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4-12-11 17:51 (수)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chevron_right 타향에서

신과의 약속

이강만 한화그룹 부사장 신과의 약속이라는 주말드라마가 있다. 막장의 요소가 전혀 없지는 않지만 억지스럽지 않게 잡아주는 조연들의 절제된 연기와, 종종 앵글에 수채화처럼 담아낸 서정적인 자연풍경이 양념처럼 맛깔스러워 은근 토요일이 기다려지기도 한다. 뜬금없이 신과의 약속이라는 거창한 문구를 들먹이는 이유는 새해 첫 달인지라 신이라는 경건함과 약속이라는 무게감을 느껴보고 싶어서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약속을 한다. 특히 신년초가 되면 한 해를 잘 살아내야겠다는 생각으로 조금은 무모해 보이는 다짐을 하고 심지어는 공표하기까지 한다. 작심삼일은 아닐지라도 작심 한두 달인 경우가 대부분이면서도. 필자에게도 아주 오래된 특별한 약속의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 어느 여름이었을 게다. 풀을 뜯기러 삐쩍 마른 소를 끌고 들에 나갔는데 이 어린 소가 냅다 뛰어서 연한 풀이 있는 논으로 내달리는 게 아닌가? 논두렁에 심겨진 콩잎이라도 먹어 치울라치면 논 임자의 뿔난 얼굴에다가 아버지의 엄한 꾸중까지 더해질 게 뻔했지만, 고삐를 내던지고 그냥 논두렁 주위에 털퍼덕 주저앉아버렸다. 소가 문제가 아니었다. 그 당시 마음에 돌덩어리처럼 안고 있는 걱정에 비하면 그것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으니까. 병원에 있는 어린 동생은 지금쯤 어찌 되었을까? 막연한 불안감에 떨며 무심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다 갑자기 두 손을 모으며 혼자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하나님, 제 동생을 살려주세요. 살려주시면 하나님도 믿고, 어려운 사람도 돕고, 또 착하게 살고 신은 바로 응답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아이들이 연일 죽어나간다는, 살아봤자 불구가 될 거라는 소문만 요란했다. 소년은 절망했다. 신과의 약속을 필자는 오랜 기간 지키지 못했다. 까맣게 잊고 있었다. 하지만 신이라는 단어만 나오면 돌연 논두렁이 생각났던 것을 보면 그 엄중한 약속이 마음 한 켠에 체증같이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약속이 있은 지 스무 해 되던 즈음 처음으로 주님을 만났고, 지금은 거의 매일 새벽제단을 쌓고 있다. 어린 동생은 신과의 약속이 있은 몇 달 후 정말 기적처럼 살아서 집으로 왔다. 불구도 되지 않았고, 더 건강해져서 말이다. 요즘 서울에서 출향 선후배님들을 만나면서 약속이라는 단어를 새삼 무겁고 따뜻하게 느끼고 있다. 연초에 JB포럼 단톡방에 올라온 박노일 선배님의 아너소사이어티 가입소식이 그 중 하나다. 열일곱에 무일푼으로 무작정 상경하여 빚까지 져가며 사업하다 이제는 소외된 사람들을 돕기로 약속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과감히 약속을 하고 이미 실행에 옮긴 고향 분들이 주위에 의외로 많다. 전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 김동수회장이 그렇고, 효녀가수 현숙, 군장대 이승우 총장, 이규석 선배, 왕기현 선배, 신상환 후배 등이 그렇다. 지난 달 아너소사이어티 행사장에서 만난 20대의 육육걸즈 박예나 대표의 이야기는 더 감동적이다. 어려운 집안 형편에 굴하지 않고 열여섯에 창업을 해서 지금은 성공한 청년사업가 되었는데, 여기서 그치지 않고 나눔을 끊임 없이 실천하는 기부천사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 여기서 언급하지는 못했지만 수많은 분들이 알게 모르게 선행을 베풀며 살고 있고, 그분들로 인하여 세상은 그래도 살만하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이 모든 선행의 출발점은 기실 누군가와의 약속이었을 것은 또한 분명하다. 자, 신과의 약속은 아니더라도 뜻 깊고 아름다운 자신과의 약속을 정월이 가기 전에 한번 정해보는 건 어떨까?

  • 오피니언
  • 기고
  • 2019.01.16 20:08

전북사랑과 게릴라전사들

김희관 전 광주고검장법무연수원장 쉿!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침투한다. 다들 준비됐지. 돌격 앞으로 전쟁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릴지 모르지만, 군인들이 아닌 게릴라 가드너(guerrilla gardener)들의 대화다. 게릴라 가드닝(guerrilla gardening)이란 도시의 지저분하거나 삭막한 공간에 꽃과 식물을 심어 작은 정원을 만드는 활동을 말한다. 1973년 미국 뉴욕의 화가 리즈 크리스티가 쓰레기로 넘쳐나던 공터를 꽃밭으로 만들었던 데서 시작되었다. 왜 살벌한 전쟁용어인 게릴라로 부르는지 의아할 수 있겠지만, 조직화되지 않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자발적으로 총 대신 꽃을 들고 싸운다는 점에서 게릴라로 불리운다. 어떻게 해야 고향 전북을 발전시킬 수 있을지를 놓고 전북사람이라면 누구나 고민하고 있다. 많은 분들이 대형국책사업인 새만금 등에 대한 중앙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백번 지당한 말씀이다. 하지만 중앙정부의 지원만 바라본 채 손 놓고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한 차원에서 필자는 2019년 새해 벽두에 고향발전의 하나의 방안으로 게릴라 가드닝의 도입을 감히 제안하고 싶다. 이 대목에서 조동화의 시는 우리에게 통찰력을 준다. 나 하나 꽃 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느냐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피고 나도 꽃 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나 하나 물들어/ 산이 달라지겠느냐고도/ 말하지 말아라/ 내가 물들고 너도 물들면/ 결국 온 산이 활활/ 타오르는 것 아니겠느냐 조동화의 시처럼 내가 꽃피고 너도 꽃 피면황량한 잡초로 뒤덮였던 풀밭이 어느덧 꽃밭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누구든지 남녀노소 막론하고 마음만 먹으면 이 땅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게릴라 전사가 될 수 있다.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한 송이 예쁜 꽃이 심겨진 화분을 교실안에 갖다 놓는 초등학생, 집에서 키우는 다육이를 무미건조하기 쉬운 일터 사무실공간에 갖다 놓는 직장인, 가을철 노란 국화화분을 삭막한 도심의 공간에 갖다 놓는 시민, 이 모두가 얼마나 훌륭하고 멋진 게릴라 전사들인가. 필자는 검찰에서 30년가량 일하다가 약 1년반전에 퇴직해 현재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바쁜 공직기간중 가장 아쉬웠던 대목이 좋은 분들과의 교류인지라 야인이 되면서 주변에 좋은 모임이 있으면 가급적 참여하려 노력하고 있다. 아무래도 고향모임이 많은데 그곳에서 전북 분들을 뵐 때마다 한결같은 고향사랑으로 충만한 모습을 보면서 잔잔한 감동을 받는다. 그중 한 분의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그는 부안군이 고향인 출향인사다.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서울의 동대문구청과 부안군을 직접 발품을 들여 오고 가면서 양 지자체간에 지역 문화관광축제 활성화, 부안군의 우수 농특산물 직거래 확대 등을 골자로 하는 우호협력약정이 체결되도록 하였고, 나아가 동대문구 용신동과 자신이 태어난 면이 자매결연을 맺도록 하였다. 그 후 서울 동대문구 등에서 직거래장터가 열려 판매수익을 올릴 뿐만 아니라 다각적인 농특산물 마케팅을 통해 부안 농특산물의 맛과 우수성을 알리는데 일조를 하고 있다고 한다. 전북사람도 줄이면 전사, 전북사랑도 줄이면 전사가 된다. 2019년 새해 내 고향 전라북도를 사랑한다면 더욱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곳으로 전라북도를 바꾸어 나갈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게릴라 전사가 되자.

  • 오피니언
  • 기고
  • 2019.01.09 19:41

스프링고우트와 황제펭귄

손해일 시인국제PEN한국본부 이사장 아프리카 고원지대에 스프링고우트(spring goat)라는 염소떼가 있다. 이들은 매년 봄 우기가 되면 광란의 질주 끝에 절벽에 추락해 집단 자살하는 이상한 동물이다. 염소들도 센치하게 봄을 타거나 무슨 절박한 사연이라도 있는 것일까? 해마다 반복되는 염소떼의 집단자살은 참으로 미스테리이다. 그러나 전문 생태학자들의 분석 결과는 의외였다. 염소들의 이 참사는 겨울 건기 내내 굶주리다가 봄철 우기가 되면 연한 새 풀을 서로 먼저 먹기 위해 질주하다 생기는 해프닝이란다. 맨 앞쪽의 염소가 새 풀밭을 향해 먼저 달리면 그다음 무리가 뒤쫓고, 중간 이하는 앞쪽이 달리니 영문도 모른 채 뒤따라 광란의 질주를 시작한다. 싱싱한 풀을 향유하기는커녕 막상 절벽에 다다르면 달리던 관성으로 집단 추락한다는 것이다. 우매한 동물의 사례지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이들 중 현명한 리더가 하나라도 있었더라면? 광란의 질주 중에 한번이라도 멈추어 좌고우면 했더라면? 다시는 과오를 반복치 말자는 역사적 반면교사기 있었더라면? 우리 인간은 그럼 어떠한가? 당장 눈앞의 이권과 부귀영화를 좇아 앞만 보고 달리는 스프링고우트는 아닐까? 공리민복과 인류 공통의 행복보다는 제몫 챙기기에 급급한 이기주의자들은 아닐까? 과거 전제군주 폭군이나 히틀러, 일제 군국주의, 공산 캄보디아 킬링필드처럼 광란의 지도자들에게 미혹되진 않았는가? 우리 대한민국은 지금 과연 옳은 방향으로 제 길을 가고 있는가? 스프링고우트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게 펭귄이다. 지구상의 펭귄은 남극과 뉴질랜드 등에 6속 17종이 있다는데, 황제펭귄(emperor penguin)이 압권이다. 황제펭귄은 남극의 겨울 혹한기에 번식하는 유일한 바닷새이다. 3월이면 황제펭귄 수컷은 100여km나 떨어진 남극내륙 깊숙이 걸어 들어가 암컷이 올 때까지 40일 이상 기다렸다가 짝짓기를 한다. 한 두 개의 알을 약 두 달간 교대로 품는다. 수컷은 발등에 알을 얹은 채 서서 아랫배 쪽 털로 감싸며 2개월 이상 먹지도 않고 새끼만 돌본다. 바다로 간 암컷이 돌아오면 이번엔 수컷이 교대로 한 달쯤 바다로 나가 축난 몸을 추스린다. 새끼는 어미가 반 쯤 씹어 소화시킨 먹이를 받아먹고 자라며 솜털이 깃털로 바뀔 때까지는 물에 들어가지 않는다. 이들은 강강술래처럼 겹겹이 원을 짓는 허들링으로 영하 50~60도의 혹한과 폭설을 견딘다. 바다표범과 큰도둑갈매기 등 천적에도 슬기롭게 대처한다. 새끼 양육이 끝나면 펭귄들의 대이동이 시작된다. 새끼를 거느린 펭귄들은 약100여km의 내륙을 뒤뚱뒤뚱 다시 걸어 마침내 바다에 이른다. 천적이 두려워 모두 입수를 머뭇거릴 때 가장 먼저 바다로 뛰어드는 용사가 퍼스트펭귄이다. 스피링고우트나 펭귄 둘 다 생태계의 최약체 동물이지만 생존방식은 너무 대조적이다. 황제펭귄의 지극한 순애보, 헌신적 새끼양육, 천적 대처능력, 영하 60도 혹한속의 생존, 퍼스트 펭귄의 용감성, 현명한 집단대처 능력 등은 한편의 감동 드라마이다. 역사상 숱한 지구촌 왕조와 민족들의 흥망성쇠를 반추해 본다. 우리 역사에도 스프링고우트형과 황제펭귄형 지도자들이 명멸했다. 최근 열강의 신 패권다툼과 북한비핵화를 둘러 싼 엄혹한 국제정세 속에서 스프링고우트가 될 것인가. 황제펭귄이 될 것인가는 우리의 선택과 퍼스트펭귄 지도자의 역량에 달렸다. 황금돼지해 희망찬 새해를 맞아 우리 민족의 번영과 행복을 기원해 본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9.01.02 19:46

산타에게 보낸 편지와 자원봉사

최훈 행정안전부 지방행정정책관 겨울은 날씨는 춥지만 마음은 포근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소중한 사람과의 만남과 따뜻한 사랑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연말연시는 소중한 누군가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나 연하장으로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기 좋은 때이다. 혹시 산타에게 편지를 써본 적이 있는가? 주소를 쓰지 않아도 받는 사람에 산타에게(To. Santa Claus)라고 쓰면 핀란드 로바니에미(Rovaniemi)에 있는 산타 마을로 편지가 배달된다. 로바니에미 산타 마을은 세계에서 제일 규모가 큰 산타 테마파크이다. 한해에만 190여개 국가의 어린이들이 100만 통이 넘는 편지를 보내오는데, 재미있는 사실은 산타로부터 답장을 받을 수가 있다는 사실이다. 크리스마스에 전세계 아이들에게 선물을 배달하기도 바쁜 산타가 어떻게 그 많은 편지에 답장을 쓸 수 있었을까? 바로 자원봉사자 덕분이다. 자원봉사자들은 세계 곳곳에서 온 가지각색의 사연에 약 12개의 언어 중 한 가지 언어로 답장을 쓴다. 최근에는 한국어 자원봉사자가 있어 한국어로도 답장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야말로 전 세계에 포근한 온정을 전하는 자원봉사자의 힘인 것이다. 자원봉사에 관심은 있지만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막막하다면 1365자원봉사포털(www.1365.go.kr)에 접속해볼 것을 추천합니다. 1년 365일 함께하는 자원봉사라는 의미의 1365 자원봉사포털은 지난해에 약 3천만 명의 누적 연인원이 자원봉사활동에 참여한 국내 최대의 자원봉사 사이트로, 시민들은 전국의 자원봉사 모집 정보 검색부터 참여 신청, 실적 확인까지 원스톱으로 이용할 수 있다. 1365포털에서 자원봉사활동은 단계별로 어떻게 이루어질까? 첫째, 자원봉사자는 1365 포털에 접속하여 봉사활동 지역, 분야(교육, 환경보호, 재해?재난, 국제행사 등 16개 분야), 대상, 기간 등 세부검색을 통해 누구나 쉽게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봉사활동 정보를 조회하고 신청할 수 있다. 둘째, 자원봉사자는 신청한 활동에 대해 나의 자원봉사에서 신청승인 여부를 알 수 있고, 관심자원봉사 목록에서 자신이 관심 있는 자원봉사활동을 모아볼 수 있어 편리하다. 셋째, 봉사활동 참여 실적은 다른 봉사활동 시스템과 연계되어 타 기관(복지부, 여가부 등) 실적도 조회할 수 있다. 학생들의 경우 NEIS(나이스) 연계 서비스를 통해 봉사활동 실적을 교육부 학생기록부로 편리하게 전송할 수 있다. 이에 더 나아가 앞으로는 1365 자원봉사포털을 개선하여 이용자 중심의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맞춤형 활동검색, 위치기반 모바일 서비스 제공은 물론 실적관리도 더욱 고도화된다. 예를 들어, 전주시 효자동에 사는 30대 직장인 홍길동씨에게는 효자동 주변의 30대 자원봉사자가 가장 많이 참여한 자원봉사활동 중 직장인이 참여하기 쉬운 주말봉사활동을 추천해준다. 즉, 봉사자의 데이터에 기반한 맞춤형 자원봉사활동을 제공한다. 또한 위치정보기반 모바일 서비스를 새롭게 제공하여 자신이 위치한 장소 주변의 자원봉사자 모집정보를 간편하게 찾을 수 있다. 또한 자원봉사에 참여한 후에는 1365 자원봉사포털에서 봉사활동 사진, 활동 소감 등을 기록하며 나만의 자원봉사 포트폴리오도 만들 수 있다. 올해 연말부터는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과 더불어 자원봉사에 참여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기원한다. 산타의 답장을 대신 써주는 마음으로 따뜻한 온정을 전하는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8.12.26 20:28

법조 삼성이 그립다

윤승용 남서울대학교 총장 김승옥 작가의 소설 중에 염소는 힘이 세다는 작품이 있다. 김승옥이 1966년 쓴 이 소설에서 염소는 주인공 집에서 유일하게 힘이 센 존재였지만 이웃 생사탕 집 화로를 넘어뜨리는 바람에 그 집 주인에게 허망하게 맞아죽는다. 이로 인해 집안에 힘센 것이 하나도 없게 되자 주인공의 누나가 성폭행을 당하는 등 주인공 일가가 집밖의 힘센 무리들에게 잇달아 핍박을 당한다는 게 줄거리다. 갑자기 이 소설이 떠오른 것은 최근 사법농단 의혹사건을 보며 사법부는 정말 힘이 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번 파동은 2017년 2월 법원행정처 심의관으로 전보된 이탄희 판사가 상급자로부터 자신이 소속된 국제인권법연구회의 활동을 제약하는 지시를 받자 이에 반발해 사표를 내고 이어 사법부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고발하면서 처음 불거졌다. 이후 진상조사위가 구성되고 김명수 대법원장의 대국민사과에 이어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면서 의혹의 일단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결국엔 임종헌 전 행정처 차장이 구속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검찰이 신청한 숱한 압수수색영장이 이례적으로 거의 기각되는 초유의 사태가 이어졌고, 전 대법관 등에 대한 구속영장도 기각됐다. 뿐만 아니라 여당이 중심이 되어 사법농단 의혹 핵심 관련자들에 대한 탄핵을 시도 중이지만 이 또한 자유한국당의 반대로 여의치 않다. 이 정도면 국가권력의 세 축 가운데 유일하게 국민에 의해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사법부가 최고 권력인 대통령보다도 더 힘이 세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할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당한 데 비해 사법부에 대한 탄핵은 유태흥 전 대법원장 탄핵 등 두 차례 시도됐지만 모두 무산된 바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국민위에 군림하듯 힘이 센 존재임을 드러낸 사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은 따갑기 그지없다.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지난 해 사법부에 대한 국민신뢰도는 34%로서 군대(43%), 중앙정부(41%), TV방송사(41%)는 물론 경찰(41%)보다도 낮았다. 또한 경제선진국 모임인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2015년 사법부 신뢰도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42개 회원국 중 한국의 신뢰도는 꼴찌나 다름없는 39위였다. 이는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세간의 속설이 이젠 국민들에겐 상식으로 여겨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때문에 한때 그래도 믿을 데는 재판소밖에 없다는 말처럼 국민들로부터 전폭적인 신뢰를 받던 사법부가 이런 불명예스러운 지경에 처한 요즘 새삼 과거 사법의 양심을 지킨 법조계의 큰 어른들이 그리운 것은 당연한 이치리라. 법조계에선 일찍이 한국근대사법사에서 초대 대법원장 가인 김병로와 검찰의 양심 화강 최대교 전 서울고검장, 사도법관 김홍섭 전 광주고법원장 등 3인을 일컬어 법조 삼성(三聖)이라 자리매김하고 그들의 꼿꼿한 기개와 엄정한 법집행 정신을 기려왔다. 이 세분은 자랑스럽게도 모두 전북출신이다. 흐린 세상일수록 샛별이 더 빛나듯 권력에 굴하지 않되 국민만을 위해 헌신한 이 분들의 행장(行狀)은 법조인들에게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로스쿨에서 단순한 법률지식만을 가르쳐 법 기술자만을 양성하기보다는 법사상사와 법조윤리, 법조사 등 올바른 법조인상을 배울 수 있는 교과목을 더 늘리고 변호사시험에도 이를 추가하는 방안도 추진해야한다. 법조 삼성의 죽비가 그리워지는 아침이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8.12.19 19:51

라스베이거스는 아직도 카지노 천국?

민경중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사무총장 수년 전부터 해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꼭 한해에 한번쯤은 라스베이거스를 간다. 10여일 전에도 다녀왔다. 세계 최대의 전자 상거래 및 클라우드 기업인 AWS(아마존웹서비스)가 주관한 컨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주변 사람들은 그 곳을 간다고 하면 대뜸 거기 가면 한번 땡기고(?) 와야지라고 말한다. 라스베이거스를 카지노의 천국이라고만 알고 있다면 그 분은 상당히 연식이 오래 된 분이 틀림없다. 라스베이거스는 지금 최적의 비즈니스 도시,최첨단 기술 및 제품 발표장,공유경제의 실험장으로 환골탈태한 지가 꽤 됐기 때문이다. 라스베이거스는 스페인어로 초원이라는 뜻이다. 서부 개척 시대에 스페인 상인들이 LA가는 길에 쉬어가던 중간 기착지였다. 사막의 불모지가 지금의 도시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은 1905년 내륙 철도의 중간 기착지가 라스베이거스에 마련되면서 부터다. 라스베이거스의 비약적인 발전은 공교롭게도 1930년대 미국 경제 대공황 덕분이다. 뉴딜정책의 일환으로 네바다 주에 전기와 수자원 공급을 위한 후버댐 건설을 결정하면서 전국의 노동자들이 몰려들었다. 1931년 건설 관계자들과 노동자들의 쉼터로 6개 호텔과 카지노 도박이 합법적으로 허용됐다. 일확천금을 꿈꾸는 사람들은 카지노의 천국이라는 라스베이거스로 몰려들었다. 도박은 자연스럽게 매춘과 마피아를 불러들였다. 도시탄생 100주년을 맞은 지난 2005년 라스베이거스 시정부와 카지노 오너들은 부정적 도시 이미지를 벗기 위해 종합 레저타운과 비즈니스가 최적인 환경도시로의 전환을 시도했다. 특히 매년 1월초에 열리는 세계 최대의 전자제품 전시회인 CES(Consumer Electronics Show)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나흘간 행사에 전 세계에서 무려 20만 명이 찾아온다. 축구장 30개 정도의 면적에 4200여개 참가기업들이 그해에 선보일 간판 상품을 전시하고 제조사와 바이어가 체결하는 판매 계약은 10억 달러가 넘는다. 해마다 내가 CES가 열리는 라스베이거스를 찾는 이유는 딱 한 가지 이유다. 사람과 돈, 기술이 모여 새로운 트렌드를 처음으로 선보이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중국 선쩐의 작은 드론 회사에 불과했던 DJI 창업자가 그 이듬해에는 드론 산업을 선구하는 최고의 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을 직접 지켜봤다. CES행사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자동차 회사들이 디트로이트 북미 국제 오토쇼 대신 전기차와 무인자동차를 들고 라스베이거스에 온 것도 결국은 대중들과 투자자들의 관심이 그곳에 더 쏠리기 때문이다. CES로 라스베이거스시가 거두는 전시회 경제 파급효과는 공식적으로는 2억1000만 달러(2500억원,라스베이거스 컨벤션관광청발표)다. 다만 전시회 관람객 1명이 일반 관광객보다 3~5배 정도 많은 돈을 쓰는 것을 감안해 볼 때 최대 1조원 가까운 수익을 가져올 것으로 추산된다. 전체 라스베이거스 재정의 85%가 굴뚝 없는 황금산업으로 불리는 MICE 산업에서 나온다고 한다. 전라북도도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민관이 정말 애를 많이 쓰는 것 같다. 다만 언제까지나 깨끗한 자연환경과 한옥마을만 가지고 버틸 수는 없다. 새만금과 연동된 세계 최대 무인자동차 시험장을 만들고 전 세계인들이 볼거리와 즐길 거리 그리고 무엇보다 비즈니스 환경이 갖춰진 도시로 과감하게 전환해야 한다. 4년 전 BMW가 CES에 무인 전기 자동차를 처음 선보이면서 전시장 입구에 써놓은 글씨가 아직도 기억에 새롭다. Someday is Today 약간의 의역을 한다면 과거 우리가 바라고 상상 속에서 꿈꾸던 그 어느 날이 바로 오늘이다라고나 할까? 늦었다고 할 때가 가장 빠르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8.12.12 20:06

미래사회 준비는 인재육성에서부터

김홍규 아신그룹 회장 12월이 되면 각 개인과 사회는 연례행사로 대대적인 반성문 쓰기에 돌입한다. 1년동안 무엇을 잘했는지, 혹여 소홀한 것은 없었는지, 내년도 계획을 세우는 등으로 분주해진다. 이런 1년들이 모여서 10년이 되고 100년이 되면 역사가 된다. 인류는 처절한 반성과 발전을 통해서 각자의 역사를 써내려 가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본인에게 있어서는 고향의 정론지 전북일보에 평소 소신을 맘껏 풀어놓을 수 있었던 2018년이 개인 역사에 정점을 찍을 수 있는 한해였다. 그런 의미에서 6개월의 칼럼을 우리 전북에 가장 간곡하게 직면해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며 마무리짓고자 한다. 얼마 전 재경전주고 총동창회에서 <전주고100주년기념사업비전선포식>을 열었다. 여기에서 본인은 가장 중요한 사업으로 미래형 인재 육성을 꼽았다.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수많은 직업들이 나타나고 사라진다. 수십 년 전 광산에서 탄을 캐던 사람들, 전화를 걸면 바꿔주던 전화 교환원들, 부르면 곧장 달려오던 컴퓨터 수리공들은 지금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반면 생각지도 못한 직업이 나타났다. 어디서든 차를 빌려주는 공유경제형 렌트카 사업자, 실제로는 어디에 쓰는지 본 적이 없는 가상화폐 채굴업자 등. 앞으로는 더 신기하고 새로운 직업들이 많이 생겨날 것이다. 최근 미국 맥킨지 글로벌연구소가 인공지능의 발전과 자동화시스템으로 인해 2030년까지 최대 8억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세계 인구의 5분의 1인 8억 명이 로봇과 자동화에 밀려 실직할 수 있다는 얘기다.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그러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이 모든 일들을 사람이 한다는 것이다. 과학이 발달해서 우주여행까지 가능해진다 해도 이런 현상들이 왜 생기는지, 어디에 필요한지, 또 실제로 어떻게 사용해야 더 풍요로운 사회로 만들 수 있는지 기술이 그것까지 가르쳐 주지는 않는다. 그 고민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고민이다. 즐거움 또한 우리 인간의 몫이다. 발달하는 첨단 기술이 여러 새로운 문화를 만들 때 도구가 될 수는 있어도 문화 자체를 흥행시킬 수는 없다. 즐거움을 느끼고 전파하는 것 또한 사람이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전북이 가장 직접적으로 눈앞에 닥친 문제는 미래형 인재육성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전북이 대한민국 중심 지역 사회로 거듭나려면 답은 사람밖에는 없다. 그 중에서도 지금 자라나고 있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미래형 인재 교육을 어떻게 하냐에 달려 있다. 전주고100주년기념사업이 비단 전주고 학생들을 위한 것이겠는가. 미래형 인재육성 센터가 설립되고, 세미나와 네트워킹 같은 교육 프로그램이 안착하면 지역의 학생, 주민 모두가 직간접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교육 인프라를 갖추는 것이다. 교육 인프라가 구축되면 자연스럽게 인구 유입 효과를 불러오고 이는 지역 경제에도 분명 도움되는 일이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융복합 창의교육이 대세로 자리잡은 가운데 기술을 활용하는 지적 능력과 창조성, 공감능력, 협업치 등을 어릴 때부터 교육하는 프로그램들이 각 나라마다 세워지고 있다. 개인이나 조직 간의 소통과 협업에 능통하고 과학 지식과 인문적 소양이 결합된 핵심인재를 키우기 위해서이다. 새만금 시대를 맞이하여 새로운 인재 양성이 시급한 이때 전북의 발전을 위해서는 이러한 미래인재 양성의 단초 마련이 시급하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8.12.05 19:59

새로운 신뢰의 첫 걸음, 서명확인제도

최훈 행안부 지방행정정책관 1950년대 세계 최초 신용카드 회사인 다이너스 클럽을 창업한 프랭크 맥나마는 다이너스 클럽이란 카드 판에 식사금액과 자신의 서명을 남기고, 나중에 한꺼번에 식사비를 결제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캐나다에서는 입출식 계좌 오픈과 동시에 퍼스널 체크라고 하는 개인수표를 받게 된다. 월세를 낼 때도, 학비를 낼 때도 신용카드보다는 개인수표를 사용하는 문화가 보편화되어 있는데, 지불을 원하는 금액을 적고 서명을 해서 건네면 계좌에서 돈이 인출되는 방식이다. 이처럼 대부분의 서구 선진국은 공적사적 거래에서 서명을 사용하는데 미국독일스웨덴에서는 신분증에 서명을 기재해 이용하고 있고 영국프랑스는 전자서명제도를 활용하고 있다. 서명이 자신의 신용을 보증하는 주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우리나라는 부동산자동차 매도 등 재산권 처분과 관련한 거래에 행정관청에 사전에 등록한 인감도장으로 발급받을 수 있는 인감증명서가 쓰이고 있다. 이러한 인감증명제도는 일제강점기인 1914년 식민통치 수단으로 강제 도입됐다. 조선총독부가 인감을 신고한 사람에게만 인감증명을 발급했고 이것이 없으면 토지 등의 재산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인감증명제도는 지난 100여년간 폭넓게 활용되었는데, 이제 인감증명제도를 운영하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대만 정도다. 인감도장은 개인의 신용과 거래의사를 담보할 수 있는 확실한 수단일까. 얼마 전 증평 모녀 사망 사건의 당사자인 언니의 신분증과 도장, 휴대전화 등이 담긴 가방을 동생이 훔쳐 달아난 뒤 언니의 인감증명서를 부정 발급받아 언니 소유의 차량을 판매한 사건이 있다. 한편, 자신의 빚을 갚을 목적으로 평소 자신이 가지고 있던 배우자 인감 및 아파트 등기권리증을 이용하여, 배우자 인감증명 위임장 등을 도용해 배우자 아파트를 담보로 억대 대출을 받은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신용의 증표로 여겨지는 도장이지만, 가장 가까이에 있는 누군가에 의해 내 의사와는 다른 행위가 이루어질 수 있는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감증명서 부정 발급으로 인한 개인의 재산 피해 등을 예방하고 서명이 보편화한 시대 흐름에 맞춰 인감증명제도를 대체하기 위해 2012년 본인서명사실확인제도가 도입되었다. 인감증명서가 사전에 인감을 신고해야 하는 것과 달리 본인서명사실확인서는 사전에 별도로 서명을 등록할 필요 없이 본인이 신분증을 지참하여 전국 읍면동 주민센터에서 서명을 하고 바로 발급받을 수 있다. 또한 인터넷으로도 발급이 가능하여 편리하다. 주소지 관계없이 가까운 읍면동 주민센터를 방문하여 이용승인을 받으면 2년 동안 직장이나 집에서 정부24에 접속해 전자본인서명확인서를 발급받을 수 있다. 2년이 지나기 전에 갱신신청이 가능하며, 전자본인서명확인서 제출 기관이 2017년부터 전 국가기관으로 확대되어 더욱 편리하게 이용 가능하다. 다만, 본인서명사실확인서는 인감증명서에 비해 부동산 관련용도가 세분화(소유권 이전, 제한물권 설정 등)되어 있으며, 일반용의 경우도 구체적 용도를 기재해서 발급받아야 한다. 또한 수요처에 대리인이 제출하는 경우 수임인을 기재해서 발급받아야 하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사전 신고 절차가 없고, 본인이 직접 발급하므로 부정발급 위험성도 적으며, 인터넷으로도 이용이 가능한 편리한 제도인 본인서명사실확인제도가 널리 알려져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8.11.28 19:50

이재철 목사의 아름다운 은퇴

윤승용 남서울대학교 총장 추수감사절 주일인 17일 서울 마포구 양화진의 한국기독교선교100주년기념교회에서는 한국 교회사에서 이정표가 될 만한 설교가 열렸다. 이날 설교는 이 교회 담임인 이재철목사가 퇴임하는 고별설교였다. 이 목사는 신약성서 사도행전의 마지막 구절인 28장30~31절,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를 소재로 퇴임의 변을 설파했다. 이 목사는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가 사도행전의 마지막 구절을 기록하면서 특별히 강조한 두 단어가 있는데, 첫 번째가 담대하게이고 두 번째가 거침없이이다라고 전제하고, 사도 바울처럼 담대하고, 거침없이 세상이 기억해주지 않아도 하나님이 기억해주시니 사랑하며 섬기는 삶을 살아내자고 당부했다. 이 목사의 이날 설교는 퇴임사를 가름하는 셈이어서 이 교회 신도들에게 각별한 의미로 다가왔을 터이지만 기독교계 내부에서는 그 절실한 내용 못지않게 퇴임에 담긴 의미도 주목을 받았다. 보수와 진보 양 진영을 모두 아우를만한 목회자를 물색하던 선교100주년기념교회에 발탁돼 2005년 7월 초대 담임목사로 부임, 13년 4개월간 사역해온 이 목사는 만 70세 정년 7개월을 앞당겨 이날 조기 퇴임했다는 점에서 단연 화제를 모았다. 통상 한국 교회에서는 퇴임시기도 가변적인데다 정작 퇴임 후에도 원로목사 등의 직함으로 교회에 대한 영향력을 지속하는 게 관례다. 또한 이 목사는 기독교계에 공공연한 이른바 퇴직금을 한 푼도 받지 않았다. 웬만한 규모의 교회에서는 10억 여 원이 넘는 퇴직금이 지급되는 게 현실이다. 이 목사는 또한 등록교인 1만5000명이 넘는 규모로 성장시킨 이 교회를 2세 등 친인척에게 넘겨주지 않아 주위를 놀라게 했다. 요즘 대형교회들이 잇달아 교회 세습 문제로 물의를 일으키는 풍조에 견줘보면 분명 돋보이는 행보다. 이 목사는 이어 영성총괄, 목회총괄 등 4분야를 담당하는 목사를 4명 선임해 이들이 공동목회를 담당하도록 했다. 이 목사는 이전에도 여러모로 기독교계에서 주목을 받았다. 한국 교회를 대표하는 설교자인 이 목사는 매년 신학생들이 가장 만나고 싶어하는 목회자로 꼽혀왔다. 한국외국어대 불어과 졸업 후 홍성통상과 출판사 등을 설립해 경영인으로 두각을 나타냈으나, 회사와 개인 삶에 닥쳐온 위기를 계기로 기독인으로 거듭난다. 이후 30대 중반을 넘긴 나이에 신학대학원에서 신학공부를 마친 후 1988년 주님의교회를 개척했다. 이 목사는 개척 당시 약속대로 10년 임기가 끝나자 곧바로 사임해 눈길을 끌었다. 이 목사는 100주년기념교회에서 헌금의 무기명화, 모든 교회 재정의 50% 이상을 교회 내부가 아닌 외부 사회를 위해 사용하는 등 사회적 영성확대에도 앞장섰다.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목회자임에도 불구하고 교인들에게 탈세하지 말라고 하고, 본인 스스로 자진 납세하는 모범을 보였다. 이 목사는 이날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참 행복했습니다라고 설교를 마무리하고 경남 거창의 벽지에 소박하게 지은 우거로 부인이 모는 준중형 승용차를 타고 낙향했다. 1517년 마르틴 루터가 세속화한 교회를 개혁하고자 종교개혁을 주창한 지 500년이 지났지만 교회가 세상을 걱정하기보다는 세상이 교회를 걱정해야하는 이 시대에 이 목사의 은퇴는 아름답다는 말로 표현하기에는 뭔가 부족해 보인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8.11.21 19:49

전북의 판근(板根)을 키우자

민경중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사무총장 얼마 전 제주특별자치도 초청으로 1박2일 명예제주도민우정의날에 처음 다녀왔다. 제주에서의 근무 인연으로 수년 전 제주의회의 의결을 거쳐 육지것에서 비록 명예지만 제주사람이 됐다. 육지것이라는 단어에는 많은 함의가 담겨있다. 타지에서 온 사람들에 대한 제주사람들의 배타적이고 이질적인 문화가 탄생시킨 단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하지만 2년 남짓 살면서 그 말이 제주사람들의 입에서 보다 오히려 우리 자신들이 더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제주대 최낙진교수(언론홍보학과)는 육지것이란 말은 뭍사람은 제주에서 가해자였다는 역사의식을 갖는 사람들이 쓰는 부채의식 언어라고 말했다. 적극 동의한다. 탐라국부터 지금까지 제주도와 사람들은 단 한번도 육지것들에게 해를 끼친 적이 없는데 수많은 전란과 고초를 겪었고 지금도 진행형인지도 모른다. 그런 부채의식을 가지고 처음 참가한 명예제주도민행사는 고부 동학농민혁명의 발상지이자 이념과 지역색의 대결 속에서 피해를 입어온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컸다. 이번 행사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시간은 환상숲 곶자왈 생태탐방이었다. 곶들에 가그네 낭 해오라이, 갠디 자왈드랜 가지 말라이 (숲에 가면 나무해오고 덩굴엔 가지 말라)는 제주사투리처럼 숲을 뜻하는 곶과 가시덩굴인 자왈을 합한 곶자왈은 예전에는 쓸모없는 땅의 대명사였다. 돌무더기로 인해 농사도 짓지 못하고 소 방목지로 이용하거나 땔감을 얻고 숯을 만드는 불모지였다. 43사건 당시 무고한 희생을 당한 민초들이 겨우 자기 몸을 숨길 수 있는 고마운 장소이기도 하다. 제주도 전체면적의 6.1%를 차지하는 곶자왈이 보호받기 시작한 것은 이곳이 청정 지하수의 보고이자 동식물 생태분야의 학술적 가치가 뛰어나다는 사실이 밝혀진 최근의 일이다. 환상숲 곶자왈에는 8백여종의 식물이 산다. 그중 검붉낭이라 하는 푸조나무는 강인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바람이 거세고 돌투성이 화산섬 제주에서 나무들은 살기위해 무척 애를 쓴다. 버티면서 치열하게 산 흔적이 바로 판근(板根)이다. 나무의 뿌리는 보통 땅 속으로 뻗는다. 그런데 나무의 곁뿌리가 평판 모양으로 되어 땅위에 노출되는 것을 판근이라고 한다. 제주의 곶자왈은 바닥이 온통 돌이다. 그래서 나무들이 아래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땅위로 판처럼 뿌리를 키운다. 사람으로 치면 금수저,은수저,흙수저가 아니라 돌수저로 태어나 바위를 뚫고 성장하는 나무다. 강인한 제주인들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 전북인들은 어떨까? 최근 모처럼 전주시 관련 기사가 중앙언론에서 주요뉴스로 다뤄졌다. 어느 기업이 전북에 초고층타워를 짓는다는 기사였다. 하지만 언론들은 한결같이 부정적이었다. 롯데타워가 123층인데...60만 도시에 143층 마천루?, 전주에 143층 타워 짓는다는데...처럼 부정적인 뉘앙스의 기사가 이어졌다. 솔직히 개인적으로 이 사업이 얼마나 사업적 타당성이 있는지는 모른다. 인허가 과정에서 철저한 검증과 시민공론화위원회를 거쳐 따져 물으면 된다. 그러나 참을 수 없는 것은 은연중에 내포된 고질적인 수도권 대도시 중심의 사고다. 서울의 남산타워는 되고 왜 전주는 안되는가? 특정지역중심의 산업화과정에서 소외되면서 과거보다 인구가 60만 규모로 줄어든 것도 억울한데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것일까? 한옥마을 유지 명목으로 개발은 제한하면서 왜 143층은 안되는 것일까? 태풍에 버티고 바위를 뚫기 위해서 언제까지나 땅 속으로만 뿌리를 내려서는 안된다. 땅 위로 나무의 근육을 키워나가야 한다. 이제는 우리도 판근을 키워야 한다. 전북인의 판근을 뿌리내려야 한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8.11.14 19:39

개인 사회가 가져온 유통구조의 변화

김홍규 아신그룹 회장 급격한 IT기술의 발달은 우리 삶을 많이 바꾸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게 바꾸고 있는 것은 유통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유통 구조의 변화는 한두 군데에서 감지되는 것이 아니다. 개인마다 핸드폰이 들려지면서 손안의 소비, 결제가 가능하게 되었고, 이는 유통의 판도를 온라인 중심으로 바꿔 놓았다. 밤 10시에 침대에 누워 장을 보면 다음 날 새벽에 배송해 주는 마켓도 있고, 친정 언니가 농사지어 보낸 듯 좋은 제품을 정해진 날짜에 배송해 주는 텃밭도 있다. 소비자들의 요구에 맞춰 판매자들도 발 빠르게 움직인다. 전통적인 유통 구조는 생산자에서 소비자에게 도달하기까지 적어도 서너 번의 단계를 거친다. 도매업자와 도도매업자, 소매업자 등 판매 단계를 거칠 때마다 소비자에게는 노출되지 않는 그들만의 방식이 있어서 소비자는 한정된 물품만 구매할 수 있었다. 어떤 제품이 어떤 경로를 거쳐서 어떻게 우리 집에 오는지 알 수 없을뿐더러 가격도 판매업자들이 정했다. 그러나 인터넷의 발달과 더불어 빠르게 정보가 공유되면서 전통적인 유통 시스템은 의미가 무색해졌다. 누구나 유통을 들여다 볼 수 있어서 전통적인 유통 구조는 그 수명을 다했다. 한두 개 사이트가 아닌 여러 사이트에서 내가 살 물건을 비교해 보고, 각종 혜택을 더해서 판매자가 아닌 소비자가 가격을 결정하는 시점에까지 이르렀다. 예를 들면 해외에서 물품을 살 수 있는 직구, 가격 비교에서 결제까지 원스톱으로 이뤄지는 온라인모바일 쇼핑, 중간 판매자가 필요 없는 직거래, 각종 커뮤니티에서 질 좋은 제품을 싸게 구매하는 공동구매, 소비자가 판매도 겸할 수 있는 온라인 오픈 마켓 등 예전에는 불가능했던 판매 채널들이 활성화되면서 유통 단계는 축소되었으나 범위는 훨씬 더 넓어져 생산자 중심이 아닌 소비자 중심의 가격이 형성되는 것이다. 여기에 1인 가구에 초점을 맞춘 제품과 유통도 성황을 이루고 있다. 가전제품도 대형 가전보다는 쓰다가 버리는 스몰 가전이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있고, 식재료도 미니 소포장이 각광받고 있다. 직접 고급식당에 가지 않아도 집에서 만끽할 수 있는 맛집 재료들이나 레토르트 식품이 배송되는 것이 유행이고, 그마저도 귀찮을 때는 맛집 요리를 그대로 시켜먹을 수 있는 세상이다. 이 모든 것이 제품 간접경험에서 배송까지 1대1로 이뤄지는 IT 기술의 발전 덕분이다. 이러한 유통 구조의 변화는 사실 개인주의 사회로 진입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급격하게 공동체 문화가 무너지면서 유난히 빨리 유통의 변화가 일어났다. 아무도 만나지 않아도 업무를 볼 수 있고,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지구촌 저 너머의 일까지 알 수 있는 빠른 정보의 유입은 협업하지 않아도 생존이 가능한 개인 사회를 앞당겼다. 식당에서 남이 먹는 메뉴를 살펴보는 촌스러움, 옆집에 새로 들여온 가구를 구경하는 재미, 남의 집 자식자랑에 샘솟는 질투 이런 것들은 사라져 간다. 그 자리를 요리 재료를 레시피대로 파는 온라인 유통업체, 취향까지 컨설팅하는 가구업체, 대치동 유명 강사의 인터넷 강의 등이 채웠다. 유통의 변화가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를 불러온 것인지, 라이프스타일의 변화가 유통의 변화를 불러온 것인지 모르겠으나 우리 사회는 이제 혼자 살기에 여념이 없는 개인 사회를 맞이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 오피니언
  • 전택수
  • 2018.11.07 20:51

10월 29일, 지방자치의 날

최훈 행정안전부 지방행정정책관 대한민국의 지방자치는 1949년 7월 지방자치법 제정으로 시작했다. 이후 1952년 지방의원 선거, 1960년 주민직선에 의한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통해 지방자치가 시행되었다. 그러나 1961년 5월 지방의회를 해산하고 지방자치법의 효력을 정지시켰다. 지방행정은 중앙정부에서 임명한 관료에 의해 운영되었고 지방의 자율성은 사라졌다. 이후 1987년 10월 29일 헌법을 개정하여 지방자치에 관한 조항의 효력을 되살렸다. 이를 기초로 1991년 주민직선 지방의회 구성, 1995년 민선 지방자치단체장 선출을 통해 지방자치는 부활했다. 지방자치 부활의 계기를 마련한 헌법 개정을 기념하여 매년 10월 29일을 지방자치의 날로 지정하고 지방자치박람회를 개최하고 있다. 올해 10월 29일부터 31일까지 경북 경주시에서 개최한 제6회 지방자치박람회는 자치분권 새바람, 주민과 함께 만들어갑니다!를 슬로건으로 전시마당, 정책토론, 우수사례 발표, 참여마당 등 다채로운 행사로 채워졌다. 지방자치를 통해 다양한 지역주민의 요구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실제로 행정기관의 주민서비스에 대한 인식이 개선됐으며, 민원서비스를 제공하는 주민센터가 2,605개(09년)에서 3,500개(17년)로 증가했다. 주민들의 문화여가생활 여건도 개선되었다. 체육시설은 12,345개(08년)에서 24,303개(16년)로, 공공도서관은 600개(07년)에서 1,042개(17년)로 각각 두 배 수준으로 증가했다. 또한 지방자치단체 의사결정의 근거인 조례는 30,358개(95년)에서 92,104개(18년)로 지방자치가 부활한 지 23년 만에 3배로 증가했다. 민선7기 출범에 따라 지방자치에 대한 인식과 기대가 높아진 만큼 정부는 지방자치를 한 단계 도약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정부는 올해 9월 「자치분권 종합계획」을 확정하고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 지방자치법 개정과 본격적인 재정분권을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지방자치법의 전면적인 개정을 추진하여 주민중심의 새로운 지방자치 시대를 열어나갈 것이다. 주민이 직접 조례안을 발의할 수 있도록 하며, 주민소환 요건 완화하고 주민투표 대상을 확대하여 실질적인 지역민주주의를 구현하고자 한다. 지방자치단체의 조직, 인사에 대한 자율성을 확대하고 윤리특별위원회 설치를 의무화하여 책임성을 확보한다. 또한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의 협력기구를 통해 국가와 지방의 관계를 협력적 동반자관계로 전환시킬 것이다. 중앙과 지방 간, 그리고 지역 간 재정격차와 불균형은 지방자치를 어렵게 하는 걸림돌이 되어왔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국세-지방세의 비율을 22년까지 7:3으로 개선해 나가고자 한다. 특히, 지방소비세율을 기존 11%에서 21%로 확대하고, 현재 담배에 붙는 개별소비세의 20%인 소방안전교부세율을 45%까지 단계적으로 인상해 나갈 계획이다. 나아가 지방재정 및 지방교육재정의 혁신을 통해 지역자율성과 균형발전의 토대를 마련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저성장 추세, 저출산고령화 현상, 다양한 시민들의 요구에 직면하고 있다. 이는 국가의 효과적인 정책방향 설정과 지역의 특성을 살린 정책을 통해 함께 극복해 나가야 한다. 지방자치가 부활한지 23년, 대한민국과 지역사회의 더 나은 발전을 위해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린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8.10.31 19:46

신한청년당의 젊은 그들을 보고 싶다

윤승용 남서울대학교 총장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이던 1918년. 그해 8월 20일 중국 상하이 프랑스 조계의 협화서국(協和書局)이라는 서점에 여운형, 선우혁, 장덕수 등 조선 열혈 청년 6명이 은밀히 모여들었다. 일본 유학 등을 통해 국제정세에 밝았던 이들은 조만간 동아시아에서도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이 그해 초 주창한 민족자결주의라는 신국제질서가 도래할 것이라는 판단아래 비밀결사체를 조직하기로 결의하고 그 첫 모임을 가진 것이었다. 이 모임의 리더는 32세의 헌헌장부 몽양 여운형이었다. 그는 1914년 중국에 망명, 금릉대학을 졸업하고 이 서점에서 근무 중이었다. 그는 상하이에서 조선독립을 염원하던 청년들과 논의 끝에 청년독립운동 단체를 결성하기로 결의하고 당시 상하이에 유학중이던 터키 청년들이 터키청년당을 창당해 활동하고 있는 점을 본 따 신한청년당(이하 신청당)이란 청년결사체를 발족했다. 바로 이 신청당이 내년이면 100주년을 맞는 31운동과 상해임시정부 수립 기념 행사를 앞두고 새롭게 조명 받고 있다. 그간 신청당의 활약상은 일부 독립운동사 전공학자와 관련 유족들 외에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었다. 하지만 신청당의 활동이 31운동과 상해임시정부수립에 결정적인 계기가 됐음이 알려지면서 재조명을 받게 된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1918년 11월 종결되자, 윌슨 미국 대통령은 찰스 크레인을 중국에 특사로 파견하여 종전 후의 미국의 입장을 중국에 설명하도록 했다. 크레인으로부터 파리강화회의에서 민족자결주의 원칙이 논의될 것이다는 소식을 들은 여운형은 그에게 파리평화회의에 한민족 대표 파견 가능성을 타진했고, 지원약속을 받아냈다. 신청당은 천신만고 끝에 김규식을 대표로 파견했다. 이 사실은 밀사 등을 통해 국내와 재일본 유학생들에게도 전해졌다. 28독립선언문을 작성한 춘원 이광수도 신청당의 밀사였다. 국내에 파견된 밀사들은 비밀리에 서울은 물론 전국을 돌며 열성적으로 독립운동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바로 이들의 헌신적인 암약에 힘입어 그해 31운동의 횃불이 요원의 들불처럼 번졌다. 신청당은 31 운동 직후인 4월10일 상하이에서 조직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에도 주도적 역할을 했다. 31 운동을 일으키기 위해 국내로 잠입했던 당원들이 3월 하순에 모두 상하이로 돌아오자 신청당은 프랑스 조계 안에 임시 독립사무소를 차리고 4월1일 임시정부 수립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했다. 이 결과 상하이 임정 초대 임시의정원 회의 멤버 29인 가운데 9명이 신청당원일 정도로 중심역할을 했다. 당시 신청당원들은 모두 20대 중반에서 30대 초반의 청년들이었다. 이 젊은 그들의 가슴에는 초개같이 스러져간 구한말 의병들의 기개와 1909년 침략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청년 안중근의 단심이 서려있었을 것이다. 최근 암살, 밀정, 미스터 션샤인 등 근대 독립운동을 소재로 한 영화와 드라마 등이 크게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신한청년당의 혁혁한 활약은 일반인들에게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31운동 백주년을 앞두고 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 등이 이들의 활동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려 애쓰고 있으나 예산부족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다고 한다. 애국선혈들의 헌신에 힘입어 독립에 성공, 세계 10위권대의 경제대국을 이루었음에도 자금부족으로 1세기가 지나도록 이들의 활약을 재조명하는 영상물하나 내놓지 못한다는 사실은 부끄럽기 짝이 없다. 내일이면 109주년을 맞는 안중근 의사 의거기념일을 앞두고 떠오르는 생각이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8.10.24 19:37

내 인생을 바꾼 선생님의 한마디

민경중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사무총장 얼마 전 사무실에 작은 소포가 하나 배달됐다. 사랑으로 가는 길 이라는 제목의 작은 시집이었다. 책에 적힌 시인의 이름을 보는 순간 마치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시간여행에 빠졌다. 이제는 팔순을 바라보시는 고3시절 담임선생님께서 보내주신 자작 시집이었다. 쉰 중반을 넘길 때 까지 뭐가 그리 바빴는지 시 한편 제대로 음미하지 못하고 타향살이에 지친 내게 선생님의 시 한편 한편은 위안과 함께 인생을 반추해보는 가르침을 주셨다. 아마 누구에게나 학창시절 인생의 향도가 되었던 은사 한 두 분은 있을 것이다. 세계적인 전자 상거래 회사인 알리바바를 창업해 손꼽히는 거부가 된 중국의 마윈회장은 학창시절 지리선생님의 한마디에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는 성적이 신통치 않았지만 영어 하나만큼은 자신 있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지리선생님이 항저우 시후(西湖)주변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을 상대로 유창한 영어로 길을 알려줬던 경험담을 들려주며 지리공부뿐만 아니라 영어도 열심히 하라는 말을 귀담아 듣고 영어공부에 매진했기 때문이다. 자본도 인맥도 없이 맨손으로 시작한 마윈이 자신의 집에서 탄생시킨 알리바바닷컴으로 미국와 영국 등 해외 곳곳을 누비며 고객을 확보하고 투자자를 유치한 것도 영어를 습득한 것이 큰 힘이 됐다. 그는 가슴 한편에 일말의 실현 가능성 있는 이상을 품고 있다면 쉬지 말고 노력하라!라는 명언을 남겼다. 故김대중 전 대통령도 자서전에서 목포상업학교 시절 3학년 담임선생님의 한마디가 일생의 가르침이 되었다고 한다. 원칙을 포기하는 것은 삶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원칙을 고수한다고 방법에서 유연하지 못하면 승리자가 되지 못한다 원칙을 고수하면서도 방법에서는 유연한 이른바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삶을 그때 배웠다고 회고했다. 시집을 보내 주신 선생님도 내게는 그런 분 중의 한 분이다. 대학 입학시험을 몇 달 앞두고 방황하던 내게 전체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엄한 체벌을 하셨다. 반장을 맡았던 내게 가지셨던 기대가 무너졌기 때문이셨던 것 같다. 집에 돌아오니 아버지께서 벌써 알고 계셨다. 선생님께 정말 고맙다고 말씀드렸다. 언제든 더 엄하게 혼내 달라고 부탁드렸다. 정신이 번쩍 들게 해주셨던 그 순간이 그나마 지금 조금이라도 사람구실하고 살 수 있게 해주신 덕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대여 석삼년을 기다려도 철쭉꽃 피면 오겠노라하던 언덕엔 올해도 환한 봄빛이 웃고 있다오/서울은 멀고 세월은 참 빠르지요 빠른 세월을 원망한들 하루해가 쉬엄쉬엄 갈 리 있겠소만/축축한 눈물의 별사(別辭)도 없이 서울행 열차로 그대를 떠나보내고 어둠이 묻어나는 차창에 얼굴을 기대며 돌아오는 언덕 위로 별들이 뜨더이다 그 별이 다 질 때까지 걷고 또 걸었지요/철쭉꽃이 지고 세월도 지고나면 그대와 나 무엇이 남으리오 먼데서 들려오는 새소리에 돌아보면 풀잎을 스치고 지나는 바람소리뿐(세월이 지고나면 오삼표 작) 이 시를 읽으면서 수많은 제자를 길러내신 선생님의 애틋한 제자사랑이 오롯이 담겨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제멋대로의 해석을 하며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마음에 죄송할 따름이었다. 시의 궁극의 목표는 인간과 세계를 변화시키는데 있다고들 하거니와 더 나은 삶과 사회를 꿈꾸는 것이 시의 권리이자 책무다라고 하는 등단시인들의 말씀을 되새기며 지금과 다른 세상을 꿈꾸는 내게도 이러한 시적표현이 들어갔는가 반성해본다 라는 선생님의 시집 발제문은 갈수록 나태해지려는 나 자신에게 다시 주시는 엄한 가르침으로 이 가을에 다가온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8.10.17 20:45

미래 산업의 연구 대상 액티브 시니어들

김홍규 아신그룹 회장 통계청이 지난달 8월 27일 발표한 2017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우리나라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은 14.2%에 도달했다. 고령화가 아닌 고령 사회가 되었다. 전문가들은 2025년에는 고령인구 비율이 20%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고 예측한다. 7년 뒤면 우리나라 사람 5명 중 1명이 노인이라는 소리다. 625 전쟁 직후 출생된 베이비 부머들은 인구 증가와 함께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을 이끌어 왔고, 지금은 은퇴하고 있다. 이들은 그간 이뤄놓은 경제력을 바탕으로 비교적 여유로운 은퇴생활을 누리며 사회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젊었을 때는 돈 벌고 가정을 돌보느라 자신을 돌보지 못했지만 이제 여러 가지 취미, 문화, 학습활동을 통해 자아실현을 성취하고 있다. 기존의 실버세대와는 확실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지금의 50-60대들은 실버세대라고 하지 않고 액티브 시니어라고 부른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보고서에 의하면 고령친화산업 시장 규모는 2012년 27조, 2015년 39조 정도였는데 2020년 72조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였다. 2025년을 기점으로 로봇, 3D프린팅, AI 등이 생활 속의 기술로 확실하게 사용될 것이라고 하는데, 그때에는 그 누구보다 지금의 액티브 시니어 세대가 이 첨단 과학기술을 활용하는 산업의 주요 소비자가 될 것이다. 사별이나 비혼 등을 이유로 혼자 사는 액티브 시니어들에게는 의료적 기능보다는 정서적 기능이 더 필요하다. 먹지도 죽지도 아프지도 않지만 반려동물보다 더 똑똑한 로봇 강아지가 있다고 생각해 보자. 3D프린터로 예전 어릴 때 키우던 강아지와 똑같이 생긴 녀석을 내 마음대로 살 수 있고 여기에 학습 기능을 추가한다면 액티브 시니어들에게는 더할 나위없는 필수품이 될 것이다. 길을 알려주고, 간단한 외국어 통역을 겸할 수 있는 인간이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을 도와주는 기능을 계속 추가해 나간다면 스마트폰이 필수가 되듯 로봇 강아지가 필수가 되는 그런 날들이 올지도 모른다. 한 발 더 나아가 소외된 지역의 독거노인 복지 사업에 로봇을 활용하면 훨씬 더 효율성이 높을 수도 있다. 이미 미국이나 일본 등은 홀몸 노인과 고독사 증가에 대비해 IoT기반의 실버용품을 대거 출시하고 있다. 지금 당장 눈앞에 보이는 사업도 있다. 현재 여성용품 회사들은 유아용 기저귀 시장을 대신해 성인용 제품의 시장 선점을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 기저귀 시장은 위생 인식 향상, 노년 인구 자체의 증가, 경제력을 갖춘 액티브 시니어의 증가 등이 맞물리면서 영유아에 초점이 맞춰졌던 산업군과 마케팅이 노년층으로 옮겨가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미국의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이었던 앨런 그린스펀은 전 세계가 은퇴하는 중이라고 했다. 바야흐로 전 세계가 늙어가는 중이다. 여기에 맞물려 액티브 시니어들이 원하는 기술들이 4차 산업혁명의 결과물로 속속 출시되고 있다. 고령사회와 미래 산업은 서로 잘 맞는 수요공급의 파트너로 다음 세상을 열고 있다. 우리가 어떤 산업에 공을 들여야 할지 충분히 유추해 볼 수 있을 것이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8.10.10 19:49

보다 나은 주민등록, 보다 나은 주민의 삶

최훈 행안부 지방행정정책관 영화 완득이에서 남들보다 키는 작지만 자신에게만은 누구보다 큰 존재인 아버지와 어렵게 생활하는 완득이가 집을 나간 외국인 어머니와 우연히 재회하게 되는데... 완득이가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된다면, 외국인 어머니는 주민등록표 등본에 어떻게 표시될까? 두 아이의 싱글 대디와 세 아이의 싱글맘이 사랑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드라마 아이가 다섯에서 싱글 대디와 싱글맘이 결혼하여 같이 살게 되면 각자의 아이들은 주민등록표 등본에 어떻게 표시하여야 할까?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엿보이는 가족 형태의 다변화가 주민등록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지만, 국내에 체류하는 국민의 외국인배우자가 증가하고(2001년 2만5182명 2017년 15만5457명), 전체 혼인 중 재혼의 비율이 늘어나는(1997년 남 10.6%, 여 11.3% 2017년 남 15.8%, 여 17.9%) 등 사회변화에 따라 주민등록도 변화하고 있다. 첫째, 다문화 가정의 차별 해소를 위한 외국인배우자 관련 주민등록표 등본 표기 방안 마련이다. 외국인 배우자는 주민등록표 등본이 필요할 때마다 배우자와 함께 주민센터를 방문하여 등본을 신청하여야 하고, 주민등록표 등본 하단에 외국인배우자만 별도로 표기되어 한부모 가정으로 오해를 받는 경우 등이 있었다. 이와 같은 오해 등을 해소하기 위해 국민인 세대주나 세대원과 거주하는 외국인 배우자가 주민등록표 등본 표기를 신청하면 주민등록표 등본에 세대원과 함께 표기할 수 있도록 주민등록법 시행령을 개정하여 올해 3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둘째, 재혼가정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에 발맞추어 가기위한 세대주와의 관계 표시 개선이다. 주민등록표 등?초본의 세대주와의 관계에 계모, 계부가 표시 되어 재혼여부를 확인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사생활 및 인권 침해 우려가 제기되었다. 사생활 침해 우려 등을 해소하기 위해 계모, 계부 등의 용어가 표시되지 않는 세대주와의 관계 표시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셋째, 주민등록번호 변경 제도 도입이다. 지난 2014년 대량 개인정보 유출 사태로 인한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하여, 주민등록번호 유출로 인하여 생명?신체?재산, 성폭력 피해 또는 피해가 우려되는 사람에 대해 심의를 거쳐 주민등록번호를 변경할 수 있도록 개선하였다. 넷째, 해외체류자의 국내 주소 관리 방안 마련이다. 유학, 취업 등의 이유로 해외에 나가는 해외체류자에 대한 국내 주소 관리 방법이 없어 부모?친척집의 주소로 신고하는 경우 거짓 신고가 되거나 거주불명자로 등록되는 불편이 있었다. 이러한 불편 해소를 위해 부모나 친척 등 국내에 주소를 둘 세대가 있으면 해당 세대에 주소를 둘 수 있도록 하고, 국내에 주소를 둘 곳이 없는 경우에는 읍?면?동 주민센터에 주소를 두도록 하여 유학생이나 주재원 등이 해외에 체류하는 기간 동안 거주사실이 불분명한 것으로 확인되어 거주불명 등록되는 불편을 해소할 수 있게 되었다. 흔히 주민등록하면 주민등록표 등초본 발급이나 주민등록증만을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주민등록 정보는 주거복지, 보육, 건강보험, 세금관리 등 주민 삶의 기반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앞으로도 주민생활과 밀접한 주민등록 제도의 끊임없는 혁신을 위해 노력해 나갈 것이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8.10.03 19:04

‘전언회' 30주년과 전북 발전

윤승용 남서울대학교 총장 1988년1월30일, 서울 여의도 양지탕 설렁탕집에 전주고 출신 국회 출입기자 9명이 모였다. 서로 잘 아는 사이였던 이들은 1달여 전에 끝난 13대 대통령선거에서 노태우 후보가 당선되면서 사실상 전두환 군사정권이 연장된 시국 등을 소재로 대화하다 자연스레 전주고 출신 언론인 모임을 결성하기로 의기투합했다. 이들이 주축이 돼서 그해 6월3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창립된 전언회가 올해로 창립 30주년을 맞았다. 전언회는 30년 동안 초대 회장이었던 박권상씨 등 일부는 벌써 고인이 됐고 창립 당시 전주북중전주고출신 재경 언론인만을 대상으로 했던 모임은 전북소재 고교출신으로까지 회원이 확대되는 등 많은 변화가 있었다. 특정지역 출신 재경언론인 모임이 30년 동안 거의 매월 빠짐없이 회원의 날 행사 등을 이어오며 존속해온 것은 전언회가 유일하다. GRDP(지역총생산)이 46조원으로 제주도와 강원도 다음으로 열악한 전북의 도세를 감안하면 대단한 일이라 할 것이다. 지난 12일 열린 창립기념식에서 한 참석자는 전언회원인 김화성씨가 올해 펴낸 책 <전라도 천년>의 글을 인용해 느긋하면서도 솔찬히 아그똥한 전주 양반네들에서 그 한 배경을 찾았다. 전북인들이 평소엔 느긋하지만 막상 일에 부닥치면 아그똥한(전북인들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그 뜻을 알리라) 성정이 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참석자는 지역차별이 극심하던 과거에 그나마 차별이 덜해 실력으로 겨뤄볼만한 직역이 언론과 법조계여서 이 분야에 실력있는 인재들이 몰렸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과거 전북은 도세에 비해 상대적으로 언론인과 법조인이 다수 배출돼서 주목을 받았다. 전언회 창립당시에도 전주고 출신 언론인은 200여명이 넘어 단일 고교로는 전국 최다였다. 전북에선 언론인과 법조인이 양적으로만 다수 배출된 게 아니었다. 중견 언론인 단체인 관훈클럽의 창립멤버 10명 가운데 절반인 5명, 즉 박권상, 조세형, 임방현, 정인량, 김인호씨가 전주고 출신이었고, 가인 김병로 전 대법원장과 도시락 검사장 최대교 전 서울고검장, 사도법관 김홍섭 전 서울고법원장 등 해방 후 한국 법조계를 바르게 이끈 이른바 법조 3성(聖)도 모두 전북출신이다. 하지만 전언회가 명맥을 잘 이어오긴 했지만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회칙에는 언론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회원 상호간의 친목을 도모한다고 목적이 나와 있지만 회원들 마음속에는 고향 전북 발전에 기여한다는 정신도 배어있었을 것이다. 바로 이점에 비추어보면 과연 제대로의 역할을 했냐는 점에서 반성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최근 중앙언론은 물론 월스트리트 저널 등 해외언론까지 나서서 국민연금관리공단 기금운용본부장의 장기 공백사태 등에 대해 전주패싱,돼지와 이웃, 논두렁 본부 등으로 사실을 왜곡하며 폄훼할 때 전언회는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 특히 같은 언론단체인 전북기자협회가 왜곡보도 중지 등의 성명을 내며 고군분투할 때 전언회는 성명은 커녕 기자 개인차원에서도 중앙언론의 왜곡보도에 팩트 체크 등을 통해 대응도 못했다. 이런 사례는 과거 새만금사업이나 호남선 KTX사업 등에서 전북이 홀대당할 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서른 살을 맞은 전언회, 이제부터라도 언론인 특유의 기계적 중립에서 벗어나 고향발전을 위해서는 보다 적극적으로 활동해야 할 것이다. 물론 사실을 왜곡하지 않는 저널리즘 정신을 지키면서 말이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8.09.26 18:30

문재인과 김정은 그리고 운동화

민경중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사무총장 젊은 사람들과 대화중 옛날에 우리는~이라고 하면 금방 꼰대라는 소리를 듣는다. 그래도 919 평양남북정상회담을 지켜보면서 옛날 얘기 한번 해보려고 한다. 60년대 말 운동화 한 켤레는 우리 세대에게도 작은 사치였다. 삼형제 중 막내였던 난 형들에 비해 고무신을 신었던 기억이 별로 없다. 그런데 전주 오목대에서 삼형제가 찍은 사진에 큰 형과 난 고무신인데 둘째형만 낡은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언젠가 부모님께 왜 둘째형만 운동화 사주고 저는 고무신 신겨주셨느냐고 물었다. 어머니는 그 운동화는 큰형이 신던 것을 물려 준 것이고 한 번도 둘째에게는 새신을 신겨 본 적이 없다. 큰형은 장남이라고, 넌 막내라고 항상 새 운동화, 새 교복만 사줬다. 언젠가 추석 명절에 그 얘기가 나왔을 때 둘째 형은 나도 새 운동화를 한번만이라도 가져봤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지만 차마 속내를 말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같은 형제간이라도 형편에 따라 입고 신는 것이 이렇게 다르다. 하물며 한민족인 남북한의 지금 처지가 크게 다르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보면 마치 이제는 잘 살게 된 형이 어릴 적 가정 형편 때문에 마음에 독기와 상처만 받고 자란 동생을 오랜만에 만나 달래고 치유해 가는 과정을 보는 듯하다. 2000년대 초 평양에 남북고위급 경제회담을 취재하러 간적이 있다. 당시 북한 시골에서는 굶어 죽는 사람들이 많이 발생하고 생활고로 탈북이 줄을 이을 때였다. 어스름한 저녁에 평양 순안공항에 내려 고려호텔로 가는 동안 사방이 어두컴컴해 도로 양측에 건물이 전혀 없는 줄 알았다. 나중에 낮에 돌아올 때 보니 전기사정으로 아파트들이 불을 켜지 못한 것이었다. 고난의 행군속에서도 유독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다. 평양 거리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어린 아이들은 남한의 또래아이들에 비해 체격이 무척 왜소했다. 그 무리 속에서 내 눈길을 끈 것은 당시 유행하던 만화캐릭터가 붙어 있는 새 운동화였다. 나중에 북측에서 나온 관계자와 밤늦게 술한잔 기울이며 낮에 본 운동화 얘기를 조심스럽게 꺼내자 이렇게 말했다. 우리 민족은 원래 자식사랑이 유별나지 않습네까? 부모가 아무리 배곯아도 자식에게 좋은 것 입히고 먹이고 싶은 마음은 북남이 다 똑같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남북 경제회담은 북측이 경제적 지원을 받는 회담이라고는 해도 자격지심이 큰 그들이 순순히 어려운 사정을 인정하는 것은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한편으로는 자식들을 걱정하는 그 마음을 엿보며 가슴이 아렸던 기억이 있다. 김대중 대통령 재임시 햇볕정책에 따른 경제지원을 퍼주기고 결국 식량이 아이들보다는 군대에 들어간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그 북측 관계자의 말이 떠오르는 것이 사실이다. 정말 그럴까? 하는 마음이다. 우리 속담에 곳간에서 인심난다라는 말이 있다. 사흘 굶으면 아무리 선비라도 담 넘지 않을 사람이 없다라는 속담도 있다. 성장기에 충분한 영양공급을 받지 못하고 자란 북측 아이들은 남측 아이들에 비해 체격이 왜소할 수 밖에 없다. 더군다나 제 때 배불리 먹지 못한 어릴 적 상처는 커서도 결국 강퍅한 마음만 들게 할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때마침 19일,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를 위한 평양공동선언이 발표됐다. 연내에 김정은 위원장이 서울도 답방하다는 희망적 소식도 나왔다. 한 걸음 더 나아간다면 김 위원장이 김일성과 김정일이 생전에 그렇게 가고 싶어했던 34대 전주 김씨(全州金氏) 시조인 태서(台瑞)묘가 있는 전주 모악산에 와서 성묘도 하고 전주 한옥에서 하룻밤 묵으며 가면 어떨까 하는 발칙한 상상도 해보게 된다. 그리고 이번 추석에는 형에게 새 운동화 하나 사서 선물해 드려야 겠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8.09.19 19:23

전북의 예술적 기질을 미래 육성 산업으로

김홍규 아신그룹 회장 전북에 오는 이들에게 한 상을 잘 차려 내면 사불여(四不如)라고 관리는 아전만 못하고, 아전은 기생만 못하고, 기생은 소리만 못하고, 소리는 음식만 못하다는 말을 꺼내며 감격스러워 한다. 예법을 중시하는 종가에는 아주 고급스런 제기 세트를 갖추고 있는데 대개 남원 공방에서 장인이 예닐곱 번 옻칠해서 정성스레 만든 것이다. 거기에 방짜 유기 수저와 전주 한지에 그린 병풍까지 더하면 한 집안의 품격이 한껏 올라가게 된다. 이중환의 <택리지>에서는 사람이 살기 좋은 곳으로 지리, 산수, 인심, 생리 4요소를 꼽고 있는데, 그 중 한 곳이 전북(남원)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전북은 침선장, 소목장, 선자장, 악기장 등 전국에서 가장 많은 무형문화재를 보유한 예향이다. 전북은 지금의 판소리 전통이 살아있게 만든 수많은 명창들이 태어나고 묻힌 소리의 고장이며, 한량무나 살풀이 춤, 시조창, 가야금 산조 등등 한국 전통 예술의 산실로 대한민국의 혼을 보여주는 창문이 되고 있다. 이런 어마어마한 예술적 기氣를 살려 연예계나 스포츠계에서 맹활약중인 많은 분들을 만날 수 있다. 예술적 기질, 그 가운데에서도 음악적 기질은 긍정적 요소를 기본으로 한다. 슬퍼도 노래하고, 기뻐도 춤을 추면서 풀어내는 무한한 긍정성이 우리 도민의 기질과 가치라고 할 것이다. 이러한 전북 도민의 예술적 기질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인물로 꼽으라면 단연코 방탄소년단을 키워낸 방시혁을 들 수 있다. 그의 부모님은 두 분 다 전주 출신으로 아버지는 전주고등학교를 나와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을 졸업하고 행정고시로 공무원에 입신했다. 서울지방노동청장,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을 지냈고, 어머니는 전주여고를 나와 서울대를 졸업하였다. 그분들은 엘리트 출신임에도 자녀들의 예술적 기질을 포기시키거나 만류하지 않았다. 방시혁은 서울대 미학과를 갔으나 결국은 음악인의 길로 들어서서 지금의 한류 열풍의 핵 방탄소년단을 키워냈다. 이는 갑자기 툭 튀어나온 행운 같은 게 아니라 오랜 세월 맥을 이어온 전북의 예술 혼이 알게 모르게 몸에 배어있었기 때문이다. 제대로 멋과 흥을 내는 법을 부모님과 주변 환경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을 게 아닌가. 여기에 우리가 한 가지 더 주목해 볼 것은 이러한 전북의 예술적 기질이야말로 미래 4차산업의 근간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방시혁의 친척인 방준혁은 게임회사 넷마블의 의장이고 방시혁은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대표이다. 세계적으로 한류 열풍이 있는 곳에 두 회사의 게임과 노래가 진출하지 않은 곳이 없다. 두 회사의 공통점은 인간의 희노애락을 파는 문화 기업이라는 점이다. 이런 세계적인 문화 기업은 한국 예술의 전통과 맥을 전승하고 육성해 온 전북이라는 토양이 있었기에 탄생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예측하기 어려운 시대 상황 앞에서 희노애락을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열고 있다. 거듭되는 불황에도 영화, 음악, 게임 등이 성장세를 달리고 있다. K-pop을 비롯한 문화산업이 미래 4차 산업의 주역이 되는 필연적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를 위해 전북의 예술적 기질을 이어받은 인재를 양성하는 데 여러 전북인들의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멋과 풍류의 전북 예술로 미래 산업을 선도할 청사진을 다 같이 그릴 수 있기를 바란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8.09.12 19:26

‘드라이브 스루’ 어디까지 아니?

최훈 행안부 지방행정정책관 길을 걷다 보면 DT라고 적힌 문구를 볼 수 있다. DT는 드라이브 스루(Drive-Through)의 약자이다. 차에 탄 채로 햄버거나 커피를 주문하는 방식을 말한다. 주차난이 심각한 요즘, 주차에 따른 번거로움을 줄이고 시간을 단축할 수 있어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다. 드라이브 스루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건 1992년 맥도날드 부산 해운대점이니 벌써 25년이 넘었다. 미국은 훨씬 오래 전인 1930년대 미주리주 그랜드내셔널 은행에서 최초로 도입했다. 당시에는 고객이 승차한 채 별도로 설치된 창구에서 입금만 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패스트푸드 음식점에 도입된 것은 1947년 미국 스프링필드의 레드자이언트 햄버거에서 시작해서 1969년 웬디스, 1970년 맥도날드를 거치면서 폭발적으로 확산된다. 지금은 드라이브 스루가 외식업계를 넘어서 편의점, 약국, 투표, 장례식장 등 다양한 곳에서 이용되고 있다. 2017년 3월 네덜란드 총선에서는 드라이브 스루를 이용한 투표를 도입했고, 이전 총선에 비해 투표율이 8%p나 증가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2017년 일본에서는 문상(問喪)을 드라이브 스루로 하는 장례식장이 등장했다. 조문객이 차에 탄 채 태블릿 PC 방명록에 이름을 적고 조의를 표하는 방식인데, 고령자나 시간적 여유가 없는 조문객들의 편의를 위해 계획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행정서비스에 도입한 사례가 있다. 광주광역시 광산구 첨단2동 주민센터에서 운영하고 있는 드라이브 스루 민원센터가 그것이다. 차에 탄 채로 주민등록 등초본, 가족관계증명서 등 21개의 민원을 즉시 발급받을 수 있다. 2017년 이용건수가 전체 민원발급 건수의 16%인 20,000여건에 이르렀고, 그 수는 매년 증가한다고 한다. 이처럼 주민의 삶을 더 편리하게 바꾼 행정혁신은 주민의 불편을 지나치지 않고 세심하게 바라 본 한 공무원의 관심에서 시작되었다. 주민센터 내 주차공간이 10면밖에 되지 않아, 민원인들이 주차 공간을 찾느라 빙빙 돌다 돌아가야 되는 경우가 많았다. 담당 공무원은 어떻게 하면 그 불편을 해소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과정에서 이 아이디어를 생각했다고 한다. 관심에서 시작된 아이디어로 주차난이 해소됨은 물론, 노약자나 장애인 등 거동이 불편한 분들이 민원을 발급받는데 훨씬 편리해졌다. 이러한 공로 덕에 행정 및 민원제도 개선 우수사례 경진대회에서 행정안전부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행정혁신이라 하면 흔히들 거창하고 어려운 것을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실제로 주민이 체감하는 변화는, 드라이브 스루 민원센터와 같이 생활 속 불편을 해결해주는 것이다. 주민의 삶을 행복하게 하는 지방행정혁신을 위해 지난 3월 정부혁신전략회의에서 정부혁신 종합 추진계획이 확정되었고, 자치단체도 실행계획을 수립해서 주민과 호흡하며 실천하고 있다. 행정에 사회적 가치를 반영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주민의 참여와 협력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있다. 낡은 관행을 개선하고 신뢰받는 지방행정을 구현함은 물론이다. 지방행정혁신은 주민의 삶에 대한 관심과 애정에서 시작한다. 드라이브 스루처럼 공무원이 주민의 불편을 외면하지 않고 관심을 기울인다면, 혁신은 어디에서나 가능하다. 주민의 삶을 나아지게 하는 제2, 제3의 드라이브 스루가 전국 방방곡곡에 펼쳐지길 기대한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8.09.05 19:42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