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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하니 청춘이다] 늦게나마 발견한 예술 감각, 김제 광활면 용평마을 어르'神'들

고령화 속도가 가팔라지면서 한국 사회 속 전북 역시 고령화율이 전국에서 세 번째로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이처럼 인구 비중 가운데 시니어층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 요즘, 색다른 취미 활동으로 제2의 인생을 맞는 시니어들도 점점 늘어가는 추세다. 평생을 자식들을 바라보며 취미와 특기도 없이 살아왔던 지금의 시니어 중 늦게나마 '뜨거운 도전'을 시작한 김제시 광활면 용평마을 어르신들을 만나봤다. 김제시 광활면에는 어르‘신(神)’들의 나라가 있다. 이곳 용평마을의 어르‘신’들의 나라는 약 5년 전 예비 사회적기업 이랑고랑의 황유진 대표의 문화예술교육 봉사를 시작으로 건국(?)됐다. 처음엔 경계심 가득했던 어르신들을 계속해서 찾아 두드리고 과제를 던져주며, 그들 자신도 몰랐던 내면 속 예술가의 기질을 깨워낸 것이다. 매일 오전 삶의 전쟁터인 논과 밭으로 향하는 어르‘신’들은 오후 1시가 되면 약속이라도 한 듯이 용평마을 경로당에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며, 그림과 연극 연습 삼매경에 빠진다. 연필을 잡아본 적도, 낙서를 해본 적도 없던 어르‘신’들은 예술 프로그램을 통해 작품 전시회도 열고, 이제는 이랑고랑 굿즈의 디자인을 책임지는 어엿한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이 중 호미와 쟁기 대신 색연필과 붓을 들고 그날의 영감을 그려내는 어르‘신’들 중 라순애·임화순 씨를 마주했다. "예전에는 쉽게 그려졌던 그림이 이제는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하는지 고민하게 돼 너무 힘들지만, 그림을 그릴 수 있어 행복해요." 갈수록 작품에 고민을 담아내는 진정한 예술가 라순애(84) 씨. 그림 수업이 있는 날이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경로당을 찾아 그림을 그린 단다. 팔십 평생 그림은커녕 낙서도 한번 해 본 적 없었던 할머니 이지만, 그림을 그리면 그릴수록 욕심이 생겨난다는 게, 라 씨의 설명이다. 이번에는 어떤 그림을 그릴지, 서툰 솜씨로 그려내는 작품 속에 어떤 이야기를 담아내야 할지 등 하루하루 행복한 고민에 빠지곤 한다. 라 할머니는 “처음에는 황유진 대표가 그림을 그려 달라고 해 그냥 그날 그리고 싶었던 것, 눈에 익숙한 꽃과 새 등을 그려냈다”며 “지금껏 살아오면서 연필을 잡은 적도 없고,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더더욱 없었다. 하지만 가랑비에 옷이 젖듯 한 작품 한 작품 완성해 갈 때마다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라순애 씨 작품 ​​​​​서툰 솜씨로 완성한 작품이 관심을 받는 현재, 라 씨는 수줍은 소감을 전한다. 그는 “남들이 보면 우스운 실력으로 그려내고 있는 작품에 처음에는 마냥 자랑스럽지만은 않았다”며 “그림에 칭찬을 받을 때면 기분은 좋았지만, 왜인지 모를 의구심이 마음속 자리했다. 하지만 ‘소질 있다’는 아들의 한마디에 그림 작업을 더욱 열심히 하고 있다. 앞으로도 그림과 예술교육에 열심히 매진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릴 것은 날마다 생겨, 그릴 수 있다것에 감사할 따름이죠." 집 앞 마당에서 키우는 꽃부터 밭에서 키우는 콩, 예쁜 손주들 등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영감이라는 피카소 임화순 (92) 씨. 21살 때 결혼 해 5남매를 위해 최선을 다해온 그녀의 일생은 밭일과 집안일이 전부였다. 이처럼 구십 평생을 김제에서 살며 손끝이 꺼슬어질때까지 호미와 수세미를 잡아 온 그가 3년 전 미술과 느지막한 사랑에 빠졌다. 자식과 손주 이야기에 함박웃음를 지으며 끊임없이 자식 사랑을 전하는 어르신 이지만, 붓을 잡으면 여느 기성 작가 못지않게 눈빛이 돌변한다. 투박한 손끝으로 그려내는 그의 작품은 임 씨의 미적 감각이 보여주는 듯 오색 빛깔 다채롭다. 임 할머니는 “시골에서 밭 매고, 감자 심고, 콩 따고 그림 그릴 생각도 못 하게 90년을 살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황 대표가 찾아와서 그림을 그리라니까 그냥 그날 아침에 본 콩, 꽃을 그려내곤 했다”며 “처음에는 부끄럽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림 수업 날만 생각하면 기분이 저절로 좋아지고 설렌다”고 말했다. 끝으로 그녀는 “그림을 전문적으로 그리는 사람들도 ‘무엇을 그려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끊이지 않다고 하는데, 눈뜨면 보이는 것이 그릴 것인 천지에 살고 있어 행운이라고 생각된다”며 “나이 들어 시작한 취미 활동이지만, 체력이 허락할 때까진 최선을 다해 참여하고 싶다”고 밝혔다. 용평마을에는 그림의 ‘신’들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 중에는 탄탄한 연기력을 소유한 배우도 숨어있었다. 적지 않은 대사량에 귀여운 실수들이 남발되며 진행되는 연극 연습이지만, 누구 하나 포기하는 사람 없이 끝까지 완주해 내는 그들이다. 실제 이들은 지난해 그림자 연극 ‘광활한 사랑’을 공연해 많은 이의 눈길을 끌기도 했다. 지난해 선보인 연극은 용평마을 어르신 한분 한분의 이야기를 녹여낸 내용으로, 어르신들의 젊은 시절을 엿볼 수 있었다. 용평 마을의 수많은 배우 중 박안나·박점순 씨를 마주했다. "못한다고 겁내지 않고, 그냥 해보자는 생각으로 열심히 몰두했어요." 용평마을 어르‘신’들의 나라에 가장 큰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이 구역의 능력자 박안나(85) 씨. 연기는 물론 그림에서도 재능을 드러내고 있어, 벌써 전국 곳곳 열렬한 팬들을 보유하고 있는 유명 인사다. 연기 수업과 그림 수업 중 가장 적극적인 박 씨의 활발한 성격으로 지난 연극에서 가장 많은 배역을 맡기도 했다. 무대에 오르기 직전까지 대본을 손에 놓지 않는 등 열정을 지닌 모습을 보이지만, 그 역시 황 대표의 문화예술 교육에 처음부터 호의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는 “처음에는 경계심에 선생님들에게 반항도 했지만, 수업 덕분에 그림에 소질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하루하루를 기억하는 일기도 쓰고 소설도 쓰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전주에서 공연도 하고, 이웃들이랑 모여 연극 연습도 하고 생각해 보면 시골에서 노인들이 모여 방송도 출연하고, 전시도 참여하고 있는 모양새가 참 기묘하다”며 “지난 4년 동안의 시간이 꿈처럼 느껴진다”고 남다른 소회를 전했다. 끝으로 박 씨는”프로그램에 참여하고 맨날 웃고 사니, 우울증도 극복하게 됐다“며 “하나하나 할 수 있는 일이 늘어가니 평범했던 일상이 늘 새로워 마음이 벅차오른다”며 “시골에서 농사짓는 이런 노인도 할 수 있으니. 많은 사람이 꿈을 품고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내 연기로 누군가를 울렸다는 게 너무 흐뭇했어." 어린시절 아픈 추억을 연기하는 배우, 용평 영화제 여우주연상 주인공 박점순(90) 씨. 밀려드는 밭일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에 남들보다 늦게 발을 내디딘 박 씨지만, 수준급 연기 실력으로 모든 이의 눈물샘을 자극하며 남다른 감수성을 보여주는 그다. 그는 “처음에는 밭일 때문에 문화예술 교육에 참여하지 못했었다”며 “그 뒤로 상대적으로 한가한 겨울에 노인정을 찾아 한번 그려본 그림이 취미가 됐고, 이웃들과 어울리는 게 즐거워 문화예술교육에 꾸준히 참여해야겠다 마음먹었다”고 설명했다. 박 씨 역시 지난해 그림자 연극 ‘광활한 사랑’에 출연해 이른 나이 여인 부모님을 그리워하는 감정을 애절한 목소리와 눈물로 녹여내 표현해 관객을 놀라게 했다. 마지막으로 박 씨는 “돌이켜 생각해 보면 동네 친구들이랑 동생들이랑 함께헸던 모든 교육 시간이 참 재밌었다”며 “나에게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 이번 기회가 말로 표현 못 할 정도로 감사할 따름이다”고 말했다.

  • 문화일반
  • 전현아
  • 2024.02.21 18:27

[도전하니 청춘이다] 전주시니어클럽 '바로곁애' 장양천·김영순 바리스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고령화 현상으로 오는 2026년 대한민국 국민 20%가 65세 노인이 되는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다. 전문가들은 고령화에 따라 국민연금 및 기초연금도 오는 2057년이면 고갈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노인 인구 증가에 따라 지출이 급격히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 속 노인의 경제활동 참여 증대는 국가의 복지 부담 증가를 상쇄할 수 있는 생산적인 정책이다. 또 노인 일자리는 노인의 빈곤 완화와 더불어 심리·정서적, 사회·관계적, 건강 증진의 효과까지 가져올 수 있다. ‘바리스타’라는 직업으로 제2의 인생을 살며 인생의 활력까지 찾은 전주 시니어클럽 ‘바로 곁애’ 바리스타 장양천(68), 김영순(65) 씨를 만나 건강한 삶에 대한 얘기를 들어봤다. 장양천·김영순 어르신은 전주 시니어클럽에서 노인들의 대인관계 유지 등 지역사회 소통과 고립 방지를 위해 진행하고 있는 노인 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사업의 시장형 사업 중 하나인 ‘바로 곁애’라는 카페에서 일하고 있다. '바로 곁애' 카페는 전북경제통상진흥원 별관, 국립전주박물관, 인후동 도서관 등 전주지역에 총 3곳이 있고, 이들은 전북경제통상진흥원 건물에 있는 ‘바로 곁애’ 카페에서 근무하고 있다. 현재 누구보다도 커피를 사랑하는 장 씨와 김 씨가 바리스타가 된 계기는 ‘우연’이었다. 장 씨는 “처음엔 굉장한 우연이었다”며 “길을 걷다 노인지원 체험센터에 걸린 현수막에 쓰여있는 ‘바리스타 교육’을 한다는 내용을 읽고 결정했다. 여기에 평소 커피를 좋아해 더 관심을 가지고 지원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 씨 역시 지인의 권유로 ‘바로 곁애’ 사업을 접하게 됐다고 한다. 이 사업을 주관하고 있는 전주 시니어클럽은 센터를 방문하는 어르신 개개인의 적성을 검사하고 적성에 맞는 직업을 매칭해 주고 있다. 특히 청년들의 업무 효율성과 노인들의 업무 효율성의 밸런스를 맞추기 위한 노력을 하며 세대 간의 갈등에 대한 문제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김효춘 전주 시니어클럽 관장은 “시니어클럽은 노인 일자리 전문기관으로 웬만한 지자체에 모두 운영되고 있다”며 “노인들이 기존에 가지고 있는 사회적 경험이나 지식을 활용할 기회가 아직 많기 때문에 저희 클럽을 통해 상담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본인의 적성과 맞는 경험을 통해 사회에 참여, 건강하고 행복한 노년을 보내시면 좋겠다”고 전했다. 하지만 전주 시니어클럽이 주관하는 사업이라 단정짓고, 채용 과정이 간결하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아파트 내 택배 배달 사업인 ‘안전 택배’ 사업, 지역 내 상가를 소독하는 ‘청정 소독’ 사업 등 10개 사업으로 이뤄진 시장형 중 가장 인기가 많은 ‘바로 곁애’ 사업에 뽑히기 위해선 서류전형부터 면접까지 일반 카페 종업원 채용 방법과 똑같은 절차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전문 바리스타 교육을 이수받고 자격증까지 취득한 후 6개월간의 인턴 기간까지 거쳐야 비로소 정식 바리스타로 거듭날 수 있다. 평생을 누군가의 아내, 엄마로의 삶을 살며 남편의 빨래, 자녀의 식사를 차리는 등 집안일을 해오던 이들은 갈색 유니폼과 모자, 검정 앞치마를 두르고 ‘바로 곁애’ 카페에 발을 내미는 순간 고객의 커피를 책임지는 바리스타로 변신한다. 장 씨는 “하루에 3시간 30분 밖에 되지 않는 근무 시간이지만, 이 시간만 생각하면 너무 즐겁다”며 “자녀들도 떠나고 남편도 직장에 나가면 하루 종일 혼자 집에 있게 된다. 씻지도 않고, 밖으로 한 발짝도 안 움직이는 날도 많았다. 혹여 운동이나 여행을 떠난다 해도 물리적인 이유와 귀찮음으로 한계가 있었지만, 이 일을 시작한 이후 아침마다 카페에 출근할 준비를 하는 시간이 마냥 즐겁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나이가 들수록 무기력해지고 사회에서 소외되는 느낌도 받는데, 이렇게 밖으로 나오며 나 자신을 가꾸고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주제로 매일 소통하니 소속감도 생기고 내 나이보다 더욱 젊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바리스타 김 씨 역시 “우리 나이에 새로운 직업을 시작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이다”며 “이렇게 즐거운 일을 하면서 돈까지 벌 수 있어 일석이조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내가 이런 전문적인 일을 한다고 말하면 모두가 부러워한다. 특히 친구들 또는 손주들이 놀러 오면 멋지게 계산도 하며 노년의 즐거움을 찾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아침과 오후 시간에 비해 직장인들이 몰리는 점심시간이나 여러 번 메뉴를 변경하는 손님들을 만날 때면 우왕좌왕 실수를 남발하기도 하지만 이런 과정까지 이들에게는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장 씨는 “카페에 들어올 때마다 너무 행복하다”며 “한평생 가족들을 위해 밥을 차리고 집을 청소한 우리 같은 주부들은 식당 알바는 기피하고 싶지만, 이곳은 방문하는 것 자체가 즐거워 일부러 30분 일찍 출근할 때도 있고 30분 늦게 퇴근할 때도 종종 있다”며 카페 일에 대한 애정을 보였다. ‘커피’라는 관심 분야가 생기니 커피에 관련한 지식은 덤으로 따라왔다. 장 씨와 김 씨는 바리스타를 시작한 이후 다양한 커피 종류, 원두의 맛 등 커피와 관련된 지식을 쌓기 위해 전보다 더 열공중이다. 특히 주말에는 유명 카페를 탐방하며 커피 제조법에 더욱 정성을 쏟고 있다. 이들은 또한 카페에서 커피 뿐만이 아닌 빵과 과자 등 제과 제빵을 하며 ‘케이터링’ 서비스를 진행하는 등 관심 분야와 능력을 키워가고 있다. 장 씨는 “커피가 가장 많이 판매되기는 하지만 예쁜 모양으로 먹을 수 있는 제빵 또한 흥미롭다”며 “예쁘게 과자를 만들고 과일을 담을 때면 ‘조금이라도 빨리 알아서 아이들이나 지인들에게 해줬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고 말하며 제빵에 대한 열정을 보였다. 바리스타 장양천 씨는 “사회에 소속감이 생긴다는 게 이렇게 좋은 것이지 몰랐다”며 “집에만 있을 때와는 다르게 가족을 비롯한 주변 분들의 응원으로 자존감도 올라가고 더 예쁜 커피라떼 아트를 배우고 싶다는 목표 또한 생겨 하루하루가 즐겁다”고 전했다. 끝으로 그는 “늦게나마 바리스타라는 직업을 만나 너무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면서 “이 글을 읽을 동년배 어른들도 망설임 없이 지원해 본인의 적성에 맞는 즐거운 일터를 만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 문화일반
  • 전현아
  • 2023.03.15 17:49

[도전하니 청춘이다]  송권 전주시 여의동 마을술사

지역 소멸 시대로 접어들면서 인구가 팽창하는 서울·수도권과 달리 지방은 계속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사람들이 대도시로 직장을 찾거나 가족을 따라서 둥지를 옮기자 지방 곳곳에는 빈집이 하나 둘 늘어나는 중이다. 최근 통계청에서 발표한 ‘전국 시·도별 장래 인구추계’를 들여다 보면 전북의 인구는 지난해 말 기준 176만 명에서 2050년에는 149만 명까지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사람이 떠난 자리엔 고향의 문화와 역사가 그대로 존재하지만 이를 제대로 기억하고 후대에 기록으로 남길 이는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이런 상황 속에 전주지역에서는 마을을 기록하고 해설하며 마을의 발전을 제안하는 역할에 앞장서는 ‘마을술사’가 있다.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시니어로 최근 새로운 삶의 원동력을 마을술사에서 찾았다는 송권(73) 씨를 만나봤다. 송씨는 무기력한 생활이 싫어 본업인 농사일과 함께 재미난 일이 하고 싶어 마을술사를 맡기 시작한지도 벌써 3년째가 됐다. 마을술사는 전주지역에서 각자 맡은 마을의 조사 보고서를 제작하고 초·중등 교원과 학생 등을 대상으로 마을여행을 운영하거나 마을 홍보 콘텐츠 발굴에 참여하고 있다. 전주시 여의동에서 태어나 한 번도 고향을 떠나본 적이 없던 그는 학창시절 역사 과목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학생이었다. 여의동 마을술사인 송씨는 “어렸을 때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았고 살고 있는 지역 유래에 대해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며 “젊은 시절엔 먹고 살기 바쁘다 보니 포도 농사란 생업에 쫓겨 앞만 보고 달려왔다”고 말했다. 현재 그는 다른 직장과 달리 건강만 허락된다면 정년퇴직이 없는 포도 농사일을 아내와 병행하고 있지만 본업 못지않게 마을술사 일을 제2의 직업처럼 여기고 있다. 송씨는 “지금 아들 2명을 두고 있는데 모두 타지에 머물러 있어 젊은 시절보단 여유가 생겼다”며 “마을술사를 맡고 나서 매일 공부하는 삶이 보람도 있고 뿌듯하다”고 말했다. 그가 머릿속에만 관심으로 두던 역사 공부에 본격적으로 눈을 뜨게 된 계기는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라디오 방송에서 우연히 전주문화원에서 진행하는 역사 강의 소식을 듣고 무작정 아내와 손잡고 찾아간 것이 첫걸음이 됐다. 송씨는 “전주문화원에서 서승 전 원장을 만났고 지금까지 나종우 원장과 김진돈 사무국장과 교류하며 역사를 다시 배우고 재미난 시간을 보내고 있다”며 “역사 교육을 통해서 마을술사로 활동한 뒤 마을 자원을 조사하거나 선정하고 직접 마을여행 코스를 개발하는데 큰 도움을 주는 자양분이 됐다”고 밝혔다. 그의 역사 공부는 옛 동산동이란 명칭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지역의 정서와 특성을 반영한 ‘여의동’이란 새 옷을 입게 된 역사의 시작에 기여한 토대가 됐다. 동산동은 1907년 전범 기업인 미쓰비시 기업 창업자의 장남 이와사키 하시야(岩崎久彌)가 자신의 아버지 호인 '동산(東山)'을 따서 창설한 동산 농사주식회사 전주지점이 위치했다는 것에서 유래했다. 시는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동산동의 명칭 변경을 추진했고 송씨는 명칭변경추진위원회와 함께 시민들이 제안한 36개 명칭 중 가장 많은 사람이 응모한 여의동과 쪽구름동에 대해 검토하고 부르기 쉬운 명칭인 ‘여의동’으로 선정하는데 목소리를 냈다. 송씨는 “여의동은 '뜻을 이뤄주고 용(龍)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한다'는 포괄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며 “역사를 공부하며 지역 유래를 알아가다 보니 여의동 일대에 덕룡·구룡·발용·용암·용정 등 유난히 용과 관련된 마을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일제 잔재를 청산하고 지역의 특색과 자긍심을 높이는 새로운 이름인 ‘여의동’을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어 다행이다”고 소감을 밝혔다. 송씨는 여의동에서 마을술사 외에도 전주서원시니어클럽에서는 우리동네 역사문화재알리미로 활동하고 있으며 전주문화원 감사 등 직책도 많아 명함과 신분증을 항상 지니고 다닌다. 또한 그는 역사를 알면 알수록 서예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그래서 옛 동산동(현재 여의동) 주민센터에서 운영 중인 서예교실의 회장 역할을 맡아 수강생들과 묵향 가득한 서예 작품 전시회를 펼치기도 했다. 여의동 서예교실 수업은 코로나19 이전부터 자리가 부족했고 대기 인원까지 있을 정도로 인기가 많은 활동이다, 송씨는 “서예교실을 찾는 주민들은 거의 농사꾼들이지만 서예의 꿈을 펼치기 위해 저 먼 조촌동에서 여의동 주민센터를 찾고 있다”며 “고물가 시대에 회비 2만 원으로 운영하기엔 빠듯하지만 과거에 비하면 많이 좋아졌고 서예교실 수강생의 평균 나이도 75세로 가장 나이가 어린 회원은 60대 초반에서 많게는 89세로 다양하게 구성돼있다”고 말했다. 그가 회장을 역임한 서예교실은 서명숙 강사의 지도로 전국 규모의 서예대회에서 입상하는 등 개인마다 개성과 실력을 겸비한 필력을 자랑하고 있다.  그런 그가 요즘 집처럼 자주 드나드는 곳이 또 있다. 전주 팔복동에 위치한 팔과정이다. 팔과정은 광해군 시절 전주 팔복동 반룡리에 학문이 뛰어나 진사에 합격한 국포(菊圃) 송사심(宋士深, 1584~1625)이 반룡서숙을 개설해 후진양성에 뛰어난 공적을 남겨 그의 문하에서 문과 급제자가 8명이나 배출된 것을 기념하고자 정자를 만들어 이름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송씨는 “옛 할아버지 때부터 400년 넘게 살고 전주를 떠나지 않고 살고 있다”며 “고향을 지키고 싶은 마음도 있고 이 지역에 살았던 선조들은 어떤 사람들이 있었고 어떻게 살았는지 마을술사와 역사문화알리미로 활동하며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경우처럼 인구 구조가 고령화 돼 있는 전북지역의 경우 젊은 층이 점차 타지로 유출되는 상황 속에 터전을 지키는 시니어의 역할도 중요해지고 활동 범위도 그만큼 넓어지고 있는 추세다. 이에 대해 송씨는 “시니어들이 도전을 두려워하거나 나이에 연연해 사회 활동이 결코 위축되면 안 된다”며 “평소 관심 있는 분야에 매진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 활력소가 생기기 마련이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그는 “나이가 들면 여생이 얼마나 되나 생각하기 마련인데 아름답게 삶을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청춘이고 얼마든지 도전하면 된다는 자신감이 필요하다”며 “노인정에서 100원짜리 고스톱을 치고 재미없게 노년을 보내는 것보다 마을술사를 하면서 말동무를 사귀면 날마다 새롭고 재미있다”고 덧붙였다.

  • 문화일반
  • 김영호
  • 2023.02.22 16:32

[도전하니 청춘이다] 전주양지노인복지관 '하늘빛 수채화' 강사 신재철 작가

우리나라는 지난 2017년부터 고령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어, 오는 2025년 상반기 만 65세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초고령사회에 들어선다. 최근 의료비 증가, 기대수명 연장 등으로 일하고 싶은 시니어가 늘어나며 도내 곳곳에서도 ‘일하고 싶은’ 시니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들도 청년 세대처럼 하고 싶은 일이 있고, 그 일에 열정이 많다는 것이다. 자신보다 배우자와 자식들이 더욱 먼저였던 지금의 시니어들이 은퇴 후 늦게나마 그동안 해 보고 싶었던 일을 찾아 주저 없이 도전하는 모습. 전주 양지노인복지관에서 수채화 강사로 제2막의 인생을 살고 있는 신재철 작가(77)를 만났다. 하늘빛 수채화 동아리에서 강사를 맡고 있는 신재철 작가는 정읍에서 태어났다. 초등학생 시절의 신 작가는 그저 60명 학생 중 미술을 사랑하는 한 명의 어린이였다. 그는 “어릴 때부터 그림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며 “어린 시절 잡지를 보고 배우들의 모습을 그리면 부모님께서는 항상 칭찬을 해주셨다. 그런 칭찬이 더 멋진 작품을 그릴 수 있게 해줬고, 그러한 노력으로 학창 시절 그린 그림은 항상 교실 뒤쪽 칠판 벽에 붙어 있던 기억이 난다. 그때부터 학교에서 1주일에 한 두 번 있는 미술 시간이 어느 시간보다 많이 기다려졌고 좋았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미술에 대한 사랑도 있었지만,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 커 군산 교육대학교에 입학했다”며 “교대에 진학하며 자연스레 그림 공부를 못했지만, 그럴 때마다 개인적으로 조각, 찰흙 공예 등 만들기와 꾸미기를 하며 미술에 대한 갈증을 풀어왔다”고 전했다. 신 작가는 “수채화를 본격적으로 좋아했던 것은 젊은 시절이었다"며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과 길 가장자리의 작은 꽃을 발견하면 그 아름다움에 발길을 멈췄던 적이있는데 그럴때마다 ‘그리고 싶다’라는 생각을 가졌었다”며 젊은 시절 가졌던 그림에 대한 갈망을 설명했다. 하지만 누구보다 그림을 사랑하는 신 작가에게도 직장과 가정이 생기면서 그림에 대한 열정이 떨어져 가게 됐다고 회상했다. 그는 “시골 농촌 학교에서 근무하다 보니 그림 공부가 어려웠다”며 “그 시절 그림에 관해 공부하기 위해서는 따로 도시로 나와 학습의 장을 찾아야 했지만 젊은 시절 그럴만한 여유 없이 바삐 달려오다 보니 그림을 배운다거나 즐길 기회를 찾지 못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교직 생활 도중에도 초등학생 고학년 미술 전담 교사를 맡아 아이들과 그림그리기 대회에 출전하기도 하며 끊임없이 미술에 대한 사랑을 이어왔다. 신 작가는 “아직도 직장에 다니면서 주말이라도 틈틈이 시간을 내 그림 공부를 했더라면 더 많은 발전이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한다”며 아쉬움을 보였다. 시간이 흐르며 참새 같은 자녀들이 성장하고 신 작가가 짊어진 가장의 무게도 덜어지며, 37년간 교직 생활을 이어오다 지난 2007년 무주 삼방초등학교 교장으로 퇴직을 했다. 그렇게 여가 시간이 남다 보니 자연스레 미술에 관심을 다시 가지게 됐다. 신재철 작가는 “퇴직 후 가까운 주민센터 수채화 동아리 반에서 수채화를 배우며 수채화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두게 됐다”며 “그때 만난 선생님이 지도해주신 그림이 너무 재밌고 좋아서 배운 것을 몇 번씩 그려보는 열정을 갖게 됐다”고 전했다. 신 작가는 많은 그림의 종류 중 수채화를 택한 이유로 맑고 투명함을 꼽았다. 그는 “그림에는 한국화, 서양화, 유화, 수채화 등 여러 분야가 있다”며 “그 중 수채화는 수정도 불가하고 물 조절에 실패하면 한순간 작품을 망칠 위험도 크지만, 수채화만이 가지는 맑고 투명함과 번지는 느낌에 따라 달라지는 결과물로 다른 그림보다 아름답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양지노인복지관의 ‘하늘빛 수채화’ 동아리는 지난 2021년 2월부터 회원들의 요구로 시작됐다. 동아리 회원 수는 고정돼 있지 않고, 가장 나이가 많은 84세 회원부터 65세의 막둥이 회원까지 평균 연령 72세를 기록하는 수채화 동아리이다. 그는 하늘빛 수채화 동아리를 “봄, 여름, 가을, 겨울 하늘빛이 다르고 아침 해가 솟아오르는 일출과 해가 서쪽 하늘에 질 때의 아름다운 모습은 정말 환상적이다”며 “하늘빛을 닮은 그림을 그리자는 뜻으로 ‘하늘빛 수채화’라로 이름을 지었다”고 설명했다. “늦깎이 취미로 이만한 게 없습니다.” 신재철 작가가 지도하는 ‘하늘빛 수채화’ 동아리의 한 회원이 한 말이다. 그의 교실에는 은퇴한 유치원 원장, 군인, 행정 공무원, 전업주부 등 다양한 사람을 만나 볼 수 있었다. 이들 모두는 미술을 처음 시작하는 회원들로 남들보다 늦게 수채화의 기능을 습득하고 작품 제작 활동을 펼쳐가고 있지만 신재철 작가의 지도에 수준급 실력을 보여주며 예술적 심성을 발현하고, 문화예술 활동의 폭을 넓혀가고 있었다. 신재철 작가는 “동아리 개설 초반에는 지도 강사 신청자가 모집되지 않아 지인의 소개로 갑작스럽게 동아리 강사직을 맡게 됐다”며 “부족한 제가 지도하고 있지만 배우시는 어르신들의 반응이 너무 좋아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고 전했다. 신 작가의 수채화 사랑은 앞으로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앞으로도 연 1회 이상 수채화 회원전을 실시해 애호가들의 생활에 활력을 도모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동아리는 그림에 대한 갈망을 가진 퇴직자들이 대부분이다”며 “이제 자녀들도 성장하고, 직장에서도 정년을 맞은 어르신들이 미술 활동으로 작가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하며 자신의 삶을 더욱 주체적으로 살아 활력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그는 “꽃은 질 때 더 향기롭고 과일은 익을수록 더 맛있다”며 “떠오르는 해는 눈이 부시지만 지는 해는 더 아름답다는 말처럼 마음만은 청춘인 전주 양지노인복지관 어르신들의 수채화 동아리는 수채화 실력향상을 위해 앞으로도 어렵고 힘든 작업을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열심히 배우며 하나하나 작품을 완성하며 보람을 느끼고 제2의 생활에 활력을 가지겠다”며 마무리했다. /전현아 수습기자

  • 문화일반
  • 전현아
  • 2023.02.01 17:15

[도전하니 청춘이다] 시니어들의 뜨거운 도전...도전하니 청춘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2017년부터 고령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면서 오는 2025년 상반기 만 65세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초고령사회에 들어선다. 이는 국민 5명 중 1명이 노인(이하 시니어)인 셈이라는 뜻이다. 최근 의료비 증가, 기대수명 증가 등 여러 사유로 일하고 싶은 시니어가 늘어나고 있다. 도내 곳곳에서도 시니어를 쉽게 볼 수 있다. 시니어도 청년 세대와 마찬가지로 궁금한 것도, 배우고 싶은 것도 많다는 것이다. 없는 살림에 자식 키우느라 소 팔고 땅 팔았던 시절을 살아온 지금의 시니어들. 늦게서야 그동안 해 보고 싶었던 일, 해야만 했던 일 등에 주저 없이 도전하는 모습이다. 전북도립미술관, 국립전주박물관에서 의미 있는 인생 2막을 꿈꾸는 시니어들을 만났다. 모악산 자락에 있는 전북도립미술관. 매일같이 꼬불꼬불 비탈진 길을 오르는 시니어들이 있다. 기본 왕복 두세 시간. 몸도 지치고 마음도 지치는 시간이지만 관람객과 마주하는 시간을 기대하며 버스에 오르는 시니어들. 그들은 미술관 전시장 곳곳에서 밝은 미소와 상냥한 목소리로 관람객을 맞이한다. 거대한 미술 작품 앞에 서서 전시 안내와 작품 설명까지 마다하지 않는 미술관의 꽃이라 불리는 시니어 도슨트 장춘실 씨, 자원봉사자 권길자 씨와 이야기를 나눠 봤다. 할머니 도슨트가 되고 싶은 장춘실 씨 "춘실아, 너 자신을 잘 보살피렴." 지력과 체력을 잘 관리해야 미술관을 빛낼 수 있기 때문에 나 자신을 잘 보살펴야 한다고 말하는 장춘실(73) 씨. 전직 국어 교사이자 오래된 작품 컬렉터다. 장 씨는 33년을 교사로 살았지만 늦게나마 10대부터 관심 있었던 미술과 사랑에 빠졌다. 그는 "3관이 나를 살렸다. 나를 먹여 살린 8할은 3관이다. 도서관, 영화관, 미술관. 나이 먹고 나서야 그토록 좋아하던 미술관에서 새로운 꿈을 꾸게 됐다. 새로운 전시 들어오는 날, 작품 설치하는 날, 관람객 만나는 날. 미술관에 있으면 하루하루가 행복하고 즐겁다"고 말했다. 관람객들의 미소를 보면서 힘을 얻는다는 장 씨는 미술관에서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 바로 할머니 도슨트. 그는 "33년을 국어 교사로 살면서 다짐한 게 있다. 조직 속에 들어가서 위아래 따지는 거 안 하기. 돈 욕심 내지 않기. 그냥 봉사를 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할머니 도슨트로 오래오래 미술관에 있으면서 관람객들에게 기분 좋고 특별한 경험을 선물해 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미술관서 살아 있음을 느끼는 권길자 씨 "호적아, 너는 계속 나이 먹으면서 가라. 나는 안 가련다." 팔순을 앞두고 있는 나이에도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이 너무 많은 자원봉사자 권길자(77) 씨. 과거에는 자식뿐만 아니라 조카까지 거둬야 했었다. 권 씨는 자식 4명, 조카 5명 총 9명을 키워야 했다.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도 하지 못하고 육아에만 전념했었다. 65세가 돼서야 진정 하고 싶었던 일을 찾았고 10여 년 동안 일하고 있다. 그는 "이 나이 먹고도 출근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게 너무 행복하다. 다니면서 점점 내가 성장하는 느낌을 받았다. 뭔가를 새로 아는 게 즐겁고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 커지는 것도 신기하고 마냥 재미있다"며 "특히 관람객을 마주하다 보니 머리, 옷도 다 신경 쓰는 편이다. 자연스럽게 나를 가꾸게 되고, 아끼게 되고, 사랑하게 된다"며 지금이 행복하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권 씨에게 과거의 나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는 "나를 먼저 챙기고 자식을 챙겼으면 좋겠다. 나를 먼저 아끼고 보살피고, 나이 많다고 집에만 있지 말고 밖으로 나와서 사람과 마주하고 하고 싶은 일 하는 시니어들이 많아지면 좋겠다"고 대답했다. 발걸음을 옮겨 국립전주박물관 로비에 들어서니 연신 "어서 오세요", "맛있게 드세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등 듣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인사가 들렸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박물관 1층에 들어선 '바로곁애 카페'. 이곳은 지역 시니어 사회 참여를 위해 전주시니어클럽이 운영하는 카페다. 말끔한 유니폼 차림으로 커피 머신 앞에 선 시니어들. 커피를 건네주는 시니어들의 마스크 속 환한 미소가 손님들의 기분까지 덩달아 좋아지게 만든다. 이곳에서 시니어 바리스타 박종미·이다민 씨와 마주했다. 오히려 일하고 마음이 여유로워진 박종미 씨 "종미야, 너 대단하다. 잘했고 잘하고 있어." 1년 동안 바리스타로 일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는 박종미(63) 씨. 카페에서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커피나 차 종류에 관심을 가지고 따로 관련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게 박 씨의 설명이다. 어떻게 하면 손님들에게 더 예쁜 커피, 더 맛있는 차를 건넬 수 있는지 고민한다는 것이다. 그는 "일하는 것도 기쁘지만, 카페에 나오는 것 자체가 행복이다. 손님들에게 환한 미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해 줄 수 있는 것도 카페에 있으면서 행복감을 느끼고 안정된 느낌을 받기 때문"이라며 "집에 있을 때는 한없이 우울해졌었는데 밖으로 나와 활동할 수 있어 더할 나위 없이 기쁘다"고 했다. 살면서 하고 싶었던 일 중 하나였다는 '바리스타'. 바리스타로 지내면서 오히려 젊었을 적보다 마음이 한결 여유로워졌다는 박 씨다. 그는 "시니어가 되면 무언가를 새롭게 한다는 것은 무서운 것 같다. 길다면 긴 시간 동안 있으면서 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나처럼 다른 시니어도 적극적으로 사회에 참여해 더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나'를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된 이다민 씨 "하고 싶었던 것, 해 보고 싶은 것 다 해 보면서 나 자신한테 몰두하고 있어요." 밝은 미소 뒤에 감춰진 아픔이 컸던 이다민(62) 씨. 2019년에 암 선고를 받고 2년 가까이 쉬면서 우울증까지 심해졌다. 그런 그를 환한 세상으로 이끈 것은 바로 바리스타. 이 씨는 카페에서 손님들을 만나고 동료들과 함께 하면서 건강이 좋아졌다. 그는 "평생 한 번 밖에 못 보는 사람일 수도 있지만 잠깐이나마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 나누고 인사하는 게 너무 행복하다. 항상 기분 좋게 손님, 동료를 마주하다 보니 혼자 있으면서 화가 나고 불안했던 마음이 많이 진정됐다. 어느 때보다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살기 위해 '돈'만 보고 달렸던 세월이 원망스럽기도 하단다. 지금처럼 살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에 대한 후회이기도 하다. 이 씨는 "바리스타를 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 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하루하루를 바쁘게 살고 많이 움직이다 보니 매일이 건강해지는 것을 느끼고 즐겁다는 생각을 한다. 앞으로 더 좋은 일자리들이 많아져서 더 많은 시니어들이 행복한 세상을 경험하고 행복한 노후를 보냈으면 좋겠다"고 마무리했다.

  • 문화일반
  • 박현우
  • 2023.01.01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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