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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나 하는 짓이 마음에 거슬리고 밉살맞을 때 ‘아니꼽다’는 표현을 쓴다. 요즘은 줄인 말로 ‘꼽냐’는 말도 많이 쓰고 있다. 어디서 온 말일까.중세 때는 속마음을 ‘안’이라고 불렀다. 원래는 창자를 의미했으나 점차 속마음을 지칭하는 말로 뜻이 확장됐다. 그래도 이해가 안 가면 ‘안달이 난다’는 표현을 떠올리면 된다. 이는 말 그대로 ‘안’이 달아오른다는 뜻으로 ‘속이 탄다’와 거의 같은 표현이다. 뒷말 ‘꼽다’는 ‘굽다’의 변형어다. 길이 반듯하지 않고 굽거나 철사가 휘어진 것을 ‘굽다’라고 한다. ‘굽다’가 강하게 발음되면서 모음 일부에도 변화가 왔다. 바로 ‘아니꼽다’는 창자 즉 속마음이 뒤틀어지는 것을 말한다.많은 사람들이 ‘고깝다’를 아니꼽다와 같은 말로 알고 있다. 언뜻 보면 그런 것도 같다. 그러나 전자는 맞으나 후자는 틀리다. 고깝다는 ‘섭섭하다’, ‘야속하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눈꼴이 시다’는 뜻으로 쓰이는 아니꼽다는 본래 장(贓)을 나타내는 ‘안’이라는 말과, 굽은 것을 나타내는 ‘곱다’라는 말이 합쳐진 것이다. 그러므로 말뜻대로라면 ‘장이 뒤틀린다’는 뜻이다.
채소(菜蔬)는 나물을 뜻하는 채(菜)와 소(蔬)가 결합한 한자어이고, 야채(野菜)는 들을 뜻하는 야(野)와 나물을 뜻하는 채가 합쳐진 말로써 그 말이 그 말이다. 그런데 채소는 우리의 한자말이고, 야채는 일본식 한자말이니 야채를 버리고 채소로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꽤 많다.예부터 중국에서는 소채나 채소라 했고,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채소로 써 왔다. 이와 달리 일본에서는 야채(야사이やさい)가 있는데 일제강점기 때 우리나라로 건너와 널리 퍼졌다. 그러니 야채보다는 채소로 써야 한다는 얘기가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갖는다.하지만 일본이 만든 말이므로 우리가 써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국어수학과학물리 같은 말도 버려야 한다는 얘기다.특히 우리말과 관련해 일본 한자말은 버리고, 중국 한자말을 써야 한다는 논리가 퍼져 있는데 어떻게 보면 사대주의로 비칠 수도 있기 때문에 이는 조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이에 대해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채소(菜蔬)를 밭에서 기르는 농작물로 뜻풀이하고 야채(野菜)는 이러한 채소를 일상적으로 이르는 말로 뜻풀이해 양자를 모두 표준어로 인정하고 있으므로 둘 다 쓸 수 있는 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다만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동의어인 경우 더 많이 쓰이고 더 기본적인 단어에서 직접 뜻풀이를 하고, 나머지 단어는 그 기본 단어의 뜻풀이를 참고하도록 했다. 이러한 편찬 지침에 따르면 직접 뜻풀이가 된 채소가, 채소의 뜻풀이를 참고하도록 뜻풀이가 된 야채보다 더 기본적인 단어라고 볼 수 있다.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는 표현이지만, 그 표현을 꼼꼼히 따지면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말들이 더러 있다. ‘분리수거’도 그중 하나이다. 아마 여러분 중에서도 오늘 집 안의 쓰레기를 열심히 분리수거한 한 분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말이다. 집 안의 쓰레기는 절대로 분리수거를 할 수 없다. 아니, 해 주지 않는다. 무슨 소리냐고?수거(收去)의 뜻이 무엇인가? ‘거두어 간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분리수거(分離收去)는 말 그대로 ‘쓰레기 따위를 종류별로 나누어서 늘어놓은 것을 거두어 감’을 뜻하는 말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을 비롯해 다른 국어사전에도 그렇게 올라 있다. ‘따로 거두기’나 ‘따로 거두어 가기’로 순화해 쓰는 것이 좋겠다는 설명도 덧붙여 있다. 따라서 분리수거는 오늘도 새벽부터 구슬땀을 흘린 환경미화원들이 하는 것이지, 집에 있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 아니다. 또 환경미화원들이 집 안까지 들어와 분리수거를 해 가지는 않는다.그러면 집에서 재활용품이나 음식 쓰레기를 구분해 내놓는 일을 뜻하는 말은 뭘까? 그것은 바로 ‘안에서 밖으로 밀어 내보냄’이라는 뜻을 가진 배출(排出)이다. 아울러 분리(分離)는 ‘서로 나뉘어 떨어짐 또는 그렇게 되게 함’을 뜻하는 말로, 쓰레기나 재활용품 등을 종류에 따라 가르는 일에는 ‘종류에 따라서 가름’을 뜻하는 분류(分類)를 쓰는 것이 백번 옳다. 결론적으로 주부(물론 남편도 도와야 하지만)가 집에서 쓰레기 등을 밖에 내놓는 일은 ‘분리수거’가 아니라 ‘분류 배출’이다.
무엇을 내놓으라는 말인가? 어떤 분야를 대표할 만하다를 뜻하는 말 ‘내로라하다’를 ‘내노라’ 따위로 쓰는 사람이 많다. 아마 ‘내놓으라’가 변한 것쯤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쓰는 듯하다. 뜬금없이 내놓으라니 대체 뭘 내놓으라는 소리인가?바른말 내로라하다는 나+이+로다+하다로 이뤄진 말이다. 여기서 ‘나’는 바로 나를 가리키고 ‘이’는 서술격조사 이다의 이다. ‘로다’는 “장군감이로다”의 로다쯤으로 생각하면 된다.그러니까 ‘나이로다’는 (그중에 최고는 바로) 나다라는 의미다. 여기서 ‘나’와 ‘이’가 결합해 ‘내’가 되고, ‘로다’가 ‘로라’로 활용하면서 ‘하다’가 붙어 ‘내로라하다’가 됐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예전에는 ‘내로라 하다’처럼 띄어 썼는데 표준국어대사전에 내로라하다를 하나의 말로 올려놓았다. 그러니 띄어 쓰면 안 된다.이 내로라하다는 우리가 흔히 쓰는 일본 한자말 ‘기라성’을 대신하기에도 아주 적합한 말이다. ‘기라(綺羅)’는 아름답고 고운 비단이나 그런 옷을 뜻하는 말로 여기에 별을 뜻하는 ‘성(星)’을 합성해 ‘밤하늘에 반짝이는 뭇 별’을 뜻하는 말로 만든 것이다. 여기서 기라는 반짝반짝을 뜻하는 기라키라(きらきら)의 어근이다. 우리가 한글이 없을 때 한자를 빌려 썼듯이 일본도 한자를 빌려 ‘기라’를 쓴 것이다.일본에서조차 이 말은 바람직하지 않은 구조라고 평가한다. 우리나라 국어학자들도 마찬가지다.그래서 이 말을 순화해서 쓰라고 하는데 그 순화어가 ‘빛나는 별’이다. 하지만 “오늘 이 자리에 ‘빛나는 별’ 같은 선배들을 모시고 행사를 갖게 돼 기쁩니다” 따위로 쓰는 사람은 없다. 이때 좋은 말이 ‘내로라하다’다. “오늘 이 자리에 내로라하는 선배들을 모시고 행사를 갖게 돼 기쁩니다”로 말하면 아주 자연스럽다.
‘싸가지’는 상당히 부정적 의미로서, ‘싹수’의 강원도, 전라도 방언이다. ‘싹수’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일이나 사람이 앞으로 잘될 것 같은 낌새나 징조’이다. 흔히 “싹수가 노랗다(잘될 가능성이나 희망이 애초부터 보이지 아니하다)”처럼 쓰여서 ‘싹수’ 자체에는 그리 부정적 의미는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나 ‘싹수’를 ‘싸가지’로 바꾸었을 때에는 부정적인 의미가 드러난다. “싸가지가 없다”처럼 쓰여 부정적 의미를 나타내는데, 이 문장으로만 보면 ‘싹수’와 그 의미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지만 ‘싸가지’라고만 해도 부정적 의미를 나타내게 된다. 이는 ‘싸가지가 없다“에서의 부정적 의미가 ’싸가지 ‘라는 단어에 전염되었기 때문이라고 보인다. “이런 싸가지를 봤나!!”와 같은 표현이 가능한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싸가지’는 ‘싹+아지’로 구성된 말로 파악된다. 이때, ‘-아지’는 ‘강아니’ ‘송아지’등과 같이 ‘작은 것, 새끼’의 의미를 더해주는 접미사이다. 그러니까 그 어원적 의미는 ‘싹의 새끼’, 즉 ‘아주 작은 싹’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어떤 사용 의미를 갖는가? ‘어떤 것이 잘 될 것 같은 기미’라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싸가지가 없다’는 표현은 ‘도대체 가망이 없다’라고 할 것이다. 이 말이 주로 예의범절을 지키지 않는 경우에 사용되므로, ‘예의 범절을 전혀 모르는, 예의를 갖출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파악된다. 따라서 ‘싸가지 없다’라는 말은 나이 많은 사람이 자신보다 어린 사람에게 많이 사용한다.
“알아야 면장을 한다”는 말은 배움의 중요함을 얘기할 때 쓰는 말이다. ‘면장도 알아야 한다’거나 ‘알아야 면장을 한다’ 따위로 말한다. 하지만 ‘알아야 면장을 한다’는 논리적으로 맞는 표현이지만, ‘면장도 알아야 한다’는 좀 이상한 표현이 된다. ‘알아야 면장을 한다’는 말 속의 ‘면장’을 동네 이장 위 또는 군수 아래의 면장님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듯하다. 지금도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웃음이 난다. 사실 나도 옛날에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동네에서 ‘면 서기’만 돼도 무척 똑똑하고 높은 사람인데 ‘면장’이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똑똑하고 높은 분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면장이 되려면 아는 것이 많아야 된다고 생각했고, ‘면장도 알아야 한다’는 이치에 맞는 소리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알아야 면장을 한다”는 말은 지방자치단체인 면사무소의 책임자로서 면의 행정을 총괄하는 면장과는 눈곱만큼도 관계가 없다. 본래 ‘면장’의 의미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담장(墻)을 마주하고 있는 것 같은 답답함에서 벗어난다(免)”는 ‘면장(免牆)’이다.이 말은 공자가 자기 아들에게 사서삼경의 하나인 <시경(詩經)> 중에 ‘수신’과 ‘제가’를 가르치면서 수신제가를 공부하고 익혀야 내 앞에 가로막혀 있는 담장 같은 답답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한 데서 유래한 말이다. 현대는 날이 갈수록 지식 정보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앨빈 토플러도 ‘미래’를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이러한 정보와 지식의 급격한 팽창에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핵심이라고 했다. 이 시대에 지식자원을 어떻게 극복하느냐 즉 어떻게 면장(免墻)을 하느냐에 따라 미래가 달려있다고 보는 것이다. 우리도 부단히 노력하여 지적으로 면장(免墻)하며 살자.
“그녀가 내 잔에 감칠맛 나는 농주를 가득 부어 주며 감질맛 나는 눈웃음을 짓네”라고 하듯 ‘감질맛’은 널리 쓰이는 말이다. 하지만 ‘감질맛나다’는 좀 이상한 말이다. 우리말에는 “무언가 몹시 먹고 싶거나, 가지고 싶거나, 하고 싶어서 애타는 마음이 생기다”란 뜻의 ‘감질나다’가 있다. 이 말에서 유추해 “한꺼번에 욕구가 충족되지 않고 찔끔찔끔 맛만 보아 안달이 나는 상태”를 나타내는 말로 ‘감질맛나다’를 만들어 쓰는 듯하다. 그러나 ‘감질’의 뜻을 알면 ‘감질맛’이 얼마나 황당한 말인지 알게 된다. ‘감질(疳疾)’은 국어사전에서는 “먹고 싶거나 가지고 싶어서 몹시 애타는 마음”으로 풀이되고 있다. 하지만 본래는 한의학에의 ‘감병(疳病)’을 일컫는 말이었다. ‘감병’이란 어린 아이들이 젖이나 음식을 잘 조절하지 못해 생기는 질병을 뜻한다. 그래서 감질이 나면 속이 비어 뭔가 먹고 싶은데 몸에 탈이 나 마음껏 먹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안달이 남다. 이렇게 유래한 ‘감질나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몹시 먹고 싶거나 가지고 싶거나 하고 싶어서 애타는 마음이 생기다”란 뜻으로 쓰이게 됐다. 따라서 병 이름에 뿌리를 둔 ‘감질’과 ‘맛’이 어울려 하나의 단어를 이루는 것은 좀 이상하다. 그래서 ‘감질맛나다’를 쓰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국립국어원도 ‘감질맛나다’로 써서는 안 된다고 밝히고 있다. ‘감질맛’은 혀로 느끼는 맛이 아니라 가슴 한구석에만 있는 맛이다. 따라서 마음을 끌어당기는 힘, 음식물이 입에 당기는 맛의 뜻으로 쓰이는 ‘감칠맛’과 혼동해서 사용해서는 안 된다.
스스로 다짐했던 약속들이 작심삼일이 된 경우가 많다. 자신과의 약속이 허물어지는 것을 두고 보는 일은 스스로 염치없는 얌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눈길을 끄는 화두가 염치와 얌체이다. 염치는 사람으로서 체면을 차릴 줄 알고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을 일컫는 말이고 얌체란 자기에게 유리한 행동만 해서 얄미운 사람이란 뜻이다.염치(廉恥)는 한자어로 청렴(廉) 하여 부끄러움(恥)을 아는 마음이다. 얌체는 ‘염치’의 작은말에서 온 말로써 이익이라면 주책없이 달라붙고, 남이 싫어하는 것도 개의치 않으며, 공중도덕이나 양식 같은 건 아예 없는 사람을 일컬어 왔다. 요즈음 주변을 보면 염치가 희미해지고 얌체가 활보하고 있다. 더 염려되는 것은 염치란 정의의 기준을 넘어선 상황을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는 눈이다. 이런 바이러스의 확산은 사회의 기본을 무너뜨린다. 청나라 때 중국번이란 사람은 난세의 조짐을 세 가지로 보았다.첫째는 흑백을 가릴 수 없고 틀린 건지 옳은 건지 알 수 없는 상황의 전개다. 둘째는 선량한 사람들은 줄어들고 하찮은 사람들이 설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셋째는 문제가 심각해지면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는 갈대처럼 흐느적거리는 우유부단한 행동이 범람한다는 것이다. 왜 우리 사회가 이렇게 변하고 있을까? 그것은 염치의 실종과 얌체의 득세다. 어떻게 되든 나만 잘 되면 그만이고, 무슨 짓을 해도 나만 잘살면 그만이란 생각이 난세를 부른다.
나 보기가 역겨워/가실 때에는/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진달래꽃/아름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놓인 그 꽃을/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나 보기가 역겨워/가실 때에는/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우리들의 영원한 애송시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이다. 그런데 소월님의 시 가운데 걸음마다 놓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라는 대목이 나온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이 ‘즈려밟다’가 “위에서 내리 눌러 밟다”라는 의미의 바른말인 줄 알고 있다. 하지만 ‘즈려밟다’는 바른말이 아니다. ‘즈려밟다’와 함께 많이 쓰이는 ‘지려밟다’도 바른말이 아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즈려밟다’의 바른말은 ‘지르밟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때의 ‘지르-’는 ‘내리누르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신이나 버선 따위를 뒤축이 발꿈치에 눌리어 밟히게 신다”를 뜻하는 말이 ‘지르신다’이고, “아랫니와 윗니를 꽉 눌러 물다”를 의미하는 말이 ‘지르물다’이다.우리는 시에 쓰이는 잘못된 시어들 때문에 혼동을 많이 한다. “어느새 내 마음 민들레 홀씨 되어/강바람타고 훨훨 네 곁으로 간다”는 시가 있다. 그런데 민들레에는 홀씨가 없다. 홀씨는 포자라고도 하며 고사리, 이끼, 버섯 등이 포자로 번식한다. 홀씨는 바람에 날려서 퍼지며 민들레의 씨도 바람에 날려 퍼지기 때문에 홀씨라고 하는 것 같은데 이는 큰일 날 소리다. 민들레는 꽃식물이고 종자로 번식하지, 포자(홀씨)로 번식하지 않는다. “민들레 홀씨”가 아니라 “민들레 속 씨 깃털”이 두둥실 날아가듯이 민들레의 꿈도 널리 퍼지길 기원한다.
청국장은 우리 민족의 고유의 식품이다. 청국장의 역사는 고구려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구려의 옛 영토인 지금의 만주 지방의 기마 민족들은 쉽게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는 방법으로 콩을 삶아서 말안장 밑에 넣고 다녔다. 이것이 한반도로 내려와 서민의 유용한 단백질 공급원 이자 왕가의 폐백식품으로 애용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청국장은 독특한 이름 때문에 중국에서 유래된 음식으로 착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신라시대 신문왕이 왕비를 맞을 때 폐백품목 중에 ‘시’가 들어있었다고 하는데 바로 그 ‘시’란 콩을 발효시킨 된장을 뜻하는 것이다. 청국장이란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는데, 하나는 숙종 때의 실학자인 홍만선이 농업 과 일상생활에 대해 광범위하게 다룬 백과사전인 <산림경제>에 된장을 ‘전국장’이란 이름으로 기록한 것으로 보아 전국장이 청국장으로 음이 변형되었다는 설이 있다. 다른 하나는 청국장이 병자호란 때 쳐들어온 청나라 병사들의 군중 식량이었던 데서 유래되어 ‘청국장(淸國醬)’ 이라고 하거나, 청나라의 누룩(麴)과 같다고 하여 ‘청국장’이라고도 하며, 전쟁터에서 만들어 먹었다 하여 ‘전국장’이라고 불렸다는 주장이 있다. 이들 근거는 찾을 수 없고 전국장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형제의 아들딸들을 일컫는 호칭이다. 이 말의 어원은 중국의 개자추(介子推)로부터 시작된다. 개자추는 진나라 문공이 숨어 지낼 때 그에게 허벅지 살을 베어먹이면서까지 그를 받들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후에 왕위에 오르게 된 문공이 개자추를 잊고 그를 부리지 않자 이에 비관한 개자추는 산 속에 들어가 불을 지르고 나무 한 그루를 끌어안고 타 죽었다. 그때서야 후회한 문종이 개자추가 끌어안고 죽은 나무를 베어 그것으로 나막신을 만들어 신고서 ‘족하(足下)!’ ‘족하!’하고 애달프게 불렀다. 문공 자신의 사람됨이 개자추에 발아래 있다는 뜻이었다. 여기서 생겨난 족하라는 호칭은 그 후 전국시대에 이르러서는 천자 족하, 대왕 족하 등으로 임금을 부르는 호칭으로 쓰였다. 그러다가 그 이후에는 임금의 발아래에서 일을 보는 사관을 부르는 호칭으로 쓰였다.그런데 더 후대로 내려오면서부터 같은 나이 또래에서 상대방을 높여 부르는 말로 쓰이기 시작했다. 일부에서는 발아래 정도의 아주 가까운 곳이란 뜻으로 편지글 등에서 가깝고 대등한 사람에 대한 경칭으로 쓰였다고 하는데 이는 틀린 말이다. 일반적으로 한 촌수 아래를 조카로 부른다.
거지는 남에게 빌어서 얻어먹고 사는 사람을 말한다. 거지의 어원은 무엇일까? 어떤 문헌에서는 ‘걷다’(거두어 드린다)의 ‘걷-’에 사람을 나타내는 접미사인 ‘-이’가 붙어 ‘걷이’가 되었는데, 이것이 구개음화(口蓋音化)되어 ‘거지’가 되었다고 했다. 이것은 우리말의 옛날 형태를 모르는 데에서 온 소치로 실소를 금할 수가 없다.옛날 문헌을 보면 ‘거지’는 ‘거00지’로 되어 있다. 이것은 중국어 ‘걸자(乞-빌 걸, 子-아들 자)의 발음을 그렇게 써 놓은 것이다. ‘걸’에 접미사인 ‘자(子)’가 연결된 단어이다. ‘자(子)’는 중국어의 접미사인데, 우리말에 와서는 두 가지 음으로 읽혔다. 하나는 ‘자’이고 또 하나는 ‘지’다. ‘판자(板子)’는 ‘판자집’일 때에는 ‘판자’이지만, ‘널판지’일 때에는 ‘판지’로 읽는다. 주전자, 감자, 사자, 탁자 등의 ‘자(子)’는 ‘자’로 읽지만, 가지(식물의 하나), 간장 종지, 꿀단지 등의 ‘자(子)’는 ‘지’로 읽는다. 남자와 여자 생식기의 이름 끝에 ‘-지’가 붙은 것도 모두 이것 때문이다.따라서 거지는 ‘걸지’에서 유래되었는데 ‘ㄹ’이 탈락하여 거지가 되었다.
국어에서는 남녀를 나타내는 말이 무척 다양하게 발달되어 있다. 그 중에서 혼인할 나이가 된 성인 남녀를 지칭할 때에는 처녀, 총각이란 한자어를 사용한다. 그 중에서 ‘처녀(處女)’는 아직 시집을 가지 않고 집에 머물러 있다는 뜻의 ‘처(處)’자에 ‘녀(女)’자가 들어 있어서 그 뜻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총각(總角)’은 그 어원을 전혀 짐작하기 어렵다.한자인 ‘총(總)’은 ‘다, 모두’라는 뜻을 나타내고 있지만, 원래는 ‘꿰맬 총’, ‘상투 짤 총’ 등으로 쓰이던 것이다. ‘각(角)’은 물론 ‘뿔’이다. 그렇다면 총각은 그 모습이 상투를 뿔처럼 매고 다닌 사람을 가리킨 말이다.실제로 옛날에는 남자아이들이 머리를 양쪽으로 갈라 뿔 모양으로 동여맸고 이들을 ‘총각’이라고 했었다. 그러다가 장가를 가면 정식으로 상투를 틀어매고 다녔으니 뿔처럼 머리를 맨 사람은 대개가 장가가기 전의 남자였다. 그래서 그러한 머리를 한 사람을 ‘총각’이라고 한 것이며 어린 소년들에게도 ‘총각’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집터에는 터의 자취가 남아 있다. 터무니의 사전적 의미는 터를 잡은 자취이다. 이러한 의미는 터무니의 어원 풀이에 중요한 단서가 된다. 터무니는 일단 터와 무늬로 나누어 이해할 수 있다. 터는 터를 잡은 자취라는 전체 의미를 고려하면 집이나 건물을 지을 자리라는 의미임에 틀림없다.터무니의 어원에 대한 대부분의 논의에서도 이와 같은 견해를 보인다. 9세기 말 사전에 터무니가 터문으로 표기되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터문의 터는 물론 자리라는 뜻이다. 문은 아마도 한자 문(紋)으로 무늬와 같은 뜻이니, 터의 무늬라는 뜻이다. 이것은 터의 자취라는 뜻과도 통한다. 이는 터 무늬의 의미와 사실상 같은 것이다.집이나 건물을 세웠던 터를 보면 주춧돌을 놓았던 자리나 기둥을 세웠던 자리의 흔적이 남게 된다. 바로 그것을 터문이라 한 것이다. 다시 말해 터무니는 터를 잡은 자취를 의미한다. 주춧돌이나 기둥을 세웠던 자리는 터의 중심이자 근간이다. 중심이나 근간이라 그런데 터무니없다는 것은 허황하여 전혀 근거가 없다는 뜻을 갖는다. 내용이 허황되어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일컬을 때 쓰는 말이다.
임진왜란 당시 피난길에 오른 선조 임금이 처음 보는 생선을 먹게 되었다. 맛있게 먹고 나서 선조가 고기의 이름을 물어보니 ‘묵’이라 했다. 맛에 비해 고기의 이름이 보잘 것 없다고 생각한 선조는 그 자리에서 ‘묵’의 이름을 ‘은어(銀魚)로 고치도록 했다. 그런데 나중에 왜란이 끝나고 궁궐에 돌아오자 선조는 그 생선이 생각나서 다시 시켜서 먹었더니 옛날에 먹던 맛이 아니었다. ‘시장이 반찬 ‘이란 말처럼 허기가 졌을 때 먹던 음식 맛과 모든 것이 풍족할 때 먹는 음식 맛은 다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맛에 실망한 선조가 ‘도로 묵이라 불러라’하고 명해서 그 생선의 이름은 다시 ‘묵’이 될 판이었는데 얘기가 전해지는 와중에 ‘다시’를 뜻하는 ‘도로’가 붙어버려 ‘도로묵’이 되었다. 이리하여 잠시나마 ‘은어’였던 고기의 이름이 도로묵이 되어버렸고, 이것이 후대로 오면서 ‘도루묵’이 되었다. 바닷물고기인 도루묵은 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민물고기인 은어와는 다른 종류다. 제대로 풀리지 않거나, 애쓰던 일이 수포로 돌아갔을 때 ‘말짱 도루묵 ‘이라는 말을 쓴다. ‘말짱 헛일’이라는 말과 같은 뜻이다.
세간에 엉터리 마술사의 주문이나 장난스런 주문 등으로 인식되고 있는 이 말은 본래 불교 경전 <천수경>에서 비롯된 것이다. <천수경>은 불가에서 하는 모든 의식에 널리 사용되는 경전으로서 많은 불자가 독송하는 데 쓰는 경전이다.<천수경>의 첫 시작은 ‘입으로 지은 업을 깨끗하게 씻어내는 참된 말’로 시작되는데 그 말이 바로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이다. 산스크리트어인 이 말의 뜻을 살펴보자면 ‘수리’는 길상존(吉祥尊)이라는 뜻이고, ‘마하’는 ‘크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마하수리’는 대길상존(大吉祥尊)이라는 뜻이 된다.한편 ‘수수리’는 ‘지극하다’의 뜻이고, ‘사바하’는 원만, 성취의 뜻이다. 따라서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의 본뜻은 ‘길상존이시여 길상존이시여 지극한 길상존이시여 원만, 성취 하소서’가 된다. 이것을 세 번 연거푸 외우는 것으로 입으로 짓는 모든 업을 깨끗하게 씻어낼 수 있다고 한다.요즘은 대중들 사이에서 뭔가 신기한 일을 하거나 보여줄 때, 그 일에 신비함을 불어넣기 위해 장난스럽게 외우는 주문으로 쓰이고 있다.
낭패는 본디 전설 속에 나오는 동물의 이름이다. 그런데 낭과 패는 서로 결점을 가지고 태어났다. 낭(狼)은 태어날 때부터 뒷다리 두 개가 없거나 아주 짧다. 그런가 하면 패(狽)는 앞다리 두 개가 없거나 짧다. 그래서 이런 이유 때문에 두 녀석이 함께 움직여야 하는데 둘이 걸으려면 어지간히 사이가 좋지 않고서는 넘어지기 일쑤였다.이 두 녀석의 성품을 분석해 보면, 낭은 성질이 흉포하지만 지략이 부족하다. 반대로 패는 순한 듯 싶은 데도 지략이 뛰어나다. 그래서 함께 먹이를 찾으러 나갈 때엔 패의 지시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가도 마음이 바뀌면 문제가 생긴다. 서로 고집을 피우면 움직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꼼짝없이 굶어 죽을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이 낭과 패가 서로 떨어져서는 아무 일도 못하게 되는 경우를 낭패라 한다.그런데 요즈음은 계획한 일이 실패로 돌아가거나 어그러진 형편을 가리키는 말로 바뀌어 쓰이고 있다. 또한 어떤 일을 도모했을 때 잘 풀리지 않아 처지가 고약하게 꼬이는 경우에도 사용한다.
‘을씨년’은 1905년 을사년에서 나온 말이다. 즉 을사조약을 체결한 해 라는 데서 나온 말이다.을사년에 정부가 일본과 을사조약을 체결하게 되었는데 그 을사조약은 우리나라의 외교권을 강탈하고 내정간섭까지 가능하도록 만든 조약이었다. 그 을사년이라는 말이 ‘을씨년’으로 변화한 것이다.을사조약이 체결되던 해에 우리나라는 일본의 식민지가 된 것이고 이 때문에 국내의 분위기가 어수선하고 나라를 잃은 허탈한 슬픔에 잠겨있는 국민들이 많았다. 그런 분위기를 을사년의 분위기와 비교하여 을사년스럽다고 했고, 그 말이 변화하여 을씨년스럽다라는 말로 변화한 것이다.그렇다고 을씨년스럽다는 말이 비속어는 아니다. 유래가 위와 같을 뿐이지 을씨년스럽다라는 말은 표준어로 인정되고 있다. 그런데 요즈음은 남 보기에 매우 쓸쓸한 상황이나 혹은 날씨나 마음이 쓸쓸하고 흐린 상태를 나타내는 말이 되었다.
우리는 흔히 사람답지 못한 언행을 하는 사람을 개차반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말은 어떻게 유래된 것일까?개차반은 개와 차반이 합쳐진 복합명사다. 여기서 차반(茶盤)이란 원래 새색시가 친정이나 시집에 갈 때 부모에 대한 공경을 담아 정성껏 차린 음식을 뜻하는 말이었으나 요사이는 맛있게 잘 차려진 음식이나 밥상이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그런데 정성스런 음식 앞에 똥이나 먹는 개가 붙어있으니 개가 먹는 음식이란 뜻이 된다.정성스럽고 맛깔스런 음식에 왜 이런 개가 붙었을까?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개가 접두어로 붙은 것을 보면 분명 이 음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곧바로 알 수 있다.결혼을 마친 양가 혼주가 온갖 정성을 다해 서로에게 보낼 음식을 장만했다. 그런데 때마침 굶주린 똥개가 주변에서 침을 흘리고 있다가 참다못해 정성스레 준비해 놓은 차반을 헤집고 이것저것 마구 먹어 차반을 망쳐 놓았다. 이것이 개차반이다.이렇게 사람답지 못한 언행을 하는 사람도 개차반이라고 한다.
빈대떡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가장 널리 통용되는 설로는 최세진이 쓴 <박통사해>에 병저의 중국식 발음인 빙쳐에서 빈대떡이 나왔다는 것을 들 수 있다. 그 다음은 옛날 녹두가 귀한 시절에 손님 대접을 위해서 특별히 만들어 내놨던 손님접대용 음식이란 뜻의 빈대(賓待)떡에서 유래를 찾기도 한다.끝으로 흉년이 들었을 때나 곤궁한 사람들이 거리에 넘칠 때 서울의 부자들이 큼지막하고 둥글넓적한 떡을 넘칠 때 서울의 부자들이 큼지막하고 둥글넓적한 떡을 만들어 빈자(貧者)들에게 나누어 주었다는 데서 유래를 찾기도 한다.이밖에도 빈대처럼 납작하게 만들어 빈대떡이란 이름이 붙었다는 설이 있지만, 아무려면 먹는 것에 빈대의 이름을 붙였을까를 생각해보면, 그것은 말하기 좋아하는 후대 사람들이 지어낸 이야기라고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전통적인 빈대떡에는 돼지고기나 숙주나물과 같은 것이 들어가지 않고 녹두 간 것에 팥소를 넣어 지진 후 제사상 고배(高杯)에 고기를 놓는 받침으로 사용했다. 이렇게 빈대떡과 빙자떡이 처음부터 다른 음식으로 발생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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