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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채와 채소] '야채'는 일본 한자말 '채소'는 우리말

채소(菜蔬)는 나물을 뜻하는 채(菜)와 소(蔬)가 결합한 한자어이고, 야채(野菜)는 들을 뜻하는 야(野)와 나물을 뜻하는 채가 합쳐진 말로써 그 말이 그 말이다. 그런데 채소는 우리의 한자말이고, 야채는 일본식 한자말이니 야채를 버리고 채소로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꽤 많다.예부터 중국에서는 소채나 채소라 했고,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채소로 써 왔다. 이와 달리 일본에서는 야채(야사이やさい)가 있는데 일제강점기 때 우리나라로 건너와 널리 퍼졌다. 그러니 야채보다는 채소로 써야 한다는 얘기가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갖는다.하지만 일본이 만든 말이므로 우리가 써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국어수학과학물리 같은 말도 버려야 한다는 얘기다.특히 우리말과 관련해 일본 한자말은 버리고, 중국 한자말을 써야 한다는 논리가 퍼져 있는데 어떻게 보면 사대주의로 비칠 수도 있기 때문에 이는 조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이에 대해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채소(菜蔬)를 밭에서 기르는 농작물로 뜻풀이하고 야채(野菜)는 이러한 채소를 일상적으로 이르는 말로 뜻풀이해 양자를 모두 표준어로 인정하고 있으므로 둘 다 쓸 수 있는 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다만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동의어인 경우 더 많이 쓰이고 더 기본적인 단어에서 직접 뜻풀이를 하고, 나머지 단어는 그 기본 단어의 뜻풀이를 참고하도록 했다. 이러한 편찬 지침에 따르면 직접 뜻풀이가 된 채소가, 채소의 뜻풀이를 참고하도록 뜻풀이가 된 야채보다 더 기본적인 단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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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4.21 23:02

[주부는 '분리수거'를 못 한다] 수거는 환경미화원 몫…주부들은 '분류 배출'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는 표현이지만, 그 표현을 꼼꼼히 따지면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말들이 더러 있다. ‘분리수거’도 그중 하나이다. 아마 여러분 중에서도 오늘 집 안의 쓰레기를 열심히 분리수거한 한 분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말이다. 집 안의 쓰레기는 절대로 분리수거를 할 수 없다. 아니, 해 주지 않는다. 무슨 소리냐고?수거(收去)의 뜻이 무엇인가? ‘거두어 간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분리수거(分離收去)는 말 그대로 ‘쓰레기 따위를 종류별로 나누어서 늘어놓은 것을 거두어 감’을 뜻하는 말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을 비롯해 다른 국어사전에도 그렇게 올라 있다. ‘따로 거두기’나 ‘따로 거두어 가기’로 순화해 쓰는 것이 좋겠다는 설명도 덧붙여 있다. 따라서 분리수거는 오늘도 새벽부터 구슬땀을 흘린 환경미화원들이 하는 것이지, 집에 있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 아니다. 또 환경미화원들이 집 안까지 들어와 분리수거를 해 가지는 않는다.그러면 집에서 재활용품이나 음식 쓰레기를 구분해 내놓는 일을 뜻하는 말은 뭘까? 그것은 바로 ‘안에서 밖으로 밀어 내보냄’이라는 뜻을 가진 배출(排出)이다. 아울러 분리(分離)는 ‘서로 나뉘어 떨어짐 또는 그렇게 되게 함’을 뜻하는 말로, 쓰레기나 재활용품 등을 종류에 따라 가르는 일에는 ‘종류에 따라서 가름’을 뜻하는 분류(分類)를 쓰는 것이 백번 옳다. 결론적으로 주부(물론 남편도 도와야 하지만)가 집에서 쓰레기 등을 밖에 내놓는 일은 ‘분리수거’가 아니라 ‘분류 배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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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4.14 23:02

[내로라] '나이로다'가 줄어든 '내로라'…어떤 분야를 대표할 만하다

무엇을 내놓으라는 말인가? 어떤 분야를 대표할 만하다를 뜻하는 말 ‘내로라하다’를 ‘내노라’ 따위로 쓰는 사람이 많다. 아마 ‘내놓으라’가 변한 것쯤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쓰는 듯하다. 뜬금없이 내놓으라니 대체 뭘 내놓으라는 소리인가?바른말 내로라하다는 나+이+로다+하다로 이뤄진 말이다. 여기서 ‘나’는 바로 나를 가리키고 ‘이’는 서술격조사 이다의 이다. ‘로다’는 “장군감이로다”의 로다쯤으로 생각하면 된다.그러니까 ‘나이로다’는 (그중에 최고는 바로) 나다라는 의미다. 여기서 ‘나’와 ‘이’가 결합해 ‘내’가 되고, ‘로다’가 ‘로라’로 활용하면서 ‘하다’가 붙어 ‘내로라하다’가 됐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예전에는 ‘내로라 하다’처럼 띄어 썼는데 표준국어대사전에 내로라하다를 하나의 말로 올려놓았다. 그러니 띄어 쓰면 안 된다.이 내로라하다는 우리가 흔히 쓰는 일본 한자말 ‘기라성’을 대신하기에도 아주 적합한 말이다. ‘기라(綺羅)’는 아름답고 고운 비단이나 그런 옷을 뜻하는 말로 여기에 별을 뜻하는 ‘성(星)’을 합성해 ‘밤하늘에 반짝이는 뭇 별’을 뜻하는 말로 만든 것이다. 여기서 기라는 반짝반짝을 뜻하는 기라키라(きらきら)의 어근이다. 우리가 한글이 없을 때 한자를 빌려 썼듯이 일본도 한자를 빌려 ‘기라’를 쓴 것이다.일본에서조차 이 말은 바람직하지 않은 구조라고 평가한다. 우리나라 국어학자들도 마찬가지다.그래서 이 말을 순화해서 쓰라고 하는데 그 순화어가 ‘빛나는 별’이다. 하지만 “오늘 이 자리에 ‘빛나는 별’ 같은 선배들을 모시고 행사를 갖게 돼 기쁩니다” 따위로 쓰는 사람은 없다. 이때 좋은 말이 ‘내로라하다’다. “오늘 이 자리에 내로라하는 선배들을 모시고 행사를 갖게 돼 기쁩니다”로 말하면 아주 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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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4.07 23:02

[싸가지가 없다] '싹'에 새끼 뜻하는 '아지' 붙어 '잘 될 기미' 의미

‘싸가지’는 상당히 부정적 의미로서, ‘싹수’의 강원도, 전라도 방언이다. ‘싹수’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일이나 사람이 앞으로 잘될 것 같은 낌새나 징조’이다. 흔히 “싹수가 노랗다(잘될 가능성이나 희망이 애초부터 보이지 아니하다)”처럼 쓰여서 ‘싹수’ 자체에는 그리 부정적 의미는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나 ‘싹수’를 ‘싸가지’로 바꾸었을 때에는 부정적인 의미가 드러난다. “싸가지가 없다”처럼 쓰여 부정적 의미를 나타내는데, 이 문장으로만 보면 ‘싹수’와 그 의미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지만 ‘싸가지’라고만 해도 부정적 의미를 나타내게 된다. 이는 ‘싸가지가 없다“에서의 부정적 의미가 ’싸가지 ‘라는 단어에 전염되었기 때문이라고 보인다. “이런 싸가지를 봤나!!”와 같은 표현이 가능한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싸가지’는 ‘싹+아지’로 구성된 말로 파악된다. 이때, ‘-아지’는 ‘강아니’ ‘송아지’등과 같이 ‘작은 것, 새끼’의 의미를 더해주는 접미사이다. 그러니까 그 어원적 의미는 ‘싹의 새끼’, 즉 ‘아주 작은 싹’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어떤 사용 의미를 갖는가? ‘어떤 것이 잘 될 것 같은 기미’라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싸가지가 없다’는 표현은 ‘도대체 가망이 없다’라고 할 것이다. 이 말이 주로 예의범절을 지키지 않는 경우에 사용되므로, ‘예의 범절을 전혀 모르는, 예의를 갖출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파악된다. 따라서 ‘싸가지 없다’라는 말은 나이 많은 사람이 자신보다 어린 사람에게 많이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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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3.31 23:02

['알아야 면장을 한다'] 담장 같은 답답함에서 벗어나는 것

“알아야 면장을 한다”는 말은 배움의 중요함을 얘기할 때 쓰는 말이다. ‘면장도 알아야 한다’거나 ‘알아야 면장을 한다’ 따위로 말한다. 하지만 ‘알아야 면장을 한다’는 논리적으로 맞는 표현이지만, ‘면장도 알아야 한다’는 좀 이상한 표현이 된다. ‘알아야 면장을 한다’는 말 속의 ‘면장’을 동네 이장 위 또는 군수 아래의 면장님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듯하다. 지금도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웃음이 난다. 사실 나도 옛날에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동네에서 ‘면 서기’만 돼도 무척 똑똑하고 높은 사람인데 ‘면장’이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똑똑하고 높은 분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면장이 되려면 아는 것이 많아야 된다고 생각했고, ‘면장도 알아야 한다’는 이치에 맞는 소리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알아야 면장을 한다”는 말은 지방자치단체인 면사무소의 책임자로서 면의 행정을 총괄하는 면장과는 눈곱만큼도 관계가 없다. 본래 ‘면장’의 의미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담장(墻)을 마주하고 있는 것 같은 답답함에서 벗어난다(免)”는 ‘면장(免牆)’이다.이 말은 공자가 자기 아들에게 사서삼경의 하나인 <시경(詩經)> 중에 ‘수신’과 ‘제가’를 가르치면서 수신제가를 공부하고 익혀야 내 앞에 가로막혀 있는 담장 같은 답답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한 데서 유래한 말이다. 현대는 날이 갈수록 지식 정보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앨빈 토플러도 ‘미래’를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이러한 정보와 지식의 급격한 팽창에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핵심이라고 했다. 이 시대에 지식자원을 어떻게 극복하느냐 즉 어떻게 면장(免墻)을 하느냐에 따라 미래가 달려있다고 보는 것이다. 우리도 부단히 노력하여 지적으로 면장(免墻)하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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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3.24 23:02

['감질맛'과 '감칠맛'] 가슴 한구석에만 있는 맛 '감질맛'…입에 당기는 맛 '감칠맛'

“그녀가 내 잔에 감칠맛 나는 농주를 가득 부어 주며 감질맛 나는 눈웃음을 짓네”라고 하듯 ‘감질맛’은 널리 쓰이는 말이다. 하지만 ‘감질맛나다’는 좀 이상한 말이다. 우리말에는 “무언가 몹시 먹고 싶거나, 가지고 싶거나, 하고 싶어서 애타는 마음이 생기다”란 뜻의 ‘감질나다’가 있다. 이 말에서 유추해 “한꺼번에 욕구가 충족되지 않고 찔끔찔끔 맛만 보아 안달이 나는 상태”를 나타내는 말로 ‘감질맛나다’를 만들어 쓰는 듯하다. 그러나 ‘감질’의 뜻을 알면 ‘감질맛’이 얼마나 황당한 말인지 알게 된다. ‘감질(疳疾)’은 국어사전에서는 “먹고 싶거나 가지고 싶어서 몹시 애타는 마음”으로 풀이되고 있다. 하지만 본래는 한의학에의 ‘감병(疳病)’을 일컫는 말이었다. ‘감병’이란 어린 아이들이 젖이나 음식을 잘 조절하지 못해 생기는 질병을 뜻한다. 그래서 감질이 나면 속이 비어 뭔가 먹고 싶은데 몸에 탈이 나 마음껏 먹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안달이 남다. 이렇게 유래한 ‘감질나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몹시 먹고 싶거나 가지고 싶거나 하고 싶어서 애타는 마음이 생기다”란 뜻으로 쓰이게 됐다. 따라서 병 이름에 뿌리를 둔 ‘감질’과 ‘맛’이 어울려 하나의 단어를 이루는 것은 좀 이상하다. 그래서 ‘감질맛나다’를 쓰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국립국어원도 ‘감질맛나다’로 써서는 안 된다고 밝히고 있다. ‘감질맛’은 혀로 느끼는 맛이 아니라 가슴 한구석에만 있는 맛이다. 따라서 마음을 끌어당기는 힘, 음식물이 입에 당기는 맛의 뜻으로 쓰이는 ‘감칠맛’과 혼동해서 사용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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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3.17 23:02

[얌체와 염치] 염치는 부끄러움을 아는것, 얌체는 사익만 좇는것

스스로 다짐했던 약속들이 작심삼일이 된 경우가 많다. 자신과의 약속이 허물어지는 것을 두고 보는 일은 스스로 염치없는 얌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눈길을 끄는 화두가 염치와 얌체이다. 염치는 사람으로서 체면을 차릴 줄 알고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을 일컫는 말이고 얌체란 자기에게 유리한 행동만 해서 얄미운 사람이란 뜻이다.염치(廉恥)는 한자어로 청렴(廉) 하여 부끄러움(恥)을 아는 마음이다. 얌체는 ‘염치’의 작은말에서 온 말로써 이익이라면 주책없이 달라붙고, 남이 싫어하는 것도 개의치 않으며, 공중도덕이나 양식 같은 건 아예 없는 사람을 일컬어 왔다. 요즈음 주변을 보면 염치가 희미해지고 얌체가 활보하고 있다. 더 염려되는 것은 염치란 정의의 기준을 넘어선 상황을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는 눈이다. 이런 바이러스의 확산은 사회의 기본을 무너뜨린다. 청나라 때 중국번이란 사람은 난세의 조짐을 세 가지로 보았다.첫째는 흑백을 가릴 수 없고 틀린 건지 옳은 건지 알 수 없는 상황의 전개다. 둘째는 선량한 사람들은 줄어들고 하찮은 사람들이 설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셋째는 문제가 심각해지면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는 갈대처럼 흐느적거리는 우유부단한 행동이 범람한다는 것이다. 왜 우리 사회가 이렇게 변하고 있을까? 그것은 염치의 실종과 얌체의 득세다. 어떻게 되든 나만 잘 되면 그만이고, 무슨 짓을 해도 나만 잘살면 그만이란 생각이 난세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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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3.10 23:02

[즈려밟지 말고 지르밟자] '내리누르다' 의미는 '지르-'가 바른 말

나 보기가 역겨워/가실 때에는/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진달래꽃/아름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놓인 그 꽃을/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나 보기가 역겨워/가실 때에는/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우리들의 영원한 애송시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이다. 그런데 소월님의 시 가운데 걸음마다 놓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라는 대목이 나온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이 ‘즈려밟다’가 “위에서 내리 눌러 밟다”라는 의미의 바른말인 줄 알고 있다. 하지만 ‘즈려밟다’는 바른말이 아니다. ‘즈려밟다’와 함께 많이 쓰이는 ‘지려밟다’도 바른말이 아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즈려밟다’의 바른말은 ‘지르밟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때의 ‘지르-’는 ‘내리누르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신이나 버선 따위를 뒤축이 발꿈치에 눌리어 밟히게 신다”를 뜻하는 말이 ‘지르신다’이고, “아랫니와 윗니를 꽉 눌러 물다”를 의미하는 말이 ‘지르물다’이다.우리는 시에 쓰이는 잘못된 시어들 때문에 혼동을 많이 한다. “어느새 내 마음 민들레 홀씨 되어/강바람타고 훨훨 네 곁으로 간다”는 시가 있다. 그런데 민들레에는 홀씨가 없다. 홀씨는 포자라고도 하며 고사리, 이끼, 버섯 등이 포자로 번식한다. 홀씨는 바람에 날려서 퍼지며 민들레의 씨도 바람에 날려 퍼지기 때문에 홀씨라고 하는 것 같은데 이는 큰일 날 소리다. 민들레는 꽃식물이고 종자로 번식하지, 포자(홀씨)로 번식하지 않는다. “민들레 홀씨”가 아니라 “민들레 속 씨 깃털”이 두둥실 날아가듯이 민들레의 꿈도 널리 퍼지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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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3.03 23:02

[청국장] 고구려 때 시작…'전국장'의 변형이 정설

청국장은 우리 민족의 고유의 식품이다. 청국장의 역사는 고구려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구려의 옛 영토인 지금의 만주 지방의 기마 민족들은 쉽게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는 방법으로 콩을 삶아서 말안장 밑에 넣고 다녔다. 이것이 한반도로 내려와 서민의 유용한 단백질 공급원 이자 왕가의 폐백식품으로 애용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청국장은 독특한 이름 때문에 중국에서 유래된 음식으로 착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신라시대 신문왕이 왕비를 맞을 때 폐백품목 중에 ‘시’가 들어있었다고 하는데 바로 그 ‘시’란 콩을 발효시킨 된장을 뜻하는 것이다. 청국장이란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는데, 하나는 숙종 때의 실학자인 홍만선이 농업 과 일상생활에 대해 광범위하게 다룬 백과사전인 <산림경제>에 된장을 ‘전국장’이란 이름으로 기록한 것으로 보아 전국장이 청국장으로 음이 변형되었다는 설이 있다. 다른 하나는 청국장이 병자호란 때 쳐들어온 청나라 병사들의 군중 식량이었던 데서 유래되어 ‘청국장(淸國醬)’ 이라고 하거나, 청나라의 누룩(麴)과 같다고 하여 ‘청국장’이라고도 하며, 전쟁터에서 만들어 먹었다 하여 ‘전국장’이라고 불렸다는 주장이 있다. 이들 근거는 찾을 수 없고 전국장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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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2.24 23:02

[조카] 임금 발아래서 일 보는 사관 '족하'서 유래

형제의 아들딸들을 일컫는 호칭이다. 이 말의 어원은 중국의 개자추(介子推)로부터 시작된다. 개자추는 진나라 문공이 숨어 지낼 때 그에게 허벅지 살을 베어먹이면서까지 그를 받들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후에 왕위에 오르게 된 문공이 개자추를 잊고 그를 부리지 않자 이에 비관한 개자추는 산 속에 들어가 불을 지르고 나무 한 그루를 끌어안고 타 죽었다. 그때서야 후회한 문종이 개자추가 끌어안고 죽은 나무를 베어 그것으로 나막신을 만들어 신고서 ‘족하(足下)!’ ‘족하!’하고 애달프게 불렀다. 문공 자신의 사람됨이 개자추에 발아래 있다는 뜻이었다. 여기서 생겨난 족하라는 호칭은 그 후 전국시대에 이르러서는 천자 족하, 대왕 족하 등으로 임금을 부르는 호칭으로 쓰였다. 그러다가 그 이후에는 임금의 발아래에서 일을 보는 사관을 부르는 호칭으로 쓰였다.그런데 더 후대로 내려오면서부터 같은 나이 또래에서 상대방을 높여 부르는 말로 쓰이기 시작했다. 일부에서는 발아래 정도의 아주 가까운 곳이란 뜻으로 편지글 등에서 가깝고 대등한 사람에 대한 경칭으로 쓰였다고 하는데 이는 틀린 말이다. 일반적으로 한 촌수 아래를 조카로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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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2.17 23:02

27. 말짱 도루묵 - 묵이었다가,은어됐다가…'다시' 묵이 된 물고기

임진왜란 당시 피난길에 오른 선조 임금이 처음 보는 생선을 먹게 되었다. 맛있게 먹고 나서 선조가 고기의 이름을 물어보니 ‘묵’이라 했다. 맛에 비해 고기의 이름이 보잘 것 없다고 생각한 선조는 그 자리에서 ‘묵’의 이름을 ‘은어(銀魚)로 고치도록 했다. 그런데 나중에 왜란이 끝나고 궁궐에 돌아오자 선조는 그 생선이 생각나서 다시 시켜서 먹었더니 옛날에 먹던 맛이 아니었다. ‘시장이 반찬 ‘이란 말처럼 허기가 졌을 때 먹던 음식 맛과 모든 것이 풍족할 때 먹는 음식 맛은 다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맛에 실망한 선조가 ‘도로 묵이라 불러라’하고 명해서 그 생선의 이름은 다시 ‘묵’이 될 판이었는데 얘기가 전해지는 와중에 ‘다시’를 뜻하는 ‘도로’가 붙어버려 ‘도로묵’이 되었다. 이리하여 잠시나마 ‘은어’였던 고기의 이름이 도로묵이 되어버렸고, 이것이 후대로 오면서 ‘도루묵’이 되었다. 바닷물고기인 도루묵은 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민물고기인 은어와는 다른 종류다. 제대로 풀리지 않거나, 애쓰던 일이 수포로 돌아갔을 때 ‘말짱 도루묵 ‘이라는 말을 쓴다. ‘말짱 헛일’이라는 말과 같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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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1.13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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