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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인 병역특혜제도 전면 재검토 시급하다

윤승용 남서울대 총장 대한민국의 은메달을 기원합니다.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이 한창인 가운데 한국 야구팀의 졸전을 바라는(?) 온라인이 뜨겁다. 댓글의 골자는 체육인의 병역특혜, 특히 야구팀의 병역면제 특혜를 둘러싼 찬반이다. 온라인 상에서는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야구팀이 우승을 하지 않기를 바라거나 설사 금메달을 따더라도 병역면제 혜택을 줘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압도적이다. 특히 대만과의 1차전 경기에서 2대1로 충격패를 당하면서 여론은 더 악화중이다. 야구팀에 비난이 집중된 것은 지난해 군 입대를 앞뒀던 오지환, 박해민 선수가 입대를 포기한 것이 아시안게임 출전 후 병역면제를 노린 꼼수였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이러한 주장이 설득력을 더해가면서부터. 운동선수의 병역면제 특혜 시비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운동선수에 대한 병역특혜는 1973년 유신정권이 엘리트 체육 육성을 통한 국위선양을 구실로 올림픽 입상자들에게 병역특혜를 주면서 도입됐다. 그 이후 혜택 범위를 놓고 확대, 축소를 반복하다 현재는 올림픽은 동메달이상, 아시안게임은 금메달리스트로 한정됐다. 이번에 논란이 예년에 비해 가열된 것은 과거의 문제점을 미봉한 채 다시 야구 등 일부 단체종목에서 누가 봐도 뻔한 병역특혜용 대표팀 구성을 노골화했기 때문이다. 야구의 경우 이번 아시안 게임도 과거처럼 일본, 대만 등 8개 팀이 참가했지만 두 나라를 제외하고는 한국의 중학교 수준정도의 전력이다. 그나마 일본 등은 실업팀이 참가해서 프로 최정예가 참가한 한국을 제외하고는 그야말로 동네야구수준이다. 체육인의 병역특혜에 여론이 비우적인 이유는 스포츠 정신에 위배된다는 점과 대외적인 체면의 문제가 거론된다. 아마추어리즘에 비춰보면 병역특혜는 엄청난 보상이다. 또한 세계적으로 징병제를 실시하는 국가 중에서 올림픽 메달리스트에게 병역면제 혜택을 주는 나라는 한국이 거의 유일하다. 이 때문에 한국의 체육인 병역특혜 제도는 종종 해외언론의 조롱거리가 돼왔다. 다음으로는 종목간의 형평성의 문제다. 이미 8년 전의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도 지적됐지만 당시 야구팀의 금메달과 수영 박태환 선수의 금메달, 그리고 육상에서의 메달을 색깔로만 비교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 동네야구대회서 우승한 것과 육상, 수영 등의 비인기 기본종목에서 획득한 메달은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다. 또 지적할 점은 병역면제 덕에 인기 종목의 프로선수들이 누리는 과다한 금전적 혜택이다. 특히 프로야구와 축구선수들은 병역면제라는 날개를 다는 순간 천문학적으로 몸값이 치솟고, 면제기간에도 억대의 연봉혜택을 누린다. 같은 젊은이인데 누구는 전방 철책선에서 근무하며 월 30~40만원을 받지만 누구는 병역면제 덕에 그 기간에 수십, 수백억 원의 수익을 올린다는 것은 분명 문제다. 병역문제는 우리 국민에게는 가장 민감한 이슈다. 가장 첩경은 병역혜택을 없애는 것이다. 하지만 기왕의 혜택과의 형평성이 문제된다면 거액의 연봉을 받는 선수들의 경우에는 수익의 일정 정도를 환수해서 해당 종목의 발전기금 등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수 있다. 손흥민의 연봉은 442만파운드(한화 63억원)이고 오지환과 박해민의 연봉도 억대가 넘는 2억9천만 원이다. 이들이 입대할 경우 겨우 매월 수십만원 밖에 받지 못한다. 이를 감안하면 적어도 이들이 군 면제혜택을 받을 경우 군입대시 포기해야하는 연봉과의 차액 중 합리적인 금액을 징수해서 체육발전기금 등으로 활용하는 방안 등을 추진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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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8.29 19:56

메모리얼 벤치

민경중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사무총장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 100년 기상관측 기록을 연일 갈아치우던 폭염이 사라지고 아침 저녁으로 제법 서늘하다. 겨울 옷 챙겨야하는 것 아니냐는 농도 이상하지 않다. 무더위와 싸우던 고통의 기억은 점차 사라지고 추위와의 대비를 벌써 얘기하고 있으니 말이다. 인간에게 기억은 편리한 장치다. 기억과 망각은 신이 우리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만약 우리가 경험했던 모든 일을 잊지 않고 기억한다면 과부하 걸린 기계 장치처럼 뇌는 견디지 못할 것이다. 인간의 뇌는 정보가 들어오면 전두엽에서 판단해서 측두엽과 해마의 도움으로 오래 기억할 수 있게 한다. 세계적 뇌 과학자 한나 모니어와 철학자 마르틴 게스만이 함께 쓴 <기억은 미래를 향한다>라는 책에서 기억은 과거를 보존하는 능력이 아니라 미래를 계획하는 능력이라고 말했다. 최근 뇌 과학자들은 집단기억(collective memory)을 뇌 과학의 새로운 연구방향으로 설정하고 연구가 한창 진행 중이다. 미국에서는 911 테러사건과 관련한 사회적 충격과 집단 기억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 우리의 경우 2014년 발생한 세월호 침몰사고가 대표적이다. 흔히 트라우마로 표현되는 정신적 외상 충격은 사고 당사자나 가족뿐만 아니라 사회 저변에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 이런 사고를 기억하는 방식은 동서양이 많이 다르다. 우리는 고통스런 기억일수록 이제는 잊어라!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고 말한다. 이 말이 얼마나 남은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는 말인 지 당사가가 되어보지 못하면 모른다. 그런데 외국은 오히려 우리는 당신을 영원히 기억하고 있어! 끝까지 함께 할게라고 위로한다. 얼마 전 여름휴가 때 캐나다의 곳곳을 돌아다니며 부러웠던 것이 있다. 바로 시가 운영하는 메모리얼 벤치제도다. 가장 뷰가 좋은 도심 공원이나 의미 있는 장소에는 꼭 시민들이 기증한 메모리얼 벤치가 있다. 캔모어라는 작은 마을의 호숫가 풍경이 너무 좋아 한 시간 동안 의자에 앉아 혼자서 풍광을 즐기고 있었다. 의자에는 어린아이의 이름과 출생, 사망연도와 함께 이런 문구가 적혀있었다. A Hero remembered never dies (너를 기억하는 한 결코 사라지지 않아). 그때 어느 젊은 부부가 와서 조약돌을 의자 옆에 놓고 기도를 드렸다. 사연을 물어보니 짐작대로 하늘나라로 간 아이의 부모였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보낸 시간들을 벤치나 공공물에 기록하는 것은 미국과 캐나다, 영국 등에서는 오래 전부터 시행된 일이다. 시민들이 신청하면 일정한 심사를 거쳐 5년에서 길게는 10년까지 작은 태그를 붙인 의자를 설치해준다. 지역마다 비용이 다르지만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1천만원까지 기부를 한다. 전라북도와 전주에는 좋은 풍광과 의미 있는 장소들이 적지 않다. 전주시 민원과에 물어보니 메모리얼 벤치에 대한 시민들의 정책적 제안은 없었다고 한다. 각자가 기억하는 방식은 다르겠지만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 스승, 희생과 헌신을 한 공무원, 의인 등 그들을 잊지 않는 장을 펼쳐 준다면 의미 있지 않을까? 그렇게 모아진 돈은 소외된 이웃들과의 나눔에 쓰인 다면 더욱 빛날 것이다. 수구지심인지 타향에서 살다보니 나이들 수록 고향 생각이 자주 난다. 이 제도가 받아들여진다면 나부터 우선적으로 하고 싶다. 어릴 적 우리 삼형제가 놀던 오목대에 사고로 돌아가신 큰 형의 이름과 함께 이렇게 적고 싶다. 작은 동산에서 키운 꿈이 큰 산이 되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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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8.22 21:10

미래 4차산업은 고향 전북에서

▲ 김홍규 아신그룹 회장 내 고향은 폐항. 내 고향은 가난해서 보여줄 건 노을밖에 없네. 이준익 감독이 영화 <변산>에서 주인공의 입을 빌려서 읊은 시다. 계속 떠올리게 되는 여운이 남는 문장이다. 고향에 대한 애증이 이보다 잘 묻어날 수가 있나. 요즘 고향 전북을 바라보는 전북인 심정이 이러하다. 변산이 아니라 전북 전체가 보여줄 거라고는 노을밖에 없는 그런 곳이 될까 봐 마음이 적잖이 쓰인다. 아름다운 산하로 천년이나 지속되는 동안 나라에 필요한 인재들을 수도 없이 배출한 고장인데 왜 지금은 육지 속의 섬처럼 소외되고 가난하고 꼴찌를 면치 못하는 그런 대접을 받고 있는지. 재정자립도가 22.1%로 전국 광역자치단체 중 꼴찌, 도 전체 경제력이 수도권의 어느 중견 도시 하나만도 못하다고 평가받고, 가까운 대전과 광주가 인구를 흡수하고 있어서 광역시를 배출 못한 불운을 안고 있기도 하다. 625 전쟁 직전인 1949년 인구보다 2018년 인구가 줄어든 지역은 전북뿐이다. 이런 실정을 극복하기 위해 무언가 해야 하는데 고향을 떠나온 지 오래되었다, 바쁘다 등 여러 핑계로 고향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할 따름이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또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이른 때라고 하니 지금이라도 내 고향 전북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여러 재경 전북인들과 함께 고민하고자 한다.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와 GM자동차 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군산지역 경제가 초토화된 것은 상상을 초월한다. 유령도시처럼 변해가는 군산이 희망을 건 것은 새만금, 새만금 특별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서 앞으로 전북 향방은 이들의 성공 여부에 달린 상태라고는 하지만 새만금에만 기대고 있기에는 전북의 청사진이 너무도 열악하다. 새만금은 방조제를 완공하는 1차 마무리 단계까지 무려 20년이 넘게 걸렸다. 앞으로 안정이 되어서 수익을 창출하기까지 얼마의 세월이 더 걸릴지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또한 연간 500만 명이 찾는다고는 하지만 전주한옥마을 관광산업에 몰두하기에는 산업 규모 면에서 한계가 있다. 여론조성이 시급하다. 유난히 전통 깊은 지역이어서 그런지 우리 지역 출신들은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좀 나서야 할 때이다. 전북이 텅텅 비지 않았는가. 군산 지역에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와 GM자동차 공장이 빠져나간 자리에 그만한 규모의 기업을 다시 유치해 오는 데 목소리를 내서 힘을 보태야 한다. 삼성그룹의 전자장비산업 단지를 군산에 유치해 오자는 움직임이 솔솔 일고 있다. 군산상공회의소에서 나서서 삼성그룹에 건의를 했다고 하나 무슨 뾰족한 대답을 들은 건 아니다. 삼성은 전장사업팀 신설과 함께 전기차 분야 세계 1위인 중국 BYD사에 5000억 원을 투자하고, 전장사업 분야 글로벌 선두 기업으로 손꼽히는 미국 하먼사를 인수하는 등 미래산업 경쟁력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는데 그런 신사업을 군산 지역에 이미 마련된 기반을 토대로 시작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삼성 내부에도 전북 출신은 있을 테고, 중앙 정부에도 전북 출신은 많다. 삼성이 결단을 내릴 수 있게 전북인이라면 다 같이 나서서 삼성그룹 전장사업은 군산에서라는 여론을 조성해 나가야 한다. 외지에서 온 이들에게 보여줄 거라고는 노을만 있는 전북이 아니라 노을도 아름답고, 사람도 아름답고, 산업도 꽃 피는 전북을 보여주면 얼마나 좋겠는가. 영화 <변산>이 흥행만 했어도 올여름 전국에 전북 여행이 강타했을 텐데, 아쉽다. 여수는 노래 하나로 밤마다 바다에 사람이 넘친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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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8.15 20:02

지방세의 고디바, 납세자보호관

▲ 최훈 행안부 지방세제정책관 벨기에산 수제 초콜릿 회사명인 고디바(GODIVA)는 신의 축복이라는 뜻이다. 초콜릿이 주는 달콤함을 신의 축복이라 칭한 걸까? 이 회사의 로고는 말을 타고 있는 여성의 형상을 이미지화한 것이다. 이 여성은 11세기 영국 잉글랜드 중부 지역에 위치한 코벤트리(Coventry) 영주의 부인인 고디바(Godiva)이다. 고디바가 말을 타고 달렸던 11세기 코벤트리 마을의 백성들은 무거운 세금에 지쳐 있었다. 백성들은 영주의 부인 고디바를 찾아가 백성들의 현재 상황을 호소하며 세금을 경감해줄 것을 간곡히 요청하였고, 고디바 부인은 남편에게 백성들이 세금 부담에 지쳐 있는 모습을 알려주며 징수액을 줄여줄 것을 부탁한다. 이에 영주는 부인이 절대 시행치 못할 만한 조건을 내건다. 나체로 말을 타고 마을을 한 바퀴 돈다면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부인 고디바는 백성들을 위해 기꺼이 마을을 나섰다. 영주는 고디바의 행동에 깜짝 놀라 본인이 백성들의 무거운 세금부담을 생각하지 못하였음을 깨닫는다. 이러한 고디바의 용기와 사랑을 초콜릿의 달콤함으로 표현한 것이다. 우리 곁에도 고디바가 있다. 납세자의 권익 찾기를 도와주는 지방세 납세자보호관이다. 기존 법에는 임의 규정이었던 납세자 보호관 제도가 운영된 지방자치단체는 2개뿐이었고 이마저도 실적이 미미했다. 그러나 2018년부터 지방세기본법을 개정하여 모든 지방자치단체에 배치할 것을 의무화하고 세무부서가 아닌 별도의 부서에 배치되도록 하여 독립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그 권한을 대폭 강화하여 이용 활성화에 힘쓰고 있다. 또한 자격기준도 공무원뿐 아니라 변호사, 세무사 등 민간 전문경력자까지 확대하여 전문성을 높였다. 바쁜 일상을 살다 보면 지방세 고지서를 받더라도 구체적인 내용들을 자세히 들여다볼 시간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때문에 납세자에게 억울한 일이 생기더라도 이를 확인하고 과세관청에 신속하게 이의를 제기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이때 지방세 납세자 보호관에게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첫째, 기존에는 이의신청 기간이 지났을 경우 소송으로 억울한 점을 해결할 수밖에 없었지만 지방세 납세자보호관 제도를 이용할 경우 복잡하고 부담스러운 소송 없이 납세자보호관이 직접 세무부서에 시정을 요구할 수 있어 납세자의 권리를 찾기가 훨씬 쉬워졌다. 둘째, 지방세 체납자의 생계형 차량을 압류 후 공매 처분한다면 체납자는 재기 가능성을 잃게 될 수 있다. 그러나 지방세 납세자보호관과 세무 상담 후 체납액 분납 제도를 안내받아 분납계획서를 제출한다면 차량의 공매처분을 막고 추후에는 납세자와 과세관청이 모두 웃을 수 있다. 이와 같이 세무 상담을 통해 납세자의 고충을 듣고 납세자의 상황에 맞는 해결방안을 안내해준다. 셋째, 폭염 등 천재지변이나 산업 위기 상황에 닥쳐 사업 자금 경색으로 지방세 신고납부가 어려워지는 경우가 있다. 지방세 납세자 보호관에게 기한 연장 신청을 하면 사실을 확인한 후 지방자치단체장의 승인을 얻어 기한을 연장할 수 있다. 또한 사업이 중대한 위기에 처하여 당장 지방세 납부가 불가능하다면 납세자 보호관을 통하여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징수유예를 신청하고 유예기간 동안의 수익으로 지방세를 납부할 수 있어 자금융통의 어려움을 덜 수 있다. 11세기 영국 코벤트리 백성들의 세금을 같이 고민해주었던 고디바. 우리에게 지방세 납세자보호관은 고디바이다. 이제 가까운 곳에서 우리의 고디바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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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8.08 20:31

노회찬 의원이 마지막으로 주장하려던 것은?

▲ 윤승용 서울시 중부기술교육원장 노회찬 의원의 죽음이 몰고 온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장례기간에 전국적으로 10만여 명의 추모객이 빈소를 찾았다. 추모제에도 수천 명의 인파가 몰려 그를 기렸다. 진보진영은 물론 보수정당 소속 의원들도 그의 죽음을 추모했다. 정치인의 죽음에 진보, 보수를 불문하고 이처럼 정서적 공감대가 일치한 것은 보기 드문 일이다. 그를 보내면서 국민들 사이에선 그가 남긴 유지를 어떤 식으로든 되살려야한다는 여론이 커지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너무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는 정치자금법을 개정해서 정치인을 정치자금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 의원이 드루킹 일당으로부터 돈을 받은 때는 20대 총선 한 달 전쯤이다. 노 의원이 삼성 떡값 검사들의 실명을 공개한 여파로 의원직을 상실한 상태, 즉 일반인 신분으로 선거를 준비하던 시점이다. 때문에 그는 당시 1년 내내 정치후원금을 모금할 수 있는 현역과는 달리 예비후보 등록을 마쳐야만 정치후원금을 모을 수 있는 처지였다. 그는 당연히 자금난에 시달렸을 터이고, 그의 고백대로 비합법적 절차로 돈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정치신인들에게 상대적으로 불리한데다 현역의원들에게도 너무 가혹한 현행 정치자금법을 현실적으로 고치자는 견해는 일견 일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그가 몸을 던지면서까지 주장하고자 했던 것이 과연 정치자금법의 유연화만이었을까? 그가 몸을 던지기 전의 일련의 행보를 꼼꼼히 더듬어보면 그것만은 아닌 것같다. 내가 보기엔 그보다는 오히려 국민의 눈높이에 비해 터무니없이 공고한 국회의원의 특권을 벗어던져야한다고 주장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국회 기록에 따르면 노 의원은 17대 국회 때 47개, 19대 때 15개, 20대 때 57개의 법안을 대표발의했다. 그가 발의한 법안을 살펴보면 그가 꿈꾸던 세상의 일단을 엿볼 수 있지 않을까? 그는 2004년 9월14일 자녀의 성과 본을 원칙적으로 아버지의 성과 본만 따르도록 한 것은 어머니의 권리가 차별받는다며 이를 개정하자는 민법개정안을 처음 대표발의한 이래 국가보안법 폐지법, 대체복무제를 인정하자는 병역법 개정안 등 주로 소수자 권익과 보편적 인권을 보장하자는 법안을 내놓았다. 노 의원이 생전 마지막으로 발의한 법안은 국회의원 특수활동비 폐지를 담은 국회법 일부 개정법률안이다. 7월5일 발의된 이 개정안은 국회의장이 예산을 편성할 때 특수활동비 예산을 편성할 수 없도록 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는 이에 앞서 평화와 정의의 모임 원내대표를 맡으면서 한 달에 수 천만 원이 담긴 현금을 특수활동비 조로 지급받자 양심상 도저히 못 받겠다며 세달 치를 자진반납하기도 했다. 노 의원은 특활비를 반납하면서 최근 대법원은 특활비 내역을 공개하라고 판결했는데 이는 국회에 특활비 존재 자체를 인정할 수 없다는 판단이라며 동일한 이유에서 정의당은 특활비 폐지를 당론으로 주장해 왔다고 말했다. 나는 바로 이 점을 주목하고 싶다. 그는 생을 마감하는 마지막 행적으로 국회 특활비 폐지를 필두로 한 국회의원의 특권 타파를 주장하고 싶지 않았을까? 그는 정치자금난에 시달리면서도 최근 들어 줄곧 특활비 폐지를 주장해왔다. 특히 원내대표단과 함께 미국출장을 다녀온 직후 그가 생을 마감한 것은 예사롭지 않다. 이는 여야 원내대표단간의 합의를 통해 특활비 폐지를 성사시키라는 무언의 시위가 아니었을까? 국민들은 함께 미국을 다녀온 원내대표단의 행보를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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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8.01 19:57

우리의 심장을 뛰게 하는 노래

▲ 민경중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사무총장 기상관측 이래 사상 최대의 폭염이 지구촌을 강타하고 있다. 올 여름 초입에 그래도 내게 더위를 가장 잊게 해준 일이 있었다. 바로 2018러시아 월드컵이다. 우리나라가 비록 마지막 경기에서 독일을 이겨주는 대이변을 연출했음에도 일찍 예선 탈락해주는 바람에 온전하게 다른 나라들의 수준 높은 경기를 마음 편하게 즐길 수 있었다. 이번에 내가 가장 주목했던 팀은 크로아티아였다. 유럽 최악의 빈국이자 인구 416만명에 불과한 크로아티아가 3번의 연장 승부로 결승까지 진출하는 과정은 드라마틱이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결승에서 프랑스에 패했지만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라는 각국 팬들의 찬사를 받았다. 내심 프랑스를 응원한 팬들보다는 크로아티아를 심정적으로 응원한 사람들이 많지 않았을까? 인구와 경제대국인 미국과 중국은 아예 참가조차도 못하고 약소국이 강대국을 이길 수 있는 게임이 월드컵 말고 또 있을까? 자국의 참가 여부와 관계없이 축구공은 둥글다라는 명제를 새기며 열광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축구중계를 지켜보며 가장 감동적인 순간은 언제일까? 물론 짜릿한 결승 골과 마지막 승리를 확정하는 휘슬을 불 때가 당연히 감동이 크겠지만 난 경기 시작 전 선수들이 부르는 국가(國歌)를 들을 때다. 심장이 뛰고 감동이 물밀 듯 밀려온다. 노래에는 묘한 마력이 있다. 없던 힘도 솟아나게 하고 힘든 일도 잊게 한다. 패배의 순간을 환희의 승리로 바꾸기도 한다. 그래서 고대로부터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들을 위한 출정가는 오늘날 국가로 바뀐 경우가 많다. 이민자들로 구성된 다양한 인종의 프랑스 선수들이 한 목소리로 부르는 라마르세예즈(La Marse illaise)도 프랑스대혁명 당시의 출정가다. 일어서라 조국의 젊은이들 영광의 날은 왔다의 가사처럼 프랑스는 결승전에서 대단합의 힘을 보여줬다. 크로아티아의 국가인 우리의 아름다운 조국은 그대여 당신은 우리의 유일한 영광, 조국이여 당신이 있는 곳에 들판 있고 산이 있네, 도나우 강이여 힘을 잃지 말아라라고 강조한다. 치열한 유럽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처절함이 담겨있다. 태극 전사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가슴에 손을 얹고 부르는 애국가는 비장하고 때로는 우리 모두를 하나로 만든다. 내게 국가만큼 또 하나의 감동을 안겨주는 노래가 있다. 바로 고등학교 교가(校歌)다. 세월이 흐르고 반백이 되어도 부를 때마다 가슴이 뜨거워지는 노래가 바로 교가다. 얼마 전 전주에서 고등학교 졸업 35주년 행사가 있었다. 600여 명의 친구 중 100여 명이 모였다. 이날 행사 마지막은 늘 그랬던 것처럼 교가였다. 노령의 푸른 줄기 기린봉 솟아 전주천 맑은 물도 굽이 도는 곳, 내 나라 내 겨레의 뻗어 가는 길 이 목숨 다하도록 이어갈 우리 마치 고교시절로 돌아간 듯 우리는 교가로 하나가 되었다. 80년 엄혹했던 전두환 군사정권과 광주항쟁이 있던 그해 고교생활을 시작한 우리 세대에게 교가는 큰 의미가 있었다. 서울로 올라와 교가 사랑은 더욱 커졌다. 대학 캠퍼스에 경찰들이 상주하던 살벌했던 때도 동문회 후 마지막은 교정에서 목청껏 부르는 교가였다. 기자 생활을 하며 고교동문 언론인 수 십명이 모여 회식을 한 후에도 광화문에서, 강남 사거리 한복판에서 교가로 대미를 장식했다. 칠레 출신의 소설가 이사벨 아옌데는 심장이 우리를 움직이며 우리의 운명을 결정한다라고 말했었다. 우리의 심장을 뛰게 하는 교가를 그래서 나는 애국가 만큼 사랑한다. 그리고 우리 친구들과 함께 운명이 다하는 그 날까지 교가를 부르고 싶다. △ 민경중 사무총장은 CBS베이징 특파원보도국장, 한국외대초빙교수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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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7.25 21:06

4차 산업혁명이 가져 올 유통시장의 변화

▲ 김홍규 아신그룹 회장 인류는 지금까지 총 세 번의 산업혁명을 겪었다. 18세기 초 영국에서 일어난 1차 산업혁명은 증기기관차 발명 덕분에 기계화라는 큰 혁신을 이루어냈다.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에 유럽에서 일어난 2차 산업혁명은 화학과 전기에너지 상용화를 가져왔다. 이는 그동안의 노동력을 대량생산으로 대체하게 되어 노동의 재분배를 일으킨 사회적 의미가 있다. 3차 산업혁명은 모두가 잘 알다시피 우리 생활에 컴퓨터가 일상화된 20세기 후반에 일어났다. 인터넷이 안 되면 잠시도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만든 것이 3차 산업혁명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막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진입하고 있다. 아직까지 4차 산업혁명이 피부에 확 와 닿는 것은 아니겠지만, 자주 접하는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모바일 등의 첨단 정보통신 기술이 우리 생활에 실제로 영향을 미치는 기술로 발전시키려는 단계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1, 2차 산업혁명은 제조 분야의 혁명을 가져온 결과물로 우리는 이를 책에서만 알 수 있으며 피부로 느끼는 것은 3차 산업혁명부터이고, 3차 산업혁명도 엄밀하게 따지면 인간의 노동력을 절약시켜 준 면에서 제조 분야의 혁명이라고 보는 게 마땅하다. 반면 4차 산업혁명은 생산자 중심 산업에서 소비자 중심 산업으로의 이동을 의미한다. 소비자의 요구를 얼마나 빨리 인식하고 대응하느냐가 기업 경쟁력의 핵심이 될 것이며 그 이면에서 가장 두각을 드러낼 분야는 유통과 창조 직능일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은 지금까지 축적된 산업혁명의 결과물을 바탕으로 초연결과 초지능을 특징으로 하기 때문에 더 넓은 범위와 더 빠른 스피드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 자명하다. 간단하게 말하면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말하는 일상적인 행위들이 인터넷을 통해 다 연결되고 기록되어 빅데이터화 되면 그것을 산업적으로 활용하여 발 빠르게 움직이는 기업만이 수익을 거둔다는 뜻이다. 유통업을 예로 들어보자. 전 세계적으로 2018년 3월 기준 유통 관련 스타트업에만 총 590억 달러, 우리 돈으로 65조 8000억이 투자되었다고 한다. 알리바바, 바이두, 아마존 등 세계적인 공룡기업들이 로봇, IoT, 빅데이터, AI 이 4대 혁신 기술을 이용해서 유통을 점령하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과거에는 어떤 소비가 어떻게 이루어질지 몰랐지만 이제는 수 세기 동안의 기후변화와 작물현황, 소비자들의 행동 패턴, 1인 가구의 소비 형태 등이 다 빅데이터화 되어서 비가 많이 오는 7월의 어느 날 전주의 어느 마트에 OO표 부침가루 몇 그램짜리가 필요할지 예측이 가능한 시대가 되는 것이다. 과거에는 좋은 제품이 있으니 사가라는 유통의 개념이 이런 제품이 필요하니 가져와라로 변화하는 셈이다. 불행한 것은 이 예측 가능한 정보와 활용도 높은 기술을 거대공룡 기업 말고는 아무도 가질 수 없다는 것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명료한 특징이다. 팔리지 않는 물건을 구비하느라 매장을 유지하는 소매업종은 자연스럽게 소멸되는 것이다. 마치 30여 년 전 일본에서 편의점을 처음 보고 동네 구멍가게의 멸종을 직감했던 것처럼 거대한 변화의 문 앞에 서 있음을 느낀다. 하지만, 늘 그래왔듯이 큰 주머니를 더 많이 채우는 게 똑같다면, 그것에 혁명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 적어도 혁명이라면 인간 삶의 걱정거리 하나는 덜어주어야 할 텐데, 이토록 눈부시게 발전하는 기술 앞에 서민들이 먹고 사는 걱정은 줄어들 줄 모르고 오히려 늘어나고 있지 않은가. 4차 산업혁명은 30년 후 우리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 공공의 개념으로 다시 살펴보아야 할 때이다. 인간의 삶이 한 치도 달라지지 않는 4차 산업혁명이라니. △김홍규 회장은 1990년도 국내 최초로 선진국 유통물류시스템을 도입해 편의점, 슈퍼마켓 등 유통산업을 발전시킨 선구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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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7.18 21:20

전북을 위하세(稅)

▲ 최훈 행정안전부 지방세제정책관 만약 숨을 쉴 때 돈을 내야 한다면 어떨까? 매우 황당한 발상인 것 같지만 베네수엘라의 수도 국제공항에서는 이 같은 발상이 현실이다. 공항 이용 승객들에게 공항 내 정화된 공기를 제공하는 대가로 공조설비 이용료, 일명 호흡세를 부과하고 있는 것이다. 의외로 이런 이색적인 세금은 역사 속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금은 없지만 중세 서양에 있었던 창문세는 부자의 집일수록 창문 수가 더 많다는 점에서 고안된 세금이었다. 비만과 당뇨 등을 앓고 있는 사람이 많은 현대 사회에서는 비만세, 설탕세가 바로 이런 시대의 특수성을 반영하고 있는 이색 세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나라도 시대의 필요를 반영하고, 새로운 세원 발굴을 통한 재정확충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렇다고 마구잡이로 세금을 걷을 수는 없다. 우리나라는 세금의 종류와 그 세율을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서만 과세할 수 있는 이른바 조세 법률주의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방자치단체가 새로운 세원을 발굴하기 위해서는 지방세의 종류와 세율 등을 정하고 있는 「지방세법」을 개정해야 한다. 그런데, 현재 운영되고 있는 지방세 중에서 과세대상의 추가만으로 쉽게 세원을 확장하고, 지역의 특수한 상황도 반영할 수 있는 세금이 있다. 바로 지역자원시설세이다. 지역자원시설세란 지방자치단체가 지역의 지하자원, 수자원 등을 보호개발하고, 재난예방, 환경보호개선 사업 및 지역균형개발사업에 필요한 재원 등을 확보하기 위해 징수하는 세금이다. 현재는 수력발전에 사용되는 발전용수, 지하수, 지하자원, 원자력화력발전을 과세대상으로 하고 있다. 여기에 예를 들면 해저자원, 폐기물 등 과세대상을 새롭게 추가하는 방식으로 세원 확대가 가능하다. 이러한 지역자원시설세를 통한 새로운 세원 발굴과 관련하여 20대 국회에서 「지방세법」 개정 논의가 활발하다. 현재 국회에 발의된 「지방세법」 개정안의 지역자원시설세 과세대상은 11개이며, 과세대상에 따라 해당하는 지방자치단체가 다르다. 예를 들어 강원도충청북도는 시멘트를 과세대상으로 추가하거나, 전라북도전라남도경상북도 등은 원자력발전소 세율을 인상하고, 납세지를 발전소 소재지에서 방사선비상계획구역으로 확대하는 내용 등이다. 모두 해당 과세대상이 주변지역에 미칠 수 있는 부정적인 영향을 해소하고, 지방재정을 확충하기 위해 발의된 것이다. 법안의 내용에 따라 전기요금 인상 또는 해당 산업 위축 등의 우려가 있다는 의견도 있어, 국회에서 신중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재정확충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2018년 애초예산 기준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자립도 평균은 53.41%이다. 전라북도 14개 시군의 평균은 27.92%로, 전국 평균의 절반 밖에 되지 않는다. 지방세로 벌어들이는 수입으로는 전라북도 14개 시군이 살림을 꾸리기 위해 필요한 예산의 1/4 정도 밖에 충당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그만큼 새로운 세원 발굴 등을 통한 재정확충이 절실하다. 이러한 지방재정확충을 위한 간절한 마음은 사석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나는데, 필자가 근무하는 지방세제정책관실의 건배사는 항상 지방세를 의미하는 세로 끝난다. 건강을 위하여를 건강을 위하세로, 하나로 뭉치자를 하나로 뭉치세로 외치는 식이다. 오늘 저녁에는 모두 이렇게 건배사를 외쳐보자. 전북 만세! 전북을 위하세! △최훈 정책관은 전라북도 기획관, 남원시 부시장, 행안부장관 비서실장, 전라북도 기획관리실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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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7.11 19:12

새만금개발공사 사장 제대로 뽑아야

▲ 윤승용 서울시 중부기술교육원장 문재인 정부 들어 전북의 오랜 현안인 새만금사업이 활기를 찾고 있다. 정부는 도민의 숙원에 부응해 새만금개발청장에 전북출신을 임명하고, 지지부진했던 내부매립 방식도 민자유치에서 정부 주도의 공공매립으로 전환했다. 매립을 주도할 새만금개발공사도 9월 설립을 향해 순항중이다. 남북2축도로와 새만금~전주간 고속도로 착수 등으로 SOC구축사업도 속도를 내고 있다. 그런데 아직도 새만금사업은 사업의 정체성과 추진주체 모호성이 여전한 실정이다. 새만금사업은 첨단산업단지 개발사업인가, 국제업무단지 조성사업인가, 국제관광단지 조성사업인가, 대규모 농업단지 조성사업인가? 추진주체도 총리실인가, 새만금위원회인가, 국토부장관 혹은 농식품부장관인가, 아니면 새만금개발청인가, 농어촌공사인가, 그도 저도 아니면 전북도인가? 이 사안은 이미 지난 5월 31일 새만금새전북21포럼 등이 주최한 심포지엄에서 심층적으로 지적됐다. 이날 새만금간척지의 활용방안에 대해 항공우주산업 중심축으로 조성, 남북미 경제협력특구조성, 스마트팜 조성 등 다양한 청사진이 제시됐다. 하지만 이날 정작 핵심사안인 매립방식과 자금조달 방안에 대해선 종합토론 과정에서 해양수산부 출신 전직 관료가 제시한 방안 외엔 별다른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제 새만금사업의 마지막 관건은 조기매립 문제로 귀결된다. 8년 전 세계 최장 방조제를 완공했건만 매립률은 36.1%에 지나지 않는다. 즉 새만금단지는 거의 3분의 2가 아직도 호수로 남아있는 것이다. 매립이 지지부진하다보니 사업부지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태양광사업자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수상태양광사업을 하겠다고 덤비고 있다. 신재생에너지 사업도 미래 먹거리로 좋은 방안일 수 있으나 거액을 들여 바다를 막아놓고 그 내륙호수에 햇빛발전소를 세운다는 것은 경제논리에 전혀 맞지 않는다. 이와 관련해서 광양항 개발사업을 추진한 경험을 토대로 새만금 매립방안을 제시한 해수부 출신 전문가의 제언은 새겨들을 만하다. 그는 군산항을 25만톤급 대형항만으로 확장하면 공사폐기물인 토사가 발생하는데 이를 활용하여 새만금 매립을 실행하면 토지 조성원가가 크게 떨어지고 이어 토지가치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므로 염가에 토지매각이 가능하다고 제안했다. 지금까지 새만금개발이 되지 않은 것은 과거 정부가 개발사업 예산을 제대로 주지 않은 탓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선순환이 이루어질 수 있는 새만금개발방안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매립을 위해서는 육상에서 약 5억㎥의 토사가 필요한데 물류비 등을 고려하면 사업장 반경 30㎞내에 토취장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부안군은 대부분이 국립공원이어서 토취가 불가능한데다 그나마도 남산만한 야산 120개 쯤을 깍아야 되는데 이는 환경문제 등을 고려하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결국 매립에 필요한 토사는 바다에서 구할 수밖에 없다. 두바이나 맨하탄도 그랬다. 바로 이런 배경 때문에 조만간 선임하게 될 새만금개발공사 사장은 이 분야에 정통한 적임자를 발탁해야한다. 하지만 들려오는 얘기로는 정치인과 기획재정부 출신 관료가 내려온다는 설이 파다하다. 절체절명의 기로에 서있는 새만금사업이 낙선 정치인이나 힘센 부처의 퇴임관료 일자리 마련을 해주기 위한 낙하산 안착지가 돼선 안된다. 거듭 강조하지만 새만금사업의 성공은 조기 매립이 관건이다. 이를 위해선 새만금개발공사 사장은 이 분야에 경험과 식견이 있는 경험자가 맡아야한다. 정부당국, 특히 사장선임에 직접 관련있는 김현미 국토부장관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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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7.04 19:49

호국보훈의 달을 보내면서

▲ 심덕섭 국가보훈처 차장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현충일과 625기념일이 있는 6월 한달 동안이라도 국가유공자에 대해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전하고 국민들의 나라사랑 정신을 고취하자는 취지에서 1963년 처음으로 지정되었다. 이로 인해 우리 국가보훈처에게는 6월이 일 년 중 가장 바쁜 달이다. 지난 한 달 동안 필자가 참석한 행사만 해도 20여 개가 넘는다. 그 중에서도 현충일과 625기념일과 같은 공식적인 국가기념일을 준비하는 것이 가장 큰 일이었다. 다행히 국가보훈처 주관 기념행사가 과거와 달리 흥미진진하고 감동을 주는 기념식으로 변했다는 주변의 칭찬도 많이 들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방송에서 기념식이 방영되면 채널을 돌렸다는데, 요즘은 기념식을 한편의 뮤지컬이나 드라마를 감상하듯이 즐겨본다고 한다. 국가유공자와 유족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한 행사도 다채로웠다. 대통령은 이분들을 청와대로 초청하여 위로와 감사 오찬을 대접했다. 국무총리도 보훈병원에 입원 중인 유공자들을 직접 찾아 위문했다. 또한 국가보훈처와 지자체, 보훈단체, 언론에서는 모범 국가유공자와 그 유족에 대해 포상을 실시하는 행사도 많이 가졌다. 국가유공자들의 희생헌신 정신을 시민들과 함께 기리기 위해서 거북이 마라톤대회라든지 국토 대장정 행사도 가졌다. 유엔군으로 625전쟁때 참전한 분들을 우리나라로 초청해 감사를 표하는 시간도 보냈다. 각기 나름대로 의미있는 행사였고, 국가유공자들에게도 소소한 감동을 주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국가와 공동체를 위해 몸을 바친 국가유공자들의 희생과 헌신에 비하면 이 정도 보훈행사로 끝낼 일은 아니다. 보훈의 개념이 역사상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은 5세기경 고대 그리스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431년에 그리스의 유명한 정치가이자 군인이었던 페리클레스는 전사자 추모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이 전몰자들과 그 유족에게 나라가 주는 그들에 대한 승리의 관으로서 그들의 자식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의 양육비를 아테네가 국고를 통해 오늘부터 보증합니다. 기원전 5세기부터 국가는 공동체를 위해 희생한 분들의 유족을 국가가 책임져 보호해 준다는 원칙을 천명해 왔다. 즉, 나라를 위한 희생과 헌신에는 반드시 마땅한 보상과 예우를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점을 인류의 문명사가 웅변해 주고 있다. 이런 보장이 없다면 어느 누가 국가가 위기에 처해 있을 때 분연히 나서서 자기 목숨을 바치려 하겠는가? 국가유공자에게 최상의 보상과 예우를 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국가유공자들에 대한 보훈은 반드시 중앙정부만 책임을 지는 업무는 아니다. 국가와 자자체가 함께 담당하는 책무이다. 따라서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도 지역 내 국가유공자에 대하여 각별한 보상과 예우를 해야 한다. 또 지역 내 독립유공자나 전쟁영웅들을 선양하는 사업들도 적극 추진해야 한다. 지역에 있는 각종 현충시설이나 독립유적지를 유지관리하는 데에도 각별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때마침 613 지방선거로 인해 새로 취임하는 단체장들이 많다. 단체장들도 이번 기회에 해당 시군의 보훈시책에 대해 종합적으로 점검해 보기 바란다. 더 나아가 독립국가민주유공자에 대한 보훈시책을 새롭게 설계해 주시기를 당부 드린다. 마지막으로, 함석헌 선생의 유명한 시 그 사람을 가졌는가중 일부를 인용하면서 호국보훈의 달의 의미를 되새겨 보았으면 한다. 만 리 길 나서는 길/처자를 내맡기며/맘 놓고 갈 만한 사람/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여기에서 밑줄 친 사람을 나라로 고쳐 다시 읽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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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6.27 19:35

타자(他者)의 시선

▲ 김광휘 행정안전부 이북5도위원회 사무국장 타향에서 칼럼을 7번째로 쓴다. 어느덧 마지막이다. 칼럼을 쓰는 동안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각을 가져보고자 애썼다. 그간 나의 시선을 살펴보니 대부분 아래에서 위를 보고 있었다. 거주하는 전주의 물리적 위치가 서남부이기도 하였지만 향인에게 수도 서울은 늘 높은 곳이다. 바라보는 초점도 하나였다. 돌이켜보면 언제나 전주의 생각, 전북의 사고만이 가득했다. 하이데거였던가, 언어란 존재의 집이라고. 한 번도 전북으로부터 떠남을 선택하지 않은 내게 고향은 영혼의 존재소이자, 세상을 바라보는 유일한 창이었다. 고향에서 나고 자라고 배우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다른 지역과 비교는 곧잘 했지만 전북인의 시각이 아닌 다른 눈을 가지기 어려웠다. 그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서울에서 생활한지 5년이 되었어도 마찬가지다. 몸은 서울에 있지만 내 정신은 여전히 전북에 머무르고 있다. 고향을 떠나와 다른 지역에서 계속 거주하는 자에게 요구되는 객관적 시선이 아직 구축되지 않았다. 기존의 전라북도 중심의 사고체계를 극복하지 못하면 아무리 서울에서 살아도 전북인의 시각이 지배적일 수밖에 없다. 타향에서라는 칼럼을 쓰면서 처음으로 바깥에서 안을 보려고 했다. 서울에서 고향을 보는 것이다. 칼럼이 내게 강제했던 타향이라는 앵글은 이산(離散)된 자에게 주어진 정신의 디아스포라였다. 고향에서 외부를 보아왔던 나는 이제 중요한 타자(significant other)가 되었다. 만들어진 타자는 본래의 나와 맞닥뜨린다. 그 와중에서 나와 타자가 교환했던 가치와 이념들은 상호 주관성의 그물에서 만났다. 이 사고의 전환과정을 통해 타자의 시각이 요구하는 고향에 대한 애정 어린 객관성을 어느 정도는 확보할 수 있었다. 지난 반년 동안 4주에 한 번씩 극심한 열을 앓으면서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란 말을 믿으면서 타자의 시각으로 여러 고민들을 해보았다. 그 중 가장 큰 화두는 시대정신(zeitgeist)이었다.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미래는 어떻게 변할 것인가. 이들은 뚜렷한 해법이 있지는 않지만 공기처럼 우리가 늘 부딪혀야 하는 명제들이다. 쉼 없이 고뇌하며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바로 시대정신이다. 또 묻는다. 나의 중요한 타자여, 그대 시대정신을 구하는가. 또한 고향의 유장한 아름다움도 엿봤고, 새로운 추세와 고향의 발전전략도 연계시켜 보았다. 심하게 변동하는 세상의 문법도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했다. 그 사이 정리된 생각은 현재 전북에서 하는 것처럼 전북이 잘 할 수 있는 일에 더 집중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북이 가지는 블루오션으로서 농업, 식물, 생태, 관광 등의 가치가 아주 크게 보였다. 타향이 고향과 아무리 지리적 격리를 요구한다 하더라도 타향에 있을 때 고향이 더 찾아진다. 국경지역인 변방의 애국심이 더 높고, 경계지역의 지역정체성이 더 명확하듯이 말이다. 타향에서의 기의(記意)는 고향이기 때문이다. 루이스 스티븐슨은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보다 희망을 가지고 계속 여행하는 것이 더 좋은 일이다. 진정한 성공은 열심히 노력하며 일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지난 6번의 칼럼에서 잠시 갖게 된 타자의 다른 시선으로 행한 고민들을 모두 쓰지는 못했다. 아직 많이 부족하다. 그러나 그 타자의 시각이 변주했던 고향 사모곡은 계속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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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6.20 20:36

전주 한정식, 이래선 안된다

▲ 윤승용 서울시 중부기술교육원장 지난 주 전주를 다녀왔다. 모처럼 동행한 지인을 비롯 고향 친구들과 저녁도 먹고 한옥스테이를 하는 호사까지 누렸다. 어릴 적 쏘다니던 교동 일대는 한옥마을 조성 이후 한국 최고의 핫플레이스라는 찬사가 과찬이 아님을 보여주듯 잘 단장돼 있었다. 국적 불명의 상업시설들이 눈에 거슬리기는 했으나 과거의 골목길이 말끔히 정비된 데다 전통미로 단장한 상점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전주에서도 잘 알려진 모 한정식 집에서의 저녁은 젬병이었다. 가격도 비싼 데다 음식의 질과 서비스도 엉망이었다. 서울에서 내려갈 때부터 맛과 멋의 고향 전주음식에 한껏 기대가 부풀었던 일행들은 전주 음식이 왜 이 모양이냐며 타박을 했다. 서울 친구들의 불평에 난 얼굴이 화끈거릴 수밖에 없었다. 이 집의 찬은 내가 어릴 적 먹었던 그리운 그 맛, 약간은 곰삭은 듯 하면서도 은은한 향이 어우러진 그런 메뉴는 아니었다. 예를 들면 토하젓, 새우탕, 굴젓, 콩자반, 묵 생채, 명태무침, 콩나물국, 모래무지 탕(이름만 들어도 침이 돈다), 인삼한과, 어포조림, 열구자탕, 약밥, 가오리찜, 고추튀김, 잡채, 깻잎, 구절판 등 말이다. 대신 칠레산 홍어에 중국산 김치를 곁들인 삼합, 외국산 소고기 불고기, 짜기만 한 된장국 등이 상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전주 음식이 예전만 못하다는 얘기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옥마을이 뜬 후 전주여행을 다녀온 서울 친구들로부터 전주 음식에 실망했다는 푸념을 들어온 지가 꽤 됐다. 특히 고향 친구 가운데 광주지역 기관장을 하고 온 친구들은 이구동성으로 전주한정식은 광주에 비하면 질과 양에서 비교가 안 된다며 목청을 돋웠다. 물론 아직도 전주는 비빔밥과 콩나물국밥, 그리고 가성비에 관한한 최고라 할 막걸리집과 요즘 새롭게 뜬 가맥집 등 음식에 관한 한 내세울 게 많긴 하다. 또한 수구정을 비롯해 전주한정식의 체면을 지키려는 전통 맛집들이 남아있긴 하다. 하지만 평균 차원에서 이제 감히 전주한정식이란 타이틀을 붙여주기엔 어림도 없는 집들이 일반화한 게 현실이다. 전북지방은 예로부터 드넓은 호남평야와 풍부한 해산물을 품고 있는 서해와 갯벌, 그리고 동부의 산악지대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어 식재료가 다양하고 풍부했다. 이에 따라 사대부와 지방 아전을 중심으로 격조 있고 풍성한 반상 차림을 특징으로 하는 특유의 남도 한정식이 식문화로 자리 잡았다. 이 같은 배경에서 식재전주(食在全州)라는 말도 나왔다. 또한 전주에는 사불여(四不如)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관리는 아전만 못하고, 아전은 기생만 못하고, 기생은 소리만 못하고, 소리는 음식만 못하다(官不如史, 史不如妓, 妓不如音, 音不如食)라는 말에서 나온 것으로 그만큼 전주인들의 음식 자부심은 대단했다. 일찍이 가람 이병기 선생은 전주 8미라고 하여 이 지역 특산물인 콩나물, 열무, 녹두묵, 미나리, 애호박, 모자, 민물 게 등을 높이 쳤다. 이런 다양한 제철 재료에 정성스런 손맛이 어우러져야만 격조와 품위의 전주한정식이 가능했던 것이다. 전주가 한옥마을로 다시 비상한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요즘 외지인들은 일제 강점기의 건축문화가 잔존해 있는 군산과 새만금 방조제를 거쳐 전주 한옥마을을 돌아보는 코스를 최고의 남도 여행으로 꼽는다. 그러나 국적불명의 꼬치집과 스낵집, 커피가게 등이 대세를 이뤄 정체성을 상실해가고 있는 한옥마을은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외화내빈으로 치닫고 있는 전주는 멋과 맛과 풍류의 본향으로 거듭나야만 한다. 새 전주시장이 맨 먼저 챙겨야 할 업무는 전주 바로세우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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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6.13 22:14

골목의 추억

▲ 최강욱 변호사법무법인 청맥 빵울치기란 게 있었다. 새봄이 오고 따스한 햇볕이 비치면 내가 살던 전주의 동네 아이들은 공터나 골목에 모여 테니스공을 갖고 주먹야구를 했다. 도루는 없었고 번트는 있었다. 자타 공인의 스타플레이어도 있었다. 맨손으로 해내던 기막힌 다이빙 캐치, 그리고 이어지는 역동작 송구는 물론이고, 한 손으로 잡아내는 직선타구와 왼손잡이도 2루수를 할 수 있었던 인간적인 경기~ 주먹야구를 일컫는 말이 지역마다 다르다는 건 서울로 대학을 간 뒤였다. 찜뽕이라는 친구도 있고 짬뽕이라 부르는 애도 있었다. 경상도 친구들이 말하는 야구사위 주먹치기도 있었는데, 사전에 등록된 단어는 또 찜뿌였다. 빵울치기는 방울(공)을 치는 거라는 유추가 가능하고 야구사위랑 주먹치기도 왜 그런지 알겠는데, 대체 찜뽕은 왜 그렇게 부른 건지 모를 일이다. 서울말이라고 다 표준말이 될 수 없다는 걸 다시 생각하는 순간. 하긴 하루라고 불렀다는 친구도 있었으니 정말 오리무중이다. 그 시절 아이들의 오락거리 가운데 쌈치기도 빼놓을 수 없다. 짤짤이라고도 했다. 홀짝보다 난이도가 높고 도박성이 강해 뒷자리 아이들의 필수종목이기도 하고 쉬는 시간은 물론, 소풍 때나 수학여행지에선 큰 판이 벌어지곤 했다. 동전을 길게 쥐고 손바닥으로 세 개씩만 잡아 세어내는 솜씨도 얼마나 훌륭했던지~. 쌈치기에선 하나 둘 셋을 아찌, 뚜비, 쌈이라 했다. 으찌, 뚜지, 쌈이라 했던 애들도 있고 이것도 다른 데선 으찌, 니, 쌈 이랬다니 참 다양하다. 타고난 도박 유전자 부족으로, 난 이 때도 관전만 하고 끼질 못했다. 끼어봐야 결과가 뻔하고 가진 돈이 없기도 해서. 그땐 컴퓨터 없어도 서로 참 재미있게 놀았었는데, 요즘 아이들은 스마트폰 끼고 혼자 노는 것에 익숙해져만 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아니, 온라인 게임과 SNS를 통해 함께 놀며 활발하게 연락하고 있으니 본질은 같고 그저 형태만 바뀐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그래도 아깝게 잃어버린 놀이가 너무 많은 건 사실이다. 그 시절엔 땅에 금만 그어도 수십 가지 놀이가 가능했었는데, 그리고 하나같이 몸을 부대끼며 실컷 놀았던 게 참 좋았는데. 벌써 반년이 흘러 타향에서 칼럼을 마무리해야 할 순간, 문득 어린시절의 추억이 떠오른 건 왜일까. 고향이란 늘 아스라이 잡히지 않는 무언가와 같다. 생각나면 애틋하고 찾아가면 늘 따뜻하고 낯설지 않은 곳, 그곳이 있었기에 아무리 어렵고 답답한 일이 생겨도 순간순간 머리를 식히며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좀 있으면 지방선거다. 빵울치기의 스타플레이어와 쌈치기의 타짜들이 뒤섞여 서로서로 선택해 달라며 외친다. 하지만 무엇보다 유권자를 두려워하고 진실 앞에 겸허해질 수 있는 사람이 고향을 대표하고 지켜주길 바란다. 해태 타이거즈의 우승을 당연시하던 날들처럼 지역정치와 지방경제에도 늘 1등을 하는 날이 올 수 있을까. 국회의장, 야당 총재, 대통령후보를 배출한 지역이지만 전라북도가 지방자치의 모범이란 소식은 아직 없다. 돈 놓고 돈 먹는 쌈치기보다 다들 한바탕 즐거웠던 빵울치기처럼 재미있고 뿌듯한 경쟁이 되길 바란다. 그래서 다른 선수들이 우리 동네 스타플레이어들을 부러워하며 하나라도 배우러 찾아오는 날들로 이어지길 바란다. 고향의 자랑거리야 셀 수 없이 많지만, 멋진 사람들이 모여 제일 잘 사는 곳이 되면 한없이 뿌듯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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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6.06 19:29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국가보훈

▲ 심덕섭 국가보훈처 차장 프랑스 조각가 로댕의 칼레의 시민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작품이다. 그러나 작품의 소재가 된 칼레의 시민 일화에 대해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이 사건은 14세기 영국과 프랑스 간의 백년전쟁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프랑스 북부의 항구도시 칼레는 도버해협을 사이에 두고 영국 본토와 마주보고 있었기 때문에 칼레를 차지하는 것이 프랑스군과 영국군 양쪽 모두에게 매우 첨예한 문제였다. 오랜기간 치열한 전쟁을 거쳐 1347년 영국왕 에드워드 3세가 이끄는 군대는 마침내 칼레시를 점령했고, 1년여에 걸쳐 영국군에 저항했던 칼레의 시민들은 모두 몰살 당할 위기에 놓였다. 이때 영국왕은 칼레시의 지도자급 인사 여섯명을 자신에게 넘기면 나머지 사람들은 살려주겠다는 뜻을 전한다. 이에 피에르라는 부자가 먼저 자청하고 이어 고위관료와 변호사 등 상류층 인사 여섯 명이 교수형을 각오하고 스스로 목에 밧줄을 감고 성문의 열쇠를 가지고 에드워드 앞으로 나아간다. 이 사건은 오늘날 사회의 상류층이 공동체에 지는 도덕적 책무를 가리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의 전형적인 예로 인용되고 있다. 다행히 임신 중인 태아에게 해가 될 것을 우려한 왕비의 간청으로 영국왕은 이들의 목숨을 살려주었다고 하지만, 이들 시민대표들의 공동체를 위한 희생헌신 정신은 공동체 정신의 유지와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역사적으로도 국가를 위해 전사를 했거나 부상을 당한 군인들에 대한 존경과 보상은 고대 그리스 시대에도 있었다. 기원전 5세기 아테네의 정치지도자 페리클레스가 행한 전사자 추모연설은 전사자에 대한 존경과 추모 그리고 유가족에 대한 약속을 그 내용으로 담고 있다. 이런 것이 없다면, 국가가 비슷한 위기에 다시 처할 때 그 어느 누가 국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자 하겠는가? 국가를 위한 희생에는 국가차원의 보훈보상이 반드시 따른다는 일종의 신뢰가 자연스럽게 형성되며 이러한 사회적 합의는 근대국가의 등장과 함께 보훈의 당위성에 대한 근거가 되었다. 우리나라에도 반드시 노블레스 오블리주에서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국가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신 분에 대한 보훈의 역사는 짧지 않다. 한국전쟁시의 전몰군경 유족과 부상자에 대한 지원으로부터 시작되어 1961년에는 군사원호청(軍事援護廳)을 설립하여 이들에 대해 보다 체계적으로 지원하게 된다. 그러나 원호라는 일본식 용어에서 보여지듯이 생계지원의 의미가 강하던 시절이었다. 마침내 1985년에 군사원호청을 국가보훈처로 개편하면서 명예와 존경을 강조하는 보훈개념이 적용되고 국가유공자를 본격적으로 예우하기 시작한다. 국가유공자의 범위도 점진적으로 확대되어 현재는 광복회, 상이군경회, 419민주혁명회 등 14개의 보훈단체가 활동하고 있다. 이분들은 크게 세 영역으로 구분되는데, 국가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희생헌신하신 분들(호국)과 과거 일제로부터 국가를 되찾기 위해 희생되신 순국선열 및 애국지사(독립), 또 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신 419, 518 민주화 유공자(민주)를 말한다. 정부는 국가유공자들의 희생과 헌신을 기리고 이분들에게 감사를 표현하기 위하여 매년 6월 한달을 호국보훈의 달로 정하여 다채로운 기념식과 행사를 실시한다. 현충일과 625를 기념하면서 국가의 중요성을 느끼고 더 나아가 나라사랑 정신을 고취하기 위함이다. 56회를 맞이하는 금년에는 남북간 그리고 북미간 관계발전을 기원하는 차원에서, 국가유공자에 대한 추모와 감사를 넘어 평화와 번영으로 보답하자는 미래지향적 의미를 담아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우리 지역에서도 국가유공자들에게 따뜻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이분들을 위한 의미 있는 행사가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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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5.30 20:38

공정한 경쟁을 위하여

▲ 김광휘 행정안전부 이북5도위원회 사무국장 시장경제제도의 가장 큰 장점은 경쟁이 가져다주는 효과이다. 일찍이 애덤 스미스가 이야기한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 작동하면 품질은 좋아지고 가격은 낮아진다. 시장에서 경쟁이 이루어지면 소비자에게 가장 좋은 선택이 주어지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시키려는 합리적 인간들의 자발적인 경쟁을 말한다. 이런 최상의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시장경제의 신화가 계속 유지되어야 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경쟁이 계속되어야 한다. 그리고 경쟁은 공정해야 한다. 경쟁의 공정성은 기울어진 운동장의 문제이다. 경쟁의 장점이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출발점의 상태가 심각하게 균형을 상실했다면 결과의 공정성을 담보할 수 없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의 축구시합의 결과가 어떨지 잘 알기 때문이다. 개인들 간의 경쟁은 반드시 우열을 낳게 된다. 이 우열은 인간사회에서 소여(所與)이지만 그 격차가 커지면 경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를 위해서는 게임의 룰이 중요하다. 모든 스포츠에 경기 규칙과 그것을 집행하는 심판이 있듯이 과정과 결과가 정의로운 사회를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엄정한 중재자로서 정부 개입이 필요하다. 독과점 금지, 담합 방지 같은 정책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정부 개입도 항상 능률을 낳지는 못한다. 쌀 가격을 지지해주기 위해 시중가격보다 높은 수매가격제를 유지하면 결국 곡물창고에 재고만 넘치게 된다. 정부 개입이 지속될 경우 장기적으로 보면 사회적 비효율이 더 커지므로 정부 개입은 필요 최소한에 그쳐야 함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경쟁의 지속성이다. 경쟁이 계속되려면 경쟁을 방해하는 요인을 제거해야 한다. 경쟁이 사라지면 상대적 우위에 있는 자의 이익만이 극대화된다. 독점이 아주 좋은 예이다. 이제 누군가 나서야 된다. 보이는 손인 정부 또는 사회적 중재기구는 보이지 않는 손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건전한 경쟁이 지속되도록 걸림돌을 제거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를 공정 경쟁 유지 조치(competitive balance)라 한다. 공정경쟁유지조치는 경쟁이 계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경쟁의 상대방간의 경쟁조건을 비슷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한쪽이 과도하게 불리하면 경쟁할 수 있도록 유리하게 해주고, 지나치게 유리하면 제한을 가한다. 이런 조치가 가장 잘 적용되는 현장은 프로스포츠이다. 권투시합은 체중의 차이가 확연한 선수끼리 시합을 하지 않고 체급별로 한다. 미국 프로농구는 부자구단이 과도하게 많은 돈을 써서 우수선수를 싹쓸이하지 못하도록 팀별 연봉상한제인 샐러리캡을 운영 중이다. 미국 프로야구에는 사치세(luxury tax)가 있다. 어떤 팀의 연봉이 기준연봉을 넘으면 초과된 부분에 일정 요율을 적용한 금액을 야구협회에 낸다. 야구협회는 사치세를 모두 모아 팀연봉총액이 낮은 팀에 역분배하여 준다. 가난한 구단에 대한 지원인 것이다. 부자 구단에 대한 간접적인 제재조치이다. 이런 노력들로 인해 건전한 경쟁체제가 늘 유지되기 때문에 산업으로서 미국 프로스포츠는 매년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민주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정한 조건에서 동등하게 경쟁을 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를 계속해서 만들어 내는 일이다. 우리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손의 긍정적 기능을 극대화시키는 절제되고 꼭 필요한 균형적 조치들로 인해 상생과 동반성장이 가능해지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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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5.23 20:28

바둑진흥을 위한 격대교육

▲ 윤승용 서울시 중부기술교육원장 빌 클린턴,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VVIP라 할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손으로 꼽자면 무척 많을 것이다. 그런데 지난해 65세 이상 인구가 14%를 초과하면서 고령사회로 진입한 한국에서 새롭게 주목을 끌고 있는 격대교육(隔代敎育grandparenting) 학계의 주장에 따르면 이들은 격대교육의 효과가 잘 드러난 사례라고 한다. 격대교육은 조부모가 손자를 교육하는 것을 일컫는다. 클린턴의 경우 출생 직전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유복자로 태어났다. 때문에 홀어머니가 생활전선에 나서는 바람에 외조부모에 의해 양육됐다. 시골에서 가게를 운영하던 외조부모는 클린턴을 정성껏 돌보았는데 외할아버지는 피부색에 관계없이 흑인들에게도 외상거래를 해주는 등 개방된 분이었다. 클린턴은 훗날 난 이를 보면서 평등과 인권에 대해 깨우쳤고, 이후 새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증세로 폭력을 일삼았지만 사랑으로 감싸는 외조부모의 덕에 오늘날의 내가 있을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오바마는 백인인 어머니가 아프리카 출신 생부와 이혼하는 바람에 역시 외조부모에 맡겨져 길러졌다. 제2차대전 참전 용사였던 외조부로부터 역사와 미국 중산층의 언어를 정확히 익힐 수 있었고, 근면과 교육을 강조한 외조부모의 자극에 힘입어 열심히 노력한 끝에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이들 경우 외에도 수 십년에 걸쳐 특정집단을 추적조사하는 이른바 종단연구(longitudinal study)로도 격대교육의 효과는 입증된 바 있다. 미국 하와이주의 카우아이섬을 대상으로 한 연구가 그 한 예다. 이 조사를 주도한 미국 심리학자 에이미 워너에 따르면 1955년 이 섬의 신생아 833명을 대상으로 40년을 추적조사한 결과 고아나 범죄자의 자녀 등 매우 열악한 환경에서 자란 소위 고위험군 200여명 가운데에서 놀랍게도 35%가 장학생을 차지하는 등 모범적으로 성장했다. 워너는 이러한 예외가 왜 생겼는지를 심층 분석한 뒤 이들이 유아기에 조부모 등으로부터 헌신적인 사랑과 신뢰를 받고 자란 덕에 긍정적 사고를 가지게 됐고, 이 결과 역경에 처해도 선순환으로 극복하는 회복탄력성(resilience)이 높아졌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이미 고령사회에 진입한 한국사회에서 700만 명이 넘는 노인문제는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큰 현안이 됐다. 특히 칠순이 넘어도 정정한 어르신들이 대부분인데서 알 수 있듯이 신체연령까지 늘어나는 추세에 걸 맞는 인적자원의 효과적 활용은 국가적 어젠다로 대두됐다. 요즘 대다수 은퇴자들은 비록 뒷방 노인네 신세가 됐지만 아직도 사회활동에 지장이 없기 때문에 무언가 사회를 위해 기여하고 싶어한다. 이를 위한 대책으로 노인들의 지혜를 격대교육에 활용하는 방안을 정부차원에서 강구했으면 한다. 구체적으로는 이들을 문화사각지대인 격오지의 멘토, 즉 독서 지도사나 바둑사범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특히 날로 퇴보하고 있는 한국바둑의 진흥을 위해 사실상 은퇴상태인 50세 이상 시니어 프로기사 100여 명과 1만여 명이 넘는 시니어 아마추어 유단자를 적극 활용하면 유소년의 정서함양과 논리력 증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게다가 바둑진흥을 위한 국가의 책무 등을 골자로 한 바둑진흥법의 제정을 계기로 한국기원과 여성가족부, 대한노인회 등이 머리를 맞대면 바둑진흥과 바둑고수 노인층의 활용 등 일거양득의 좋은 방안도 마련될 것으로 기대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노인 한사람이 죽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불타버리는 것과 같다고 했다. 가정의 달을 맞아 우리가 되새겨야할 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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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5.16 21:13

신록의 계절에 되돌아보는 5·18 민주화 운동

▲ 심덕섭 국가보훈처 차장 바야흐로 신록의 계절 5월이 성큼 우리 곁에 다가왔다. 주위의 나무에서는 연한 초록색 잎들이 돋아나 자연의 아름다움과 생명의 약동을 느낀다. 더구나 며칠 전에는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과 판문점 선언으로 온 국민들은 정말 오랜만에 평화와 번영이라는 푸른 꿈에 부풀어 있다. 이처럼 항상 우리에게 생명과 희망을 주는 5월이지만, 언제부턴가 우리 마음 한켠에는 5월의 가슴시린 아픔도 함께 하고 있다. 518 민주화 운동이 바로 그것이다. 1980년 5월 18일, 이 땅에 민주화를 실현하기 위해 광주시민들은 신군부 세력의 불법적인 집권 기도에 대대적인 저항 운동을 전개하였다. 당시 신군부는 이를 진압하고자 장갑차와 헬기까지 동원하여 시민들에 대한 무차별 사격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하였으며, 결국 폭동이라는 오명을 씌워 시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짓밟아 버렸다. 그러나 518 민주화 운동이 꼭 실패로만 끝난 것은 아니었다. 이는 1980년대 전국적으로 확산되어간 민주화 운동의 밑거름이 되었으며, 종국에는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낸 1987년 6월 항쟁으로 이어졌다. 마침내 1995년 국회에서는 518항쟁을 민주화운동으로 정식 규정하였고, 518특별법도 제정하였으며, 1997년에는 5월 18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였다. 2002년에는 518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518 사망자부상자희생자 등을 국가보훈 대상으로 편입되게 되었다. 그럼에도, 518 민주화운동의 수난은 계속 되었으니,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518을 폄훼하고 왜곡하는 주장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하였다. 그러던 것이 새 정부의 출범과 함께 점차 정상을 되찾아 간다. 북한을 찬양하는 노래라며 외면 받아 왔던 임을 위한 행진곡은 지난해 518 기념식에서 8년 만에 제창되었고, 518 민주화운동의 진실 규명을 위한 진상조사위원회도 금년 중 출범할 예정이다. 우리는 작년 518 기념식 생중계를 보면서 주체할 수 없이 흐르던 눈물과 말로 형언할 수 없었던 먹먹함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동안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홀대만 받아 왔던 518 민주화 운동이 대통령의 따스한 한마디 위로와 올바른 평가로 그동안의 억울함과 한(恨)이 봄눈처럼 녹아버리는 순간이었다. 광주의 아픔이 아픔으로 머무르지 않고 국민 모두의 상처와 갈등을 품어안으라는 대통령의 당부는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감동이었다. 전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2016년의 촛불 혁명은 이런 518 민주화 운동이라는 거름을 먹고 자라난 우리 민주의식의 결정체이다. 국민들의 민주의식은 결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1960년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와 故김주열 열사의 사망 소식에 분연히 일어난 시민들의 419 민주혁명을 시작으로, 518 민주화 운동 그리고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이어져 온 우리나라 민주화 역사는 위대한 시민이 만들어 낸 위대한 업적이었다. 국가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신 분들에게 정당한 보상과 합당한 예우를 하는 것이 국가보훈이다. 우리나라 국가보훈은 625 전쟁에서 상이를 입으신 분들과 전몰유족에 대한 국가의 지원에서 시작되었다. 그 후 우리나라가 일제로부터 독립하는 데 기여하신 순국선열과 애국지사에 대한 보훈으로 영역이 확대되었다. 마지막으로 419와 518 민주화를 거치면서 자유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희생하거나 공헌하신 분들이 보훈대상자에 포함되었다. 비록 시기적으로는 가장 늦게 국가보훈 영역으로 들어오긴 했지만,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발전시킨 분들을 결코 소홀히 모셔서는 안될 것이다.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이라는 푸른 꿈도 민주화라는 소중한 가치 위에서 실현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신록의 계절 5월에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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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5.02 21:04

위대한 식물

▲ 김광휘 행정안전부 이북5도위원회 사무국장 오월이 되면 숲은 비등한다. 신록의 계절 오월에 숲 속에서 숲이 거는 이야기에 귀기울여 본 적 있는가. 그랬다면 알 것이다. 이때 숲은 우리에게 가장 많은 유혹을 한다. 꽃으로 이끌고 향기로 마주보며 산소로 말을 건다. 바야흐로 숲이 위대해지는 순간이다. 숲을 이루는 것은 식물이다. 식물은 인간보다 먼저 세상에 등장하였다. 그들은 바로 한 곳에 정착했다. 움직임을 포기한 대가로 식물들에게는 장수가 주어졌다. 숲은 디오니소스적이다. 인간이 아무리 줄을 맞추어 나무를 심어도 나무사이에는 경쟁하는 관목과 풀들이 저절로 군락을 이룬다. 햇빛과 바람과 비가 결과하는 아름다운 집단이다. 이성적이지 않은 숲이 가장 풍요로운 질서를 이루는 것은 자연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자연에 대항하지 않고 순응하는 식물의 삶은 우리에게 종다양성이란 큰 선물을 주었다. 더 많은 나무, 풀, 잡초들이 무성할 때 비로소 동물의 삶은 유지되고 강화된다. 무질서한 것처럼 보이는 무성한 숲이 벌과 새를 불러들이고 그들은 먹이를 얻는 대가로 식물들의 번성을 돕는다. 식물의 종다양성을 인간이 바꾸고자 할 때 단일종목의 비극이 시작된다. 미국 중서부를 가면 옥수수밭이 끝도 알 수 없을 만큼 펼쳐져 있다. 인간이 고기를 얻기 위해 가축들에게 필요한 사료가 옥수수다. 단종재배(monoculture)는 지력의 극심한 소모를 가져온다. 뿐만 아니라 과다한 농약과 인공비료의 남용으로 옥수수밭과 공존해야 할 동물들의 발걸음도 끊는다. 종국에는 농약에 찌든 농작물을 인간과 동물이 섭취하면서 땅은 황폐해지는 부(負)의 악순환이 펼쳐지는 것이다. 카슨여사는 이미 1962년에 침묵의 봄으로 우리에게 경종을 울린 바 있다. 인류가 수렵 채취 시대를 마감한 것은 식물의 작물화다. 다이아몬드교수는 식물의 작물화가 맨 처음 시작된 곳은 비옥한 초승달지대라고 한다. 이곳은 지중해성 기후로 온화하고 강수량이 비교적 풍부하여 식물의 군락이 발달해 있었다. 이 중에서 인간이 작물화한 종은 한해살이 풀이었다. 인간의 노동력이 적게 들면서도 씨앗은 식량으로 삼을 만큼 충분히 컸다. 자화수분을 하는 종으로 번식이 용이해야 했다. 초승달지대는 같은 위도에 걸쳐 있어서 기후대가 같았기 때문에 인접지역으로의 전파도 용이했다. 식물의 작물화는 인간의 욕구와 변주하며 협동하는 공진화의 길을 걸었다. 마이클 폴란은 식물에게도 욕망이 있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사과, 튤립, 대마초, 감자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카자흐스탄 어느 산기슭에 열렸던 고대의 사과가 전 지구를 정복하게 된 것은 달콤함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인공화의 결과라고 한다. 문제는 식물에게도 욕망이 있고 인간과 협조할 때 지구의 생태계가 윤택해진다는 것이다. 생존경쟁은 도태와 패배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협력과 상생도 있다. 식물의 욕망을 인간이 선용하면 사과처럼 달콤함을, 튤립처럼 아름다움을, 감자처럼 구황을 견디게 해준다. 반대로 식물을 지배하려고 하는 순간 단일작물의 대규모재배가 가져오는 부작용이 생긴다. 이제 식물을 존중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 식물은 말이 없는 게 아니다. 바람에 흔들리면서, 햇빛에 찬란하게 반사되면서 자연을 받아들이라고 식물들이 번성하도록 숲과 산과 들을 그대로 두라고 쉬지 않고 경고한다. 숲이 우리에게 거는 대화를 따라가 보자. 식물의 욕망을 이해할 때 인간은 위대한 식물과 더불어 삶이 풍성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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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4.25 19:13

'김기식 낙마 사태'에서 얻는 교훈

▲ 윤승용 서울시 중부기술교육원장 피감기관 지원 외유의혹과 국회의원 시절 임기 말 정치자금 셀프 후원 등으로 퇴진요구를 받던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16일 밤 전격 사퇴했다. 중앙선관위가 김 원장의 셀프후원 의혹이 위법이라는 판단을 내린 직후다. 이번 사태는 장관급 고위공무원이 임명될 때마다 야당과 언론 등에서 제기하는 의혹 공세로 낙마하거나 우여곡절 끝에 가까스로 직위를 고수하던 과거 행태와 유사한 듯 하지만 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이 드러난다. 먼저 과거에는 전현직 국회의원이 발탁될 경우엔 야당의 공세가 일정 수위를 넘지 않던 관례가 무색했다는 점이다. 여야를 불문하고 전현직 의원, 특히 현직의원이 장관직에 임명되면 트집을 잡더라도 임명철회에 이를 정도로 그악스럽게 공격해대진 않았다. 여야간에 일종의 암묵적인 동료의식이 발휘되곤 했던 것이다. 문재인 정부 차관급 이상 고위 공직자 가운데 낙마한 경우는 안경환 법무장관 후보자 등 7명인데 이들이 모두 의원출신이 아니었던데 비해 이낙연 총리 등 전현직 의원 출신 9명은 모두 탈 없이 인사청문회를 통과했음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이 같은 현상은 특히 임명동의 투표라는 관문을 통과해야하는 총리의 경우를 보면 두드러져 보이는데 2000년 이후 국무총리에 지명된 후보 18명 중 12명이 통과했고 6명이 낙마했다. 통과한 12명 중 이한동 전 총리 등 6명은 선출직 공무원 출신이고 나머지 6명은 비(非)선출직 공무원이다. 장상 후보 등 낙마한 6명 중 선출직 공무원은 김태호 전 의원 하나였을 뿐이다. 김기식 원장의 경우 비록 전직 의원이지만 진보적 성격의 시민단체인 참여연대 출신이란 점이 동료의식이 작동하지 못하게 한 주요 원인으로 보인다. 또 하나는 여야간의 공방과정에서 여의도 정치권의 의도와는 달리 선출직 공무원 사회의 적폐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점이다. 사실 이번에 드러난 피감기관 지원 외유와 임기말의 정치후원금 땡처리라는 적폐는 의원들 사이에선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유권자들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일종의 업계비밀이 여야간의 이전투구 덕분(?)에 백일하에 까발려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사태는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국회의원들의 오랜 관행가운데 아직도 적폐 요소가 산적해있으며 이 같은 적폐는 그들의 셀프개혁에 맡겨서는 부지하세월일 것이라는 점이다. 매번 총선 때마다 각 정당은 경쟁적으로 의원특권 내려놓기 공약을 내세우곤 했다. 지난 20대 총선 때도 △무노동 무임금 도입 △불체포 특권 포기 △4촌이내 친인척 보좌직원 채용금지 △출판기념회 금품모금 금지 △해외출장시 재외공관 지원 최소화 등을 내놓았었다. 20대 총선이 끝나자 정세균 국회의장이 주도해 의원특권 내려놓기 특위를 구성하기도 했으나 역시 용두사미로 끝나고 말았다. 하지만 이번에 태풍을 방불하게 하는 여야 간의 날선 공방과정에서 낱낱이 드러난 국회의원들의 적폐행태는 결코 다시 되풀이되도록 해서는 안 된다. 구태와 관행을 규제하고 처벌하는 엄정한 법률적 잣대가 도입돼야만 한다. 매년 여름이면 찾아오는 태풍은 한반도에 엄청난 재앙을 가져오지만 그에 못지않은 경제적 효과도 있다고 한다. 기상학자들에 따르면 태풍은 수자원 확보, 대기질 개선 등 큰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바닷물을 상하로 순환시켜 수질오염 약화와 적조 예방 등에 큰 효과가 있다고한다. 이번 김기식 낙마사태가 한바탕 스쳐지나가는 찻잔 속의 태풍이 아니라 정치권을 정화시키는 순기능적 태풍으로 작용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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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4.18 20:42

새로운 민주주의-지방분권

▲ 최강욱 변호사법무법인 청맥 꽃샘추위가 만만치 않다. 미세먼지와 황사의 습격도 그치질 않는다. 봄날은 따스한 햇살과 함께 맑은 공기에 실려오는 꽃향기에 취하는 날이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하니 안타깝다. 4월에 때 아닌 눈까지 내렸으니 봄이 와도 진짜 봄이 온 것 같지 않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나라를 제 곳간으로만 알고 정권을 돈 버는 수단으로만 알았던 이의 말로도, 청와대를 사적 소유물로 알고 아버지의 영혼에 기대어 꼭두각시 생활을 영위하던 이의 말로도 여전히 어떤 이들에게는 교훈이 되지 못하는 모양이다. 대통령을 지낸 이들은 살아서 나오지 못할 수준의 범죄로 갇혀 있는데, 그 대통령을 등에 업은 채 재산을 불리고 자리를 챙기던 이들은 희한한 궤변을 토하며 여전히 거리를 활보하고 외국으로 날아다닌다. 정말 우리에게서 독재의 겨울은 확실히 떠나간 것일까. 지난 시절의 더러운 권력이 각성한 시민들이 끝내 꺼뜨리지 않은 촛불로 응징을 받았다면, 우리는 이제 새로운 권력과 민주주의의 모습을 고민해야 할 때다. 개헌이든 개혁이든 주권자의 각성이 없다면 새로워질 것은 없다.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진리를 다시 확인했다면 우리 손으로 올바른 권력의 모습을 더 치열하게 다듬어야 할 때다. 그 핵심은 누가 뭐래도 나누고 낮추는 데 있다. 집중된 힘을 나누고 위에서만 놀던 힘을 끌어내려야 한다. 지방분권의 중요성을 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오랜 세월 동안 중앙집권체제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 왔다. 상행 하행이라는 관용어가 그렇고 중앙과의 연계를 통해 기득권을 지키려는 토호들의 몸부림도 그렇다. 중앙의 고관이라며 거들먹거리는 이들은 젊은 시절 근무했던 어느 지방의 후한 인심과 자신에 대한 호의를 자랑하며 뿌듯해 한다. 삶의 터전을 확실히 중앙에 잡았다 자부하는 이들일수록 지방의 현실을 그저 꿈에서도 아련하게 떠올리는 아름다운 추억 정도로 치부한다. 그들에게 지방은 영원히 베풂의 대상이고, 지방에서 바라보는 자신의 위치는 여전히 선망의 대상이라 믿기에 더욱 그렇다. 고속철도의 대중화로 한 두 시간이면 닿는 서울이 된 이상, 중앙과 지방을 나누는 게 의미가 없다는 이들도 있다. 작은 땅덩어리에서 자꾸 구분짓는 일을 하지 말라며 짐짓 눈을 부라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은 그 철도와 도로가 고속으로 빨아들이는 돈과 사람의 모습은 애써 외면한다. 중앙의 화려함을 바라고 자발적으로 날아드는 불나방을 어찌할 거냐며 그저 혀를 차댈 뿐이다. 이래서는 안 된다. 언제까지 그럴 수도 없다. 지방자치란 삶의 터전이 어디에 있든 문화의 혜택을 골고루 누리고 교육과 직업 및 소득의 격차를 두고 걱정하지 않는 세상을 일구는 것이다. 선진국일수록 지역마다 고유의 문화를 자랑하며 여유를 만끽하는 모습을 발견한다. 사람을 낳아서 서울로 보내지 않아도 충분한 성취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나라가 진짜 잘 사는 나라인 것이다. 대통령이 국민 앞에 고개를 숙이고, 아이들의 키높이에 눈을 맞추는 것만이 새로운 민주주의의 상징이 될 수는 없다. 권력기관의 개혁도 결국 나누고 낮추는 데 그 핵심이 있다. 결국 주권자가 주인이라는 헌법의 기본을 제대로 구현하는 일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바라는 새나라는 중앙권력에 꿀리지 않는 멋진 지방분권의 시대를 열어가야 완성된다. 지방의 발전이 모여 건강한 권력을 이룰 때 우리는 진정한 선진국으로 거듭날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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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4.1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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