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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기업 도전과 성공 스토리] 백년가게 쌍용반점

"경력을 거꾸로 읽어 보세요. 그냥 얻어지는 경력은 없습니다." 카피라이터 출신 정철 작가가 펴낸 <내 머리 사용법>(리더스북)의 일부분이다. 중화요리 외길 인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고영수(71) 대표를 처음 봤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말이다. 고 대표는 1973년 9월 군산에 중화요리 전문점인 쌍용반점을 열었다. 당시 동네 주민들이 찾던 쌍용반점은 50년이라는 세월 동안 대로변에서 바다가 보이는 외곽으로 자리를 옮기고 주말만 되면 가게 앞에 줄을 서는 어엿한 중년 가게로 자리매김했다. 고 대표가 스물한 살에 문을 연 쌍용반점은 군산전통명가, 백년가게로 인정받았다. 군산이 다른 지역에 비해 유명 중화음식점 비율이 높은 편에 속하지만, 그 안에서도 쌍용반점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고 대표는 "군산전통명가, 백년가게 등으로 인정받은 것이 무색해지지 않도록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손님들에게 따뜻한 밥 한 그릇 내어 주는 사람이 되겠다"고 강조했다. "시간이 오래 걸려도 한 그릇 한 그릇 정성을 다해야 무너지지 않고 오래 가는 가게가 될 수 있다고 믿어요." 고영수 쌍용반점 대표는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는 손님에게 감칠맛 나는 음식 한 그릇을 내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패스트 푸드처럼 빨리 나오는 것이 특징인 중화요리지만 고 대표는 주문이 들어오면 그때그때 한 그릇 한 그릇을 만들기 시작한다. 고 대표는 "돈을 한 푼이라도 더 벌려면 미리 끓여 놓고 주문 들어오면 다시 한소끔 끓여서 손님 상에 내 주면 되지만 돈 신경 안 쓰고 시간이 조금 오래 걸리더라도 그때그때 만든다는 철칙을 가지고 영업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50년 동안 쌓아온 공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신념을 원칙으로 이 자리까지 왔다"고 설명했다. 쌍용반점의 자랑은 정성이다. 군산이라는 지역적 특성을 활용해 바지락, 홍합, 오징어 등 군산에서 나오는 어패류를 쓰고 소뼈로 국물을 우린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매일같이 새벽 시장에 나가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싱싱한 식재료만 사는 일을 반복한다. 그는 "하루의 시작은 장보기다. 요즘은 시대가 좋아져 직접 가서 사지 않아도 되지만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사야 마음이 놓인다. 5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니 이제 그냥 먹고 자는 일처럼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장 보러 다닌다. 우리 가게 음식이 신선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했다. 50년 세월을 달린 고 대표에게도 간절한 바람이 있다. 바로 짬뽕을 세계인의 음식으로 만드는 것이다. 고 대표는 "내가 가지고 있는 기술, 노하우를 다음 세대에게 전수하는 것도 우리의 임무다. 계속 대를 이어갈 수 있도록 차근차근 인력을 확보하고 전수해 짬뽕이 세계인에게 사랑받는 음식이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고영수 쌍용반점 대표 "만약 혼자 했다면 이 자리까지 올 수 없었을 거예요." 쌍용반점은 50년 됐지만 쌍용반점 직원들은 짧게는 20년 길게는 40년 역사를 자랑한다. 고 대표는 인터뷰 내내 50년이 지나도 사랑받고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주변 사람들 덕분이라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50년 전 대로변 작은 몸집의 쌍용반점은 타지역 사람들보다는 동네 주민들에게 사랑받는 가게였다. 한 그릇이라도, 조금은 먼 거리라도 자전거를 타고 배달하면서 단골을 만들기 시작했다. 고 대표에 따르면 당시 화교가 아닌 한국 사람이 중화요리를 하면 대부분 실패했지만 오랜 시간 호흡을 자랑하는 직원들과 아낌없이 사랑을 주는 동네 주민들이 있어 살아남을 수 있었다. 군산 바다가 보이는 외곽에 건물을 짓고 쌍용반점도 자리를 옮겼다. 동백대교가 나면서 대로변에 있던 쌍용반점도 철거해야 했기 때문이다. 당시 고 대표는 아무리 오랜 시간 영업했지만 자리를 옮기면 손님이 줄면서 매출도 줄어들 것이라는 생각에 밤잠을 설쳤다. 고 대표는 "아무래도 대로변에서 장사를 시작했기 때문에 외곽으로 빠지면 확실히 손님이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바다가 보이기 때문에 횟집이라면 장사가 잘 될지 몰라도 중화요리를 했기 때문에 잘 될 것이라는 확신이 없었다"며 가게 이전하던 날을 회상했다. 하지만 고 대표의 걱정과 달리 손님들에게 바다가 보이는 위치의 중화요리 전문점은 신선했는지 하루하루 입소문을 타더니 대로변에 있을 때보다 더 많은 손님이 찾았다. 그러나 즐거움은 잠시였다. 쌍용반점도 코로나19를 피해갈 수 없었다. 예상도 못 했던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매출은 하루가 다르게 급감했다.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해 1/3로 줄었다. 그는 "인건비 걱정이 너무 컸다. 매출이 생각보다 더 줄어서 고통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어려웠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고 인원 제한도 풀리면서 손님들이 다시 오시기 시작했다. 거의 80% 정도 회복됐고, 조금만 더 지나면 100% 돌아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기대했다. 고 대표가 코로나19를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직원들 덕분이다. 그는 "오랜 시간을 지내서 그런가 직원들과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자는 이야기를 했다. 조금만 참고 이겨내자, 살아가다 보면 이런 일도 있다면서 함께 응원해 주고 토닥여 줘서 버틸 수 있었다"며 직원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향후 쌍용반점은 며느리 또는 중화요리 전문점 영업을 꿈꾸는 유능한 젊은 세대가 대를 이어갈 전망이다. 고 대표는 "며느리에게 이야기는 했지만, 꼭 가족이 대를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중화요리에 관심이 있는 젊은 친구들이 있다면 그 친구들에게 물려 줄 생각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전북에 있는 모든 백년가게 대표님들이 장인 정신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손님과 마주하면서 오랜 시간을 갈고 닦으면서 이 자리까지 오지 않았나. 모두가 영업도 잘 되고 또 대물림도 잘 돼서 전라북도의 맛을 이어갔으면 좋겠다. 정말 간절한 소망이다"고 마무리했다. 고 대표는 전북백년가게협의회 부회장, 한국외식업중앙회 군산시 지부장 등을 맡고 있다. 박현우 기자

  • 기획
  • 박현우
  • 2023.03.22 17:27

[전북 기업 도전과 성공 스토리] 백년가게 신가네정읍국밥

"음식과 문화를 선도하는 기업, 신가네정읍국밥입니다." 3대를 이어 60여 년 전통의 맛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는 신가네정읍국밥이 식당을 넘어서 기업으로 자리잡았다. 중소벤처기업부는 30년 이상 명맥을 유지하면서도 오랫동안 고객의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고 인정해 신가네정읍국밥을 백년가게로 선정했다. 백년가게는 지난해 12월 기준 전국에 1356곳, 전북에 81곳이 있다. 신가네정읍국밥은 3대를 이어온 전통 그대로의 맛을 살리고 만민이 향유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겠다는 창립 이념을 가지고 65년째 역사를 쓰고 있다. 65년 달려오면서 신가네정읍국밥 가맹사업을 펼친 결과 현재 정읍(본점), 전주, 부안, 고창, 광주, 목포, 여의도, 통영, 무안 등 가맹점 10여 곳을 두고 있다.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맛의 일관성 덕분이다. 김종성·신은미 대표는 "3대째 이어지는 가업이고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어느 순간 맛의 일관성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밤낮으로 이 맛의 일관성을 찾는 데 시간과 정성을 들여 비법 양념 스프를 개발했다. 가맹점에서도 본점 그대로의 맛을 느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4년에 걸쳐서 스프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가맹점 어느 곳에서 먹어도 "확실히 본점이 맛있지"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렇게 신가네정읍국밥은 몸집을 키우면서도, 키우고 나서도 고객들에게 최선의 서비스와 맛을 제공하기 위해 끊임없는 개발·연구하고 있다. "대를 이어오면서 내려온 가르침이 '먹을 것 주는 기쁨이 가장 크다'는 말입니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모든 고객이 뜨거운 국밥 한 그릇으로 요기하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볼 때의 기쁨이 가장 크다는 의미다. 이는 3대째 내려온 신가네정읍국밥의 가르침이다. 신가네정읍국밥의 역사는 1958년 정읍시 신태인읍에서 시작됐다. 신은미 대표의 고모인 신순애 씨가 시작해 신 대표의 엄마인 조금자 씨가 물려받고 2002년에 김종성(56)·신은미(53) 대표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이후에는 부부의 아들인 김관우 씨(전주대 외식산업학과 3년)가 대를 이어갈 예정이다. 김 대표는 "1급 자동차 정비사로 대기업에서 현장근무와 외국생활을 경험했다. 호주에서 3년 정도 살았을까, 한국으로 발령받았다. 당시 장모님이 건강상의 이유로 가게 문을 닫아야겠다고 했었다. 자리도 잡았고 맛도 있었기 때문에 그냥 닫기에는 아쉬운 마음이 커서 가업을 물려받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루 서너 시간씩 자면서 영업했다. 조그마한 평수에서 시작했는데 그동안 가업을 이어오면서 맛이나 단골 등 다져온 것이 많아서 타 지역에서도 찾아오는 국밥집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작은 국밥집으로 시작했지만, 점점 몸집을 키우면서 이제는 수출까지 내다보고 있다. 아들에게 바통을 넘기는 이유 중 하나다. 수출은 대를 이어가면서 장인 정신을 고집하고 비법을 전수하기보다는 조금 더 몸집을 키울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다 떠올린 대안이다. 수출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밀키트를 개발하는 등 기반을 다지고 있다. 신가네정읍국밥은 중소벤처기업부 밀키트 개발사업을 통해 메뉴 중 하나인 정읍국밥과 철판순대볶음을 모티브로 한 곱창순대떡볶이 밀키트를 개발했다. 밀키트는 현재 인천국제공항, 네이버 스토어 등에 입점돼 있다. 전국을 넘어 세계로 성장 발판을 확대할 백년가게 신가네정읍국밥의 모습이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신가네정읍국밥 김종성·신은미 대표 "음식 앞에서는 그 누구도 차별받지 않았으면 해요." 김종성·신은미 대표(이하 대표)는 신가네정읍국밥을 물려받았을 때 장애를 가진 친구로부터 충격적인 말을 듣게 됐다. 친구는 대표에게 "우리는 밥 먹을 데가 없다.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곳도 턱없이 부족하고 주차장은 물론 비장애인들의 시선이 있어서 어디 가서 밥 먹기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표는 본점을 장애인 친화 식당으로 탈바꿈했다. 식당과 최대한 가까이 장애인 주차 자리를 만들고 전동 휠체어도 들어올 수 있도록 조성했다. 또 어려움이 있으면 직원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출입구에 비상벨도 설치했다. 대표는 "새로 조성하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 식당도 휠체어가 들어올 수 없어 바깥에서 밥을 먹는 장애인도 다수 있었다. 지금 조성하고 나니 그 누구도 차별받지 않고 시선 신경 쓰지 않고 먹을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 같아 보람을 느낀다"고 전했다. 이렇듯 대표가 가장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고객이다. 정직, 정도, 정성, 정진이라는 네 가지 철학을 가지고 고객을 대하고 있다. 음식의 재료부터 엄선해 정직으로 고객의 먼저 생각하고, 가맹사업에서 법·원칙을 지키며 약속을 엄수하는 정도경영을 하고, 고객에게 정성을 다하겠다는 초심으로 노력하고, 3대를 이어온 전통 그대로의 맛 자존심을 걸고 정진하겠다는 목표다. 오랜 시간 고객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비결이기도 하다. 이 자리까지 오는 동안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대표는 "오랜 시간 역사를 이어오다 보니 위기는 셀 수 없이 많았다. 솔직히 이혼 도장 찍고 법원 앞까지도 갔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저희뿐만 아니라 모든 자영업자의 이야기다. 당시 못 참고 이혼했다면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없었다"며 "시간이 해결해 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도 처음 시작할 때 무일푼으로 한국에 왔기 때문에 쉽지 않았다. 위기나 고생은 5, 6년이다. 생각보다 안 되고 어려워도 조금만 참으면 행복이 온다는 걸 배웠다"고 했다. 대표는 인터뷰 내내 고객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표현했다. 끊임없이 고객들이 관심과 사랑을 보여 줬기 때문이다. 대표는 "사실 국밥 치고 저렴한 가격은 아니다. 그래도 많은 고객이 식당을 찾는다. 심지어 10분 정도 기다릴 때도 있는데 자리 안 떠나고 차례를 기다릴 때 너무 감사하다. 고객들을 위해 조금이라도 더 좋은 음식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뭐 하나라도 챙겨갈 수 있도록 해 주고 싶어서 연구하고 있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하다"고 말했다.

  • 기획
  • 박현우
  • 2023.03.01 17:18

[전북 기업 도전과 성공 스토리] 김태정 무진장갈비촌 대표

"화려하고 복잡한 걸작을 요리할 필요는 없다. 다만 신선한 재료로 좋은 음식을 요리하라." 요리와 사람을 사랑하며 열정적인 삶을 산 故 줄리아 차일드가 남긴 명언이다. 중소벤처기업부는 30년 이상 명맥을 유지하면서도 오랫동안 고객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곳을 '백년가게'로 지정하고 있다. 백년가게는 지난해 12월 기준 전국에 1356곳, 전북에 81곳 있다. 모든 백년가게는 줄리아 차일드처럼 요리와 사람을 사랑하며 고객들에게 최고의 재료로 최고의 음식을 내준다. 이중 2019년 백년가게로 선정된 익산의 무진장갈비촌을 찾았다. 이곳은 2007년 모범음식점, 2015년 익산 착한가게, 2019년 대물림 맛집·백년가게, 최근 안심식당까지 5관왕을 달성했다. 5관왕 달성의 8할은 김태정 무진장갈비촌 대표의 노력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 대표는 "항상 고객을 최고로 생각하고 친절, 위생, 청결, 친환경을 되새기면서 영업했기 때문에 5관왕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직원들에게도 매일같이 일을 즐기자고 말한다. 그래야 즐거운 마음으로 고객을 마주할 수 있다"고 했다. "무진장갈비촌을 찾는 모든 고객이 무진장 맛있는 음식을 먹고 무진장 행복하고 무진장 잘됐으면 좋겠어요." 김태정 무진장갈비촌 대표의 바람이다. 상호를 '무진장갈비촌'으로 지은 이유다. 무진장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무진장 주는 식당으로 자리매김하고, 무진장 맛있는 음식을 내주고 싶은 김 대표의 마음과 경영 철학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김 대표는 "사실 고향이 진안이다. 그래서 진무장으로 지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진무장보다는 무진장이 발음도 쉽고 고객들 인상에도 빨리 각인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컸다. 작명소 가서 지은 줄 아는 고객도 많은데 직접 지었다. 무진장갈비촌 상호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으니 각자 좋은 방향으로 해석하면 된다"고 말했다. 무진장갈비촌이 자리잡는 데까지는 26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역사는 1982년 10월에 시작됐다. 김 대표는 익산 최초의 백화점인 이도백화점 스낵 코너에서 분식집을 운영했다. 이도백화점이 폐업하면서 연고도 없는 함열로 자리를 옮겼다. 10여 년을 자리 잡고 식당을 운영하다가 익산군이 익산시로 통합되면서 지금 위치에 무진장갈비촌을 열게 됐다. 무진장갈비촌은 IMF 구제금융 신청을 발표한 1997년 11월 22일 문을 열었다. 당시 IMF 위기 속에 개업했지만 26년째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금은 연 매출 10억 대를 자랑하는 식당으로 자리 잡았다. 지금의 무진장갈비촌에도 위기는 있었다. 김 대표는 "옛 이도백화점에 있을 때 폐업하고 자본도 없고 소유 가게까지 없으니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겠고 깜깜했다. 이후에 아무 연고도 없는 함열로 들어가서 10년 동안 있었는데 처음에는 고전했다"며 "무진장갈비촌 개업 당시에도 IMF랑 딱 겹치는 바람에 개업 전날 잠이 안 올 정도로 불안하고 초조했다. 외식업만 40년째인데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기분이 이상하다"고 밝혔다. 김태정 무진장갈비촌 대표 "아들에게 제 가업을 넘겨 주려고요." 김태정(67) 무진장갈비촌 대표는 백년가게의 명성에 맞게 아들에게 가게를 넘겨 줄 계획이다. 오랜 시간 고객과 마주하고 지금의 자리를 지키기 위한 결정이다. 오랜 시간을 지켜온 자리를 누군가에게 넘겨 준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이에 김 대표도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다. 김 대표는 40여 년을 외식업 외길만 걸었다. 외식업이 잘 만지면 재미있는 업종 중 하나지만 위기가 많은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사범대 나온 아들에게 관련도 없는 외식업을 물려 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마음이 무거웠다. 그는 "아들에게 가업을 이어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을 때 미안했다. 아들한테 이 가업을 다른 사람한테 넘기기 어려우니 직장 생활하지 말고 이 자리를 지켜 줄 수 있냐고 물었다"며 "몇 번 설득 끝에 아들이 가업을 이어가기로 했다. 아들이 주방 안 실장에게 요리 수업도 받고 있다. 백 년 세월 갈 수 있도록 아들에게 백년가게의 인식도 심어 주고 더 많은 가르침도 줘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 아들에게도 강조하고 김 대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친환경이다. 모든 식재료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구입하는 것이 특징이다. 또 밑반찬, 장류, 젓갈류 등은 직접 만들어서 상에 올린다. 그는 "시장에 가서 반찬을 구입하거나 납품하면 국산 말고 수입산도 많지 않나. 그래서 저희는 무조건 로컬푸드 식재료를 구입해 직접 만들어서 밑반찬 등을 내놓으면 고객들이 너무 좋아하신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직접 눈으로 보고 고른 식재료로 반찬을 만들어 올린 후 고객들의 반응에 행복을 느낀다. 고객들이 밑반찬을 추가로 주문하고 나중에 지인 등을 동원해 다시 찾는 모습을 볼 때 가장 행복하다는 게 김 대표의 말이다. 그는 식당 운영뿐만 아니라 백년가게 전북협의회장, 사단법인 한국외식업중앙회 전북지회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도내 14개 시·군을 돌아다니면서 교육하고 있다. 또 신규 창업자 멘토링, 노하우 전수 등 눈코뜰새 없이 나날을 보내고 있다. 김 대표는 "무진장갈비촌이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고객들이 저희 무진장갈비촌을 성원해 주시고 사랑해 주신 덕분이다. 무려 26년이라는 세월을 올 수 있었다. 앞으로 백 년 세월 동안 백년가게의 명성에 걸맞게 나아갈 수 있도록 더 많은 사랑 부탁드린다. 저희도 백 년까지 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식당이 되겠다"고 마무리했다.

  • 경제일반
  • 박현우
  • 2023.02.15 17:26

[전북 기업 도전과 성공 스토리] 성도경 비나텍㈜ 대표이사

"품질이 물량보다 더 중요합니다. 한 번의 홈런이 두 번의 2루타보다 나아요." 미국의 기업가이자 미국의 전자제품 제조 회사인 '애플(Apple)'의 창업자 故 스티브 잡스가 남긴 말이다. 이렇듯 모든 기업은 저마다 철학, 비전을 가지고 있다. 이를 토대로 최고의 기업이 되는 날을 꿈꾸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창업·중소기업·대기업 불모지라 불리는 전북에도 지역을 넘어 세계시장을 이끌기 위해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 기업들이 있다. 이중 에너지 저장장치 원통형 슈퍼커패시터 제조 회사인 비나텍㈜은 지난 2011년 11월 경기도 군포에서 전북으로 본사를 이전해 몸집을 키웠다. 국내·외 탄소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더욱 주목받고 있는 회사 중 하나다. 비나텍은 지난 2019년 해외 매출 374억 원을 달성하고, 도내 탄소 기업 중 최초로 코스닥 상장을 이뤄냈다. 일본 수출 규제, 코로나19 등으로 위기가 지속되는 상황이었지만 자금력을 총동원해 미래 계획을 탄탄하게 수립한 덕분에 코스닥 상장이라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직원이 성장해야 회사가 성장하고, 직원이 행복해야 회사가 지속될 수 있습니다." 비나텍㈜ 성도경 대표이사의 경영 철학이다. 직원과 기업의 성장이 함께 이뤄져야만 기업이 더욱 더 빛날 수 있다고 믿는 성 대표다. 전 직원이 웃으며 일하며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었던 이유다. 비나텍의 미션에서 성공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미션은 '우리는 모든 구성원의 행복을 기초로 친환경적인 제품을 제공해 함께 사는 사회에 기여한다'이다. 이는 사업 초기부터 설정했던 미션으로, 기업의 지속성 담보는 물론 사회적 책임까지 다하는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비나텍은 지난 1999년 설립된 글로벌 친환경 에너지 소재·부품 전문 기업이다. 세계 최초로 2010년부터 에너지 밀도가 3.0V인 전기이중층 콘덴서를 대량 생산하는데 성공했다. 카본 제조 기술을 기반으로 한 연료 전지 핵심소재인 담지체와 촉매, 막전극접합체(MEA) 등을 생산하고 있다. 2021년 매출액 389억 원에서 2022년 705억 원을 달성했다. 당기 순이익은 2022년 74억 원에서 2023년 130억 원으로 74% 증가했다. 이러한 성장을 바탕으로 비나텍은 'VISION 2030'을 통해 매출 1조 원 달성을 위해 달려가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본사인 전주 공장(R&D 연구소), 완주 공장, 영업 사무소, 베트남 공장 등을 보유하고 있다. 완주 공장에는 4개 공장동과 3개의 부속 건물을 설치하고, 베트남에는 제2공장 건설을 추진할 계획이다. 올해 수소연료전지 두 번째 생산동과 품질평가센터를 건설하고, 향후 전주 공장을 비나텍의 심장인 '중앙기술연구소'로 탈바꿈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비나텍은 경기도 군포에서 설립해 전북으로 본사를 이전했다. 본사와 공장을 옮기는 과정에서 대규모 설비 투자 등에 시행착오를 겪고 외형이 커지면서 관리 시스템이 따라가지 못하고 제품 품질에도 문제가 생기는 큰 어려움에 처하기도 했다. 당시 성 대표이사와 직원들은 초심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초심을 다지기 위해 일부 직원은 해남 땅 끝에서 전주까지, 일부 직원은 군포에서 전주까지 도보 행진을 진행하고 불량품을 묻은 '품질 위령비'를 세우기도 했다. 이후 3정 5S의 기본으로 돌아가기 운동, 매월 경영 설명회 개최 등을 통해 현실을 인지했다. 전반적인 프로세스를 혁신해 위기를 극복한 비나텍이다. 비나텍은 기술 혁신뿐만 아니라 인재 육성에도 앞장서면서 여러 위기 속에서도 활짝 필 수 있었다. 일명 '동반 성장'이라는 가치를 내걸고 직원을 중심으로 기업의 몸집을 키웠다. 성 대표이사는 동반 성장을 가치로 설정했기 때문에 오늘날의 비나텍이 만들어질 수 있었고 지속 성장의 길을 지켜올 수 있었다고 믿는다. 그는 "기업 설립 때부터 2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다. 비나텍을 흔들리지 않고 지금 이 자리까지 이끌어오면서 '동반 성장'이라는 가치를 설정하고 스스로 실천해 왔다. 이러한 미션, 가치를 정확하게 세우지 않았다면 직원들이 웃으며 일하고 사회 환원에도 앞장서는 비나텍을 만들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도경 비나텍㈜ 대표이사 그동안 비나텍이 추격자였다면 앞으로는 선도자, 게임 체인저가 될 것입니다." 성도경(64) 비나텍㈜ 대표이사는 비나텍이 달려온 길을 추격자, 달려갈 길을 선도자, 게임 체인저라고 표현했다. 시중에 나와 있는 상품으로 최고가 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 상품을 만들어 최고가 되겠다는 성 대표이사의 굳은 의지가 엿보인다. 비나텍은 더욱 더 몸집을 키우기 위해 최근 국내·외 내로라하는 기업의 지사장, CEO, 임원 등을 영입했다. 성 대표이사는 "직원 역량이 제자리면 회사가 성장하기 어렵다. 여러 기업에서 많은 경험을 쌓은 사람들을 영입하는 이유다. 내년, 내후년에 회사 몸집이 더 커질 것으로 예상해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비나텍은 차별화된 기술력을 확보하고 유지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끊임없이 R&D에 재투자하며 중형 슈퍼커패시터 세계 시장에서 가장 높은 점유율을 유지하기도 했다. 그동안 축적된 기술을 기반으로 신제품 출시도 준비 중이다. 이를 토대로 기존의 중형 시장에서 벗어나 친환경 자동차, ESS, 트램, 이밖에 미래 모빌리티 분야 등 성장 잠재력이 내재돼 있는 모듈 및 시스템 시장 진입하는 것이 목표다. 또 비나텍은 기술 혁신뿐만 아니라 인재 육성, 이웃 사랑에도 앞장서고 있다. 성 대표이사는 아무리 잘난 기업이라도 혼자서는 살 수 없다고 믿는다. 그가 주변 이웃들에게 선행을 베푸는 이유 중 하나다. 성 대표이사는 "분기에 한 번씩 직원들과 봉사활동을 나간다. 직원들은 1년에 24시간 의무 봉사활동을 해야 한다. 비나텍 설립 초기부터 고집해 온 철학이다. 회사 키우고 근무환경 개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봉사활동도 중요하다"면서 "이밖에도 전 직원이 급여 1%를 기부하도록 추진했다. 적게 받고 많이 받고 안 따진다. 올해 지금까지 모인 돈으로 복지재단도 만들 계획이다"고 전했다. 이어 "항상 직원들에게 고마운 마음이다. 이전에는 일일이 따라오라고 하고 이끌어야 따라왔는데, 이제는 관여하지 않아도 각자 알아서 잘 따라온다"며 "비나텍이 2, 3년 내 시장에 차별화된 제품 경쟁력을 통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고 시장의 변곡점도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 경제일반
  • 박현우
  • 2023.01.25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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