붙인다고 다 이름인가
내 일터가 있는 삼례에서 우리는 가까운 봉동으로 국수를 먹으러 가곤 합니다. 삼례와 봉동을 잇는 길은 몇 년 전에 4차선으로 시원하게 뚫렸는데, 그 덕택에 짧은 점심시간에도 맛있는 국수를 먹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이지요. 근데, 봉동 가는 이 길 이름이 뭔지 알아요, 형님들? 지난주에도 동료교수 넷이 모여 국수를 먹으러 가고 있었는데, 핸들을 잡고 있던 후배교수가 뜬금없이 그렇게 묻는 것이었습니다. 아, 이 사람아 안 봐도 비디오지, 그것도 몰라? 평소 우스갯소리를 잘하는 다른 교수가 대뜸 말을 받았습니다. 역사적으루다 보더라도 서울하고 부산을 연결하는 고속도로 이름은 경부선, 서울 춘천은 경춘선, 서울 인천은 경인선, 부산 마산은 부마고속도로, 전주 군산은 전군도로, 아, 요새는 천안논산고속도로라고도 안 허든개비, 그럼 뭐겄어? 이건, 틀림없이 삼봉로 아니면 봉삼로다. 아니면 내가 오늘 국수값 쏜다. 어, 맞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후배교수가 핸들을 쥔 채 콜럼버스처럼 탄성을 질렀습니다. 저 표지판에 정말로 삼봉로라고 적혀 있잖아! 아닌 게 아니라 창밖으로 보니 거기에는 녹색 바탕에 흰 글씨로 '삼봉로'가 선명하게 찍혀 있었습니다. 어디 길 이름뿐인가요? 다른 교수 한 사람이 거들고 나섰습니다. 상암월드컵경기장, 대전월드컵경기장, 광주월드컵경기장, 전주월드컵경기장. 야구장도 잠실구장, 광구구장, 대전구장, 그러니까 담당 공무원들 입장에서는 축구장이든 야구장이든 그냥 아무 생각없이 그 동네 이름만 갖다 붙이면 골치 아프고 자시고 할 것 없이 만사형통이다 그거지요. 영 맛대가리가 없긴 하지만 말이지요.정말 그러네? 진북터널, 어은터널도 마찬가지잖아? 전북도청 신청사를 연결하는 다리도, 거 규모만 보면 제법 근사하게 지었던데 이름은 떡하니 효자다리라고 썼데? 그게 효자동에 있으니까 그랬겠지만, 하다못해 도청다리라고만 했어도 좋았잖아. 하긴, 효자대교라고 안 붙인 것만 해도 감지덕지다. 명색이 맛과 멋의 고장이니까, 안 그래? 아, 삼례가 어디여? 동학농민혁명 때 2차 봉기가 일어난 유서 깊은 동네잖어? 항일 농민운동의 발상지라고도 헐 수 있는디, 그럼 이 길을 갖다가 동학농민혁명길이라고 쓰면 누가 잡어가나? 그게 암만해도 길다 싶으면 그냥 동학로나 동학길이라고 써도 무방하고, 그러면 애들한테 교육효과도 있을 거란 말이지, 안 그래?소박하게 봉동을 중심으로 해서 생강길이라고 하는 건 어떨랑가요, 성님들? 후배교수가 짐짓 사투리까지 섞어가며 다시 나섰습니다. 아, 봉동 하면 전국적으로 알아주는 생강 생산지라고 하잖아요. 거 좋네. 그 말을 듣고 봉게 이 봉삼로에서 생강 냄새가 코를 찌르는디? 우리는 그렇게 낄낄거리면서 국수집으로 향했습니다. 국수를 맛나게 먹고 후배교수가 주차장에서 차를 가져오는 동안 나잇값들 하느라고 우리는 거리에서 이쑤시개질을 열심히 해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그만 눈앞에 서 있는 도로 안내표지판을 보고 또 실소를 금할 수 없었습니다. 거기에는 화살표와 함께 공영주차장의 위치를 알리는 문구가 한글로 적혀 있었는데 문제는 그 아래 병기한 영문표기였습니다. '공영주차장' 아래 GONGYOUNGJUCHAJANG이라고 적혀 있었던 것이지요. 도대체 이걸 누구더러 읽으라는 것인지,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