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4-12-01 16:38 (일)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문화 chevron_right 이승수의 '힐링시네마'

[45. 캐롤] 나는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려워 술을 마셔

‘리플리 증후군(Ripley Syndrome)’이란 자신의 현실을 부정하면서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허구의 세계를 진실이라 믿고 상습적으로 거짓된 말과 행동을 반복하게 되는 반사회적 인격 장애를 말한다. 영화 「리플리」의 주인공 ‘리플리’는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거짓 자기로 분장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는 아들을 찾아달라는 선박부호의 부탁을 받고 상류 사회로 뛰어든다. 그곳에는 평생 써도 바닥나지 않을 재물, 아름다운 여인, 달콤한 인생, 자유와 쾌락이 널려있었다. 리플리는 그곳에 머물기 위하여 갖은 악행을 서슴지 않는다.영화를 관람하는 동안 관객은 스크린에 투사되는 허구적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내부에 있는 감춰둔 욕망과 마주한다. 영화는 상징, 은유 등으로 무장하여 관객의 깊은 곳까지 속속 파고든다. 끝내 관람자가 부인하는 감정과 만나고 나서 고개를 든다. 영화 「캐롤」을 보면서 리플리 증후군을 떠올렸다. 영화 원작이 리플리를 탄생시킨 작가 ‘패트리샤 하이스미스’ 인 점도 있고, 사람이 꿈을 잃었을 때 어떤 행태를 보이는가에 대한 궁금증이 컸는데 영화가 리플리를 환기했기 때문이다.영화는 시작과 함께 암시하듯 한 시퀀스를 보여준다. 담배 연기 자욱하고 시끌벅적한 술집 장면이다. 대여섯 명이 둘러앉아 술 마시는 탁자가 클로즈업된다. 한 청년이 말한다. “나는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려워 술을 마셔!” 그러자 다른 사람이 잇는다. “나는 깨어있는 시간이 무서워 술을 마셔”라고. 내일과 깨어있는 시간은 지금 술 마시는 시점에서 보면 미래다. 결국, 미래가 두렵고 무서워 술 마신다는 이야기 아닌가. 그렇다면 지금이 최선이라는 이야기인가? 글쎄다. 술 마시기 직전 상황의 연장선에 있는 다음 시간에 대한 부담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영화적 느낌으로 술집은 삶의 정거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음 시간으로 가기 위한 대기소. 거기 웅성거리는 수많은 사람은 대부분 전에 탔던 차를 탈 것이다. 1950년대 미국 뉴욕. ‘캐롤 에어드’(케이트 블란쳇 분)는 4살 난 딸아이를 둔 주부다.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남편과 맞지 않아 이혼소송 중이다. 남편 ‘하지’는 이혼을 원하지 않는다. 아내의 동성애적 성향을 문제 삼아 아이의 양육권은 물론 면접권도 허락하지 않겠다며 버틴다. ‘테레즈 벨리벳’(루니 마라 분)은 사진작가를 꿈꾸는 맨해튼 백화점 인형코너 점원이다. 결혼을 원하는 남자친구가 있지만, 썩 내키지 않아 갈등하고 있다. 어느 날 캐롤이 백화점에 물건 사러 갔다가 테레즈와 만난다. 둘은 서로 강한 눈빛을 교환한다. 크리스마스 휴가. 하지는 캐롤에게 아이와 함께 플로리다에서 시댁 식구들과 함께하자고 말한다. 거절하는 캐롤. 딸을 데리고 떠나는 남편 차 뒤에서 심란해 하던 캐롤은 테레즈에게 동·서 횡단 여행을 하자고 제의한다. 흔쾌히 대답하는 테레즈. 저돌적이고 무모하다 싶은 여행이 시작된다. 태연을 가장하는 것일까. 침묵 속에서 교환되는 미소는 다소 어색하기까지 하다. 밀려드는 상념들…. 밤이다. 숙소 커튼이 닫히고 불이 꺼진다. 캐롤이 테레즈의 몸에 손을 댄다. 호응하는 테레즈. 둘은 서로의 몸을 탐닉한다. 리플리적으로 본다면 현실을 부정하는 이들은 동성애의 세계를 만들어 그곳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이들의 행태를 놓고 상상해 보자. 참자기와 거짓자기 그리고 이들이 원래 가던 길과 지금 들어선 길에 대하여. 전에 꾸었을 꿈까지 불러 모아 재료로 삼아보자. 담배 연기 자욱하고 시끌벅적한 술집을 연상해도 좋다.김은하 외 공저 〈영화치료의 기초〉에 의하면 ‘상상은 모든 담론에 자기(Self)를 투입하도록 한다. 이는 우리가 이미지를 볼 때마다 상상을 통해 다른 방식으로 상황을 지각하고, 태도를 수용하며, 통찰을 촉진하기 때문’이라고 푼다. 또 무어(Moore)는 시각적 은유의 사용이 관객(상담에서는 내담자)에게 더 영적인 수준에서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고 더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것으로 경험하게 한다고 주장한다.상상 후 아하 경험을 했다면 통찰이 왔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영화적 공감과 동정 속에서 자신의 생에 자발성을 갖게 되는 소중한 체험이 될 것이다. 모두 동성애라 말하지만 여행은 숨을 곳 없는 두 여인의 피난처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허영에 사로잡혀 거짓자기로 세상을 사는 우리 영화 「거짓말」의 주인공 ‘아영’의 반문이 머릿속에서 파문을 일으킨다. “넌 안 하니? 거짓말?”● 연재를 마치며우리의 오감은 세상을 지각하는데 있어 카메라와 마이크로폰과 같다. 자연히 무수히 많은 영화를 찍게 되는데 이를 내면영화(Inner Movie)라고 한다. 내면영화는 자신 안의 다양한 욕망과 무의식을 담고 있다. 영화를 본다는 것은 자신이 미리 저장해둔 장면들과의 만남을 의미한다. 한 편의 영화가 무엇을, 어디를 자극하는가? 이런 관점에서 2년여 동안 총 45편의 글을 게재했다. 최근 영화를 고르다 보니 오락과 미학적 측면이 강조된 점 없지 않다. 부족한 실력으로 메시지 전달에 급급하지 않았나 하는 자책 또한 크다. 혜량하여 주시기 바란다. 〈끝〉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전북지부장

  • 영화·연극
  • 기고
  • 2016.02.26 23:02

[43. 5 to 7] 당신 마음을 내 마음보다 소중히 여길게요

미국 뉴욕을 가장 잘 표현하는 글은 책이나 영화, 연극에서가 아니라 센트럴 파크 벤치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일정액을 공원 측에 기부하면 원하는 글을 벤치에 써 붙이도록 해 주는 프로그램 때문이다. 그곳에는 미래사랑추억 등에 관한 글이 많이 게시된다고 한다. 루드와 테드 50년째 연애 중, 매일 당신을 기억해요, 전쟁영웅복싱협회 회장 머리부터 발끝까지 뉴요커 이런 식으로 등받이에 새기는 것이다.「5 to 7」이란 영화가 여기 적힌 글에 천착한다. 모든 삶에는 엄청난 사건이 있어요라며. 영화는 당신 마음을 내 마음보다 소중하게 여길게요라는 글을 클로즈업하며 사연의 주인을 찾아간다.암호 같기도 하고 게임 같기도 한 영화 제목 「5 to 7」은 시간을 가리키는 숫자다. 5시에서 7시까지 2시간을 뜻한다. 영화는 프랑스에서는 배우자가 있어도 이 시간만큼은 간섭 없이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말한다.33살 파리 여인 아리엘(베레니스 말로에 분)은 영사관에 근무하는 남편 따라 뉴욕에 왔는데 하루하루가 낯설고 외롭다. 유일한 취미는 길가에 서서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사람을 구경하는 일이다. 24살 뉴요커 작가지망생 브라이언(안톤 옐친 분)은 수많은 출판사로부터 거절당하는 편지를 받아 방벽에 붙이는 게 일이다. 언젠가는 크로퍼드 도일 서점에 자기 책이 전시될 것이라는 꿈을 가지고 산다.어느 날 두 사람이 만난다. 담배 피우는 자리에서다. 여인은 남자가 시간의 주인공임을 직감하고 눈을 떼지 않는다. 힘차게 빨아들이면 찌직 소리를 내며 타들어가는 담뱃불처럼 둘은 순식간에 불덩이가 된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이들이 사랑을 나누면 불륜이 되는 것이다. 아리엘은 두 아이의 사진까지 보여주고 남편도 정부가 있다며 허락된 시간에만 사랑을 나누자고 제안한다.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 브라이언은 3주간을 고심하다 다시 나타난다. 아리엘이 아른거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것. 아리엘은 삶을 다른 시각으로 볼 줄도 알아야 한다며 호텔 방 키를 건네준다. 하루 또 하루, 두 시간짜리 데이트가 이어진다. 어느 때는 방, 어느 때는 센트럴 파크, 구겐하임 미술관, 쉐리-르만 와인샵 등에서 불을 지핀다.이들에게 사달이 난 것은 브라이언이 반지를 사면서 부터다. 청혼하기 위해서다. 여인은 고민해 보겠다며 돌아가고 얼마 후에 그의 남편이 나타난다. 확실하고, 명예롭고, 합의된 경계가 있다고요. 규칙을 지켜달라는 이야기다. 요지부동인 브라이언. 남편은 수표(25만 달러)를 건네주며 말한다. 아리엘을 부탁해요.그러나 아리엘은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인생이란 매 순간의 모음입니다. 그러니 가능한 한 무엇이든 많이 모아야 해요. 내 윤리를 존중받으려면 당신 윤리를 존중해야 하겠지요. 남편과 나는 결혼 전에 센트럴파크 벤치에서 언약했어요. 당신 마음을 내 마음보다 소중하게 여길게요 라고요. 편지를 보며 브라이언이 흐느낀다.세월이 흘러 브라이언도 결혼한다. 아이도 태어난다. 그토록 원하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작품명은 <인어>다. 디즈니 영화 「인어공주」에 나오는 주인공 이름 아리엘. 서점 진열대에 선 그의 눈에서 광채가 난다. 독백이 이어진다. 그녀는 나를 남자로 만들었고, 작가로 만들었다. 언제 또 그녀를 만날지 모르겠지만, 그녀가 옳았다. 추억이 영원하지 않다고 해서 그 가치가 퇴색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추억을 믿기로 했다.남의 여자의 남자, 남의 남자의 아내. 독약 같은 사랑으로 일본 열도를 울렸던 영화 「실락원」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당신을 이렇게 사랑하는데, 그 깊은 사랑이 불륜밖에 안 되네요. 사랑이 식으면 여자는 옛날로 돌아가고, 남자는 다른 여자에게 간다는데 정녕 그런가.영화 「파니 핑크」에 이런 대사가 있다. 미래가 네 앞에 있어. 과거와 미래가 함께하면서 가끔 너랑 대화할 거야. 좀 쉬라고. 휴식을 취하라고. 하지만 그 말 듣지 마. 그리고 시계는 차지 마. 항상 몇 시인지만 알리려 하니까. 항상 지금이라는 시간만 가져!시간, 사랑, 추억을 문장 하나에 묶어놓고 합성하려 드는 이 영화, 욕심도 많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확실한 게 있다. 이들은 반드시 지나간다는 것이다. 그것을 안다면, 소중함을 간직하고 싶다면, 과정에 여백을 남기라는 것이다. 아리엘의 두 시간처럼 말이다.사랑의 여백을 논함에 있어 한 가지 참고할 게 있다. 1994년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연구결과에 의하면 여자는 남자와 여자의 얼굴에서 슬픔을 알아차리는데 90%의 성공률을 보였다고 한다. 반면에 남자는 같은 남자의 얼굴에서 슬픔을 읽는데 90%의 성공률을 보인 반면, 여자의 슬픈 표정은 70%밖에 읽어내지 못했다. 남자는 여자보다 경쟁 상대인 남자의 얼굴에 더 큰 경계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전북지부장

  • 영화·연극
  • 기고
  • 2016.01.20 23:02

[42. 히말라야] "왜 산에 올라가요? 어차피 내려올 걸"

어차피 내려올 것을 왜 산에 올라가요? 산을 즐겨 다니는 내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죽으면 산에만 있을 텐데 왜 그렇게 산에 목을 매냐며 적당히 하라는 친구도 있다. 내려가기 싫을 때도 잦다고 하면 그럼 왜 내려오는데? 라고 반문하기도 한다. 그때 나는 말한다. 출발점이 여기니까. 어차피 산에 다니지 않는 사람도 어딘가 다녀와서 지금 이 자리에 있잖아라고.산악인이란 사실보다 산이 거기 있으니까 간다고 말해 더 유명해진 조지 멜러리는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에 간 목적이 하나 더 있었다고 한다. 아내의 사진을 정상에 두고 오겠다는 약속이 그것이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만든 더 와일디스트 드림(The Wildest Dream)이란 다큐멘터리 영화는 1924년에 에베레스트 정상정복에 실패한 것으로 전해지는 그와 동행자 어빈의 등정로(登頂路)를 쫓는다. 때는 1999년. 놀랍게도 원정대의 주역 콘래드 앵커는 이 등정에서 멜러리의 시체를 발견한다. 아내의 편지, 손목시계, 고글, 고도계 등이 그대로 품 안에 있었는데,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아내의 사진은 없었다. 그는 에베레스트를 정복하고 내려오는 길에 추락사한 것일까? 의문을 남겨둔 채 해설자는 말한다. 멜러리와 에베레스트와 아내( 루쓰)는 삼각관계였을 것이라고. 그는 아내 곁에 있을 때는 산을 생각하였고 산에 있을 때는 아내를 생각했다는 것.더 마운틴이란 영화는 1956년에 만들어졌는데,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형제의 이야기를 담는다. 에드먼드 힐러리가 에베레스트를 정복한 게 1953년의 일인데 3년 뒤에 이렇게 거창한 영화를 만들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은 정상 부근에 추락한 비행기 잔해를 찾아가는 것이 목적이다. 형은 동생 크리스 텔러(로버트 와그너 분)가 승객의 소지품을 노린다는 것을 알면서도 동생을 돌보기 위해 따라나선다. 형은 부상당한 미모의 인도여인을 구출하는데, 동생은 훔친 재물을 잔뜩 챙겨 내려오다 스노 브리지에서 추락사한다.요즈음 절찬리에 상영 중인 영화 히말라야는 히말라야 16좌 완등 기록을 보유한 산악인 엄홍길의 실화를 다룬다. 에베레스트를 정복하고 하산하는 길에 설맹으로 인해 불귀의 객이 된 박무택 대장, 백준호, 장민 등 3인의 시신을 찾아가는 휴먼 원정대 이야기다. 엄홍길 대장은 에베레스트 데스존(해발 7500m 이상의 높이를 일컫는 말) 어딘가에서 떨고 있을 후배들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원정대를 꾸린다. 그는 자신의 책 <8000미터의 희망과 고독>에서 나는 내 인생에서 후세 사람들이 오를 커다란 산 하나를 만들어 놓고 싶다. 그것이 내가 산에 가는 이유이고 살아있는 이유일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 산의 실체가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지만 아마도 산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는 이 세 사람은 그 일을 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주요 구성원들이겠지 싶다.이 영화는 왜 산에 가는가에 대한 답이 이처럼 분명하다. 그러나 기록도, 보수도, 명예도, 보상도 없는 길이기에 대원들의 의사결정에 자꾸만 의문이 인다. 인간애 때문일까? 옛 대원들은 엄홍길 대장이 일일이 찾아다니며 참여를 요청하자 생업도 중단하고 속속 나타난다.이들의 장도가 시작된다. 방송사까지 따라나서는 부담 큰 여정이다. 아이거 북벽을 오르는 영화 노스페이스를 떠올리게 된다. 얼어붙은 직벽을 한발씩 오르는 사나이들과 이를 호텔에서 망원경으로 지켜보고 또 카메라에 담으려는 사람들 이야기. 애인을 산에 올려 보낸 여기자는 동료에게 이렇게 쏘아붙인다. 사진 찍으러 온 게 아니에요.가파른 빙하를 넘고 크레바스를 건너고 밧줄하나에 대롱거리다 올라간 곳에 박무택 대장이 홀로 있었다. 꽁꽁 얼어버린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뭐라고 말 좀 해봐. 왜 여태 여기 있는 거야? 오열하는 대원들. 문제는 험한 산세와 기상악화로 운구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이때 베이스캠프까지 달려온 아내 수영(정유미 분)이 나선다. 그대로 산에 있게 해주세요. 박무택 대장이 양지바른 곳으로 이동한다. 대원들의 기도 속에 영면에 든다. 그가 정신을 잃기 직전, 눈과 구름으로 뒤덮여 장관을 이루는 산경(山景)을 보며 한 말이 메아리 되며 가슴을 친다. 경치 쥑인다.시인 TS 엘리엇은 이런 노래를 했다. 모든 탐험의 끝은 우리가 출발했던 곳에 당도하는 일이며, 처음으로 그곳이 어떤 곳인지 아는 일이다. 우리 삶에서 진짜 출발점은 어딜까? 영화 노스페이스에 너는 집에 가라. 너는 꼭 집에 가라.라는 대사가 나온다.영화 보면서 마음이 불편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럴수록 몰입은 커진다. 야속하게도 영화는 이를 해결해 주지 않는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다. 내안에 무엇인가 알아야 할 일이 있다는 이야기 아닐까?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전북지부장

  • 영화·연극
  • 기고
  • 2016.01.07 23:02

[41. 세상의 끝에서 커피 한잔] 대상 부재의 그리움, 커피로 형상화

요즈음 온 나라가 커피 열풍으로 뜨겁다. 도심은 한 칸 건너 커피숍이고 골목마다 커피 향이다. 사가기 용 종이컵 하나 들고 있지 않으면 이방인이 된 듯 뻘쭘할 때도 있다. 전문가에게 물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조금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사람들이 즐기는 것은 장소와 분위기입니다. 잘 꾸며진 카페를 찾아 오감 만족하자는 것이죠. 입맛 또한 자꾸 진화하니 선순환 하는 거죠. 맛과 향이 포인트인 줄 알았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커피가 문헌상에 처음 언급된 것은 10세기경 아라비아의 의학자 라제스가 저술한 의학서적이라고 한다. 거기에 커피 열매는 위장의 수축을 부드럽게 해주고 각성제로 좋은 약이라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옛날에는 커피 열매의 과육과 씨를 분리하지 않고 갈아 마시던 때가 있었다고 하니 격세지감이라 해야 할 것 같다.커피를 잘 모르던 시절,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보며 그 꽃에 정신을 빼앗겼던 적이 있다. 연한 운무 속에서 송알송알 피어나는 꽃은 우윳빛이었다. 광활한 대지 위를 쌍익 비행기가 날고 데니스(로버트 레드포드 분)와 카렌(메릴스트립)이 빨갛게 익은 커피 알맹이처럼 농익은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기다란 물통 가득 흘러내려 가는 저 알맹이들은 무엇일까? 알고 보니 과육을 벗겨낸 커피콩 이었다. 콩을 세척하고, 일정 시간 욕조에 담가 두는 것은 끈적거리는 과육 점액질을 제거하기 위함이란 것을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알게 되었다.우리나라 커피의 메카라는 강릉을 여행하며 다양한 맛을 음미해봤다. 강릉 커피 하면 일서 삼박 즉 한 명의 서 씨와 세 명의 박 씨가 회자한다. 그들이 경합하며 커피를 발전시켰는데, 지금은 박이추 한 분만이 남아 맛좋은 핸드드립 커피를 내려주고 있다. 안목항 커피 거리에서 해풍 쐬며 마시는 한 잔의 커피는 시름을 녹이기에 충분하다.무엇보다 커피는 기다림의 은유 아닌가 한다. 한때 우리는 이 답답함을 대중가요로 승화했다. 커피 한잔을 시켜놓고 그대오기를 기다려 봐도라던가 그 다방에 들어설 때에 내 가슴은 뛰고 있었지 기다리는 그 순간만은 꿈결처럼 감미로웠다등. 광고 문안도 빼놓을 수 없다. 배우 안성기 씨는 가슴이 따뜻한 사람과 만나고 싶다며 대중의 감성을 자극했다.최근 <세상의 끝에서 커피 한잔>이라는 일본영화가 우리 곁에 머물고 있다. 영화는 일본의 땅끝 마을이라는 이시카와 현 오쿠노토해변이 무대다. 네 살 때 부모의 이혼으로 아버지와 헤어졌던 미사키(나가사쿠 히로미 분)가 어린 시절에 아빠와 함께했던 이곳에 와 배 넣어두던 창고를 개조해서 요다카라는 커피숍을 연다는 이야기다. 사람이라고는 홀로 남매를 키우며 사는 에리코(사사미 노조미 분)일가 뿐인 이곳에서 미사키는 로스팅(생콩을 볶아 맛을 생성하는 공정)한 커피를 택배로 배송하는 일을 주로 한다. 커피콩은 멀리 아프리카나 남미에서 와요. 여기는 손님에게 가기 전에 잠깐 들르는 곳에 불과하지요.로스팅 기계에서 뿌연 연기가 피어오를 때쯤이면 어김없이 한 잔의 커피를 내린다. 깔때기에 커피가루를 넣고 시계방향으로 타원을 그리며 물줄기가 끊어지지 않게 붓는다. 다 내리면 향을 깊게 들이마신 뒤에 한 모금을 입에 머금고 바다를 바라본다. 몇 년 전에 배 타고 나가 실종된 아버지를 생각한다. 언젠가 돌아오시겠지. 그때 아빠는 이 자리에서 기타를 연주해 주었다.커피숍에 에리코 일가족이 합세한다. 벌이가 변변치 못한 에리코가 카페 일을 돕는 것이다. 낮에는 애들의 담임선생님이 다녀갔다. 날이 어두워진다. 건물 모서리에 세워둔 외등에 불이 들어온다. 바다가 색을 바꾸고 구름이 자리를 잡는다. 달이 떠오른다. 외등, 바다, 구름, 달 그리고 미사키. 그들이 하나가 된다. 그 사이로 진한 커피 향이 피어오르면 그리움은 절정에 이른다.이 영화에는 남자가 등장하지 않는다. 미사키도 에리코도 아이들도 낮에 잠깐 들른 선생님도 동경에서 찾아왔다는 손님 두 명까지 모두 여자다. 영화는 대상 부재의 그리움을 커피 향으로 형상화 하려 든다.일련의 흐름은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화자 마르셀이 마들렌 과자를 홍차에 찍어 먹다가 갑자기 파도처럼 밀려드는 어린 시절 기억과 직면하는 모습과 닮았다. 소설은 이를 동일한 순간의 견인력이 아주 멀리서 찾아와 내 깊숙한 곳으로부터 부추기고 움직이고 끌어올리려 하고 있는데, 내 선명한 의식의 표면에까지 이를 수 있을까?라고 묻는 대목과 비슷하다. 조가비 모양(주름 잡힌)을 한 마들렌, 접힌 주름을 편다는 것은 과거의 부활을 뜻하는 것일 터. 결국 현실을 직시하는 투명한 기억만이 그리움 속에서 움츠리고 있는 주름을 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란 뜻 아닐지?제목을 다시 한 번 음미하자면 세상의 끝은 특정 장소나 위치일 뿐만 아니라 그리움의 뿌리랄 수 있겠다. 세상 끝에서 커피 한 잔 하실래요?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전북지부장

  • 영화·연극
  • 기고
  • 2015.12.23 23:02

40.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그냥 전처럼 사세요"

이혼 신청한 부부가 나란히 판사 앞에 앉아있다. 아내 씨민(레일라 하타미 분)은 딸과 함께 이민 가자는 것을 남편 나데르(페이만 모아디 분)가 반대하기 때문에 이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데르는 치매 걸린 아버지를 두고 이민갈 수 없으며 이혼에도 동의 할 수 없다고 반박한다. 딸의 장래를 위해서라는 씨민의 주장이 이혼 사유가 될 수 없다며 모두의 동의를 받아오라는 판사를 향해 씨민이 서글픈 표정으로 묻는다.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요? 판사의 강한 목소리가 화면 밖 음성으로 쩌렁쩌렁 울린다. 그냥 전처럼 사세요.치매 걸린 아버지 수발을 씨민이 도맡았을 것이라는 추정 아래 영화를 보게 된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들은 전처럼 살지 않는다. 수미상관(首尾相關)구조의 영화는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 엔딩에서 이들을 다시 판사 앞에 대기시킨다. 딸 테르메(사리나 파르허디 분)가 법원에 나와 아빠와 엄마 중 한쪽을 선택하라는 강요를 받는다. 영화는 이혼소송의 인과관계보다는 주요 등장인물의 답답하고 억울한 입장을 조명하려는 듯 보인다. 가족, 그들은 어떻게 살아왔는가. 위급한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가.정문자 외 3인 공저 <가족치료의 이해>에 의하면 어떤 가족이든 가족원의 상호작용을 반복적으로 관찰하다 보면 일정한 패턴이 있다고 한다. 구조적 가족치료에서는 이런 가족의 상호작용 패턴을 가족구조 개념으로 설명한다. 집이라는 물리적 공간이 일정한 구조로 되어 있듯이 가족의 상호작용도 일정한 구조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그 핵심이다. 대표적인 학자 미누친(Minuchin)은 가족이 내적외적 스트레스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재구조화 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만성질환자가 있는 가족은 그 가족원이 수행하는 기능이나 권력 일부가 다른 가족원에게 재구조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법원을 나온 씨민은 별거를 선언하고 친정으로 향한다. 나데르는 아버지와 곧 11세가 되는 테르메를 돌본다. 급한 나머지 임신한 라지에(사레바얏 분)를 간병인으로 고용하는데, 침대에 누워있지 않고 계속 돌아다니는 아버지를 모시는 게 큰일이다. 어느 날 아버지가 시내를 배회하는 장면이 포착되고, 라지에가 황급히 차도를 가로질러 가는 모습과 겹친다. 다음 날 아버지가 침대 봉에 한쪽 팔이 묶여 낙상한 채로 누워있다. 라지에는 보이지 않는다. 근무시간 중 잠시 집에 들른 나데르가 정신없이 응급처치한다. 다행히 다친 데는 없다. 라지에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병원에 다녀오는 길이지만 이를 숨긴다. 나데르는 아버지를 이렇게 해놓고 돈까지 가져갔다며 호되게 추궁하다가 나가라며 문밖으로 밀어낸다. 돈을 가져가지 않았다고, 신께 맹세한다고 결백을 주장하는 라지에의 울부짖음이 복도 끝에서 메아리 된다.다음 날 라지에가 유산했다며 남편 호얏이 불같이 항의한다. 라데르는 살인죄로 고소당한다. 그 역시 호얏의 폭력을 문제 삼아 맞고소하지만 싸움은 불리하기만 하다. 이때 씨민과 테르메가 한목소리로 나데르를 옹호하고 나선다. 가족의 상보적 역할이 이렇게만 강화된다면. 재판은 라지에가 아버지를 찾아 나섰을 때 거리에서 차에 치여 유산된 쪽으로 결론 난다. 라지에는 이 사실을 시인한다. 코란에 대고 맹세하건대 거짓으로 자기 이익을 추구할 수 없다며. 합의금을 받아 빚을 갚으려던 호얏의 계획이 수포가 된다.호얏의 소행인 듯 나데르의 승용차 앞 유리창에 커다랗게 구멍이 났다. 차를 타고 말없이 돌아가는 부부와 딸. 차 속도가 빨라지니 강한 바람이 들어온다. 깨진 유리창은 구멍 난 가족의 은유이지 싶다. 이 상태로 계속 달리면 바람만 드셀 것 아니겠는가. 시아버지는 핑계에요. 아버님은 이 사람 알아보지도 못해요라는 씨민의 말에 아버지는 몰라도 나는 아버지를 알아라고 응수하는 라데르를 보며 만감이 교차한다.구조적 가족치료는 가족체계를 세 가지 범주로 제시한다. 첫째, 경직된 경계선이다. 가족원이 너는 너, 나는 나 식의 지나치게 독립적인 태도로 서로를 대하는 것을 말한다. 둘째, 모호한 경계선이다. 너의 일은 모두 나의 일이라는 정체성이 모호한 경우를 말한다. 셋째, 명확한 경계선이다. 자율적이고 독립적이면서도 필요할 때면 서로의 안녕과 행복을 위하여 협동하고 의지하며 서로의 삶에 관여함을 말한다. 우리라는 집단의식과 함께 나라는 감정을 잃지 않는다.나데르 가족 4명, 라지에 가족 아이까지 3명. 이들은 모두 가족의 내적, 외적 스트레스 상황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경계선이 모호하니 하나같이 자기만 억울하다. 영화는 이렇게 답답한 상황을 만들어 놓고 해법을 제시하지 않는다. 날으는 양탄자에 실어 날려 버리기라도 할 듯 관계의 답답함을 촘촘히 엮고 있을 뿐이다.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전북지부장

  • 영화·연극
  • 기고
  • 2015.11.25 23:02

[39. 400번의 구타] 이 아이 어떻게 해요?

영화 어떻게 봐야 해요?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나는 영화치료 선구자인 비르기트 볼츠박사의 말을 전해주는 것으로 답을 대신한다. 의식적 자각 하에 보세요.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은 마음에 의해 변형되고 변화됩니다. 우리의 주의는 지각할 때마다 바뀌고, 이는 우리가 세상과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이 대개는 부정확하다는 것을 일깨워 주거든요. 탈무드에 이런 말이 있다. 우리가 본다고 생각하는 것이 보는 것이 아니며, 우리가 지각하는 것은 객관적인 대상이 아니라 마음의 반영이다.캐나다의 유명 소설가이자 영화평론가인 데이비드 길모어의 영화 보기는 좋은 본보기다. 그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 제시와 계속해서 영화 140편을 봤다. 이유는 이혼 후 둘이서 어렵게 살고 있는데 아들이 술, 코카인, 누드잡지 등에 깊이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급기야 제시는 학교를 자퇴한다. 길모어는 궁여지책으로 한 가지 제안한다. 마약은 안 돼. 오늘부터 나랑 일주일에 세 편씩 영화를 보는 거야.193㎝ 거구 아들이 아버지 옆에 바짝 다가앉는다. 길모어가 영화를 선택한 기준은 세 가지다. 좋은 영화, 고전영화, 매력적인 영화. 첫 번째 영화가 시작된다. 영화는 누벨바그의 주역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400번의 구타〉다. 이 영화는 처음 상영작이자 제시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영화다. 제목의 뜻은 400번의 매질이 아이를 어른으로 만든다.라는 프랑스 격언이라고 한다. 어린 시절 문제아였던 트뤼포 감독은 이 말을 무척 싫어했다고 한다.영화의 배경은 1950년대 말 파리다. 에펠탑을 롱 테이크로 비추던 카메라가 당도한 곳은 한 중학교 교실이다. 영화는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 틈에서 누드화가 돌아다니는 장면을 비춘다. 주인공 앙투안 드와넬(장 피에르 레오 분)이 사진을 받고 막 무엇인가 쓰려는 사이 선생님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벽을 보고 돌아서서 벌쓰는 앙투안, 벌은 쉬는 시간에도 계속된다. 휴식은 당연히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보상이야.선생님의 말이 천둥처럼 귓전을 때린다. 보상받지 못하는 그의 삶은 집에서도 마찬가지다. 엄마는 앙투안을 임신한 상태에서 재가했다. 지금껏 바람을 피운다. 의붓아버지는 자동차경주에만 몰두할 뿐 집안에는 관심조차 없다.앙투안은 절망의 나락에서 헤맨다. 거짓말 조퇴, 무단결석, 좀도둑질. 궁지에 몰린 끝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말했다가 호되게 당하고, 가출을 단행한다. 허름한 인쇄소 창고에서 자고 일어난 배고픈 새벽, 우유를 훔쳐 먹는 그의 앞길이 안개 자욱한 저 도시보다 더 뿌옇다. 아버지 사무실의 타자기를 도둑질하다가 들켜 소년원에 들어간다. 검은 배경, 검은 죄수복, 검은 아이. 영화는 암울함의 끝이 어디냐고 묻는다. 앙투안은 축구시합 중 탈옥하여 하염없이 내달린다. 영화는 아무 표정 없이 달리는 아이를 대사도 없이 4분이 넘도록 비춰준다. 바다에 다다른다. 평소에 동경했던 반가운 곳이지만, 지금은 길을 가로막는 야속한 곳이다. 돌아서는 아이의 얼굴을 화면 가득 클로즈업한다. 이 아이 어떻게 해요?앙투안은 학교에서 딱 한 번 바로잡을 기회가 있었다. 평소 발자크를 좋아해서 그의 소설을 열심히 읽었던 그다. 기말 작문시험에서 실력발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발자크의 소설 《절대의 추구》를 읽으면서 마지막 구절에 나오는 아르키메데스의 유명한 말 유레카(알았어, 바로 이거야!라는 뜻)를 보고 자신감을 갖는다. 그런데 선생님은 시험을 0점 처리한다. 너는 뻔뻔스럽게 표절을 했어. 아이는 울면서 가슴을 쥐어뜯는다.제시는 앙투안이 찾은 유레카를 보고 마음을 돌린 것일까? 그는 스스로 학교에 복학 한다. 길모어는 제시와 함께 한 상황을《기적의 필름클럽》이란 책에 일기처럼 적고 있다. 책이, 영화가 계속 머릿속에서 오버랩 된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티파니에서 아침을〉,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등 주옥같은 영화가 내 지난날을 반추하였기에 한동안 그 속에서 나오지 못했다.활기차게 걷고 있는 저 젊은 애. 내면의 방이 정말 어떻게 생겼을까? 내가 짐작이라도 할 수 있을까? 나 자신도 돌볼 수 없는 내가. 길모어의 독백이 계속된다. 우린 둘 다, 두려운 사람을 싫어하는구나. 우리 둘 사이에는 그런 일이 없었으면 한다. 세상과 정면으로 맞서는 방법을 알게 한 아버지 길모어는 끝으로 이렇게 말한다. 아이는 희망의 근육을 길렀고, 나는 묵은 상처를 씻어냈다.〈Singing In The Rain. 사랑은 비를 타고〉를 보다가 주제곡에 맞춰 텝 댄스를 췄을 부자의 정겨운 모습이 어른거려 눈물을 찔끔거리고 말았다. 소매를 당기는 듯한 영화의 유혹, 공명이다.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전북지부장

  • 영화·연극
  • 기고
  • 2015.11.04 23:02

[38. 인턴] 집안에 어른이 없으면 빌려라

1980년대 미국사회는 경제적으로 무기력증을 앓았던 시기로 전해진다. 1970년대 오일 쇼크 후유증과 일본 기업들의 급성장 등으로 인한 기업들의 경쟁력 약화. 올리버 스톤 감독 영화 <월 스트리트>는 이 시기를 탐욕의 시기라고 말한다. 금융가 고든 게코의 입을 통해 정의되는 요체는 돈이다. 돈은 잠들지 않아. 한쪽 눈을 뜨고 쳐다보고 있지. 질투도 심해서 신경 쓰지 않으면 아침에 사라지고 없어.시대의 무력증은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도 잘 나타난다. 나이 든 보안관 에드 톰 벨은 돈을 두고 살인을 서슴지 않는 젊은 광기 앞에서 속수무책이다. 보안관이면서 살인마 앞에 서지 못하고 계속 뒤를 따라다니고 있다. 배경음악도 사용하지 않고 둔탁한 음향효과로 대체하는 영화의 주 무대는 사막이다. 총 맞고 숨져가는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연신 물, 물이다. 건조하기 짝이 없는 노인의 피부, 무기력함, 사막, 물. 윤기 없는 경제 상황과 노인이 어쩌면 그리 잘 대비 되는지. 영화의 원제는 <노인을 위한 나라가 아니다>라고 하는데, 아니다를 없다로 바꾼 감독 마음도 건조해 보인다.30여 년이 흘렀다. 2015년에는 <인턴>이라는 영화가 나왔다. 70세 노인이 미국 기업의 경영에 깊이 참여한다. 놀랍게도 노인의 몸에서 윤기가 자르르 흐르고 있다.벤 휘테커(로버트 드니로 분)는 전화번호부 만드는 회사 임원을 지낸 사람이다. 정년퇴임을 하고 아내와 사별한 후 무력감에 사로잡혀 있던 중 잘 나가는 신생 인터넷 쇼핑몰 회사인 어바웃 더 핏의 시니어프로그램인 시니어 인턴에 참여한다. 정장 차림의 말쑥한 노신사는 자신의 노하우를 충분히 발휘해 나이 어린 여사장의 역량을 배가시킨다.30세 여사장 줄스 오스틴(앤 해서웨이 분)은 열심히 일해 200여 명이 일하는 회사를 만들었다. 규모가 커지다 보니 체제를 전면 정비해야 할 상황이다. 가장 큰 현안은 전문 경영인 영입 건이다. 주변에서 강권하지만 회사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싶지 않다. 그녀가 풀어야 할 난제는 이 뿐이 아니다. 잘 나가던 남편이 아내를 돕는다며 워킹아빠가 되었는데, 살림도 엉망으로 하면서 바람까지 피운다. 유치원에 다니는 딸은 엄마의 빈자리를 싫어하며 공부를 마다한다. 직원 인사관리 또한 종래의 일대일 방식으로 할 수 없는 상황이다.벤은 줄스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하나하나 조언한다. 일의 우선순위를 매기고, 유연한 의사결정을 지원하며, 있어야 할 곳과 있지 않아도 될 곳을 짚어준다. 사장과 함께 LA로 출장을 가는데, 비행기 1등 석에 앉아서도 노트북과 씨름하는 사장에게 순간을 즐기라고 조언한다. 사장 집에 뛰어 들어가 남편과 아이를 직접 만나 문제와 직면한다. 회의 시간에 늦어 발을 동동 구르는 사장을 태우고 지름길로 달려가 시간을 맞춰낸다. 그 길을 몰랐더라면? 지름길은 연륜의 은유이지 싶다.UCLA대학의 일본인 학자 윌리엄 오우치는 Z이론을 고안했다. 종신 고용을 기반으로 하는 일본경제는 70년대 이후 눈부시게 성장했는데, 중심에 있는 일본기업이 취한 경영방식을 미국기업이 강조하는 개인 책임과 결합한 이론이다. 일본기업이 강조하는 집단적 의사 결정, 장기적 평가와 승진, 종업원에 대한 전반적인 관심을 결합해 포드, 지엠, 인텔 등이 성공을 이뤘다고 전해진다.우리사회 시스템과 어르신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반퇴(半退)시대(퇴직하고도 은퇴하지 못하고 일을 계속하는 시대)란 말과 더불어. 이분들 과연 어디에 서야 할까. 우리 영화 <잉투기>의 말대로 계속 싸우게(ING + 鬪)해야 할까? 상대도 목적도 분명하지 않은 싸움을 자행하는 이들을 가리켜 영화는 잉여라 부른다. 그리스에 집안에 노인이 없으면 빌려라라는 격언이 있다고 한다. 지식 못지않게 지혜를 강조하는 말로 들린다.시사회에 나온 로버트 드니로의 주름이 깊다. 내 나이에 주연은 어려워요.라고 말하던 그다. 캐릭터에 취하다 보니 주인공이 미소년처럼 보인다. 그는 한 편의 영화를 통해 노인들을 청년으로 만들었다. 올해 초 뉴욕예술대학 졸업식에서 그는 이렇게 연설한 바 있다. 여러분은 이제 졸업을 하고, 맞춤 티셔츠를 입게 될 것입니다. 뒷면에 거절이라는 단어가 적힌 티셔츠를. 하지만 그 티셔츠 앞에는 다음(Next)이라는 말이 적혀있습니다. 원하는 배역을 얻지 못했다고요? 다음, 다음, 그래도 안 되면요? 그래도 다음입니다. 잊지 마세요.<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에서 나이 든 보안관 에드는 꿈 이야기를 한다. 꿈에서 아버지가 나타나 춥고 눈 쌓인 길을 자기를 지나쳐 달리더니 저 멀리서 불을 지피고 있더라라고. 춥고 눈 쌓인 길은 험난한 세상을, 불 피운 저 곳은 아버지가 먼저 가신 곳을 뜻하는 것이려니 싶다.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봤어요. 나는 그저 내 삶에 난 구멍을 채우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벤의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며 그 구멍의 크기가 어떻든 채우는 시도가 의미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 시대 이 땅에서 시니어 인턴 프로그램을 보고 싶다. 어르신들 몸에서 윤기 흐르는 모습을 보고 싶다.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전북지부장

  • 영화·연극
  • 기고
  • 2015.10.21 23:02

[37. PK:별에서 온 얼간이] 문명은 사실보다 거짓으로 만들어진 게 많다는데…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거짓말 할 줄 아는 사람과 할 줄 모르는 사람. 불가사의 한 게 이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뒤섞여 산다. 거짓말 탐지기란 게 있긴 하지만 용도가 따로 있다.진실은 시간이 흐르고 상황이 바뀌면서 변할 수도 있다. 당신만을 영원히 사랑할 거야., 나도! 철석같은 언약이 거짓인지 아닌지 확인하려면 이들이 죽을 때까지 지켜봐야만 한다. 거짓말쟁이는 있지만 정직 쟁이는 없다.영화 <거짓말의 발명>은 이 세상에 거짓말이 꼭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거짓말이 없으면 상상력도 허구도 없다며. 영화는 눈에 보이는 대로 평가하고 있는 그대로 표현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요양원은 오갈 데 없는 늙은이들을 위한 슬픈 곳이란 간판을 달고 있다. 호텔 프런트 여직원은 고객에게 하는 첫 인사가 인상이 안 좋으시네요. 한 아줌마가 이웃집 아기를 보며 하는 인사는 아이가 쥐새끼같이 생겼네요.다. 경찰이 음주단속 하는 것은 일도 아니다. 술 마셨어요?라고 묻기만 하면 된다.주인공 마크는 은행잔액을 속여 500불을 더 찾으면서 거짓말 능력을 보유하게 된다. 거짓말을 해서 카지노에서 돈을 따고, 시나리오를 써서 크게 성공한다. 문제는 뚱뚱하고 못생긴 그의 외모다. 애인이 2세를 걱정하며 결혼을 피한다. 돈으로 유전자를 바꿀 수는 없는 것일까? 우여곡절 끝에 결혼에 골인한다. 들창코에다 뚱보인 아들을 낳지만, 아이는 거짓말하는 능력을 가졌다.인도영화 는 주인공 PK(아미르 칸 분)가 지구에 들어와 이처럼 거짓이 난무하는 세상과 좌충우돌한다는 이야기다. 행색부터가 특이한 게 그는 옷을 입지 않았다. 솔직하다는 뜻일 터. 우주선에서 내리자마자 리모컨(우주선을 부르는 기기)을 강탈당하고 헐레벌떡 달려간 곳이 델리다.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리모컨을 찾는 길은 신께 의지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제단만 있으면 달려들어 빌게 되는데, 엄청난 혼란에 빠지고 만다. 신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욱이 신과의 만남이 부자(富者)는 자유롭지만 가난뱅이들은 줄을 서서 오래 기다려야만 한다. 그런 와중에도 천방지축 신(神)이란 신은 다 만나고 다닌다.신이 기도를 들어주지 않는다. 어찌 된 영문일까. 사람들은 그를 PK(술에 취했다는 뜻도 있음)라며 야유를 보내고 구박한다. 자신의 기행(奇行)을 추적하던 방송국 여기자 자구(아누쉬카 샤르마 분)의 도움을 받으며 신을 좇던 중 아주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는데, 사람이 만든 신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신도들이 신에게 거는 전화를 자기 들 쪽으로 착신전환 했다.사람들이 만든 신을 축출해야 한다. 그래야 진짜 신을 만날 수 있다. 세상에 신은 한 분입니다. 당신들이 만든 신 말고 당신들을 만든 신을 믿으세요. 사람들은 상대방 마음 읽어서 오해할 일 만들고, 그로인해 서로 시기하고 미워하는 일을 되풀이 합니다. 라며 하소연한다.도둑은 리모컨을 한 사이비 교주에게 팔아넘겼고, 교주는 이를 히말라야 산맥에서 기도하던 중 신으로부터 받은 성스러운 물건이라며 강단에 올린다. 급기야 방송국 스튜디오에서 난상토론이 벌어지고, 물건은 토론에서 승리한 PK에게 돌아간다. 자기별에 돌아간 그는 후에 지구로 향하는 종족들에게 당부한다. 지구 사람들은 생각하는 것과 말하는 것 사이에 차이가 있어. 그것을 거짓말이라고 해. 주의하라고. 신을 만나게 해주겠다는 사람을 만나면 그냥 유턴해서 최고속도로 달려.딴은 그렇다. 자기들(지구 사람들)도 헷갈리는데, 다른 별에서 온 사람이 함의를 무슨 재주로 알아차린단 말인가. 영화 <거짓말의 발명>은 이 세상 문명은 사실보다 거짓말로 만들어진 것이 더 많다.라고 주장한다. 자기 신이, 자기편이 진짜라며 목청을 높이는 사람들, 들. 그 속에서 난무하는 말, 말들.리플리 증후군(Ripley Synd rome)은 자신의 현실을 부정하면서 마음속으로 꿈꾸는 허구의 세계를 진실이라 믿고 거짓된 말과 행동을 반복하게 되는 반사회적 인격 장애를 뜻하는 용어다. 성취 욕구가 강한 무능력한 개인이 마음속으로 강렬하게 원하는 것을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사회 구조적 문제에 직면했을 때 많이 발생한다고 알려졌다.PK가 사는 행성이 궁금하다. 우리 행성에서는 거짓말 안 해요.라는 그의 말을 믿으려니 더 그렇다. 그가 속한 행성의 문명은 어떤 모습일까?영화 속 PK는 제 삼자를 말함이지 싶다. 나도 너도 아닌 3인칭 제 삼자. 나와 전혀 관련이 없는 존재가 나의 억압과 욕망을 터치한다. 내안의 나는 무엇을 진실이라 믿고 사는지,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자문자답하게 한다.내가 내린 결론은 스스로에게만은 거짓을 허용하지 말자.라는 것이다.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전북지부장

  • 영화·연극
  • 기고
  • 2015.10.01 23:02

36. 인디안 썸머 "지금 당신 삶은 얼마나 뜨겁습니까?"

이 지겨운 여름은 언제 끝나지? 영화라면 벌써 끝났을 텐데. 페이드아웃하면서 폭풍 불고, 정말 시원하게 끝날 텐데 말이야. 영화 <시네마 천국>에서 영사기를 돌리던 주인공 살바토레가 하는 푸념이다. 가을이 왔음에도 찌는 듯한 더위는 물러나지 않고 비좁은 영사실에서 쉴 새 없이 영화를 상영해야 하는 그의 처지는 꿉꿉함 그 자체다. 그가 말하는 더위에 공감이 간다. 딴은 우리나라도 입추, 처서 다 지나고 이제 가을이다 싶을 즈음에 등을 따끔따끔하게 하고 머리를 지끈지끈하게 하는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지 않던가. 선인들은 오곡백과를 잘 여물게 하는 고마운 햇볕이라고 했다.러시아에서는 이 뜨거운 기간(여름 끝 무렵에서 초가을로 들어서는 2주간 정도)을 바비레따라고 한다. 일각에서는 지나간 여름보다 더 정열적이고 아름답다며 제5의 계절이라 부르기도 하고. 한편 이 말은 중년여성을 칭하기도 한다. 가장 아름다운 시기의 여성이라는 뜻으로. 푹푹 찌는 여름 잘 견디고 더욱 농익은 모습으로 리뉴얼 하였으니 가히 잘 익은 과일에 비견할 수 있으리라.바로 이 뜨거움을 말하는 영화가 있다. <인디안 썸머>라는 영화다. 제목은 인디언 서머에서 따왔다고 한다. 사전 따르면 인디언 서머(Indian Summer)란 북아메리카에서 한가을부터 늦가을 사이에 비정상적으로 따뜻한 날이 계속되는 기후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라고 되어있다. 유럽에서는 이를 늙은 아낙네의 여름이라고 한다니 느낌의 차이는 커 보인다.영화 주인공 신영(이미연 분)은 자신의 삶이 한 번도 뜨거운 적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남들이 선망하는 의사의 부인이 되었지만, 남편은 신영에 대하여 항상 냉소적이다. 남편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어 자살 시도를 두 번이나 했다. 어느 날 욕실에서 남편이 사망한다. 둘이 몸싸움을 하다가 남편의 손에 들려있던 칼에 의해 그렇게 되었다.살인 혐의로 입건된 신영은 1심에서 사형 선고를 받는다. 찾는 사람도 없고, 말 거는 사람도 없는 감방에서 신영은 서서히 잊혀간다. 항소심. 신영은 변호를 거부한다. 재판이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을 무렵, 한 남자가 나타난다. 이름은 서준하(박신양 분). 국선변호인이다. 미심쩍은 부분이 많은 이 사건을 두고 서준하는 외국 유학까지 포기하며 변호에 진력한다. 사서 고생 하지 마세요. 그의 사무장이 하는 말이다. 준하는 아랑곳 하지 않고 치밀하게 변론자료를 준비한다.자꾸 나 때문에 애쓰지 마요. 살고 싶어지니까. 겨우 입을 연 신영의 입장은 단호하다. 집에 갇혀 지내다 폐소공포증까지 얻은 그녀가 가장 부러워하는 것은 버스 터미널이고 정류장이다. 표 주세요. 정류장에 내려서 갈 곳 향해 뛰고 싶어요. 그녀는 그렇게 길들여졌다. 아무 생각 없이 죽고 싶어. 신영을 구하기 위해 준하는 휴대전화기 배터리까지 빼 던진다.차츰 마음의 문을 여는 신영. 사람이 죽으면 천국에 가기 전에 들르는 곳이 있대요. 거기서 자기가 살았던 동안의 기억 하나를 선택하는 거예요. 그 얘기를 듣고 고민했어요. 가져갈 기억이 없으면 어떻게 하나 하고. 플라타너스 나뭇잎이 노랗게 물든 가을날, 신영은 원심대로 확정판결을 받는다. 서러워하는 이 하나 없는 길 위로 준하의 낮고 긴 목소리가 깔린다.겨울이 오기 전/ 가을의 끝에 찾아오는 여름처럼 뜨거운 날/ 모든 사람에게 찾아오지만, 그 모두가 기억하지는 못하는 시간/ 다만 겨울 앞에서 다시 한 번 뜨거운 여름이 찾아와 주기를 소망하는 사람만이/신이 선물한 짧은 기적 인디언 서머를 기억 한다/내가 그날을 기억하는 것처럼/기억한다는 건/ 그것은 아직 끝나지 않은 까닭이다.바비레따와 인디언 서머의 강렬한 볕은 푹푹 찌는 여름을 잘 버텨온 사람의 것 아닐까? 시네마 천국의 살바토레는 그 지겨웠던 여름의 기억을 부둥켜안고 노력하여 로마에서 영화감독으로 대성한다.영화에서 준하는 항상 운동화를 신고 다닌다. 사법시험 합격하자 아버지가 약한 사람 도우러 열심히 뛰어다니라며 사주셨단다. 이후 운동화는 그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그의 삶은 운동화로 인해 항상 뜨겁다. 신영의 정류장과 준하의 운동화가 묘한 대비를 이루며 클로즈업된다. 이들의 삶과 여름은 또 하나의 은유로 교차하며 다가오고.대장이 병사한테 물었어요. 여기 풍차가 있었던 것 기억나나? 네, 기억납니다. 풍차가 사라졌는데, 바람은 여전히 부는구나. 시네마 천국 살바토레의 스승 알프레도가 한 말 속에 지나간 여름이 기다랗게 걸려 있다. 여름이 없는 인생, 여름을 기다리는 인생.당신은 지금 바비레따에 살고 있군요.라는 연극이 있다. 권태, 우울, 허무감 등으로 삶의 의미를 잃어버렸다는 관객들과 배우가 춤판을 벌인다. 춤을 통해 자신이 얼마나 정열적이며 꿈을 지닌 존재인가를 알게 해 준다는 것이 연극의 목적이다. 영화와 연극과 춤의 역설(逆說)이 마음을 초여름으로 데리고 간다.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전북지부장△ 이승수 힐링시네마는 이번주부터 격주 목요일자에 게재됩니다.

  • 영화·연극
  • 기고
  • 2015.09.03 23:02

[35. 파울로 코엘료] 무언가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도와준다

영화 <파울로 코엘료>는 브라질이 나은 불세출의 작가 ‘파울로 코엘료’의 삶을 그렸다. 영화보다 더 영화처럼 살았다는 그의 이야기는《순례자》와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라있는《연금술사》가 나온 1980년대 후반에 이미 우리에게 알려졌다. 1947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중산층 가톨릭 집안 출신이다. 어린 시절부터 작가를 꿈꿨으나 부모의 반대로 불우한 청소년기를 보냈고, 아버지와의 불화로 편집증과 정신분열증을 보여 정신병원 신세를 졌다. 히피 문화에 심취하여 록 밴드로 활동하다가 잡지사를 창간하기도 했다. 극작가, 연극 연출가, 기자로 전업하기도 했지만 오래가지 못했고, 그런 중에도 작가의 꿈은 계속 키워나갔다. 이런 등등. 유독 우리나라에 애독자가 많다는데 영화를 통해 그 이유를 찾아보자. 영화는 그의 삶을 현장감 있게 조명하기 위해 네러티브의 시간과 공간의 재구성에 심혈을 기울인다. 현재 시점에 과거(청소년기와 40대 초반)를 불러들여 한 자리에 배치하는 기법을 쓴다. 그러니까 대표작 연금술사 출간 25주년(2013년 기준 그의 나이 66세)이 되는 시점에 그의 생에서 중요한 세 단계 삶을 한곳에 모아놓는 것이다. “성공이란 그것으로 무엇을 할지 아는 것이다.” 라고 말하는 그의 진짜 모습을 살피는 것과 상처투성이인 내면에서 어쩌면 그렇게 주옥같은 글이 펑펑 솟아나올 수 있는지. 근원을 찾는 것 또한 관심사다. 포스터에 노란색 화살표가 횡으로 그어져 있다. 영화가 시작되면 노란 화살표는 굵기가 작아지면서 종·횡으로 모였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현란한 음악과 함께 17세 반항아가 연극을 하고 노래를 한다. 40대 작가 지망생은 영적체험이나 신비주의에 몰입한 결과 환상 속에서 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남자의 조언에 따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순례를 떠난다. 이는 우리도 잘 아는 순례길 ‘카미노 데 산티아고’를 말함이다. 화살표의 의미가 길라잡이란 사실을 알게 되는 대목이다. 눈여겨봐야 할 것은 작가 지망생 코엘류만 이 길을 가는 게 아니고 이미 세계적인 작가가 된 장년의 코엘료도 다시금 이 길을 걷는다는 사실이다. “여행도 못 가고, 영화도 못 보고, 부탁한 타자기도 안 사주고….” 17세 반항아는 아버지를 향해 이렇게 원망한다. “꿈에는 대가가 따르지. 외교관, 기자, 공무원 좋은 직업이 얼마나 많은데 평생 글만 쓰는 사람은 없어.” 라며 아버지는 통금을 명령한다. 23:00 시 이전에는 반드시 귀가하라고. 아버지가 평생소원인 집을 건사하게 짓고 행복해하는 때 반항아는 통금시간을 어긴다. 대문이 굳게 잠겨있자 그는 현관 유리를 박살을 내고 유유히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근다. 아버지를 향해 ‘자본주의자’, ‘돈벌레’ 라며 손가락질을 한다. 음악가로 활동하던 시절에 말한 꿈이 평생의 목표가 된다. “지루함을 없앨 거예요. 세상의 모든 지루함을요.” 40대 초반에 길을 떠난 순례자는 예상치 못한 시련 앞에서 갈등했으리라. “나쁜 생각이 머리를 스치면 엄지손톱 위 살을 세게 눌러라. 사무치게 아플 때까지. 통증을 느껴라. 그러면 정신적 고통이 육체적 고통으로 바뀔 것이다. 나쁜 생각이 사라질 때까지 계속 눌러라…….” 연금술사에 나오는 “결국 이 세상은 하나다.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나서서 원하는 것을 얻도록 도와줄 것이다.”라는 명구는 이렇게 짓이겨 물러터진 상처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려니.아버지가 타자기를 사준다. 어깨춤을 추며 타자를 하는 코엘료. 엄마는 옆방에서 피아노를 친다. 아버지는 집 짓는 현장에서 삽질과 못질을 한다. 한 집안에서 울려 퍼지는 이 소리가 동시에 화음을 이룬다. 집안의 조화는 이렇게 이뤄져야 한다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중년이 된 아들 앞에서 아버지는 담담하게 말한다. “미안했다. 네가 자랑스럽다. 네가 집을 짓다니.” 그러자 아들은 “내 방식대로요.”라고 받아 넘긴다. 연금술사는 처음 찾아간 출판사에서 거절당한다. 집으로 돌아온 코엘료는 원고를 방바닥에 뿌려놓고 절규한다. 이때 계시처럼 들리는 소리가 있다. “번민하고 있을 때 가만히 주변을 둘러보라. 순간을 포착하라. 신은 우리에게 운명이 바뀌는 순간을 선물한다. 그 순간에 내린 결정으로 당신의 운명이 바뀔 것이다.” 코엘료가 한 장 한 장 원고를 줍는다. 연금술사는 1988년 5월에 다른 출판사에서 출간되고 지금까지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가 쓴 소설 30권은 80개국 언어로 번역되었고 25년간 1억 6500권이 판매되었다. 번역 출간 건수로는 셰익스피어를 능가한다. 지금 그에게 묻고 싶은 말이 있다. “당신의 성공으로 무엇을 했습니까? 많은 사람의 지루함을 없앴다고 생각하십니까?” 답변 대신 그는 이 말을 또 할 것 같다. “저기 사람들 보이지? 그들은 그저 숨만 쉴 뿐이야. 난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 오기(傲氣)와 근기(根器)가 그리고 영적신비와 순례에의 몰입이 그를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전북지부장

  • 영화·연극
  • 기고
  • 2015.08.14 23:02

[34. 한여름의 판타지아] 판타지를 현실화하려면 여행 떠나라

몇 년 전 여름, 중국 ‘샹그릴라’를 여행하면서 생각의 끈을 풀어놓은 적이 있다. 인류가 이상향으로 그리는 완전하고 평화로운 세계가 현실에서 펼쳐지고 있으니 그 속에 푹 빠져 상상의 나래를 펴보자는 심산이었다. 이렇게 판타지(기분 좋은 공상, 상상)에 빠져보다니,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신비롭고 마법 같은 세계를 만나보리라. 그러나 그것은 오산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릿속에는 ‘마이클 호프만’ 감독의 <한여름 밤의 꿈>이 떡하니 자리를 잡고 비켜주지 않는 것이었다. 여름의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는, 태양이 지고 어둠이 깔리면 신부의 옷자락처럼 육감적이고 신비로운 기운이 대기를 감싼다는 그 꿈 말이다. ‘네이버 캐스트’에 의하면 이 영화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한여름 밤의 꿈》을 바탕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여기서 한여름 밤이란 일 년 중 가장 낮이 긴 하지의 전날 밤이라는 것. 그 후 해마다 하지가 되면 무엇인가 신비로운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막연한 기대감에 하늘을 올려다보곤 한다. 올 하지에는 <한여름의 판타지아>라는 한·일 합작영화를 만났다. 판타지란 말에 화들짝 놀라 부리나케 영화를 열었다. 영화는 30대 중·후반쯤으로 보이는 영화감독 ‘태훈’(임형국 분)의 여름날 단상을 담고 있다. 무대는 일본의 지방 소도시인 고조 시(市)다. 그는 조감독 ‘박미정’(김새벽)과 함께 촬영에 적합한 장소를 물색하러 이곳에 간다. 둘은 젊은이들이 모두 도시로 떠나고 노인들만 간혹 눈에 띄는 ‘시노하라’라는 마을에서 흘러간 세월과 만난다. 영화는 1부와 2부로 나누어지는데, 1부에서는 그들의 하얀 기억을 복원하려는 듯 흑백으로 처리하여 깊이를 더해준다. 주점을 운영하는 노부부는 장사가 잘 되던 때와 쇠락한 지금을 비교하며 씁쓸해한다. 시청 공무원인 ‘유스케’는 한때 배우가 꿈이었다며 극단생활 이야기에 열을 올리더니, 안정적인 공무원의 길을 택했다고 힘없이 말한다. 마을을 안내하는 ‘겐지’의 첫사랑은 ‘요시코’다. 오사카에서 일할 때 만난 술집 종업원이 그녀를 닮아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며 첫사랑을 그리워한다. 한 폐교에 들른 태훈은 학교 복도에서 겐지가 나오는 단체 사진을 발견한다. 사진 한 곳을 주시하는데 수줍게 앉아있는 한 소녀가 보인다. 요시코임을 직감하지만, 설명은 이어지지 않는다. 2부가 시작되면 화면이 총천연색으로 바뀐다. 한국에서 혼자 여행 온 ‘혜정’(김새벽 분)이 여행 안내소에서 감을 재배하는 청년 ‘유스케’(이와세 료 분)를 만난다. 혜정은 영화배우다. 그녀 또한 이곳에 헌팅 온 듯 보인다. 태훈은 기억을 집으러, 혜정은 기억을 만들러 왔다는 생각이 든다. 유스케와 혜정은 말린 감 이야기 하며 이곳 사람들의 생활상 그리고 관광안내 등 지루하리 만큼 소소한 대화를 주고받는다. 그들이 걷는 골목길은 어디를 가도 텅 비어있다. 둘 사이의 틈은 이야기로, 텅 빈 길은 이들의 발자국으로 메우려는 시도일까. 가로등 불빛 여러 개가 길게 교차하면서 그림자보다 긴 여운을 남긴다. 둘은 찻집에 들어간다. 다시 시작된 감 이야기가 지루하다 싶을 무렵 유스케가 자세를 바꾸고 말한다. “남자친구 있어요?” 혜정이 즉각 답한다. “예!” 한참 후 둘은 다시 거리로 나선다. 유스케가 긴장한 표정으로 말한다. “내가 한국 가면 안내 해 줄래요?” 망설이던 혜정이 답한다. “예!” 전화번호를 적기 위해 혜정이 유스케의 팔을 잡는다. 맨살 위에 전화번호가 씌어 진다. 유스케가 혜정을 와락 껴안는다.태훈과 혜정의 여정은 그렇게 끝난다. 1부의 태훈, 2부의 혜정 이야기가 끝날 즈음에 고조 시 하늘에서 휘황찬란한 불꽃놀이가 벌어진다.감독의 판타지는 지나간 시간을 불러내고, 노인들의 회한과 만나고, 이글거리는 태양과 싱그러운 초록 사이로 흔들리는 나무들이 있는 세상에 머문다. 소녀가 처음 칠한 립스틱 색상 같은 석양, 이내 밤이 오면 이야기는 정점에 이른다. 감독은 2부를 시나리오 없이 촬영했다고 한다. 낯선 곳, 낯선 이야기는 그래서 더 신비롭다. 여기서 불꽃은 내면의 튀는 기운임과 동시 판타지의 화려한 실체 아닌가 싶다. 꽃처럼 피었다가 금방 사그라지는 불꽃놀이는 판타지가 찰나임을 증명해 주는 것이고.사람은 항상 판타지를 꿈꾼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판타지. 영화는 이를 꼭 잡고 싶으면 여행을 떠나라고 말한다. 헌팅을 하라고 권한다. 그것은 순감임을 잊지 말라며.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전북지부장

  • 영화·연극
  • 기고
  • 2015.07.31 23:02

[33. 심야식당] 그 곳에 가면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있다

일본영화 〈도쿄타워〉의 처음 내레이션은 영화가 선택하지 않은 공간에 대한 어필이다. “도쿄에 배척당해 고향으로 돌아간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찾아와서 돌아갈 곳을 잃은 나와, 그리고 도쿄에 이끌려와 돌아가지도 못하고 영원히 잠들어버린 내 어머니와….” 주인공 ‘마사야’(오다기리조 분)의 자신감 없는 목소리에 깃든 우수가 연민을 부른다. 팽이 심처럼 도쿄 한복판에 꼿꼿이 서서 사람 사는 모습을 샅샅이 지켜보는 타워, 눈이라도 되는 양 카메라는 서서히 시내 전역을 롱 테이크로 훑으며 얽히고 설킨 군상의 말 없는 말에 귀 기울인다.무작정 상경이 성행하던 70~80년대 우리나라 서울역이 떠오른다. 수많은 청춘이 상경과 낙향을 쉴 새 없이 반복하던 곳. 그때 남산 타워 아래 명동과 필동의 새벽은 구인과 구직인파로 북새통이 벌어졌다. 일자리를 얻지 못한 사람들의 한숨소리는 기적 소리에 섞여 빈 하늘을 찔렀다. 허기진 자들의 밤은 길었으리라.일본영화 〈심야식당〉을 보는데 영화 〈도쿄타워〉가 말하는 도쿄와 그때 내가 본 서울의 새벽이 묘한 대비를 이루며 다가왔다. 그 사람들 지금 잘살고 있을까? 눈물로 때웠을 국밥 그릇이 눈에 아른거렸다. 사멸된 시간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나다니. 이 기억을 어디에 써야 하나.영화 심야식당도 주인공의 내레이션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영업시간은 밤 12시부터 아침 7시경까지. 손님이 오느냐고? 그게, 꽤 온다니까!” 도시의 밤을 깨우는지 지키는지 모를 식당 간판이 올라간다. 기다리던 사람들이 식당으로 우르르 몰려 들어간다. 열 평정도 되는 홀이 꽉 찬다. 어미에게 먹이를 달라고 목청껏 소리를 지르는 새끼 새들처럼 이들은 저마다 목청을 돋우며 자기 음식을 주문한다. 주인 이름은 ‘마스터’(코바야시 카오루 분). 왼쪽 눈두덩 위로 칼이 지나간 흉터가 있어 과거를 묻고 싶게 한다. 그가 취급하는 주 메뉴는 돼지고기 된장국 정식, 문어 소시지, 계란말이 등이다. 하지만 손님이 원하는 음식이면 무엇이든 다 만들어준다. 영화는 인기메뉴 세 가지에다 몇 가지 사이드 메뉴를 첨가하여 선보인다. 인기 메뉴에는 에피소드가 하나씩 달려있다. 처음은 ‘마밥’이야기다. 시골에서 무작정 상경한 아가씨 ‘미치루’(타베 미카코 분)가 허기를 못 이겨 마밥과 몇 가지 음식을 주문해서 먹은 뒤 속칭 먹튀를 단행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온 그녀는 식당에서 잡일 하는 것으로 감사의 마음을 표시한다. 다음은 ‘나폴리탄’이란 이탈리아 음식이야기다. 한 갑부의 후처로 살던 미모의 여인은 나폴리탄을 즐겨 먹는다. 철판 용기 바닥에 달걀을 풀어 익히고, 숙주나물에 양파를 볶아 섞은 후 삶은 스파게티를 담고, 그 위에 토마토소스를 입힌 후 열을 적당히 가한 음식 말이다. 어느 날 갑부가 급사하고 유산을 못 받게 되자 매일 식당에 와서 신세타령 하다가 나사공장 영업사원으로 일하는 한 청년과 사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상속을 받게 되자 그 청년을 가차 없이 차버린다. 배신이다. 다음은 쓰나미로 부인을 잃은 ‘겐조’(츠츠이 미치타가 분)가 즐겨 먹는 ‘카레라이스’다. 새로운 사랑을 찾아 동경으로 날아온 그는 밤마다 카레라이스를 먹는다. 심야의 구애에 감동한 여인 ‘아케미’는 다음에 시골로 찾아가겠다며 그때 카레를 만들어 가겠다고 약속한다. 다시 사랑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는 톡 쏘는 맛(파, 양파, 향료가 든 카레가루)이 필요하다는 뜻이지 싶다.단골손님들은 누군가가 바닥에 슬쩍 놓고 간 유골함 처치문제를 놓고 고민하는데, 마음씨 착한 마스터는 절에 안치하고 제까지 올린다. 주인이 찾아가는 것으로 끝을 맺지만 단골손님들이 유골함에 대고 예를 표하는 게 이채롭다. 외로움에 치를 떠는 노총각, 50대 게이바 사장, 나이 든 스트리퍼, 조폭 간부…. 계란말이에다 사케 한잔, 밤을 잊은 자들의 향연은 날마다 계속된다. 계절이 한 바퀴 돌고 겨울이 온다. 영화는 서치라이트를 비치 듯 도쿄 시내를 쭉 훑는다. 배고픈 사람, 배 아픈 사람, 자는 사람, 잠 못 드는 사람, 밥 먹는 사람…. 카메라는 심야식당 옆 파출소에 가서 멈춘다. ‘코구레’(오다기리조 분)라는 경찰관이 눈을 맞으며 서 있다. 새벽 시간까지 쪼그리고 앉아 있다가 파출소를 찾는 사람에게 길 안내 하는 사람. 도쿄를 위해, 밤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 이 사람이야말로 밥 먹고 기운 차려야 할 것 같은데, 식당 출입을 하지 않는다.심야식당에 가면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 내가 원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일이 잘 풀릴 것 같다. 도피처이자 안식처다. 영화는 이 말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카모메 식당〉의 주먹밥, 〈달팽이 식당〉의 석류로 만든 카레와 버터라이스, 〈안경〉의 매실장아찌, 〈스시장인: 지로의 꿈〉의 예술품 스시, 〈리틀포레스트 : 여름과 가을〉의 토마토소스 등이 떠오른다. 회가 동한다. 자꾸 말하고 싶어진다.명동 구직시장에서 일자리 찾던 사람들, 서울에 배척당해 빈속으로 낙향한 사람들. 어느 곳에선가 지금 치맥 먹으며 그때를 이야기 하고 있는지 모른다.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전북지부장

  • 영화·연극
  • 기고
  • 2015.07.17 23:02

[32. 위 플래쉬]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말 "그만하면 잘했어"

꿈을 성취하는 사람들에게는 남다른 특성이 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비전을 설정할 때 ‘장차 무엇이 되겠다.’라는 평가목표만 두는데, 그들은 ‘내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행동목표를 두고 정진한다는 것이다. 이런 세밀한 행동계획은 꿈을 가꾸는 또 신념을 강화하는 효과가 있어 더욱 강력해지지 않나 싶다.할리우드 스타이자 정치인이기도 한 ‘아놀드 슈왈 제네거’의 성공 스토리는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세 가지 꿈을 차례대로 설계했다고 한다. 첫째 영화배우가 되겠다. 둘째 케네디 대통령 가문 여인과 결혼하겠다. 셋째 2005년에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되겠다. 노력의 결과는 15세 때부터 주력한 보디빌딩에서 빛을 보기 시작하는데, 세계챔피언을 13번이나 하게 된다. 최고의 근육을 찾던 할리우드의 눈에 띄었고, 〈터미네이터〉로 일약 스타 반열에 오른다. 이어 케네디가의 ‘마리아 슈라이버’를 아내로 맞이하였으며, 2003년에 캘리포니아 주지사 보궐선거에서 당당히 당선된다. 흥미로운 점은 이 세 가지가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고, 노력한 결과물이 실체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위대하고 싶어 하는 미국의 상징이 되어버린 근육, 바윗덩어리같이 딱딱하다고 지적받던 표정을 개성으로 승화시킨 것이 그것이다. 〈위 플래쉬〉 라는 영화는 한 사람의 행동목표 수행 과정을 보여준다. 주인공은 드럼 연주자를 꿈꾸는 ‘앤드류’(마일즈 텔러 분)라는 청년이다. 최고가 되겠다며 음악대학에 입학한다. 연습에 열중하던 중 냉혈한이라 불리는 교수 ‘플렛처’(J. K. 시몬스 분)의 눈에 띄게 된다. 교수의 테스트는 단 10초. 교내 최고 밴드의 멤버가 된다. 앤드류는 그곳에서 안정적으로 근육을 만들게 될 것으로 기대하며 크게 기뻐한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그곳은 처절한 각축장과도 같았다. 교수는 표정 한번 바꾸는 일이 없이 몰아붙인다. 연주 중 한번 틀렸다고 퇴장시킨다. 박자가 틀렸다고, 템포가 맞지 않는다고 걸핏하면 주 연주자와 보조 연주자를 바꾼다. 그리고 조롱과 욕설을 거침없이 내뱉는다. 의자를 집어 던지고 뺨을 때리기도 한다. 그러면서 전설적인 재즈 색소폰 연주자 ‘찰리 파커’를 이야기한다. 파커의 연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같은 밴드의 베테랑 드러머 ‘조 존스’가 심벌즈를 던져버렸다며. 만인이 보는 앞에서 망신을 당한 파커는 극도로 수치심을 느꼈고, 더는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 뼈를 깎는 연습을 한 결과 전설이 되었다는 것. 지금 이 학교에는 파커처럼 될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약이 바짝 오른 앤드류는 여자 친구에게 결별을 선언하고 연습에 진력한다. 그러나 번번이 자리가 바뀌는 수모를 당하게 되자 거친 숨을 몰아쉬기 시작한다. 사태를 파악한 아버지가 ‘다른 선택’이 있다고 말한다. 앤드류는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연습에 몰두한다. 다시 보조로 전락하기를 몇 차례……. 앤드류는 이성을 잃고 만다. 드럼을 찢어버린다. 짓무르고 터져 피 나는 손을 얼음물에 담그고 절규한다. 찢어진 드럼처럼, 얼음물에 확산하는 핏물처럼 그의 영혼은 만신창이가 되어 허공을 둥둥 떠다닌다. 그런 와중에도 연주는 계속되고 또 조롱을 당하자 교수에게 달려들어 맨바닥에 눕히고 목을 조른다. 그리고 학교를 그만둔다. 여자 친구에게 달려간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다른 남자와 사귀고 있었다.“난 정해진 한계를 뛰어넘게 하고 싶었어.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말이 그만 하면 잘했어야.”교수의 말이 긴 경적처럼 귓전을 스친다. 어쩌면 교수는 앤드류를 파커 위에 설 실력자로 지목했는지 모른다. 교수가 지나친 것인가. 앤드류의 인내가 부족한 것인가. 플렛처의 교수법은 그것밖에 없었을까? 미친 듯이 연습하라고 지시하고는 그 미쳐버림 속에서 자기가 더 미쳐버린 것 아닌가. 채찍질을 뜻 하는 위플래쉬(Whiplash)는 영화 제목이자 밴드가 연주하는 곡명이기도 하다. 채찍과 미침이란 단어가 묘한 조화를 이룬다는 생각을 하는 사이 교수와 제자는 학교 밖에서 다시 만나 공연을 한다. 교수가 그토록 원하던 ‘더블타임 스윙 주법’을 완성한 앤드류의 긴 연주가 엔딩을 장식한다. 선문대학교 윤철호 교수는 《엘랑비탈》이란 책을 통해 말한다. ‘인간을 도약시키는 근원적인 힘이 세 가지가 있는데 열정, 지식, 절대고독이 그것이다.’라고. 그리고 부연한다. ‘이들은 모두 그 자체가 매우 중요하지만, 전체적으로는 통로를 확보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가다가 무수히 많은 허들을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허들이 넘어지지 않으면 내가 넘어져야 하기에…….영화에서 드럼은 ‘두드림’의 은유로 보인다. 많이, 빨리 두드릴수록 큰 성취를 할 수 있다는 뜻으로. “어때, 플렛처 교수와 한판 붙어 볼 거야?” 이렇게 묻는 것이다. 우리사회 여기저기서 ‘꿈을 꾸라’(Do Dream)는 구호가 자주 사용된다. 읽는 것 보다 두드려야 하지 않을까. 〈터미네이터 제네시스〉가 개봉되었다. 벌써 시리즈 제5탄이다. 칠순을 바라보는 아놀드 슈왈 제네거의 근육이 궁금하다. 그는 또 무슨 꿈을 꾸고 있는지.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전북지부장

  • 영화·연극
  • 기고
  • 2015.07.03 23:02

[31.감기] '정상·비정상' 차이가 금줄 하나에 걸려있다면

옛날에는 금줄을 쳤다. 아이를 낳았거나, 치성을 드릴 때, 동제(洞祭) 시에. 부정(不淨)한 것을 금기(禁忌)한다는 뜻으로 대문·길 어귀·신목(神木)·장독 등에 왼 새끼를 꼬아 걸쳐놓았다. 비록 가족이라 할지라도 부정(不淨)에 노출된 사람은 출입을 삼가야 했다. 부정에 노출된 사람이란 초상집에 갔다 온 사람, 상여를 본 사람, 동물을 죽였거나 사체를 본 사람, 병자·거지·백정 등을 말한다. 어느 낯선 사람이 이 줄을 건들기라도 하면 마을 사람이 모두 나와 일전을 벌일 태세를 갖추기도 하였다. 영화 <감기>를 다시 보는데, 자꾸 금줄이 보이는 것이다. 아스팔트 위의 황색 횡선, 바리케이드, 철조망, 플래카드 등. 금줄은 내 머릿속을 휘젓고 나와 다시 뱅그르르 돌기를 반복하는 것이었다. 이 금줄은 내가 아는 금줄과 성격이 달랐다. 안에 있는 사람을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막는 용도였다. 전의 것은 외부인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할 목적이었는데……. 금줄 밖은 텅 빈도로가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매일 다니던 길인데, 상황이 바뀌었다고 길까지도 저렇게 생경할 줄이야. 그러나 저 길은 그냥 길이 아니다. 생명의 길인 것이다. 저 길에 나서면 정상적인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된다. 금줄 안에 있는 한 누구라도 정상이라 할 수 없다. 막는 이 누구인가. 의사? 아니다. 엉뚱하게도 그곳은 미군의 작전 통제지역이 되어있다. 누구든지 황색 라인을 넘으면 사격하라고 미군 지휘관이 지시한다. 금줄은 사선이 되어버렸다.카메라가 시내 전역을 비춘다. 인권이 말살되고, 언로가 막힌 도시는 어둡다. 두려움이 엄습한다. 주검이 비닐에 싸여 길 건너로 던져진다. 아비규환이다.영화는 조류 인플루엔자 H5N1이 사람에게 감염되는 상황을 그린다. 호흡만으로도 빠르게 전염되는 바이러스로 탈바꿈한 것으로. 이는 코리안 드림을 꿈꾸는 홍콩발 밀항선에 탄 사람들이 들여왔다. 기침, 홍반, 고열 등의 증상으로 나타나는 이 바이러스가 순식간에 도시 하나를 점령해 버린 것이다.영화 <눈먼 자들의 도시>가 떠오른다. 영화는 영문 모를 전염성 물질로 인해 사람들 눈이 하나둘 멀어 가는 상황을 그린다. 눈먼 자들 앞에 보이는 세상은 희뿌옇다. 눈이 안 보이는 세상에서 인간은 어떻게 반응하고, 어떻게 살아가는가. 더욱이 전기, 가스, 수도 등 모든 것이 끊어졌는데……. 수용소에는 안과의사도 와있다. 먹고, 싸고, 비명 지르고, 자고. 너나 할 것 없이 인간은 본능 안에서 절규한다. 그 가운데는 눈이 보이는 사람이 하나 있다. 의사 부인(줄리안 무어 분)이다. 그녀는 보이지 않는 자들과 똑같이 지내며 질서유지를 돕는다. 그런 그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주체로서 기능하지 않는다. 이들의 일원일 뿐. 우여곡절 끝에 사람들의 시력이 회복 되기 시작한다. 몇 사람이 의사 집에 모인다. 쾌재를 부를 법도 하지만 모두 의연하다. 의사 부인이 베란다로 나가서 밖을 내다본다. 세상이 희뿌옇다. 미간을 찡그리며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자 아름다운 도시 풍경이 눈앞에 한가득 펼쳐진다. 영화가 묻는다. 보이는 것은 무엇이고 안 보이는 것은 무엇이냐고. 또 그 경계는 무엇이냐고. ‘존 엔들러’는 아마존 강에 서식하는 ‘구피’라는 물고기를 처음 연구한 학자로 알려졌다. 그가 관찰한 바에 의하면 폭포아래 사는 구피는 색이 밋밋하지만 폭포 위에 사는 구피는 색이 아주 화려했다. 알고 보니 폭포 아래에는 구피를 잡아먹는 ‘파이크 시클리드’라는 사나운 물고기가 살고 있었다. 생존에 걱정이 없는 폭포 위 구피는 번식을 위한 몸가짐에 열중이었고, 아래 구피는 보호색으로 몸을 바꾸기에 급급하였다. 엔들러 교수의 이 실험은 파이크 시클리드라는 위협적인 존재가 생태계에서 다른 개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보여주는 뜻 깊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러시아 독감, 사스, 신종플루, 에볼라, 메르스까지. 그동안 우리는 수많은 바이러스와 직·간접적으로 싸워왔다. 대변이, 소변이로 인한 감염의 고비 또한 수없이 넘기며 지내왔다. 그러나 이런 다양한 바이러스를 퇴치할 완전한 방법은 아직 없는 듯 보인다.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이 상황에서 어디가 폭포 위이고 어디가 아래인가. 그 경계는 무엇이며 금줄은 누가 긋는가. 영화는 119 구조대원으로 일하는 ‘지구’와 ‘경업’ 같이 살신성인하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자기만 살겠다고 온갖 추태 다 부리는 많은 사람을 비집고 묵묵히 구조 활동에 임하는 사람 말이다. “거기 누구세요?” 이 얼마나 감미로운 목소리인가. 한편 위험에 노출된 사람은 어떻게든 자기 신호를 보낼 수 있어야 한다. 감염된 어린아이 ‘미르’는 휴대전화가 내보내는 음악 소리가 있었기에 쓰레기처럼 버려진 사체 더미 속에서 구출될 수 있었다. 극한상황 일수록 인간애(人間愛)의 발현이 필요하다. 이야말로 시민 모두가 함께 금줄을 걷어낼 수 있는 계책 아닐까.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전북지부장

  • 영화·연극
  • 기고
  • 2015.06.19 23:02

[30. 포스 마쥬어] 동행은 마음도 같이 가는 것

‘동행 프로젝트’라는 게 있다. 서울대공원 동물원의 캠페인 및 사업 이름이다. 動(동)幸(행)으로 동물들을 행복하게 하고, 同(동)行(행)으로 인간과 동물이 더불어 함께하는 세상을 이루자는 것. 동물들이 야생에서 보이는 자연스러운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서식환경을 바꿨다. 종래 인간중심의 관점을 바꿔 동물의 관점도 배려했다. 서로 피조물이란 사실을 염두에 둔 듯하다. 안내원 말이 재미있다. 침팬지가 가장 궁금해 하는 게 무엇인지 아세요? “저 사람들, 아빠는 어디 갔어요?”예요.영화 <포스 마쥬어>를 보는데 동물원 안내원이 말하던 그 아빠가 떠올랐다. 바쁜, 힘든, 세상 걱정 많이 하는, 동행하지 않는…. 영화는 스키 휴가로 몹시 들떠있는 한 가족이 순백의 설원에서 사진을 찍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아빠 ‘토마스’(요하네스 바 쿤게 분), 엄마 ‘에바’ (리사 로벤 콩슬리 분), 초등학생 딸 ‘베라’(클라라베테르그렌 분), 아들 ‘해리’(빈센트 베테르그렌 분). 이들의 시간은 저 아름다운 알프스 스키장에서 멎어버릴 것처럼 부풀어 있다. 오순도순 파티하고, 따뜻하게 잠자고, 서로를 응원하고…….그러나 운명의 장난은 그들을 행복의 도가니에 오래 머물게 하지 않는다. 오전 스키를 즐 호텔 야외식당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산꼭대기에서 엄청난 눈사태가 쏟아져 내린다. 모두 일어나 안절부절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는데, 눈사태는 삽시간에 식당 전체를 덮치고 만다. 비명, 고함……. 한동안 정적이 흐른다. 아비규환의 아수라장일 것만 같던 자리가 생각보다 빨리 진정된다. 그곳을 덮친 것은 눈사태로 인해 발생한 설풍(雪風)이었던 것. 사람들이 하나둘 일어나며 옆 사람을 챙긴다. 에바도 끌어안고 있던 베라와 해리를 살피며 일어난다. “괜찮아?” “응, 괜찮아!” 이때 베라가 두리번거리면서 말한다. “아빠는 어디 있어?” 조금 뒤 아빠가 나타난다. “다들 괜찮니?”가족이 호텔 방으로 돌아온다. 모두 말이 없다. 밤이 되자 이웃과 와인 파티가 벌어진다. 눈사태 이야기가 나온다. 에바가 말한다. “이이는 겁먹어서 우릴 두고 도망갔어요.” 토마스가 정색하며 부인한다. “무슨 소리야. 난 그런 짓 안 했어. 왜 이래.” “그랬거든?” “아니거든?”후에 에바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말한다. “애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려고 토마스를 찾는데, 그이가 장갑과 전화를 챙기더니 혼자 도망가는 게 보였어. 그리고는 천지가 회색으로 변했어.” 부부가 호텔 복도에 서서 설전을 벌인다. 에바의 말이다. “그 시간 이후 계속 진정이 안 돼. 당신도 낯설고 나도 낯설어.” 토마스가 답한다. “서로 기억이 다르잖아. 그게 그렇게 이상해? 눈사태가 있었고 무서웠지만 아무 일 없었다. 그러면 됐지 않아?” 에바가 머리를 좌우로 크게 흔든다. “나는 우리가 같은 관점을 공유하고 의견 일치를 보고 싶다고.” 프랑스 영화 <파괴된 낙원>은 바람난 아내가 집 나간 이야기를 한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만난 ‘이브 드부아즈’ 감독은 집에 남은 남편과 딸 편에 서서 가족에 대하여 색다른 정의를 내렸다. ‘옆에 있어도 부재를 느끼거나, 옆에 없어도 함께 있다는 느낌을 받는…. 모순이죠?’ 우리 영화 <국제시장>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아버지를 성토하는 게 가당할지. 괜찮다고 본다. 국제시장의 ‘덕수’는 가족을 지켰으니까. 남자, 남편, 가장 중 그는 가장이었다. 물론 덕수 안에 덕수는 없었지만. 영화는 본능이라는 단어 하나로 이 충격적인 상황을 덮으려 하지만 아내 에바가 동의하지 않는다. 전화기와 장갑은 챙기면서 아내와 아이들을 내팽개치고 꽁무니를 빼는 남편을 본능이란 단어로 합리화할 수 있느냐며. 도망가는 것은 본능이고, 그의 본능에 가족이 있었느냐고 묻는 것은 별개란 말인가. ‘포스마쥬어’란 불가항력이란 뜻이다.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저항할 수 없는 힘, 찰나의 순간 이성으로 통제하기 힘든 본능의 강력한 힘을 말함이다. 당신 같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겠느냐고 영화가 묻고 있다.꽁꽁 얼어버린 몸을 바닷물에 담그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부유물을 지탱해 주던 <타이타닉>의 ‘잭 도슨’이 떠오른다. 아들을 버리고 그 아들이 분신처럼 아끼던 자전거까지 팔아치우는 <자전거 탄 소년>의 아버지가 생각나기도 한다. 아버지, 가족과 어떻게 동행 하실래요?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전북지부장

  • 영화·연극
  • 기고
  • 2015.06.05 23:02

[29. 마이 원 앤 온리] 우리는 아빠·엄마·부부 시험을 치르지 않았다

어제(5월 21일)가 부부의 날이다. 절친 ‘단톡방’에 올라오는 글에서 격세지감을 느낀다. 아내 발을 씻겨줬다는 친구, 앞으로 새벽기도를 같이 다니겠다는 친구, 요리와 음식쓰레기 처치 약속까지. 유독 한 구절이 눈에 띈다. ‘나는 매일 멋진 선물을 받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최고의 선물이란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 이중에는 젊었을 때 부부싸움 도중 아내로부터 “당신은 나쁜 ×이세요!” 라는 말을 들었다는 친구도 있다. 지금 희망퇴직하고 집에 들어앉아 있는데, 이제 나쁜 ×이 될 수조차 없는 환경일 터. 사는 게 부질없다는 생각도 든다.영화치료 교실에서 <바벨>이란 영화 속 두 개의 에피소드를 놓고 소통에 대하여 이야기 했다. 아이를 잃고 멘붕이 된, 대화마저 단절된 미국인 부부가 모로코 여행을 하는데, 아내가 현지 아이들이 장난삼아 쏜 총을 맞고 사경을 헤맨다. 또 하나는 부부관계에서 무슨 일이라도 날 것 같아 전전긍긍하던 일본인 부부 이야기다. 아내는 끝내 자결하고 만다. 이들 부부 관계에서 막힌 숨통을 뚫어주는 것은 한 발의 총성(총알)이다. 피를 흘리고 나서야 실체를 확인하게 되는 것이 사랑이고 소통인지…? 미국인 부부는 화해하고, 일본인 남편은 농아인 딸을 부둥켜안는다.<마이 원 앤 온리>란 영화 역시 소통 안 되는 부부를 조명한다. ‘나의 유일한 사람’이란 제목의 기대에 걸맞지 않게 영화는 부부 해체를 시도한 후 묻는다. “홀가분하세요?” ‘앤’(르네 젤 위거 분)은 뉴욕 최고의 재즈밴드 리더인 남편 ‘댄’(케빈 베이컨 분)덕분에 세상 어려운 줄 모르고 살아왔다. 어느 날 댄의 바람기가 발동한다. 곧 끝나겠지. 그러나 남편의 탈선은 그칠 줄을 모른다. 여자를 집에까지 데리고 온다. 앤은 고등학생인 두 아들을 데리고 가출을 단행한다. 먼저 ‘캐딜락’을 산다. “보스턴으로 갈 거야.” 운전을 맡은 둘째 아들 ‘조지’(로건레먼 분)가 말을 받는다. “내가 따라가는 이유는 딱 하나예요. 일주일 안에 돌아올 테니까.” 앤이 단호하게 말한다. “백미러는 보지 마라. 뒤에 뭐가 있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아. 없다 치고 앞만 보고 달리렴.” 잔뜩 찌푸리고 운전하는 조지의 가방 틈으로 <호밀밭의 파수꾼>이란 책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남편의 사랑이 완전히 식었다고 생각하는 아내, 아내가 철이 없다고 생각하는 남편, 이런 상황을 재미로 인식하는 큰아들 ‘로비’(마크렌달 분), 부모에게 실망한 조지. 결국 가족은 이렇게 갈라지고 있었다.앤은 모텔과 여행자숙소를 전전하며 자신과 결혼해 줄 다른 남자를 찾는다. 빼어난 미모 덕분에 주변에 남자가 많이 몰린다. 술 마시고, 춤추고, 웃음을 팔고……. 보스턴, 피츠버그, 세인트루이스까지. 그러나 앤이 찾는 신랑감은 어디에도 없었다. 돈을 빌려달라는 남자, 으스대는 육군대령, 정말 사랑한다며 진심으로 고백하는 한 성공한 사업가는 알고 보니 정신 이상자였다.“그 남자 사랑하긴 해요?”남자를 만나고 들어올 때마다 조지가 애잔한 표정으로 묻는다. 대답하지 않는 앤. 어느 날 그녀는 교사죄로 유치장까지 가게 된다. 낯선 남자의 도움으로 출소하여 귀가하는 새벽시간, 밤을 하얗게 지새운 조지가 묻는다. “어디 다녀오셨어요?”우여곡절 끝에 이들은 LA에 도착한다. 할리우드에서 엑스트라로 일하는 모자. 조지가 연기능력을 인정받아 캐스팅 되고 한숨 돌린다. 이때 댄이 불쑥 나타난다. “이제 그만 할 거지? 그만 뉴욕으로 돌아가자.”“ 잘 모르겠어.”“ 아직 반도 안 보여줬는데….”농담처럼 나눈 대화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홀로 되돌아간 댄이 심장마비로 사망한 것이다. “맘껏 울어.”조지 등을 쓰다듬는 앤의 얼굴에서 만감이 교차한다. 장례식에 참석한 조지는 다시 학교에 가고 연기활동도 계속한다. 앤의 그늘진 얼굴이 디졸브되고 조지의 표정 없는 얼굴이 클로즈업된다. 뒤에서 하모니카로 연주하는 <홍하의 골짜기. Red river valley>가 처량하게 울려 퍼진다. 조지의 독백이 이어진다.“우리가 길에서 보낸 몇 달을 생각해 본다. 우릴 맡아줄 누군가를 찾아 떠돌아다닌 나날들. 결국 우리에겐 아무도 필요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우린 우리 자체로 충분하니까.”사는 방법이 서툰 사람들 이야기다. 가족치료 현장에서 쓰는 말로 ‘아빠 시험, 엄마 시험, 부부 시험’을 치러야 할 사람들이다. “너에게 최선이 무엇인지 알아보자.”라는 엄마의 말 뒤로 조지의 독백이 뒤따른다. “엄마는 우선순위를 바꾼 것으로 보인다. 이제 남편이 필요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게리 채프먼’은 <5가지 사랑의 언어>라는 책을 통해 말한다. ‘아무리 좋은 사람들이 만나 결혼했더라도 함께 살아가는 데는 또 다른 기술이 필요하다. 무작정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전북지부장

  • 영화·연극
  • 기고
  • 2015.05.22 23:02

[28. 약장수] "아범아, 안 바쁠 때 두 시간만 놀아다오"

가정의 달 라디오 특집 방송에서 사회자가 가족에 대하여 정의해 보라고 한다. 피요, 가여운 족쇄, 행복한 천형. 많은 말이 스프링처럼 튀어나온다. 잠시 정적이 흐르더니 에마 봄베크의 책 《가족에 미쳐라》에 나오는 명구가 소개된다.각자의 방문을 잠그고 살다가도 어려운 일이 닥치면 모두가 힘을 합쳐 서로를 지켜주는 그런 특별한 삶을 살아가게 하는,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는 보이지 않는 끈, 오랜 부재와 무관심이라는 가뭄을 견디어 내면서도 해마다 어김없이 싹을 틔우는 다년생 식물, 그것이 가족이다.라디오를 끄고 자동차 창문을 여니 훈풍이 온몸을 휘감는다. 5월의 대지가 사랑의 기운으로 가득하다. 다년생 식물이 쑥쑥 자라 피톤치드보다 더한 항균물질을 뿜어내는 것 때문이겠지. 어느 상담사례 발표회 자리에서 주재자가 한 말이 떠오른다. 5월에는 May i help you?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라는 문장 하나로 살자고. 5월(May)이니까.때맞춰 개봉한 영화 〈약장수〉를 보는데, 요양병원에 계신 어머니가 떠올라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어머니가 약장수 물건 파는 곳에라도 나갈 수 있는 몸이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영화는 정 붙일 곳 없는 독거할머니 옥님(이주실 분)이 집 근처에 차려진 홍보관에 나가면서 사는 재미를 느낀다는 내용이다. 아들은 유능한 검사요, 딸은 잘나가는 미용실 사장님이다. 그런데도 옥님은 소형아파트에서 홀로 밥 먹고 홀로 잠잔다. 대검찰청에서 장한 어머니 표창을 받던 날에도, 기다리고 기다리던 생일에도 남매는 어머니와 밥을 먹어주지 않았다.어느 날 아들이 집에 온다. 식탁에 앉지도 않았는데 휴대전화기 벨이 울린다. 아들은 중요한 일이 있다며 황급히 돌아선다. 옥님의 말이 현관에서 메아리 된다. 아범아, 안 바쁠 때 두 시간만 놀아다오.떴다방에서 신입사원으로 일하는 일범(김인권)이 아들 역할을 대신한다. 기꺼이 미역국을 끓인다. 같이 먹어주고 노래까지 불러준다. 옥님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진다. 떴다방 사장 철중(박철민 분)이 말한다. 세상 어떤 자식이 맨날 엄마들한테 노래하며 재롱떨어줘?옥님과 일범은 모자(母子) 같은 관계로 발전한다. 아껴주고, 챙겨주고. 일범의 판매실적이 저조하자 옥님은 자신의 CT 촬영 예약금까지 빼내 물건을 사준다. 판매 압력이 커지자 급기야 수백만 원짜리 물건을 떠안게 되는 옥님.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딸을 찾아가지만, 딸은 엄마가 아들만을 위하며 평생을 살아왔지 않느냐고 공박한다.난치병을 앓고 있는 딸 치료비를 만들어야만 하는 일범의 마음은 항상 급하다. 옥님이 반품하고 말 것이라며 비아냥거리는 철중에게 일범은 만일 그 상품이 반품되면 월급을 포기하겠다며 배수진을 친다. 시간이 자꾸 흐른다. 절규와도 같은 일범의 춤판이 이어진다. 할머니들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쓰고 시리고 서러운 공기가 홍보관을 지배한다. 목숨 걸고 물건을 팔아야 한다.고 외치는 철중의 말이 일범의 가슴에 비수처럼 꽂힌다.며칠 전 영화마당에서 만난 황동혁 감독은 자신의 영화 〈수상한 그녀〉와 〈도가니〉에 현재 97세 된 친할머니를 출연시켰다며 가족의 연대와 항상성을 강조했다. 가족치료 이론에 의하면 가족 항상성이란 가족체계 역시 다른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가족 내외의 환경에 적응하면서 일관성을 유지 하고자 하는 기능을 가진다.고 되어 있다.영화는 가족체계 틀이 무너진 옥님 가족과 돈의 절박함 앞에서 몸부림치는 일범 가족을 조명하며 일관성이 유지 되겠느냐고 묻는다.옥님이 쓰러진다. 불 꺼진 방에서 가늘게 떨다 절명한다. CT를 찍지 않았고, 반품관계로 옥신각신 하다가 기력이 소진한 탓으로 보인다. 일범이 제일 먼저 현장을 목격한다. 시신을 수습하기보다 서랍부터 뒤지는, 옥님의 금반지를 빼기 위해 칼을 집어 드는 일범의 눈에서 불이 튄다.오늘도 뉴스에서 떴다방 이야기가 심층 보도된다. 영화는 실제 떴다방에 다니는 어르신들을 모시고 촬영했다고 하는데, 질서정연하게 앉아 티 없이 웃는 모습이 너무 편해 보였다. 이분들에게 물건 값과 웃음이 어떤 의미인지?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어버이의 말없는 말이 암시하는 바를 알면서도 그냥 지나치는 일은 없어야겠다. 5월이니까.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전북지부장

  • 영화·연극
  • 기고
  • 2015.05.08 23:02

[27. 화장] 살아 있는 것은 저렇게 확실하고 가득 찬 것!

남자 나이 50대 중반이 되면 어떤 모습이 될까. 어느 자동차 광고에 나오는 신사의 중후함과 영화 <뉴욕의 가을> 속 리차드 기어의 은발과 영화 <황금 연못>에 나오는 헨리폰다의 절제된위를 머릿속에 그리며 상상했다.막연함이 간과한 것은 어깨를 누르는 세월의 고초였다. 원숙함이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 또한 실수였다. 감당. 내가 그 나이를 지나면서 집어 든 단어였다. 나이를 따라온 수많은 일이 칡넝쿨처럼 엉켜 있었기에. 야속하게도 세상은, 나이는 이를 능히 견뎌내라고 압박하는 것이었다.영화 <화장>을 보면서 남자주인공 오상무(이름 아니고 직함. 안성기 분)에게 동일시되어 눈을 뗄 수 없었다. 55세 남자의 힘없는 눈 놀림과 늘어진 어깨라니. 내 것보다 훨씬 무거워 보였다.유명 화장품회사의 마케팅담당 상무로 일하고 있는 그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다. 고가의 단독주택에 별장까지 소유하고 있어 경제적으로도 편해 보인다. 슬하에 딸이 하나 있는데 결혼을 앞두고 있다. 그는 지금 두 가지 어려움에 봉착해 있다. 하나는 자신의 전립선 비대증 악화로 소변을 받아내고 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내의 뇌종양이 재발하여 또 수술한 것이다.이 남자, 회사 일 마치면 부지런히 병실로 달려가 아내의 병시중을 든다. 머리를 빡빡 깎고 피골이 맞닿은 채로 침대에서 통증을 호소하는 아내의 곁을 지키는 일이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가끔 교대해서 도와주는 처제도 간호인을 쓰라며 성화지만 그는 대꾸도 하지 않는다. 아내가 자주 설사를 한다.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고 찔끔거리니 치워야 하는 횟수도 많다. 유제품과 독한 약물이 섞인 변은 악취가 심해 참기 어려울 정도다. 남자는 묵묵히 물수건으로 닦아내거나 화장실로 안고 가 처치한다.수면제 힘을 빌려 아내가 잠들면 서랍 속에서 소주병과 마른안주를 꺼내 든다. 침대에 기대어 졸다가 여명을 맞는다. 게슴츠레 뜬 눈에 들어온 세상은 고요 속 혼돈이다. 병실 유리창 밖으로 여름의 새벽이 밝아오고 있다. 빌딩 사이로 새벽은 멀리 울트라 마린블루의 하늘을 펼쳐놓고 있다.어느 날 그의 회사에 추은주(김규리 분)라는 여사원이 입사한다. 유리창 너머에서 일하는 그녀가 오상무의 눈에 들어온다. 둥근 어깨와 어깨 위로 흘러내린 머리카락과 그 머리카락이 두 뺨에 드리운 그늘이 의심할 수 없이 뚜렷하고 완연하다. 연모의 감정이 솟아난다. 간절하다. 그의 머리에서 시가 만들어진다. 저의 부름이 닿지 못하는 자리에서 당신의 몸은 햇빛처럼 완연했습니다. 제가 당신의 이름과 당신의 몸으로 당신을 떠올릴 때 저의 마음속을 흘러가는 이 경어체의 말들은 말이 아니라, 말로 환생하기를 갈구하는 기갈이나 허구일 것입니다.그의 시에 화답하듯 추은주는 날로 예뻐졌고, 역동적으로 다가왔다. 아, 살아있는 것은 저렇게 확실하고 가득 찬 것이로구나. 사랑의 너울은 그렇게 오상무 속으로 밀려들어 가고 있었다.아내가 하늘나라로 떠난다. 이른 새벽, 하늘이 열리기 전이다. 오상무는 딸에게 전화하고 비뇨기과로 소변을 빼러 간다. 추은주가 문상을 온다. 화장기 짙은 얼굴, 목덜미로 흘러내리는 선에 생명력이 가득하다. 오상무의 눈길이 한 곳에만 머문다.영화 제목 화장은 중의적 의미가 있다. 火葬과 化粧. 앞은 아내의 것이고 뒤는 추은주의 것이다. 오상무는 후자의 제품을 만드는 회사의 중역이다. 플래시백은 병든 아내의 화장기 없는 민낯을 자주 비춰준다. 숨이 끊긴 아내는 화장(火葬)을 통해 스러지고 생동의 추은주는 화장(化粧) 하고 날아든다.오상무의 장딴지에 찬 비닐로 된 오줌 주머니를 본다. 방광에서 요도 끝까지 뻥 뚫려 힘차게 쏟아져 내려야 할 소변 줄기가 그곳에 정체되어 있다. 50대 중반의 공전하는 삶은 저렇게 방광에서 막혀 흐르지 못하는 오줌과도 같은 것인지.영화 속 오상무의 얼굴은 포커페이스다. 영화 내내 그는 한 번도 표정을 바꾸지 않는다. 와인 한 병 품에 끼고 시내를 방황할 때도, 그토록 그리워하던 추은주가 이별인사를 하러 별장에 왔을 때도. 표정의 근거가 궁금하다. 삶의 회한인지, 자기연민인지, 세상을 향한 시위인지 알 수 없다.외국어 제목 는 프랑스의 유명 화장품 브랜드로 활기를 되찾다라는 뜻을 가졌다고 한다. 그의 56세는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 소생할 수 있을까? 추은주는 소생의 판타지이지 싶다.※일부 인용구를 김훈소설 《화장》에서 가져옴.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전북지부장

  • 영화·연극
  • 기고
  • 2015.04.24 23:02

[26. 장수상회] 치매 환자가 가장 늦게 잊는 건 자기 이름…

벚꽃 흐드러지게 핀 봄날에 가을을 말하는 영화가 있다. 스크린에 황금 물결이 출렁이고 들녘은 들국화 일색이다. 빨간 우체통이 서 있는 시골 길을 버스가 달린다. 코스모스 길에 뿌연 먼지가 자욱하다. 신작로에 소년 소녀가 마주 서 있다. 소녀가 소년에게 들국화 다발을 건네며 이름을 묻는다. “이름이 뭐예요?” 답이 없다.버스 따라 세월이 가고 인생이 간다. 논이 있던 자리에 주택이 빼곡히 들어선다. 한 어르신이 화면 가득 클로즈업 된다. 인생의 가을, 바꿔 말하면 사추기(思秋期)를 넘어 선 모습이다. 영화는 이분의 여름은 이야기하지 않는다.묻지도 않는데 어르신이 자기 이름을 말한다. “내 이름은 김성칠(박근형 분)입니다. 별 셋에 일곱 칠, 성칠 이요.” ‘장수상회’라는 마트에서 일하는 이 어르신, 어찌 된 영문인지 홀로 산다. 어느 날 ‘임금님’(윤여정 분)이란 할머니가 앞집으로 이사 온다. 이혼한 딸, 손녀와 함께. 할머니는 동네에서 꽃집을 운영한다. 꽃집 이름은 ‘들꽃’이다. 어디서 본 듯하다.성칠의 밥을 챙, 데이트를 신청하는 금님. 둘은 금방 친해진다. 한시라도 보지 않으면 견딜 수 없고, 전화를 받지 않으면 잠을 이룰 수 없다. 뛰는 가슴 진정시키려고 가슴에 손을 올려보지만, 소용이 없다. 영화 <김종욱 찾기>는 말한다. ‘맨 처음 사랑만이 첫사랑은 아니다.’라고. 그리고 부연한다. ‘지나버린 첫사랑은 다 산마루의 별이 된대요. 오늘 하루쯤은 내 어깨에 기대 그대의 별을 함께 찾아보아요.’그렇게 사랑이 찾아왔다. 둘은 틈만 나면 왈츠를 춘다. 일사불란한 스텝에 맞춰. 여생이 스텝처럼 매끄러울 듯 보인다.어느 날 어르신이 동네 공원에서 중얼거리며 서 있다. 무엇인가 말하려 하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원하는 단어가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내 이름은, 이름은….” 야속하게도 기억은 어르신이 이름을 꺼내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영화 <장수상회>. 모티프(motif. 이야기의 중심제재나 생각)는 치매 그리고 이름이다. 그 이름은 사춘기적 가을 신작로에서 소녀가 부를 때 대답했어야 할 이름이었다. 젊은 시절에는 뭇 사람에게 회자하던 이름이기도 하고. 인생의 가을을 지난 지금 그 이름이 머릿속에서 공전하고 있다. 삼성의료원 ‘나덕렬’박사는 말한다. 치매환자가 가장 늦게 잊는 게 자기 이름이라고.사실 그는 다 잊은 채 살고 있었다. 아내도, 딸도, 장수상회 사장인 아들도. 의사의 진단은 ‘전두엽 변성 치매.’ 유일한 기억이 이름이었는지 모른다. 설상가상으로 그 무렵 금님씨가 췌장암으로 몸저 눕는다. 수술실에 들어가는 아내를 위해 부르는 노래 <나 혼자만의 사랑>은 관객의 속을 있는 대로 다 후벼놓는다. ‘나 혼자만이 그대를 알고 싶소. 나 혼자만이 그대를 갖고 싶소. 나 혼자만이….영화의 수미상관(首尾相關)은 계절〔사춘기와 사추기〕과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의 고리로 각각 연결되어 있다. 영화는 도중에 일기장과 데자부〔기시감〕현상 힘을 빌려 기억의 복원을 꾀해 보지만 효과를 보지 못한다. 둘은 화단 돌 틈의 막 핀 꽃(Reflorescence. 봄에 꽃핀 화목이 가을에 다시 꽃피는 현상. 여름에 화아형성이 끝난 개나리, 벚나무, 등나무, 꽃 잔디 등에서 자주 볼 수 있음. 농업용어 사전)을 발견하고 무척 반가워하지만 가을꽃이 될 수 없음을 한탄할 수밖에 없다. 치매 환자의 눈으로 본 세상, 가족 모두의 눈으로 본 치매 환자의 모습. 영화는 그 들 간극을 눈물과 콧물로 메우라고 요구한다. 따라하면 그뿐일까. 영화 보면서 세상의 수많은 성칠 씨가 떠올랐다. 그분들은 나름의 가을을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나덕렬 박사는 치매를 예방하는 데 있어 ‘오감을 회복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라고 말한다. 바꿔 말하면 그것은 ‘있는 그대로를 느끼는 것.’이라고. 당부도 잊지 않는다. “걱정 많이 하는 사람이 치매에 걸릴 확률이 높아요. 걱정하지 마세요.”두 편의 영화가 연거푸 떠오른다. 미국영화 <러블리 스틸>에서 이 영화와 똑같은 상황의 남자 주인공 ‘로버트’는 부인〔치매 상태에서 애인으로 묘사〕에게 이렇게 고백한다. ‘사는 데 지쳤어요. 더는 외롭고 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당신을 만났어요.’ 라고. 캐나다 영화 <어웨이 프롬 허> 는 치매에 걸려 요양원에 입원한 아내가 다른 남자와 사랑을 나누는 이색적인 설정이 눈길을 끈다. 기억을 잃은 아내가 요양원에서 다른 남자와 사귀는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는 남편 ‘그랜트’에게 옆에 앉은 여자가 뭐하냐고 묻자. “아내에게 인생을 주고 있는 거요.”라고 답한다.항상 외롭고, 그리움 사무치는 게 치매 환자 아닐까? “보호자들이 치매 환자를 함부로 대해요.” 어느 요양보호사의 말이 허공에서 메아리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전북지부장

  • 영화·연극
  • 기고
  • 2015.04.10 23:02

[25. 글로리아] '죽음만이 욕망을 충족시킬 뿐'

작년 ‘무주 산골영화제’에서 만난 한 노신사는 영화 <글로리아> 관람 소감을 묻는 나에게 “인간의 욕망이 한이 없지요.”라고 말했다. ‘한이 없다’는 말뜻이 궁금해 설명을 부탁하려 하자 무엇을 들킨 것처럼 황급히 돌아서는 것이었다. 칠레 국민배우 폴리나 가르시아가 50대 후반의 몸(1960년생)을 적나라하게 노출하며 동년배 주인공 역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어쩌면 노신사는 자신의 욕망 소비방식을 반추했는지 모른다. 여자 주인공과의 연대감으로 한껏 고무되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고. 그것이 사실이라면 내 질문은 형편없는 우문이었으리라.영화를 세 번, 네 번 보면서 욕망에 대해 생각했다. 정말 한없는 것일까. 실재일까 허구일까. 프로이트는 《쾌락의 원리를 넘어서》에서 ‘죽음만이 욕망을 충족시킬 뿐’이라고 하였는데….영화는 칠레 산티아고의 한 아파트에서 홀로 사는 ‘글로리아’라는 여인을 조명한다. 남편은 젊은 여자와 눈이 맞아 집을 나갔고, 남매는 결혼하여 떨어져 산다. 여인이 홀로 사는 법은 단순하다. 자신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라디오 듣다가 맥없이 웃고, 청소기 돌리다가 몸을 흔들어대고, 이웃집 고양이 불러들여 쓰다듬다 잠들고. 빈 들판에 서있는 것처럼 외로움이 엄습하면 싱글클럽에 가서 광적으로 춤을 춘다. 그렇게 살아온 세월이 10여 년이다. 어느 날 그녀에게 꿈같은 사랑이 찾아온다. 상대는 해군 출신 노신사 ‘루돌프’(세르지오 헤르난데즈 분)다. 이혼 한 데다 놀이공원 사장으로 웬만큼 부도 축적했다. 중요한 것은 그 역시 외롭다는 것. 둘은 격정적인 사랑을 나눈다. 춤추고, 여행 다니고, 남자 놀이공원에 가서 페인트 총도 쏜다. 그런데 금방 살림을 차릴 것 같던 이들에게서 문제가 드러난다. 먼저 루돌프의 것을 보자. 이혼한 전처 그리고 아이들에게 얽매여 아무것도 자의적으로 하지 못한다. 여행지 호텔에서 가족의 전화를 받고 말없이 사라지는가 하면, 데이트 중 전화를 받으면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해결방안을 제시하다 마땅치 않으면 현장으로 달려간다. 다음은 글로리아 쪽이다. 아들 생일 파티에 루돌프가 초대된다. 그곳에는 글로리아의 전남편이 젊은 부인과 함께 와있다. 글로리아는 전남편 내외에게 루돌프를 소개하고 그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린다. 자식들도 동화되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모습을 본 루돌프는 또 말없이 자리를 뜬다. 어느 여행지에서 둘은 쿠바로 열흘 간 여행가기로 합의한다. “오늘 만큼은 핸드폰 전원을 끕시다.” 글로리아는 루돌프의 핸드폰을 탕 그릇에 담가 버린다. 황급히 물기를 제거하는 루돌프의 복잡한 표정은 형언하기 어렵다. 억지로 하는 말, “당신 판단이 맞아요. 나 없이 아무것도 못하는 것 아니잖아요.” 글로리아의 말이 이어진다. “당신도 당신 인생 살아야지요.” 둘은 드디어 그들만의 세계로 날아갈 듯 보인다. 그러나 그날 밤 루돌프는 다시 도망치듯 사라진다.미친 듯이 루돌프를 찾는 글로리아. 오락실과 나이트클럽을 헤집다가 낯선 남자들과 섞여 하룻밤을 보낸다. 그런데 아침에 눈을 뜨니 해변 모레사장이다. 지친 영혼, 쓰레기처럼 내박쳐진 육신, 절망이 바다보다 깊다. 천근만근인 몸을 이끌고 호텔을 향해 발을 뗀다. 한발 또 한발, 시름이 깊으니 발자국 또한 깊다. 영화에서 두 개의 욕망을 본다. 하나는 글로리아의 가식 없는 욕망이다. 세상에 대하여, 사랑에 대하여 그녀는 솔직하다. 여생을 어떻게든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데 진지하지 않을 수 있으랴. 다른 하나는 루돌프의 굴절된 욕망이다. 자신의 사랑이 전처와 아이들에 의해 왜곡된다. 아니 싱글클럽에서 춤추는 뭇 독신남의 진정성 없는 그것의 대리자 역할인지도 모른다. 욕망의 모방 그리고 비 자발성. 이는 프랑스 사회학자 ‘그레지라르’가 말하는 ‘욕망의 삼각형 이론’과 닿아 있다. ‘개인은 스스로의 욕망이 아니라 타인의 욕망에 지배받으며 그것이 자신의 욕망으로 착각하게 된다.’라는.글로리아는 선물 받은 서바이벌 총을 꺼내 들고 루돌프에게 달려간다. 놀라는 루돌프에게 다짜고짜 총을 쏜다. 페인트 볼이 터져 몸이 진녹색으로 물든다. 루돌프가 맨바닥에 쓰러져 뒹군다. 다시 싱글클럽으로 돌아가는 글로리아. 신명 난 음악에 맞춰 춤을 추다 양손을 치켜들고 절규한다. ‘로라 블래니건’이 부른 올드 팝 <글로리아>가 힘차게 울려 퍼진다. 노랫말도 구슬프다. ‘내 가슴을 울리는 눈 속에서 나를 녹여줘….’ 엊그제 강연장에서 만난 경북대학교 김두식 교수는 ‘정직하게 욕망을 분출하지 못하는 사람은 사냥꾼이 되고 말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욕망은 길이가 중요한 게 아니고 자기 것을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전북지부장

  • 영화·연극
  • 기고
  • 2015.03.27 23:02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