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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공감 2022 시민기자가 뛴다] 빛을 통한 ‘주름-삶’ 화폭에 녹아들다

탄소섬유는 수많은 탄소원자가 결정 구조를 이루어 길게 늘어선 분자 사슬로 이루어진 섬유다. 가늘지만 인장강도와 강성도가 높고 고온과 화학물질에 대한 내성이 우수하고 열팽창이 적어 항공기, 자동차, 담배 필터, 각종 스포츠 등에 사용되고 있으며 사용처를 다방면으로 늘리고 있다. 이와 더불어 탄소섬유를 이용해 바이올린과 거문고 등 악기와 가구도 만들어진 걸 보았는데 순수미술로의 융합을 하는 작가가 있다. 주름의 형상과 어우러지는 빛을 통해 재료의 물성을 시각적으로 선보이는 서양화가 이강원 작가다. 보자기를 묶었을 때 비닐을 묶었을 때의 주름이 가지는 고유의 운동성과 유연성의 평면적 표현이 탄소섬유를 만나 입체적이고 추상적인 이미지로 생동감을 배가 시킨다. 주름-삶 각 각의 주름은 빛에 의해 만들어지고 주름은 우주를 형성하는 다양한 프렉탈 구조를 지니며 주름은 현 실태와 그 분신으로서 우주를 보는 세계의 거울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주름에 내포된 숨겨진 의미를 성찰하고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긴 시간의 여정이 그림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작가는 삶이 만드는 흔적과 괘적을 빛과 주름이라는 형상으로 구현해 내고자 했다. 구상과 추상의 경계에서 작업하는 작가는 일상의 사물에 비친 빛과 주름을 통해 우리 삶에 대해 이야기를 그림으로 들려준다. 비닐을 꽁꽁 묶었다. 어떤 그림엔 김장을 하고 맛이 변하지 말라고 김장독에 비닐을 묶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어떤 작품은 엄마가 내게 음식을 싸주며 혹시나 운반할 때 흘릴까봐 꽁꽁 싸매던 반찬이 생각난다. 매우 현대적이고 독창적인 형상의 작품들임에 분명하지만,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김치가 생각나고 엄마가 그리워진다. 새로운 매체 탄소와 융합하다 문화와 산업이 공존하고 한국탄소산업진흥원이 있는 전주. 전주팔복예술공장에서 탄소와 예술이 만났다. 전북대 링크플러스 사업단과 전주문화재단, 한국탄소산업진흥원등 3개 기관의 공동 협력을 통해 나온 결과물이다. 신소재로 각광받고 있는 탄소를 예술 매체로 활용함으로써 탄소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도록 기획한 전시다. 탄소섬유지원과 워크숍, 기술지원을 함께 함으로서 지역 작가들에게 탄소작품이라는 새로운 도전의 기회를 제공했다. 이 기회에 이강원 작가는 탄소를 융합해 작업을 시작했다. 유치원 아이들과 선생님이 전시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좋아 보인다. 평면 위에 빛에 의한 천의 주름으로 명암과 음영의 극한대비를 통한 작업에서 평면을 입체로 환원시키는 작업들에서 탄소를 만나 입체적인 작업을 만들어냈다. 탄소섬유가 가진 물성 자체를 주제로 녹여내며 가공된 탄소섬유를 자연물의 형태로 환원하며 보여주는 에너지의 순환을 담은 작품이다. 그림이 크고 무거울 것 같지만 탄소섬유의 장점인 초경량으로 한손으로도 불끈 들 수 있는 장점이 돋보인다. 자유롭게 유영하다 작가는 탄소섬유의 물성을 활용해 현대미술의 구상적. 비구상적 표현을 확장시키고자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꾸준한 변화를 모색하면서 새로운 시도와 연구하는 자세를 추구할 때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는 진일보적인 작업을 할 수 있다.”-작가노트 중에서 평면회화작업을 반입체, 또는 입체작업으로 변환시키는데 적합한 초경량의 신소재인 탄소섬유의 물성을 활용하여 현대미술의 구상적-비구상적 표현을 함에 있어 다양한 실험적 작업을 통해 새로운 소재의 탄소미술장르를 펼쳐 보이고 있다. 탄소섬유는 이 작가를 통해 어떻게 새롭게 탐구되고 발현되는가. 작가는 처음으로 접하는 생소한 탄소섬유라는 매체를 가지고 본인 작업에 탁월하게 응용을 했다. 탄소섬유의 강점을 되살려 입체감 있는 작품을 만들고 가볍고 내구성이 단단한 작품으로 새롭게 재창조했다. 탄소예술이 이 작가를 통해 확장 될 수 있는 대목이다. 작가는 50여년 현대미술 작업에 몰두해온 세월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고 한다. 많은 고뇌를 했던 시간이었다. 좀 더 깊이와 품격을 갖춘 작업을 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아 고단한 예술의 길 되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으며 창작에 대한 열정이 식지 않기를 바랄 뿐이라며 묵묵히 새로움에 대한 기대감으로 작업실로 향한다고 한다. “새로운 작업 재료에 대한 연구를 하는 것이 재미와 즐거움을 주는 것 같다. 탄소섬유를 이용한 입체적 회화표현 양식은 새롭고 다양한 현대미술의 한분야로 작업세계를 구축할 수 있을 것 같다. 새로운 재료의 소재를 통해 시대에 맞는 유니크한 작업을 해보고자 한다.”고 작가는 나아갈 방향성에 대해 말을 잇는다. 전주에서 더욱 꽃피울 탄소 예술에 대한 기대가 이강원작가의 작품으로 한층 관심이 쏠리고 있는 가운데 새로운 작업에 대한 궁금함과 용기가 더해져 향후 어떠한 작품으로 변화될지 궁금해져 온다.<끝> 이강원 작가는 원광대학교 미술교육과와 홍익대학교 미술교육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미시간 주립대학교 국제전문가 초청 프로그램을 수료했다. 한국과 미국, 프랑스 파리, 중국 등 17회 개인전을 했으며 한국미술협회 전라북도 지회장상, 한국예총 전북지회장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대한민국미술대전 운영위원, 전북미술대전 초대작가, 전북도립미술관 작품수집 추천위원, 전북미술원로작가회 전시운영위원장 등을 역임하고 있다. 작품 소장처로는 국립현대미술관, 전북도립미술관, 중국사천성 남정미술관, 제주국제고등학교, 전주고등학교가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최지영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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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9.21 16:54

[문화&공감 2022 시민기자가 뛴다] 일본의 참회가 담긴 곳, 군산 동국사

1899년 5월 1일, 일제에 의해 군산항 개항이 이루어지면서 일본인 전용 주거지역이 지금의 영화동과 장미동 일대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이로부터 10년 후인 1909년, 일본인 승려 우치다 붓칸(內田佛師)이 일본 불교의 포교소를 짓고, 1913년에 지금 동국사의 자리에 정식으로 사찰을 지었다. 오늘날 우리가 동국사라 부르는 사찰의 옛 이름은 ‘금강사(錦江寺)’였다. 군산에서는 일본 불교 종파 가운데에서도 조동종(曹洞宗)의 포교 활동이 두드러졌는데,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에 160여개의 사찰과 포교소를 운영한 거대 종단으로, 조선에 들어와 다섯 번째로 사찰을 건립한 것이 금강사였다. 명성황후 시해 사건의 배후 인물로 지목된 다케다 한시(武田範之)이 이 종단 소속으로 알려져 있다. 금강사의 2대 주지였던 나가오타 겐테이(長岡玄鼎)가 쓴 당시 명문에는 “우리들은 함께 일한 병합을 하였고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 평화의 아름다운 시대에 이르렀기에 그 은혜에 감사하는 바이다”라고 적혀 있어 일제강점기 일본 불교가 조선 합병을 위한 침탈 도구로 기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원 창립을 할 때 30명의 일본인 신도들의 기부가 있었는데, 이들은 월 평균 30원, 특정 행사가 있을 때에는 월 40원 정도를 기부하였다. 당시 고급 관리의 한 달 월급이 30~40원 정도였으니 기부의 규모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신도 가운데에는 일본인 농장 지주도 많았는데 군산의 대표적인 수탈자로 알려진 구마모토 리헤이(熊本利平)도 그 중 한 명이었다. 금강사는 일제강점기 36년 동안 일본인 승려들에 의해서 운영되다가 해방 이후 미군정의 재산이 되었다. 한국전쟁 때는 인민군이 정렴하여 임시거처로 쓰기도 했고, 국군이 수복한 후 진지의 하나로 이용되었다. 전쟁 직후인 1955년, 전북 불교 종무원장이었던 남곡 스님이 금강사를 인수하였고, 이 때 비로소 사찰 이름을 동국사(東國寺)로 개명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동국사는 전형적인 일본식 사찰의 형태를 띠고 있다. 사찰 입구에는 한국 전통 사찰에서 보이는 사천왕문이나 일주문이 없고, 경사로를 오르면 바로 사찰 앞마당에 진입한다. 입구 양쪽에는 대리석 돌기둥이 서 있는데, 한 쪽에는 ‘소화 9년(1934년) 6월 길상일’이라는 음각 기록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앞마당 앞에는 급경사 지붕을 하고 있는 대웅전이 있다. 일본의 해양성기후에 맞게 비가 많이 내려도 고이지 않는 형태로 에도시대의 건축양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한국 사찰에서 늘 마주치는 단청도 없다. 벽에도 장식이나 문양, 벽화도 없다. 대웅전 뒤로는 사찰 중건 때 일본에서 직접 가져온 대나무로 조성한 숲이 울창하다. 대웅전 옆의 범종각과 석조 불상도 모두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인 승려와 신도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일본 전통불교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일제의 옛 모습을 상당부분 유지하고 있는 동국사는 단연 관광객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군산 여행에서 ‘일본스러움’을 체험하기 위해 빠지지 않고 들르는 곳이 동국사이기도 하다. 그러나 ‘일제잔재’로 바라보는 시각에서는 반드시 청산해야 할 치욕의 역사로 지탄한다. 남겨서 잊지 말아야 할 문화유산으로 후대에 물려줄 것인가, 아픔의 역사를 지우고 새로운 땅으로 거듭나게 할 것인가 하는 치열한 시대의 고민이 이 사찰에 맞물려 있다. 이보다 중요한 사실이 있다. 오늘날 동국사가 한일 양국의 관계 회복을 위한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의 조동종은 2010년과 2012년 두 번에 걸쳐 동국사에 방문하여 태평양전쟁과 일본 홋카이도 강제 징용 때 희생된 조선인들을 추모하는 위령제와 다례제를 올렸다. 특히 2012년 9월에는 일본 종단에서 그들의 과오를 참회하는 뜻의 참사문비를 제막했다. 참사문에는 “우리는 과거 해외 교포의 역사 속에서 범했던 중대한 과실을 솔직하게 고백하면서 아이사인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하며 참회하고자 한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참사문비는 1992년 조동종이 발표한 참사문 내용을 발췌하여 조각한 것으로 발표 당시 일본 내에서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한국에 다시 건립한 것이다. 일본 불교종단의 진정성 있는 참회의 뜻이 한국으로 건너오기까지 20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참사문비 제막을 통해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받아들일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일제 침탈, 한국 전쟁, 한국 불교의 부흥, 근대역사 탐방의 산실 등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동국사는 무수한 역사를 응축했다. 수많은 소멸 위기를 넘기고 동국사는 2003년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동국사는 일본의 진정성 있는 참회를 바탕으로 과거의 아픈 역사를 느끼고 공감하는 것을 넘어, 한일 간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새로운 역사적 공간으로 거듭났다. 머지않은 날, 한국과 일본 양국 간 기념비적인 화해와 소통의 순간이 이곳 동국사에서 열리기를 기대해본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강석훈 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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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9.14 17:25

[문화&공감 2022 시민기자가 뛴다] 진정한 로컬의 힘을 만나다

지역에서 브랜딩을 강화하기 위해 실시한 사회혁신전주의 로컬브랜딩스쿨의 이야기를 연이어 전하고자 한다. 8월 초에는 지역에서 확고한 브랜딩으로 선전하고 있는 다섯 팀의 ‘로컬프렌즈’들과 교육생들의 만남이 있었다. 자기다움의 색이 분명한 업체로 현재 지역에서 돋보이게 성장 중인 다섯 팀은 소양고택과 두베카페를 운영 중인 이문희 대표, 카페 빈타이의 강신석 대표, 일러스트레이터 니나킴(김진솔), 리슬한복 황이슬 대표, 프롬히어의 설지희 대표다. 2012년 고택공사를 시작으로 한옥의 역사성과 스토리텔링에 현대적 감성을 입혀 13년째 공간의 지속가능한 가치를 창출하고 있는 소양고택의 이문희 대표는 버려진 것들의 가치를 알아보는 안목도 중요하지만, 브랜딩이란 내가 집중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을 찾아 절실하게 사랑에 빠지는 일이 중요하다고 전한다. 현재 완주의 소양고택과 두베카페는 매년 15만 명 이상이 방문하는 핫플레이스로 다양한 문화행사가 늘 함께 하는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빈타이’라는 카페를 운영 중인 강신석 대표는 대형 프랜차이즈와 다양한 동네카페들의 홍수 속에서도 빈타이만의 깔끔한 인테리어와 장소성으로 살아남은 지역의 카페다. 아이템과 메뉴를 선정 시에도 타 지역에서 잘 되고 있다고 무작정 따라 하기보다는 지역 특색에 맞추고, 동네에 맞추어 변화를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조금 느리더라도 자기 색을 잘 찾아가는 일이 브랜딩이며, 유행처럼 지나가는 카페가 아닌 직원들의 평생직장이 될 수 있도록 운영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한옥마을에 가면 작고 귀여운 일러스트가 그려진 숍이 하나 있다. 그림도 팔고 작가도 직접 만날 수 있는 ‘니나 스튜디오’이다. 단발머리 소녀 캐릭터를 중심으로 직접 키우는 강아지의 캐릭터도 만들었다. 또한 전주 풍남문과 한옥마을의 남천교를 비롯하여 전동성당, 빨간버스, 한복 입은 캐릭터 등 전주를 상징하는 다양한 그림과 굿즈를 판매한다. 전주에 여행 온 사람들에게는 전주의 색이 물씬 풍기는 니나킴의 굿즈가 인기다. 자기다움을 살피며 꾸준히 해나가는 것이 브랜딩이라고 여긴다는 니나킴이 지역을 넘어 더 큰 성장을 하길 바라본다. 전주역 앞에는 ‘리슬’이라는 한복집이 있다. 한옥마을에서만 빌려 입을 것 같은 한복을 ‘힙하게’ 만들어 연예인들이 무대에서 입고, 다양한 콜라보레이션도 하고 현재는 대중의 삶으로 들어왔다. ‘오! 한복한 인생’이라는 기분 좋은 슬로건처럼 한복을 만들고 판매하면서 직원과 대표 모두가 즐거웠으면 한다는 마음으로 지낸다고 한다. 매 순간 본인의 모든 모습이 ‘브랜딩’이라고 말하는 황이슬 대표의 힙한 삶 그대로가 ‘리슬’이라는 브랜드에 고스란히 담겨 보이는 이유다. 전통문화를 전공하고 연구했던 설지희 대표는 전북무형유산원에서 장인들의 기록물을 정리하는 일을 한 적이 있었다. 장인들이 한결같이 멋진 작품을 만들어도 그저 박물관에나 소장될 뿐 대중들 앞엔 선보일 일조차 없는 것들이 아쉬운 차에 전통공예품을 세상과 연결하는 일을 하면 어떨까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바로 실천에 옮긴다. ‘전주솟대디퓨저’, ‘싱잉볼 그리고 콘서트’, ‘인테리어용 조각우산’ 등으로 전통과 현대를 잇는 일을 지역에서 성공적으로 해내는 ‘프롬히어’가 바로 설지희 대표가 만든 새로운 브랜드다. 이렇게 다섯 명의 로컬프렌즈들이 본업을 설명하며 브랜딩과 연결시키는 짧은 강연을 한 후에는 교육생들의 큰 박수를 받았다. 이후 교육생들과 로컬프렌즈들은 따로 만남을 가져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같은 지역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가지고 열심히 활동하는 대표들을 만난 교육생들은 목표와 비전을 더 구체화시키고 본인들이 앞으로 해나가야 할 업에 대한 브랜딩을 맵으로 만들어보았다. 브랜드의 본질을 정리하기 위해 슬로건을 정리하고, 팬을 더 만들기 위한 전략부터 구체화된 목표수치, 그리고 닮고 싶은 브랜드와 경쟁브랜드를 분석하고 홍보채널도 정리해보았다. 전반적으로 브랜드맵이 완성되면 비주얼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작업이 곧 시작된다. 7월부터 8월말까지 두 달간 꽉 채워 실시한 사회혁신전주의 브랜딩역량강화 교육은 이제 마무리되었으며 10월말에 비주얼 로고와 함께 전체 공유발표회가 진행되는 일정만 남았다. 어떤 일이든 시작하기 전에 비전을 구체화하고 자기다움을 찾는 일이 브랜딩의 첫 걸음일 것이다. 남들과 비교하기 전에 스스로가 가장 잘 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집중하는 것, 지역에서 살아남기 위해 지역 색을 더 충실히 가져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찾는 것 등이 해결과제일 것이다. 지역을 넘어서는 지역브랜드를 위해 로컬브랜딩 교육이 앞으로도 꾸준히 지속되길 바란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이지선 잘 익은 언어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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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8.31 15:42

[문화&공감 2022 시민기자가 뛴다] 일곱 가지의 보석 칠보로 예술을 꽃 피운다

불의 예술이라고 불리는 칠보가 있다. 칠보는 일곱 가지 보배로운 보석을 뜻한다. 금, 은, 구리 등의 바탕 재료에 칠보 유약을 칠한 뒤 700~900도의 불에 구어내면 신비롭고 영롱한 빛을 가득 담은 보석이 된다. 남녀노소가 다 좋아할 것 같은 우리의 역사 속 칠보를 재현해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하는 칠보공예가 이지연 작가를 만나 보았다. 칠보, 불의 예술로 만들어낸 보석 칠보의 역사는 조선시대에 불교문화를 통해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되었고 왕족들과 사대부들의 신분을 나타내는 장식품으로 안착이 되었다. 불교문화를 통해 들어와 재료는 금, 은, 동으로 만들어져 일반 서민층은 잘 볼 수도 없었고 살수도 없었다. 사대부에서 장신구와 장식품들을 사들이며 자신들의 신분과 재력을 과시했다. 조선후기에 칠보 장신구가 대중화되면서 일반 부유한 서민층도 소장할 수 있게 되었다. 전시장 벽면에 금전수 작품이 보인다. 동판, 불투명 칠보유약, 순금박을 이용해 작품을 완성했는데 원재료의 가격이 만만치 않음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칠보공예는 브로치나 반지 등 작은 액세서리만 생각했는데 이렇게 멋진 회화작품으로 탄생되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금속부분은 구리를 가장 많이 사용하며 유약을 발라 녹여 부착시킨다. 유약은 규토, 장석, 붕사, 소다 등 다른 재료로 녹여서 만든 물체로 그 색소는 금속산화물을 첨가해 나타낸다. 이에 색상이 매우 아름답고 발색이 자유로운 반면 유약을 혼합시켜 다른 색을 내는 것은 불가하다. 유약은 완전한 무기물이기 때문이며 금속과 함께 영원성을 보유하게 된다. 이렇듯 화학적 반응과 작가의 의도함과 우연함에서 나오는 칠보는 색다름을 안겨준다. 작가의 손에서 칠보 다시 태어나다 작가의 작업실에서 동판을 이용한 작업과정을 살펴보았다. 먼저 달궈진 가마에 동판을 넣어 살짝 소성시킨 후 찬물에 넣어 까맣게 탄 기름 막을 철 수세미로 깨끗이 씻어준다. 다음 동판의 뒷면에 잡색 유약을 얹어 870도 가마에 소성시킨다. 동판 앞면에 원하는 색의 유악을 얹은 후 870도 가마에 넣어 1~2분 정도 소성시킨다. 유약이 다 녹은 것이 확인되면 꺼내는데 그 온도가 어머 어마하다. 800도가 넘는 열기가 한순간에 오기 때문에 장갑과 함께 보호장구를 꼭 착용해야 한다. 위의 과정을 마친 동판 앞면에 동선이나 은선 등을 이용해 원하는 모양을 디자인 한 후 모양 안에 유약을 채워 다시 가마에서 소성시키면 완성된다. 작가의 작업 공간 안에서 각기 다른 모양과 성질이 다른 동판위에 푸른 나무가 그려지고 꽃들이 만발하고 때론 그 안에서 바람이 있고 바다가 보인다. 코로나에 갇혀 사는 삶에 우리는 점점 지쳐가고 있다.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누군가는 희망을 찾아 자신의 꿈을 향해 열심히 나아가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하고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포기하지 않고 이겨내면 좋은 날이 올 거라는 기대를 해본다.(작업노트 중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다 까만 바탕에 꽃이 한 아름 피어있다. 붓으로 그린다고 해도 쉽지 않은 섬세함으로 금속을 일일이 자르고 구부려 모양을 잡고 다시 굽는 과정으로 탄생했다. 어떤 작은 작품일지라도 쉽게 이뤄지지가 않는다. 동판, 투명 칠보 유약, 은선으로 작업한 작품이다. 우주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며 은하계 천체의 무리를 보는 것처럼 잠시 블랙홀처럼 빨려들었다. 햇살이 좋았다. 공기도 좋았다. 짙은 푸름도 좋았고 짙은 바다색도 좋았다. 친정 아빠의 80번째 생신... 친정 엄마와 나 셋이서 제주여행을 왔다. 함께 있는 차 안의 공기는 포근하였고, 3일 동안 운전을 해도 지치지 않았다. 코발트빛의 바다가 잠시 쉬었다 가라고 하는 것 같아서 바다가 잘 보이는 카페에 들어가 셋은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것 같았다. 바다처럼 모든 걸 감싸 안아주시고 내 마을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시는 부모님의 사랑을 가득 느끼는 시간…….왜 이제야 알았을까? 속없이 지내온 시간들에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2021년 10월 푸름이 가득한 제주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눈앞에 펼쳐진 코발트 빛 바다였다.” 작가가 가을의 제주여행에서 느낀 점이라고 한다. 여행 중 보고 가슴으로 느낀 점들은 작업과정 속 어디선가 용솟음치며 어디에서든 꿈틀거린다. 작가는 소망한다 작가는 그동안 큰 회화작업들을 많이 해오다 보니 액세서리와 소품 작업을 소홀히 했던 것 같다고 한다. 회화 작업을 꾸준히 하며 앞으로 칠보 액세서리와 작은 인테리어 소품들을 만들어 대중들에게 좀 더 다가가고 싶다고 말한다. 개인전과 SNS를 통해 칠보공예를 알리고 함께 작업하는 회원들과 칠보공예의 멋을 이어 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지연 작가는 칠보공예가 이지연은 개인전 5회를 했으며 한·프·독 인터내셔널 국제교류전과 L’artigiano in fiera(이탈리아) 그리고 여수 국제미술제에 30인의 초대작가로 참여하였다. 수상경력은 2019년 3·1운동 100주년 대한민국 부채대전 공예부분에서 ‘대상’을 받았다. 그밖에 대한민국 전통공예대전과 전통미술대전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L’artigiano in fiera(이탈리아)에 참석해 이탈리아 영사관에서 작품을 소장하였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최지영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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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8.17 16:42

[문화&공감 2022 시민기자가 뛴다] 새로운 K열풍을 불러올 전통의 바람, 전주 부채

‘방탄소년단(BTS)’은 ‘2018 멜론 뮤직 어워드’에서 힙합과 한국 전통문화의 결합시켜 매우 독특한 무대 퍼포먼스를 연출했다. 멤버들이 비트에 맞춰 각자 나와 사자놀음, 탈춤, 농악 등 한국무용이 가미된 안무를 비트에 맞추어 구사했다. 이날 BTS의 멤버 지민은 부채춤을 접목한 무대를 선보였는데, 트위터 전 세계 실시간 트렌드 2위를 기록하며 뉴질랜드, 프랑스, 싱가포르 등 39개국 해외 팬들의 폭발적인 주목을 받았다. 지민의 군무가 들고 나온 부채는 한국의 전통부채 접선(摺扇)이었고, 착용한 의상은 전주에서 디자인한 현대식 한복이었다. 2019년, BTS는 전북 완주군의 오성한옥마을에 머물며 ‘서머패키지 인 코리아’ 프리뷰 영상을 촬영하며, 기와지붕 아래에서 합죽선(合竹扇)을 들고 여유롭게 여름을 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또한, 같은 해 BTS 지민은 신곡 ‘작은 것들을 위한 시’의 녹화 촬영 중 자신을 응원하러 온 수백 명의 팬들을 위해 자신의 자필 글씨를 담은 합죽선을 선물하면서 한국전통 부채에 대한 애정을 다시 한 번 보여주었다. 이처럼 세계 최정상급 아이돌이 한국의 전통문화 콘텐츠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한복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더욱 고조되는데 가운데, ‘핵심 아이템’으로 손꼽힌 우리의 합죽선은 크게 주목받지 못해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의 부채가 문화산업과의 결합을 통해 고부가 가치를 창출할 수 있었던 하나의 계기 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 것은 일차적으로 마케팅 차원의 문제이겠지만, 무엇보다도 부채에 대한 이해와 가치를 충분히 환기시키지 못한 점이 근본적인 과제라 보인다. 부채가 우리에게 어떤 물건이었는지 조명해보자. 정조 때 영의정을 지낸 채제공의 초상화 중 부채를 들고 있는 작품이 있다. 1792년 제작된 ‘채제공 초상 시복본(時服本)’이다. 초상화에서 채제공은 연분홍에 옥색 안감이 비치는 근무복 차림을 하고 있으며, 양손에는 합죽선을 쥐고 있다. 초상화 왼쪽에는 채제공이 자필로 ‘부채는 임금의 은혜’라고 쓴 문장이 있다. 이 합죽선은 정조가 채제공에게 내린 선물로, 임금이 경륜이 높은 신하에게 단오와 같은 명절에 부채를 하사하는 것이 하나의 관습으로 자리 잡은 때였다. 조선시대의 선비는 과거를 통해 학문의 연마를 완성해야 할 뿐만 아니라, 군자로서 마땅히 익혀야 할 육례(예(禮), 악(樂), 사(射), 어(御), 서(書), 수(數))에도 통달하여 어울림에 막힘이 없어야 했다. 그래서 선비들은 한시 짓기, 뱃놀이 등을 즐겼는데, 이 때 부채를 패용하며 서로의 신분, 경제력, 안목의 우위를 가렸다. 권문세가에서는 화려한 고가의 부채를 뇌물로 사용하거나, 방납을 일삼아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 정도로 조선사회에서 부채가 가진 위력은 대단했다. 즉, 부채는 이미 바람을 일으키는 도구 수준을 넘어서, 양반가의 교류에 있어 다양한 문화적 상징을 함축한 사치품이었다. 부채는 부챗살의 재료인 대나무와 선면을 이루는 종이가 어우러져 만들어진다. 대나무는 남쪽지방의 전라도와 경상도가 주산지였고, 종이는 전라도의 전주·남원의 것이 뛰어났다. 이러한 자연적·기술적 여건으로 전라도에서는 일찍부터 많은 양의 부채가 생산되었고, 조선시대에는 전라감영(全羅監營) 내에 선자청(扇子廳)을 두어 전주뿐만 아니라 구례, 곡성, 담양, 남평, 나주 등에서 제작한 부채까지 모아 관리하였다. 1921년, 선자청은 일제에 의해 사라졌지만 부채를 만드는 상당수의 장인들이 건재했고 수요도 여전히 많았다. 1941년 ‘매일신보’의 기록에 따르면, 전주부채의 한 해 생산량만 70여만 자루에 달했다고 한다. 매년 수십만 개의 부채가 생산되어 전국으로 확산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더위를 식히기 위함만이 아니라, 우리 생활관습에서 오랜 뿌리를 내려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필수품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전주에서는 1970년대까지 남부시장의 국일상회와 삼화상회 등을 비롯해 부채를 제작·판매하는 상점들이 여러 곳 있었는데, 산업화로 인한 급격한 생활양식의 변화로 부채 수요가 급감함에 따라 부채를 만드는 장인의 숫자도 함께 줄어들어 한국의 전통 부채가 한 때 멸실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전통 부채의 제작은 장인이 직접 재료의 엄선에서부터, 대나무를 종잇장처럼 얇게 다듬어 부챗살의 균형을 잡는 과정까지 섬세한 공정을 오랜 시간 거쳐야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문화재청은 전통 부채의 명맥을 보존하고 전승하기 위해 2015년 선사장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하고, 보유자로 김동식 선자장을 인정하였다. BTS가 세계에 자랑한 합죽선은 이를 만드는 장인과 사용하는 사람들의 부단한 문화소통에 의해 탄생된 한국의 고유한 부채이다. 합죽선은 오래 사용해도 부챗살이 쉽게 떨어지지 않고 선면만 바꾸면 대를 물려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생명이 길다. 선면에는 글자와 그림을 자유로이 넣을 수 있어 오늘날의 유행에 맞게 얼마든지 콘텐츠의 전환이 가능하다. 이런 우리 부채의 가치와 의미를 제대로 인지하고 널리 공유하여 부채의 고장 전주로부터 새로운 K열풍이 일어나기를 기대해본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강석훈 국립무형유산원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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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8.10 16:10

[문화&공감 2022 시민기자가 뛴다] 전주로컬브랜딩스쿨의 뜨거웠던 한 달

뜨거운 여름을 누구보다 치열하게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 올봄부터 기획하고 준비하기 시작해서 7월 첫 주부터 시작된 사회혁신전주의 ‘전주로컬브랜딩스쿨’팀이다. 어떤 유명한 체인이 아니라 지역의 색을 가지고 오롯이 살아남는 작은 가게들이 주목을 받는 시대인 만큼 ‘로컬브랜딩’을 통해 지역에서 고유한 역할을 하는 주체들이 좀 더 성장하도록 돕기 위해 만든 기획이다. 정확한 명칭은 ‘2022 사회혁신 활동 주체 브랜딩역량 강화교육’으로 되어 있다. 먼저 전주로컬브랜딩스쿨은 7월 한 달 동안 다섯 명의 브랜딩 전문 강사진들을 통해 브랜딩의 기초이론부터 실제 사례 및 다양한 마케팅 이론을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브랜딩이 필요합니다>의 저자이자 ‘라운즈’의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는 전우성 강사는 ‘브랜딩이란 남들과 나를 구분 짓는 나만의 무언가를 만드는 것’으로 고객이 경험하는 모든 것이 브랜딩이 될 수 있다면서 ‘경험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두 번째 시간이었던 ‘메타브랜딩’의 박항기 대표는 ‘사회적 기업의 브랜딩’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비영리조직에서도 역시나 브랜딩이 필요하다며, 브랜딩 사용설명서의 실제 예시와 적용을 통해 막연했던 브랜딩에 대해 구체적인 감을 잡을 수 있게 도와주었다. 또한 현재 ‘더워터멜론’이라는 브랜딩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우승우 대표는 ‘브랜드민주화’라는 키워드로 브랜드가 가져야 할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도 생각을 나누었다. 자기다움을 발견하고 이야기를 만든 후에는 그걸 상징할 수 있는 요소들과 연결시키는 작업이 중요하다며 향후 전주로컬브랜딩스쿨 팀이 지속하기 위해 필요한 비주얼 작업의 방향까지 고민해야 함을 말했다. 7월 중순이 지나서는 ESG(ESGEnvironmental, Social and Governance, 친환경 사회적 책임경영)에 높아지는 관심도에 따라 최근 <ESG브랜딩 워크북>이라는 책을 펴낸 브랜드 디자이너 한지인강사의 다양한 경험담을 들었다. 보이지 않는 모습까지가 브랜딩이라며 일하는 사람들과의 좋은 관계도 브랜딩의 요소일 수 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서로 어떻게든 손을 잡고 협력하는 브랜딩이 되어야 좀 더 지속가능할 수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네 번째 시간이었던 사회적경제 미디어의 ‘이로운넷’의 정진영 강사는 보도자료 쓰는 법을 통해 언론에서 헤드라인이 갖춰야 할 요소와 전달해야 할 핵심 메시지들의 중요성에 대해 말했다. 마지막 외부강사진이었던 ‘마케터 문영호’ 강사는 지속하는 브랜드가 되기 위해서는 꼭 ‘팬’이 필요하다면서 ‘팬을 만드는 마케팅’ 비법을 전수했다. 이로써 다섯 명의 외부강사진 강연이 마무리 되고 8월초에는 전북 지역에서 확고한 브랜딩으로 자리 잡은 다섯 명의 로컬프렌즈팀과 함께 두 번의 만남이 예정되어 있다. 이번 ‘전주로컬브랜딩스쿨’에는 총 12팀이 선정되어 다양한 브랜딩강연을 듣고 있으며, 그 중에는 협동조합부터 카페, 패션, 커뮤니티, 한옥호텔 등 다양한 일을 하는 그룹들이 모여 있다. 브랜딩스쿨 프로그램의 마무리는 각 팀의 브랜드 맵핑 작성 및 비주얼 작업까지다. 온라인 브랜드 개발 플랫폼 더워터멜론의 아보카도와 협업으로 참여 팀들에게 로고 제작 및 브랜드 가이드를 제공할 예정이다. 작년 말 협동조합 설립 후 로컬에 밀착 된 브랜딩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마블러스협동조합’은 이번 전주로컬브랜딩스쿨을 통해 브랜딩은 결국 나다운 것, 그리고 우리다운 것을 찾기 위한 과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전했다. 한옥마을 인근에서 한옥호텔을 운영 중인 ‘왕의지밀’팀 역시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나만의 언어로 재정의 내리는 시간이 되었다면서 로컬브랜딩 강연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전했다. 전주에서 옷을 디자인하고 만드는 패션 브랜드팀인 ‘하과양’은 “브랜딩과 마케팅이 살짝 헷갈리고 어렵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번 교육을 들으며 차근차근 풀어가고 생각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전했다. 전북에서 처음으로 ‘로컬브랜딩’이라는 키워드로 강사진을 직접 섭외하며 이번 일을 기획한 사회혁신전주의 원민 센터장은 “우리의 일상은 다양한 브랜드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상에서 지역의 영리/비영리조직들이 브랜드로서 성장하여 사람들에게 사랑받는다면, 지역의 더 큰 가능성과 기회가 생길 것으로 믿습니다.”라고 전했다.‘브랜딩은 결국 사랑이다’라고 말한 어느 강사진의 말이 떠오른다. 고객을 위한 마음, 작은 디테일 하나라도 챙기는 그 마음이 그 어떤 트렌디한 비주얼보다 더 큰 ‘브랜딩’이라며 진심을 전하는 일의 중요성을 말했다. 지역에서도 개성과 열정으로 지속할 수 있는 작은 가게와 커뮤니티들이 더 많아지기를 바라며 여름을 닮은 뜨거운 열정을 응원한다. 전주로컬브랜딩스쿨에 대한 더욱 자세한 내용은 전주시사회혁신센터 홈페이지 또는 블로그를 통해 만날 수 있다, 이지선 잘 익은 언어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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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8.03 17:28

[문화&공감 2022 시민기자가 뛴다] 누군가에게 꼭 필요했던 물건들 다시 한 번 바라보다

전주시새활용센터 다시봄은 성매매집결지에서 문화예술과 인권의 공간으로 변신 중인 서노송예술촌에 환경부 지원을 받아 2021년 문을 열었다. 3층 기획전시장과 기억의 방에서는 7월 8일까지 버려지는 옷과 천을 이용해 재생과 치유를 표현한 고보연 작가의 ‘삶은 다시 이어지고’란 설치전을 만날 수 있었는데 전시의 메인 작품인 ‘땋기_그 연대의 힘’은 폐 의류를 길게 땋아 제작한 가변설치 작품으로, 5층부터 1층까지 이어지는 대형 설치작품이다. 그의 작품을 통해 버려지는 것을 다시 보고, 치유의 힘을 느끼고자 전주시새활용센터를 찾았다. 전주시새활용센터 다시봄 이곳은 전주시 자원 선순환을 위한 새활용, 가치에 소비하는 문화 만들기, 폐기물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지역 새활용 소재개발과 디자인 역량 강화 등 새활용 사업 기반조성을 추진 중이다. 또한 전주 시민 스스로 참여하는 자치적 가치 실현의 공유플랫폼으로 성장하고 있다. 3층 전시장을 가득 메운 작품들은 고보연 작가가 한 땀 한 땀 바느질한 작품이다. 몸을 감싸는 천을 이용한 작품으로 바느질, 솜 넣기, 창구멍 꿰매기 등을 이용한 작품이라 설치의 어색함속에서도 따뜻함을 물씬 느끼게 한다. 이 많은 작업량을 위해 혼자가 아닌 주변의 도움을 받아가며 탯줄과 끈처럼 관계가 이어져 오고 서로가 위로를 주는 전시다. 관계란 무엇일까 작품을 제작하는 현장은 선미촌의 아픔을 상징하는 의미로 허물어져가는 건물 바닥에 가두리를 쳐놓은 곳이다. 작고 낡은 여인숙 모양의 판잣집 같은 곳이 쌍둥이 건물처럼 있었을 법한데 지금 한 채는 남아있고 다른 한 채는 그 흔적처럼 가드레일을 쳐놓았다. 고되고 더딘 시간들을 위로하는 단순한 행위가 이 작품의 주제다. 탯줄은 아이가 엄마 태 안에서 편하게 먹고 쉬며 성장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기관이다. 물질적 지원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연계되어 있다. 우리가 어머니와 연결되어 있듯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이어져 있다. 작가는 어머니의 탯줄이 우리를 감싸고 있었듯 보이지 않는 주변의 수많은 탯줄과 같은 가치들이 우리를 보호해줌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 사회는 혼자가 아닌 함께 관계하며 사는 것이라 말한다. 사람 향기 전시장 1층에 길게 늘어뜨린 천이 보였다. 바로 ‘땋기- 그 연대의 힘’ 작품이다. 그 이어짐을 보기위해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5층에서부터 이어져 오는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작가가 말하는 그 연대의 힘은 과연 무엇일까? 작가는 버려지는 천을 머리 땋는 형식으로 계속 이어가고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대, 그 이어져 있음을 나타내고자 한다. 비록 한 줄의 천이더라도 다른 조각들과 연결되면 튼튼한 구조의 줄이 된다. 여리고 힘없는 사회적 약자, 소수자더라도 누군가와 함께하면 힘이 두 배 세 배가 되어 연대의 힘을 형성한다는 설치물인 것이다. 엄마란 이름 여성은 본인의 모든 것을 한없이 내주는 어머니가 되고 너무나 내어주어 빈껍데기만 남는 순간이 있다. 빈껍데기만 남아 그 것은 마치 빈 젖무덤 같기도 하다. ‘엄마의 산에서 머물다’라는 작품은 엄마의 젖가슴이 산이 되고 바다가 된다. 여성의 몸 자체가 언어이고 매체라고 작가는 설명한다. 예전에 이 작업과정을 지켜본 적이 있다. 작가는 풍선에 천을 한 겹 한겹 올리고 있었는데 필자는 젊은 날의 우리 엄마를 생각했고 지금은 가죽만 남은 우리 엄마생각에 잠시 입이 삐죽거려진다. 충남의 모기업이 폐업하면서 재고로 남아있던 천을 받아 작가는 가족을 표현했다. 천 공장이 문을 닫고 운영자뿐만이 아닌 노동자들도 갈 길을 잃고 분명 헤맸을 것이다. 그 헤맴과 혼란의 천들은 작가의 한 땀의 바느질로 때론 아버지의 등을 내어주고 어머니의 등을 내어주는 가족을 표현하고 있는 듯하다. 전시를 보고 난 후 관람자들은 마련된 천을 이용해 땋기를 하고 있다. 한 올 한 올 직접 땋은 다양한 줄들은 본인의 이름을 기재 후 다음 작가의 전시에 이름과 함께 전시가 된다. 전시공간이 한 줄 한 줄 관람자들의 작품들이 쌓여서 하나의 공간을 만드는 형식이다. 작가와 관람자가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전시라 다음이 기다려진다. 센터는 새활용 시민 크리에이터를 양성하고 전주쓰레기자원새활용디자인 공모사업 등을 추진하면서 시민 대상 새활용 체험 프로그램도 수시로 제공할 계획이라고 밝힌다. 또 폐자재와 폐제품을 수거해 가공·생산·판매까지 새활용 산업 전 과정을 원스톱으로 진행해 자원순환 대표 플랫폼으로 만든다는 구상이다. 이밖에도 홈페이지에 신청해 폐기물을 활용한 새활용 제품 제작 프로그램이 진행 중인데 필자도 꼭 참여해 보고 싶다. 고보연 작가는 고보연(KO, BOYUN)은 전북대학교 미술학과와 동대학원에서 서양화를, 독일 드레스덴미술대학에서 입체, 설치로 Diplom, Meister 과정을 마쳤다. 군산에서 ‘여성에게서 나오는 미술 언어’를 찾아 재생 천을 이용한 설치작업에 몰두하며, 공동미술작업실을 운영하고 있다. 아동, 청소년, 장애인, 노인 등 다양한 연령층과 소수자문화예술활동으로 만나오며 추구하고자하는 설치미술의 방향과 함께 공공의 가치를 찾고 있다. 21회의 개인전과 다수의 그룹전, 기획전에 참여하고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최지영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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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7.20 16:59

[문화&공감 2022 시민기지가 뛴다] 우주와 자연의 질서를 담은 나침반, 윤도(輪圖)

우리나라 사람들은 조상의 묏자리가 집안의 흥망성쇠를 좌우한다고 믿었다. 조상은 죽어서도 자손을 지키는 ‘신적인’ 존재로 여겨졌기에 조상이 묻힌 묘는 혈연집단의 시초이며 보금자리와 같았다. 선조가 영면할 자리를 정할 때 지관이 동행했다. 이들은 묏자리의 위치가 적절한지, 주변의 환경과 여건은 조화를 이루는지, 자연스러운 모양새를 갖추고 있는지 등 우리 특유의 전통적 우주관에 입각하여 지세를 살폈다. 이 때 자리의 방향과 특성을 가늠하는 도구를 썼으니 이를 바로 윤도라고 한다. 윤도는 자침(磁針)을 활용하여 지관들이 풍수를 보거나 항해자와 여행자들이 방향을 보기 위해 쓰던 일종의 나침반을 말한다. 윤도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한 것은 조선시대로, 영조 18년(1742)에 천문학을 담당하던 관상감(觀象監)에서 윤도를 만들어 천문과 지리를 살피는데 쓰고자 했다는 기록이 나오며, 정조 13년(1789)에는 윤도 제작에 기본이 되는 분금법이 매우 복잡하고 정밀하여 이에 대해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음을 한탄하는 기록도 보인다. 윤도의 제작이 천문과 음양오행의 법칙에 능통한 자만이 가능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윤도는 사회 각계에서 다양한 용도로 이용했다. 조선시대에는 대부분의 휴대용 해시계에 윤도를 달았다. 사대부들은 개인부채에 12방위 또는 24방위를 표시한 소형 나침반인 선추(扇錘)를 휴대용으로 매달고 다녔다. 윤도는 자침을 중심에 두고 24방위를 기본으로 하여 음양·오행·팔괘·십간·십이지·절후·28숙(宿) 등이 방위를 이루어 구성되어 있다. 24방위는 ‘정침(正針) 24산(山)’이라 하여 정간과 분금·각자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점이 된다. 8괘는 음과 양의 부호를 결합시켜 만든 것으로 자연현상, 인간관계, 신체부위, 성질, 짐승, 방위 등을 아우른다. 간지는 달력과 길흉화복의 판단 준거로 쓰이며, 24절후는 춘하추동을 이루는 스물네 개 절기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어 기후와 풍토에 대한 해석이 가능하다. 28숙은 황도 부근의 별을 28개의 구역으로 나누어 본 천문지식이다. 이 모든 법칙이 여러 개의 층으로 구획되어 하나의 윤도를 이루는데, 오늘날 9층 윤도가 가장 많이 쓰인다. 1·2층은 묏자리나 집터를 잡을 때 등지고 있는 방위인 좌(坐)와, 자리 잡은 위치에서 바라보는 앞면인 향(向)을 본다. 3층은 만물을 주관하는 수·금·화·목·토의 합을 본다. 즉, 다섯 원소 중 세 개를 연결하여 정삼각형의 합을 이루면 길지로 본다. 4층은 24방위를 가리키며 생기가 모여 있는 정확한 위치를 확인한다. 5층은 산의 지형을 보는 것으로 가장 왕성한 혈맥의 모양새를 파악한다. 6층과 7층은 땅의 산수 형태와 생기를 보며, 8층은 물의 방향을 살펴 해를 줄 수 있는 요인을 확인한다. 마지막으로 9층은 망자의 관이 하관하는 방향을 결정하는데 쓰인다. 무엇이 옳고 그르냐의 문제를 떠나, 우리 조상들이 터를 잡는데 있어 윤도를 통해 얼마나 다양한 우주의 구성요소들을 기준에 두고 자연환경을 바라보았느냐를 알 수 있다. 즉, 우주의 형상에 맞게 질서에 순응함으로써 복된 기운을 누린다는 세계관이 이 윤도에 들어있다. 전북 고창군 성내면 산람리 낙산(洛山)마을에는 약 300여년에 걸쳐 오늘날까지 윤도를 제작하는 기·예능이 전승되어 오고 있다. 이 윤도를 제작하는 사람을 윤도장이라 한다. 이곳 윤도를 일컬어 ‘흥덕 패철’이라 하는데 이곳이 조선시대에 흥덕현(興德縣)에 속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하며 예로부터 나침반의 방향이 정확하고 견고하기로 유명하였다. 윤도 제작은 극도의 정밀함을 요구한다. 먼저 톱과 작두를 이용해 나무의 모양을 결에 따라 원형으로 세밀히 다듬는다. 이어 윤도의 중심을 잡아 동심원을 그린 후 분금(分金)하는 것을 정간(定間)이라 한다. 이 때 동심원 하나를 최소 1도의 각을 이루도록 360개로 분금해야 하는 정교한 작업이 수반된다. 각자(刻字)에서는 분금해 놓은 각 칸들에 해당된 글자들을 새겨 나간다. 만약 하나의 획수라도 잘못 그어 실수하면 분금된 윤도판을 전부 갈아서 다시 만들어야 하므로 엄청난 집중력과 인내심이 필요하다. 한 층을 각자하는데 보통 한나절이 걸리고, 글자 수가 많은 층은 꼬박 하루가 걸리기도 한다. 수일에 걸쳐 각자가 끝나면 먹, 옥돌가루, 주사 등으로 분금과 글자에 색을 입히고, 자침을 만들어 앉힌다. 이렇게 원통형 나침반인 평철이 완성되면 자침의 작동 여부와 정확성을 확인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수백 년에 걸쳐 내려오는 윤도 제작은 오늘날 국가무형문화재 김종대 명예보유자와 그의 아들인 김희수 보유자에 의해 명맥이 이어져 오고 있다. 이들이 쓰는 생업 도구들은 족히 200~300년이 넘은 것들이 무수히 많다. 재료를 취하는 과정부터 제작 과정의 세세한 기법들까지 수대를 이어 내려온 것들이다. 모두가 스마트폰 하나를 패용하고 다니며 주변을 검색하는 시대가 왔다. 이후의 세대들은 무엇을 휴대하며 세상을 재단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선조들의 전통지식이 총망라된 생활용품 윤도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하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강석훈 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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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7.13 18:03

[문화&공감 2022 시민기자가 뛴다] 상상하는 힘, 살아가는 힘

최근에 책방에서 하는 독서모임에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었다. 우주에 대한 방대한 대서사시라 할 수 있는 ‘코스모스’는 읽는 우리들에게 ‘우주적인 시각’을 선물했다. 우주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지구는 작고 창백한 푸른 점에 불과하고 우리는 그 별에 사는 아주 작은 미물에 불과하다. 우주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우리가 겪는 매일의 사소한 일과들이 떠도는 먼지만큼이나 가볍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사소한 일과 속에서 우리는 매일 전쟁을 치른다. 어떤 이는 주식에 투자한 게 잘못되어 고통 속에 살고, 어떤 이는 아직 받지 못한 임금 때문에 투쟁을 하고 누군가는 뜨거운 태양 아래 깃발을 나부끼며 불평등을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거듭되는 실패 속에서 눈물을 흘린다. 우리는 왜 태어나서 이런 고통들과 마주하면서 살아야 하는가.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는 삶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아름다워 보이는 밤하늘의 별들에게 질문을 던져도 답은 나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가 우주를 통해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코스모스’책을 번역한 옮긴이의 말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우주인이 달나라에 발자국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현대 과학과 공학의 눈부신 발달 때문만은 아니라고 늘 생각해 왔습니다. 저는 달을 두고 노래한 시인들이 더 중요하고 큰 역할을 했다고 믿습니다. 우리네 삶에서 소망 없이 이루어진 일이 어디에 있습니까? 따지고 보면 시인이 우리 가슴에 심어 준 꿈의 위력이 과학자들로 하여금 달나라 여행을 설계하게 했을 것입니다.’ 즉, 옮긴이는 우리에게 우주를 상상하는 힘이 없었다면 굳이 로켓을 쏘아 올리지도 달에 갈 일도 없었다는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 ‘상상하는 힘’은 결국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내일을 상상해야만 내일을 살아갈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얼마 전 제주에 한 달 살기를 간다고 해놓고 결국 완도 바다에서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비극적인 가족이야기가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그 가족들이 그 동안 어떤 고통 속에 살아왔는지 우리는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삶을 내려놓기까지 그들에게 ‘내일’은 어떤 존재였을까 생각해본다. 아무리 좋은 생각을 하려해도 결코 좋은 것이 상상되지 않는 ‘내일’이라는 것은 얼마나 그들을 지치게 만들었을까. 주변에 그 어떤 도움을 청할 사람도, 그 어떤 제도도 그들의 곁에는 없었던 것일까. 내내 마음이 쓰였던 가족의 마지막이었다. 아주 작게라도 희망을 상상할 수 있는 내일이 있다는 것은 우리를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되지만, 개인만의 의지로만은 안 된다. 우리가 속해있는 사회, 국가가 있는 이유도 그런 내일을 함께 만들어가기 위해서이지 않을까.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는 지구를 이대로 두고 볼 수 없기에 어떻게든 이 위기를 극복할 상상을 하고, 다시 확산되고 있는 코로나19에 대비해 우리는 다시 접종을 하고 마스크를 여민다. 그러나 우리가 감히 상상해도 안 되는 현실이 지금 시대에도 존재한다. 예를 들면 서울의 집값을 보자, 상상할 수 있는 금액을 넘어섰다. 금수저가 아닌 이상, 2030들에게는 그저 그림의 떡에 불과한 내 집 마련의 꿈이다. 그들의 상상 속엔 ‘서울에 집’은 없다. 이상한 나라다. 평생 열심히 살아도 집을 살 수 없는 나라. 그렇다면 내가 사는 전주의 내일은 어떤가. 어떤 상상을 하게 만드는가. 전주는 상상하기 좋은 도시다. 아직은 여백이 많아 보인다. 그만큼 어떤 면에선 낙후돼있다는 이야기도 된다. 그러나 최근 수많은 도서관들이 생겼다. 도서관을 반기는 시민들이 많아졌다. 먹고 사는 문제와 직결되지는 않지만, 상상할 수 있는 힘을 키워주는 곳임에는 분명하다. 덕진공원 안에 새로이 생긴 연화정도서관과 서학동 예술마을안에 새로 자리한 서학동예술도서관만 봐도 그렇다. 그냥 누구라도 들어갈 수 있는 공공의 장소가 훌륭하다.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하게 반겨주는 곳이 돈 한 푼 없이도 갈 수 있는 도서관이며, 우리는 그 안에서 무한하게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전주는 상상이 현실로 이뤄지는 데에는 시간이 많이 필요한 도시이기도 하다. 이제는 인문도시로서 질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주어졌으니 전주시민들이 함께 더 좋은 내일을 상상하고, 그 상상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다양한 판을 짜야 한다. 많은 일자리가 창출되는 상상, 좋은 기업이 들어오는 상상, 전주만큼은 모두가 내 집에서 사는 상상, 기후 위기에서 벗어나 에너지를 자력으로 만들어내는 도시가 되는 상상, 다른 도시와는 다른 개발이 이뤄지는 상상, 전주만의 모습을 가지고 자부심을 갖게 되는 상상. 전주에 살면서 이런 내일을 상상한다면 지금 하는 일이 조금은 버겁고 힘들더라도 버티게 하는 힘이 될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나에게 세상을 구할 수 있는 단 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55분은 문제를 정의하는 것에 사용하고 나머지 5분은 그 문제를 푸는 데 쓸 것이다’고 말했다. 답보다 문제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이야기한 것이다. 전주 시민이라면 이제 전주의 문제를 파고들자. 어떤 것이 필요하고, 어떤 것이 불필요한지를 직시해야 한다. 문제가 뭔지 알면 해결도 쉽다. 그것이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 지역의 내일을 보다 더 낫게 상상하는 힘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이지선 잘 익은 언어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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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7.06 17:17

[문화&공감 2022 시민기자가 뛴다] 다시 찾은 생명, 압화를 말한다

어릴 적 할머니 댁에 가면 손주들 온다고 문살에 붙어있던 누런 종이를 떼어내고 밀가루 풀을 직접 쒀 바르던 문살 창호가 생각난다. 창호지 안쪽에는 마당에 피어있던 꽃잎 몇 장을 따서 얹고 다시 한 장을 덧바르면 우리들은 예쁘다며 좋아했던 추억이 있다. 우리 선조들이 문살 창호지에 단풍잎, 은행잎, 코스모스 등을 넣어 장식했던 것처럼 압화의 방법으로 자연에서 얻어지는 것들을 실생활에 응용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재탄생 시킨다. 어릴 적 생각하며 압화 전문가 ‘꽃그림 이야기’의 주인공인 전은숙 작가를 만나러 부안 작업실을 찾았다. 들꽃, 다시 피어나다 압화는 공예적, 실용적이며 예술이라는 또 다른 영역으로 인식된다. 조형예술의 일종으로 꽃과 잎을 눌러서 말린 그림을 말한다. 아름다운 꽃과 잎사귀 등을 이용하기에 어떤 미술소재보다도 정적이며 소박하고 자연의 사계절 색을 회화적으로 표현한다. 작업을 통해 자연을 이해하고 또 다른 자연의 모습을 알아간다. 자연과 함께하며 자연의 모습을 알아 간다는 것, 가장 큰 장점이라는 압화 작품은 보기만 해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秋’ 작품은 콩잎, 해바라기, 가시여뀌, 담뱃잎, 기린 기생초등을 이용해 작품을 완성했다. 작가는 ‘꽃그림 이야기’ 동아리를 활성화 시켰는데 활동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부안여성회관 압화교육 출강 당시 꽃으로 만나 꽃으로 이야기하다란 뜻을 함께한 수강생들을 중심으로 동아리를 만들면서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 다양한 연령대의 회원들이 3~4년 동안 활동을 함께 해 오고 있으며 오랜 기간 참선의 자세로 가족처럼 활동을 하고 있는 회원들은 전국의 압화 공모전에서 다수의 수상을 차지할 만큼 경력이 쌓였고 회원전 등을 통해 압화 작가로의 길에 한걸음씩 내딛고 있다. ‘내변산의 봄’ 작품은 노루귀, 다닥냉이, 왓소니아, 떡쑥, 가죽나무 껍질 등을 이용해 작품을 완성했다. 작가는 꽃꽂이를 통해 화훼장식 기능사 공부를 하고 있을 때 꽃이라는 소재가 마음을 행복하게 한다는 걸 알았다. 꽃에는 다양한 색과 질감 그리고 향기가 있다. 자연이 준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 ‘꽃’이라는 생각에 압화를 연구하게 되었다고 한다. 압화를 배우기 시작했을 당시 국내에 압화가 많이 알려지지 않은 때였다. 지금처럼 압화 도구나 꽃 건조용품이 발달되지 않아 모든 게 부족한 상태로 부안에서 처음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압화는 시간을 넘고 계절을 지나 많은 변화를 가져왔고, 압화가 국내에서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자리매김했다. 봄이 시작되고 햇살이 쏟아질 듯 한 어느 날 내변산의 봄을 즐기며 사색의 시간을 즐기던 내게 발길 멈추게 했던 봄의 왈츠 같았던 그 곳을 작품에 담고자 했다. 작품에 쓰인 모든 소재는 내변산에서부터 격포 해안 길을 따라 들에 핀 꽃과 풀잎을 채취 건조하여 만든 소재를 이용한 작품이다.(작가노트 중에서) 누름 꽃이 만들어지는 과정 압화는 생화 채취 후 전 처리과정과 건조과정을 잘 알아야 하고 색의 변화와 보관법 등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건조 과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작품완성은 압화 작품을 미완성으로 만들 수 있다. 이렇듯 전 처리과정, 건조과정, 보관법등을 잘 이해한다면 압화작품을 더욱 아름답고 오랫동안 볼 수 있게 해 작품의 가치를 높게 평가 받을 수 있다. 핀셋을 이용해 정교하게 말린꽃을 올리고 있다. 압화는 자연소재를 채취 건조한 소재로만 작업하기 때문에 다른 공예보다 많은 어려움을 수반한다. 섬세함과 인내를 필요로 하는 장시간의 작업과정을 통해 완성되기에 어려움이 있는 것만큼 압화의 매력은 깊고 가치가 높다. 들로 산으로 발길을 옮겨야 하는 작업 또한 시간과 열정이 허락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압화다. 자연에서 얻어지는 것들로 작업을 하는 만큼 작가가 살고 있는 천혜의 경관 ‘부안’은 압화를 하기에 최고의 환경인 것 같다. 꽃 이름은 모르지만 계절마다 봤던 꽃들이라 정겹다. 들국화와 장미가 보이고 향나무 같은 잎사귀도 보이는데 그 본질은 그대로 살려 또 다른 형태의 작품이 완성됨이 놀랍다. 자연에서 알게 된 사계절의 변화와 계절의 색에서 늘 설렘으로 만나는 기다림의 시간 앞에 들꽃과 들풀의 모습은 행복이고 즐거움의 여유로 다가온다며 작가는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 마냥 들 떠있다. 압화를 통한 향기 나는 삶 ‘풍요’ 작품은 갯모밀, 노루귀, 팬지, 비올라, 자작나무 껍질 등을 이용한 작품이다. 작가는 계절을 만지는 작업을 통해 자연을 닮아가는 본인을 발견하면서 자연이 주는 건강한 행복 앞에 또 다른 삶의 행복을 만나는 길임을 알게 됐다고 한다. 작업이 힘들고 어려우며 완성까지의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만큼 꽃그림 전시회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 동아리 회원들이 지난해 중국 청도에서 열린 압화전에 참여 했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로 나아갈 계획을 가지고 있으며, 압화는 앞으로 더 많은 발전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작가는 압화를 폭넓게 발전시켜 액세서리와 소품 등을 다양한 상품으로 만들고 작품을 통해 예술작품을 깊이 있게 발전시키며 많은 사람들과 예술로의 길을 가고 싶다고 말한다. 전은숙 작가는 2006년에 압화공예가로 활동을 시작하여 자연의 아름다움을 담아내고자 회화작품을 시작했다. 대한민국 압화대전 대상 (농림부장관상)을 수상 그 외 코리아아트페스타전, 부안미협회원전, 군산 아트페어 참여 꽃그림이야기회원3회 등 전시를 했다. 부안독립신문 압화이야기로 1년간 연재하면서 압화를 소개했다. (사)한국압화아카데미협회 이사와 대한민국 압화대전 심사위원, 사)한국미술협회 정회원 등 꽃그림이야기를 운영하며 자연의 풀꽃을 작품에 담고자 하는 압화작가들과 동행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최지영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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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6.22 16:31

[문화&공감 2022 시민기자가 뛴다] 국가무형문화재 기록화의 현장 – 남원농악을 잇는 사람들

문화재청은 1962년 문화재보호법 제정 이래, 60년 동안 수많은 무형유산을 발굴하여 국가 지정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 이를 꾸준히 육성해 오고 있다. 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은 2013년 개원 이래, 국가무형문화재를 중심으로 한 무형유산의 전승 환경 개선, 전수 교육 확대, 전시⋅공연⋅행사 등 세대 간 전승 활성화에 필요한 제반 업무 지원에 힘쓰고 있다. 이 중 국가무형문화재 기록화 사업은 무형유산 지원 사업의 가장 기초가 된다. 해당 종목의 연행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기록하기 때문이다. 즉, 해당 종목을 전승하는 보유자 또는 보유단체의 핵심 기⋅예능 실연 전 과정을 영상, 사진, 음반, 도서로 남겨 세대 간 전승과정에서 지속되는 무형유산 고유의 속성과 변화양상을 포착한다. 아울러, 기록화를 통해 종목의 소멸 위기가 닥쳤을 때 기록시점의 근거자료를 토대로 해당 종목의 소생 기반을 마련한다. 국가무형문화재를 기록으로 담는 데에는 사업 담당자와 전승자 모두에게 대단한 결심을 요구한다. 하나의 연행 속에도 수많은 기⋅예능이 있고, 각 과정에도 고도의 기량이 갖추어지지 않고서는 결코 실연할 수 없는 특수한 연행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다. 예능 종목 보유단체의 경우, 수많은 인원들이 합심하여 단일한 기⋅예능을 표출해야 하므로 평소 단체 지도자와 구성간의 각별한 노력 속에 엄청난 연습량을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남원농악 개인놀이 장면.(열두발 상모놀이) 특히 농악은 상쇠를 중심으로 긴 세월 동안 전승 체계를 잡아가는 경우가 많고, 이를 통해 독자적인 해당 지역만의 색채를 이루어가는 곳이 많다. 상쇠는 농악단의 지도자로서 한 번 직책을 부여받고 나면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같이 길게는 수 십년 간 그 역할을 꾸준히 도맡는지라, 대개 상쇠의 지휘 속에 제각각 부여받은 역할에 따라 농악의 구성과 전승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농악의 기록화는 상쇠와 구성원의 호흡이 가장 무르익어 기량이 최고조에 올랐을 때가 최적의 기록 시점이 된다. 2022년 6월 11일. 국가무형문화재 남원농악 기록화 촬영이 있었다. 이 날 모든 일정을 마치고 김정헌 상쇠 선생님 인터뷰가 있었다. 소회를 말하려던 상쇠 선생님이 바로 눈물을 터뜨렸다. 선생님 앞에서 질문하던 피디님과 촬영감독님도 그 자리에서 펑펑 울었다. 뒤에서 지켜보던 사람들도 모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원래 본 촬영은 6월이 아닌 5월이었다. 3월 말, 국립무형유산원-남원농악보존회 간 전체 미팅 때, 남원농악의 상쇠를 맡고 계셨던 류명철 회장님이 보존회를 이끌고 계셨다. 이 날은 주요 전승자들이 함께 회의석상에 배석하여 구체적인 촬영 장소와 연행 내용을 긴밀히 조율하고서 ‘다들 5월에 봅시다’하고 웃으며 돌아갔다. 그런데 바로 다음날 류 선생님이 급히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하고 모두가 패닉 상태에 빠졌다. 류 선생님의 급보도 몹시 당황스러웠지만, 선생님이 빠진 보존회는 당시로서는 누구도 생각하지 않은 시나리오였기에 기록화는 잠시 소강상태에 빠졌다. 보존회는 류 선생님이 주도하여 일구어낸 주민 노력의 결과물이었다. 한 명의 상쇠 곁에서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전승 체계를 잡아온 전승자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사업 담당자로서 걱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잘 할 수 있을까요" 노파심에 자문 교수님께 여쭈니 "남원농악은 실력이 탄탄한 집단이다. 곧 수습해서 할 수 있다"는 확신의 답이 왔다. 류 선생님의 장례가 수습되고, 차기 회장이 선출되었다. 류 선생님 곁에서 줄곧 부쇠로 활동했던 김정헌 선생님이 보존회를 이끌게 되었다. 국가무형문화재 기록화는 예정대로 진행되어야 했다. 5월 중순, 모두가 ‘비장한’ 마음으로 다시 만났다. 농악은 본디 야외촬영이기에 본격적인 여름으로 들어가면 악천후로 진행이 어려웠다. 보존회는 한 달 안에 연습을 완료하고 촬영에 임하겠다고 결심했다. 그 결과를 6월 11일에 종일 보았다. 그 사이 김정헌 선생님은 더 수척해진 모습이었다. 오전에는 마을굿, 오후에는 판굿으로 짜였다. 상쇠의 역할, 보존회의 열의는 대단했다. 마을 당산나무를 시작으로 마을 샘터를 돌아 김주열 열사 생가에서 지신밟기를 했다. 지신밟기만 해도 문굿-마당굿-고사소리-조왕굿-장독굿-샘굿-곳간굿-술굿 여덟 굿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류 선생님 생전의 고사소리를 받아 김 선생님은 실수 하나 없이 보존회원들과 주거니 받거니 호흡을 맞췄다. 열다섯 개의 굿으로 구성된 판굿에는 도둑잽이라는 연극도 포함되어 있다. 순서 하나의 혼선 없이 보존회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데도 물만 축이고 뛰었다. 판굿이 끝나고 이어지는 개인놀이에서도 전승자들은 유감없이 제 기량을 보여주었다. 엄청난 연습량의 뒷받침이었다. "나이 서른에 시작해서 25년을 뛰었는데 아직은 할만 합니다"면서 웃으며 퇴장하는 분이 있었다. 잘한다 잘한다 박수소리가 나니 "아니 그럼 내 젊은 시절 여기 다 갈아넣었는데 이 정도 못하면 안되지"라며 너스레를 떠는 분도 보였다. 이 날은 동네 온 어르신들이 다 나와 농악 시작부터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코로나 이후, 실로 반가운 마을 행사였다. 이 날의 기록화는 참여한 전승자뿐만 아니라 담당 공무원, 촬영자, 마을 주민 모두에게 기억될 것 같다. 기록화 본연의 목적인 ‘세대 간 전승’을 어김없이 보여준 날이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강석훈 국립무형유산원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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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6.15 17:15

[문화&공감 2022 시민기자가 뛴다] 전주를 움직이는 힘은 무엇인가

들썩이고 바쁘고 축제 같았던 5월이 지나갔다. 5월 초는 코로나19로 3년 만에 오프라인으로 진행된 전주국제영화제가 한창이었고, 도서관에서는 처음으로 제 1회 전주국제그림책도서전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본격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된 5월 중순부터는 도시 전체가 지방선거의 소음들로 가득했다. 우리는 매일 아침 손 흔들며 인사하는 후보들을 봐야 했고 듣기 싫어도 들리는 트로트송 메들리를 들어야했다. 한 달여 동안 도시는 시끄러웠고 오랜만에 활기를 찾은 듯 보였다. 위드 코로나는 다른 지역민들의 발걸음도 전주로 이끌었다. 조용한 주택가에서 운영하는 작은 책방에도 관광객이 찾아왔고, 영화를 좋아하고 그림책에 관심 있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한 달 내내 이어졌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거리도, 책방도 오랜만에 마주하는 모습이었다. 그 사이 지방선거가 끝났고 곧 새로운 리더들이 우리 지역을 이끌어가게 될 것이다. 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해 내건 공약들이 앞으로 잘 지켜질 것인지, 어떻게 현실로 만들어질 것인지 앞으로의 전주의 변화가 궁금하다. 전주에서 태어나 살면서 이 도시를 후손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남겨주고 싶은지 예전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요즘은 생각해보게 된다. ‘온전할 全’을 쓰는 전주는 그 동안 이름답게 큰 자연 재해 없이 온전한 모습을 잘 지켜내며 역사와 문화와 전통을 아끼는 문화도시로 성장하고 있다. 거기에 더해 김승수 시장은 ‘책의 도시 전주’를 내세우며 문화도시로서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다양한 도서관을 동네 곳곳에 만들고 독서 정책들을 만들어냈다. 최근에는 덕진공원이 새로운 모습을 맞으며 ‘연화정도서관’이라는 이름의 한옥도서관이 연못 한가운데 자리 잡았다. 연잎이 푸른 6월초에 진행된 연화정도서관 개막식에서 김승수 시장은 전주가 짓는 것은 도서관이 아니라 삶이라며 시장보다 시인이, 예술가가 더 많은 박수를 받는 곳이 전주라며 인사말을 던졌다. 문화도시로서의 큰 그림을 그리는 듯한 전주시의 다양한 면면을 기대하고 있었지만 김승수 시장이 곧 그만둠으로써 앞으로의 전주는 어떤 모습으로 변할 것인지에 대해 모두가 촉각을 곤두세운 모습이다. 문화예술이라는 것이 소위 자본력을 갖게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한 부분이며, 경제논리와는 상반되는 도서관 사업 역시도 다음 전주를 계획하는 분들께는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궁금하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독서 정책들이 이제야 정착하고 있어서 변치 않았으면 하는 바람인데 새로운 공약을 보면 기존의 전주와는 모양새가 굉장히 많이 달라질 것 같은 느낌이다. 슬로우 시티를 표방했던 전주의 모습에서 벗어나 더 빠르게 발전의 속도를 높이고 싶어하는 공약들은 지하터널, 고층빌딩, 쇼핑센터, 케이블카 등 그 동안의 전주가 추구해왔던 것들과는 이질감이 드는 단어들이 많다. 자본이 오가는 역동적인 도시가 되는 것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젊은 청년들이 좀 더 이 도시에서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주는 제안이 있었으면 한다. 그러나 어떠한 발전적인 시도가 도시의 환경과 경관을 헤치면서까지 만들어지는 것에는 반대한다. 또한 전주가 전주다움을 잃고 다른 지역과 비슷해지는 것에는 경계심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국 곳곳의 관광지마다 코스처럼 있는 케이블카를 아중호수와 한옥마을을 잇는 경로로 설치하는 것이 과연 맞을지 깊이 고민해보았으면 한다. 케이블카 말고 전주를 전주답게 하는 역사와 문화적 관광요소를 찾아서 다른 지역과 차별화했으면 좋겠다. 타지역 사람들이 전주를 찾는 이유는 전주만의 것을 보기 위해서지, 어느 지역을 가도 있을 법한 전망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서가 아닐 것이다. 전주의 소리, 전주의 맛, 전주의 공간, 전주의 역사들을 깊이 있게 탐구해야 한다. 이미 갖고 있는 자산을 탐구하고 연구해서 그것들을 세계화할 수 있는 새로운 시도를 했으면 한다. 환경을 훼손하지 않고도 무언가를 새로이 만들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콜라보들이 찾아보면 많을 거라고 분명히 생각한다. 그런 생각의 장을 젊은 세대에게 열어주는 기획도 마련해보면 어떨까. 이렇게 지역 색을 키우는 일이 비슷비슷한 관광카테고리 영역을 벗어나 새로운 여행의 자극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 가끔 도시의 오래된 골목길들이 사라지고 난개발이 된 관광지들을 보면 서글프기 짝이 없다. 말은 천년고도지만 실제로 천년고도의 길은 남아있지 않은 대한민국의 구석구석을 볼 때 더더욱 그렇다. 향후 전주에서 나고 자란 우리 아이들이 지역에서 자립하기 위해서는 관광사업에 대한 의존 보다 전망 있는 기업의 유치가 더 필요해보이며, 기술을 배워 써먹을 수 있는 제대로 된 삶의 터가 필요해 보인다. 지속적으로 문화예술의 도시로 컨셉을 잡을지 새로운 도시의 컨셉이 탄생할지는 모를 일이나 전주 시민들이 원하는 전주의 모습과 비전은 어떤지 조사도 진행했으면 좋겠다. 진짜 좋은 도시는 낯선 이방인들에게 좋은 도시가 아닌 살고 있는 지역 주민들이 행복한 도시여야 한다고 들었다. 살고 있는 우리가 원하는 도시, 살아가야 할 우리 아이들이 행복할 도시의 모습이 어떤지, 지역을 이끌 새로운 리더들이 주목해주었으면 좋겠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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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정원
  • 2022.06.08 18:02

[문화&공감 2022 시민기자가 뛴다] 순창군 섬진강미술관 개관 초대 조현동 작가를 만나다

청정지역 순창은 천혜의 경관을 자랑하는 강천산과 회문산이 있고, 섬진강 칠십리 농촌체험을 할 수 있는 고장이다. 여름이면 초록이 깊은 메타세콰이어 길이 아름답다. 이곳에 섬진강 미술관 신관 개관전이 있어 찾아가 봤다. 순창군의 섬진강 미술관 신관 개관 초대전으로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독창적인 표현방법으로 자연과 섬진강을 아름답고 더욱 세련되게 표현하는 한국화가 조현동 작가를 만났다. 섬진강 미술관 개관에 빛을 발하게 한 그의 작품을 만나보자. △순창군 섬진강 미술관 개관 언덕 위 우뚝 솟은 섬진강 미술관에서 바라본 전경은 주변마을과 더불어 순창의 아름다운 시골의 목가적 풍경이 잔잔히 펼쳐진다. 순창군은 섬진강 미술관 신관 개관기념 “조현동 작가 초대전”을 5월 3일부터 6월 30일까지 개최한다. 순창군에서는 섬진강 강변 따라 예술을 느낄 수 있도록 섬진강 미술관을 새롭게 개편하면서 신규 개관에 맞춰 그동안 순환하는 자연의 이야기를 주제로 작품 활동을 전개해 온 조현동 한국화 작가와 전시회를 준비했다. 군은 사업비 14억 원을 투자해 전시실과 문화체험실을 갖춘 미술관을 조성했으며 2020년 7월 착공해 올해 4월에 완공했다. 노홍균 문화관광과장은 "섬진강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조현동 작가 초대전을 시작으로 섬진강 미술관이 섬진강을 대표하는 미술관이 될 수 있도록 관람객의 마음을 위로하고 즐거운 감상을 할 수 있는 우수 전시회를 유치해 나가겠다 "고 밝혔다. △작가의 자연-순환이야기 조현동 작가는 한국화 분야에서 한국전통채색기법을 기반으로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며 창의적으로 표현하는 국내외적으로 저명한 한국화가다. 개관기념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독창적인 표현방법으로 자연과 섬진강을 아름답고 더욱 세련되게 표현해 섬진강 미술관 개관을 더욱 빛을 발하게 한다. 금번 초대전에서는 섬진강의 풍경과 꽃, 나비, 새, 물고기, 동물, 어패류 등을 소재로 하고 다양한 재료의 사용 및 현대적인 조형성으로 개성 있게 표현한 작품 (자연-경계),(자연-순환-이야기) 연작 25여점이 전시되고 있다. 전시장을 가득 메운 작가의 작품은 먹 맛이 깊은 섬진강 줄기 사이로 날아드는 나비를 따라 여행하고픈 섬진강 그림이다. 2014년부터 〈자연-경계〉라는 주제를 통해 자신의 작품세계를 더욱 확장시킨다. 〈자연-경계〉는 〈자연-순환-이야기〉, 〈공감-채집〉의 요소를 집대성하면서도 현대적 요소를 가미한 시리즈다. 표면적으로 가장 큰 차이점은 도형 형태를 한 기하학적 요소의 등장이다. 투명한 듯 보이는 다각형은 작가의 초현실 공간 속에 또 다른 가상공간을 설정한다. 선이 만나 면을 만들고, 면이 모여 공간을 만든다. 자연-순환이야기에서는 노란 꽃이 예쁘게 놓여있다. 발색이 좋아 손으로 만져서 그 느낌을 고스란히 느끼고 싶은 작품이다. 나비와 고둥, 동그란 자개들이 경계선에서 연속성을 잃고 끊어졌다 이어지기를 반복한다. 순환하는 자연의 이야기를 꽃과 나비, 새, 동물, 물고기, 어패류를 소재로 하여 자연의 물상들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작품에서는 전통적으로 내려온 색채를 기반으로 다양한 소재를 이용해 표현하고자 했다. (자연-경계)작품은 2014년 이후 발표한 작품으로 자연에 존재하는 영역, 영토 등 가시적인 경계와 의식, 시간, 공간 등 비가시적인 경계를 주제로 했다. 꽃, 새, 나비, 어패류, 물고기 등을 소재로 하여 자연의 경계와 공간을 비정형의 육면체와 원형으로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현대적 공간구성으로 표현한 작품이라고 한다. 작가는 작품성과 대중성이 공존하는 작품을 제작하고자 한다. 기본적으로 예술작품에서는 누구나 인정하는 작품성이 존재하여야 하고 대중에게도 사랑받는 작품을 제작해야 한다며 우리의 전통문화를 기반으로 하고자 한다. 고 말한다. 현대문화를 본인의 작품에 반영,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만들어가고 싶다고 덧붙였다. 군은 섬진강 자전거 도로와 연계한 체류형 관광지 개발을 위해 섬진강을 따라 한옥예촌, 섬진강 미술촌, 강변예술쉼터, 무인공방 등 특색 있는 체험공간 조성과 더불어 지역주민에게 다양한 문화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순창 섬진강 미술관 개관으로 주변마을 동네 어르신들과 동네 주민들도 문화생활을 향유하고 그림과 가까이 하는 삶이되기를 희망한다. 조현동 작가는 1987년 대학 졸업 후 35년동안 작가와 대학에서 강의를 겸하면서 활동해왔다. 1995년 첫개인전을 시작으로 국내외에서 59회의 개인전과 550여회의 단체전에 참여했으며 국내외 아트페어 참가를 통해서 작품들을 발표하고 있다. 현재 전북 남원에서 지역의 문화 예술 발전을 위해 후진을 양성하고 있으며 한미문화예술재단 한국미술분과 위원장을 맡고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최지영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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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5.25 17:20

[문화&공감 2022 시민기자가 뛴다] 군산이라는 ‘역사도시’를 바라보는 눈

군산 이성당 빵집의 봉투에는 ‘1945’ 숫자가 적혀있다. 이성당은 올해로 개점 77주년을 맞았다. 광복을 맞이한 해에 가게 문을 열다니 유서가 매우 깊다. 그렇다면 이번엔 조금 다른 질문을 던져보자. ‘이성당 빵집’이 아니라 이곳에 ‘빵집’이 개점한 시기는 언제인가? 1910년이다. 이성당이 문을 열기 전, 이 자리에는 일본인이 개업한 이즈모야(出雲屋)라는 제과점이 있었다. 광복 후 한국인이 일본인이 떠난 그 자리를 메워 제과점을 이어갔다. 한국인 누구나 즐겨먹는 단팥빵은 사실 일제가 전해준 간식이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이성당 단팥빵을 일제잔재라고 손가락질 하거나 불매운동을 벌이는 사람은 없다. 이미 70년이란 세월을 거치면서 한국인의 마음속에 ‘우리의 빵’으로 충분히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일제잔재라고 부르는 것들이 실은 지금을 사는 우리의 시선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군산 터미널에서 곧장 뻗은 길을 따라 구 시내로 들어가다 보면 큼지막한 근대식 건물 두 개가 보인다. 구 조선은행 군산지점과 구 일본제18은행 군산지점이다. 앞 건물은 1922년 나카무라 요시헤이(中村與資平)라는 일제 건축가가 지었다. 뒤 건물은 지은이는 알 수 없으나 1914년에 지었다. 최소 100년이 넘는 건축물들이다. 두 건물 모두 근대문화유산의 가치를 인정받아 2008년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되었다. 은행들은 군산 철도선 마지막 지점에 자리하고 있으며, 양 건물 옆으로는 항구 쪽으로 곧장 도로가 연결되어 있다. 이곳 군산 구도심 일대는 한 때 일제의 관공서, 금융기관, 민간 회사들이 밀집해 있던 군산 최고의 번화가였다. 현재 건물 내부에는 일제강점기 군산의 역사가 전시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서 짚고 갈 부분이 있다. 문화재가 될 만큼 중요한 이 건물들이 ‘보수’가 아닌 새로 지은 것과 다름없는 ‘복원’의 과정을 겪었는가 하는 점이다. 구 조선은행은 해방 후 한국은행을 거쳐 한일은행이 인수하면서 은행으로서 기능을 한동안 이어갔으나, 1981년에 민간 개인 소유로 넘어가면서 예식장이 되었다. 그리고 3년 후에는 나이트클럽이 되었다. 그렇게 10년 가까이 유흥업소로 쓰이던 것이 1990년대 초에 화재가 나면서 건물이 크게 훼손되었고 이후 이곳은 방치되었다. 은행, 예식장, 나이트클럽, 화재 사건을 거치면서 이 건물은 사실상 모든 구조와 형태가 바뀌었다. 구 일본제18은행도 마찬가지다. 1950년에 ‘한국미곡창고주식회사’가 이곳을 인수했고, 13년 후에 ‘대한통운주식회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한 때 창고로 사용했지만 군산의 경기 침체가 계속되면서 쓰임새를 잃고 방치에 가까운 상태에 놓였다. 그리고 최근 몇 년간은 중고품 판매장으로 쓰이기도 했다. ‘그 동안 이 건물을 문화재로 지정하지 않고 방치했는가?’하는 질문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제강점기가 남긴 역사의 흔적을 ‘우리 역사’로 끌어안을 수 있게 된 것은 불과 20년도 채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일제의 유산’은 항상 한국인의 따가운 시선을 받거나 방치되어 있었다. 1995년에는 정부 주도의 ‘역사바로세우기운동’이 일어나면서 조선총독부 철거를 시작으로 전국 각지에서 관공서를 중심으로 한 일제 건물이 일순간에 사라졌다. 이 때 군산에서도 구 군산시청, 구 군산경찰서, 구 군산국민학교가 철거되었다. 민간 소유로 있던 일제 건물들도 증축과 신축이 이루어졌다. 만약 그 때 두 은행이 옛 원형 그대로 있었다면 ‘철거 살생부’에 올라 사라졌을 것이다. 어느 순간에는 없애겠다고 했다가 지금에 와서는 문화재로 지정하겠다고 하고, 또 어떤 건물은 관광 상품으로 쓰겠다고 한다. 일제가 남긴 ‘군산’인지, 군산이 남기려고 하는 ‘일제’인지 제대로 구분이 되지 않는다. 남기려고 하는 ‘일제’가 정확히 무엇인지도 이해하기 어렵다. 시대마다 우리가 품은 시선에 따라 일제를 선별한 까닭이다. 군산이 만든 ‘일제’도 있다. 군산근대역사박물관 앞으로 곧장 나 있는 도로를 따라 걷다보면 ‘고우당’이라는 일본식 숙소가 나타난다. 2012년 개장한 고우당은 다다미식 숙소, 이자카야, 일본식 연못 등이 갖추어진 복합 문화시설이다. 평범한 주택가 한 자리에 일부 옛 흔적이 남은 가옥들을 매입하고, 여기에 일반 양옥까지 더해 지금의 모습으로 재탄생시켰다. 주민들의 생활공간이었던 곳이 이제는 ‘일제의 풍경’으로 한데 묶여 다른 의미를 부여 받는다. 이 모든 과정을 묶어보면 ‘군산의 일제’라는 주제에 있어 제작, 구입, 사용, 대여, 증여, 처분, 창작이 복잡하게 얽혀 있음을 알 수 있다. 역사 위에 새로운 역사가 자리하고, 그 사이에서 생활이 안착되고, 다른 한쪽에서는 관광이 끼어든다. ‘군산의 일제’는 근본적인 분열을 겪고 있다. 교과서에서 본 일제는 이미 군산의 일상에서 많이 떨어져 나갔다. 아픈 역사의 기록이라는 말만으로 이 모든 것을 묶어가기에는 ‘군산의 일제’가 너무 광범하다. 그것보다는 그 기록이 우리에게 혹은 그곳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가가 이제는 더 절실한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그들이 떠난 후, 일제 남기기에 대한 부정과 긍정이 오가며 혼선과 마찰이 빚어낸 이 당혹스러운 고민의 지층이야말로 군산에 대해 폭넓은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열쇠가 아닌지 생각해본다. 군산은 ‘교과서의 일제’ 그 이상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역사도시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강석훈 국립무형유산원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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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5.18 17:19

[문화&공감 2022 시민기자가 뛴다] 전주동네책방문학상, 두 번째 이야기

드디어 야외에서 마스크를 벗을 수 있는 날이 왔다. 그 동안 견뎌내었던 시간들이 추억이 되는 것일까, 잠시 기분 좋은 착각도 해본다. 어려운 시절에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외치며 만든 전주동네책방문학상이 2회를 맞아 두 번째 책이 출간되었다. 지난해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1회 수상 작품집을 출간하면서 받은 커다란 응원에 용기를 내어 두 번째도 준비에 임할 수 있었다. 하지만 1회와 2회의 간극은 생각보다 컸다. 처음이기 때문에 관심이 집중되었다면 두 번째는 첫 회보다 더 홍보와 결과에 신경을 써야했다. 어떤 일을 지속하는 것이 이렇게 힘든 것인가라는 생각을 두 번째를 준비하면서 해야 했다. 독립책방들이 독립적으로 출판하기 위해 자원 없이 하는 일인지라 홍보하는 것도 각 책방의 SNS 계정에 기대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어서 이런저런 한계가 있었지만, 그 한계점을 무사히 통과하는 것이 준비하는 책방들에게는 또한 경험이자 도전이었다. 좀 더 쉬운 길을 가고자 했다면 후원처도 알아보고 영업도 했을 텐데, 일단은 책방들의 힘으로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런 열악한 상황에서도 처음과 다른 점이 있다면 대상 상금을 두 배로 올리고 동화와 희곡 부문을 신설하는 등 작은 변화를 꾀했다. 단편소설, 에세이(수필), 시, 희곡, 동화 부문에 걸쳐 응모자는 224명, 응모작은 총 328편이었다. 첫 회보다는 줄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만족할만한 수치였다. 세부적으로는 시 159편, 수필 117편, 소설 34편, 동화 11편, 희곡 7편이 들어왔다. 심사는 문학상을 주최한 전주책방 7곳 운영자들이 세 번의 예선과 두 번의 본선을 거쳐 진행됐다. 각 책방상은 각 책방 운영자들이 1편씩 뽑아 총 7편의 작품이 다양하게 모였다. 서로 다른 취향과 의지가 고스란히 반영되는 까닭에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고른 작품이 겹치는 일은 없었다. 2회 문학상의 주제는 ‘맛있는 밥을 먹었습니다’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작년 주제를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정해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자 하는 마음이 컸는데, 그래서인지 굉장히 쓸쓸하고 힘든 글이 많았다. 올해는 조금 씩씩한 글을 만나고 싶었기에 밥이라는 소재를 넣었다. 그러나 작가들의 밥은 다채로웠다. 우리가 매일 먹는 밥이, 매일 만나는 밥상이 글에서는 눈물이 되고, 추억이 되고, 사랑이 되고, 때로는 엄마였다가 친구였다가 잔소리였다가 전부가 되기도 한다. 그것이 어쩌면 우리가 문학에게 바라는 바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밥상 한 묶음이 전주동네책방문학상이라는 이름으로 엮어졌다. 응모작에서 가장 많이 나온 음식은 국밥이었고, 자주 마주 앉은 인물은 부모였다. 지난해에 비해 응모작은 줄었으나 외계인, 비건, 환경문제 등 소재는 다양해져 눈길을 끌었다. 다만 이번에 신설한 희곡부문에선 선정작이 없어 아쉬웠다. 그럼에도 지역의 동네책방들이 모여 만든 문학상에 도전장을 건넨 많은 예비 작가들의 패기를 만나볼 수 있어서 심사하면서는 뿌듯함을 느꼈다. 각 책방상을 수상한 예비 작가들 중에는 현재 여고를 다니는 평범한 고등학생도 있었다. 작년에는 코로나 상황에 시상식도 못했지만 이번에는 온라인을 활용해 시상식을 진행했다. 화면으로 수줍게 만나는 수상자들과 책방지기들이 모여 인사를 나누고, 수상 소감을 나누고 소회를 나누었다. 한 명 한 명에게 전주동네책방지기들이 주는 상품을 보여주고 그 자리에서 바로 상금을 송금하는 이벤트도 진행했다. 코로나시대에서만 만날 수 있는 더 특별했던 시상식 풍경이 아니었을까. 문학상을 수상한 예비 작가들은 모두가 공통적으로 ‘기회’를 이야기했다. 글을 쓸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어서 고맙다고, 다시 무언가를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열어줘서 고맙다고 말이다. 그들이 말하는 기회라는 단어는, 비단 그들의 것만이 아니었다. 우리 역시도 이 문학상을 통해 책이라는 것을 만들어볼 수 있는 기회를 만났고 서로가 영역을 나누어 새로운 일을 해볼 수 있는 기회를 만났다. 시도하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일들을, 작은 물꼬가 터지면서 여러 사람들에게 ‘기회’를 선물하고, 선물 받았던 것이다. 대상으로 고른 ‘모르는 삶’이라는 단편소설은 외로운 두 주인공이 만나 서로의 취향을 알아가듯 맛을 알아가고 맞춰가는 과정을 그린다. 비록 어긋나는 순간이 있고, 끝내 서로의 취향을 맞추지 못해 더 깊은 관계로 발전하지는 못해도 그 자체로 순수하게 인정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는 그 누구도 제대로 안다고 말할 수 없다. 그것이 피를 나눈 가족일지라도. 그래서 그 누구의 삶도 깊이 따져보면 ‘잘 모르는 삶’이라고 말할 수 있다. ‘모르는 삶’을 대상으로 고르기까지는 얼마간 논의가 필요했지만, 우리는 기준을 ‘가능성’에 두었다. 기성 문인들이 심사하는 명망 있는 문학상이 아님을 알기에 기준이 같으면 안 되었다. 우리는 어쩌면 가능성이 있는 신인들에게 ‘기회를 주는 상’이 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전주동네책방문학상을 통해 앞으로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작가로 성장하는 계기, 발판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그래서 수상이 누군가에게 계속 글을 써내려가는 힘이 되어주기를 바랄 뿐이다. 전체적으로 ‘맛있는 밥을 먹었습니다’ 책에서는 글쓰기를 향한 열정이 돋보이는 글들과 진솔하고 따스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세상은, 아니 어쩌면 문단이라는 곳도 주류, 비주류로 나뉘어 비주류로 칭하는 사람들에게는 기회조차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독립출판물 자체를 비하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 그러나 때로 백석시인처럼 변방에서 철저히 혼자 시로서 변화의 꿈을 꾸는 사람도 있다. 인맥이 판을 치고, 유명인들이 써낸 책들이 베스트셀러 권에 진입하는 것이 현실이겠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 작은 기회들은 만들고 써내려갈 것이다. 이게 우리의 매력이니까.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이지선 잘 익은 언어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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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5.11 17:44

[문화&공감 2022 시민기자가 뛴다] 구도심 기린미술관 개관 5주년 기념 전시를 보다

기존에 버려지는 제품을 단순히 재활용하는 차원을 넘어 새로운 디자인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여 제품을 재탄생시키는 것을 업사이클링이라고 한다. 업사이클링의 우리말 표현은 ‘새활용’이다. 기존에 버려지던 제품을 단순히 재활용하는 차원에서 더 나아가 새로운 가치를 더해 전혀 다른 제품으로 다시 생산하는 것인 업사이클링으로 자개문형글자를 하는 작가가 있다. 구도심에 위치한 기린미술관 개관 5주년 기념 초대전으로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폐가구 문자를 입다 전주 기린미술관(관장 이현옥)에서는 4월 1일부터 5월 29일까지 자개 문형글자 심홍재 작가를 초대하여 개관 5주년 기념 초대전을 갖는다. 심 작가는 자개로 글자를 문형화하여 캔버스위에서 행위예술을 펼치는데 작가의 획과 자개가 만나 그 기원의 상이 구성된다고 한다. 기린미술관 3층 전시장을 가득 메운 심 작가의 글씨들이 영험하게 꿈틀거리고 있다. “작업은 기도로 시작되는데 보는 이로 하여금 따뜻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작품이 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길 빌고 마음을 다잡아 한지에 획 작업을 통하여 본 작업이 진행된다. 예전 한자 추상의 획 작업에서 요즘은 한글 추상과 인체 추상의 획 작업으로 바뀌었는데 이번 전시의 메시지는 평화와 안민이다. 평화는 세이브 미얀마와 우크라이나 평화를 위한 퍼포먼스를 통해 끊임없이 외쳐왔던 메시지며 안민은 그러한 평화를 통해 사람들의 안녕함을 기원하는 메시지다.” (심홍재 작가 작업노트 중에서) 작가가 글자를 작업한 원 재료는 바다의 조개 속껍질을 여러 차례 얇게 벗겨 자개를 만드는 장인의 손으로부터 새겨지는 과정 그리고 누군가의 쓰임이 다할 때까지 주름질, 모조법, 끊음질, 타발법 등을 통해 나전칠기로 만든 장롱과 화장대 등이었다. 자개는 장식을 위한 무늬를 새겨 넣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만드는 이가 이를 쓸 대상의 행복과 번영, 평화와 안민을 기원하는 마음을 새겨 넣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근대란 결국 옛것을 밀어내고 새것이 주류로 부상하는 현상을 이른다. 심홍재 작가는 이 현상을 주목한다. 버려진 자개장롱에서 자개 부분을 도려내 글자를 바탕으로 독자적인 조형 언어를 펼쳐나간다. 심 작가는 강렬한 빨강색 바탕위에 낡아서 버린 자개장롱의 무늬부분을 오려낸 후 이를 자신의 고유한 조형언어로 바꾸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추구하고 있다. 작가의 특유의 야생성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매우 까다로운 작업인데 바탕색과 자개가 영롱하게 빛을 발하는 글자 부분의 색조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자개를 사용한 작가들의 작업은 더러 눈에 띄지만 기성 오브제를 사용한 심홍재의 작업은 선례가 없다는 점에서 매우 독창적이라고 할 수 있다. 친숙함으로 다가오다 심 작가는 ‘예전 한자 추상의 획 작업에서 요즘은 한글 추상과 인체 추상의 획 작업으로 바뀌었는데 이번 전시의 메시지는 평화와 안민에 있다’고 이번 전시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이러한 획작업은 폐 자개농이라는 물성의 직접적인 재해석을 하여 오려 따내는 작업을 통하여 고정 관념적 틀을 뛰어넘는 온고이지신적 작품으로 탄생시킨다. 지금도 친정에 가면 안방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엄마의 까만 자개농이 보인다. 어릴 때는 안방을 어둡게 차지하고 있는 자개농이 좋아 보이지 않았고, 안방 문 열 때 마다 나는 특유의 냄새도 익숙지 않았다. 이제 어른이 되어 옛것의 소중함을 알고 겉만 화려하고 깔끔한 것 보다 손으로 진중하게 작업한 우리의 자개농이야말로 예술 그 자체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특유의 옻 냄새와 어두컴컴한 자개농은 현대인들의 취향에 부합하지 못하고 폐기처분되기 일쑤인데 이런 자개농이 심 작가를 통해 기도문으로 형성되고, 나들이 나온 아이들처럼 발랄하게 다시 구성된다. 낡아빠지고 허름한 도마 위에 작가는 글을 올려놓았다. 누군가가 사용했을 도마엔 칼자국이 고스란히 남아있고 한동안 방치되어 있었는지 곰팡이도 보인다. 작가는 그 곰팡이까지도 예술로 간주했는지 곰팡이 핀 도마와 본인의 작업을 배치함으로써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든다. 작가는 화선지 위에 획을 긋고 길상적 문양이 가득한 자개농 위에 붙인 후 전동 톱으로 도려내고 수작업으로 필 맛이 손실되지 않게 마무리해 글자를 떼어낸다. 떼어낸 글자는 캔버스에 놓고 레진을 여러 번 붓고 말리며 굳히는 작업을 한다. 많은 사람들이 불필요하다고 느껴 버린 자개농에서 작가는 예술적 신앙고백을 하며 글자를 만들어 그 글자와 춤을 추며 새로운 작업에 몰두한다. 심홍재 작가는 심 작가는 1987년 작가의 길에 들어서서 36년여를 작품을 통한 수행을 하고 있다. 이번이 22회 개인전이고 그동안 여러 번 아트페어와 행위예술제에도 참가하였다. 심 작가는 한국행위미술협회 회장과 전주 국제행위예술제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최지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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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4.20 16:13

[문화&공감 2022 시민기자가 뛴다] 전주, 호국(護國)의 고장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전주시는 순국선열과 국가유공자의 숭고한 넋을 기리기 위해 올 하반기 송천동 일대에 ‘보훈누리공원’을 조성하기로 하였다. 시는 이 공원을 ‘호국’과 ‘보훈’을 주제로 국가수호와 독립운동에 관한 스토리텔링이 담긴 공간을 구성하여, 시민들이 이를 추모하고 나아가 미래세대의 교육의 장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독립운동 공간에는 기존시설인 전북독립운동추념탑과 충혼각을 두고, 국가수호 공간에는 추모의 벽과 인공연못이 들어설 예정이다. 또한, 선조들의 뜻을 기억하고 승화하는 공간에는 호국영령탑과 함께 광장이 마련되고, 교육체험 공간에는 보훈전시관을 지어 국가수호와 관련한 다양한 콘텐츠를 만나볼 수 있는 자리를 선보인다. 이번 보훈공원 만들기는 기존의 조성 공간을 훼손하지 않고 오히려 그 장소성을 확장하여 나라사랑의 정신을 더욱 고양시킨다는 점에서 지역사회의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을 수 있는 매우 유의미한 국책사업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되는 아쉬운 지점이 있는데, 그것은 전주가 호국의 고장으로서 이미 지니고 있는 두 가지 문화콘텐츠를 미처 연계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문화재지킴이와 전주 신흥학교다. 2018년 6월 22일, 문화재청은 이 날을 ‘문화재지킴이의 날’로 선포하면서 목숨을 걸고 조선왕조실록을 지킨 전북의 선조들과 충혼을 기념하였다. 1594년 6월 22일, 임진왜란으로 조선왕조실록이 보관되어 있던 사고(史庫) 네 곳 중 세 곳이 모두 소실되고 오직 전주사고만이 남은 상황에서, 선비 안의와 손홍록 등이 나서 전주에서 정읍 내장산까지 실록을 이안(移安)하여 밤낮으로 국가의 역사를 보호한 날을 문화재지킴이의 효시로 정한 것이다. 전주사고는 경기전의 단순한 부속시설이 아닌, 대한민국 호국정신의 시작을 알리는 문화재지킴이의 성지가 되었다. 문화재지킴이 운동은 국민의 자발적인 참여로 문화재를 가꾸고 지키기 위해 지난 2005년 4월부터 시작되었다. 17년이 지난 현재에는 전국 8만 4000여명의 자원활동가(개인·가족·학교·NGO 등)와 기업 및 공공기관 등 61개 협약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이 운동은 문화재 정화활동, 상시점검과 순찰, 홍보·활용 프로그램 운영 등 각종 지원과 기부 활동을 기초에 두고 있다. 2021년 6월 22일에는 문화재청이 주최하고 전주시가 후원하는 행사로서 전라감영에서 ‘제3회 문화재지킴이 날’ 기념식을 개최하였다. 이로써 전주시는 문화재사랑을 통한 호국정신으로 시민모임의 장을 형성할 수 있는 밑바탕을 얻게 되었다. 전주가 호국의 고장으로서 위상을 세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미래세대의 적극적인 참여와 세대 간 교육·소통 체계가 자리 잡아야 한다. 이를 위해 독립운동의 발원지에서 선배들의 애국활동을 접하고 공부한 주체들을 동참시킨다면 이보다 값진 역사적 계승은 없을 것이다. 그 대표적인 독립운동의 교육 산실 중 하나가 전주 신흥학교다. 신흥학교는 1900년에 미국 선교사 레이놀즈(Reynolds, 1867-1951)가 전주로 와 자신의 주택에서 학생 1명을 데리고 교육을 시작한데서 비롯되었다. 1906년, 학교 측은 조선시대 학당인 희현당(希顯堂) 옛 터에 집 한 채를 지어 학생 55명을 가르치기에 이르렀고, 1909년에는 대한제국으로부터 사립 신흥학교로 인가를 받아 중등교육시설로 거듭났다. 당시 신흥학교의 한국인 교사들은 강한 구국 민족의식을 갖고 있었고 학생들에게 자주독립에 대한 신념을 가르쳤다. 학교 교사와 학생들은 전주의 3·1만세운동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며 시민들을 이끌었고, 이들 중 일부는 일제 고문에 의해 옥고를 치루고 숨졌다. 그로부터 10년 뒤인 1929년,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자 신흥학교 80여명의 학생들은 또다시 비밀리에 거사를 계획하였다. 1930년 1월 25일 학생들은 미리 준비한 결의문을 읽고 자주독립만세를 외친 후, 일제의 총칼에 의해 연행되어 옥고를 겪었다. 1937년, 일제가 신사참배를 강요하자 학교 측은 ‘학생들을 신사에 참배하게 하기 보다는 학교를 폐교하자’고 의결하여 강력한 반일운동의 의지를 드러냈다. 해방 후 신흥학교는 다시 문을 열고 꾸준히 인재 양성에 힘써, 2022년 현재까지 졸업생 5만여 명을 배출하기에 이르렀다. 신흥학교 총동문회는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일의 역사적 의미를 기리고자 학생들을 선발하여 중국에 소재한 독립운동 유적지 탐방을 지원하고 있다. 2005년, 학교 강당 및 본관 포치는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되었다. 현재 학교 입구와 정류장에는 각각 전주 3·1운동 기념비와 3·1운동 기념 승강장이 꾸며져 있다. 학교, 교사, 학생 모두가 대한독립의 상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주시가 진정한 보훈을 누리고자 꾸린 공원이라면 단순히 시설과 전시물만을 만드는데 그칠 것이 아니다. 그 참뜻을 이해하고 널리 알릴 수 있는 전국의 문화재지킴이들, 그리고 독립운동의 역사와 정신을 이끌어 온 전주 학교 학생들과 합심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민관의 긴밀한 협력 하에 지역사회의 ‘호국유산’, ‘보훈유산’을 발굴하고 세대 간의 올바른 계승으로 연결하여 전주가 ‘제일호남문’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도록 길을 터 주어야 한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강석훈 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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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4.13 15:47

[문화&공감 2022 시민기자가 뛴다] 전주, 책의 도시로 제대로 브랜딩

‘문화&공감 2022 시민기자가 뛴다’는 전북지역 문화·예술계 전문가들이 문화 담론을 이끌어 나가는 공간입니다. 올해는 이지선 잘 익은 언어들 대표, 강석훈 국립무형유산원 학예사, 최지영 작가가 참여해 동네 책방 이야기, 무형문화유산 및 무형유산 전승자들의 살아온 삶,지역 작가 및 미술 전시 등의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곳은 아늑한 스탠드 조명과 편안한 원목의자, 얼마든지 쓸 수 있는 콘센트가 있는 금암도서관이다. 전망 좋은 카페 부럽지 않게 계단만 올라가면 전주시가 한눈에 보이는 옥상 뷰도 끝내준다. 책을 보다가, 공부를 하다가 잠시 허리를 펴기 위해 올라가서 탁 트인 하늘을 보면 울적한 기분도 사라질 듯하다. 어릴 적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 올라와 자리싸움이 치열했던 답답한 도서관에서 공부했던 시절이 이제는 아득한 추억이 됐다. 이렇듯 전주 도서관들의 변화가 심상치 않다. 새롭게 리모델링을 통해 재탄생 된 도서관들은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감탄사가 나온다. 전주 중심의 꽃심도서관부터 시청 로비를 도서관으로 바꾼 책기둥도서관, 그리고 삼천도서관, 완산도서관, 송천도서관, 금암도서관의 변신을 시작으로 학산시집도서관, 첫마중길여행자도서관, 다가여행자도서관까지 각기 다른 색을 가진 도서관들이 전주시 곳곳에 다채롭게 펼쳐진다. 곧 덕진공원 한가운데에는 한옥기둥이 멋스러운 검이불루도서관이 개관을 기다리고 있으며, 한옥도서관, 혁명도서관, 예술도서관들도 한옥마을 일대에 문을 열기 위해 준비 중이다. 전주시는 책이 삶이 되는 ‘책의 도시, 전주’를 슬로건으로 도서관 정비사업 외에 해마다 지역단독으로 ‘전주독서대전’을 진행하며 책의 도시로 가는 기틀을 마련하고 있다. 지역서점들과의 상생을 위해 지난해 8월 17일부터는 도서관 회원인 전주시민들에게 책값의 20%를 할인해주는 ‘전주책사랑포인트 책쿵20’ 사업을 시행해 코로나 한파에도 지역의 동네서점을 찾는 발길을 이어지게 만들었다. 이는 지역의 책 생태계를 살리고 시민들의 만족도도 높은 정책이어서 지역서점들이 반색을 표하는 중이다. 알고 보면 전주는 오래 전부터 이미 책의 도시였다. 책의 원재료인 한지를 만들고, 출판의 기틀을 마련한 완판본 서적들을 찍어낸 곳이 전주다. 또한 임진왜란 당시에도 조선왕조실록을 끝까지 지켜냈다. 전주혁신도시로 이전한 한국출판문화진흥원과 함께 더 나은 출판의 미래도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김승수 전주시장은 책의 도시로 가는 길을 좀 더 구체화하기 위해 ‘책의 도시 인문교육본부’를 만들고 ‘책의 도시 여행과’도 신설했다. 올해부터는 아마 전국 최초로 ‘도서관투어’를 기획하여 올 연말까지 매주 토요일 도서관해설사와 함께 △전주시청 책기둥도서관(전주시 책 생태계를 상징하는 큐레이션 도서관) △팔복예술공장 이팝나무그림책도서관(그림책 전문도서관) △학산숲속시집도서관(다양한 시를 접할 수 있는 시전문 도서관) △전주시립도서관‘꽃심’(책의도시 전주를 상징하는 전주시 대표도서관) △첫마중길여행자도서관(첫마중길을 지나는 여행자들의 쉼터가 되는 도서관)을 순회하고 있다. 책 공간이 살아있는 여행지로 바뀌는 순간이다. 또한, 오는 5월에는 한 달간 제 1회 전주국제그림책도서전이 금암도서관을 기점으로 전주시립 도서관 곳곳에서 진행된다. 세계적인 그림책 작가를 초청하고 원화를 전시하며, 동네책방들과도 협업을 통해 그림책 관련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책의 도시에서 펼쳐지는 도서전이 반갑고도 설렌다. 전주국제영화제팀과도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행사가 있을지 고민해볼 일이다. 앞으로 더 많은 출판인과 작가, 다양한 문화인들이 전주를 방문할 일이 잦아질 것이다. 한옥마을 관광과 맛의 고장으로만 전주를 인식한 많은 이들에게 전주의 문화적인 면을 강조하고 책의 도시로써 갖는 위상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그러기 위해선 전주를 ‘책의 도시’로 제대로 브랜딩하는 일이 중요하다. 도서관과 책방을 관광여행 상품으로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책의 거리를 조성한다든지, 책 축제를 좀 더 다채롭게 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모색한다든지 해서 다른 도시와는 질적으로 다른 차별화된 정책이 필요하다. 좀 더 확장된 문화인문도시의 개념으로 본다면 라이프스타일과 접목한 전주의 문화컨텐츠를 발굴하여 숙박부터 컨퍼런스시설 작게는 음식까지 책의 도시다운 재미난 조합을 생각해볼 수 있겠다. 전주는 타지역에 비해 개성 있는 동네책방들이 꾸준히 버티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동네책방들이 개성을 잃지 않고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상생정책도 꾸준히 이어가야 할 것이다. 혹자는 자본이 생성되는 산업이 아닌 도서관에 돈을 쓴다고 비판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책 읽는 성숙한 문화가 자리 잡은 도시들에는 외국관광객도 많다. 한옥마을만 보고 가는 관광객이 아니라 책방과 도서관을 둘러보기 위해 전주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코로나 팬데믹이 엔데믹이 되면서 곧 종식을 선언할 날도 기다려보며, 다시 여행을 맘껏 다닐 날을 손꼽아본다. 전주라는 작은 도시로 책 여행을 오고, 어딜 가든 책 관련 행사를 만날 수 있는 도시. 영국서점투어나 일본서점투어가 아닌 전주서점투어가 일상이 되는 그 시절을 상상해본다. 백범 김구선생은 ‘나는 우리나라가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지 않으며,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라고 말했다. 전주시가 책을 통해 ‘높은 문화의 힘’을 지닌 도시로 발전하기 위해 한 걸음을 뗐다면, 이를 지속하고 더욱 성장시키기 위한 뾰족한 정책과 브랜딩이 필요할 시점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이지선 잘 익은 언어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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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4.06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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