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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9월, 가람 이병기 시인(1925년 '조선문단')부터, 양병호 시인(1992년 '시문학')에 이르기까지, 매주 1회씩 소개해오던 '전북시의 숨결을 찾아서'를 지난 주에 마치게 되었다. 본래의 계획은, 최근 2010년에 등단한 시인들까지 100인의 전북현대 시인을 다루어 보고자했으나, 부득이한 개인 사정으로 50인을 먼저 소개하고, 이후에 등단한 분들은 차후로 미루게 되어 아쉽다.이번 연재는 단순한 문예미학적 논평이나 작품 해설 위주의 감상평에서 벗어나 이 땅의 전북 시인들이 시대의 고난을 어떻게 승화하고 극복해 왔던가, 곧 그들의 정신사적 맥락을. 조명해봄으로써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의 소중한 정신적 유산으로 삼아보고자 하는 의도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자료의 부족과 제한된 지면과 시간, 그리고 집필을 거듭한 가운데 본의 아니게 누락된 분들이 있어 차후 2차 집필 시 이 분들의 자료를 수집보완하여 다루고자 한다. 등잔 밑이 어둡고, 한 동네 점쟁이 알아주지 않는다더니, 그간 건성으로만 알고 지내던 전북시인들의 작품을 가까이 살피게 되다보니 이제까지 보이지 않았던 그분들의 넓고 깊은 작품 세계가 보다 확연하게 모습을 드러내게 되어, 예부터 우리 전북이 문향이요 예향임을 다시금 절감하는 계기가 되었다. 보다 가까이 다가가 비로소 만나게 되는 전북 시인들의 맑고 드높은 영혼의 정수. 아직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았을 뿐, 그 어느 고장 유명한 시인들의 작품에 결코 뒤지 지 않는 정신적 사유, 그러면서도 묵묵히 자신의 일상 속에서 삶이 곧 시가 되고 시가 곧 삶이 되는 아름다운 시인들이 적지 않았음을 발견하면서 그때마다 옷깃을 여미곤 하였다.그것은 이제까지 주변의 시인들을 하나의 타자로서만 여겨왔던 선입관에서 벗어나 그들과 한 몸이 되는 접촉에서 만나게 되는 공감이었고,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시각적(視覺的) 관망에서, 그들과 살을 부비고 동거(同居)하면서 듣게 되는 그들의 가쁜 숨결과 그늘에서 움트게 되는 연민과 사랑이었다. 이것이 이번의 연재에서 얻게 되는 나름의 성과가 아니었든가 한다. 때마침 금년 가을 전북문학관 개관 1주년 기념식을 한국문인협회 이사장과 전국대표자 문인들이 한 자리에 모여 갖게 되었다. 이 자리에서 '전북이 한국문학의 발상지'임을 천명하고 그 표지석을 세우게 된 것도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우리 전북은 이처럼 예부터 정신문화의 중심지로서 이 땅을 지켜왔던 것이다. 백제인의 후예답게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는 검이불루(儉而不陋) 순진무구의 소박한 자연주의 혹은 동양적 전통의 정신세계를 추구한 시인들이 많았다. 순명(順命), 순천(順天)하는 가운데 누가 뭐라해도 순리와 도리에 맞게 자신의 삶을 갈무리해가는 선비의 풍모도 여기에 준하지 않은가 한다.남북분단에서 빚어진 민족의 한(恨)과 뒤이은 독재, 이에 따른 저항과 좌절의 신음소리도 들을 수가 있었다. 남다른 통찰과 직관으로 결핍되고 불의한 현실을 응시하고 이를 승화의 경지로 이끌어 가는 초월과 통합의 세계도 있었고, 형이상학적 탐구미학으로 새로운 정신세계를 추구해가는 분들의 작품도 있었다. 일제침략기와 6.25, 그리고 권력과 탄압, 소외의 질곡을 극복하고, 때로는 반면교사로 우리를 일깨워 주면서, 자본과 경쟁에 도구적 존재로 내몰린 오늘의 우리에게 이 분들의 시는 큰 교훈과 감동을 남겨 주었다. 무국적 무정형으로 가볍게 흔들리기 쉬운 우리들에게 이번의 연재가 다소나마 정신적 건강과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게 필자의 바람이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차후 '전북현대시 100년사'를 완성하고자 함도 이런 연유에서이다.그간 불비하고 미거한 '전북시의 숨결을 찾아서'에 많은 관심과 격려를 보내주신 독자제현 그리고 선뜻 지면을 할애하여 전북인의 정신세계를 메마르지 않게 가꾸어 갈 수 있도록 배려해주신 전북일보 문화부에 감사를 드린다. 시인백제예술대학 명예교수
끈끈한 풀을 쑵니다. 식구들 가을 양지 녘에 앉아비바람 맞으며 살아온 삶의 무늬 얼룩 얼룩진 파리똥 어지러운 문종이에물을 처발라 좍좍 뜯어냅니다.놀이하듯 신나게 남루를 발겨냅니다. 눈부시게 새하얀 내일을 재단하여각진 문살에 창호지 척척 발라뉘엿뉘엿 쓸쓸한 하오의 햇볕 서러운 가을바람에 말리면꾀죄죄한 살림이 시나브로 탱탱해집니다.퀴퀴한 세상이 상큼 환해집니다. 귀뚜라미 울음 머금은 댓잎별빛 우러러 파르란 국화 잎사귀로사군자 치듯 무늬를 수놓으면출렁이는 달빛 휘영청 쏟아지고 길손 바람 문풍지를 흔들며 놀다 가면이윽고 배부른 해가 꺼억, 트림처럼 떠오릅니다. - '가을 門 도배' 일부고고학자들이 문화재를 발굴하듯, 양병호 시인(1960~, 전북대 국문과 교수)는 잊혀져가는 지난 날 우리네 유년의 공간에 대한 향수와 추억을 오이관복(吾以觀復)의 자세로 정관(靜觀)하고 있다. 그것은 그의 말처럼 '바람 속을 속수무책 통과하며 스친/ 풍경들을 그러모아/ 추억의 박물관을 건축하는' ('구봉서와 배삼룡' -시인의 말)일이요, 잃어버린 낙원과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치유하는 길이기도 하다. 매콤 쏘면서도 달큼하게 앵키는 알싸한 그 맛이여라우.푸-욱 썩어서 그러것지라우.시한이면 겁나게 춥고여름이면 또 펄펄 끓어버리는 옥천에서미역도 감고, 밤하늘 별도 헤면서맨날 푸르게만 자랐지라우.아 그러다가 뒤숭숭 바람불어쌓던 열여섯 가을에 참말로 바람이 나버렸지라우. 맵고 독하고 얼큰하게 바람 들어버렸지라우. 우리는 눈 맞자마자 들이댑다 가마솥에서 뻘뻘 온몸을 달군 다음 아랫목에서 큼큼 뜨겁게 사랑하다가서까래에 매달려 엄동설한 깡깡 얼었다가장독에서 소금물에 질끈 절여졌지라우.글고도 숯과 고추가 오장육부를 다 뒤집어버리데요.기진해서 인생 포기하고 널브러져 누웠는데동네 아주메들이 달라 들어갖고 이도령 기다리는 춘향이 마음 한 줌회문산 휘돌아온 서러운 바람도 한 자락전봉준 이글거리며 타는 눈빛 한 줄기강천산 흘러내린 옥천물도 한 바가지동학 때 베잠방이들의 울분과 함성 한 주먹별빛 머금은 여치 울음소리도 한 가락섞어갖고 육자배기 부르며 설설 버무립디다.한 많은 이 세상 썩어 문드러진 이 년을 어르고 달래붉고 찰지고 알싸하게 앵키는 년으로 맹글어버립디다. 생각해 봉께, 이러코롬 살아온 내도 모진 년은 참 모진 년인갑소. - '순창고추장', 전문전통 순창고추장의 숙성 과정을 모질고 강인한 이 고장 여인네들의 일생에 비유하여 한 편의 서사시처럼 장중하게 읊고 있다. 정감어린 전라도 지방(남원·순창) 방언의 토속적 구사도 그려러니와, 지난 날 우리네 농촌의 풍경과 그 속에 깃들어 사는 농민들의 애환과 시대상이 한 폭의 민속화를 보듯 정겹게 그려져 있다. 그것은 마치 걸쭉한 육자배기처럼 때로는 구수한 재치와 입담으로, 때로는 범상치 않은 풍자로 우리의 무딘 타성과 무료한 일상에 일침을 가하면서 한국 향토시의 새로운 장(場)을 연 또 다른 로컬리즘의 서정 미학이 아닌가 한다. 〈끝〉 시인·백제예술대학 명예교수
임실에서 출생. 1990년 '문학세계'로 등단한 유복남(1949~) 시인은 그리움의 시인이다. 그리움이란 불완전한 인간존재가 느낄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예민한 고급정서로서, 이 그리움이 있기에 유 시인은 혼탁한 현실 속에서도 끝내 자신을 잃지 않고 한 개성 있는 시인으로 새로운 세계를 끊임없이 꿈꾸게 된다. 세월을 말해 주듯애환서린위대한 외벽너를 향한 기억천 년을 살고 또 살아도아득하게 남아있을 그대 - '돌섬'에서오늘도 성난 하늘을 오르다눈뜨지 않는 외딴 섬으로굽이치며 돌아가나니우주 가득 펼쳐진넓디 넓은 네 품안에서한 번쯤 힘껏 붙들고퍼렇게 목놓아 울어버린너 동해 바다여 - '동해'에서 한 시인의 정조(mood)를 파악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그의 시 전면에 등장하고 있는 시간과 공간 배경, 그리고 시상의 추이 과정을 살펴보는 것도 그 중의 하나가 된다. 시에 있어서의 배경은 한 시인의 성격과 신분, 그리고 심리적 상태가 머물러 있는 정서적 거점으로서 그 시의 정조를 추출해 낼 수 있는 주요 단서들이다. 위 두 편의 시에서 서정적 자아가 서 있는 공간은 외진 바닷가의 '돌섬'과 '외 딴 섬'이다. 그것도 먼 바다를 천년을 하루같이 바라보면서 '너를 향한 그리움의 뒷모습'만으로 서서 끝내 하늘에 오르지 못한 한(恨)으로 서 있는 '외딴 섬' 이다.이처럼 대상과의 단절과 소통 부재에서 오는 그리움의 정서는 이후 여러 편의 시에서 어둠의 이미지로 굳어져 있다.화자의 목소리가 한결같이 어둡고 우울하고 슬프다. 대상과의 단절에서 오는 상실과 소외의 그리움이 심화되어 있다. 님을 찾아 '산사', '골짜기', '벼랑 끝', '하늘 끝'과 같이 외지고 막다른 적막 공간에서 배회하고 있다. 체념, 어둠, 불면(不眠)의 몸부림으로 그의 목은 굽어져 있고, 목소리는 노을빛으로 공허하게 하늘 끝에 메아리 치고 있을 뿐이다.허구헌 날세월의 풍랑에 부대끼면서외로움도 우울함도 아우성도운해로 삼켜버리고 아픈 몸부림으로 순결한 위엄을빛깔 진하게 간직 하련다 - '지리산'에서 「지리산」은 최근 그가 안착하여 살아가고 있는 자화상에 다름 아니다. '외로움도 우울함도 아우성'도 모두 삼켜버리고 서 있는 지리산. 대상과 내가 맞서 있는 게 아니라 만상을 포근하게 잠재우고 감싸주는 운해처럼 서로가 하나로 화해되어 공존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또 하나의 다짐을 한다. 그것은 어떤 경우라도 '순결'과 '위엄'을 결코 잃지 않겠다는 다짐. 그것도 그냥 순결과 위엄이 아니라 '빛깔 진한' '순결과 위엄이니, 여기서 우리는 그가 그 어떤 풍랑 앞에서도 꿋꿋하게 설 수 있는 유 시인만의 오만한 자존과 향기를 독자적으로 이미 확보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문학을 위해 문학을 하는 게 아니고 종교를 위해 문학을 하는 것도 아니다. 삶, 그 자체를 윤택하게 하기 위한 생활문학(Art for life)으로서 자신의 삶을 건강하게 구축해가고 있는 성실한 한 여류 시인의 모습을 본다.시인·백제예술대학 명예교수
정읍시 산외면 유가(儒家)에서 태어난 송재옥 시인(1935~)은 일찍이 조부 슬하에서 한학을 수학하고 농업에 종사하면서, 1991년 '표현'지로 등단, 현재 '전북불교 문학회' 회장을 맡아 시 창작에 전념하고 있다.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길을 찾아남들보다 더 빨리 앞서 가려고 하지만길은 아직 끝이 보이지 않는다길을 걷다가 달리다가발 대신 차로, 물 위는 배로혹은 비행기로 날아가지만 그러나끝이 있는 길, 끝이 없는 길가다가 문득 멈추어 서면애초의 원점생성과 소멸의 질곡그 모순의 역사 싱의 섭리만이 달려가고 달려 오는 길 - '순환' 전문절대 무한의 우주 속에서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 탐색이 골똘하다 '사람들은 제각기 -길을 찾아' '걷다가 달리다가' '차로', '혹은 비행기로 날아/가지만 그러나' '끝이 있는 길, 끝이 없는 길'이라고 한다. 사람이 가는 '길의 끝'은 죽음이지만,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는 우주의 길은 '끝이 없기' 때문이다. 생멸을 거듭하는 우주 만상 속에서 찰나적 존재로서의 불안과 부조리 앞에 투기된 실존적 자아의 모습에 다름 아니다. 우리의 생(生)은 무상(無常)과 무한성(無限性)으로 끊임없이 순환되고 있다는, 존재의 전일성(全一性)을 바탕에 깔고 있다. 이것이 우주와 생명의 근원적인 모습이라고 하는 불교적 세계관과 니체의 영원회귀, 아니 주역(周易)의 역사상(易思想)과도 다르지 않는 우주적 맥락의 세계관이라 하겠다.물(物)마다 달리 매겼다, 시간을은하엔 헬 수 없이 서로 다른 시간의 틀을 걸었다별들은 제 시간 때에 물먹느라 깜박거린다.24시, 실은 무의미의 시간이다, 하루는땅이 제 나름으로 한 바퀴 뒹구는 것일 뿐해와 별과 땅과 달이 버티며 돈다.콩과 깨가 뒹군다면 어찌 같다고 할 것인가?삼추(三秋)가 일각(一刻)이고 때론여러 생(生)이 겹쳐도 하루거리에 못 미칠 수도 있다하늘의 순간이 이승의 몇 천 날이라고 하던가? 그래서하늘의 생(生)은 망망하고인생은 해협을 건너는 길손이라 - '시간 구워먹기.5' 에서지구는 자전(自轉)과 공전(公轉)을 한다. 하루의 해가 뜨고 지는 것은 자전 때문이며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생기는 것은 공전 때문이다. 우주는 참으로 신비스럽기 한이 없다. 지구보다도 태양이 130만 배나 크고, VV Cephei라는 별은 지구보다 무려 65만 배나 크다고 하니, 넓은 우주의 큰 항성에 비하면 지구는 그야말로 작은 모래알에 지나지 않다. 뿐만 아니라, 항성의 크기에 따라 '물(物)마다 시간을 달리 매겼기' 때문에 '하늘의 순간이 이승의 몇 천 날이'이 되고, '일각(一刻)이 여삼추(如三秋)'가 된다. 이처럼 송재옥의 '시간 구워먹기'에서의 시간 개념은 물리적, 객관적 시간이 아닌 직관적 시간 개념이요 기존의 시·공간을 뛰어 넘는 절대적 시간 혹은 디지털적 시간 개념으로, 유한한 생(生) 속에서 무한을 담고 살아가는 인간 존재에 대한 우주적 통찰과 직관력이 남다르다. 전통문화를 숭상하면서도 이성과 감성의 조화로운 균형으로 어느 한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불이(不二) 사상, 그리하여 자연과 하나가 되어 공평하고도 화해로운 인도주의(人道主義)로 생을 조율하면서 중용의 길을 걷고 있는 지사풍의 선비 시인이 아닌가 한다. /시인·백제예술대학 명예교수
정읍시 출신(1942~)으로 고등학교 때부터 '삼남일보'에 시를 발표했고 이후 원광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1991년 '한국시'로 등단. 정읍종합여자고등학교, 배영종합고등학교, 백산고등학교, 능주중학교 등 전남북에서 국어 교사로 근무하다 명예 퇴직하였다. 하나의 실꾸리가 다 풀리듯마지막 계절이 풀려 나간다.그만한 길이로 머물다가그만한 부피의 공간으로 그만한 시간의 흐름으로잘도 감기고 풀린다한 타래기가 풀려 감은 한 타래기를 감기 위함이요마냥 그럴진대내 인생에서 무엇을 더하고 무엇을 셈하며 살리오. - '세월의 끝에서' 일부어김없이 변전하는 계절과 그것의 반복성, 그것이 '가고', '오고', '감기고', '풀리면서' 생멸(生滅)을 거듭하고 있다는 불교의 무상성(無常性)을 바탕으로 생(生)을 관(觀)하고 있다. 모든 것은 고정불변의 실체가 없다. 그러기에 제법무아(諸法無我)의 정신과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의 생(生)은 '쉼 없는 물살'처럼 끊임없이 이어져 가고 있다고 한다. 그저 의미 없이 사라져 가는 게 아니라 마치 파도가 칠 때 앞의 물결이 뒤의 물결과 맞물려 연기(緣起)되어 있다는 인식 아래, 그는 생의 허무, 곧 무상성에서 깨어나 자유로운 존재자가 되기를 지향하고 있다. 이는 곧 관(觀)이다. 그것은 현재의 대상에 따라가지 않으면서 또한 과거사에 안주하여 매몰되지도 않고, 미래의 불투명함에 불안하지도 않아 늘 깨어 있는 불망실(不忘失)의 세계요, 지관(止觀)의 경지라 하겠다. 마음속에 '둥글다'는 형용사 하나 언제나 둥글게 나를 보호하고 있다나갈 수도 없고들어올 수도 없는 원 속에이미 갇혀 버린 사랑 하나만일 말이다.어느 날 예고 없이둥근 원 속에사랑이 빠져 나가버리면나는 무엇이 남아 있을까 - '만일 말이다' 전문우주의 질서와 이법을 하나의 원(圓)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둥근 원을 불교에서는 '일원상(一圓相)'이라고 하는데, 이 원(圓)은 우주만유의 본원 또는 '원융무애(圓融無碍)한 법(法)'을 상징한다. 원(圓)은 0도에서 시작해 90도와 정 반대의 위치인 180도를 거쳐 360도 원 위치로 다시 돌아온다. 이 지점은 처음의 0도와 똑같다. 그러나 처음의 0도의 지점과 180도를 지나 다시 돌아온 360의 지점의 정신세계는 확연히 다르다. 이는 마치 성철 스님이 인용해 더욱 유명해진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의 3단 수행 과정과도 같은 출출세간(出出世間)의 경지이다. 0도가 깨침 이전의 집착과 분별·미혹의 단계(世間)라면, 180도는 '산은 산이 아니요, 물도 물이 아닐 수 있다'는 부정의 단계(出世間)이고, 이 부정의 단계를 거쳐 마침내 안과 밖이 하나가 되고, 우주와 내가 하나가 되어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관하는 절대 긍정, 원융무애의 세계가 360도의 세계(出出世間)라 하겠다.2003년에는 동해안 일대를, 그리고 2006년에는 서해안을 떠돌면서 "인간은 자연과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알고부터 바람과 구름과 물과 흙과 버무려 사니 이처럼 행복 할 수 없다."며 승합차를 타고 전국을 일주하며 마치 김삿갓처럼 온 몸으로 시를 쓰는 시인, 그가 김용관 시인이다. /시인·백제예술대학 명예교수
임실 출생으로 전북대학교 국문과 졸업 후 전주 간호대학과 전주 영생고등학교에서 38년 간 교편생활을 하였다. 대학 재학 시절부터 김해강, 신석정 두 분을 고문으로 모시고 '청도'동인으로 활동했으나 절필하고 있다가 1990년 '한국시'로 등단하였다.나무들은하나씩 털갈이를 시작한다.통통하게 살찐 몸에서고소한 살결 냄새가 난다.햇볕이 배어들어빨갛게 익은 고추잠자리가몸통을 드러내놓고 떠다니는 하늘은가야금 퉁기는 소리가 난다.산정을 내려오는 스산한 바람은솔밭을 더듬어억새밭을 기웃거리다가더러는 나뭇가지에 걸려알알이 고염처럼 익어간다. - '나무들은'에서, 1999시인은 이미 하나의 나무가 되어 때때로 '털갈이'도 하고 간간이 '햇볕이 배어들어' 텅 비운 가슴에서 '가야금 퉁기는 소리가 나는' 나무가 되고 바람이 되어 산을 내려오곤 한다. 방금 품다 날아 간등걸 옆자리꿩알이 있다.한 알 만져보니어미의 사랑과 정성고스란히 배어나오는 체온정월 대보름 아침맨 먼저 취나물을 먹으면꿩알을 줏을 수 있다시던어머님의 목소리가 들린다.단란한 가족들이 보인다.어렸을 때 같으면억수로 재수가 좋은 날이겠지만생명체 하나가 이렇게 소중할 줄이야물 마르자마자어미 뒤를 따라 나설앙징스러운 그 모습 보인다. - '꿩알'에서, 2009산에서 자라고 산에서 배워 어느새 산인(山人)이 다 된 자애롭고 어진, 그리하여 풋풋한 생명의 경외감을 느끼게 하는 도가풍(道家風)의 선미(禪味)가 깃들어 있다. 그의 시의 소재와 특징은 이처럼 대부분 동양적 자연관과 정신주의를 지향하고 있다. 아가는 누운 채제 발을 가지고 논다.새살도 하고칭얼거리기도 하며장난감인 양여리디 여린 저 발을.시간이 얼마가 흐른 뒤엔수없이 산을 오르내리고강가도 가며부르터 공이가 생길 발.누군가를 찾아 어디선가부지런히 만나야 되고그러다 보면 헤어져쓸쓸히 돌아서야만 하는허전한 발걸음.아는지 모르는지아가는 제 발을 가지고열심히 놀고 있다. - '아가의 발' 전문, 2011부분과 현상을 그 자체로만 보지 않고 이를 통째로 꿰뚫어 사물의 본질을 한 눈에 포착하는 선적(禪的) 깨달음, 그것은 곧 새싹처럼 피어나 천진난만하게 노니는 아가의 옹알거림 속에서 앞으로 펼쳐질 생(生)의 고단함을 동시에 읽어내는 시인의 남다른 통찰력과 따뜻한 인간애가 아닌가 한다. '꽁꽁 얼어붙은/ 겨울의 끝자락에서도/ 햇살을 끌어 모으고/ 지열을 뽑아 올려/ 촘촘히 밝힌 꽃불' ('깜밥나물꽃')처럼 장태윤 시인은 오늘도 하나의 산이 되어 햇살을 끌어 모으고 지열을 뽑아 한 촉의 난꽃을 피운다. /시인·백제예술대학 명예교수
완주 소양면에서 출생하여 전주공고를 졸업하고 1956년 육군 보병학교에 입교하여 소위로 임관된 뒤 1960년 군 작전 중 부상으로 3년 간 치료를 받고 공병 대위로 퇴역하였다. 이어 전주대학교 국문과를 졸업(1968년)하고 '문예가족'과 전북문인협회 '표현'동인으로 활동하다가 1990년 '한국시'로 늦게 등단하였다.6.25 동란 직후 군에 입대하여 공병 장교였던 그는 한미연합 합동 작전 중 포탄 폭발로 얼굴에 큰 화상과 신체의 일부를 잃었으나, 좌절하지 않고 종군의 체험을 시화(詩化)하여 일그러진 육신과 영혼을 달래고 위로하는 첫 시집 '바람의 이랑을 넘어'를 발간(1992년)하였다. 이어 5권의 시집과 장편 소설 '소양천 아지랑이'를 펴내면서 문학을 통해 그의 신산한 삶을 극복·승화하는 인간 승리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중년 이후에는 불교에 귀의하여 전북불교문학 회장(1998-2000)을 역임하면서 한국예술총연합회장상과 한국전쟁문학상 그리고 전북PEN문학회에서 수여하는 작촌문학상을 받았다. 없어진 오른 손의 몫을 일하는왼손 보며잃어버린 다섯 손가락의 연민을 달래는왼 손 보며살아 움직이는 포연의 후유증을 다스리는왼 손 보며그마저 깨어져새로 맞춘 아픔을 신경통으로 앓는왼 손 보며 · - '왼 손'에서포탄에 얼굴이 일그러지고 오른 손마저 잃어버린 후의 처참한 상황, 27번의 대 수술 끝에 겨우 사람의 모양을 갖추었지만, 왼손만으로 생을 지탱해야만 하는 한 인간으로서의 고통이 절규에 가깝다. 불구가 된 몸으로 군에서 퇴역하여 한 가정을 이루며 살아가야만 하는, 그의 서러운 삶과 설움, 그럼에도 불구하고 - 그렇게라도 살아 있음을 감사해야 하며 남아 있는 육신과 영혼이나마 달래고 위무해야만 하는 실존에서부터 그의 시는 시작되고 있다. '팔이 없으면 다리로 굴러라 / 다리도 없으면 온몸으로 굴러라 /- / 돌뿌리 채어 멍들면 / 더 구르고...... '가 그것이다.('굴렁쇠'에서)우리 어머니 병신자식 볼 때 우시고 애면글면 기른 정 자아내며 우시고 당신의 팔, 당신의 얼굴 날 줄 수 없어 우시고 그래도 살았으니 혼백이 돌아온 것보다 좋다 우시고 ....죽어서 다시 만들어지고픈 죽을 수도 없는 자화상 - '자화상'에서그는 주문처럼 되뇌인다. '팔이 없으면 다리로 구르고 / 다리도 없으면 온몸으로라도 굴러'서라도 살아나야 한다고…, 몇 년에 걸친 대 수술, 그것은 마치 대장간에서 수없는 당금질과 풀무질로 하나의 쇠붙이가 잘리우고 두둘겨 지듯 - 그는 얼굴 반쪽과 팔이 한 쪽 날아간 채 퇴역을 한다. 그런 몸으로 돌아온 그를 붙들고 '당신의 팔, 당신의 얼굴 / 날 줄 수 없어 우신' '어머니의 눈물 속에 갇혀' 죽을래야 '죽을 수도 없는' 굴렁쇠처럼 맨땅에 온 몸을 디디고 생존을 유지해야만 하는 자신의 처지를 거듭 확인하고 있다. 그도 어느새 일흔의 바다를 넘었다. '불타던 노을'도 이젠 '한껏 아름답고' '땅거미(도) / 고요로워 포근하구나' 그러니 '뭘 더 바라리….' 흙은 흙대로 나무는 나무대로 '귀한 사람들 살 내음'과 '꽃잎 흔드는 향'이 하나가 되는 '잔칫날 마당'에 '햇살은 부시고' '새의 울음소리도 평화롭구나' (〈꽃바람 앞에서〉)이것이 시인 이목윤이 고희를 넘어 맞이한 정신적 해방 공간, 곧 니르바나의 세계가 아닌가 한다. /시인·백제예술대학 명예교수
남원에서 태어난 류희옥(1949~) 시인은1989년 『시문학』 지로 데뷔하였다. 이후 전북문인협회 사무국장, 『전주일보』 기자로 활동하면서 최근 《두리문학》 회장을 맡아 진허(眞虛), 곧 텅 비어 있으면서도 참으로 가득찬 세계에 대한 통찰의 자세를 보이고 있다. 천년을 깃 쳐도 늙지 않는 휘닉스.모양이기를 거부한 채 떠돌이 넋이 되어 어디를 가 보아도 한 걸음 앞서어느 조각공원에서 너는 나의 눈길이 닿기도 전에비너스의 보드라운 곡선을 더듬으며 있었고 ......밤낮없이 시간의 빈터에서 5할의 탄생과 5할의 소멸로 질서 정연한 움직임 속에 꽃잎 피는 화음(和音) -「바람」 에서'바람'을 '휘닉스' , 곧 '불사조'로 은유하면서 거기에서 우주의 본성을 감지하고 있다. 이는 '모양'도 없고 냄새도 없는 허(虛) 혹은 노장의 '도(道)'나 불교의 '공성(空性)과도 다르지 않는 우주 그 자체의 모습이다. 그러기에 바람은 '어디를 가 보아도/ 한 걸음 앞서' 있고, 또 나보다 뒤에도 그대로 남아 있을 무시무종(無始無終) 진공묘유(眞空妙有)의 빈터인 셈이다. 시인은 이처럼 현상 속에 내재된 '우주의 본상(本相)에 대한 깨달음, 곧 만해의 〈알 수 없어요〉에 나타난 '오동잎', '푸른 하늘', 혹은 '저녁놀' 등과 다름이 없는 절대자의 현현(顯現)으로서의 '바람', 이른바 '현상의 법신관'을 이 시의 배면에 함의하고 있다. 어느 가랑이 큰 여신(女神)이산 /산을 / 한 발에 걸터앉아지금 / 달거리 중이다.(양도 많기도 하지명년 봄에 얼마나큰 / 봄의 아들을 낳으려는지) -「가을 산」 전문'어느 가랑이 큰 여신(女神)이/ 산/ 산을/ 한 발에 걸터앉아' '달거리'를 하고 있다는 인식이다. '명년 봄에 얼마나/ 큰/ 봄의 아들을 낳으려는지' 저리 붉게 산이 물들어 있느냐고 되묻기도 한다. 시작이 끝이 되고, 끝이 다시 시작이 되는 자연의 순환론적 발전 논리에 대한 우주적 견성, 그는 이미 이처럼 '가을'은 소멸이 아니라 그 안에서 또 다른 생명(봄)이 시작되고 있다는 불교의 연기론(緣起論)을 배면에 깔고 있다. 얼마를 흔들리고 흔들린 /뒤라야 /네 쪽도 아니고 / 내 쪽도 아닌/중심의 심대를 잡아 //……// 한없이 작아졌다/ 한없이 커졌다/ 무위자연의 하늘/ 둥둥/ 한 점 달로 뜰까. -「추를 보며」 에서두 개의 상반된 방향 사이에서 그것을 하나로 합일시키고자 하는 힘을 중도(中道)라 하고 그 중심에 추(錘)가 있다. 시인은 이처럼 하나의 추에서 성주괴공(成住壞空)의 원리를 관(觀)하면서, 그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도적(中道的) 삶의 경지를 다지게 된다. 그러기에, 여기에서의 '중(中)'은 산술의 평균적 중(中)이 아니라 자연의 이치가 깃든 근원처로서 만물을 다 포용하는 중허(中虛)의 세계다. '달(月)' 또한 자연의 이치 혹은 보이는 것(色) 안에 숨어사는 무위자연의 도(道)나 수행자가 추구하는 궁극적 세계로서의 일원상(一圓相)이라 하겠다. 시인·백제예술대학교 명예 교수
전주 출생 정희수 시인은 전주 동암고등학교에서 36년간 봉직하다 교장으로 정년퇴직(2007)한 시인인데, 그의 시는 생명의 근원인 '물'과 이념의 푯대인 '하늘'에 관심을 갖고, 물처럼 유장한 흐름과 하늘처럼 드높은 이상과 천리(天理)를 좇아 자신을 가다듬고 세상을 감싸 안으려는 따듯한 생명시를 쓰고 있다. 한 촉의 새순마른 땅 헤치고 나와쑤욱 쑥 솟아난다섬돌 밑 갈라진 틈서리닳아진 보도블럭 사이남문시장 쓰레기통 옆에서도부드럽게 손 뻗고 나온다.....최루탄, 그 돌팔매 아래서도일제히 일어선다, 자유는 - '지금 자유는' 중에서이른 봄, '보도블록 사이' '최루탄, 그 돌팔매 아래서도' '쑤욱 쑥 솟아오른' '한 촉 새순'의 강인한 생명력에 옷깃을 여미면서, 그것을 시인은 생명을 가진 것들의 '자유의 의지'와 동일시한다. 자유는 무릇 생명을 가진 것들이 태어나면서 조물주로부터 부여 받은 천부의 권리라고 보고, 그런 자유가 보장된 삶의 터야말로 낙원이고 파라다이스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생면주의가 '밟아도/ 밟히면서도/ 다시 일어서는 /꽃이여, 풀꽃이여/ 너에게서 내 길을 배운다' ('풀꽃을 위하여')로 이어지고 있다. 내가 바라보는 하늘은 늘 푸른 하늘이게 하소서세상이 어둡고 막막하더라도 하늘만은 언제나 푸른 하늘이게 하소서사람들은 서로 속이고, 미워하고,질투하고, 싸우더라도내 가까이 있는 하늘은 푸르고 푸른 그런 하늘이게 하소서오늘과 내일은 서로 다르지만너와 나 또한 다르지만스스로의 빛깔대로, 바라보는 대로, 있는 그대로 하지만 마음이 통하는 그런 빛깔이게 하소서살아 있는 것들과 죽은 것들그 모든 것들도 함께 품어 안는그러한 넓은 가슴의 하늘이게 하소서빈 종이 위에라도 몇 줄 선을 그으면모든 생명들 살아서 일어나는그런 하늘이게 하소서 - '내가 바라보는 하늘은' 전문이상과 현실이 공존하는 혼돈 속에서도 그가 일찍이 그리던 '맑게 드높은 푸른 하늘'을 다시 찾게 된다. 이 시를 읽으면 '순천자(順天者)는 존(存)하고, 역천자(逆天者)는 망한다.'는 명심보감의 한 구절을 떠올리면서, 그의 순천(順天)하는 낙관주의(optimism)의 인생관을 엿보게 된다. 그것은 순리와 천명(天命)을 좇는 덕치(德治)주의와 동맥으로 여기에 정희수의 시의 '원초적 건강성', 곧 '늘 푸른 하늘' 철학이 자리하고 있다. '세상이 어둡고 막막하더라도/ -언제나 푸른 하늘', 곧 하늘의 섭리를 따르고자하는 경천(敬天) 사상에서 비롯된 양성 지향의 생명관은 천성(天性) 그대로가 '있는 그대로' '살아서 숨 쉬는 그런 하늘'에서 더욱 구체화 된다. 그러고 보면 그가 꿈꾸는 하늘(세상)은 '어둡고 막막한/ 세상'에서 → '언제나 푸르고 푸른/ 하늘', 그러기에 '인위(人爲)'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하늘, '살아 있는 것들과 죽은 것들/ 함께 품어 안은' →'넓은 가슴의' 하늘이요, '빈 종이 위에라도 몇 줄 선을 그어' → '모든 생명들 살아'나게 하는 포용과 생성(生成) 그리고 자비(慈悲)의 하늘이다. 이렇듯 그의 하늘은 '나무를 보며 열매를 생각하듯/ 어둠을 보고 빛을 깨달'아 '구름을 위하여/ 바람을 불러 모으'는('그리움은' 일부) 생에 대한 통찰로 미래지향적 건강성을 확보하고 있다. /시인·백제예술대학 명예교수
하루에도 열두 번 옷깃을 스치며얼굴 마주해도 눈 맞추지 않는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너의 외로움나의 쓸쓸함한 뼘 살 속 깊이 쑤셔 쟁여놓고한 보퉁이 판매 상품처럼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네 외로움을 파실래요.천근만근 제각각 제 짐 지고 가는 우리는 날마다 쓸쓸한쓸쓸한 동행.- '동행'에서'하루에도 열두 번 옷깃을 스치며/ 얼굴 마주해도'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너의 외로움/ 나의 쓸쓸함'이 되는 이 '외로움과의 동행'이 김용옥(1948-) 시의 주조음을 이루고 있다. '외로움과의 동행', '쓸쓸함과의 동행'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면서 그런 속에서도 생존을 지탱해 가야만 하는 단독자로서의 고독과 외로움이 절절하다. 그러나 그가 고통을 이처럼 담담하게 이야기하기까지의 과정에는 남몰래 흘린 수많은 눈물과 좌절의 자맥질 과정, 거기에서 값지게 건져 올린 깨침의 세계가 있었으리라. 그런 의미에서 김용옥의 시 '동행'은 그가 진정한 자유인이요, 자활인으로 가기 위한 통과의례적 제의(祭儀)의 성격을 지니게 된다.화장기 없는 여인의 얼굴이다.내 발에 맞는 신발을 신고 걷는우연적 필연이다. 지천으로 너불려 있는 돌멩이 밭에서나의 의미가 된돌멩이 하나다.감추지 못한맨 손이다.맨 발이다.맨마음이다.- '나의 시는' 전문'화장기 없는/ 여인의 얼굴' 그것은 '맨 손이다// 맨 발이다// 맨 마음이다'와 같은 있는 그대로의 실존적 자아에 대한 응시와 통찰을 통해 시인은 비로소 '지천으로 너불려 있는 / 돌멩이 밭에서/ 나의 의미가 된/ 돌멩이 하나'를 골라잡아 비로소 안정을 취하게 된다. 이는 모든 집착과 아집을 버리고 원래의 나로 돌아가 차분하게 나를 바라보고 응시하는 회광반조(廻光返照)의 세계, 곧 한없는 겸손과 하심(下心)의 세계다. 밥숟가락은비어 있어서 밥을 뜬다그리고,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비워진다너는,누구의 밥숟가락이냐- '밥숟가락' 전문그러나 색즉시공이요 공즉시색이듯이 땅 없이 어찌 하늘을 바라고 오늘 없이 어찌 내일을 기약할 수 있으리오. 오수(汚水) 속에서 아름다운 연꽃이 피어오르듯 김용옥에게 있어서의 '밥'은 그의 생존이요 꿈이요 또한 내일의 희망과도 다르지 않는 경건하고 도 엄숙한 현실이다. 그러기에 '사람을 살게 하기 위해서/ 비워진다'는 '비어 있기에 밥숟가락을 들어야 한다.'는 안티테제로 바뀌어져야 한다. 비어 있음의 연속은 생명의 단절을 의미하기에, 밥숟가락이 비어 있을 때마다 우리는 밥숟가락을 찾아 나서야만 한다. 그가 우리 앞에 던진 '너는/ 누구의 밥숟가락이냐'고 한 이 단호하고도 엄숙한 화두 앞에서 우리는 치열한 본능과 욕망의 처절함을 배면에 깔고 비정한 세상을 온몸으로 고발한 한 견인주의자(堅忍主義者)의 고독한 불빛에 귀 기울이게 된다. /시인백제예술대학 명예교수
전주 출생 조기호(1938~)시인의 시는 그가 아끼고 사랑하는 고향 산천과 그 속에서 속터지는 가슴앓이로 질박하게 살아가고 있는 민초들의 정한(情恨)을 투박한 전라도 방언에 담아내고 있는 육자배기와 같은 서사적 서정의 세계라 하겠다. 잎담배 써럭초도 떨어져삿자리 구석을 뒤져서마분지 꽁초를 다시 말아 피우며일 년 새경 일곱 섬짜리 머슴은하현달 담긴 소매 항아리에다총각을 내어놓고 부르르 떨며 참선을 합니다. - '새·14-참선'에서'써럭초','삿자리'. '소매 항아리' 등 향토적 토속어가 어김없이 등장하고 있다. 새경이 '일곱 섬짜리'면 열예닐곱 살쯤 되는 새끼 총각으로 한참 힘이 불끈 불끈 솟을 나이이다. 세상에 호기심도 많을 때, 아래채 사랑방(머슴방)에서 상머슴들을 따라 써럭초 담배도 말아 피워보면서 주체할 수 없는 새벽녘 양기를 '하현달 담긴 소매 항아리'에다 쏟아 부으며 '부르르 참선을 한다'고 한다. 시골 총각 머슴아이의 솟구치는 생명감이 마치 김홍도의 옛 풍속화를 본 듯 정겹기 그지없다. 겨우 아지랑이 배냇 눈 뜬 이른 봄날외상값 많이 달린 술청에 앉아손님상에 내보낼 풋마늘을우리 텃밭에서 한 소쿠리 뽑아다 주겠다며술집 아가씨를 얼러서몽땅 훔쳐다 놓고여릿여릿 톡소는 풋마늘 대궁을찹쌀고추장에 쿡 찍어술 한 잔 맛나게 깨무는 판에수금 나갔다 돌아온 주인 여자야! 이 썩을 년아그 화상 낯바닥을 좀 봐라저 웬수가 텃밭에 마늘 농사 지어먹고 살 위인 짝으로 보이냐?에라이 오사서 빼 죽일녀러 가시내야, 쯧쯧악담을 퍼붓더니만술상 모서리에 털푸덕 주저앉으며 아, 목말라, 어여 술 따라 이 도독놈의 화상아빈 술잔을 불쑥 내미는저 웃음 베어 문 낯꽃이라니 - '풋마늘' 전문 참, 능청스럽고도 질박한 전라도 반어법과 역설이 난무한 어느 시골 주막집의 풍경이다. 겉으로는 저리 쌀쌀 맞고 매몰차게 몰아세우지만 속으로는 저 화상을 그리 미원하지 않는 것만 같은 주모의 속내가 엿보인다. 이러한 서사적 풍경의 토속 세계와는 달리 그의 남다른 직관력을 엿보게 하는 간결한 울림의 서정시도 조기호 시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9·28 수복하던 밤어디선가 대포소리 쿵 쿵뒤 쫓아 오고아버지 마중 나간 신작로에파르르 떨고 섰는 어린 소년병 - '코스모스·1' 전문6·25 때 좌우익의 틈새에서 집을 나가셨던 아버지, 아니 집을 비우셔야만 했던 아버지. 화자는 어린 나이에도 그런 아버지를 찾아 밤중에 마중을 나간다. '마중나간 신작로에/ 파르르 떨고 섰는/ 어린 소년병'과. 가을 밤 '길가에 서 있는 코스모스'는 정서적 등가물이다. 그의 시에는 이처럼 6·25를 전후한 이 땅 민초들의 아린 정서와 한 그리고 개인사적 아픔이 동시에 배어 있다, 그것을 마치 무당이 씻김굿이라도 해주듯이 때로는 풍자와 해학으로 담아내고 있는가 하면, 때로는 남다른 직관력으로 사물의 본질로 직통하는 이미지즘적 감성의 서정 세계가 공존하면서, 우리가 한동안 망각의 강가에서 잊고 살았던 한국적 정서의 원형, 곧 집단 무의식을 일깨워 주고 있다. /시인·백제예술대학 명예교수
거친 바람 만나도 사람은 돌 수 없지만팔팔한 심장 밖으로 내걸며무엇인들 돌리려는 마음이바람개비가 된다이러 첩첩 저리 첩첩 이뤄낸 생애바람을 속속 맞아들여야스스로 바람의 생명이 된다각이 선 눈빛 거두고모난 형상을 버리면 둥근 원 하나 된다세차게 돌면더욱 희미해지는 무상구심점도 삭고 다만 한 개비 원형질 생물그리하여 존재와 본질이 뒤범벅이 된다 - '바람개비' 중에서이 시에서의 '바람'은 본질 혹은 순수와 맞선 세속적 시련과 역경의 이미지로 드러나 있다. 그러나 시인은 이러한 역경(逆境)의 바람과 맞서지 않고 그들과 '함께' '바람개비'가 되어 '도는' 화광동진(和光同塵)의 길을 택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그는 역경(逆境)을 순경(順境)으로, 분리와 대결을 소통과 통합으로 바꾸어 그것을 다시 '생명의 바람'으로 거듭나게 하는 화합과 상생의 세계를 지향하고 있다. '모든 바람을 속속 맞아들여', 함께 돌다보면 '구심점도 삭아' 비로소 하나의 '둥근 원'이 된다는 원융무애(圓融無碍)의 세계, 그는 이처럼 역경(逆境)의 바람을 소위 '바람개비의 철학'으로 '함께 돌아' 본질과 현상이 뒤범벅이 된 세상을 둥글게 살아가고 있다.산에 온갖 철새들 살았습니다 언젠가 먼 나라로 날아갈 새들이었습니다 새들은 날마다 나무 키워 산의 얼굴 만들기 위해 강에 나가 물기를 묻혀 왔습니다 깃털로 묻혀 온 물방울 안개 되고 산마루 감싸는 하얀 구름 되었습니다새가 푸른 하늘에 긋는 포물선 따라그 굽이로 산은 높아 갔습니다.게절이 자주 바뀌고 분주히 새들이 오간 뒤산은 하늘 높이 목을 내밀었습니다.그 때야 먼 강을 보게 되었습니다산과 강이 눈빛 맞추어 무지개도 세웠습니다사실은 산 빛이 무지개빛으로 된 것입니다 - '무지개' 중에서산, 새, 나무, 강, 그리고 물이 하나가 되어 숲을 만들고, 그 숲에 안개와 새가 깃들고, 또 산마루에 구름이 걸쳐 있는 무릉도원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 서로가 서로를 키우고 감싸 천지만물이 조응하는 상생과 화합의 세계, 시인은 이처럼 세상이 하나의 아름다운 일원상(一圓相)이 될 수 있음을 산과 강 위에 무지개를 띄워 자연친화적 낙원을 그리고 있다. 배롱나무는조상의 원죄(原罪)까지바들바들 떨었다 - '어둠을 감아 내리는 우레' 전문남다른 직관력으로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있다. 배롱나무는 '간지럼 나무'라고도 하여 향교나 사당 혹은 조상의 묘소 앞에 심어져 그곳을 수호신처럼 지키며 발가벗은 몸으로 서있는 나무다. 그 모습이 마치 '원죄'를 안고 서있는 모습으로 보였나 보다. 사물에 대한 인식의 깊이도 있으려니와 그 표현 또한 감각적이다. 이처럼 인식의 깊이와 그것을 다시 회화적 감각으로 이미지화하는 절창은 '꿩도 붉은 울음 띄워/산이 뒤뚱뒤뚱 내려온다.', '산새는 물로 들고/물고기는 허공에 뜨고/독경(讀經)이 익어서/밤낮없이 풍경소리'와 같이 정령적 신비와 생동감으로 그의 시는 지정합일의 새로운 서정미학을 낳고 있다. /시인·백제예술대학 명예교수
순창군 책여산 매봉재에서 출생한 최영(1945~2011) 시인은 순창농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3년부터 군산 시청 근무하여 2005년 정년퇴임하였다. 1984년 '시문학'에서 '개구리', '희화', '참새' 등으로 등단하여 군산 문인협회장, 군산 문학상 운영위원장, 전북문학상, 군산 시민의장 문화장을 수상하였다. 그의 시세계는 현실 비판의식을 내포한 선명한 사물 이미지와 체험을 바탕으로 한 풍자와 풍속을 그리되, 특히 도시화 되어 가는 농촌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정감을 매운 눈으로 묘파하여 독자들에게 큰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경장동 주택가는 개구리들의 텃밭을 나누어 가졌다.무논에서만 살아야 할 그들이도자에 깔려 죽고농토마저 모두 빼앗겼다. 살아 있는 목숨들은 흩어져건폐율의 그늘에 숨어정원수 이파리 이슬로 연명한다. - '개구리'전문, 1984그는 땅이 없어지자하늘로 산다.하늘이 빌딩으로안테나로 갈라지자나머지로 산다.잃어버린 숲이그리워서남의 집 정원수에전세를 들어둥지를 틀고눈치로 연명한다. - '참새' 일부, 1984'개구리'와 '참새'는 단순한 생물로서의 개구리나 참새가 아니라, 기계문명, 도시 개발에 밀리고 깔려 죽어가고 위축되는 생명의 존엄과 삶의 터전을 잃어 날로 핍박해 가는 도시 근교의 농촌 현실과 소시민들에 대한 고발이요 상징이다. 자본논리에 의한 도시 개발과 그로인한 수난사가 그대로 그려지고 있다. '개구리의 삶의 터전이 지상(무논)이라면, 새들의 삶의 터전은 하늘이다. 그런데 그 하늘마저도 빌딩과 안테나로 갈라져 자유롭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점점 더 제한되고 있다. 그래서, 참새는 간신히 남의 집 정원수에 전세를 들어 둥지를 틀고 눈치로 연명한다. -도시 소시민들의 생활을 그대로 연상케 한다.'(문덕수, '개구리' 서문에서) 이처럼 자연은 날로 문명의 가차 없는 침범을 받고 있다는 고발이다. 산 정상을 정복하고 내려 왔습니다고단함을 훌훌 털기 위하여목욕을 하고 산을 다시 쳐다봅니다어느새 어둠이 내렸습니다정복이 아니라 오르고 왔음을 알았습니다정상은 한 여정의 반환점이었습니다긴 산행은 찰라였습니다산행은 허무만 남는다는 것을내려와서 압니다정상을 봅니다달이 웃고 있었습니다. - '정상' 전문, 2009년삶의 '정상'이라는 것도 기실은 한 여정의 반환점이었음을, 그리고 그 긴 산행 또한 찰나였고, 그것 또한 '허무'의 한 과정이었음을 내려와서야 알게 됩니다. 정상에는 여전히 '달(月)이 웃고 있다'는 퍽이나 절망적이고 시니칼한 허무의식을 바탕에 깔고 있어 이후 그의 예기치 않은 죽음과도 무관치 않다고 본다. /시인·백제예술대학 명예교수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퍼가도 퍼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며해 저물면 저무는 강변에쌀밥같은 토끼풀들숯불같은 자운영꽃 머리에 이어주며지도에도 없는 동네 강변식물도감에도 없는 풀에어둠을 끌어다 죽이며그을린 이마 훤하게 꽃등도 달아준다. 흐르다 흐르다 목 메이면영산강으로 가는 물줄기를 불러 뼈 으스러지게 그리워 얼싸안고지리산 뭉툭한 허리를 감고 돌아가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섬진강 물이 어디 몇 놈이 달려들어퍼낸다고 마를 강물이더냐고,지리산이 어둔 강물에 얼굴을 씻고일어서서 껄껄 웃으며무등산을 보며 그렇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노을 띤 무등산이 그렇다고 훤한 이마 끄덕이는 고갯짓을 바라보며저무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어디 몇몇 애비 없는 후레자식들이퍼간다고 마를 강물인가를 - 김용택, '섬진강1', 전문'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대표작이다. 그는 언젠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내 문학은 그 강가 거기에서 태어났고, 거기서 자랐고, 거기 그 강에 있을 것이다. 섬진강은 나의 전부이다."고 말한 바 있다. 이후 '섬진강 시인'으로 불리운 김용택 시인은 1982년 '창작과 비평'에서 '섬진강' 외 8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고향과 고향의 자연을 꿋꿋하게 지키며 살아온 전라도의 대표적인 시인이다. 이 시에서도 지리산과 무등산을 배경으로 유유히 흐르는 섬진강과 그 주변인들의 끈질긴 생명력과 저항성을 장중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 고장 민중의 정서를 반복적 내재율과 고밀도의 직유 그리고 역동적 의활법(擬活法)으로 부드러우면서도 도도한 강물의 흐름과 같은 리듬으로 읊고 있다. 산 사이 작은 들과 작은 강과 마을이겨울 달빛 속에 그만그만하게가만히 있는 곳사람들이 그렇게 거기 오래오래논과 밭과 함께가난하게 삽니다. - 김용택, '섬진강15' 일부살아오면서 나는 내 이웃들의 농사에 내 손이 희어서 부끄러웠고뙤약볕 아래 그을린 농사군들의억울한 일생이보리꺼시락처럼 목에 걸려때로 못밥이 넘어가지 않아 못 드는 술잔을 들곤 했다.-김용택, '길에서' 일부투박하고 정감어린 전라도 방언으로 고향 마을과 그 주변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잔잔하게 그려주고 있다. 이재기 시인도 "툭 터놓고 말하는 그의 시는 맑고 정직하다. 그럼으로써 그는 '아직도 두 눈 시퍼렇게 부릅뜨고/ 땅을 파는/ 농군'('마당은 비뚤어졌어도 장구는 바로 치자')의 편에 섰다. 살 아프고 맘 아픈 그들의 편에 서서 환장할 것 같은, 기가 차고 어안이 벙벙한 농촌의 현실을 다 발언했다. 그의 시에서는 포슬포슬한 흙냄새가 난다. 그의 시를 통해 은어 떼가 헤엄치는 푸른 강과 넓디넓은 평야를 본다. 가슴이 넓어지고 따뜻하다."고 평한 바 있다.가난하지만, 가난한 논과 밭을 떠나지 못하고 자연에 순종하고 세상에 순종하며 고향을 지키고 있는 순박한 사람들. 그들은 그에게 언제나 시적 영감을 떠올리게 하는 영혼의 샘이요 시적 뮤즈(Muse)였다. 그러기에 그의 시들은 온 몸을 다해 고향에 바치는 그의 헌사(獻辭)요 증언이다. /시인백제예술대학 명예교수
태초에 인간은 신(神)을 거역했다. 그러나 현대의 인간은 인간 자신을 저버렸다. 우리는 지금 신도 인간도 없는 광야에 서서, 절망과 고독과 소리 없는 통곡으로 끝없는 어둠을 방황하고 있을 뿐이다. 앞으로 21세기의 문학은 인간을 찾아 떠나야 한다. 내 시의 주제는 그 길 위에서 출발하고, 그 길 위에서 잠 들 것이다. 여기에 발표되는 '인간의 몰락' 1,2,3과 '춘몽', '허무', '피의 실종' 등은 우리들의 비극을 상징화한 것이다. -이세일의 시작 메모에서, '전주문학' 11집, 2000년 이세일 시인(전주·1941~2001)의 인생관이 잘 드러나 있다. '우리는 지금 신(神)도 인간도 없는 광야에 서' 있다는 인식. 그래서 그는 '절망'과 '고독'과 '소리 없는 통곡'으로 어둠 속을 방황하고 있다. 그는 이렇게 안주할 집을 갖지 못하고 끝내 오랜 세월을 홀로 떠돌며 '인간다운 인간'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하고 있다. 바람과 구름이 춤추는 거리 고뇌와 아픔이 없는 환자들- '인간의 몰락.2'에서, 2000년 당신들은 언제부턴가 절망에다 아름다운 색칠을 하고 圓을 돌면서 끝을 찾고 있었지 - '인간의 몰락.3'에서, 2000년 금시 사라지고 말, 찰나적이고 일시적인 존재들( 바람, 구름) 앞에서, 그것들이 우리네 삶의 전부인양 거기에 우리네 한 생이 매달려 '원(圓)을 맴돌고 있다'는 인식이다. 마치 끊임없이 바윗돌을 밀어 올리는 시지포스의 형벌처럼, 그것은 부조리한 인간 존재에 대한 비극적 인식? 아니 절망의 모습이라고나 할까? 그대들은 새처럼 나무 위에서 꿈을 꾸고 길이 없어도 초연히 떠나본 적 있는가.우리는 지금 아름다운 묘지 뒤에서 소풍을 즐기며 가는 것이다. -「春夢」에서,2000년 10월 천상병의 '귀천'처럼, 무욕적인 삶의 모습이다. 그는 이승, 곧 우리네 한 생(生)이 '아름다운 묘지 뒤에서 꿈을 꾸고 있는 것'이라고 명명하면서, 또 그러한 자신의 모습을 나뭇가지 위에서 꿈을 꾸는 새에 비유하고 있다. 새는 얼마나 자유스런가? 오란 데는 없어도 갈 데가 많은 것이 새의 삶이다. 하지만 그런 자유 속에서 그는 길을 잃는다. '새들은 길이 없어도 날아가지만/ 사람은 길이 있어도 길을 잃는다.('인간의 몰락1')' 가 그것이다.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외로움이요, 길을 찾아 헤매던 아웃사이더의 고독에 다름 아니었다. 그는 심장 마비 때문에 세상을 뜬 게 아니라 어찌 보면 외로움의 갈증이 그를 이승에서 밀어내고 말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바다 한 복판에서/ 갈증으로 죽는 날이 올 것이다.'('슬픈 예언') 번히 보고도 먹을 수 없는 바닷물처럼 사람과 사람들 속에서도 사람을 만나지 못해 세상과의 단절에서 오는 절대 고독의 밀실에 갇혀 그는 우리 몰래 울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가 한 때 몸담고 있던 이승을 '서러운 땅' 이라 규정하고 그 땅을 '오래 걸었네. / 저승이 보일만큼 걸어 왔네.'하지만 그의 삶은 끝내 '흙이 없어진 세상 허공만 남아/ 머나 먼 길 /허공을 걸어 왔네('떠도는 자의 엽서')'처럼 그의 삶이 '빈 허공'에서 뿌리 뽑힌 유랑자의 삶이었음을 스스로 고백하고 있다. 물질주의라고 하는 문명의 혼류 속에서 도구적 존재로 파편화된 인간의 비극적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인간 상실과 진실의 부재에 관심을 갖고, 그것을 회복하려는 고독한 함성' 그리하여 그는 '아무도 들은 적 없었던 / 풀벌레 노래를 사랑하다가' 아웃사이더로 우리 곁을 맴돌다 떠난 풀벌레 시인이었다. 2003년 10월 지인들에 의해 유고 시집 '훗날 누가 찾거든'이 발간되었다. 시인·백제예술대학 명예교수
우리가 눈발이라면허공에서 쭈빗쭈빗 흩날리는진눈깨비는 되지 말자.세상이 바람 불고 춥고 어둡다 해도사람이 사는 마을가장 낮은 곳으로따뜻한 함박눈이 되어 내리자.우리가 눈발이라면잠 못 든 이의 창문가에서는편지가 되고그이의 깊고 붉은 상처 위에 돋는새살이 되자.- '우리가 눈발이라면' 전문, 1991 안도현 시인은 어느 고등학교 도서반 학생들과의 대담에서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시는 단정한 모습을 보여야 하고, 세상이 차가울수록 시는 따뜻한 편에 서야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 그러니 시인은 '바람 불고 춥고 어둡고 낮은 곳'으로 내려와 '힘들고 지친 사람들을 더욱 어렵게 하는 '진눈깨비'가 되지 말고, 어려운 사람에게 희망과 행복을 주는 '함박눈'이 되었으면 합니다"라고 술회한 바 있다. 이러한 현실 참여적 생각을 바탕으로 그는 더 이상 세상 밖에서 '바라보는 문학', '관망하는 문학'을 청산하고, 세상 가까이로 내려가 그들과 함께 화광동진(和光同塵)하는 입전수수(立廛垂手)의 자세를 보인다.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연 탄 한 장')이라는 휴머니즘의 바탕 위에서 외진 벌판의 들풀처럼 나직하게 그러나 강한 야성으로 타인에 대한 배려, 약하고 하찮은 것들에 대한 남다른 연민을 보이고 있다. 그리하여 연탄재 함부로 차지마라. 너는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너에게 묻는다' 전문, 1994구원의 길은 그리 멀고 거룩한 구두선(口頭禪)이 아니라 , 이렇게 가까이 아니 우리의 일상적 삶 속에서 기꺼이 자신을 바치는 뜨거운 행동이요 실천임을 깨우쳐 주고 있다. 이기적 (利己的) 개인주의와 방관으로 일관된 우리의 미온(微溫)한 지성에 일침을 가한 그의 경구적 아포리즘은 아래의 시에서도 여전히 이어져 있다.어린 눈발들이, 다른 데도 아니고 강물 속으로 뛰어내리는 것이 그리하여 형체도 없이 녹아 사라지는 것이 강은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래서 눈발이 물 위에 닿기 전에 몸을 바꿔 흐르려고 이리저리 자꾸 뒤척였는데 그때마다 세찬 강물소리가 났던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계속 철없이 철없이 눈은 내려 강은 어젯밤부터 눈을 제 몸으로 받으려고 강의 가장자리부터 살얼음을 깔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겨울강가에서', 전문, 1997눈발들이 강물에 닿아 사그러지기 전에 그것들을 구해내려고 제 몸을 던져 가장자리부터 얼어가기 시작했다는 강의 마음, 곧 살신성인의 자세. 이게 자비요, 측은지심이요 뜨거운 인간애가 아니겠는가? "살다보면 삶이 부조리하고 비루해 환멸을 느낄 때도 있다. 그럴 때도 pen을 잡는가? 버릇이 되면 그렇게 된다. 시가 기쁨의 입구는 물론 환멸의 출구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누군가를 죽이고 싶을 만큼 미울 때도 있다. 그럴 때 시를 쓰면 마음이 가라앉는다. 다시 한 번 생각이 정리되면 내게 시는 일종의 마음 수련 같은 것이기도 하다." 고 말했던, 그의 시작노트를 요즘에 들어 다시 한 번 살펴본다./시인백제예술대학 명예교수
군산 출생으로 청주대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군산대학 도서관에 근무하면서, 1980년 월간 '시문학'에 '삐걱거리는 바다'외 2편이 천료되어 등단했다.시집 '삐걱거리는 바다'(1987년)와 '흔들리는 새'(1996년)가 있으며, 그의 작품은 생동감 있는 언어로 문명에 내몰린 인간성 상실과 자연 파괴의 아픔을 모더니즘 기법에 담아내는 휴머니즘 지향의 시라 하겠다. 현재는 군산문화원장과 전북문화원 연합회장을 겸하면서 지역 문화 발전에 남다른 애정을 보이고 있다. 바람은 밤새 새 순으로 돋아나의 동정(童貞)을 이식(移植)하고무거운 신발만 남아귀가하는골목길에서체온을 빗질한다.- '바람의 고향'에서초기 작품은 이처럼 참신하고 산뜻한 이미지즘을 지향하고 있었다. '바람'이 밤새 '새순'으로 돋아난다는 발상이며, 무거운 신발로 귀가하는 골목길', '체온을 빗질' 하는 등, 그의 시는 '날카로운 감촉으로 내면적 심연을 표백하고 있다'(이기반)바다는 어디쯤 내리고 있을까죄처럼 흩날리는 어둠과 어둠을 거두어 가는 넓은 모래밭에서사람과 사람 사이를 떠올라무당처럼 목이 쉬어 버린바람을 안고 사는 금이 간 바다헝클어진 멀미를 앓고밤을 흔들고 있다. - '바다의 시간' 전문, 1987년시의 배경이 어둠이 '죄처럼 흩날리는 - 넓은 모래밭'과 '무당처럼 목이 쉬어버린 - 금이 간 바다'로 그의 '밤'은 이처럼 '흩날리고','목이 쉬고', '헝클어지고' '금이 간' 혼란과 무질서 속에서 자아와 세계가 일치하지 못한 불편한 심기(心氣) 속에 놓여 있다. 삐걱거리는 바다가의족(義足)을 하고 있다.남양군도로 징용 갔다돌아온 전쟁의 傷痕을고향 선산에 묻어 둔 것이발 하나 없는 바다로태어나서 버리고 온 제 발을 의족으로 착각하고구멍난 창으로쏟아져 들어오는때묻은 역사를한 발로 버티고막아 서서재갈 물린 사람들을 비웃고 있다.금이 간 세상을 비웃고 있다.- '삐걱거리는 바다' 전문, 1987년'삐걱거리는 바다'와, '금이 간 세상'이라는 수미쌍관적 병치는, 한국 현대사 탄생 과정의 기형(畸形)적 도습(蹈襲)으로 인한 우리 사회의 파행적 불구성과 독재정권으로 얼룩지고 오염된 지난 군사정권 시절의 온당치 못한 시대상에 대한 고발이다. 비웃음과 비아냥은 폭력에 대응할 수 있는 저항수단의 하나이다. 시인이 견딜 수 없을 만큼의 현실적 폭력과 만나게 될 때 그가 선택할 수 있는 대응 방법 중의 하나가 비아냥이다.흔들리는 것은흔들리는 대로딩구는 것은딩구는 대로이끼처럼 시달리는 세상에서파도를 깁고 있다. - '부침'에서, 2000년흔들리고, '시달리는' 세상에서도 그것들과 부화뇌동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그것을 애써 '깁고' 있는 지사다운 시인의 풍모가 엿보인다. /시인백제예술대학 명예교수
남원시 운봉면 덕산리에서 출생, 경기대학 국문과를 졸업하고 중학교 국어과 교사를 거쳐 교장으로 정년퇴직함. 1980년 '시문학'으로 등단 후 한국문인협회 회원, 1991년 5월 '두리 문학' 창설 회원(회장, 최진성, 부회장 노진선)으로 참여하여 이후 전북문학상, 풍남문학상, 백양촌 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시집 '물레방아'(해동출판사, 1977년) 외 23권에 달하는 시집으로, 그의 초기시는 삶의 고뇌와 고향에 대한 애착 그리고 토속적이고 전통적인 세계를 노래하면서 늘상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곤 하였다. 울타리도 없는 마을너는 휘동그라니 눈을 뜨고때론 지긋이 감는김씨네 며느리.검정 고무신 허리춤에 끼고가난을 곱게 다져온 맨발바닥은 차라리 하늘보다 높다.물레 잣듯이휘감기는 부뚜막 종그랭이잠시 물 묻은 손을 털고 빈지문으로 스미는초승달빛으로막내딸의 번듯한 이마를 잰다.누이야 - '누이야' 전문, 1980등단작이기도 한 이 작품 속에서도 향토적이고 전통적인 가치관을 지향하고 있다. '울타리도 없는 마을'로 시집을 간, 그리하여 '검정고무신 허리춤에 끼고/ 가난을 곱게 다져온/ 맨발바닥'의 누이를 못 잊어, '물 묻은 손을 털고/ 빈지문턱으로 스미는/ 초승달빛'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안타까운 마음과, 이들 곁에서 지켜보는 오라버니의 따뜻한 시선이 지난 날 정겹던 우리네 가족의 모습이다. 달빛 하얀 창가에 새어나는낭낭한 선비 글 읽는 소리 그리우면지등(紙燈)을 켜든 글방을 찾을텐데지폐로 셈하는 글줄을 이 땅에 묻을텐데- '하얀 지등'에서, 1989'하얀 지등'은 지폐로 모든 것을 셈하는 오늘의 세태, 곧 물질 위주의 배금사상으로 위축된 우리 민족 고유의 정신적 가치들이 사라져 가고 있음에 대한 아쉬움이다. '하얀 지등'은 이러한 민족 고유의 '선비 정신'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 아닌가 한다. 선비(정신)가 사라지고 지폐(물질)로 모든 것을 셈하는 세태에 대한 고발이 '하얀 지등'의 주요 정신이다. 세상만사가 모두 물거품인거야내가 살아온 게 그렇고 살고 있는 게 그렇지배우고 가르치고 아무 것도 단단한 게 없구려살고 있는 것도 모든 자체가 물거품인 거야잔잔히 흐르는 강물에 금방 생겼다가 꺼져 버리는 거졸졸졸 흐르는 물줄기 따라 금방 일어났다가 사그라지는 거모두 다 꺼져버리고 자취도 안 남는 거- '세상만사가 물거품인거야'에서, 2009그러나 최근에 와선, 급격하게 약화된 시력으로 거동이 불편한데다가 글마저 마음대로 읽고 쓸 수가 없게 되자, 이처럼 생의 쓸쓸함과 허무감을 토로하면서, 젊은 날의 그 의욕과 순수에의 열정이 사라지고 있어 우리의 마음을 더욱 안타깝게 한다. /시인백제예술대학 명예교수
시는 우주를 지향한다. 그리고 우주는 언어로써 다 설명할 수 없는 신비요 비의(秘義)의 세계다. 이러한 신비와 진리를 포착하기 위해 시인들은 특수한 언어를 선택하게 되는데, 그들이 사용하는 시어(詩語)는 일상적인 의미의 언어(sign)가 아니라 존재(be) 그 자체를 지향하고 있다. 때로는 역설이나 반어(反語) 그리고 사물(thing)을 등장시켜 일상 언어로서는 다 드러낼 수 없는 언외언(言外言)의 불립문자(不立文字)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고도로 압축된 비유와 상징으로 실재(實在)세계를 넌지시 암시하기도 한다.숲은 세상으로 통한다.때로는 어둡고, 때로는 밝은삶처럼 팍팍하다.숲길 또한 이와 같아막힐 때와 뚫릴 때가 있다.오르막과 내리막길입구와 출구가 불분명한숲길을 더듬어 간다.대낮인데도 어둡다.그럴 때마다 잠이 든다.때로는 고요 속에때로는 폭풍 속에우우 살아나기도 한다.있다고 있는 것이 아닌없다고 없는 것이 아닌숲은 우주로 통한다. -주봉구, '숲길을 가다' 전문시인은 하고 싶은 말(言)을 직접하지 않고, 숲을 하나 데리고 와서 말을 하게 한다. 말로써 다 말할 수 없으니 형상으로나마 그 뜻을 전달할 수밖에 없는 소위 사의전신(寫意傳信), 입상진의(立象盡意)의 방식이다. 마치 석가모니가 영취산에서 대중을 모아 설법을 하던 중 '깨달음의 실체'를 보여주기 위해 꺾어든 연꽃처럼, 주봉구 시인도 '숲'이라는 형상으로써 그가 터득한 삶의 진의(眞意)를 전하고자 한다. 이는 무언(無言)의 숲에서 삶의 지혜나 우주의 섭리를 넌지시 배우고 깨치게 되는 일종의 무정설법(無情說法)인 셈이다.어느 날 중국 송나라 때 소동파 시인이 흘러가는 계곡물 소리에서 '무상(無常)'과 '무아(無我)'의 이치를 깨쳤듯이 주봉구 시인도 '숲길'에서 인생의 길, 곧 '도(道)'의 길을 깨치고자 한다. '입구(入口)와 출구(出口)가 불분명'한 '숲의 길', 그러기에 그것은 '때때로 막히고 때로는 뚫리는' 고달픈 인생의 길이기도 하다. 그 길을 화자는 '더듬어 간다.'고 하였다. '어디로 가야 옳으냐/ 길은 네 갈래로/ 찢어지고/ 대학 병원이 눈앞에 보이는/ 생(生)은 사(死)/ 사(死)는 생(生)의 길/- / 어디로 가야 옳으냐?'('네거리에서', 1988)에서와 같이 그의 삶은 '대낮인데도 어두울'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그는 '잠이 든다'. '잠'은 '팍팍하고', '어두워' 지친 삶에 안식과 휴식을 준다. 침묵과 명상의 시간이 그것이다. 그런가 하면 '폭풍 속에서/도-우우 살아난다'고 한다. 그것은 미몽(迷夢)에 시달린 화자가 어느 날 순간적으로 확철대오 (廓徹大悟 )하는 순간이요, 깨침에 의해 새로운 자아로 '거듭나는' 견성(見性)의 시간이기도 하다. 이러한 깨침의 세계는 '있다고 있는 것이 아니고 / 없다고 없는 것이 아닌' 비유비무(非有非無)의 경지요, '있고', '없음'을 같이 보고, '상(相)'과 '공(空)', '유(有)' 와 '무(無)'를 통시(通視)하여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도(中道)의 길이다. 그리하여 이제 그는 '어둡고', '막힌' 세계에서 벗어나 보다 '밝고', '뚫리고' '가벼운' 삶으로 거듭난다. 마침내 하나의 우주와 소통하는 대 광명, 대 자유의 세계가 도래한 셈이다. 아니, 재가불자(在家佛子)로서 오랫동안 수행·정진한 그가 '있다고 있는 것이 아닌 / 없다고 없는 것이 아닌' 중도(中道)에서 만난 값진 구도(求道)의 숲길이 아니었을까 한다. /시인·백제예술대학 명예교수
전주 난장에서 싸디 싼 회청 빛 조선 낫 한 자루를 사왔다 대장장이가내 빼빼마른 손아귀에쥐어주던 조선낫은 슴베가 유난히도 길고 묵직했다 나는 돌아와 그 조선낫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꽁꽁 숨겨둔 채 서슬 푸른 달밤 송충이 일렁이는 생솔 가지도 후려쳐 보고 밑둥 썩은 억새밭의 피 밭는 몸서리도 짓이겨 보고 내 가슴 속 때 없이 길어나는 굴절의 양심도 겁줘보면서행여 녹슬까 한밤중 깊은 잠의 허리통도 끝끝내 용서하지 않았다. - '조선 낫'전문. 1991그는 '조선 낫'을 가슴에 품고 '송충이 일렁이는 생솔가지 후려치'듯 '굴절의 양심' 솟구칠 때마다 그것을 후려 처내고 있다. 그만큼 그의 시는 농경사회적 질서와 문화적 코드를 담보하고 있다. 나는 아직도 숨을 멈추지 않았네 하늘보다 큰 뱃구레도 하나 있네 살갗 헐어지지 않도록 사랑의 말씀 매어주는 바람 한 점만 있으면 그만이라네 그리고 날마다 누군가가 나를 피 비치게 장단 맞춰 두들겨서 이 세상 힘없어 주저앉은 서러운 것들의 오금만 펴 세울 수 있다면 난들 벗겨지고 찢어지는 생살을 뜬 세월에 맡겨둔들 무슨 한 있으리 나는 아직도 멈추지 않고 있다네 질기디 질긴 이 땅의 한 숨을. - '목어(木魚)' 전문두들겨 맞더라도 '이 세상 힘없어 주저앉은 서러운 것들의/ 오금만 펴 세울 수 있다면' '피 비치게 장단 맞춰 두들겨' 맞더라도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목탁 소리를 내고 싶어 한다. 사회 목탁의 길을 가고자하는 집요한 그의 순결정신, 그것은 일찍이 녹두장군이 부르짖다 꺾이고 말았던 보국제민사인여천의 정신과도 다르지 않으리라. 그리하여, '질기디 질긴 이 땅의 한숨'만 거둘 수 있다면 '난들 벗겨지고 찢어지는 생살'의 고통을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그의 결연함이 앞의 '조선 낫'의 정신과도 동맥을 이루고 있다. 별을 별이라 스스럼없이 부르고 강을 강이라 부끄럼 없이 부르던 아득한 옛날 별은 강물 속으로 내려와 시리게 더욱 빛났고 강은 별 밭 속으로 올라가 푸르게 더 넘실댔다 - '사람들의 나라'에서'어둠이 장막처럼 밀려오고/ 어둠이 장막처럼 밀려가도' 끝내 사람의 길을 말없이 가고 있는 사람, 그러기에 정작 외로운 시대의 파수꾼, 오늘도 세상과 더불어 화광동진하면서도 집으로 돌아와 조용히 혼자 '도마 위에/ 식칼을 베고 잠을 자는'('문어') 고독한 시인의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그의 시에는 이처럼 천도(天道)를 따라 거스르지 않는 순천(順天)사상과 인간에 대한 예의가 정중하다. 그것은 그가 태어나고 자란 농촌의 들녘, 곧 완주군 조촌면 만성리의 하늘과 땅과 바람과 별에서부터 비롯되어 있다고 보아진다. 거기에는 인종(忍從)과 배려의 화신이었던 어머니와, 타향처럼 이상세계만을 떠돌던 아버지, 그리고 다정하고도 순박했던 이웃들의 가난과 한숨이 똬리를 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의 시의 원형질이며 진정성이다./김동수 시인백제예술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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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영광선교합창단, 스승‧제자가 함께하는 정기음악회 '호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