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주보기] 도시의 미래 - 김성환
지금부터 한 달여 전, 2009년 4월 3일에서 5일까지 미국 하버드대학의 디자인대학원에서 미래의 도시로 여행하는 국제컨퍼런스와 전시회가 열렸다. 조경, 도시계획 및 설계, 공공 위생, 건축, 공공정책, 예술과 인문 분야 등에서 50여 명의 석학이 발표를 하고 5백 명에 가까운 전문가들이 참석했다. 첨단 과학과 공학의 중심인 미국, 그 지성의 심장부인 하버드대학에서 그린 미래도시의 풍경은 어떤 것일까. 영화 〈터미네이터〉와 〈메트릭스〉에서 상상하듯 기계와 인간의 역할이 뒤바뀌는 암울한 디스토피아? 아니면 첨단기술이 인류의 미래를 구원하는 유토피아?하지만 지금 세계적인 도시전문가들이 그리는 미래도시는 허리우드 SF영화의 상상력을 비켜간다. 하버드대학의 교수들과 연구팀은 '생태적 도시주의(Ecological Urbanism)'라는 신조어로 도시의 미래를 제안했다. '생태적 도시주의'는 심포지엄의 주제를 넘어, 모센 모스타파비(Mohsen Mostafavi) 학장이 이끄는 하버드디자인스쿨의 미래지향적 연구와 교육의 비전과 실천방향으로 선포되었다.그리고 지난주 5월 6일, 고려대학교에서 다시 생태적 도시주의를 논의하는 심포지엄이 열렸다. '대체가능하고 지속가능한 미래의 도시들'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하버드대학 디자인대학원 조경학과장 겸 환경기술연구소장인 니얼 커르크우드(Niall G. Kirkwood) 교수가 주제발표를 하고 대여섯 명의 도시전문가가 토론을 했는데, 나도 논평자로 초대되었다. 사실 나 같은 인문학자가 도시설계와 개발에 대해 발언하는 것은, 직업적인 도시기술 전문가와 인문학자 모두에게 주제넘은 간섭으로 비춰질 수 있다. 그런데도 주최 측에서 인문학자의 참여를 요청했고 나 역시 흔쾌하게 심포지엄에 참석했다. 어쩌면 이런 시도야말로 '생태적 도시주의'가 추구하는 목표와 접근방식을 잘 보여준다.오늘날 도시의 설계와 개발은 건축, 토목, 조경, 디자인 등 도시공학 분야의 전문기술로 취급된다. 그런데 '생태적 도시주의'는 이런 도시공학기술이 주도하는 현대의 도시환경이 "인간의 삶, 전통적 관습, 자연환경, 그리고 도시의 지속가능한 다양성과 복합성에 주의를 기울이는데 실패했다"고 최종적으로 평가한다. 이런 혹독한 평가는, 과학(공학)기술이 인간의 거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맹신한 20세기의 '과학기술결정론'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다. 전통적인 도시 공학자들은 도시를 자연에서 분리된 공간으로 보고, 인공적인 기술로 얼마든지 도시를 조작할 수 있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생태적 도시주의'는 이런 믿음이 결정적으로 잘못되었다고 선언한다.도시는 단지 인공적 구조물들로 이뤄지는 '건물덩어리' 그 이상이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삶, 지역적 특성, 자연환경, 지질, 경제, 역사, 예술, 정치, 문학, 철학, 교육, 의료, 종교, 그리고 다양하고도 복합적인 문화가 뒤엉켜 도시의 생태계를 구성한다. 그런데 도시공학의 전통적인 접근방식은 도시의 이런 자연생태와 사회생태, 그리고 문화생태의 다양성과 복합성을 고려하는데 실패해왔다. 이에 하버드대학에서 제안하는 '생태적 도시주의'는 도시 계획 및 관리의 관행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할 것을 요청하며, "타 분야에 대한 배타성을 버릴 때 도시디자인의 도전적 기회가 더 커진다"고 강조한다. 더 나아가 생태적인 도시설계에서 "인문학적인 주요 이슈가 무엇인가?"하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심포지엄이 끝난 뒤, 나는 사석에서 커르크우드 교수에게 새만금이 '생태적 도시주의'를 구현할 최적의 미래도시 공간이 될 수 있다고 제언했다. 그 역시 깊은 관심을 보이며, 내년 1년 동안 한국에서 안식년을 보내면서 새만금을 눈여겨 살펴보자고 기약했다. 뜻 깊은 만남이었다. 그는 이렇게 강조했다. "도시의 미래를 위해, 그리고 더 아름답고 인본주의적이며 생태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사회적으로 고양된 환경의 창조를 위해, 조경건축가와 여타의 디자인 분야에서 아주 높은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미래도시는 단지 도시의 미래가 아니라, '인간의 미래'이자 '자연의 미래'이기 때문이다./김성환(군산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