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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진 기자의 예술 관람기] 다시 보다

다시 보다: 한국 근현대미술전 한국에서 서양화단이 본격적으로 형성된 1920년대부터 문화적 대변환의 계기가 된 서울올림픽 1988년까지 한국 근현대미술사에 길이 남을 주요 작가별 작품과 특징, 변천사를 조명하는 전시가 서울 소마미술관에서 지난달부터 8월 27일까지 열리고 있다. 한국 근현대미술사를 장식한 25명의 작품 159점이 소개된다. 전시는 ‘우리땅, 민족의 노래’, ‘다아스포라, 민족사의 여백’, ‘여성, 또 하나의 미술사’, ‘추상, 세계화의 도전과 성취’, ‘조각, 시대를 빚고 깎고’로 나뉜다. 예술은 시대를 배경으로 태어난다. 일제 강점기와 해방, 6.25 전쟁 등 격동기를 통과한 대한민국 역사이자 빛과 그림자다. 시대의 리얼리티를 구사한 ‘박수근’, 가족과 소 그림으로 시대의 아픔을 그려낸 ‘이중섭’, 천재적 능력으로 인물과 산천을 그린 ‘이인성’의 그림이 소개된다. ‘박생광’, ‘장욱진’, ‘구본웅’의 풍경도 만날 수 있다. 6.25전쟁을 거치며 생긴 민족분단 70년의 아픔을 고스란히 담아낸 세대가 있다. 유럽화단의 중심에서 활약한 ‘배운성’의 대작 ‘가족도’가 소개되며, 한국 리얼리즘 회화의 거봉 ‘이쾌대’는 ‘해방고지’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으로 분단의 대서사를 보여준다. 봉건, 남성 중심 가부장제의 질곡을 넘어선 한국 여성 화가를 만나 보자. 소설가, 시인, 신 여성운동가로 불같은 생애를 산, 최초의 여성화가 ‘나혜석’은 파리, 스페인 풍경을 보여주고, 우주적 기호가 춤추는 환상의 세계를 구현한 재불화가 ‘이성자’와 ‘방혜자’가 대표적이다. ‘박래현’과 ‘천경자’의 화폭은 언제봐도 압권이다. ‘김기창’의 아내 박래현은 구상에서 추상의 길을 걷고, ‘꽃과 여인의 화가’로 대중적 인기를 구가해온 천경자, 분방한 필치와 강렬한 색채로 추상표현주의 양식으로 역동적인 조형 세계를 펼친 ‘최욱경’의 작품 또한 놓쳐서는 안 된다. 20세기 미술은 추상의 여정이다. 한국의 추상미술은 단색화의 원조 ’김환기‘, ’산의 화가‘로 불리는 ’유영국‘ 두 거장은 한국 추상의 쌍두마차다. 동양 지필묵의 조형을 문자 추상으로 구현한 ‘이응노’와 동양적 내면적 시각과 은밀하고 매혹적인 색상을 구사한 ‘남관’을 빼놓을 수 없다. 열악한 환경에서 한국 근대조각을 꽃피운 작가들을 만날 수 있다. 절제와 금욕의 조형을 구현한 ’불각(不刻)의 미‘로 유명한 김종영과 대칭의 균제미·정면성·수직성의 조형으로 생명의 근원을 탐구한 ‘문신’. 침묵과 구도의 세계를 펼친 ‘권진규’의 구상 조각도 볼 수 있는 특별한 기회다. 최욱경과 천경자의 작품은 한동안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최욱경의 ‘환희’는 나도 모르게 환희에 빠져들게 하며 대형 화폭에 형형색색의 놀이가 한바탕 벌어지는 느낌이 강렬하다. 천경자의 초원은 70년대 아프리카 여행을 다녀온 후 시리즈로 작품을 남겼다. 작품 ‘초원 II’는 아프리카의 원초적 자연에 매료, 독특한 색감과 형태미로 이국적이며 환상적이다. 특히 코끼리 등에 누워있는 누드의 여인은 설화적이고 신비로운 인상을 지울 수 없다.

  • 전시·공연
  • 서유진
  • 2023.05.10 13:46

[서유진 기자의 예술 관람기] 루드비히 미술관 컬렉션

루드비히 미술관 컬렉션: 피카소와 20세기 거장들 한·독 수교 140주년을 기념하는 독일 쾰른 루드비히 미술관 컬렉션 전시회가 서울 마이아트뮤지엄에서 지난 3월 24일부터 8월 27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는 루드비히 미술관과 마이아트뮤지엄의 협업으로 이루어진 특별전으로, 20세기 모던아트부터 현대에 이른 주요한 예술사조와 거장들의 걸작들을 선보인다. 쾰른 루드비히 미술관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다음 해인 1946년 독일 요제프 하우브리히가 나치의 탄압 속에서 지켜낸 독일 표현주의 작품들을 쾰른시에 기증함으로써 시작, 그 후 1976년 피카소와 팝아트에 조예가 깊은 패터와 이레네 루드비히 부부가 350점의 현대미술품을 기증하여 본격적인 루드비히 미술관이 탄생하게 된다. 전시는 6부문으로 나누어진다. 1부 독일 모더니즘과 러시안 아방가르드로 바실리 칸딘스키, 카지미르 말레비치 등의 작품이 전시되고, 2부는 피카소와 거장들의 제목으로 피카소, 마르크 샤갈,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조르주 브라크의 걸작들이 펼쳐진다. 3부는 초현실주의부터 추상표현주의까지로, 잭슨 폴록, 장 뒤뷔페의 작품으로 이루어져 있다. 4부는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슈타인, 5부는 미니멀리즘 경향으로 루치오 폰타나, 요제프 알버스, 모리스 루이스의 작품과 6부는 독일 현대미술과 새로운 동향을 소개한다. 수많은 걸작 중 아마데오 모딜리아니(1884~1920)의 작품이 내 발길을 한참 붙잡는다. 그의 작품과 삶은 우선 독특하다. 이탈리아 토스카나주 리보르노에서 태어나 36년의 짧은 생을 살았지만, 독보적이고 모던한 걸작들을 세상에 남겼다. 당시에 그의 작품을 알아주는 이가 없었으나, 그가 남긴 수많은 데생, 조각들, 긴 코와 목선, 아몬드 모양의 눈동자가 없는 눈이 특징인 초상화, 관능적이지만 천박하지 않은 누드 등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그만의 걸작들은 죽은 후 사랑을 받게 된다.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 그가 그린 기다란 목은 시인 노천명의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시구처럼 유난히 서글프다. 허약한 체질과 이국에서 겪은 가난과 술과 마약,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괴로워했던 그의 삶도, 그가 죽기 얼마 전에 결혼했던 사랑하는 잔 에뷔테른은 그가 죽은 지 이틀 후 투신자살한 것도 얼마나 애달픈가. 인생은 짧고 예술은 영원하다고 하지만, 그의 고달픈 삶과 예술에의 열정, 사랑이 애처롭고 처연하다. 노래 ‘Gloomy Sunday(우울한 일요일)’을 불러보고 싶다.

  • 전시·공연
  • 서유진
  • 2023.04.23 17:42

[서유진 기자의 예술 관람기] 앙드레 브라질리에

“예술은 삶과 아름다움을 사랑하도록 돕는다. 자신은 아름다움을 표현할 특권을 받았다”고 신께 감사하는 앙드레 브라질리에 ‘멈추어라, 순간이여! (Eternal Moment)’전시가 서울 예술의 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4월 9일까지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프랑스 예술 황금기의 마지막 전설로 불리는 앙드레 브라질리에(Andre Brasilier, 1929~)가 직접 고른 회화 120여 점, 특히 6m가 넘는 대형 작품을 만날 수 있는 특별전이다. 1929년 프랑스 소뮈르에서 출생한 브라질리에는 화가 알폰스 무하의 제자였던 아버지 영향으로 20세에 프랑스 최고 예술학교인 ‘에콜 데 보자르’에서 그림 공부를 했고, 400년 전통을 자랑하는 ‘로마대상’을 수상하며 세상에 이름을 알리게 된다. ‘이 거장의 영적인 탐구에 대한 열정은 식을 줄 모른다.’라고 CNN이 표현한 문구처럼 브라질리에 작품은 영적이고 마음을 힐링하는 색으로 그린 서정시(抒情詩)와 같다. 그는 블라맹크, 샤갈과 예술적인 교류를 했고 고갱, 마티스 등 거장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만의 독특한 색채와 간결하고 부드러운 형태로, 상징성이 돋보이는 시적인 풍경과 자연을 선보인다. ‘새로운 장르의 낭만주의’를 창조한 것이다. 전시는 4개의 부분으로 나뉘어, 처음은 ‘축제로의 초대’, 두 번째는 ‘풍경이 말을 걸었다’, 세 번째는 ‘그녀’, 마지막은 ‘삶의 찬가’이다. 그의 작품의 주제가 말(馬), 자연, 음악, 여성으로, 특별히 그의 부인이자 뮤즈인 ‘상탈(Chantal)’을 화폭에 많이 담았다. 영원한 뮤즈! 그의 행운이자 여신이다. 그에게 말과 여인은 언제나 영감의 원천이고, 음악회에 갔을 때는 ‘순수한 영감의 순간에 참석’하는 기쁨을 누렸다고 한다. ‘축제로의 초대’는 그가 서커스, 음악회, 무도회에 갔을 때 느꼈던 경탄과 존경, 놀라움과 기쁨을 회화로 옮겼다. ‘풍경이 말을 걸었다’의 풍경은 그의 회화가 갖는 색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드러낸다. 자연의 광대함과 진동은 모두 색의 변주로 리듬감이 뛰어나다. 그는 인물이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회화의 소재이자 주제라고 믿으며 ‘그녀’를 1958년 결혼 이후 수없이 그렸다. ‘삶의 찬가’는 그가 회화가 좋은 취향의 언어로 세계와 삶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그려냈다. 그는 찰나의 시상(詩想)을 통해 자연의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을 신비스러운 푸른색과 흰색으로 찬란한 아름다움을 빚어낸다. 거장이 멈춰 세운 아름다운 찰나가 영원이 되는 순간이다. 그는“강렬한 감정을 표현하려면 미친 듯이 사랑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은 사랑에 관한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예술이 마술이 되는 경험을 하게 하는 순간들이었다.

  • 전시·공연
  • 서유진
  • 2023.01.08 16:32

[서유진 기자의 예술 관람기] 문신: 우주를 향하여

“인간은 현실에 살면서 보이지 않는 미래(우주)에 대한 꿈을 그리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MMCA)은 창원시와 공동주체로 조각가 문신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 ‘문신(文信): 우주를 향하여’를 지난 9월부터 내년 1월 29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개최한다. 조각(95), 회화(45), 드로잉, 도자 등 총 230여점이 출품, 다방면에 걸친 작가의 삶과 예술세계 전모를 소개하는 대규모 회고전이다. 치열한 生을 작품으로 승화한 문신(文信, 1922~1995)이 평생을 이방인으로 살았던 작가의 자유, 고독, 열정이 이 시대에 보내는 메시지를 생각하게 하는 전시다. 한국과 일본, 프랑스를 넘나들며 이방인으로 살았던 작가의 삶은 진정한 창작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이 되었고, 문신은 지리적, 민족적, 국가적 경계를 초월했고 예술 장르를 넘나들며 자유롭게 창작했다. 그는 형식과 내용, 물질과 정신,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 구상과 추상, 깎음과 붙여감 등을 넘나들며 절묘한 균형을 창조한다. 그의 조각의 특징 중 하나인 ‘대칭’은 작품의 균형미, 정면성, 수직성, 고도의 장인정신을 느낄 수 있다. 문신은 1922년 일본 규슈 사가현의 탄광촌에서 마산 출신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문신이 다섯 살이 되었을 때, 가족은 아버지 고향 마산으로 돌아왔다. 이때 문신은 짧지만, 행복한 시절이었다고 한다. 2년이 채 되기도 전에 부모는 다시 일본으로 돌아갔고 문신은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마침 운이 좋게도 화방에서 일하게 됐고, 주인은 성실한 문신에게 화방을 인계하게 된다. 문신은 피카소와 터너의 그림에 매료되어, 화방에 있는 재료로 화집의 그림을 묘사해서 팔기도 한다. 그렇게 문신은 운명적으로 화가의 길을 걷게 된다. 16세 때, 문신은 도쿄 일본미술학교 서양학과에 입학한다. 1945년 해방 후 문신은 고향 마산으로 돌아와, 엄청난 양의 ‘혜성같이 빛나는’ 작품을 발표하여 미술계를 놀라게 한다. 그는 돌연 1961년에 무일푼으로 프랑스 파리로 떠나, 외곽에 있는 고성(古城)을 수리하는 일을 했다. 이 일을 하면서 ‘입체’를 다루는 조각가로 전향하게 된다. 파리에서 ‘5월 살롱’, ‘동시대 대가와 청년작가 살롱’, ’실사실주의 살롱‘ 등 당시 주요한 살롱에 초대받고, 공원에 나무 조각상을 세우는 등 10여 년 동안 유럽에서 인정받는 조각가로 활동했다. 귀국 후 마산에 정착해 창작에만 몰두하다 직접 디자인과 건축한 문신미술관을 1994년 개관하고 그렇게 치열하게 살았던 삶을 마감한다. ‘우주’는 그가 평생 탐구했던 ‘생명의 근원’이자 ‘미지의 세계’이고 ‘고향’과도 같다. 1부‘파노라마 속으로’는 ‘지금 여기’의 삶을 성찰하는 구상회화에서 생명의 본질을 탐구하는 추상회화로의 변화를 볼 수 있고, 아름다운 조형미와 완성도가 높은 회화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2부‘형태의 삶: 생명의 리듬’은 나무 조각을 중점적으로 선보인다. 조각에서 형태를 가장 중시한 ‘생명의 리듬’은 창조적으로 진화하는 ‘생명력’으로 독창적이고 환상적인 추상 형태를 볼 수 있다. 3부‘생각하는 손: 장인정신’은 어떤 재료를 사용하든, 능숙하고 표면이 매끄럽게 연마한 브론즈 조각에서 강인한 체력과 인내심과 고된 노동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4부‘도시와 조각’은 도시와 환경이라는 확장된 시각에서 조각을 바라보는 문신의 작품을 보여준다. 야외조각과 체불 시절 만든 ‘공원 조형물 모형’ 등이다. 특히 문신미술관은 작가가 직접 디자인하고 14년에 걸쳐 건축물로서 ‘인간이 살 수 있는 조각’이자 문신의 50년 예술세계의 종합이다. 다채롭고 신비한, 한 예술가의 삶을 드라마틱하게 그린 영화 한 편을 본 것 같다.

  • 전시·공연
  • 서유진
  • 2022.12.11 17:18

[서유진 기자의 예술 관람기] 프랑코 폰타나: 컬러 인 라이프

“인생도 꿈이기에, 사진을 찍는 것이 이 꿈을 소유하는 방식이다.” 서울시 강남구 마이아트뮤지엄은 컬러 사진의 선구자인 이탈리아 사진작가 프랑코 폰타나의 한국 최초 회고전 <프랑코 폰타나: 컬러 인 라이프>를 지난 9월 30일부터 내년 3월 1일까지 개최한다. 프랑코 폰타나는 사진인지 회화인지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경이로운 추상적 색채풍경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작가다. 1933년 이탈리아 모데나에서 태어난 프랑코 폰타나는 1960년대 초반 흑백 사진에서 벗어난 순수 예술 사진작가가 거의 없었을 때부터 컬러 필름을 수용했고, 사진의 투명도를 과소 노출하여 한 폭의 회화를 연상시키는 작품을 창조했다. 폰타나는 기존 스타일에서 벗어나 전후 이탈리아 사진 역사에 큰 변혁을 일으키게 된다. 이번 전시는 폰타나가 60년대부터 지금까지 고찰하는 예술적 주제이자 그의 인생철학이 담겨 있는 삶의 풍경 122점을 선보인다. 자연, 도심, 인물, 도로를 피사체로 삼아 ‘랜드스케이프,’ ‘어반스케이프’, ‘휴먼스케이프’, ‘아스팔토’로 나뉘어 펼쳐진다. ‘랜드스케이프’는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담은 경이롭고 아름다운 풍경을, 매혹적이며 강렬한 보색 대비와 간결한 구도로 신비로운 작품을 창조한다. ‘어반스케이프’는 도심과 물체를 특별한 시점으로, 평범한 현실의 순간을 황금 비율의 연금술사처럼 공간의 기하학적 구성으로 매혹적인 평면적 세계를 보여준다. ‘휴먼스케이프’는 빛과 그림자, 실루엣을 통해 존재하지 않는 것을 간접적으로 드러나게 하는 표현법을 썼다. ‘아스팔토’는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는 피사체와 아스팔트의 도로기호, 페인트 선과 깨진 틈 등을 찍는 각도와 관점에 따라 절묘한 추상회화로 탄생시킨다. 폰타나에게 풍경은 단순한 자연이 아니라, 우리 삶의 모든 모습이다.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을 포착하고 드러내는 것이 그의 예술이다. 그는 우리의 현실은 색으로 가득하며, 매혹적인 부분과 대비를 발견할 줄 알고, 그것을 색과 구도의 관계로 만든다. 그는 우리가 사는 세상은 미묘하고 흥미로우며,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순간에 살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그에게 컬러와 사진은 삶을 바라보는 눈이며 표현이자 소유방식이다. 그는 50년 넘게 렌즈라는 매체로 형태와 색채를, 또한 그가 어떻게 인생이라는 풍경을 소유하였는지 알 수 있는 놀라운 전시다. 삶은 얼마나 경이롭고 아름다운가.

  • 전시·공연
  • 서유진
  • 2022.11.13 17:08

[서유진 기자의 예술 관람기] MMCA 이건희 컬렉션: 모네와 피카소, 파리의 아름다운 순간들

국립현대미술관은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모네와 피카소, 파리의 아름다운 순간들>을 지난 9월 21일부터 2023년 2월 26일까지 과천관에서 개최한다. 현대미술의 거장들인 고갱, 달리, 르누아르, 모네, 미로, 샤갈, 피사로의 회화 7점과 피카소의 도자 90점 등 총 97점이 전시된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의 프랑스 파리는 ‘아름다운 시절(Belle Epoque)’로 전 세계의 예술가들이 모여드는 국제적인 미술의 중심지였다. 프랑스 국적의 고갱, 르누아르, 모네, 피사로 외에 스페인 출신의 달리, 미로, 피카소, 러시아 출신의 샤갈도 파리에서 활동했다. 이들은 파리에서 스승과 제자, 선후배와 동료로서 발전과 성장을 응원하며 20세기 현대미술사를 빛내고 흐름을 함께 만들어갔다. 전시 제목처럼 아름다운 순간들을 창조한 것이다. 전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단연 파블로 피카소의 도자 90점이다. 피카소는 주요 주제로 삼은 투우 장면과 황소가 등장하는 도자를 제작했다. 특히 피카소는 여러 명의 여인 중 작고하던 해까지 20년을 함께 한 자클린 로크의 초상화를 400여 점을 그렸고, 도자 작품으로도 제작했다. <이젤 앞의 자클린>은 우아하게 입체적으로 묘사됐다. 작품 <퐁투아즈 곡물시장>(1893)을 그린, 인상주의 풍경화의 대가인 까미유 피사로는 폴 고갱의 초기작 <센 강변의 크레인>(1875)을 보고 그의 재능을 한눈에 알아본다. 당시 증권 중개인 고갱이 화가로 전업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스승이다. 모네, 르누아르, 피카소는 우정과 존경을 서로 나누며 지냈다.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1917~1920)과 르누아르의 <노란 모자에 빨간 치마를 입은 앙드레(독서)>는 두 거장의 예술세계가 응축된 말년의 역작이다. 피카소는 르누아르의 말년작품을 보고 그에게 매료돼 작고한 르누아르의 초상화를 그릴 정도였다. 파리의 스페인 화가 피카소, 미로, 달리는 파리에서 처음 만났다. 그리스 신화 속 켄타우로스를 주제로 살바도르 달리의 <켄타우로스 가족>(1940)과 역시 신화를 주제로 한 피카소의 도자를 함께 전시했다. 사람, 새, 별이 있는 밤 풍경을 추상화한 호안 미로의 <회화>(1953)도 특별하다. 마르크 샤갈은 <결혼 꽃다발>(1977~1978)에서 여전히 몽환적이고 아름다운 생의 순간들을 꽃과 정물, 동물,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을 그렸다. 그간 힘들고 평탄치 못한 인생, 특히 부인이자 뮤즈였던 벨라의 죽음을 뒤로 하고, 두 번째 사랑을 만나 꿈과 환상의 세계를 만들었다. 아름다운 시절에 아름다운 순간들을 표현한 아름다운 작품들이다. 아, 아름다움이여!

  • 전시·공연
  • 서유진
  • 2022.10.30 16:24

[서유진 기자의 예술 관람기] 이중섭 특별전

국립현대미술관(MMCA)은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이중섭>>展을 8월 12일부터 내년 4월 23일까지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세기의 기증’ 이건희컬렉션 1488점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중섭 작품 80여 점과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중 10점, 총 90여 점을 조망하는 특별전이다. 한국 근대미술을 대표하는 서양화가인 이중섭(李仲燮, 1916~1956)은 평남 평원의 부유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평북 정주의 오산학교에 입학, 임용련으로부터 미술 지도를 받았다. 임용련은 예일대학교 미술과를 수석 졸업한 수재로, 학생들에게 향토적인 주제에 의한 미의식을 가르쳤다. 이는 이중섭의 화가로서의 여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고, 그 당시 이중섭은 들판의 소를 관찰하고 스케치에 열중했다. 이중섭의 그 유명한 ‘소’가 탄생하게 된 연유다. 1937년 이중섭은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제국 미술학교에 들어갔다가, 문화학원에 재입학해 20세기 모더니즘 미술의 자유로운 경향을 공부한다. 그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로 예민한 감수성과 순진무구함, 외골수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이런 그의 기질은 서구 아방가르드 회화, 야수파 화풍에 깊이 빠지게 한다. 그는 감정이 실린 격렬한 필치와 강렬한 색감, 날카로운 선묘로 그만의 독특한 조형 세계를 구축하게 된다. 그는 단순히 서양 어법을 모방하는 수준을 뛰어넘어, 그를 키워준 향토의 숨결과 희망을 담아내는 걸작들을 탄생시킨다. 그는 1943년 귀국하여 2년 후, 문화학원의 후배인 야마모토(한국명 이남덕)와 결혼하여 원산에 정착해 살면서 8·15해방을 맞는다. 1950년 겨울 남하하는 국군을 따라 가족과 함께 월남, 부산·서귀포·통영 등지로 전전하며 피난살이를 한다. 생활이 어려워지자 부인은 두 아들을 데리고 일본으로 떠나게 되고, 그는 궁핍과 고독의 나날을 보내면서도 개인전을 여러 번 열었다. 그는 피난 시절 가족과의 생활, 이별의 아픔과 그리움 등 생활일기와 같은 그림을 그렸다. 필자가 구구절절이 그의 삶을 읊는 이유는, 그의 예술세계는 삶과 직결되고 시대의 아픔을 극명하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뛰어난 작품 90여 점 중 ‘가족과 첫눈’을 소개한다. 가족과 함께 서귀포에서 지낸 1년이 가장 길었는데, 유족들은 그때가 가난했지만 가장 행복했다고 전한다. 눈이 펑펑 쏟아지는 겨울날, 가족이 함께 걸어갔던 추억을 담아낸다. 남녀노소가 초현실적으로 표현된 커다란 새와 물고기 사이에서 첫눈을 맞으며 뒹굴고 있는 그림이다. 그림을 보고 있으면 행복이 충만한 듯, 기쁨에 겨운듯하다. 아마도 이때의 추억으로 그는 고독한 여생을 버틸 수 있지 않았을까? 전시를 보고 나올 때는 이중섭의 삶을 알기 때문인지, 애처롭고 서글프고 마음이 아프다.

  • 전시·공연
  • 서유진
  • 2022.08.23 17:01

[서유진 기자의 예술 관람기] 유영국

“산에는 뭐든지 있다. 봉우리의 삼각형, 능선의 곡선, 원근의 단면, 다채로운 색…” 국제갤러리는 지난 9일부터 8월 21일까지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유영국 20주기 기념전 <Color of Yoo Youngkuk>을 개최한다. 유영국 작고 20주년 기념으로 회화작품 68점과 드로잉 21점, 사진 작품 및 작가의 활동 기록을 담은 아카이브 등 주요 작품 세계를 총망라한다. 유영국은 근현대사의 격동기 1916년 경북 울진에서 태어나서 일본 도쿄 문화학원에 입학한다. 그곳에서 일본의 추상미술의 대가들과 교류하며, 20세기 전반의 전위적인 미술이었던 초현실주의와 추상미술에 깊이 매료된다. 새로운 예술적 기법뿐만 아니라 표현적 다변화를 고심하던 유영국은 ‘오리엔탈 사진학교’에서 수학하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사진을 통한 새로운 조형 질서를 탐구하며, 점, 선, 면, 형, 색 등 기본 조형 요소를 중심으로, 자연 추상이라는 그 만의 추상 세계를 구축하게 된다. 유영국은 1943년 고향 울진에 돌아와 틈틈이 작품활동을 하다가, 1964년부터는 전업 미술작가가 된다. 울진은, 서쪽에는 태백산맥의 험준한 산악이 많고 동해를 향하여 급경사를 이루고, 해안에는 약간의 좁고 긴 해안평야로 아름다운 풍광을 자아낸다. 울진은 예술가에게 천혜의 장소이다. 그는 이런 울진의 산을 모티브로, 대담한 구상과 화체(畵體)를 통해 대형 추상회화를 그리기 시작한다. 색채를 서서히 쌓아 올리고 두텁게 만드는 등 계산된 구도와 색채를 선택, 비정형(非定型) 추상에서 기하학적 형태로의 변화가 두드러진다. 빨강, 파랑, 노랑의 삼원색을 기반으로 초록, 보라, 검정을 쓰며, 긴장감과 보색의 조화, 색채의 깊이, 공감각을 동시에 부여하는 등 추상회화 미학의 절정에 다다른다. 지난 2018년에도 ‘유영국 색채추상’전 작품 24점에 대해 필자는 기사를 쓴 적이 있는데, 이번 전시는 90여 점에 달하는 유영국의 뛰어난 걸작들을 감상할 수 있어서, 감탄을 연발하게 된다. 그의 작품은 강렬하고 원초적이며 동시에 서사적이고 균형미가 뛰어나게 모던하며 거침없다. 수십 년 앞서간 유영국의 작품은 아무리 보아도 지루함이 없다. 감동적이고 강렬한 작품을 보고 나면 잔상이 뇌리에 남아 있는데, 다른 어느 작가 작품보다 잔상이 강렬하다. 유영국의 원색의 산은, 이 답답하고 지루한 팬데믹 시대에 아이러니하게도 깊고 푸른 바다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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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
  • 2022.06.28 17:20

[서유진 기자의 예술 관람기] 호안 미로

“그림은 섬광 같아야 하며, 아름다운 여성이나 시처럼 매혹적이어야 한다.” 20세기 추상과 기호의 장인 ‘호안 미로: 여인, 새, 별’ 전시회가 마이아트뮤지엄에서 9월 12일까지 열리고 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호안 미로 미술관과 공동주관으로 유화, 드로잉, 판화, 태피스트리, 조각 등 엄선된 70여 점의 작품이 소개된다. 1893년 스페인 카탈루냐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난 호안 미로(Joan Miro, 1893~1983)는, 제2차 세계대전과 스페인 내전을 겪었고, 그의 아버지는 시계공이자 금 세공사 장인이었다. 장인의 전통과 카탈루냐 지방의 황량한 풍경, 혹독한 전쟁은 그의 예술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는 여러 직업을 거친 후, 어렵게 바르셀로나의 미술학교에 가게 된다. 스승 프란시스코 갈리는 물체의 공간적 특성에 대한 미로의 감수성을 키워주었다. 비잔틴 양식의 건물과 교회, 안토니오 가우디의 환상적인 건축도 소개했다. 그 후, 미로는 야수파와 입체파, 사실주의와 초현실주의, 시화와 삽화, 조각과 도예 등 미술의 모든 분야를 섭렵했다. 그리고 그는 현대생활의 가혹함을 탈피, 초월적이고 시적인 자연의 개념을 찾고자 했다. 그렇게 미로는 기호의 세계를 탐험하기 시작했고, 단순하면서도 기하학적이며 섬광 같고, 매혹이 넘치는 자신만의 화풍을 구축한다. 그리하여 추상미술과 초현실주의적 환상을 대표하는 예술가가 탄생하게 된다. 그의 후기작품은 초기작품보다 훨씬 더 단순한 형상과 배경을 보여준다. 미로는 바다처럼 푸른 바탕에 점 하나를 찍고 섬세한 선 하나, 두 개를 그려 넣음으로써 내면의 환상을 넉넉히 표현할 수 있게 된다. 초기의 장난스럽거나 공격적인 풍자가 거의 종교적으로 바뀌었지만, 그의 모든 작품은 활력과 심오함으로 일관된 통일체를 이룬다. 시인이 표현하면 해석은 독자의 몫이듯, 미로는 작품의 해석을 관객에게 맡겼다. “미로의 모든 작품은 춤추는 정원이고 합창이며, 막 피어나는 생명체나 꽃과도 같은 색의 오페라이다. 이 세계는 점차 사라져버리는 동시에 엄연히 존재한다. 색의 음향은 이 세계에 특성과 현실을 부여하고, 능란하면서도 절제된 언어를 부여한다.”라고 프랑스의 유명한 극작가 외젠 이오네스코는 극찬했다. 필자는 음악에 비유해서, 미로의 작품은 파가니니의 바이올린곡처럼, 유려하고 매혹적이라고 말하고 싶다. ‘여인, 새, 별’이란 전시 제목도 얼마나 시적이고 매력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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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유진
  • 2022.06.07 16:45

[서유진 기자의 예술 관람기] 어느 수집가의 초대

어느 수집가의 초대 – 고(姑) 이건희 회장 기증 1주년 기념전 “비록 문화유산을 모으고 보존하는 일이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들어갈지라도, 이는 인류 문화유산의 미래를 위한 것으로, 우리 모두의 시대적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고 이건희 회장 기증 1주년을 맞이하여 문화예술을 널리 향유 하고자 했던 고인의 뜻을 살려, 국립현대미술관과 국립중앙박물관의 공동 주최하는 ‘어느 수집가의 초대’전을 8월 8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하고 있다. 동양과 서양, 고대와 현대를 종횡하는, 폭넓고 깊이 있는 ‘세기의 기증’ 컬렉션이다. 전시 작품들은 각 시대의 대표작들로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창조적 역량을 발휘한 걸작들이다. 자연을 즐기고 배웠던 조선 회화의 정신, 고난과 역경의 역사 속에서 변하지 않는 가족의 사랑, 고매한 정신세계, 종교적 의미를 탐색한 작품 등 예술혼을 불태운 걸작이다. 기증 대표작으로 정선의 국보<인왕제색도>와 김홍도의 보물<추성부도>, 김환기의 <산울림>, 클로드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 박수근의 <아기 업은 소녀> 등을 꼽을 수 있다. 겸재 정선(鄭敾)이 그린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는 비가 그친 뒤, 운무가 감도는 웅장한 인왕산을 공간감과 실체감, 먹의 느낌이 살아 있게 표현한 걸작이다. 중국 북송의 문인 구양수(歐陽修)는 가을바람 소리에서 죽음의 엄숙한 섭리를 느껴 시 추성부(秋聲賦)를 지었고, 김홍도는 이 시를 그림으로 그렸다. 그는 시 원문을 그림 여백에 써서, 시와 그림, 글씨가 어우러진 걸작 추성부도(秋聲賦圖)를 탄생시켰다. 감동이 물결친다. 근현대로 오면 뛰어난 화가가 많지만, 김환기(1913~1974)를 소개한다. 그는 추상적인 조형 어법으로 한국적 정서를 양식화한 서양화가이다. 그는 말년에 점을 찍고, 점 하나하나를 사각형으로 돌려 에워싸는 작업을 반복하며 작품 ‘산울림’(1973년)을 완성했다. 푸른 ‘산울림’은 깊고 깊은 바다 같다. 외국 작품으로 넘어가면, 빛에 따라 같은 대상이 얼마나 다르게 보이는가를 입증한 프랑스 인상주의 창시자, 클로드 모네(1840~1926)의 ‘수련이 있는 연못’을 빼놓을 수 없다. 말년에 아내와 아들을 연달아 잃고, 시력이 급속도로 나빠진 그에게 수련이 가득한 연못은 그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시력 탓으로 푸른 빛을 띤, 그의 일생의 역작 ‘수련 연작’ 중 한 작품이다. 1년 전, 삼성 이건희 회장의 유족은 국립중앙박물관에 2만1693점과 국립현대미술관에 1488점을 아무런 조건 없이 기증했다. 수준급이면서 다양한 예술품의 방대한 기증, ‘세기의 기증’은 역사에 유례가 없다. 재력을 가장 뜻깊고 품격있게 사용한, 어느 수집가의 초대에 다시 한번 감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수집가를 배출한 우리 대한민국이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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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유진
  • 2022.05.24 17:28

[서유진 기자의 예술 관람기] 보화수보

寶華修補 - 간송의 보물 다시 만나다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 보화각(寶華覺)에서 ‘보화수보-간송의 보물 다시 만나다’展은 지난 16일 개막, 6월 5일까지 전시한다. 간송미술관은 비지정문화재 142점을 2년간 보존처리한 작품 중 32점을 이번에 선보인다. “보존처리는 유물 손상이나 퇴색된 부분을 적극적으로 보강하고, 색 맞춤해 현상을 바꾸는 것”이라고 간송미술관은 밝혔다. 대표작으로 여말선초 문인 매헌 관우(1363~1419)의 1책 5권 125장의 <매헌선생문집>, 조선 시대 전 시기에 걸친 작품을 수록한 <해동명화집>, 심사정의 ‘삼일포’, 신사임당의 ‘포도’, 강희안의 ‘청산모우’ 등이다. 간송미술관의 유래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간송(澗松) 전형필(全鎣弼, 1906~1962) 선생은 서울의 대부호의 아들로 태어나, 휘문고등학교와 와세다대 법학부를 졸업했다. 그 후 일제강점기 일본에 의해 문화재가 반출되는 것을 방지하고자 간송은 오세창 선생과 미술품과 문화재의 수집과 보존을 위해 평생을 바쳤다. 그는 당대 일류 서화가, 문사들과의 교류가 문화, 예술에 대한 안목을 키우고, 특히 오세창 선생의 고서화에 대한 감식안에 크게 힘입었다. 1938년 간송은 한국 최초의 사립박물관인 보화각을 개설했고, 1962년 보화각은 간송미술관으로 개칭되었다. 전시 작품 중 조선 후기 화가 심사정(沈師正, 1707~1769)의 삼일포(三日浦)가 눈길을 한동안 붙잡는다. 외금강 신계사로부터 흘러오는 신계천이 북쪽으로 흐르다가 36개의 봉우리에 가로막혀 물길을 틀며 생긴 호수가 삼일포다. 신라의 화랑들이 이곳에 들렀다가 그 아름다움에 반해 3일 동안 머물렀다고 해서 삼일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푸른빛으로 가득한 화폭은 안온하면서도 신비롭다. 담헌 이하곤은 ‘삼일포는 절색의 미인과 같아 모두 갖추어져 있는데…’라고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눈처럼 보이는 흰 점들은 벌레가 갉아 먹은 자국이지만 일부 남겨두어 눈 내리는 겨울 풍경의 시적인 정취를 자아낸다. 매헌(梅軒) 권우(權遇)의 <매헌선생문집>은 여말선초의 정치적, 사회적 격변기를 살았던 권우의 사상과 정신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희귀한 조선 전기의 시문집 중 하나이다. <해동명화집>에 실린 신사임당의 ‘포도’는 포도알의 생생함이 살아있는 부드러운 필치가 뛰어나다. 5만원 지폐 앞면에 신사임당의 초상과 함께 실린 그림은 원본 ‘포도’를 재구성한 것이다. 장승업의 말년작 ‘송하녹선’, 안견의 ‘추림촌거’, 단원 김홍도의 ‘낭원투도’ 등 걸작들이 소개된다. 보화수보를 보고 나오니,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로 돌아가 당시의 우리 선조들의 걸작품과 시문집을 직접 마주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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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유진
  • 2022.05.17 18:12

[서유진 기자의 예술 관람기] 사빈 모리츠

“추상회화는 보편적이지 않은 인간의 영역과 감각적인 영역을 다루며, 이는 정신적인 세계로 옮겨간다.”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독일의 여성화가 사빈 모리츠(Sabin Moritz, 1969~)의 아시아 첫 개인전 ‘레이징 문’(Raging Moon)을 서울 갤러리현대에서 4월 24일까지 전시한다. 그가 최근 몇 년 동안 제작한 구상과 추상회화, 에칭 연작 등 총 50여 점이 펼쳐진다. 냉전 시대 동독에서 유년기를 보낸 사빈 모리츠는 처음에 유년기의 경험과 전쟁의 참상을 구상화로 표현했다. 2015년부터 추상화로 전환, ‘정신적 풍경’을 구현하기 시작한다. 그는 개인과 집단의 가변적이고 파편적인 ‘기억’을 역동적인 붓질과 격정의 색채를 섬세하게 그러데이션, 거칠고 원초적인 선 등을 통해 감각적이고 매혹적인 추상화를 창조한다. 모리츠는 구상에서 추상으로, 추상에서 구상으로 ‘다시 또다시’ 자유롭게 넘나든다. 작가의 정물화 ‘메멘토 모리’, 장미나 나무 등의 동일한 대상을 에칭(동판화)으로 형상화하고 그 위에 유화물감과 크레용을 덧칠한 작품도 소개된다.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찬란하고 격정적인(raging) 색채의 향연이자 축제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 ‘3월’, ‘대지’, ‘숲’, ‘바람’ 등의 자연 요소와 ‘안드로메다’, ‘카시오피아’와 같이 신화적이고 우주적인 작품 제목은 전시 제목 ‘레이징 문’처럼 관객의 상상력을 한껏 부추긴다. ‘레이징 문’은 영국의 대표적인 현대 시인 중 한 명인 딜런 토마스(Dylan Thomas)의 시(In my craft or sullen art 나의 기교 혹은 침울한 예술로)에서 인용됐다. 시인이 격정적인 달빛 아래서 다른 무엇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랜 세월의 슬픔을 두 팔로 껴안은 연인들을 위해 시를 쓴다는 내용이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숫자 ‘4’를 제시한다. 벽면에 작품 4점씩 나란히 놓인 추상화는 동양 세계와 다르게 서양에서는 ‘4’는 동서남북, 사계절, 피타고라스의 우주론에서 정의(正義) 등 질서와 안정을 의미한다. 동독과 서독에서 살게 된 독특한 경험과 복잡한 심경을 격정적이고 현란한 색채의 붓질로 세련되게 표현한 모리츠의 추상화를 보고 나오니 하늘의 구름과 나무, 꽃, 바람이 예전과는 다르게 느껴진다. 모리츠는 힘든 기억을 화폭에 쏟아부으면서 구원되지 않았을까. 자꾸만 모리츠의 추상화가 머릿속에서 맴돈다. 아, 삶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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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유진
  • 2022.04.10 16:24

[서유진 기자의 예술 관람기] 어윈 울라프: 완전한 순간 - 불완전한 세계

사진은 진실하다. 사진은 진실해서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순간의 아름다움을 매혹적으로 다채롭게 표현할 수 있는 시각예술이다. 수원시립미술관은 한국과 네덜란드 수교 60주년 기념전 '어윈 울라프: 완전한 세계-불완전한 세계' 국제전을 3월 20일까지 전시하고 있다. 네덜란드 출신 세계적인 사진작가 어윈 울라프의 작품 110점을 전시하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개인전이다. 어윈 울라프(Erwin Olaf, 1959∼)는 저널리즘을 전공했지만, 그는 언어보다는 이미지를 통해 사회문제를 제기하는 사진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는 처음에 상업 사진작가로 출발했지만, 후에 상업과 순수예술의 정체성을 균형 있게 조율하는 탁월한 사진작가로 이름을 날리게 된다. 네덜란드 작가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처럼 회화 같은 사진을 창작한 뛰어난 예술가다. 이번 전시는 총 4개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1부는 '순간: 서사적 연출'로 그는 철저한 배경 연출을 통해 인간의 극적인 감정을 서사적으로 구현했다. 그중 인간존재의 연약함이 두드러진다. 인물들의 순간을 포착, 내면의 감정과 정서를 매력적인 이미지로 구사했다. 2부 '도시: 판타지 사이'는 2010년대부터 울라프가 실제 존재하는 도시를 배경으로 연작을 제작하기 시작한다. 그의 작품에서 현실과 예술적 허구 사이의 경계가 불분명해짐에 따라, 급변하는 도시가 만들어내는 환상의 허구성을 폭로한다. 현대의 도시에서 젊은이들의 불안과 두려움, 외로움이 물씬 느껴진다. 3부 '고전: 현대적 초월'은 울라프가 고전 회화와 시가 가지고 있는 운율과 인간의 마음이 빚어내는 순간을 완벽하게 담아냈다. 과거와 현재의 시공간을 사진을 통해 사실적이면서 동시에 초현실적인 세계로 탁월하게 창조한다. 4부는 2019년 네덜란드 국립미술관에서 개최됐던 '12인의 거장과 어윈 울라프' 전시를 소개한다. 빛의 화가 렘브란트 등 네덜란드 회화의 거장들 작품과 울라프 작품 12점을 나란히 배치하여 특별하다. 모든 예술가는 표정과 자세, 명암과 색채, 다양한 질감과 재료, 공간 등의 '구성요소'를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고민한다. 울라프도 마찬가지다. 또한 울라프는 작업 과정과 각 회화에서 받은 영향과 영감에 대해 보여준다. 사실을 기록하는 평범한 사진이 이토록 아름답고 매혹적으로 구현, 예술작품이 된다는 사실이 놀랍고 감탄스럽다. 기사를 쓰면서 회화처럼도 보이기도 하고, 폭로기사처럼도 보이는 뛰어난 울라프의 작품을 지면상 한 점만 보여주게 되어 안타까울 뿐이다.

  • 문화일반
  • 서유진
  • 2022.03.06 16:41

[서유진 기자의 예술 관람기] 빛: 테이트 미술관

빛은 생명이다. 우리 인간은 빛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존재다. 성경의 창세기에 보면 빛은 흑암의 어둠에서 나온 창조주의 첫 번째 작품으로 만물의 시작이자 근본이다. 처음에 빛은 선과 진실, 순수를 표상하는 반면 어둠은 악과 파멸을 상징했다. 17세기 천재 과학자 아이작 뉴턴은 빛이 물체에 닿는 순간 일부는 흡수되고 그 나머지는 반사되면서 발생하는 파장으로 특정한 색으로 인지한다고 빛과 색에 대해 밝혀냈다. 낭만주의 시대 예술가들은 빛과 어둠의 극적 효과를 활용, 자연의 예측 불가성과 힘을 강조해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작품들을 만들었다. 이렇듯 빛은 과학자뿐만 아니라 철학자와 예술가, 시인의 탐구 대상으로 장엄한 역사를 이어 왔다. 서울시립미술관과 영국 테이트미술관이 공동 기획한 ‘빛: 영국 테이트미술관 특별전’이 지난해 12월 말경부터 5월 8일까지 열리고 있다. 월리엄 터너, 모네, 칸딘스키, 백남준 등 예술가 43명의 근대 명화부터 조각, 사진, 과학과 예술의 결합으로 완성된 설치미술까지 작품 110점을 전시하고 있다. 뛰어난 작품들이 많지만, 그중에 몇 점을 소개한다. 우선 전시 포스터 존 브렛(1831~1902)의 ‘도싯서 절벽에서 바라본 영국해협’은 다양하고 풍부한 파란 색감의 바다 위로 뭉게구름에 가려 눈에 보이지 않는 태양이 발산하는 부드러운 빛이 따뜻하게 내려앉는 사랑스러운 풍경화다. 독일 태생 요제프 알베르스(1888~1976)는 1963년 ‘정사각형에 바치는 경의를 위한 연구-밝게 빛나는’은 뉘앙스와 크기가 다른 3~4개 정사각형 푸른색이 색조, 농담, 강도를 조정함으로써 정사각형이 연결과 분리, 전진과 후퇴를 하는 듯 보이는 모던한 걸작품을 창조한다. ‘라슬로 모호이너지(1895~1946)’는 사진의 실험이 회화가 지닌 그 어떤 혁신적인 면도 뛰어넘는다고 보았으며 그는 긍정적인 사회 변혁의 원동력으로서 예술이 잠재적 힘을 발휘한다고 확신했다. 1922년 작품 ‘K Vll’은 일련의 선과 직사각형이 상호 중첩되며 이루어지는 빛, 즉 공간의 아름다움이 눈에 띄는 명작이다. 현대의 작가 중 기하학적 문양을 반복하는 추상화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브리짓 라일리(1931~)’의 1993년 작품 ‘나타라지’를 빼놓을 수 없다. 힌두교에서 춤의 왕 ‘나타라지’는 수직과 사선 방향으로 분할되며, 각각의 영역이 채색되어 시각적으로 통일되고 균형을 이룬 동시에 각각의 색이 리듬감으로 살아 움직이는 역동적인 미감이 뛰어난 걸작이다. ‘빛에는 날개가 있다. 날개가 있는 것이 모두 그렇듯 빛도 황홀한 꿈으로 난다.’, ‘빛이 스며드는 곳에는 기쁨이 있다.’라는 시인들의 시처럼 전시장을 나올 때는 걸작품의 눈부신 ‘빛’을 감상하며 스며든 기쁨을 감출 길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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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유진
  • 2022.02.14 16:20

[서유진 기자의 예술 관람기] 칸딘스키, 말레비치 & 러시아 아방가르드: 혁명의 예술

카지미르 말레비치 절대주의(1915) 코로나 팬데믹 시대다. 이렇게 답답하고 힘든 시기에는 무언가 창조적 도전 정신이 절실해진다. 마침 서울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칸딘스키, 말레비치 & 러시아 아방가르드: 혁명의 예술 전시가 4월 17일까지 열리고 있다. 러시아 예카테린부르크 미술관을 비롯한 4개의 미술관에서 보유한 러시아 아방가르드 화가 49명의 75개 작품이 전시된다. 러시아 아방가르드는 1910년대와 1920년대 러시아에서 등장한 전위적 예술운동이다. 전쟁과 혁명의 시기를 보내고 있던 러시아 예술가들은 유럽에서 들여온 모더니즘 미술을 자신들의 시선으로 새롭게 혁명적인 예술로 탄생시킨다. 그 대표적 예술가로 바실리 칸딘스키(1866~1944)와 카지미르 말레비치(1879~1935)를 꼽을 수 있다. 칸딘스키는 예전의 화가들이 그렸던 자연을 모방한 그림과는 전혀 다른 완전한 추상에 도달한다. 완전한 추상이란 사물을 유추할 수 있는 그 어떤 단서도 없이 요약응축한 형태를 말한다. 또한 칸딘스키는 바그너의 음악을 찬양, 회화도 음악과 같은 에너지를 일으킬 수 있다고 공감각을 주장했다. 그는 예술에 있어서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란 저서에서 상상에 의한 색의 표현을 강조했다. 노란색은 트럼펫의 공격적세속적인 소리에, 푸른색은 파이프 오르간의 성스러운 소리에 비유했다. 전시된 칸딘스키 작품 즉흥 세 점은 무의식중에 떠오른 이미지를 그린 걸작이다. 또 다른 뛰어난 예술가 말레비치는 인상주의와 야수파로 시작해 상징주의, 입체주의, 입체미래주의로 계속 발전하여 추상미술 양식인 절대주의를 창안한다. 극단적인 기하학으로 단순화 시킨, 인식 가능한 사물의 형태를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순수한 인간 정신의 표현인 절대주의만이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진정한 미술임을 피력하였다. 1915년 작품 절대주의는 기하학적으로 단순화시킨 검은 사각형과 붉은 사각형, 검은 원 등이 화폭에서 팽팽한 긴장미가 살아있는 걸작 중 걸작이다. 다른 러시아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의 작품도 놓칠 수 없다. 알렉산드르 로드첸코의 비구상적 구상은 작은 도형들의 곡선과 명암을 통한 양감이 뛰어나고, 올가 로자노바의 비구상적 구상은 복잡하면서도 다양한 색상과 형태로 기본적 절대주의 구성요소를 잘 배치한 작품이다. 아리스타르호 렌들로프의 우유 파는 여인은 화려한 색채가 축제 같다. 그 외에도 뛰어난 아방가르드 작가들의 작품들이 전시장에 즐비했다. 젊은 시절부터 좋아한 칸딘스키 작품이 세 점밖에 되지 않고, 대표적인 작품이 아니어서 아쉽고 섭섭했다. 하지만 새롭게 말레비치를 알게 되고, 다른 러시아 화가들의 작품도 보게 되어 기쁘기도 한 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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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유진
  • 2022.02.03 19:26

[서유진 기자의 예술 관람기] 앙리 마티스전

"예술가에게는 진리를 향한 끈질긴 탐구, 타오르는 열기, 모든 작품의 탄생에 필수적인 분석의 깊이를 고취하며 유지 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그런 사랑이 필요하다." 프랑스가 낳은 20세기 현대미술의 거장 앙리 마티스(Henri Mattisse, 18691954)가 남긴 말이다.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앙리 마티스: 삶과 기쁨(Life and Joy)'전시를 4월 10일까지 선보인다. 200여 점에 달하는 드로잉, 판화, 일러스트, 아트북 등 마티스가 남긴 방대한 원화 작품이 출품되는 대규모 전시다. 마티스는 순수한 색채와 단순한 선만으로도 누구도 따를 수 없는 눈부신 빛을 창조한 화가다. 그는 지성과 이성, 감수성까지 두루 갖춘 능수능란한 색채의 달인이었으며 상대적으로 한정된 주제를 변화무쌍하게 표현했던 최고의 혁신적인 창작자였다. 그는 평화로움과 조화로움, 기쁨과 행복감을 주는 작품을 만들고자 탐구와 분석하는 작업을 일생 내내 멈추지 않았다. 마티스는 20세기 초 야수파의 시기를 지나 점차 순수하게 장식적인 방향으로 전환한다. 아라베스크나 꽃무늬를 배경으로 한 평면적인 구성과 원색의 대비로 그만의 독창적인 작품을 구현한다. 그는 말년에 건강 악화로 몸이 불편해지자 서서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되어 거의 모든 시간을 침대나 안락의자에서 보낸다. 그리하여 색종이를 오려 붙이는 '컷 아웃'을 창안한다. 그는 '컷 아웃' 작업을 통해 진정한 자유와 해방된 자아를 느꼈다고 피력한 바 있다. 그는 단순하지만 선명한 색상의 색종이를 오려 붙여 역동적인 선과 포즈가 살아 움직이는 완성도 높은 컷 아웃 시리즈 '재즈'를 내놓는다. 전시 포스터 한다발은 여러 원색의 나뭇잎을 봄철에 꽃이 피어나는 듯 풍성하고 화사한 꽃다발처럼 제작했다. 최초의 연작 '푸른 누드'는 색채와 형태를 완벽하게 통합하고자 한 마티스의 오랜 여정의 절정이다. 푸른색은 곧 거리감과 입체감을 의미하며, 푸른색이 흰색을 동반할 때 날카로운 징소리처럼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컷 아웃 중 가장 다채로운 색채와 스토리가 있는 '왕의 슬픔'은 걸작 중 걸작이다. 마티스가 죽기 2년 전에 제작한 '왕의 슬픔'은 자신을 왕으로 지칭하고,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는 자신의 슬픔을 표현한 작품으로 해석된다. 마티스 작품은 선과 색의 단순함이 주는 아름다움과 기쁨을 선물한다. 그는 작업하기 전에 대상을 오래 바라봤다고 한다. 필자는 20여 년 전 사무실에 '푸른 누드'를 걸어 두고, 오래오래 보고 있다. 좋아하는 것을 본다는 것은 기쁨 그 자체다.

  • 전시·공연
  • 서유진
  • 2022.01.16 17:22

[서유진 기자의 예술 관람기] 초현실주의

기이한 것은 언제나 아름답고, 기이한 것은 모두 아름다우며, 사실 기이한 것만이 아름답다. 1924년 시인이자 비평가 앙드레 브르통은 초현실주의 선언을 한다. 초현실주의는 제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사이에 유럽에서 일어난 문학 및 시각예술 운동이다. 초현실주의는 경험의 의식적 영역과 무의식적 영역을 완벽하게 결합시키는 수단이며, 절대적 실재, 즉 초현실 속에서는 꿈과 환상의 세계가 일상적인 이성의 세계와 결합 될 수 있다고 본다. 꿈은 무의식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20세기 최고의 지성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이론에 기초한다.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초현실주의 거장들 전시회가 내년 3월 6일까지 열리고 있다.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위치한 보이만스 판뵈닝언 박물관이 보유한 초현실주의 거장들: 마르셀 뒤샹, 살바도르 달리, 르네 마그리트, 호안 미로, 만 레이, 막스 에른스트 등의 180여 점의 걸작들이 펼쳐진다. 전시는 크게 초현실주의 혁명, 다다와 초현실주의, 꿈꾸는 사유, 우연과 비합리성, 욕망, 기묘한 낯익음으로 나뉜다. 초현실주의자들은 꿈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길들여지지 않는 생각을 활용하기 위한 도구로 여겼다. 1920년대 후반에 초현실주의 대표적 거장 살바도르 달리는 하나의 이미지를 보면 편집증적인 사고를 하게 되는데 이를 해석의 광란이라 칭하기도 했다. 자동기술법(오토마티즘)으로 이성과 도덕성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무의식적인 작품을 구현하기도 한다. 초현실주의자들에게 사랑과 욕망은 중요한 주제로, 관능적이고 기이한 물건, 사진, 잡지 등을 보여준다. 또한 그들은 재봉틀과 해부용 탁자 위의 우산이 우연히 마주치는 것처럼 아름다워 소설 말도로르의 성가의 일부 등을 시금석으로 삼았다. 그들은 이 문구처럼 전혀 연관성이 없는 물체가 만나서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수많은 작품 중 머리에 구름이 가득한 커플은 살바도르 달리와 그의 아내이자 뮤즈 갈라 달리를 묘사한 그림으로, 두 사람의 내면은 평화로운 듯 보이지만 머리에는 먹구름이 몰려오는 복잡한 상황을 보여준다. 웬일인지 이 작품이 필자의 마음을 표현한 듯 마음에 다가온다. 삶은 이성(理性)만 가지고 해석하고 해결할 수 없는 복잡다단한 변수를 가지고 있다. 특히 예술은 그렇다. 전시회를 나올 때는 기이하고 다양한 걸작과 뛰어난 표현력에 놀랍고 부럽기까지 했다.

  • 전시·공연
  • 서유진
  • 2021.12.19 19:22

[서유진 기자의 예술 관람기] 이건희컬렉션

‘세기의 기증.’ 수준급이면서 다양한 예술품의 대량 기증은 유례가 없었다. 삼성 이건희 회장의 유족은 국립중앙박물관에 2만1,693점과 국립현대미술관에 1488점을 아무런 조건 없는 기증을 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은 근대기에 활동한 대표작가 34명의 50여 점을 선정,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한국미술명작’을 전시하고 있다. 전시는 크게 세 주제로 분류된다. 처음은 ‘수용과 변화’로 일제강점기의 조선은 새로운 문물을 수용하면서 미술계도 변화하며 유화가 등장한다. 최초로 서양화를 전공한 전설적 여성화가 나혜석의 ‘화령전작약’은 빨강과 초록색의 대비와 속도감 있는 필치가 인상적이다. 젊고 아름다운 여성을 우아하게 그린 김은호의 ‘간성(看星)’도 눈에 띈다. 근대미술의 대표적 여성화가 박래현의 ‘여인’ 또한 놓칠 수 없는 명작이다. 두 번째 주제는 ‘개성의 발현’으로, 해방을 맞은 대한민국은 곧바로 전쟁을 겪으며 혼란스러운 시대지만 작가들은 개성이 뚜렷한 작품을 내놓는다. 근현대 동양화의 대표적 작가 운보 김기창의 ‘군마도(群馬圖)’는 역동감이 압도적이다. 한국추상화의 선구자 김환기의 ‘여인들과 항아리’는 파스텔톤 배경으로 백자항아리, 항아리를 이거나 안은 반라의 여인들을 장식미가 뛰어나게 그린 명작 중 명작으로 전시장 한 면을 빛내고 있다. 이중섭의 ‘황소’와 ‘흰 소’가 나란히 걸려있다. 이중섭에게 소는 한국의 상징으로, ‘황소’는 머리를 부각했고 ‘흰 소’는 자신을 표현한 듯 지친 전신을 그렸다. 박수근의 ‘절구질하는 여인’은 소박한 정취가 남다르다. 산을 모티브로 한 유영국의 ‘작품(1972년)’은 그가 주로 그렸던 다른 산처럼 여전히 모던하다. 모던한 작품으로는 장욱진을 빼놓을 수 없다. 장욱진의 ‘새와 아이’는 아이가 새 등에 올라탄 상상 속의 그림으로 동그란 머리, 네모난 몸과 다리는 선으로만 추상화한 걸작이다. 세 번째 주제는 ‘정착과 모색’으로 작가들이 해외 유학을 가거나 꾸준히 새로운 모색을 하면서 정착을 하게 된다. 이성자, 이응노, 남관, 권옥연 등은 국내외에서 자신만의 조형 세계를 구현한다. 천경자의 ‘노오란 산책길’은 노랑과 초록, 보라를 배색한 서정성이 돋보이는 매혹적인 여인상이다. 그의 작품세계는 ‘화려한 슬픔’, ‘비타협적인 고고함’으로 표현된다. 한 공간에서 근현대 한국미술을 볼 기회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중에서도 나혜석의 작품, 김기창의 ‘군마도’, 김환기의 ‘여인들과 항아리’, 장욱진의 해학과 풍류가 넘치는 작품들, 천경자의 신비로운 작품 등은 뇌리에서 영영 떠나지 않을 듯하다. 이건희 회장의 작품수집 원칙은 ‘작가의 대표작은 가격을 따지지 않고 산다’로, ‘세기의 기증’은 유족들이 한국을 문화강국으로 키우고자 한 고인의 의지를 이어간 ‘예술적 국격’을 드높이는 역사이다. 감격스럽다.

  • 문화일반
  • 서유진
  • 2021.12.05 16:40

[DNA: 한국미술 어제와 오늘] 한국의 미(美)란 무엇인가?

한국미학의 전통과 뿌리로서 대표적 문화재와 근현대 미술을 한 자리에 모아 한국의 미를 새롭게 조명하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기획전 DNA: 한국미술 어제와 오늘이 10월 10일까지 열리고 있다. 국보와 보물 등 문화재 35점, 근현대미술품 130여 점을 선정, 한국미의 뿌리인 문화재가 한국 근현대 미술에 끼친 영향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획전이다. 근대의 뛰어난 미학자 최순우, 고유섭, 김용준 등의 한국미학을 통해 한국미술의 과거와 현재를 조명하는 특별전이다. 이번 전시는 근현대 미술을 크게 네 가지로 분석했다. 성스럽고 숭고하다 성(聖), 맑고 바르며 우아하다 아(雅), 대중적이고 통속적이다 속(俗), 조화로움으로 통일에 이르다 화(和)로 한국의 미를 나누었다. 예술의 지극히 높은 경지인 성(聖)을 우리 민족은 이미 보유하고 있었다. 성스러운 아름다움은 한국미의 뿌리인 고구려 고분벽화와 통일신라 석굴암 본존불, 고려청자에서 잘 드러난다. 고려청자 청자상감 포도동자무늬 주전자의 동자들과 한국 근대 미술의 대표적 서양화가 이중섭(1916~1956) 말년작 봄의 아동의 천진난만한 아이들과 닮았다. 맑고 바르며 우아하다는 아(雅)는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 추사의 문인화, 순백의 아무런 무늬가 없는 달항아리 등에서 발견된다. 1970~80년대 한국의 단색조 추상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그 대표적 화가로 박서보와 하종현 화백을 꼽을 수 있는데, 이번 전시에서 하종현의 도시 계획 백서는 단색화 전에 그렸던 작품으로 세련되고 현대적이다. 대중적이고 통속적인 속(俗)은 김홍도의 풍속화와 신윤복의 미인도 등에서 보이고 현대에 와서는 1980년대 민중미술에 계승, 강렬한 채색화의 유행을 부추겼다. 마지막 화(和)는 1990년대 포스트모더니즘에서 다양한 가치와 미감이 역동적으로 변모한다. 위의 네 가지 미감이 조화롭게 녹아있는 한국미를 대표하는 신라의 서봉총 금관(보물 339호)을 가까이서 감상할 수 있어서 기쁘기 한량없었다. 또한 일제강점기 보물과 국보를 지켜낸 간송(澗松) 전형필(1906~1962) 선생이 그린 기품있는 동양화를 볼 수 있어서 특별했다. 간송의 스승 독립운동가 오세창 선생이 동서고금에 문화가 높은 나라가 낮은 나라에 영원히 합병된 역사는 없고, 그것이 바로 문화의 힘이다라고 한 말씀을 새삼 되새겨 본다.

  • 전시·공연
  • 서유진
  • 2021.08.08 16:36

[서유진 기자의 예술 관람기] 시대의 얼굴, 셰익스피어에서 에드 시런까지

독일의 문호 괴테는 파우스트에서 실로 매 시대를 반영하고 있는 저자(著者)들 자신의 정신이다. 이 세계! 인간의 마음과 정신!이라고 시대정신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그럼 얼굴이란 무엇일까. 얼의 골짜기 또는 굴로서 한 인간의 정신과 넋, 혼이 담긴 오묘한 대상이다. 오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각 분야에서 인류사에 길이 남을 인물들을 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시대의 얼굴, 셰익스피어에서 에드 시런까지(Icons and Identities)란 제목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초상화 전문 미술관인 영국 국립초상화미술관의 전시품 78점이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특별전이다. 전시는 영국이 낳은 한 시대가 아닌 만세를 위한 희곡작가 셰익스피어를 제일 앞에 내세웠다. 그는 뛰어난 시적 상상력과 넓고 깊은 인간성에 대한 통찰력, 놀라운 언어구사력과 다양한 무대를 형상하는 능력 등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극작가다. 영국의 걸출한 군주, 엘리자베스 1세를 빼놓고 인물을 논할 수는 없다. 부왕 헨리 8세의 잦은 재혼으로 불안정한 위치에 처한 엘리자베스 1세는 이 세상에서 아무도 믿지 못해 평생 가족을 만들지 않고 고독한 삶을 살다 갔다. 하지만 그녀는 열강의 위협과 종교적 갈등을 극복, 16세기 초 당시 유럽의 후진국이었던 잉글랜드를 세계 최대 제국으로 만드는 토대를 마련했다. 그녀의 초상화는 섬세하지만 무표정한 얼굴보다는 의복과 보석이 잘 보여주고 있다. 의복의 색깔을 검은색과 흰색을 채택, 불변과 순수라는 이미지가 처녀 여왕과 잘 맞고, 불사조 모양의 보석을 착용하여 권력과 권위를 돋보이게 했다. 많은 인물의 초상과 사진 중에서도 근현대에 들어서면 입체파의 영향을 받은 초상화가 눈길을 끈다. 바로 20세기 가장 위대한 시인 중 한 명인 T.S 엘리엇의 초상화다. 4월은 잔인한 달로 시작하는 시 황무지는 현대문학의 시금석이 된다. 그를 그린 화가 패트릭 헤런은 위대한 작가의 회색 눈을 바라보며 우주에서 가장 인지력이 뛰어난 눈을 들여다보고 있음을 알았다고 회상한 바 있다. 흑백사진으로 된 초상의 인물들도 눈에 띈다. 인종차별을 종식 시킨 남아프리카 대통령 넬슨 만델라, 60년대를 풍미했던 록 밴드 비틀즈, 명화 로마의 휴일로 일약 전 세계적인 스타가 된 젊은 오드리 헵번의 사진 등이 있다. 귀족보다 더 귀족적인 오드리 헵번의 모습이 그립다. 초상화를 본다는 것은 그림 속 인물을 바라보고 만나는 시각적이고 심리적인 경험을 동시에 하는 일이어서 흥미진진했다. 사람을 만나면 얼굴과 눈을 깊이 들여다보는 습관이 최근에는 사라졌다. 매력적인 사람이 사라진 세상이 된 것일까. 아니면 매력을 느끼는 감각이 무뎌진 걸까.

  • 전시·공연
  • 서유진
  • 2021.05.30 18:02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