 경로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또 완주 신풍에서 출토된 간두령(제사의식에서 사용하던 방울)이 경주 죽동리 유적에서 발견됐다. 이는 전국에서 10개가 채 안될 정도로 귀한 유물이기 때문에 아무나 만들 수 없다. 기술력이 직접 전주에서 경주로 이동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두 지역 사이에 장수지역이 존재한다. 한 연구원은 지역별 유적의 시기분포로 미루어 오늘날 전북 혁신도시의 선진 집단이 장수남원 등으로 이동한 것으로 보이지만 아직 명확한 유적유물이 아직 발굴 되지 않았다며, 현장 발굴 조사가 지속돼 장수가야의 기원 전후 200년의 비밀을 풀 유적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남원 유곡리두락리 고분군을 세계유산에 등재하기 위해서는 훼손된 봉분 복원과 고증을 위한 추가 발굴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진단이 나온다. 현재 남원지역 가야 고분군은 고증이 미비하고 일부가 훼손돼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기준인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 Outstanding Universal Value)를 충족시키기에는 미흡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전북도와 남원시는 28일 경남도청에서 경남, 경북 2곳의 광역자치단체와 고령, 김해, 함안, 창녕, 고성, 합천 등 6곳의 기초자치단체, 문화재청과 가야고분군 세계유산등재 추진 협약(MOU)을 체결했다. 협약식에서 송하진 도지사를 비롯한 10곳의 자치단체장은 남원 유곡리두락리 고분군,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고성 송학동 고분군, 합천 옥전 고분군, 김해 대성동 고분군, 고령 지사동 고분군, 함안 말이산 고분군 등 7개 고분군을 2021년까지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는 데 힘을 모으기로 했다. 이들은 올해 하반기부터 자치단체의 연구성과 공유와 자료집 편찬, 유산의 통합보존관리를 위한 예산 균등 부담 등을 하기로 했다. 특히 오는 10월 22일부터 26일까지 남원 등 7개 자치단체를 돌면서 7개 고분군에 대한 학술대회와 답사, 워크숍을 연다. 이런 가운데 세계유산등재를 위해서는 남원 고분군에 대한 고증이 필요하다는 진단이 나온다. 실제로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에 있는 40기 고분군 중 일부만 발굴과 고증을 마쳤다. 반면 경남경북권의 가야고분군은 대부분 역사적 규명이 마무리됐고, 발굴 유적을 전시하고 있다. 곽장근 군산대 가야문화연구소 소장은 일부 고분은 훼손돼서 원형을 알 수가 없는데다 농민들이 농사를 짓는 경우도 있다며 그런 고분의 구조와 형태를 파악하고 역사성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발굴조사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어 무덤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한 벌목작업과 탐방로 확보도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발굴을 원할하게 추진하기 위해서는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이 분포한 40필지(9만8225㎡)에 대한 매입을 마쳐야 하는 상황이다. 도는 현재 사유지 37필지 중 28필지에 대한 매입을 토지주와 합의했으며 나머지 9필지는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향후 보존계획도 잘 세워야 한다는 제안이 나온다. 곽 소장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기준인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자치단체와 학계가 머리를 맞대고 보존 및 관리계획을 잘 수립하는 것도 중요하다며세계유산 등재심사를 받을 때 중요한 요소로 평가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북농협(본부장 유재도)과 남원축협(조합장 강병무)고창부안축협(조합장 김대중)임실치즈농협(조합장 설동섭)은 지난달 20일부터 축산농가 70여 호를 대상으로 폭염 및 장마철 호우 대비 축사시설 전기점검을 하고 있다. 이번 전기점검은 가뭄과 폭염으로 전기 사용량이 많아지고 장마철 집중 호우 및 축사 침수 등으로 발생할 수 있는 전기화재 및 감전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노후 전기설비 안전 점검, 화재 및 감전예방 교육, 노후 소모품 및 불량품 교체 등의 내용으로 실시하고 있다. 전북농협 관계자는 화재예방에 대한 농가의 안전의식을 고취시키고 축산농가의 재산보호, 누전에 의한 감전사고 예방을 위해 중소 축산농가의 노후 전기시설 등에 대해 전기 안전점검을 지속적으로 실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최근 전북 가야사 복원 작업이 탄력을 받은 가운데 장수에서 다수의 제출 유적이 발굴돼 관심이 집중됐다. 선진 기술이자 문물인 철기는 강력한 국력. 장수가야 제철기술의 독자성과 선진성을 증명한다면 당시 삼국(고구려백제신라) 못지 않은 중심축으로 떠오른다. 그렇다면 장수가야의 제철기술은 어디에서 전파됐을까. 중국에서 바닷길을 통해 군산으로 유입돼 풍부한 철 산지인 장수까지 전파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일명 아이언 로드(iron road)다. 아이언 로드는 기원전 2세기 중국 산둥성 일대에 있던 제나라 왕의 동생 전횡이 군산 어청도로 망명길에 오르면서 루트가 시작된다. 어청도를 통해 한반도에 도달한 전횡의 후예들과 철기 문물은 내륙인 전주완주(오늘날 전북혁신도시 일대)로 이동한다. 이미 전주완주 일대에서 뛰어난 청동 주물 기술을 갖고 있던 토착세력과 만나 화려한 청동기철기 문화를 꽃피운다. 이들 세력 일부는 1세기 후 풍부한 철광석(철기 원재료)을 찾아 이동한다. 정착한 곳이 바로 장수무주진안에 걸친 진안고원 일대, 그 중 특히 장수지역이다. 그리고 이곳을 기반으로 한 선진집단은 장수가야로 발전했다. 전북일보는 장수가야 제철기술의 뿌리를 찾기 위해 6차례에 걸쳐 아이언 로드를 거슬러 올라가며 쫓고 있다. 문헌에 등장하는 가야계 소국만 20개가 넘는다. 대부분 백두대간 동쪽(영남지역)에 있었던 상황에서 유일하게 백두대간 서쪽 진안고원에 위치했던 장수가야가 소외되지 않고 가야계 소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 바로 철기문물 덕분이다. 무주장수진안에 걸쳐 있는 진안고원 일대에서 철광석을 녹여 철을 생산하던 대규모 제철유적이 발견됐다. 가야 문화권에서 유일하게 확인된 제철유적이라는 점에서 장수가야의 우수성과 역동성을 입증하는 셈이다. 현장 발굴 연구원들은 기술력과 동시에 이 일대가 원재료가 풍부한 철산지였다는 것에 주목했다. 진안고원에서 제철기술이 발달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 철을 다루는 고도의 기술을 갖고 있던 세력이 원료를 찾아 이곳까지 이동한 것이라는 것. 그리고 그 세력이 바로 기원전 2세기 철기문물과 함께 바다를 건너온 제나라 전횡의 후예들이라는 것이다. △ 제련부터 완제품 생산까지철의 테크노밸리 장수가야의 제철기술은 지난 2015년 장수 동촌리 가야계 고총에서 말발굽(편자)이 처음 출토되면서 드러났다. 귀족 계층이 타고 다니던 말의 편자가 나온 것은 강한 지배계층이 있었음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말의 무게, 압력을 버티고 비교적 온전히 보존된 편자의 상태로 미루어 높은 주조기술을 보여줬다. 이후 최근까지 진행된 제철유적 발굴조사 및 지표조사를 통해 철의 생산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유적들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장수군 명덕리 대적골 일대가 중요 제철유적지로 꼽힌다. 원료에서 1차적으로 철을 생산하고 생산된 철 소재를 23차 가공해 완제품을 생산했던 곳으로, 모든 제철공정이 갖춰져 있다. 제철기술은 철을 거푸집에 부어서 만드는 주조와 두드려서 만드는 단조 등 두 가지로 나뉜다. 대적골 A구역에서는 제련로, 단조 조각들이 수습된 단야로, 작업대, 석렬유구 등이 한 구역에서 발견됐다. C구역에서는 솥을 만들던 거푸집과 함께 소토, 철재(슬래그제련 과정 중 생성되는 불순물)가 다량으로 나왔다. A구역 등에서 생산된 철을 이용해 이곳에서 솥이 제작됐다고 추정한다. A구역 옆에서는 철재(슬래그), 노벽편(철광석을 녹이는 제련로의 잔해) 등으로 형성된 5m 이상의 대규모 퇴적구도 확인됐다. 즉, 철 다루는 기술이 체계적이고 자유자재로 능한 세력이 집단적이면서도 대규모로 철 생산을 해온 것이다. △ 완벽한 입지조건 찾아 장수로 이동한 기술자들 곽장근 군산대 가야문화연구소 소장에 따르면 제철기술은 세 가지가 필요하다. 철을 다루는 선진기술과 함께 원료인 철광석, 연료인 숯이다. 장수 제철유적지 인근에는 철광석을 채굴하던 채석장과 숯을 굽던 숯가마가 존재한다. 남덕유산과 합미봉, 봉화산 등에는 니켈이 함유된 품질 좋은 철광석이 가득하다. 게다가 험준한 산맥이 아니라 수(水)량이 풍부한 골짜기 내 평탄대지에 입지해 근거지까지 금상첨화다. 조건들이 적절히 맞아떨어지면서 철광석 채광부터 숯으로 철광석을 제련해 철을 추출해 내는 제철공정이 한자리에서 이뤄지는 한반도 철의 테크노밸리가 된 것이다. 이쯤되면 철기 문화를 꽃피운 기술자들은 어디에서 넘어온 세력인지 궁금해진다. 장수가야 시대의 기술자들은 현재의 전북혁신도시 지역에서 넘어온 제나라 왕제 전횡의 후예 또는 그들로부터 기술을 전수받은 세력이라는 주장이다. 곽 소장은 현재까지 발굴된 유적을 토대로 추측할 때 초기 철기문물의 중심지인 전북혁신도시가 쇠락할 무렵 장수가야가 시작됐다며 혁신도시 세력이 장수 쪽으로 이동한 것이라고 말했다. 선진문물을 가진 집단으로서 원재료를 바로 구할 수 있는 철산지에 관심이 컸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유 연구원은 일방적으로 경상도 지역이 철기의 중심이라고 알려졌지만 시기유적으로 봤을 때 전북혁신도시가 초기 철기시대의 가장 이른 중심지이고, 경상지역에서 발굴된 유물은 훨씬 늦다. 전북 혁신도시에서 경상도로 넘어가는 길목에 있는 장수 남양리 유적에서 나온 유물은 그 중간 시기의 것이다. 이를 미루어 볼 때 장수 제철기술이 혁신도시에서 전파된 것이고, 또 경상지역으로 전파됐을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더 밝혀져야 할 부분도 있다. 제나라 제왕 전횡이 어청도로 망명해 현재의 전북혁신도시에 터를 잡았다고 추측되는 시기가 기원전 2세기다. 가야는 기원전 1세기부터 562년까지 존재했다. 장수가야 존재시기를 빠르게 잡아도 약 900년의 공백이 생긴다. 연구자들은 앞으로 유적 발굴이 심화되거나 발굴 지역이 확대되면 900년간의 이동과정이 밝혀지거나, 장수 지역 제철유적의 뿌리가 기원전 2세기까지도 올라갈 수 있다는 추측이다. ● 전북가야 유적 지표조사한 유영춘 군산대박물관 학예연구원 "동부지역 제철유적 175곳정밀조사 필요" 장수를 비롯한 남원, 무주, 완주, 임실 등 전북 동부지역에 분포하는 제철유적은 현재 175개소에 달한다. 지난 6월 마친 전북 가야사 및 유적정비 활용방안 지표조사를 통해 45개소가 추가 발굴됐다. 가야 문화권에서 유일하면서도 우리나라 최대 밀집도를 지닌다고 평가했다. 유 연구원은 이번 조사를 통해 남원, 무주 등에서도 괄목할만한 제철유적이 발견됐다며, 당시는 국경이 유동적이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철산지들을 찾아 테크노밸리를 이루던 집단의 세력은 더 강력했고, 테크노밸리는 더 넓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서 지표조사는 눈에 보이는 대략적인 존재만 파악한 것일뿐 실제 개별 유적에 대한 현황 측량이라든지, 유구의 정확한 위치용도 등 세부 내용을 확인 할 수 있는 정밀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며,체계적이고 정밀한 발굴 조사가 찬란한 가야사 복원의 첫걸음이라고 강조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역사 복원은 가정과 추측으로부터 시작한다. 가능성 높은 가설을 따라 발굴연구 조사를 해 입증된 퍼즐을 하나씩 끼워 맞추고 큰 그림을 완성하는 것이다. 장수남원 등 전북 가야사 복원 사업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 장수에서 다수의 제출 유적이 발굴돼 관심이 집중됐다. 그렇다면 장수가야의 제철기술은 어디에서 전파됐을까. 그간 힘이 실렸던 한반도 내 육로를 통한 전파가 아니라 독자성을 가진다면 가야사의 중심이 바뀔 가능성도 충분하다. 이런 가운데 장수가야의 제철기술이 중국에서 바닷길을 통해 군산으로 유입돼 풍부한 철산지인 장수까지 전파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일명 아이언 로드다. 전북일보는 장수가야 제철기술의 뿌리를 찾기 위해 6차례에 걸쳐 중국 산동성 치박(淄博)제남(濟南)에서 전북 군산전주장수까지의 아이언 로드(iron road)를 쫓는다. 주요 거점을 방문해 흔적과 연결고리를 찾고, 가설의 보완돼야 할 점도 짚어본다. 퍼즐 조각을 찾아 새 그림을 완성할 수도 있는 첫 걸음이다. △새역사 가능한 철의 왕국 장수가야 지난해 가야사 복원이 정부 100대 국정과제에 채택되면서 전북지역에서도 가야문화 발굴조명에 힘이 실렸다. 그간 경남권에 비해 복원 작업이 더뎠던 전북권 가야 유적도 서서히 모습이 드러나고 있다. 전북권 가야는 장수진안무주남원완주임실순창군에서 발굴된 가야계 유적과 유물을 통합하는 명칭이다. 그중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가야계 소국이 바로 장수 가야다. 장수지역에서 175 개소에 달하는 제철유적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일대가 당시 최고 수준의 주조기술을 갖춘 철의 테크노밸리였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수준 높은 철기 문화로 국력을 이룬 철의 왕국, 가야 수식어를 만들어낸 근원지인 것이다. 반면, 영남권에선 제철유적이 거의 보고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변방으로 취급받던 전북권 가야사를 재평가할 기회를 맞았다. 철의 왕국 가야의 중심이 영남에서 전북으로 바뀔 가능성도 있다. △제철기술 어디에서 전파됐나 학계 등에서는 선진 문물인 제철기술이 장수가야에 어떤 루트로 들어왔는지가 관심사다. 잊힌 왕국 가야에 대한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1980년대부터 가야 역사문화 연구가 진척되면서 가야가 당시 삼국(고구려백제신라)과 비견할 만한 강력한 통치체제였음이 밝혀지고 있다. 그리고 그 국력의 바탕에는 제철기술을 바탕으로 한 철기 문물이 있었다. 따라서 장수가야의 제철기술이 태백산맥 등을 넘어 전파된 것이 아니라 당시 한반도에서 독자적인 기술력이었다면, 장수가 고도의 기술을 바탕으로 한 가야의 중심이었음이 드러나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장수가야의 제철기술이 바닷길을 통해 전파됐다는 주장이 나왔다. 30여 년간 전북 가야사를 연구해온 권위자, 곽장근 군산대 가야문화연구소 소장은 전북혁신도시에서 발굴된 철기 유물이 경기도충청도의 것보다 빠르다며 이를 볼 때 전북지역 철기문화가 육로로 왔다는 것은 성립이 안 되고, 앞서 철기문화를 가졌던 중국에서 바다 건너 전래됐다고 추론한다고 말했다. 일명 아이언 로드다. △ 아이언 로드란 곽 소장이 주장한 아이언 로드는 중국에서 장수까지 제철기술이 유입전개된 루트다. 기원전 2세기인 2200년 전, 한나라에 밀려 바다 건너 섬으로 망명을 갔다고 기록되는 중국 제나라 왕제 전횡이 당시 오늘날의 군산 어청도에 정착했고, 이때 철기유물과 제철기술을 가져왔다는 주장이다. 이후 전횡의 후손 세력 또는 제철기술을 배운 세력이 100년에 걸쳐 현재의 전북혁신도시로 넘어온 후 풍부한 철산지를 찾아 장수 천천면(옛 장수가야 유적지) 등까지 이동했다는 가설이다. 전북권 가야 유적 발굴은 이제 막 본격적으로 닻을 올렸다. 토막난 몇 백년의 한국 고대사(제철기술 유입과정)를 입증할만한 유물유적을 바로 찾기는 사실상 힘들다. 삼국에 묻힌 비운의 가야는 기록된 자료도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나 곽 소장 등 일부 학자들은 아이언 로드의 존재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가설이 입증되기까지는 보완돼야 할 점들이 있지만 현장에는 중국 제나라가 존재했던 산둥반도 일대, 군산 어청도, 전북 혁신도시, 장수 천천면 등에 그 흔적이 남아있다는 것. 전북혁신도시에서 발견된 후기 청동기초기 철기 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26점의 중국식 도씨검과 군산 어청도에 있는 전횡사당 등이 그 예다. 따라서 전북일보는 중국 제나라 왕제였던 전횡이 철기문화를 이끌고 전북 군산으로 들어와 전북 혁신도시로 망명하기까지의 여정, 즉 아이언 로드를 쫓아가며 장수가야의 제철기술 유입 과정을 유추해보고자 한다. 전북 가야문화 복원사업이 탄력을 받고, 전북가야만의 독자성정체성을 가진 새로운 가야 역사문화 스토리텔링을 발굴할 것으로 기대한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전북도와 남원시가 가야고분을 세계유산에 등재하기 위해 문화재청 및 영남권 자치단체와 가야고분군 세계유산 등재추진 협약서(MOU)를 체결할 방침이다. 도와 남원시는 이달 말 문화채청에서 경남, 경북 등 2곳의 광역자치단체와 고령, 김해, 함안, 창녕, 고성, 합천 등 6곳의 기초자치단체, 문화재청과 MOU를 체결한다고 6일 밝혔다. 남원 유곡리 및 두락리 고분군을 세계유적에 등재시키려는 목적이다. 아영면과 인월면 경계에 위치한 이들 고분군은 삼국시대 무덤 축조기술을 알 수 있어 가치가 높으며, 무덤안에서 통형기대(원통모양 그릇받침)를 비롯한 각종 토기류, 환두대도 등 무기류, 살포·철겸 등의 농공구 등 다양한 유적이 출토됐다. 도 관계자는 “고분군은 가야과 백제 고분 축조 특징을 모두 갖고 있으며 5세기~6세기로 추정되는 유물이 다량 출토돼 유적으로서의 가치가 높다”고 설명했다. 업무협약서에는 △경남(2017년~2018년)·경북(2019년~2020년)·전북(2021년~2022년) 산하연구기관의 등재추진단 운영 △참여 자치단체의 예산 균등 부담 △공무원 파견 △학술연구팀장이 포함된 사무국 운영 등의 내용이 담길 계획이다. 등재 목표 시기는 2021년이다. 이를 위해 올 하반기부터는 각 자치단체과 모여 연구성과를 공유하거나 연구자료집을 편찬하는 등 활동을 개시한다. 오는 8월 24일에는 경남발전연구원에서 국내외 연구자와 자치단체 관계자, 추진단이 모여 개별 연구성과를 발표하고, 가야고분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기준), 연구자료집 편집·발간 계획 등을 논의한다. 오는 10월 22일부터 10월 26일까지는 남원 등 7개 기초자치단체가 돌아가면서 7개 고분군에 대한 학술대회와 답사, 워크숍을 개최한다. 도 관계자는 “가야고분군의 세계유산 등재 추진을 위해 세계유산 등재에 필요한 모든사항을 협의해서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옛 군산세관 본관이 국가지정문화재로 정식 승격됐다. 문화재청은 110년의 관세 행정 역사를 지닌 옛 군산세관 본관이 역사적학술적건축적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지정문화재(사적 제545호)로 승격됐다고 밝혔다.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부문은 군산시 최초이고, 전주 전동성당익산 나바위성당에 이어 전라북도 3번째(근대사적) 지정이다. 옛 군산세관 본관은 1908년 군산항 내 군산세관의 본관으로 건립된 건물이다. 당시 감시계 청사와 감시 망루 등 다수의 시설물이 함께 있었으나, 현재는 본관과 창고만 남아 있다. 개항 초기 우리나라에 도입된 서양식 건축기법 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건립 당시 건물의 원형도 비교적 잘 유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군산세관은 국가지정문화재 승격과 연계해 1908년에 건립된 군산세관 창고 유휴공간을 활용해 인문학 복합문화공간을 연내 조성운영할 계획이다. 이밖에 근대기 군산에 건립된 옛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청 관사, 중국음식점 군산 빈해원, 군산 옛 남조선전기주식회사, 옛 조선운송주식회사 사택 등 4건은 문화재로 등록됐다. 등록문화재 제726호 옛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청 관사는 일본식과 서양식의 화려한 세부 표현 기법이 잘 남아있는 공공기관 관사 건축물이다. 등록문화재 제723호 군산 빈해원은 1950년대 초 화교인 왕근석 씨가 창업해 대를 이어온 중국 음식점으로서 개방된 1~2층 내부공간이 특징이다. 근대기 군산에 정착했던 화교 문화를 보여주는 건축물로 가치를 인정받았다. <문정곤문민주 기자>
익산군산축협(조합장 서충근)은 지난 30일 익산시 농업기술센터에서 지자체 공무원 및 축산단체대표, 건축사협회 등을 초빙하고 관내 조합원 및 축산농가를 대상으로 무허가축사 적법화 교육을 실시했다. 이번 교육은 농협중앙회 무허가축사 적법화 지원단에서 농림부, 환경부 등의 정부 관계부처에서 합동으로 제작한 ‘무허가축사 적법화 합동지침’과 9월 24일까지 제출해야 할 ‘무허가축사 적법화 이행계획서’ 작성방법에 대한 교육으로서 익산군산축협의 주최로 지난 3월 24일까지 배출시설 허가(신고)신청서를 제출한 농가들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이날 교육장에는 바쁜 농번기철임에도 불구하고 300여 축산농가가 참석하였고, 교육을 마친 후에도 1시간 이상 적법화와 관련한 문의가 끊이질 않는 등 무허가축사 적법화 문제가 축산농가에게 가장 시급한 현안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자리가 됐다. 서충근 조합장은 “무허가축사 적법화 기한연장은 이번이 마지막 기회이며, 이 기한 내 이행계획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축사폐쇄 및 과태료 부과 등 행정처분이 내려질 예정”이라며, “어떠한 일이 있어도 축산농가가 불이익을 받아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진안군 동향면 대량리에 소재한 제동(製銅)유적을 호남 최초의 구리 생산유적으로 추정케 할 수 있는 근거들이 확인됐다. 진안군은 구리를 생산했던 제동로(製銅爐 : 구리를 생산하는데 사용되는 가마와 유사한 시설) 2기와 대규모 폐기장, 건물지 1기에 대한 유적 발굴조사를 통해 유적은 고려시대를 중심으로 운영된 것으로 판단되며 삼국시대 토기가 일부 수습됨에 따라 고려시대 이전부터 운영되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지난 31일 밝혔다. 이번 발굴조사는 전라북도와 진안군, 군산대학교 가야문화연구소(소장 곽장근) 공동으로 실시됐다. 진안군 동향면 지역은 신증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 등의 문헌 속 동향소(銅鄕所)라는 특수행정구역이 있던 곳. 그동안 제기돼 왔던 구리 생산유적의 존재를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게 됐다. 대량리 제동유적은 지난해 11월 실시된 시굴조사에서 대규모 슬래그 폐기장과 제동로 추정 유구가 확인됐다. 확인된 총 2기의 제동로는 모두 노벽(爐壁)과 배재구(排滓口) 등의 상부구조가 유실됐으며 노를 축조하기 위한 하부구조만 남아있다. 또 조사지역 서남쪽 조사경계 부분에서는 건물지 1기의 일부가 조사됐다. 구리 생산 집단의 생활공간 또는 제련을 통해 생산된 구리를 가공해 완성품을 제작하기 위한 공방지(工房址)일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구리를 2차 가공해 완성품을 만든 흔적은 부여 관북리, 익산 왕궁리 등에서 조사된 바 있으나, 원석에서 구리를 1차적으로 생산한 유적은 경주 일부지역 외에는 거의 조사된 바 없다. 때문에 이번 진안 대량리 제동유적은 호남지역 구리 생산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며 전북지역 초기철기시대 및 전북가야 유적 출토 청동유물 등의 원료산지와 유통관계를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임용민 전주대 건축학과 교수가 28일까지 전주 누벨백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연다. 교수로 재직하고 있지만 매년 쉬지 않고 건축 설계를 이어왔다. 논문을 쓰며 이론을 연구하는 것과 현상공모를 참여해 시공하는 것은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는 그가 2014년에서 2018년까지 작업한 근작 중 주택 2제와 건축 현상공모안 4점을 선보인다. 임 교수는 많은 성과는 아니지만, 한 작품당 최소 두 달 이상이 걸린다며 전시를 통해 오랜 시간 고민한 내 생각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회에서 선보이는 석구동 주택은 완공된 것이어서 건축의 물성을 느낄 수 있어 좋고, 지역 건축 문화상도 수상해 의미가 깊다. 또 깊은 산속 경사지에 위치한 죽림리 주택은 지형을 잘 활용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건축 현상공모안들은 건축가의 가치관과 상상력이 돋보이는 계획안이다. 임 교수는 세종시 박물관 단지 계획안은 30년 전 프랑스 유학 때 접했던 라빌레트공원에서 영감을 받아 풍경이 돋보이는 원형 단지로 설계했다며 순천 예술광장 공모는 가장 현실적이였지만 결론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욕심을 내다보니 지반 조건을 고려하지 못해 아쉬웠다고 말했다.
부안군과 (재)전북문화재연구소가 문화재청 허가를 받아 조사한 사적 제69호인 부안 유천리 요지(扶安 柳川里 窯址)에서 고려시대 요업 관련 시설로 추정되는 대형 건물지(建物址)가 발견됐다. 요업은 흙을 구워 도자기, 벽돌, 기와, 그릇 따위의 물건을 만드는 공업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부안 유천리 요지는 고려시대 최고급 상감청자를 비롯해 다양한 자기가 제작된 곳으로 알려졌다. 이번 유천리 요지 3구역에 대한 3차 발굴은 요업과 관련된 시설물을 확인하기 위한 조사로, 지난해 12월부터 시작해 오는 8월 마무리될 예정이다. 현재까지 요업 관련 시설로 추정되는 대형 건물지, 소규모 작업장, 최상급 자기(청자백자) 조각, 각종 도범(陶范도자기 거푸집) 조각과 요도구(窯道具도자기를 구울 때 사용되는 도구) 등이 확인됐다. 조사 지역인 유천리 요지 3구역은 완만한 구릉을 평탄하게 조성하고 동-서방향의 석축(石築)을 설치해 요장(窯場도자기 굽는 곳) 전체를 몇 개의 구획으로 분할하고 있다. 조사 지역 중앙에 자리한 석축은 길이가 동-서로 약 38m, 잔존 높이는 최대 42㎝로 약 4단 정도가 남아 있다. 석축의 안쪽으로 정면 5칸, 옆면 1칸의 대형 건물지를 지었다. 건물지와 석축 주변에는 도자기 제작을 위한 부속시설로 보이는 유구(遺構건물의 자취)들이 확인됐으며, 건물지의 서남쪽에 가까운 유구 내에서는 관(官)자명 기와가 출토됐다. 출토유물은 오목새김, 상감(象嵌), 상형(像型) 등의 기법으로 무늬를 새긴 사발, 접시, 매병, 향로, 합(盒), 자판(瓷板), 의자(墩), 연적 등의 자기 유물, 도범 조각 유물, 기와 유물, 요도구 유물 등이다. 전북문화재연구소는 3차에 걸친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자기 가마, 건물지, 고급자기, 도범 조각, 관(官)신동(申棟)명이 새겨진 기와 등으로 미뤄 유천리 요지 3구역은 왕실에 공납하는 최상급 관용 자기를 생산한 곳으로 판단했다.
환경부 산하 한국수자원공사(사장 이학수, 노조위원장 하창원)는 대전시 대덕구 본사에서 19일 일터에서 사용하는 일회용품을 줄이고 친환경 생활문화 확산을 위한 ‘노사공동 에코생활 실천 서약식’을 가졌다. 이번 서약은 환경부가 지난 7월 1일 자로 시행한 ‘공공부문 1회용품 사용 줄이기 실천지침’ 이행을 위한 내용을 담고 있다. 주요내용은 직장 내 일회용품을 줄이기 위한 개인용 컵과 수돗물 직수 음수대 적극 활용, 종이컵과 병입수(페트병) 등의 사용 자제, 인쇄용지 등의 물품구매 시 재활용 제품(환경표지인증 제품 등)우선 구매 등이다. 한국수자원공사는 환경부 지침에 더해 ‘종이 없는 회의 문화 정착’과 ‘화장실 종이수건 대신 건조기 사용’ 등을 직원 의견 수렴을 거쳐 자체 실천사항으로 추가했다. 또한, 사내 전산망으로 전 임직원의 실천 서약서를 받고 전사적 실행력 확보를 위한 정기적인 점검도 추진할 계획이다. 이학수 한국수자원공사 사장은 “그동안 습관적으로 사용하던 일회용품에서 벗어나는 것은 당장에는 불편할 수 있으나, 미래세대를 위해 전 임직원이 한마음으로 실천해 나가겠다.” 고 말했다.
군산 선유도 해역서 조선시대 유물 220점 추가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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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와 비장애를 넘어 전하는 '조화와 공존'⋯관현맹인전통예술단, 아리랑 세상에 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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