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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는 갑오년 새해를 맞아 푸른 말처럼 비상하려는 청년(靑年)을 화두로 삼았다. 정부가 국정기조로 내건 문화 융성의 바탕이야 말로 인적자원이기 때문이다. 지난 1월부터 매주 1명 또는 팀으로 9개월간 미술 음악 연극 영화 무용 등 장르를 불문하고 도내 문화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는 32명(팀)을 소개했다. 젊음이라는 이름으로 변화와 도전, 재미를 추구하며 열정을 태우는 20~30대의 삶과 작업을 조망했다. 인터뷰 대상자는 도내 문화시설 종사자와 동종의 문화예술가, 교수, 언론인 등에게서 복수 추천을 받은 사람으로 선정했다. 기존을 틀을 깨며 자신의 분야에서 담금질하는 청년 문화예술가에게서 도내 문화계의 미래를 엿보았다. △나이가 아닌 작품이 젊어야청년 문화예술가가 지니는 공통점은 새로움이다. 이들은 재미과 열정, 창작의 등가 법칙으로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구축하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정체된 도내 문화계에서 기존과는 다른 자리매김을 위한 자구책이기도 했다. 지난해 제7회 21C 한국음악프로젝트에서 지역 팀 최초로 대상인 문화체육부장관상을 받은 국악실내악단인 벼리국악단은 감각적으로 우리의 소리를 풀어내며 자신들의 위치를 만들고 있다. 지역의 대표 퓨전 국악연주단인 소리애도 국악에 클래식과 재즈를 더해 이색적인 국악을 들려주고 있다. 전통 판소리가 지배적인 도내에서 발라드 판소리라는 이름으로 소리와 가요를 접목한 1인극 별소릴 다하네를 15차례 공연한 소리꾼 김대일 씨(33)도 대중과의 접점을 찾기 위한 시도가 돋보였다. 한국무용이나 현대무용에서 벗어나 댄스와 뮤지컬을 접목한 뒤 상상력을 더한 판타지 댄스컬을 지역에서 선보인 안무가 오해룡 씨(34)의 도전도 빛났다. △지역성의 한계를 넘어도내 지역을 기반으로 하지만 이곳에 안주하지 않은 청년도 화제였다. 디지털시대에 지역이라는 한계를 벗어나 고유한 문화콘텐츠로 승부를 보는 이들이다.전통문화가 강세인 도내에서 군산 출신거주활동의 박원태 씨(22)의방방이 2014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랩&힙합 노래 부문에 지명되면서 대상 후보에 오른 소식은 음악계를 놀라게 했다. 군산 힙합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였다. 그가 속한 팀인 애드밸류어도 군산 지역을 중심으로 전자음악을 하는 또래들이 모여 결성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한복디자이너 황이슬 씨(27)는 한복으로 세계 정복이라는 원대한 꿈을 향해 한 발 한 발 다가서고 있었다. 일상에서 누구나 쉽게 입을 수 있는 한복을 만들면서 지난 8월 전국 각지에서 자발적으로 모인 또래들과 서울에서 한복 패션쇼를 열기도 했다. 한복도 청바치처럼 하나의 패션과 스타일로 만들어 수출하겠다는 황 씨의 포부에서 전북스타일의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었다. △수평적 소통 문화 추구청년 문화예술가들은 탈권위주의를 지향했다. 동종업계에서는 수직적인 위계가 아닌 수평적 권위를, 대중과는 소통에 무게 중심을 두며 인적자원을 키우기 위한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사진가 장근범 씨(35)는 수평적인 사고 방식에서 창의적인 작품이 나올 수 있다며 우리가 사는 공간이 젊은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는가를 같이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실제 기획자 박영준 씨(35)는 예술공장이라는 단체를 통해 새로운 운영을 시도하고 있다. 지난 2008년 10여명이 모여 만든 이 단체는 수익을 구성원의 수에 맞게 n분의 1로 나누는 방식으로 동반 성장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고 있었다. 〈끝〉
디지털시대에 아날로그적 감성을 고집하는 앙상블 어쿠스틱은 민속악의 대중화를 기치로 퓨전(fusion)국악을 선보이고 있다. 국악기를 따라 피아노와 바이올린, 기타가 우리네 장단을 연주한다. 대표피리 허진(34), 피아노 김종수(30), 기획 이창원(29), 대금 임성애(29), 가야금 조기순(29), 타악 오흥민(28), 바이올린 최하람(27) 씨로 이뤄진 이들은 스스로를 음악하는 젊은 청춘이 모여서 만든 팀이라 소개한다. 공연에 따라 객원 연주자와 소리꾼을 영입해 공연의 질을 높이고 있다. 특히 퓨전국악으로 활동하는 연주단 가운데 차별성을 확보하기 위해 기획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창원 씨는 지난 2월부터 기획을 맡았다며 요즘은 퓨전 국악단이 많아 관객이 주가 되는 공연을 만들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공연에서 관객과 같이 무대를 꾸미는 프로그램 등으로 우리 팀만이 낼 수 있는 색깔을 내겠다고 덧붙였다.지난 2010년 결성한 어쿠스틱은 이름 그대로 전자악기를 제외한 어쿠스틱 악기들로 연주한다. 전자 악기에 의한 기계적인 소리가 아닌 악기 본연의 자연스러운 음악을 추구한다. 젊은 연주자들이 주로 활동하는 퓨전국악에 대해 허진 씨는 무슨 음악이든 들었을 때 듣기 좋아야 하는데, 여기에 기본기로 전통적인 유래와 숨은 의미를 담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양악기 연주자들은 전통 가락을 연주하기 위해 시행착오를 거치며 팀에 적응하는 기간이 필요했다. 최하람 씨는 서양악기는 4분의 4 또는 4분의 3 등으로 박자가 정해져 있는데 국악은 덩더쿵덕 등 장단으로 연주를 해야 해서 감이 다르다며 현재는 익숙해졌지만 지난해 8월 처음 팀에 합류했을 때는 해금 악보를 보며 연습했는데 자꾸 틀려서 눈치를 보고, 소리를 외워서 하곤 했다고 들려주었다. 애초 어쿠스틱은 허진 씨와 작곡가 김백찬 씨가 의기투합해 만들었다. 대중이 듣기 편안 음악을 다양하게 해보자라는 뜻을 모았다. 두 사람은 전북대 입학 선후배로 김 씨는 허 씨가 음악을 지속하도록 힘을 주는 존재다. 허 씨의 첫 독주회 때도 김 씨가 선물한 곡이 현재 어쿠스틱의 대표곡인 창부가다. 이후 어쿠스틱은 여건과 악기에 따라 멤버들을 교체 영입했다.어쿠스틱은 동시대성과 즐거움을 표방하며 대중과의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임성애 씨는 현대인의 감성에 맞는 음악에 전통의 멋을 더해 국악인만이 아닌 대중이 쉽게 즐길 수 있도록 연주하고 있다며 한국 음악을 한국인이 듣지 않는다면 발전이 없는 만큼 국악에 대해 지루하고 대중적이지 못하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어쿠스틱을 통해 긍정적인 시각과 높은 관심을 지니길 바란다고 말했다.더불어 음악간 융합이 아닌 다른 분야와의 접목도 시도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달 30일 전북도청 광장에서 열린 우리가락 우리마당 무대에 선 뒤 오는 23일 한국소리문화의전당에서 전북도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후원으로 다난흥방(多難興邦)을 주제로 연주회를 앞두고 있다. 허진 씨는 많은 어려운 일을 겪고서야 나라를 일으킨다는 말처럼 힘든 시기를 딛고 신명나는 기운으로 승천한다는 이야기를 담아 예술과 산업의 만남으로 근로자를 위한 음악회를 기획했다며 장르 안에서만 퓨전이 아닌 음악을 토대로 다른 분야와 교류하고 싶다고 말했다.그는 이어 공연도 관객과 이야기를 하는 것인 만큼 그저 퓨전국악을 들어주세요가 아닌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소통을 하겠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30일 오후 5시께 전주 한옥마을을 찾은 관광객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기접(旗接)놀이가 곁들어진 길놀이에 시선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용(龍)이 그려진 깃발을 단 7m가 넘는 대나무를 천으로 감아 한 손에 지탱하고 다른 손으로 줄을 당겨 깃대를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모습에 젊은 관광객들은 연신 대박을 외쳤다. 기수는 깃대를 휘두르며 관광객의 머리 바로 위까지 깃발을 스치듯 돌리는가 하면 손바닥이나 어깨에 올려 기가 쓰러지지 않게 중심을 잡았다.이날 진행된 합굿마을문화생산자협동조합의 전통풍물 활성화 사업에서 길놀이의 용기(龍旗) 기수를 맡은 여현수 씨(33)는 풍물, 탈춤, 기접놀이를 모두 할 수 있는 굿쟁이다. 여 씨는 용기 기수이기도 하지만 전주의 강령탈춤전승회와 진안 중평굿보존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강령 탈춤은 원래 이북 춤인데 단조롭고 투박한 게 특징입니다. 진안 풍물가락도 이와 비슷하게 강한 힘을 느낄 수 있습니다.그는 20살 이후 풍물과 탈춤을 거친 뒤 5년 전 기접놀이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전북과 연고가 없었지만 노는 판의 신명과 굿쟁이들이 좋아 도내에서 전통놀이의 맥을 잇고 있다. 특히 기접놀이는 전주만의 문화 아이콘으로 애정을 쏟게 됐다. 농경문화의 산물이었지만 일제 강점기를 지나면서 맥이 끊겼다 지난 1974년 풍남제 때 재현돼 그 의미가 더욱 크다는 설명이다. 다른 지역에도 기접놀이나 기세배 등이 있었지만 전주같이 발달되지는 않았습니다. 한옥마을처럼 이곳에서만 보여줄 수 있습니다. 무게감에 연희까지 더해 풍물판의 시각적인 효과를 증폭하고 극대화하는 효과를 거둡니다.한겨울 허허벌판에서 기접놀이를 연습한다는 그는 바람을 읽고 균형을 잡아야 하지만 연습하는 날마다 바람이 거세게 불어 한 번 하고 나고 나면 2~3일간 아프기도 한다며 기받이를 허리에 차 중간중간 기를 살짝 걸치기도 하지만 공연을 길게 하거나 격렬하게 하면 허벅지 안쪽에 기가 닿아 멍이 들곤 한다고 토로했다.그는 이어 힘보다는 지렛대의 원리를 최대한 이용하고 접시돌리기처럼 용기를 활용한 다양한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며 공연자들이 즐겁게 노는 모습을 보고 관객도 힘이 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그는 인천 출신이지만 호원대 건축학과에 진학한 뒤 동아리에서 전통놀이를 처음 접했다. 고등학교 졸업 뒤 바로 취업하려 했지만 부모님의 열망으로 대학에 들어오게 됐습니다. 이후 풍물을 배우면서 난생 처음 무엇인가 몰입해서 실력이 느는 경험을 했습니다. 계속 또래들과 그 분야의 선생님들을 찾아 배우다 보니 점점 더 빠져 들었습니다.그는 평소 내성적인 성격이지만 판이 벌어지면 숨은 끼를 발산한다. 탈을 쓰고 사자춤을 출 때는 관객에게 어흥!하고 먼저 다가가거나 탈을 던지기도 한다. 손에 기가 있을 때는 깃발 천을 관람객의 머리 위로 덮을 만큼 낮게 내리거나 관람객에게 기를 맡기고 목을 축이기도 한다.하지만 전통놀이를 업으로 하는 사람으로 설 무대가 부족한 점은 늘 아쉽다. 그는 한옥마을에 길거리 공연이 적고 점점 한 시간 넘게 노는 큰 판굿이 줄었다면서도 탈춤에서도 기량을 올려 다양한 역할을 하고, 기접놀이도 기술을 좀더 쌓아 전통놀이가 공연계에 자리잡는데 역할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아울러 그는 사물놀이, 상모돌리기, 버나, 살판 등 다른 전통 아이템에 비해 아직 기접놀이는 그 가치가 널리 알려지지 못해 같이할 후배들을 가르치고 있다면서 지역 고유의 전통놀이가 좀 더 인정받도록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의 대통령상을 목표로 출전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처럼 피사체를 멀리서, 중간에서, 더 근접해서 카메라의 렌즈로 들이대면 다른 느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어떤 방향화각 등의 테두리로 세상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같은 대상이라도 새로운 모습을 발견합니다.지난 25일 저녁 전주시 완산구 동문길에 있는 장근범 사진가(35)의 작업실에서는 전북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가 연계한 대학생 대상 교육프로그램으로 사진 찍는 법에 대한 강의가 진행되고 있었다.교육에 열중인 그의 이력에는 새만금과 전주 동문거리의 변화를 기록한 작업이 주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지난해 6월 동문사진전 시나브로에서는 경관 조성사업으로 바뀐 동문 상가의 모습을 담았다. 사람과 공간에 대한 기억이 자꾸 지워지는 게 아쉬워 그 거리에 있는 모든 건물을 기록한 결과다. 2000년대 후반에는 새만금연구회를 통해 개발붐이 일어난 새만금 일대의 풍경을 조망했다.그는 사진은 이미지가 아닌 기호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탐미((耽美)보다는 실제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이 담긴 다큐멘터리 작업을 선호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5년간 도내와 해외에서 문화예술교육에 참여하고 있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프로그램과 연계해 익산 공공영상미디어센터와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예술교육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에 동참하고 있다. 지난해 11월부터 지난 3월까지 베트남 북부 산간지역에 위치한 라오카이성에서 소수민족 학생을 대상으로 사진 교육을 했다.그는 한국은 각종 문화예술교육사업에 대한 피로도가 높아졌지만 베트남은 초기 단계여서인지 반응이 빠르고 다채롭다며 마지막 수업 때는 교실이 울음바다가 되고, 아이들이 버스 타는 곳까지 배웅한 감동을 잊을 수 없다고 들려주었다.그가 교육사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계기는 물대포였다. 지난 정부 때 촛불집회가 열린 서울 광화문에서 공권력에 대한 공포와 분노를 맞닥뜨린 뒤 교육을 통해 사회의 변화를 모색한다는 거창한 포부로 시작했다. 2011년부터는 그가 가장 보람을 느끼는 프로젝트로 문화바우처 기획사업의 하나인 희망사진관도 진행하고 있다.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가족사진을 촬영선물하는 사업이다. 사진이라는 매체로 어떻게 서로를 표현할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합니다.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각자 다른 방식이 있는 만큼 사진 찍히는 사람간의 관계를 최대한 끌어내려 합니다. 그는 유년기부터 사진작가가 꿈이었던 사람은 아니었다. 본인 소유의 카메라를 마련한 것도 대학교 2학년 때다. 재수 시절 우연히 사진첩을 보다 사진을 찍었을 당시의 두근거림이 생각나 작은 아버지 집에서 카메라를 빌려 출사를 다녔다. 교수진에 반해 백제예술대학 사진과에 입학했지만 부모님의 적극적 반대가 따랐다. 밥과 인화지 사이에서 무엇을 사야 할 지 고민하던 시절도 보냈다. 자신만의 로모 필름 카메라를 장만하고 나서야 자신감이 생겼다. 낮에 실컷 사진을 찍고 밤에 암실에서 혼자만의 세상을 즐겼다. 친구 숙제를 해주고 인화지를 빌리기도 했었지만 그때는 과제 고민이 굉장히 행복했습니다.그는 동문거리에서 나고 자란 동네 토박이다. 이런 까닭에 수십 년간 배고픈 예술가들을 지켜본 부모님은 사진 찍으며 살겠다는 아들이 못마땅했다. 하지만 지금은 집 한 쪽에 작업실이 둥지를 틀었고, 이곳을 찾는 손님들에게 부모님은 정성껏 만든 음식을 내놓는다. 오는 30일 문화예술교육 공적개발원조 교육사업을 위해 다시 베트남으로 출국하는 그는 연말 가족 사진을 통해 사회 구조를 고찰하는 작업을 계획하고 있다. 그는 모계와 부계를 중심으로 친척 한 명 한 명의 모습으로 이들이 각각 사회적 구성원으로 지니는 기표를 표현하고 싶다며 가족 이야기지만 나와의 관계를 지우면 노인,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대학 입시 등 놓인 위치상황에 따라 사회문제를 담겠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장기적인 작업으로 자본주의가 유입된 동남아시아의 변화를 렌즈에 담고 싶다며 감상자가 이야기를 많이 도출할 수 있는 사진을 소망한다고 덧붙였다.
한복도 입지 않으면 죽습니다. 장롱이나 박물관에 박제된 채 있기보다 사랑하면서 자꾸 입어야 합니다. 젊은 층이 원하면 언제든 구매할 수 있고 자기 개성을 표현하도록 대중화하는 게 제 사명입니다.한복을 일상으로 끌어들여 20대에게 문턱을 낮추고 있는 한복디자이너 황이슬 씨(27). 그는 한복으로 세계를 정복하겠다는 유쾌 발랄한 꿈의 주인공이다. 현재는 한복의 판로와 소통 공간을 만들어 접근성을 높이고 있다. 지난 17일 저녁 전주시 덕진구 동부대로에 있는 한복 매장에서 초긍정적인 사고와 쾌활한 미소가 돋보인 황 씨를 만났다. 주변에서는 그를 희한하거나 황이슬스럽다고 평한다. 그는 진짜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실제 행동해 이뤄졌다고 강조했다.그가 만드는 한복은 일상에서 살아있는 생활복이다. 현대적인 무늬와 함께 마, 면이나 합성섬유 등으로 만들어 세탁기에 빨 수도 있다. 소재 대부분을 서울 동대문에서 구해 오고 마진과 공정을 줄여 대중화를 꾀한다. 목적에 맞고 과소비하지 않아야 최고의 옷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동정이나 저고리의 매무새, 치마의 주름 등은 살리면서도 현대적인 감각과 흐름을 곁들인다. 패션 트렌드를 연구하고 레이스, 시스루가 유행하면 이를 접목한다.제 한복은 획기적인 디자인이 아니라 용도에 맞게 이전에 없던 걸 만들어 틀을 깼습니다. 한복도 현대 문물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실생활에서 이상하게 보이지 않게 하려면 결국은 일상적인 옷과 많이 닮아야 합니다.그는 창업 뒤 8년간 한복의 대중화를 위해 겪은 우여곡절과 비법이 담긴 책 <나는 한복입고 홍대 간다>를 지난 4일 출간한 뒤 더욱 바빠졌다. 출간을 기념해 지난 8일 서울 홍대 주변에서 길거리 한복패션쇼도 했다. 패션쇼에 쓰인 한 무더기의 옷을 세탁하는데 지친 기색이었지만 한복 이야기만 나오면 금세 생기가 돌았다. 저는 한복에 안달이 난 사람입니다. 사업가든 한복디자이너든 어느 편에 속해도 상관 없습니다. 한복 장사를 하지만 그 안에 가치와 생각을 담아서 만들기 때문입니다. 제가 좋아하고 잘 하고, 잘 되는 일을 하니 금상첨화죠.전북대 산림자원학과를 졸업한 그는 만화 궁을 보고 한복에 푹 빠졌다. 만화 속 인물의 의상을 만들고 중고로 판매하면서 20살 때부터 한복디자인과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는 대학 때부터 개강, 종강, 발표, 명절 등의 구실을 삼아 자신이 만든 한복을 착용했다. 한복을 입어도 이상하지 않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처음 1~2년은 연매출 20만 원이었고 많이 벌어야 100만 원이었다. 3년이 지난 뒤에야 먹고 살 수 있는 수준이 됐고 지금은 건물과 함께 매장도 마련했다. 디자인이 좋다는 소리를 듣는 재미로 시작해 자연스럽게 커졌습니다. 이번에 잘 안 되면 다음에 더 잘하고 하고 싶은 목표를 이루지 못 할 것 같으면 조금씩 양보해 제가 할 수 있는 상황으로 만듭니다.그는 돈이 적으면 모델 수를 줄이고 무대가 아닌 길거리에서 패션쇼를 한다며 얼마나 진심을 담았는가가 관건이었다고 들려주었다. 그는 현대적 요소를 가미한 한복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고민한다.커플룩, 린넨 치마, 쉬폰 드레스 등 개조와 변형을 하지만 그 한계를 고심합니다. 그래서 만드는 옷마다 한복의 기본 요소를 어떻게 적용했는지 설명할 수 있도록 디자인합니다.황 씨는 한복의 특별함 대신 일상성을 위해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다. 현재 고유의 브랜드를 만들었고 기성복의 크기로 분류해 제작합니다. 앞으로 일반 상점에서도 일상적인 한복을 살 수 있도록 한국의 전통의상이 아니라 하나의 멋있는 패션 스타일을 만들겠습니다.
기획자는 도전해야 합니다. 실수를 맛봐야 무엇을 잘못했는지 방법적으로 고민하고 계속 할 거라면 수정보완합니다. 실수를 줄여 가면 실패의 확률은 낮아지고 성공으로 이어집니다. 우진문화공간 예술극장의 제작감독 겸 연극단체 예술공장 대표인 박영준 씨(35). 그는 긍정적인 사고, 스펀지와 같은 수용력의 소유자다. 예술극장의 자체 기획뿐 아니라 대관 공연에도 관람자와 기획자의 시선으로 공연장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박 감독은 기획자는 장르를 불문하고 골고루 보고 판단 능력이 있어야 한다며 계속 많은 걸 보고 느끼고 내 것으로 흡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그는 대관도 내 공연처럼이라는 기치로 공연장을 기획한다. 공연장의 상품 가치를 높여 재대관이 이뤄지도록 입소문 마케팅을 한다. 그 결과 2000년대 초반 130일이었던 우진 예술극장의 공연 일수는 지난해 200일을 넘었다. 그는 상당수 공연장이 대관 팀에게 하지 마세요라는 통제를 하며 의욕을 꺾는 경우가 왕왕 있다며 하면 안 되는 것도 있지만 이를 할 수 있게끔 비법을 공유해 품질을 높이는 일이 스탭의 역할이다고 말했다. 무대 뒤에서 일하는 그는 애초 연극 배우으로 업계에 발을 들였다. 전남 광양 금호도에서 섬소년으로 태어난 그는 교회에서 극(劇)을 처음 접했다. 재미와 함께 재능이 있다는 주변의 평가로 배우의 길을 결심한다. 우석대에서 연극동아리를 하다 대학 2학년 때 선배의 추천으로 극단 하늘에서 연기조명 등을 배웠다. 군 제대 뒤 창작극회에 배우로 들어가 얼떨결에 기획을 맡았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연극놀이 교실 강사를 하며 경제력을 확보하고 연극을 지속할 수 있었다. 2006년부터는 전주시립극단에서 기획자로 활동하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두바이카타르 공연도 추진했고 대형 공연을 위한 협업, 마케팅 등도 진행했다. 그가 생각하는 기획자는 공연을 위해 싸우고, 바로 잡고, 발로 뛰어 결과물로 말하는 사람이다. 공연계에서 기획은 연출가와 작품을 선정하고 공연 일정을 확정하면 제작연출을 뺀 나머지 일을 수행한다. 저작권 협의, 홍보물과 웹페이지 제작, 블로그와 홈페이지 관리, 인쇄물 배포, 모객, 예산 확보를 위한 기금 신청 등을 맡는다. 그는 2005년부터 우진문화공간 전시장에서 이뤄진 공연의 객원 조명감독을 하던 중 2010년 이 곳의 공연장 건립을 계기로 스카우트 제의를 받는다.기존이 연극 전문기획자였다면 여기는 다양한 장르를 맛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초창기라 할 일이 많아 좋았습니다.그는 제작감독으로 첫 기획이 공연 비수기인 1~2월에 지역 연극인을 활용한 젊은 연출가전이었다며 우수 레퍼토리를 발굴하고 싶었는데 각 극단마다 전용 소극장이 있어 한계를 넘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이후 그가 시도한 작품은 가정의 달을 겨냥한 어린이 뮤지컬이었다. 그가 2008년 4월 지역 예술인과 모여 만든 예술공장의 오리날다. 더불어 2012년 15분짜리 공연이었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안무연출가와 협의해 지난해 별도의 댄스컬 작품으로 재탄생시켰다. 관람료 매출이 발생하면서 성과가 가시적으로 나타나 용기가 생겼습니다. 매년 장기 공연의 레퍼토리를 발굴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기획자로 그가 바라는 점은 관련 인력의 양성이다. 그는 지역에 기획 인력이 많이 나오기 위해서는 기반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며 현재 도내 예술단체는 대부분 예산 부족을 이유로 전담 기획자를 두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아울러 그는 문화예술단체의 문제점을 살피면 결국 답은 기획자의 확보다면서 지원기관에서 기획 인력을 제공하는 제도를 이용하고, 각 단체에서도 후배들을 심부름하는 주변인 예술인으로 활용하기보다 기획자로 키워야 한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19세기 이후 극(劇)이라는 이름을 내건 작품에서 음악과 음향의 역할은 점점 커지고 있다. 기술의 발전과 함께 1차원적 효과음을 넘어 입체적으로 소리를 구현하며 관람객의 오감을 자극한다. 이런 이유로 음악 프로듀서 김세선 씨(34)는 음향감독으로 지역 문화예술계의 일꾼이 됐다. 도내 웬만한 공연의 제작에 참여했다는 김 씨는 감각적인 음악을 만드는 사람 가운데 기술적인 음향까지 하는 사람이 적어서인지 많이 불러 주신다며 사운드 디자이너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는 창피하지만 공연장에서 관객이 적절하게 소리를 들을 수 있게 스피커 배치나 음역대를 조절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오는 8일 전주 한옥마을에서 공연을 앞둔 가보세 갑오년, 전주성의 작편곡을 담당해 막바지 수정보완 작업이 한창이었다. 이에 앞서 그는 올해 전주에서 올린 연극 일상다반사, 염쟁이 유씨, 늘근도둑 이야기 등에서 음악과 음향을 책임졌고, 주말마다 도청광장에서 진행하는 우리가락 우리마당의 일부 공연에 음악감독을 맡았다. 지난해 대표작은 새만금 상설공연이다. 도내 최초로 공연장에 7.1채널 시스템 구축을 디자인했다. 극장처럼 극의 전개와 좌석 위치에 따라 바람소리가 입체적으로 들리도록 하는 기술이다. 그가 음악프로듀서로 추구하는 것은 공감과 동시대성이다. 그는 창작자보다 실제 이를 수행하는 플레이어 위주로 노래를 못하는 사람에게는 부르기 쉽게 하고 다른 효과로 보완한다며 재연하는 공연도 해마다 연출, 음악, 대사가 바뀌며 현재와 호흡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현재 음악작업을 하는 심봉사 굿보다의 경우 창극이지만 국악적 보컬 멜로디의 반주는 탱고, 삼바, 차차차 등 라틴음악이다며 장난이라고 평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장르를 혼합해 풍자하는 스타일이다고 설명했다. 김 씨는 음악음향감독이라는 호칭 이전에 밴드에서 건반을 쳤다. 지난 1990년대 말 유명 락밴드의 드러머였던 삼촌의 영향으로 고등학교와 대학의 스쿨밴드에서 활동했다. 상경해 홍대 인디신에서도 있었다. 하지만 창작활동을 지탱하기 위한 경제력의 필요성은 점점 커졌다. 직장 생활을 하고 틈틈이 독립영화 등의 배경음악을 작곡, 프로듀싱하고 모은 종자돈으로 지난해 5월 기획과 창작활동을 위한 회사를 차렸다. 음향기기를 통한 수익사업을 하면서 음반과 공연 제작을 한다는 구상이었다. 20대에는 음악만 했는데 길이 안 보였어요. 방향을 제시하고 지원받을 사람이 필요했었는데 혼자 했었죠. 주변을 보니 그런 도움이 필요한 친구들이 눈에 띄었고 이제는 제가 선배의 역할을 하고 싶었어요.그는 지난 1월 전액 사비로 그들의 세상이라는 무언극을 제작하며 음악감독, 대본, 연출을 자청했다. 관객에게 불친절한 연극이라는 평이었지만 첫 시도에 방점을 찍었다. 또한 평소 그가 무대에 올리고 싶었던 주제, 음악, 조명, 영상 등을 맘껏 펼쳤다. 김 씨는 그래도 연출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며 배우에게 일부러 주제를 설명하지 않고 공연을 시작했더니 9명이 각기 다른 이야기를 하고, 관객의 반응도 비슷해 나중에는 영상으로 부조리한 시스템에 갇혀 있지만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일상에 치여 사는 모습이라는 설명을 추가했다고 들려주었다.첫 작품을 통해 얻은 것이 더 많다는 그는 연출 욕심을 버리고 작품 욕심만 부리기로 했다며 이를 기점으로 음악감독 일이 많이 들어오기도 했고 출연했던 배우가 주목받는 기회도 생겼다고 덧붙였다. 그는 앞으로 지역의 문화예술판에 다양한 음악이 공존하고 제작과 기획, 연출이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포부다.그는 전주하면 판소리뿐 아니라 전통과 현대가 접합하며 음악이 풍요로운 곳이 되길 바란다며 새로운 뮤지션이나 아티스트를 발굴하는 무대를 만들어 지역 음악인의 창작물을 관광 자원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배우나 스탭이 정당한 대가를 받고 고품질의 작품을 만들도록 투자와 기획, 연출이 분리된 제작 체계를 갖추고 싶다고 강조했다.
건물을 연상케 하는 거친 통나무 위에 얼굴 없는 사람이 우뚝 서 있다. 다원화되고 빠르게 변하는 현대사회에서 무미건조하게 사는 현대인의 초상이다. 서류가방, 상자, 쇼핑백, 우산, 악기, 넥타이 등 각 인물마다 공통적으로 빨간색을 띤 사물을 지니고 있다. 이 사물들은 그 인물의 삶에서 무게 중심이자 그들이 쫓기며 사는 이유다. 지난 18일 찾은 전주초등학교 인근 배병희 작가(33)의 작업실 한쪽에는 지난 1월 전시했던 작품 일부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인간이 문명을 만들었지만 점점 문명이 인간을 지배합니다. 이 둘의 관계를 표현하고 싶었는데 산책을 하다 나무의 군집된 모습을 보고 현대사회의 소산인 빌딩의 위에 고독하게 서 있는 시민을 착안했습니다.작업실의 다른 쪽에는 이동하는 모습의 얼굴 없는 조각상이 있었다. 1탄 작업에서 인물이 정적으로 건물에 서 있었다면 2탄은 바쁘게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을 조각했다. 인물들은 투박하고 다소 과장된 몸짓이다. 움직임을 가미해 형상에 생동감을 입혔다. 복잡한 사회에서 획일화된 인간을 담았다. 배 작가는 독일 유학시절 만났던 사람들을 모델로 형상화했다며 고전적 재료인 나무가 역설적으로 점점 상막해지는 사회를 표현하는데 효과적이었다고 설명했다.어릴 적 빨래집게나 나뭇가지로 장난감을 만들어 놀곤 했다는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본격적으로 미술을 배웠다. 그는 별도의 교육 없이 중학교 2학년 때 전국소묘대회에서 은상을 탄 뒤 예고 진학을 권유 받았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인문계에 진학했다며 고교시절 건축학과에 가기 위해 드로잉을 배운다는 핑계로 미술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고 들려주었다.그는 지난 2006년 전북대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무작정 독일로 향했다. 자연주의와 인지학적 교육 방침으로 알려진 알리누스대학의 예술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지난해 1월 귀국했다.그는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며 힘들게 독일어를 익혔는데 귀국할 즈음 잘 들리게 됐다고 회상했다. 아울러 그는 현지에서 철학적 사고나 작가 내면의 이야기를 먼저 정립하고 작품을 시작하는 방식을 체득했다며 발상의 시작이나 결과물까지 가는 과정이 느리더라도 자기만의 이야기가 탄탄하지 않으면 진정성이 떨어지거나 작품을 억지로 포장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는 점을 배웠다고 덧붙였다. 그는 앞으로도 이야기를 시각화하며, 관객과의 소통을 지향하는 작품이 목표다. 그는 현재 작업하는 각각의 조각상에 단편 소설처럼 개인사를 넣어 줄거리를 확장하고 있다며 나무 조각으로 작업을 한정하지 않으며 하나의 주제에 중점을 두고 설치나 영상 등을 이용한 다양한 결과물로 관객과 교류하고 싶다고 밝혔다.
예전에는 창작극에 관심이 높았는데 갈수록 판소리 본연의 소리에 더욱 매진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판소리에서 낼 수 있는 다양한 소리를 모두 내고 싶습니다.남원에 있는 국립민속국악원 창극단의 서진희 수석단원(31)은 지난 2010년 국립국악원의 소리극 황진이의 주연으로 뽑히면서 조명을 받았다. 당시 분원의 직원이 본원의 오디션에 합격한 일이 화제가 됐다. 그는 27살 때 성숙한 연기를 하려고 도전했는데 고등학교 때 중점적으로 배운 경기민요와 서도민요를 중심으로 면접을 치르고 섭외될 수 있었다고 들려주었다.그는 지난 2007년 민속국악원 창극단에 입사해 주요 역할을 맡고 있다. 황진이 이후에도 춘향, 심청 등으로 활약했다. 소리꾼 특유의 걸걸함보다는 맑은 음감의 목소리를 가진 그는 소리에 대한 욕심이 많다. 그는 창작극이나 창극을 할 때는 음정을 잘 맞추고 발음이 정확하다는 점이 장점이다면서도 굵직하면서도 애처로움이 묻어나는 다양한 음색을 갖추고 싶다고 말했다. 김일구김영자 명창 부부의 며느리이기도 한 그는 결혼 뒤 시어머니로부터 수궁가를 배우고 있다. 시어머님은 힘이 있는 소리로 제가 가장 약한 부분이 강점이세요. 처음 소리를 배울 때처럼 공부하고 있습니다.지난해 겨울 결혼한 그는 남편 김도현 씨(33)와도 민속국악원에서 한솥밥을 먹고 있다. 최근 무대에 올린 창극 춘향의 공연 때는 부부가 두 주인공을 맡아 영광스러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서 씨는 초등학교 2학년 때 본격적으로 소리를 시작했다. 가야금 병창을 했던 어머니 김정순 씨(63)가 결혼 뒤 딸 셋을 데리고 전북도립국악원에 수강생으로 출입했던 일이 시초가 됐다. 큰 언니는 판소리방으로, 작은 언니는 가야금방으로 넣었는데 저는 그 때 5살이라 너무 어려 어머니가 저까지 가르칠 생각은 없으셨데요. 근데 제가 졸라 도립국악원에서 이일주 선생님께 처음으로 소리를 배웠습니다.어릴 적부터 집안에서 들려오는 판소리 테이프를 달달 외우고 다녔다는 그는 이후 조소녀, 송순섭, 안숙선 명창의 가르침을 받았다. 그는 전국어린이판소리경연대회 버금상, 전국학생국악경연대회 중등부 종합대상, 전주대사습놀이 학생전국국악경연대회 판소리 차상을 받으며 실력을 쌓았다. 이후 국립국악고와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음악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을 수료했다. 지난 2004년 국립국악원 주최 전국국악경연대회에서는 성악부문 금상을 수상했다. 그는 어렸을 때는 소리를 익히는 게 재미있었고 선생님들도 질책보다는 칭찬을 더 많이 해 굉장히 잘 하는 줄 알았다면서도 서울의 국립국악고에 입학했는데 아는 사람도 없고 유명한 또래가 즐비해 그곳에서 인정받겠다는 욕심에 치열하게 연습했었다고 회상했다. 어릴 적 함께 도립국악원을 다닌 그의 두 언니도 현재 국악인이다. 큰 언니 서춘영 씨는 전통문화고에서 판소리 교사를, 작은 언니 서은영 씨는 국립국악원에서 가야금을 연주하고 있다. 그는 딸 셋을 모두 국악인으로 키운 것은 어머니의 열의와 노력이었다며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그는 이어 딸들이 장한 어머니상을 줘야 할 정도로 평생 자식들의 뒷바라지를 하셨다며 지금도 열정이 넘쳐 공연 때는 관중도 동원하고 모니터링을 꼼꼼히 하신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국악인 집안에서 국악인의 삶은 일종의 부채이며, 부담도 수반한다.그는 항상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압박으로 평소 생활도 벗어남이 없어야 하고 공연이 크든 작든 실수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압박은 있다며 중요한 무대에서 갑자기 소리가 나오지 않은 경험을 하고 나서는 소질이 없다는 자책감에 빠지기도 했다고 말했다.그의 꿈은 소리에 자연스럽게 희로애락을 담는 소리꾼이다. 그는 억지가 아닌 몸의 기운으로 맑고 청아한 소리부터 폭포가 쏟아질 듯한 엄성, 애처로운 성음 등 우리네 삶과 같은 소리를 모두 표현하고 싶다며 오는 11과 12월 수궁가 완창을 목표로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첫 시도에 방점을 두고 싶습니다. 기존 작업에 새로운 방식을 도입해 회화의 제약을 벗어나는 가능성을 보여드리겠습니다.동시대성을 반영해 디지털기기로 그린 신작을 선보이는 D.P전(디피전, Digital Painting + Display Exhibition)을 준비한 11명의 변(辯)이다. 수도권에서는 디지털 기기를 이용한 일이 흔한 작업이지만 도내에서는 첫 전시란다. 이번 전시를 위해 미술을 기반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창작활동을 하는 청년들이 의기투합했다. 순수 회화 작가뿐 아니라 만화가, 일러스트레이터, 디자이너 등 서로 다른 영역에서 활동했던 창작자들이 전시장이라는 공간에서 좀더 풍부한 볼거리를 만드는 한편 지속적으로 교류하면서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자는 취지다.전주를 중심으로 다양한 미술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원(33한국화), 서완호(32서양화), 이권중(34만화) 씨가 기획의 뼈대를 잡았다. 김준우(38공공미술), 최창우(32디자인) 씨가 함께하며 역할 분담을 거쳐 본격적인 작당모의를 했다. 이어 전주 출신으로 일러스트 작업을 하는 이동형(31한국화) 씨와 익산 익옥수리조합 레지던시에서 활동하는 이우상(28서양화), 신보름(28한국화), 최진희(28서양화) 씨가 합류했다. 여기에 공연과 파티, 미술품 경매를 합친 이색 전시인 광주광역시의 브이파티(V-Party) 멤버 엄기준(32서양화) 씨와 광주를 기반으로 애니메이션과 일러스트 작업을 하는 이승호(32만화) 씨가 뜻을 보탰다.서로 다른 영역이지만 디지털페인팅으로 만든 다양한 이미지를 지역에 소개하고 싶은 열망이 이들을 뭉치게 했다. 지역에서 기존 작가들이 하지 않는 작업을 선택한 것도 현실적인 이유다. 이번 전시에서는 붓이 아닌 마우스와 태블릿 기기 등 컴퓨터로 그린 이미지 20여점을 캔버스천 또는 종이에 인쇄해 보여준다.디피전 회장을 맡은 서완호 씨는 디지털페인팅은 작업실, 재료 마련 등에 필요한 시간이나 비용 없이도 작품을 만들 수 있어 시도할만 한 매력이 있었다며 특히 현실적인 문제로 작업을 이어가지 못하는 창작자와 여타의 미술 영역의 종사자들이 자연스럽게 연동할 수 있다는 장점으로 비슷한 환경에 처한 다른 사람들에게 확장도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디지털페인팅은 명도, 채도, 색감 등의 수정이 용이해 일부는 기존 회화 작업의 연장선으로 기능했다. 이우상 씨는 재료에 구애받지 않는 장점과 함께 발광물질의 채색과 같이 머릿속에 있는 색을 눈앞에서 구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 의료사고로 한쪽 눈이 준맹(準盲)이 된, 이 씨의 자전적인 이야기에서 시작한 이번 작업은 새로운 매체를 만나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았다. 시각에 대한 욕망을 눈을 감았을 때 떠올리는 색을 다른 인물에 비춰 전달했다. 서완호 씨는 디지털페인팅으로 아날로그 작업보다 주제의식을 강화할 수 있었다. 상품으로 소모되는 현대인의 가치에 의문을 제기가며, 차가운 느낌을 더했다. 청년층 앞에 놓인 밥벌이 문제를 형상화한 김원 씨의 밥은 디지털로 먹의 농담을 표현했다. 엄기준 씨는 아날로그보다 좀더 투박한 질감을 나타냈다. 디지털페인팅이 익숙하지 않은 참여자에게는 낯선 과정이었다. 최진희 씨는 처음에는 선 하나도 마음대로 그려지지 않았고, 기존 회화의 복제품으로 접근해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다고 귀띔했다.이들은 벌써 다음 전시를 염두하고 있다. 올해 통일된 주제가 없고 영상과 3D 등 다른 디지털 매체를 활용하지 못한 점을 아쉬움으로 꼽았다. 이를 보완해 디지털이라는 매체에 젊은층의 고민을 좀더 투영한다는 포부다. 디피전은 10일부터 23일까지 전주시 덕진구 권삼득로에 있는 얼갤러리에서, 다음달 1일~29일 광주광역시 동구 광주시립산수도서관에서 열린다.
인생과 함께 소리가 익어가는 소리꾼 이용선(35). 그는 지난달 7일 개막한 전주마당창극 아나옜다 배 갈라라에서 자라처와 여우 역할을 구성지게 해냈다. 지난 2006년부터 퓨전국악그룹 오감도의 보컬로 활동하며 전통 판소리뿐 아니라 다양한 노래를 들려주고 있다. 그는 퓨전을 하지만 전통 소리는 기본으로 절대 놓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하며 한 달에 15번 공연이면 7~8번은 퓨전이고 나머지는 전통이다고 말했다. 솔직담백하고 거침이 없는 그에게 소리는 자신과 세상을 향한 위안과 외침이다. 그는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멍 때리고 있을 때나 소리가 나온다며 마당극이나 뮤지컬 등에서 맡은 배역에 감정을 이입해 지금까지 겪었던 일을 다 토해내고 대리 만족을 한다고 들려주었다.그는 어릴 때도 어머니에게 혼이 나거나 속상한 일이 있으면 연습실로 갔다. 울음과 소리가 뒤섞인 분출 뒤에는 개운한 마음을 얻었다. 5살부터 판소리를 배운 그는 국악에 발을 담갔던 부모의 영향 덕분인지 동요보다 국악을 좋아했다. 일부러 아이가 국악을 못 듣게 라디오 채널을 돌리면 다시 우리 소리를 듣자고 졸랐단다. 아들을 바라고 지은 이름을 얻은 딸에게 소리꾼을 시키기 싫었던 어머니는 당시 이성근 명인에게 딸의 기량을 선보였다. 싹수가 있다는 소리를 들은 어머니는 이후 적극적인 지지자가 됐다. 소리 인생 30년을 채운 이 씨는 전주예고 1기로 입학한 뒤 동아콩쿠르 전국학생경연대회 학생부 은상, 한밭 전통가무악 전국 경연대회 고등부 종합최우수상 등을 받으며 학창시절 실력을 인정받았다. 전북대 한국음악학과를 졸업한 뒤 20대 후반은 일주일에 14번을 공연할 정도로 무대에서 살았다. 분장을 지우지도 못하고 잠이 들곤 했다. 그는 당시 한창 퓨전 국악이 바람을 일으킬 때여서 각종 공연이 줄을 이었다며 지금 보면 본청을 저렇게 밖에 못했나 싶을 정도로 손발이 오그라든다고 회상했다.그에게 터닝 포인트는 오감도 활동이다. 그는 영입 제의가 들어왔을 때는 각 멤버들이 나이가 있는데도 열심히 하는 모습이 좋았고, 서로가 발전하도록 새로운 시도를 격려하고 칭찬하는 분위기가 신뢰를 쌓게 했다며 나도 몰랐던 나를 끄집어 내는 매력이 있다고 동료애를 자랑했다. 평소 연극을 보며 예술적 감성을 키운다는 그는 공력을 쌓으며 30대를 보낼 계획이다. 전북 무형문화재 제2호 적벽가 이수자이기도 한 그는 아직은 다양한 소리를 하며 내공을 다지고, 마흔이 넘으면 대사습도 도전하고 싶다며 주위를 살피고 실력을 불리는, 업그레이드하는 한 해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화장실에 홀로 있는 몸뚱이는 물성으로 존재한다. 욕조는 물이 지니는 생명성으로 어머니의 품을, 한편으로는 누워있는 자세로 죽음을 맞이하는 관의 의미로도 풀이된다.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에서 얼굴이 없는 몸은 표현주의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의 고통 받는 인간은 고기다는 말처럼 단백질로 이뤄진 덩어리다. 욕실 그림으로 활동한 부안 출신의 김상덕 작가(30)에게 화장실은 가장 편하게 있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 육체가 지니는 특성을 강조했고, 베이컨의 작품을 좋아하는 취향을 반영했다. 그가 욕실이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착안한데는 생활인의 애환이 자리했다. 그림의 제목으로 삼은 숫자와 이니셜은 그가 일를 하며 머물던 숙소의 이름과 방 호수였다. 그는 지난 2009년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친구와 둘이 무작정 상경했다. 그림 작업과 숙식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아르바이트와 병행했다. 그는 타인과 공유하는 공간이 아닌 오직 혼자 있을 수 있는 곳이 화장실이라는 점과 이전의 생각이 죽고 다시 태어난다는 뜻을 담았다며 당시 벽화나 영화의 촬영세트를 만드는 일을 할 때 전국 각지에서 이용한 숙박업소의 이름을 기억하기 쉽게 적어 놓은 것을 제목으로 삼았다고 들려주었다.그는 지금 생각하면 유치한데 초기에는 욕조에 넥타이를 빠뜨려 현실보다는 이상을 택하겠다는 개인적인 각오를 나타냈다면서 개인적인 이야기에 함몰되고, 어떻게 하면 시각적으로 두드러지게 보여줄까라며 타인의 시선을 많이 염두했었다고 말했다.욕실 그림이 그의 존재감을 알렸지만 그는 앞으로는 다른 소재에 집중할 예정이다. 그는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한 상태에서 욕실 배경과 인체만 바뀌는 화면이 반복되는 것 같아 당분간은 다른 대상을 구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가 화가의 길로 들어선 시작점에는 친형이 있었다. 형이 그림을 잘 그리니까 저도 흥미가 생겼고, 초등학생 5학년 때 도내 사생대회에서 1등을 하고 크레파스를 받은 일이 기억에 남습니다. 장남인 형은 꿈을 접은 대신 막내인 저는 두 누나의 지지에 힘입어 미대에 진학할 수 있었습니다.그는 이후 원광대 서양학과를 졸업한 뒤 2차례의 개인전과 20차례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지난해 3월부터 8월까지 부안 휘목미술관의 레지던시에 참여한데 이어 지난 4월부터 군산창작문화공간 여인숙에서 레지던시 작가로 거주하며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그는 진짜 나만의 그림을 하겠다는 각오로 여인숙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며 자신을 찾는 과정에 이어, 주변을 객관화해 개인적인 이야기를 보다 확장하는 작업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소소한 일상을 노래하며 지역에서 꾸준히 활동하는 밴드 크림(Cryim). 지난해 강원도만 빼고 전국 곳곳에서 60여차례 공연을 할 정도로 찾는 곳이 많다. 스위트 팝 밴드라는 홍보 문구도 있고 장르로는 모던락이지만 듣는 사람이 편안한 음악을 추구한다. 이들은 기타 서기춘 씨(36)를 중심으로 베이스 유현진(30), 드럼젬베 김성하(28), 보컬멜로디언 장혜선(27) 씨로 이뤄졌다. 서로가 서로를 채워주며 돌아가는 톱니바퀴같은 팀으로 지난 2009년부터 최근까지 5개의 크고 작은 앨범을 냈다. 모두 작사작곡을 하는 이들은 일상에서 재미난 요소를 노래로 만든다. 지난해 나온 정규 앨범에 속한 힘을 내요 김여사는 운전이 서툰 중년 여성을 소재로 했다.오랜만에 장롱면허 꺼내들고 집을 나서 용기내어 삑뽁이를 눌러, 마트가는 길은 벌써 두 시간째 입구 앞을 빙, 힘을 내요 힘을 내요.이 노래는 최근 김승수 전주시장 당선자의 선거 로고송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선거 캠프 쪽에서 지역 인디밴드의 노래를 물색하던 중 크림의 곡을 낙점했다는 후문이다. 크림 멤버들은 자신의 음악에 대해 아직은 무색(無色)으로 내공을 좀더 쌓아 우리만의 색을 채우고 싶다면서 때로는 진부하다는 평가도 듣지만 사람 사는 이야기다고 말했다. 크림은 지난 2006년 7월 결성했다. 당시에는 민중가요 노래패를 하면서 음악으로 길을 튼, 서 씨를 포함한 5인조였다. 앨범 발매의 중도하차와 멤버 교체 등 우여곡절 끝에 현재의 진용을 갖췄다. 뮤지컬 배우를 준비했던 장 씨와 대학에서 밴드 활동을 했던 유 씨가 2008년도에 합류하고, 지난해 다른 팀에서 활동하던 김 씨를 영입했다. 유 씨는 서 씨가 강의했던 화성학 수업의 제자로, 장 씨는 오디션을 통해, 김 씨는 지난해 객원으로 공연에 참여하면서 각 지역의 대표 먹거리로 공략했다.서 씨는 이들과 같이 하면 뭔가 나오겠다는 잠재력을 느꼈다고 평했다.유 씨는 음악적 견해는 다르지만 협주창작할 때는 같이 낼 수 있는 음악에 대해 고민한다며 각자가 좋아하는 것을 팀에 녹여내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설명했다.이들은 다른 밴드와 달리 무대에서 4명이 한 줄로 자리를 잡고, 베이스가 서서 공연을 한다. 평소 성향에 따라 역할 분담이 확실하다. 김 씨는 베이스가 애교를 담당하며 어설프고 부족한 깨방정 액션을 한다며 다른 밴드는 보컬 중심이지만 우리는 차별화해 연주자에게도 시선이 가도록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공연 후반부로 갈수록 관객의 시선이 베이스로 간다며 외향적인 보컬과 베이스만 애드리브가 된다고 보탰다.이들이 화기애애한 가족처럼 되기까지는 몇 년의 시간이 걸렸다. 서로에 대한 믿음과 문제 해결형이라는 공통적인 지향점이 뭉치게 했다. 맏형으로 동생들에게 롤 모델이 되고 창작욕을 북돋아야 하는 부담을 지고 있는 서 씨는 쓴소리를 도맡았다. 그는 각자의 장점만 모아도 삐끗하는데 장점을 숨길 때 안타깝다며 새로운 곡이 나왔을 때 각자 연구를 해 와야는데 예상보다 고민의 흔적이 덜 보이면 대화로 푼다고 말했다.이제는 무대에서 능숙한 진행을 하지만 2년 전까지만 해도 타박을 받았다는 장 씨는 보컬이 노래만 하는 게 아니라 재치도 갖추고 행사의 정보도 제공해야 했다면서도 밴드 내에서 눈치보지 않고 주관을 표현할 수 있는 익숙함이 좋다고 들려주었다. 밴드 내 갈등 조정을 담당했던 유 씨는 기타 형과 보컬이 싸울 때 둘의 기분을 어떻게 하면 풀어줄까가 고민이었다며 양쪽에 가서 다른 편을 칭찬하며 해소하곤 했는데 음악적인간적인 신뢰가 두텁게 쌓여 금이 좀 가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붙여진다고 덧붙였다.이들은 다음에 더 좋은 무대, 공간에서 뵙겠다라는 공연의 마무리 멘트처럼 오늘 보다 나은 내일의 공연을 선보이겠다는 다짐을 밝혔다.
지난 2011년 도내 4개 대학 출신의 젊은 미술인이 모였다. 정체된 지역 미술계에서 청년 작가의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C.ART(시 아트)다. 2012년 창립 전시와 함께 지난해 세미나와 워크숍, 전시 등을 진행했다. 2년간 시아트를 이끌었던 김지현 작가(30)는 졸업한 전주대 도시환경미술학과가 폐과가 되는 등 순수예술 관련 학과가 없어지는 가운데 비슷한 고민을 하는 젊은 작가가 함께 했다고 설명했다. 단체를 조직하고 대표를 맡으며, 전시를 기획했던 그는 창작을 하는 작가에게 전문 기획자가 꼭 필요하다는 한계를 느꼈다고 소회했다. 그는 지난 2011년 전북 청년작가상을 수상하고 그동안 10여차례 단체전에 참여했지만 등단이라 할 수 있는 개인전은 아직이다. 평소 비판적 사고를 견지하는 성향답게 개인전에 대해서도 신중한 태도다. 현실적으로는 단체 운영 때문에 작업이 더뎠고 생계문제도 해결해야 했다.그는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개인전을 열면 그 이미지에 갇히는 만큼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고유의 색깔을 찾는데 고심하고 있다며 예술품은 잉여의 장식보다는 시대의 문제의식을 반영하고, 작가는 담론을 풀면서 고민하는 사람이다는 소신을 밝혔다. 그래서 그는 작품에 현실을 담는다. 대중매체가 제시한 환상이 실제적인 삶이 되는 시대에 리얼리즘을 지향한다. 원본 이미지인 인물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여기에 상징적인 사물을 배치하는 콜라주를 혼합해 주제를 재구성한다. 첫 인상은 잡지의 한 장면처럼 느껴진다는 감상평이다. 그는 셀카처럼 순간 연출된 사진, 역사 속에 기록된 사진, 상업적으로 소비되는 이미지 등 범람하는 이미지 가운데 뜰채로 필요한 것을 차용해 재조합한다며 가벼운 느낌의 사물을 무거운 인상으로, 정치적인 메시지를 가볍게 하는 방식이다고 설명했다.이어 그는 내년 하반기 개인전을 염두하고 현실의 표피라는 주제로 준비하고 있다며 표피적으로 소비되는 세태를 보여주려 한다고 말했다.그림은 그에게 고심을 안겨주지만 삶의 원동력으로, 자신을 찾는 과정으로 작용한다. 그는 학창시절 문제가 많은 아이였다고 고백한 뒤 작업에 몰입하는 동안 에너지를 생성하는 기쁨을 느끼고 이를 화폭에 표출한다고 들려주었다. 아울러 그는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한편 현실적인 고민보다 어떻게 하면 예술의 근본적인 질문에 더 가까워 질까라는 생각이 커지게 된다고 덧붙였다. 평소 음악을 틀고 그루브를 타면서 작업한다는 그는 캔버스와 재료를 가지고 신나게 놀고 싶다며 억지로 짜내면 그림이 경직되고, 즐거움 속에서 창작을 하면 관객도 그 흔적을 알 것 같다고 헤아렸다. 끊임없이 질문을 제기하는 작품을 지향하는 그는 명작은 시대가 흘러도 다양한 해석이 나오는 만큼 관람했을 때 감상이 완결되는 그림은 생명이 끝난 것이다며 보는 사람이 다양하게 생각할 수 있는 해석의 여지를 남기고 싶다고 말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미술은 우리가 놓치는 부분을 생각하게 합니다. SNS는 타인에게 경솔하게 다가가는 측면이 있는데 편지는 가장 신중하게 단어를 골라 메시지를 전하는 매체입니다. 이번 달 초 제33회 대한민국미술대전 비구상 부문 우수상을 받은 홍경태 조각가(30)는 철로 편지를 만든다. 반쯤 열린 편지봉투와 누군가의 사연이 적힌 편지지가 겹쳐 있다. 그의 편지 작업은 디지털 문화에 대한 비판과 함께 아날로그에 대한 그리움으로 시작했다. 그는 SNS로 소통한다고 하지만 그 특성상 쉽게 다가가고 깨진다면서 채팅방의 경우 바로 읽지 않고 답장도 하지 않으면 씹는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또 마음을 진정성 있게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이 손글씨라 여겼다고 덧붙였다. 지난 2012년 첫 개인전 이후 편지에 천착하며 지난해 두 번째 개인전부터 선보였다. 올 한국미술대전에도 선택이라는 작품으로 상을 받았다. 저희는 항상 선택받는 입장이잖아요. 수많은 이력서 가운데 한 장으로, 다른 이에게 마음을 전달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의미를 담았는데 정말 선택이 됐습니다.현재 전북대 미술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그는 15㎜ 두께의 철판을 자르고 용접하며 담금질을 하고 있다. 편지지의 경우 일반 철판을 두 장 겹쳐 일부를 긁어내 글씨를 나타내고 편지봉투는 온도 조절로 자연스럽게 휘도록 구현한다 지난 2008년부터 꾸준히 지역과 전국 단위의 공모전에 참여하면서 작업의 연속성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개인전이나 공모에 지원할 때 작업에 힘이 실린다며 나태함을 방지하기 위해 목표를 설정하고 작품을 만든다고 말했다. 그가 조소를 전공하게 된 것은 사과 때문이었다. 어릴 적부터 미술학원에 다니고 동아리 활동을 했지만 데생에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미술 입시학원에서 서양화의 기본과정으로 사물을 데생합니다. 다른 친구들은 사과에서 벽돌, 곰인형 등으로 진도를 따라가는데 저는 한 달 넘게 사과만 그리니까 원장 선생님께서 조소를 권유하셨어요.평소 사극을 즐겨본다는 그는 2012년 첫 개인전 때 전통을 소재로 한 병풍을 선보였다. 공간을 나누고 그 성격을 규정하는 사물에 일월오봉도를 입혀 철이라는 소재로 풀어냈다.그는 큰집에 제사를 지낼 때 뒤에 세워진 병풍을 보고 공간과 장소에 따라 상징과 쓰임이 달라지는 점이 흥미로웠다며 처음에는 철판에 명암과 입체를 표현하는데 애를 먹었지만 플라즈마 절단기와 가우징 기법을 통해 철판의 표면에 열을 가하고 깎아 그림을 그리듯이 작업했다고 설명했다. 순수예술에 대한 선호도가 줄어드는 가운데 그는 끊임없는 작품 활동으로 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 그는 내년 하순을 목표로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다. 편지 봉투를 박스화해 운석처럼 나타내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광활한 우주에서 날아와 지구에 떨어지는 운석을 다른 우주에서 보내는 메시지로 설정했습니다.개인전은 작가의 이야기라는 그는 학부 때 했던 큐브 작업도 계속 발전시키고, 상상한 사물과 함께 메시지를 담은 작품을 하고 싶다며 작품활동은 자아를 찾는 과정으로 다양한 소재의 작업을 병행하겠다고 밝혔다.
국가기관이 휘두르는 공권력의 이면이 주요 관심사입니다. 약자인 개인이 아무리 바둥바둥 뛰어도 무너질 수밖에 없는 이야기에 공감을 얻고 싶습니다.생애 첫 장편 사선의 끝의 후반작업이 한창인 이은상 감독(30)은 지역을 기반으로 영화를 제작하고 있다. 지난 2008년 졸업작품인 단편 아파트를 시작으로 다문화가정을 다룬 짝퉁엄마, 군대문화를 소재로 한 복날을 거쳐 장편에 도전한다. 사선의 끝은 군산을 배경으로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일하는 40대 초반 남성의 이야기다.이 감독은 공권력 내부의 부조리, 비리 등을 재료로 했지만 이는 수단이고 진짜 이야기는 사람이다며 인물이 심경의 변화를 느끼거나 아픔과 기쁨 등 인간 본성이 지닌 정서를 화면에 구현해 관객과 소통하길 바란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콘티작업을 하다보면 주인공이 멍하니 개미가 지나가는 땅을 바라보는 장면이 들어간다면서 집단에 속해 있지만 사회적 약자로 홀로 존재하는 현대인을 상징한다고 덧붙였다.그는 우석대 연극영화학과를 졸업하고 지난 2008년 전주 MBC 영화제 우수상, 제7회 동해아시아 청소년 영화제 대상을 받았다. 2012년 제12회 전북 독립영화제 관객상, 제6회 상록수 다문화 국제단편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하며 실력을 쌓고 있다. 그에게 영화감독은 자연스러운 길이었다. 맞벌이하는 부부의 외아들로 초등학교부터 중학교까지 하루 2~3편의 영화를 보는 시네 키드(cine kid)였다. 부모님께서 집 근처 비디오 가게에 말씀을 해놓아서 어릴 적 성룡, 장 클로드 반담, 스티븐 시걸 등이 나오는 액션 영화를 대부분 섭렵했습니다. 고등학교 때도 영화제작 동아리를 만들어 첫 단편을 학교 축제 때 상영했습니다. 막상 영화감독이라는 직업을 택했지만 현실의 난관은 지속되고 있다.그는 모든 영화감독은 다음 작품에 대한 기약이 없다는 점이 최고의 난제다며 지역의 배우들은 대부분 각 극단의 공연과 부가적인 직업을 병행해 섭외에도 한계가 있다고 토로했다.촬영 현장에서도 통제 불가능한 상황이 벌어지기 일쑤다. 단편 봄날에서 주인공이 개를 앞에 태우고 오토바이를 타는 장면을 찍기 위해 사람 일당보다 비싼 35만 원의 거금을 주고 골든 리트리버를 어렵게 구했다. 하지만 개가 자꾸 오토바이에서 뛰어내려오는 바람에 하루종일 애를 먹기도 했다. 그도 대부분 영화감독이 지닌 꿈인 작가주의를 고집하면서도 상업성을 갖춘 작품이 목표다.그는 마니아층이 선호하는 작품인데 대중의 높은 호응을 얻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좋아한다면서 어둡고 심오한 이야기를 선호해 가끔 극장에서 상업영화를 관람하면 앞뒤 내용이 뻔하게 진행돼 졸기도 한다고 말했다.그는 차기작으로 전주를 배경으로 딸을 잃은 아버지의 이야기를 기획하고 있다. 또한 지역의 문화자원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콘텐츠 개발도 염두하고 있다.그는 전북은 콩쥐팥쥐, 선녀와 나무꾼, 흥부전, 춘향전 등 원형의 이야기가 풍부한 만큼 하나의 소스를 게임 스토리, 드라마 등 다양하게 소비하도록 만드는 콘텐츠도 개발하고 싶다고 밝혔다.
연극이 시작되기 전 캄캄한 무대에는 배우보다 기대감의 설렘이 먼저 오른다. 어떤 이야기와 사람이 나올지 궁금한 마음이 앞선다. 극작가 최정 씨(34)는 배우가 땀을 흘리며 표현하는 에너지는 감동으로 다가온다며 이는 아는 사람만 느끼는 희열이다고 연극을 예찬했다. 그는 지난 2002년 연극 숨길 수 없는 노래로 전북연극제 특별상(희곡부문)과 전국연극제 특별상(희곡부문)을 받으며 데뷔했다. 이듬해 뮤지컬 이화우 흩날릴 제로 고마나루 전국향토연극제 희곡상을, 2005년 연극 이등병의 편지로 같은 상을 받은 그는 내일이 더욱 기대되는 극작가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는 무용가 최승희를 소재로 쓴 연극 불꽃처럼 나비처럼이 공연됐다.현재 우리 사회에서 어떤 이야기를 함께 나눠야 할지는 계속 고민 중이다는 그는 게을러 매년 1편 정도의 작품을 선보여 부끄럽지만 생각한 것을 녹여내는데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고 말했다.그의 작품은 대체적으로 전통이나 설화 등에 기반을 두고 있다. 대학교 3학년 때 쓴 숨길 수 없는 노래는 바리데기 이야기를, 이화우 흩날릴 제는 조선시대 문인 이매창을 모티브로 했다.그는 묻히기 아까운 옛이야기에서 착안해 동시대성을 결합한다며 좋아하는 작품은 인물, 특히 여성이 두드러지며 가족의 이야기는 잊히거나 소외된 사람을 다룬다고 자신의 창작관을 밝혔다. 그는 이어 에둘러서 전개하다보니 너무 문학적이고 어렵다는 이야기도 듣는다며 사실주의 연극을 별로 선호하지 않는데다 일상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재미있게 풀어내는 데는 별로 소질이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고등학교 때 연극반 활동을 하면서 업계에 입문했다. 당시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보고 살아있는 매력에 빠졌다. 극작으로의 데뷔는 시험을 보고 싶지 않은 순수한(?) 학생의 마음이 계기가 됐다. 전북대 국문과에 재학했던 그는 희곡 창작 수업을 듣던 중 담당이었던 곽병창 교수로부터 희곡을 창작해 제출하면 시험을 면제해 주겠다는 말에 덜컥 발을 들였다.그는 원래 희곡을 쓰겠다는 마음은 없었는데 중간기말고사를 다 안 보고 희곡을 제출했다며 처음 썼는데 선생님이 재미있게 읽어보셨다고 연극에 관심이 있으면 시립극단에서 실전을 공부하라고 권유했다고 들려주었다. 그는 이후 전주시립극단에서 국문과 학생이라는 이유로 대본 정리를 맡았고 공동 창작 작업에도 참여했다. 이후 민간 극단에 입단해 연출을 배워보고 싶었지만 역시 전공에 따라 대본쓰기를 권유받아 시작했고 첫 작품으로 상을 받았다.그는 극작을 전문적으로 공부를 하지 않고 습작이 없는 점이 콤플렉스다며 3년 전 너무 기본이 없다는 고민과 회의가 들기도 했다고 귀띔했다. 그는 아울러 희곡은 모두 설명하지 않고 빈 곳이 많다며 나머지는 배우랑 연출이 채우고 최종적으로는 관객이 메운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 2009년 같이 희곡 읽기를 하던 연출배우와 함께 극단 T.O.D(티오디, Truth Of Dram)랑을 창단해 매년 창작극을 올리고 있다. 실험적인 작품을 자유롭게 시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에는 낯선 소리연극을 시도해 낭독형식으로 선보였는데 반응은 안 좋았다며 왜 배우가 앉아서 소리만 내냐는 비판을 받고 2~3번 하고 말았는데 2~3년 지나 붐이 일었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연극은 관객의 반응이 즉각적이어서 공연 중 대화나 박수 소리만 들어도 판단이 된다는 것.그는 극단 티오디랑과 함께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성장하고 있다. 그는 신생 극단이라 욕을 먹더라도 하고 싶은 연극을 하자는 다짐을 한다며 머릿속에서 구현한 장면을 글로 옮겼는데 실제 연습할 때와 달랐을 때 처음에는 화도 났지만 배우와 연출에 대한 믿음이 부족했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가을쯤 다음 작품을 내놓을 계획이다. 무게를 조금 가벼이 한 우리 시대의 바리데기 이야기를 구상하고 있다. 그는 극장 안에서만 한 시간 반 정도 소비되는 작품이 아닌 극장 밖에서도 기억되는 작품을 하고 싶다고 소망했다.
하얀 여백을 배경으로 똑같은 창문이 늘어서 있다. 하지만 유리창 안, 삶의 모습은 제각각이다. 화분을 가꾸거나 새를 키우거나 책을 읽는다. 사람은 없지만 사물을 통해 삶을 미루어 본다. 잿빛 도심도 속살을 들여다보면 따뜻함이 스민다. 창문 밖 상막한 콘트리트에는 풀이 자라고 기린이 서 있다. 도시화와 현대화를 상징하는 아파트에도 생명이 핀다.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이보영 작가(29)는 사적인 삶의 공간에 있는 사물을 통해 소통을 이야기한다. 빠르게 변하는 현대사회에서 소외된 인간의 모습에 주목했다. 한국인의 60% 이상이 거주하는 공간에 대한 성찰과 그것이 만들어 내는 풍경을 간결하게 묘사하며 혼자가 아님을 나타내고 있다. 그는 감정 경험을 사물로 재조합한다. 아파트 창문 안과 밖에 놓여있는 사물은 한 개인의 경험과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주인과 함께한 라디오, 여행가방, 음료수, 책, 장화 등의 물건은 개인의 과거와 현재를 볼 수 있는 대상이다. 특정 사물을 보면서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고 주변 사람을 연상하는 자체가 소통의 시작입니다. 외부와 내부를 연결하는 창문처럼 제 그림을 보고 다른 누군가를 생각하는 여유를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한국화를 전공한 그는 순지 또는 장지에 한국화의 채색 재료를 쓴다. 장르에 대한 경계를 경계하며, 포근한 느낌을 주기 위해 한지를 고집한다. 그림과 실제 이미지가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는 그의 말처럼 화폭에서 나오는 동화적 감성은 평소 그의 인상과 맞물린다. 그는 대학교 졸업 즈음 아파트라는 소재에 집중했다. 그는 예전에 살던 아파트에서 방의 창문을 열면 앞 동이 그림처럼 딱 평면으로 보였는데 어느날 그 안에 들어있는 각기 다른 이야기가 궁금했다면서 처음에는 방 창문에서 관음증에 걸린 사람처럼 사진을 찍다 저녁에 플래시가 터져 앞 동의 거실에 있던 이웃이 놀라는 모습을 보고 숨기도 했다고 들려주었다.그는 이어 지금은 기억 속에서 사물을 재조합한다면서 기린은 초식동물이 지닌 친근함과 온순함을 주기 위해 즐겨 넣었는데, 1차원적으로는 긴 목으로 아파트의 1층부터 위층까지 관통할 수 있어 선택했다고 덧붙였다.그림이 점점 단순해진다는 평가에 대해 그는 처음에는 보이는 것을 담고 다양한 색을 칠했지만 점점 묘사에서 나아가 생각을 더하면서 간결성이 커졌다며 최근에는 차가운 회색의 벽에 대한 반대 급부로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아이들의 울음소리와 이웃간 소소한 말다툼 등 사람 사는 모습을 그려내고 싶다고 말했다. 이보영 작가는 전주예고, 전북대 예술대학 미술학과, 동 대학 교육대학원 미술교육과를 졸업하고 전북대 미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05년과 2006년 온고을 미술대전 입선, 2009년과 2010년 한성백제미술대전 장려상을 수상했다. 2010년에는 art INCULTURE(아트 인컬쳐) 주관 신진작가 육성 프로그램인 동방의 요괴들에 선정됐다. 올 전북도 해외전시지원사업에 꼽혀 오는 10월1일 뉴욕 첼시에서 7번째 개인전을 열 예정이다.
본격적인 연습에 들어가기 전 풋워크(Footwork)로 몸을 푼다. 바닥에 손을 짚고 음악에 맞춰 한쪽 다리는 펴고 다른쪽은 접은 상태를 번갈아 가며 제자리에서 돌았다. 구르기와 돌기를 반복하는 업락(Uprock)에 이어 손목으로 몸을 떠받치며 순간 정지 동작인 프리즈(Freeze)를 구사했다. 다른 켠에서는 5명이 거울 앞에서 간격과 줄을 맞추며 서로의 움직임을 확인하고 있었다. 평일 각자 연습을 하다가도 주말이면 어김없이 모두 모인다. 지난 12일 오후에 찾은 전주시 완산구 태진로 청소년문화의집 강당에서는 비보이팀 소울 헌터스(Soul Hunterz)가 오는 6월 말 있을 댄스컬 공연 연습에 한창이었다. 소울 헌터스는 군복부 중인 팀원을 제외하고 현재 강장원(23), 문원진(24), 박홍혁(23), 양지원(22), 이준용(22), 이지훈(25), 최상철(25), 한솔(23), 허경구(22) 등 9명이 활동하고 있다. 지난 2006년 팀이 결성돼 내년에는 10년차 비보이 그룹이 된다. 힙합의 4대 요소 가운데 벽화 미술인 그래피티(Graffiti) 아트를 제외한 스트리트 댄스인 비보이(B-Boy), 노래를 선곡하는 디제이(DJ), 노래하는 랩퍼(MC)로 역할도 분담하며 전국을 누비고 있다. 지난해에는 KBS전국노래자랑 상반기 결선 대회의 시작 무대를 꾸미기도 했다. 대표인 문원진 씨는 행사가 많을 때는 한달에 20차례 무대에 선 적도 있었지만 지난 2012년부터는 공연 횟수를 줄이고 대회나 연습에 중점을 두고 있다며 그냥 춤이 좋아서 시작했는데 지금은 좀더 진지하게 파고들고 문화 자체를 즐기게 됐다고 말했다. 박홍혁 씨는 공연을 적게 하니까 아무래도 에너지를 받을 수 있는 관객과 만나는 횟수가 줄어 조금 아쉽기는 하다면서도 공연만을 위한 팀이 아닌 만큼 실력과 경력을 쌓아 더 나아진 모습을 보여줘야 장기적으로 팬심을 얻을 수 있다고 보탰다.6년에서 10년 가까이 춤을 춘 이들은 팀원의 개성을 추구한다. 이지훈 씨는 남들이 하지 않는 고유한 동작을 개발연습해 변형된 무브(move)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팀 색깔은 개인의 색깔이 뭉친 것으로 개성을 인정할 때 나온다고 설명했다.강장원 씨는 유행을 따라가지 않고 기본에 충실하면서 힙합 문화 자체를 즐겨야 몸에서 품어져 나오는 에너지를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준용 씨도 2~3개월이면 어느 정도의 기술은 가능하지만 미국 뉴욕에서 시작한 힙합 정신을 이해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자유로운 표현으로 한계가 없고 다른 장르의 동작도 차용할 수 있는 점이 가장 매력이다고 덧붙였다. 소울 헌터스는 전주를 대표하는 팀이지만 비보이에 대한 사회적 인식에는 서운함을 나타냈다. 최상철 씨는 한때 대중매체에서 비보이를 문화 첨병으로 조명하면서 상업적으로 화려한 것처럼 노출하다가 어느 순간 거품이 꺼지고, 지원이나 대회도 적어졌다며 사회적으로 춤 추는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은 버겁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비보이 공연을 흔하게 접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재능기부를 했는데 이를 악용하는 사례도 종종 있었다며 병원의 환우를 위한 행사인 줄 알고 갔는데 특정인이나 단체를 위한 자리였다고 들려주었다.오는 6월 말 경찰과 도둑을 주제로 댄스컬 공연을 앞둔 이들은 비보이 문화가 인정받는 환경을 바랐다. 문 씨는 후배들이 많이 생기고 비보잉이 문화의 한 장르로 인식되길 바란다며 앞으로 관객의 마음을 훔치는 무대를 선보이겠다고 밝혔다.
연기에서 극작연출까지 지평을 넓힌 극단 무대지기의 김정숙 대표(38). 그는 지난 1월14일에서 26일까지 서울 대학로 예술극장 소극장에서 959-7번지로 공연을 펼쳤다. 지역 극단이 예술극장 소극장을 정기 대관한 사례가 드물어 도내 연극계에서 화제가 됐다. 김 대표는 비수기인데도 공연 기간 2주 동안 객석이 거의 찼었다며 편견 없이 우리 작품을 평가받고 싶은 마음에 예술극장 소극장을 신청했는데 이전 수상 경력이 좋은 평가를 받아 당시 공연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유명한 극작가인 김정숙 씨의 작품인 줄 알고 관람한 사람들도 있어 놀림을 받기도 했지만 공연이 호평을 받아 만족스러웠다고 덧붙였다.959-7번지는 가족극이다. 김 대표는 주변에서 겪을 법한 일을 무대에 올린다. 그는가장 잘 할 수 있는 게 주변 이야기로 장점이자 한계이다면서도 대부분 사람들은 불행하다고 생각하는데 무대 위에서 소소한 일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삶이 얼마나 가치있는지 공감대를 형성하는 작품을 추구한다고 설명했다. 20년간 연극인으로 살아온 그에게 연극은 일상이다. 고교시절 연극 동아리 활동이 기화였다. 졸업 뒤 창작극회에 입단해 본격적으로 배우 생활을 시작했다.고등학교 1학년 때는 형식적인 동아리로 앉아서 책을 보는 게 전부였습니다. 2학년 때 담당 선생님이 바뀌면서 축제 때 공연을 해보자는 목적으로 기린극회 소속 단원으로부터 별도로 연기를 지도받았어요. 그때 활동했던 또래 가운데 너댓명이 같은 업계에 종사하고 있습니다.그는 지난 2003년 8월 무대지기의 전신인 좋은연극만들기추진위원회를 결성해 동료들과 1년에 1번씩 무료공연을 했다.지금 생각하면 굉장히 거창한 이름었습니다. 2006년 극단으로 가느냐 동아리로 남느냐에서 창단을 선택했습니다. 그해 8월에 무대지기로 이름을 바꾸고 창작극 위주의 공연을 하고 있습니다.그는 극단은 유지를 위한 단체가 아닌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만큼 수익을 남기지 않고 대부분 재투자한다면서 기존 작품이라도 재각색으로 더 좋은 극을 만들어 새로운 재창작을 하는 게 우리 극단의 색깔이다고 들려주었다.극작을 하며 스스로를 치유한다는 그는 고등학교 아이들에게 연극을 가르칠 작품을 고르다 직접 대본을 쓰게 됐다. 중학교 때 글을 써서 친구들에게 보여주는 걸 좋아했다는 그는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극작에 나선다. 이후 지난 2010년 6월 제28회 전국연극제에서 안세형 연출의 눈 오는 봄날이 대통령상, 희곡상, 연출상, 최우수연기상을 받았다. 이어 연출까지 겸해 지난해 4월 제29회 전북연극제에서는 959-7번지로 우수작품상, 연출상을 수상했다.그는 글은 마음과 손으로, 연기는 감정과 몸으로 표현 방법만 다를 뿐이다며 깊이를 더하는 일이 숙제로 단순한 이야기보다는 한 인물이 형성되는 상황을 좀더 세밀하게 그려 본질을 찾는 작품을 지향한다고 말했다. 쌍둥이 엄마이기도 한 그가 꾸준히 작업을 할 수 있는 요인 중 하나는 가족의 든든한 지지다. 시아버님은 연습 때마다 회식비도 주시고, 지인을 제 팬으로 만들어 주시기도 하셨어요.오는 6월 눈오는 봄날을 다시 공연하는 그는 기억에 남는 1개의 작품을 남기고 싶다며 현재는 이를 위한 연습으로 좀더 훌륭한 연출자와 무대지기의 브랜드가 되는 대표작을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김정숙의 작품은 괜찮다 라는 말을 듣고 싶다며 호불호가 갈리지 않고 누구나 공감해 추천을 고민하지 않는 공연을 선보이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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