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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 부머

베이비 부머(Baby Boomer)는 한국전쟁 직후 가족계획정책이 실시된 1955년부터 1963년에 걸쳐 태어난 세대를 말한다. 1980년 전후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들은 대한민국 경제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그런데 어느덧 세월과 함께 은퇴의 전선에 섰다. 대기업 부장급 이상 고급인력만 해도 한해 평균 4000여 명이 퇴직을 한다.역사를 돌이켜 보면 영웅호걸들도 결국 세월의 덫에 걸려 명멸해 갔으니 새로울 건 없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순리요, 살아있는 것은 시간과 함께 결국 소멸되어 간다는 이치를 확인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건만 가슴 한구석 무상함이 차오르는 건 필자가 같은 세대를 살아온 탓일까?1인당 국민소득이 3만불을 바라보는 2015년 지금,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면 아스라한 벼랑길을 곡예 해온 느낌이다. 1960년도 1인당 국민소득은 고작 79불에 불과했다. 100억불 수출을 달성했다고 온 나라가 떠들썩했던 때가 1977년도다.지금은 수출 규모가 6000억 달러가 넘고, 수입을 포함한 무역규모는 1조 달러가 넘는다. 온 국민이 잘살아 보세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열심히 뛴 결과다.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베이비 부머 세대의 헌신은 눈물겹다. 그들은 질주하기 시작한 대한민국이라는 기관차의 부속품은 물론 철로가 되기를 서슴지 않았다. 일제시대와 625 전쟁을 거치며 폐허가 되어버린 대한민국에 태어난 죄로 가난을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살았다. 생존을 유일의 가치로 여기며 열심히 일했다.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며 하나 되어 뛰었다. 베이비 부머들은 스스로에게 훈장을 수여해도 좋을 만큼 충분히 제 몫을 해냈고 국가발전에 기여를 했다. 부모와 자식들에게도 할 수 있는 도리를 다한 마지막 세대일수도 있다.그런데도 은퇴를 하거나 은퇴를 앞둔 베이비 부머들은 외롭다. 살모사가 새끼를 낳고 나면 자신의 몸을 먹이로 던지듯 자식들에게 모든 것을 앗긴 탓도 하나의 이유일 수 있다. 어이없게도 은퇴자금으로 받은 돈을 자식 혼사에 몽땅 바쳐야만 하는 사회 풍조는 차라리 희극이다. 자식들에게만은 가난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먹을 것 못 먹고 입을 것 못 입어 가며 키워낸 자식들이 자리를 못 잡는 사회 시스템에 절망이 엄습한 탓이다.100세 시대를 맞아 산업전선에서 몸소 뛰었던 시간보다 죽음과 마주한 채 연명해 가야만 하는 시간이 더 많다는 사실이 어쩌면 제일 큰 외로움의 요인이라 하겠다.인간은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사회적 기능을 할 때 행복을 느낀다. 여행의 유희도 일주일이고, 빈둥빈둥 노는 즐거움도 한두 달이다. 죽음을 기다리는 시간과 마주한 채 수십 년을 잉여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차라리 고통 아니겠는가.오늘의 대한민국 발전의 초석이 된 베이비 부머 세대를 돌아보라. 책임 있는 정부 관계자들은 그들의 헌신을 외면하지 마라. 그들에겐 경험이라는 자산이 있다. 질곡의 역사를 관통하며 체득한 지혜가 있다.인재은행을 보다 체계적으로 운영하면 어떠한가. 중국 등에서는 이미 우리의 유수 은퇴자들의 경험과 재주를 헌팅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해외 유출은 산업비밀도 함께 넘어가는 것이다. 그들의 경험과 지혜를 허약한 중소기업에 이식하는 작업을 서두름은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 아니겠는가.△서경석 대표는 한국만화스토리작가협회 이사, 한국추리작가협회 이사, 월진회 부회장, 재경진안군민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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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7.16 23:02

미리미리 차세대 프로젝트 구상하자

필자는 작년 한 해 동안 전라북도 행정부지사로 재직하다가 연말에 행정자치부로 자리를 옮겼다. 부지사로 일하면서 수많은 지역 현안들과 씨름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신없이 일 년을 보냈다. 새만금 개발, 전북공항, 탄소산업, 연구개발특구, 농생명단지, 혁신도시이전 등 굵직굵직한 현안들로부터 익산박물관 국립승격, 백제유적지 유네스코 등재 등 부드러운 현안들까지…. 전북을 떠나 서울로 온지 반년이 지나는 동안, 문득문득 지면과 TV로 고향 소식을 접한다. 소식을 듣는 빈도는 많이 줄었고, 관심의 정도도 훨씬 떨어진 건 사실이나, 가끔씩이라도 듣게 되는 고향 소식은 더 반갑고, 더 궁금해진다. 이래서 타향에 있으면 고향 까마귀만 봐도 반갑다고 하나 보다. 매일매일 산적한 현안 속에서 헤매다 보면, 과연 이것들이 제대로 추진되고 있는지, 계획대로 진도는 나가고 있는지 알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전북을 벗어나 먼 발치에서 보면 고향의 현안들이 얼마나 진척되고 있는지를 쉽게 느낄 수 있다. 지난 6개월을 반추해 보면, 과거 부지사로서 고민해 왔던 많은 현안들이 하나씩 하나씩 해결되어 가고 있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백제유적지 세계유산 등재는 지난 주말 동안에 이루어낸 쾌거이며, 2017 세계태권도대회 유치도 온 도민이 합심하여 이루어 낸 역작이다. 연구개발특구 지정도 최근에 정부로부터 긍정적 시그널을 받았다 하며, 새만금 현안도 하나씩 하나씩 해결되어 가고 있다고 한다. 그토록 고대해 왔던 국민연금공단의 혁신도시 이전도 모두 완료되어 이달 중에 개청식을 한다고 하고, 최근에는 국내 드론시장 점유율 1위 기업이 전북에 투자하기로 했다 하니, 우리 전라북도가 을미년 청양의 기운을 듬뿍 받고 있음이 틀림없다.그러면서 생각하게 되는 것이, ‘그 다음에는?’이란 질문을 자연스레 하게 된다. 물론, 현재 안고 있는 많은 현안들을 해결하는 데에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전북의 미래와 우리 후손을 위해서 다음 단계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그동안 우리는 꿈과 희망을 품으면 결국 이루어진다는 것을 많은 경험을 통해 배워 왔다. 이제는 우리의 미래를 약속할 수 있는 크고 작은 차세대 프로젝트를 개발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된다. 오늘 이 순간에도 많은 공무원들과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전북의 신사업들을 구상하고 있겠지만, 이 분야에 대한 관심과 투자는 앞으로 더욱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전북의 미래발전을 위한 전문가 포럼과 같은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 계속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아울러, 이러한 전북 프로젝트들이 중앙정치에서 크게 공감을 얻어 국가사업으로 인정 받을 수 있도록 전략을 정교하게 수립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지역의 현안들도 궁극적으로는 중앙부처와 중앙정치의 동의와 컨센서스를 얻을 때에 비로소 현실화 된다는 사실을 그동안 우리는 많이 보아 왔다. 새만금 사업을 국책사업화한 선례를 거울삼아, 미래의 전북 프로젝트들을 구상단계에서부터 중앙사업으로 끌어 올리는 전략도 함께 마련해야 하겠다. 전북은 이제 새만금으로 꿈을 키우고 탄소산업으로 창조경제를 실현하는 대장정의 길을 걷고 있다. 각종 전북 현안들을 슬기롭고 지혜롭게 헤쳐 가면서도, 한편으로는 전북의 심장이 미래에도 활기차게 뛸 수 있도록 새로운 전북 프로젝트를 계속 만들어 나가는 노력도 병행해 나가야 할 것이다.△심덕섭 실장은 고창 출신으로 전북도 행정부지사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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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7.09 23:02

문화융성, 문화가 밥과 행복을 줍니다

정부의 4대 국정기조 중 하나가 ‘문화융성’이다. 일찍이 백범 김구 선생은 <나의 소원 -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에서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라며,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라고 설파하신 바 있다. 경제적, 정치적으로 어렵고 힘들었던 시대에 오히려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한 선구자적 혜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로부터 70여 년이 지나, ‘문화융성’이 국정기조로 등장하게 되었다. ‘문화’가 정부정책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정부 수립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국정기조로서 ‘문화융성’은 문화정책을 관장하는 문화체육관광부 뿐만 아니라, 각 정부 부처와 기관이 문화가 융성하는 사회, 문화적 가치가 기반이 되는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있듯, 그간 문화예술은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여유가 생겨야만 즐길 수 있는 사치재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이제는 많은 석학들이 지적하듯 문화가 곧 경쟁력인 ‘문화의 시대’가 되었다. 개인의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중요해지면서, 창의적인 인재를 만드는 문화예술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또한, 문화산업의 경제적 파급효과 및 문화예술을 통한 지역 활성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금강산’인 문화예술 자체가 발전의 동력으로서 재조명되고 있는 것이다. ‘문화가 밥을 먹여주는’ 이러한 사례들은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다. 뉴질랜드는 영화 ‘반지의 제왕’을 통해 관광명소가 되어, 2001년부터 3년 사이에 총 38억 달러의 관광수입을 올렸다. 국내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한국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는, 중국에서 ‘치맥’과 화장품, 패션 등을 유행시키며 관련 매출을 급증시켰고, 촬영지를 둘러보는 ‘별그대 투어’ 등으로 내한 관광객을 끌어들였다. 그러나 문화는 이러한 경제적 효용만으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 문화는 무엇보다 개인에게 행복과 여유를 느끼게 하며,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기도 한다. 눈부신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낮은 행복지수와 양극화, 사회 갈등 심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 사회가 문화를 더욱 절실히 필요로 하는 이유이다. 얼마 전 내한한 LA필하모닉의 명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을 배출하여 더욱 유명해진 베네수엘라의 청소년 오케스트라 ‘엘 시스테마’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문화예술의 힘을 보여준다. 마약과 폭력 등에 노출되어 있던 베네수엘라의 빈민가 아이들은 음악 교육인 ‘엘 시스테마’를 통해 미래에 대한 꿈과 협동의 가치를 배우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꿈의 오케스트라’를 비롯하여, 학생들과 직장인 등을 대상으로 한 문화예술교육과 동호회 활동이 증가하며 문화예술을 통해 삶의 의미와 행복을 찾아가는 사례들이 늘어나고 있다.우리나라는 짧은 시간에 경제적 성장을 이룩하면서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제는 산업화 이후 새로운 도약을 모색해야 하는 시점이다. 문화융성은 물질적인 성장처럼 단시간에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국민들이 바쁜 일상 속에서도 스스로를 발견하고 문화를 즐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와 인식 변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효과는 지속적이며 강력할 것이다. 문화로 부강하고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온 국민이 다 함께 노력해야 하는 이유이다.△박민권 차관은 문화체육관광부 관광레저기획관, 미디어정책관, 체육관광정책실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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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7.02 23:02

'호남 속의 전북 소외'를 이겨내자

현 정권 출범 후 지난 2년 4개월간 임명된 30여 명의 국무위원 중 전북출신은 한 명도 없었다. 공석인 법무장관 후임에 전남 출신이 지명되었으니 청문회를 통과하게 되면 현 내각에 전남출신 장관은 두 명이 된다. 여전히 전북은 없다. ‘호남 속의 전북 소외’가 또 증명되는 셈이다. 검찰청, 경찰청, 국세청, 감사원 등 이른바 4대 권력기관이나 국정원, 군수뇌부에서도 전북인사는 찾기 힘들다. 청와대 비서관 40여 명 중에서도 전북출신은 한 명도 없다고 한다. 오죽하면 지난 2월 새정치민주연합 당 대표 경선 때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을 향해 “전북 출신 장관은 물론 차관조차 한 명도 없다. 이러고도 홀대 아니라고 할거냐”라고 쏘아붙여을까? 그 직후 정부가 전북 출신을 문화부1차관에 조용히 임명한 것을 보면 속이 좀 뜨끔하기는 했던 모양이다.이런 판국에 익산지방국토관리청을 ‘전북, 전남 국토관리청’으로 쪼개려는 용역이 진행되고 있다는 보도는 전북도민과 출향민들에게 또다시 극심한 상실감과 박탈감을 준다. 현 정권 들어 가속화하고 있는 전북 위상의 급전직하 추락이 절감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있는 5개의 지방국토관리청(서울·대전·원주·익산·부산) 가운데 익산은 규모 면에서 꼴찌에서 두 번째라고 들었다. 덩치가 훨씬 큰 서울과 대전청은 놔두고 호남을 관할하는 익산청을 굳이 전북, 전남청으로 분리하려 하면서 ‘조직 효율화’ 운운한다니 어이없는 노릇이다. 대통령은 공공기관의 효율화를 강조하면서 부채축소 등 경영개선과 조직 축소를 강조하는데, 정작 국토교통부는 거꾸로 가려하는 저의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사실 전북은 이런 박탈과 쇠락의 아픔을 간헐적이지만 끊임없이 겪어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2011년 토지주택공사(LH공사)의 진주 이전 결정이었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지방균형발전을 위해 토지공사는 전주로, 주택공사는 진주로 이전하기로 확정했던 방침을 하루아침에 바꾸어 두 공사를 모두 진주로 이전키로 결정하고 시행했다. 전북은 이 때 모든 역량을 결집해 범도민적인 이전반대 운동을 벌였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자료를 찾아보니 정부의 공공기관이 전북에는 단 8개만 남아있는 반면 광주, 전남에는 56개로 호남의 87.5%가 광주, 전남에 편중되어 있다. 이와 관련해 필자가 경험하고 직접 관여했던 일이 생각난다. 국회의장으로 일하던 2006년 전북지역 법조인 대표들이 찾아와 광주고등법원 전주분원 설립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협력을 요청했다. 필요성이 크고 타당한 얘기여서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했고 다행히 전주분원 설치가 성사되었다. 전북지역 법조인들의 일심단결 추진이 원동력이었지만 당시 전북 국회의원, 정부와 청와대의 전북 출신 인사, 그리고 한승헌 변호사 등 영향력 있는 원로 법조인까지 한마음으로 뛰어줌으로써 성공이 가능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물론 객관적인 조건을 볼 때 전북이 모든 사안에서 앞자리를 차지하기는 힘들다. 250만 명이던 인구는 180만 미만으로 줄었고, 쇠약해진 경제는 지역별 국민소득에서 충북 강원도에도 뒤진 꼴찌가 되었다. 충청권에서는 “충청지역 인구가 호남지역을 앞섰으니 국회의원 정수도 조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충청권 한 도지사 사무실에는 ‘영충호(嶺忠湖)시대’라는 액자가 걸려있다. 영호남이 맞대응하던 시대는 가고, 영남 충청 호남의 순서로 호명해야 할 시대라는 호언장담이다. 그렇다 해도 전북에 대한 홀대는 도를 넘는다. 균형과 형평이 고려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어떻게 해야 이 난국을 돌파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전북도민과 출향민들의 일치단결이 가장 큰 힘일 것이다. 물론 전북의 정치, 경제, 사회 지도자들이 바짝 정신 차리고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자세로 재무장하는 것이 선결 필수조건이다. 분열은 가장 큰 적이다. 부안에 들어서기로 했던 원자력발전소 폐기물처분장을 경주에 빼앗긴 것도 실은 전북의 분열이 결정적인 요인이었다고 본다. 위기를 기회(機會)로 바꾸는 것이 지혜이고 능력이다. 전북이 이제부터라도 똘똘 뭉쳐 ‘호남 속의 전북 소외’를 반드시 극복해낼 것을 주창한다. 정계에 오래 있었던 사람으로서 책임이 적지 않은 필자도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 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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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6.25 23:02

소통의 중요성

요즘 법원에서는 소통이 주된 화두이다. 부임하면서 내부 직원 사이의 소통뿐만 아니라 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했던 기억이 난다. 부임한 뒤에도 직원과의 워크숍, 체육대회 등 내부 행사 뿐만 아니라 관내 대학교 등에서의 강연, 1사1촌 맺기, 판사들의 각 중·고등학교의 모의재판 지원, 노인복지회관에서의 밥퍼봉사, 지역 오피니언 리더들의 법원견학 등 다양한 소통행사를 진행하였다. 대부분 엄하고 멀게만 느껴졌던 법원이 가까워짐을 느꼈다고 한다.최근 들어 WTO(세계무역기구) 등에서 우리 사법부가 민·상사 재판 분야에서 3년 연속 세계 2위라는 높은 평가를 받은 사실은 법원에 종사하는 모두에게 커다란 보람과 긍지를 느끼게 했다. 평가기준은 무역기구답게 경제성(저렴한 소송비용), 신속성(신속한 결론), 접근성(전자소송)이 그 기준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국내 언론이나 국민의 눈에 비친 법원과 법관의 모습은 그러하지 않은 것 같다. 신뢰받는 법원을 만들기 위해 법원 구성원들이 기울인 지속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더러 정치적으로 부각되는 사건, 개별 법관이 저지르는 부적절한 언행이나 사생활상 물의 등으로 외국에서 받는 평가보다 신뢰도가 오히려 더 떨어지고 있다.시의 적절하게도 지난달 11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주최로 근대사법 및 한성재판소 설립 120주년을 기념하는 소통컨퍼런스가 열렸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사법기관인 한성재판소는 1895년 5월 9일 법부령 제1호에 의해 설치되었다. 대법원장의 격려 말씀과 ‘역사에 비춰 본 바람직한 법관상’ 주제로 한 양창수 전 대법관, 김호 교수의 특별강연과 사회 각계 전문가들의 좌담회가 열렸다. 제일 먼저 언급된 분이 전북의 자랑인 가인 김병로 선생이다. 가인 선생은 1948년부터 1957년 말까지 초대 대법원장을 지내면서 법관의 덕목으로 인격수양과 기술적 훈련에 힘쓸 것을 역설하면서 청렴강직하고, 권력에 대해서 사법부의 독립성을 수호하며, 어떤 경우에도 법관의 몸가짐이 의심받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등으로 사법부 초기의 전통을 만드는 데에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1995년에 제정된 법관윤리강령에는 이러한 뜻을 받들어 제1조 내지 제7조에서 사법권의 독립수호, 명예존중과 품위유지, 공정성 및 청렴성, 직무의 성실한 수행, 정치적 중립 등을 들고 있다. 최근 법조일원화가 진행됨에 따라 대법원이 법관임용공고를 할 때나 대한변협에서 만든 법관임용지원자 평가지침에 의하면 공통적으로 위에 든 것 외에 봉사정신, 의사소통능력, 일반적 평판 등을 들고 있다. 이중에서도 가장 강조되는 것이 소통이다. 재판은 법원이 우월적 지위에서 판단하는 작용이지만 심리과정에서 당사자와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해야만 진정한 의미에서 진실을 발견해 나가는 재판이 될 수 있다. 여기서 제일 중요한 것은 잘 듣는 것이다. 잘 듣고 이해했다는 피드백도 중요하다. 최근 메르스 때문에 온 나라가 위기 상황이다. 대통령은 미국방문을 연기하였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에 메르스 대처방법을 두고 격론을 벌인다. 소통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이러한 때일수록 공동체에 대한 신뢰와 애정을 가져야 한다. 모두가 힘을 합쳐 노력하고 소통한다면 이러한 위기상황도 곧 극복되리라고 본다. 부족한 저에게 기회를 준 전북일보에 감사드리고, 이 자리를 빌려 도민 여러분께도 인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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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6.18 23:02

춘수만사택

‘2015 괴산 세계유기농산업엑스포’ 조직위원회가 오는 9월 개막하는 유기농엑스포의 성공개최와 올 한해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4일 엑스포농원에서 손 모내기를 실시했다고 한다. 손 모내기 행사에는 엑스포 집행위원장을 비롯해 40여명이 참여했는데 참석자들은 그동안 괴산농기센터에서 정성껏 키운 벼 42개 품종을 엑스포농원 3157㎡에 심었다. 요즈음은 경지정리가 잘 된 논에서 기계로 모내기를 하기 때문에 손 모내기는 흔치 않은 행사였던 것 같다. 이 뉴스를 접하면서 문득 어린 시절 모내기 하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 당시의 모내기는 하나의 마을 축제였고, 희망을 가득 품은 기원제였다. 벌판은 일을 하는 어른들 뿐만 아니라 동네 아이들이 모두 뛰어놀았고, 노동의 힘듦보다는 꿈과 기대에 가득 찬 기쁜 잔치 날의 한바탕 놀음 같은 것이었다. 논 주인은 맛있는 음식을 정성스레 만들어 모내기하는 일꾼들을 배불리 먹였고, 일을 하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모두 모여 함께 돕고 함께 어울려 마을 공동의 잔치를 벌이는 날이었다. 그런 희망과 꿈을 심는 모내기를 하려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논을 가득 채울 넉넉한 물이 있어야 한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천수답이 많아서 제 때 비가 오지 않으면 모내기를 할 수 없었고, 모내기시기를 놓쳐 1년 농사를 망치고 흉년이 들 때도 잦았다. 옛날 중국 동진 시대의 도연명은 사시(四時)에서 봄 풍경을 ‘춘수만사택’이라 읊었는데, 사시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춘수만사택(春水滿四澤) 하운다기봉(夏雲多奇峰) 추월양명휘(秋月揚明輝) 동령수고송(冬嶺秀孤松)’. 즉 봄물은 사방의 연못을 가득 채우고, 여름 구름은 기이한 봉우리를 많이 만드네, 가을 달은 밝은 빛을 던지고, 겨울 산마루엔 외로운 소나무가 빼어났네. 사계절을 두고 읊은 시에서 봄을 그리는 풍경은 화려한 꽃도 아니고 푸른 신록도 아닌 봄비가 넉넉히 내려 사방 연못에 물이 가득한 희망의 장면이다. 이는 봄이 왔다고 만물이 저절로 소생하는 것은 아니며, 봄비가 대지를 적시면서 어루만져 줘야 비로소 움을 틔우고 꽃을 피우게 하는 물이 사방에 가득한 것을 진정한 봄이라고 본 것이 아닐까?필자는 전에 우석대학교에서 교수로 근무한 적이 있다. 전주에서 삼례로 출·퇴근하면서 이만 때면 평화롭고 어머니 품과 같은 너른 삼례 벌판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감정이 ‘춘수만사택’ 이었다. 이는 정말로 넉넉하고 평화롭고 행복한 느낌으로 온 몸을 감싸는 전율 같은 것이었다. 생각은 더 확대되어 이것은 단지 풍경이 주는 느낌이라기보다는 모든 준비를 마친 선수가 시합의 시작을 기다리는 기대 같은 것으로 발전하여 이런 곳에 대학교를 우뚝 세우고 사람 농사를 지을 준비를 마치고 세상의 이끌 인재를 교육할 기대와 감격으로까지 치달았다. 그 후 지금의 자리에서 일을 할 때에도 잘 다듬어지고 가꾸어진 학교를 둘러보면서 항상 드는 생각은 ‘춘수만사택’ 이란 넉넉함과 감사의 마음이다. 모내기가 시작될 시점에서 이런 생각을 하며 감사의 마음을 가져본다. 하늘에 감사하고, 자연에 감사하고, 내 고향 전북에 감사하고, 그동안 나를 성장하게 해준 모교와 직장 모두가 감사하다는 생각을 다시 해 본다.끝으로 연재를 마치며 이런 기회를 주신 전북일보와 함께 해준 독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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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6.11 23:02

남북통일, 민족 대도약의 기회

올해로 ‘조국광복 70주년, 분단 70주년’을 맞이한다.온 겨레가 ‘조국광복’이라는 더 없는 기쁨과 동시에 ‘조국분단’이라는 고통을 안은 지 70년이 되는 해이다.그러나 우리나라는 7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분단을 극복하지 못하고, 오늘날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남은 분단국이라는 아픔을 안고 있다.이제는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실현하기 위해 온 국민이 화합하여 힘과 지혜를 모아나가야 할 때다.통일은 분단된 국토가 하나 되고 남북이 갈등과 반목의 근원을 없애기 위해 반드시 이루어야 한다는 관념적인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다.통일은 우리 민족이 하나 됨을 통해 경제 대도약을 이루어 세계 강국이 될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자는 뜻도 있다.박근혜 대통령께서도 신년기자회견을 통해 “통일은 대박이다”라는 말씀과 함께 “한반도 통일은 우리 경제가 대도약할 기회”라고 강조하셨다.2009년 골드만 삭스(Goldman Sachs) 보고서도 “한국이 통일된다면 GDP가 프랑스, 독일, 일본까지도 30~40년 내에 능가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전망했다.우리나라가 남북통일 기반위에서 한반도 도약의 기회는 무한한 나라임에 틀림없다.한 나라가 경제성장을 이루어가자면 내수시장이 1억의 인구는 가져야 안정적인 국가경제를 유지해나갈 수 있다고 경제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남북통일이 되면 현재 남한의 인구와 북한 인구를 합친 통일한반도의 인구는 약8000만 명으로 자국 인구만으로도 탄탄한 내수시장을 형성할 수 있는 1억의 숫자와 큰 차이가 없다.또한 남한의 자본과 기술력에 북한의 풍부한 자원과 인력을 잘 융합시킨다면 통일한국은 눈부신 경제 발전과 성장을 거듭해서 반드시 단기간에 선진국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그리고 남북한 전쟁위협으로 인한 한국의 경제지수 불안정이 해소되고 한국에 대한 많은 외국기업들의 투자도 증가할 것이다.남북통일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큰 기쁨은 또 있다.통일의 희망과 분단의 아픔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이산가족문제의 해결이다. 남북분단으로 인해 부모형제가 서로 헤어져 지난 70년 반세기동안 만나지 못하고 사는 것만큼 큰 비극은 없다. 남북분단으로 인한 이산가족이 현재 12만 여명이 되고 3만여 명의 북한이탈주민들이 고향에 돌아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안타까운 현실이 마침내 해결될 것이다.남북분단은 동족상잔이 남긴 쓰라린 상처다. 그런 아픈 상처가 후손들에게 대물림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에게는 70년 분단의 역사를 마감하고 후손들에게 진정한 광복인 한반도 통일 시대를 물려주어야 할 역사적 책임과 사명이 주어져 있다.나는 우리 민족의 위대한 저력을 믿는다. 숱한 위기 속에서도 결코 좌절하지 않고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키며 역사를 발전시켜온 자랑스러운 민족이다. 한국전쟁 당시, 어느 유엔군 참전 장군은 “이 나라의 미래는 없다, 이 나라는 백년이 지나도 복구되지 못할 것이다” 라며 우리 민족의 저력을 폄하했다.그러나 우리는 일어났다. 戰後 70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은 지난 반세기 동안 세계사에 유례 없는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일궈내는 기적을 이루었다.그래서 우리 민족은 반드시 남북통일의 기적을 이루어낼 것으로 믿는다.나는 마지막 를 마치며 변함없는 내 고향 전북의 무궁한 발전과 통일조국의 평화롭고 풍요로운 미래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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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6.04 23:02

분단 70년과 신체 이식·봉합과정으로 통일

70년 전 우리나라는 38선으로 국토가 분단되었다. 이 국토분단 3년 뒤 분단정부가 수립되었고, 2년 뒤엔 한국전쟁이 일어나 남과 북은 세계에서 가장 적대적인 관계가 되었다. 1953년 휴전 이후 남과 북은 전혀 다른 발전경로를 걸었다. 남한은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 속에서 경제·정치발전을 이루었고, 북한은 소련공산체제를 모델로 하여 전후 복구를 이루었다. 남한은 세계의 어떤 나라보다도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나라가 되었지만, 북한은 세계의 어떤 나라보다도 더욱 폐쇄적이고 전제적인 나라가 되었다. 분단 70년이 된 지금 남과 북의 경제력 격차는 40배에 달하고, 사회문화적인 차이도 하나의 민족이라 부르기 힘들 정도로 이질화되었다. 분단 70년, 통일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우리 사회에서 통일에 대한 생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민족중심’의 사고로 남과 북의 체제적 이질성보다 민족적 동질성을 중시한다. 이 입장은 남과 북이 교류와 협력을 통해 상호 간의 격차를 해소하고 상호 적대성을 해소하는 것이 통일의 핵심이라고 본다. 다른 하나는 ‘국가중심’의 사고인데, 남한이 북한과의 체제경쟁에서 승리했고 북한의 체제가 주민을 억압하고 있기에 남한의 체제를 북한으로 전면적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1990년대 초 국회상임위원회 활동의 일환으로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뒤 나는 줄곧 통일은 신체이식 및 봉합 과정이라고 주장해왔다. 북한체제는 지난 70년 동안 자주, 사회주의, 군사 등을 비대하게 발전시켜 왔다. 따라서 신체이식수술처럼 인간의 존엄과 민주주의에 입각한 새로운 시스템과 사고방식이 이식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급격한 방식이 아니라 신중하고 점진적으로 이루어져한다. 또한 남북의 통일은 신체 봉합 수술을 하듯이 그렇게 통합적인 과정을 거쳐야 한다. 척추에 해당하는 중앙정부만이 아니라 정맥·동맥에 해당하는 지방자치제도 통일의 주역으로 제 역할을 해야 한다. 나아가 모세혈관에 해당하는 민간도 남북 간 교류협력과 통일의 한 주체가 되어야 한다. 이렇게 될 때 남과 북은 통일의 과정에서 시너지효과를 낼 것이고 비용과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때 국가원로의 일원으로서 이 대통령을 만난 적이 있다. 회의에서 나는 이명박 정부가 펼치는 ‘친중-반북’의 대북정책은 결국 남북협력의 가능성을 없애고 중국에 민족의 운명을 맡기는 것이라고 강력히 비판한 적이 있다. 이러한 정책은 현재의 박근혜 정부에서도 변함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분단의 직접적인 원인은 강대국에 있다. 통일과정에서 미국과 중국의 협조를 이끌어내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분단 70년이 된 지금 통일을 이룰 수 있는 힘은 우리 내부에 있다. 특히 우리가 북한에 대해 어떤 정책을 펼칠 것인가가 통일을 좌우한다. 남과 북이 직접적으로 대화하고 협상해야만, 교류하고 협력해야만, 그리고 합의한 것을 지켜 신뢰를 쌓아야만 통일을 이룰 수 있다. 우리는 남과 북이 합의한 1972년의 7·4공동성명, 1991년의 남북기본합의서, 2000년의 6·15공동선언, 2007년의 10·4합의서를 토대로 남북관계를 질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이렇게 할 때 비로소 통일의 문이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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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5.28 23:02

젊은이여! 열정을 가지고 도전하라

통계청이 발표한 올해의 청년실업률이 IMF 외환위기 무렵 이후 가장 높다고 한다. 결혼을 빨리한 친구들은 자녀들 취업시키기가 명문대학 보내기보다 훨씬 어렵다고 말한다. 많은 돈을 들여 좋은 대학에 보내고, 다양한 스펙을 쌓게 했음에도 일자리를 못 구한다니 안타깝다. 요즘 젊은이들이 취업을 위해 재수, 삼수까지 한다고 하니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에서 내집 마련과 인간관계까지 포기한 ‘오포세대’, 거기에 취업과 희망까지 접은 ‘칠포세대’ 등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말이 잘못된 말도 아닌 것 같다.베이비 붐 세대가 청년일 때 취업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때는 먹고 살기가 지금보다 훨씬 어려워서 힘들고 봉급이 적은 직장일지라도 받아만 준다면 어디든지 취업할 준비가 되어 있었고, 몇몇 좋은 직장을 빼고는 대부분 그렇게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요즈음은 옛날보다 훨씬 풍족하고 경제규모도 커졌는데 왜 그럴까. 많은 청년들이 자신의 꿈을 위해서가 아니라 대기업 등의 화려한 명성이나 돈을 위해 취직하려다보니 그런 것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며칠 전 대기업에서 임원으로 근무하는 분 말씀이 800명 중에서 20명을 선발하는 입사면접을 보게 되었는데, 지원자 대부분이 유수한 대학 출신에 높은 토익점수, 화려한 스펙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어디에 가장 중점을 두고 뽑았느냐고 물으니 열정을 가진 사람을 우선적으로 선발했다고 한다. 과거 화려한 스펙에 중점을 두고 선발해보니 현실에 너무 빨리 안주하고, 조직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더라는 것이다. 예전에는 집안이 어려워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법원에 들어와 근무하면서 야간대학에 다니고, 승진에 승진을 거듭하여 과장, 국장까지 지낸 분들이 많았다. 그분들은 누구보다 열정이 넘쳐 일도 열심히 하고, 저녁 회식자리나 주말 법원행사에도 거르지 않고 참석하여 분위기를 돋웠다. 승진도 당연히 뒤따랐음은 물론이다. 친한 친구 중에 코스닥에 상장된 회사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친구가 있다. 공고와 공대를 거친 그 친구는 대기업에 가지 않고 조그만 중소기업에 취직을 했다. 사주가 재일교포인데 은사가 추천해서 취업했다고 한다. 처음엔 실망도 했었지만 언젠가 회사를 키워 경영하고 싶다는 일념으로 해외지사도 많이 개척하는 등 열심히 근무한 덕에 임원도 되었고, 회사가 상장까지 되자 사주가 아들 대신 대표이사까지 맡겼다고 한다. 그 친구가 대기업에 취업했다면 지금쯤 임원이나 될 수 있었을까, 아님 벌써 퇴직하여 제2의 직장을 찾고 있지나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해본다.젊은이들은 우리 사회의 주인공이다. 젊은이들이 건강해야 그 사회도 튼튼하다. 취업이 안 되었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 너무 대기업만 고집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지금의 대기업이 20년, 30년 후에도 대기업으로 살아남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장수시대에 접어들면서 직업의 패턴도 많이 변할 것이다. 창업이든 취업이든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하게 정하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는 도전을 해야 한다. 열정, 적당한 자신감 그리고 새로운 것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심을 갖춘다면 언젠가는 역경을 벗어나 성공의 바다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도전이 도전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인내’와 ‘끈기’가 수반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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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5.21 23:02

황금알을 낳는 거위

5월은 여러 기념일들이 많은 달이고, 특히 어린이날, 어버이날, 성년의 날, 부부의 날 등 있어서 가정의 달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가족 간에 사랑과 정이 넘쳐흐르기보다는 대화와 관심은 적어지고 지나친 기대와 욕심으로 서로의 불편함과 불평이 자주 표출되는 것 같다.신문 보도에 의하면 한 초등학교 학생의 동시를 발간한 동시집의 한 작품인 ‘학원가기 싫은 날’에는 “학원에 가고 싶지 않을 땐/ 이렇게// 엄마를 씹어 먹어/ 삶아 먹고 구워 먹어”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어 논란이 일자 급기야 해당 출판사에서 그 동시집 전량을 회수하여 폐기 처분하였다고 한다. 필자는 여기서 해당 출판사가 밝힌 “어린이가 자기의 이야기를 쓴 책이기 때문에 가감 없이 출간했다. 이것을 보고 시대의 슬픈 자화상을 발견하고 어른들의 잘못된 교육에 대해 반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본다.” 는 말을 통하여 부모의 자식에 대한 지나친 욕심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한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동화 중 하나인 ‘황금알을 낳는 거위’는 욕심에 눈이 먼 나머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는 부부 이야기로 대강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가난한 농부가 어느 날 집에서 기르던 거위 둥지에서 번쩍거리는 황금알을 발견한다. 깜짝 놀란 농부는 이 황금알을 이리저리 살펴본 뒤 이 황금알이 진짜 순금인 것을 알게 된다. 농부는 황금알 하나를 얻어 가난을 면하게 됐다. 다음날 이른 아침 반신반의 하면서 거위우리로 들어갔는데 거위는 두 번째 황금알을 낳았다. 농부는 하늘로 올라갈 듯 기뻤다. 행운을 차지한 농부는 빨리 부자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분명히 황금알을 낳는 저 거위의 뱃속은 황금으로 가득 차 있으리라는 상상 속에 빠진다. 결국 거위 뱃속에 들어 있는 모든 황금을 한꺼번에 손에 넣기 위해 거위를 죽이기로 했다. 그러나 거위의 배를 갈랐지만,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뱃속은 황금알이 하나도 없었고 일반 거위와 다를 바 없었다. 우화(寓話)는 인격화 시킨 동물들을 주인공으로 그들의 행동 속에서 풍자와 교훈을 보여 주는 짧은 이야기가 특징이다. 누구나 이 동화를 읽었을 때 저렇게 멍청하고 어리석은 짓을 저지를 사람이 얼마나 될까 생각하겠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우리는 매일 그러한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있는지도 모른다.자식은 그 존재만으로도 부모에게 커다란 축복이고 행복을 가져다주는 신의 선물이다. 하물며 자녀가 지닌 장점 하나 하나 가령, 예의가 바르다든지, 건강하다든지, 성실하다든지, 부모님 말씀을 잘 듣는 다든지 등등이 생각해 보면 하루하루 거위가 황금알을 낳는 것에 비유될 수 있다. 공부를 더 잘 하라고, 다른 아이와 비교하여 부족한 것을 채우라고 내모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면 욕심이 지나쳐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일과 비유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현재 우리나라의 많은 부모들은 아이들을 학원으로 내몰고 선행학습을 강요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그 선행학습이 정말 효과가 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으며 한 전문가의 말에 의하면 선행학습을 받아들일 수 있는 학생들은 정말 소수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러한 폐해가 커지자 급기야 나라에서는 선행학습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기까지 했다. 얼마나 학원에 가기 싫었을 때가 많았으면 어린 학생이 그런 동시를 썼을까 생각하면 어른으로서 미안하고 우리 모두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어리석음을 부지불식간에 저지르고 있다는 자책감에 사로잡힌다.어디 부모가 자식에 대한 일만 그런 어리석음이 있겠는가? 부모에 대한 쓸데없는 원망이나 배우자에게 바라는 지나친 욕심 등도 같은 맥락에서 비유될 수 있지 않을까?5월이 가기 전에 우리 모두 가족에 대한 진정한 사랑과 가정의 행복을 다시 생각하면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않겠다고 다짐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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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5.14 23:02

국난극복을 위한 노·사·정 대타협

1997년 12월 제15대 대통령선거에서 헌정사상 초유의 평화적·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 그 역사적인 현장에서 1년이 넘도록 긴장했던 나는 대통령 선거를 마치고 고향 전주에 내려갔다.성묘도 하고 고향에서 새해를 맞으면서 몸과 마음을 충전하고 싶었다. 그런데 전주로 향하던 차 안에서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님의 전화를 받았다. 삼청동 인수위원회 사무실로 급히 오라는 연락이었다.나는 부름을 받고 부랴부랴 상경하여 대통령 당선자와 마주 앉았다.“한 동지! 이거 큰일이오. IMF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노·사·정의 협력과 화합이 필요하오. 지금 나라를 구할 길은 노·사·정이 타협하는 길밖에 없소. 그게 안 되면 IMF에서 우리한테 돈을 꾸어 줄 수 없다고 하지 않소. 그러면 나라가 어떻게 되겠소? 지금 국고가 바닥나 있소. 이 일은 정권에 관한 문제요. 한 동지가 이 위기를 극복해주기 바라오.”대통령 당선자께서는 간혹 중요한 말씀을 하실 때는 ‘동지’라는 호칭을 쓰시곤 했다.대통령 당선자의 짧지만 간곡한 말씀에 “네,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하고 인수위 사무실을 나섰지만 앞이 막막했다.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나는 노동연구원 사무실 한 칸을 빌려 협상테이블을 마련했다. 노동자와 사용자, 그리고 정부와 정계 대표들이 마침내 한 테이블에 앉았다. 이는 역사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마침내 1998년 1월15일 노·사·정 및 정당이 참여한 노사정위원회가 발족되었다. 당시 외환 고갈과 외채의 늪에 빠진 국가를 구해야 한다는 시급한 당면과제에 대해 노·사·정 누구도 이견이 없었다. 그만큼 당시의 국가경제는 다급했다. 그러나 사태를 해결하고 합의를 도출해 내기 위한 서로의 입장은 달랐다. 협상의 고비마다 의견이 마찰하고 서로 다투는 소리가 협상장에 가득했다. 교착상태는 물론 때로는 회의 불참을 선언하기도 하고, 때로는 회의장을 박차고 나가는 사태가 빈번했다.한마디로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정신이 필요했다. 경영자는 노동자 입장에서 생각해 보게 하고 노동자는 경영자 입장에서 생각해 보도록 유도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경영자와 노동자 모두가 국난에 처한 현실을 인식하게 했다. 그리고 국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노·사·정이 조금씩 양보해 고통을 분담하는 길밖에 없다고 호소했다.노사정위원회의 ‘마라톤 협상’은 끝이 없었다. 낮과 밤에 이어 새벽으로 이어지는 마라톤 협상을 거듭하던 1998년 2월 6일 새벽, 드디어 우리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협약’을 탄생시켜 전 국민을 감동시키고 ‘全 국민 금모으기 운동’과 함께 한국인의 저력을 세계에 보여 주었다.노·사·정 대타협을 이루자 한국에 외채를 빌려준 외국 대형 금융기관들은 만기를 연장해 주었고, 이로 인해 한국은 외환금융 위기의 벼랑 끝에서 다시 살아날 수 있었다.1998년 2월 6일, 기자회견을 통해 단군 이래 최초라는 노·사·정 합의서를 발표하면서 나는 노·사·정 모두가 자신들의 어려운 입장을 떠나 ‘국가를 살려야 한다.’는 대승적 차원에서 합의서를 만들어낸 각계 대표들에게 감사했다.그리고 지금도 우리나라의 노동자와 사용자는 세계 어느 나라의 어느 민족보다 우수하고, 대한민국은 아무리 어려운 난관이 닥쳐도 극복하며 앞으로 나갈 수 있는 자랑스러운 국가라는 확신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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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5.07 23:02

우리나라 언론자유도 평가 추락

‘권부’라고 하면 큰 권력을 가지고 있는 곳을 의미한다.그런데 권부라는 표현의 이면에는 권력을 갖고 있는 기관의 권력행사가 헌법과 법률에 의해 합리적으로 행사되는 것이 아니라 자의적이고 초법적으로 행사된다는 뜻을 함의하고 있다.우리나라에서는 대체로 권부라고 하면 청와대의 대통령 권력을 생각하는 것이 상식이다. 우리나라의 대통령제가 흔히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불릴 정도로 선진 민주국가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권한이 대통령 한사람에게 집중되어 있을 뿐 아니라 우리 헌정사에서 대통령이 권력행사를 초법적이고 자의적으로 한 기간이 길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날 군사독재정권이라 불리던 시절에는 군부야말로 권부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그러나 요즘 군부를 권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참으로 다행스럽고 고마운 일이다.그런데 요즘 군부가 권부에서 물러난 대신 전혀 새로운 집단들이 새로운 권부로 등장하고 있지 않나 국민들은 염려하고 심각하게 경계하고 있다. 보는 각도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거대 언론과 검찰과 거대 재벌이다.고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어느 날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우리나라의 모든 조직이 지난날의 잘못에 대하여 반성도 하고 국민에게 사과도 했지만 반성도 사과도 않는 집단이 있다. 언론과 검찰이다.새로운 권부로 지목되는 언론, 검찰, 재벌중에서 언론환경의 개선, 언론의 권부화문제가 가장 중대하고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해서 언론과 정권과의 관계에 대하여 몇가지 생각하고자 한다.나는 이승만 정권 말기에 언론계에 들어가 근 17년간 기자생활을 했고 그 이후는 정치인으로, 합쳐 55년간이나 언론과의 밀접한 접촉속에서 지내왔다.우리나라가 권위주의와 군사독재정권을 극복하고 이만한 민주화를 이룩한 데는 일부 언론의 역할이 컸던 것이 사실이고 그에 대해 감사히 생각한다.그러나 근래의 언론상황은 국민들에게 공정하고 균형있는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과거 권위주의 정권시절보다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김대중·노무현 정권 양대에 걸쳐 나는 정권과 주요언론과의 관계를 개선해보려고 백방으로 노력해 봤으나 성공하지 못했다.김대중 대통령은 개선해야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여러사람이 나서 노력했으나, 실패했고 노무현 대통령은 언론환경이 개혁되지 않고는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제대로 된 정치를 할수없다는 단호한 의지로 맞서 싸웠다.노무현 대통령 말기 언론과의 관계가 최악일 때에 ‘언론문제에 대하여 대통령이 직접 나서지는 마십시오.’라고 말한 나의 충고에 대하여 노무현 대통령이 한 말을 잊을 수가 없다. ‘나도 언론과의 싸움이 당장의 성과도 없고 나에게 상처만 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러나 언론행태가 개혁되지 않고는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제대로 된 정치가 불가능합니다. 나에게 상처가 될지라도 국민속에 문제를 제기하고 떠나겠습니다.’국제적 인권단체인 ‘프리덤 하우스’의 작년 우리나라의 언론자유도평가는 민주정권시절 20위였던데 비해 68위로 추락했다.정치도 언론도 국민도 우리 언론환경에 대하여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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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4.30 23:02

행복 바이러스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법관, 직원들과 함께 노인복지회관에 밥퍼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우리 법원은 매달 당번을 정해서 세 번째 주 화요일을 담당하고 있다. 지난해에도 간 적이 있었지만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아 약간은 의무감으로 봉사활동을 했던 기억이 난다.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마음의 여유가 생겨 퇴식구에서 식기를 반납 받아 정리하는 일을 하면서 식기를 놓고 가는 어르신들의 표정을 살필 수가 있었다. 감사하다는 말을 하면서 짓는 표정이 밝고 건강해 보였다. 오기를 잘했다는 마음이 들었고, 마음 한구석에는 나도 다른 사람에게 쓸모가 있다는 행복감과 사무실에서의 고민이 한꺼번에 치유되는 느낌이 들었다. 옆에서 내가 건넨 식기를 받아 수세미로 닦는 자원봉사 아줌마는 집에 있을 때보다 훨씬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하다고 한다. 물론 육체적인 건강은 덤으로 따라온다고 한다. 손놀림이 어찌나 빠르던지 달인이 따로 없다. 이분들은 행복이 어떤 조건의 충족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충실하게 살아갈 때 얻는 선물이라는 것을 몸소 깨닫고 있는 듯이 보였다. 배식이 끝난 후 행복한 표정의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먹는 점심은 꿀맛이었다.3월 넷째 주말에도 법원 직원들과 함께 경기남부아동일시보호소에 자원봉사를 다녀왔다. 대상은 미혼모가 버리는 아이들이나 부모의 학대에 시달리는 입학 전의 아동들이다. 처음에 입소할 때는 어린 나이임에도 세상에 대한 분노가 가득하다고 한다. 보호소 직원들의 체계적인 심리, 음악, 미술 치료 등을 거치면서 부드럽고 평온한 눈빛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보통 3개월에서 6개월 정도 머무는데 헤어질 때가 되면 정이 쌓여 눈물을 흘리기도 한단다. 사회적 지원이 많지 않아 보호소 직원들이 24시간 교대로 근무한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마음이 아팠다. 우리 팀은 남녀로 구분하여 남자들은 주로 청소를 담당하고, 여자들은 아이들과 놀아주거나 밥 먹여주는 일을 했다. 처음엔 버려진 아이들을 만난다는 선입견에 심란한 마음으로 왔었으나, 보호소 직원들의 헌신 덕분에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바뀐 아이들을 보니 참으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직원들의 귀한 시간을 뺏어 마음 한구석이 미안했는데 오히려 열심히 봉사하면서 감동받는 모습을 보고나니 미안한 마음도 한결 덜어졌다. 긍정심리학의 창시자인 마틴 셀리그먼 교수는 더 바랄 것도 없고, 더 올라갈 데도 없고, 더 채울 것도 없는 번성한 상태가 진정한 행복이라고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긍정적 정서, 자발적으로 업무에 헌신하는 것, 타인과 함께하는 것, 자신보다 더 중요한 것에 소속되고 거기에 기여하는 것, 성취 그 자체가 좋아서 추구하는 것이라는 5가지의 행복공식을 제안했다. 이 이론이 기존의 많은 행복이론과 다른 점은 사람들이 특별한 이유 없이 ‘그 자체가 좋아서’하는 행위들을 행복의 조건으로 포함한 데 있다고 한다. 안양지원에 부임한지도 벌써 1년 2개월이 되었다. 주인의식을 갖고서 행복한 법원을 만들자고 취임하면서 강조했고, 본인이 행복해야 민원인이나 당사자도 편안해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직원들도 자기소개를 하거나 건배사를 할 때마다 행복이라는 단어의 사용빈도가 유난히 늘었고, 듣고 있노라면 마치 우리는 행복한가보다 라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곤 한다. 마치 셀리그먼 교수의 긍정적인 정서를 몸소 실천하는 듯해서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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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4.23 23:02

선물의 향기

‘김영란법’ 이라 알려진 부정청탁과 금품 수수 금지에 관한 법이 지난 3월 26일 대통령 재가를 거쳐 27일 관보에 게재됐다고 한다. 이 법은 이날부터 1년 6개월의 유예기간 뒤인 내년 9월 28일부터 본격 시행되며, 김영란법에 의해 공직자, 언론인, 사립학교와 유치원 임직원 등이 100만 원 또는 연간 300만원을 넘는 금품 등을 받을 경우,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이 없어도 형사 처벌을 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서울시교육청은 지난달 15일 교육현장에 남아있는 불법 찬조금과 촌지 관행을 뿌리 뽑기 위해 ‘불법 찬조금 및 촌지 근절대책’을 발표했다. 각 학교에선 교원이나 교감을 담당관으로 지정하고 불법 찬조금·촌지 근절을 위한 자체 세부계획을 수립해야 하며, 담당관들은 학기 초인 3월과 9월, 스승의 날 전후, 체육대회나 수학여행, 명절 즈음에 세부계획에 따라 자체 점검을 한다고 한다.김영란법을 만들게 된 배경에는 이른바 떡값 검사, 벤츠 검사, 스폰서 검사의 경우처럼 권력기관에서 근무하면서 공직자들이 일상적인 친분 관계에 의한 돈이나 금품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사실이 있고, 서울시교육청 불법 찬조금 및 촌지 근절 대책 발표 후에 담임 교사가 학부모들에게 학교에 올 때 어떤 선물도 가져오면 안 된다는 안내를 했다는 말도 들려온다. 심지어 어떤 교사는 “어머니 아무 것도 가져오시면 안 됩니다. 커피 한 잔도 안돼요… 저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세요…” 등의 말도 했다는 소리까지 들린다. 이러한 문제는 ‘선물’과 ‘뇌물’의 구분이 모호하다는 데에서 발생한 것 같다. 엄밀하게 따지만 세상에 순수한 공짜가 어디 있겠는가? 사회통념이 뒷받침해주지 않는 과도한 선물은 이미 선물이 아니다. 그러나 선물은 서로가 훈훈한 정을 나누는 도구가 되기도 하고, 적절한 선물이 그 사람을 다시 보게 하는 계기를 만들기도 한다. 필자가 속한 한 CEO과정의 동문 모임이 있었다. 그 모임의 회장은 금융계에 종사하는 사장이었는데 말도 별로 없고 인상에서부터 행동까지 좀 특이하고 까칠한 성격의 소유자라서 모임의 구성원들이 회장에게서 어떤 사람의 향기나 정을 느낄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모임이 끝나고 회장이 사람들에게 책을 한 권씩 선물하였다. 선물을 주면서 하는 말이 자기는 시를 좋아하는데 특히 영시를 좋아한다는 것 이었다. 그리고 자기는 영시를 영문으로도 읽지만 영문보다 더 시의 맛을 살려주는 번역을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그 기가 막히게 영시를 맛을 살려 번역하시는 분이 바로 고 장영희 교수라는 것 이었다. 자기가 지금 선물로 준비한 책은 장영희 교수가 번역한 영시집인데 자기 혼자 그 맛을 즐기기 너무 아까워 우리에게도 나눠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순간 그 회장이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보였으며, 모임에 참석한 회원 모두가 환호하였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장영희 교수를 만난 사람은 없지만 그의 글을 좋아하고 그가 너무 빨리 이 세상을 떠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사람들이어서 감동은 더 컸던 것 같다. 내 집무실 책상에 조그만 거울 하나가 놓여있다. 일하다가 가끔 그 거울을 보고 표정도 밝게 하고 머리카락이나 옷매무새도 바로 잡는다. 가까운 사람이나 후배, 동료들에게 거울 선물을 하나 하면 어떨까? 거울을 보며 웃는 연습도 하고 가능하다면 자기의 내면까지도 들여다 보라는 말을 하면서 선물하면 우리 사회가 좀 더 밝아지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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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4.16 23:02

새로운 삶을 위한 서곡

“저는 암에 걸려 행복해요. 암 때문에 가족의 사랑을 찾았으니까요!”폐암 수술을 받고 몇 달이 지난 아내가 요양지에서 산책 도중 문득 쏟아낸 말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아내에게 가슴이 미어지는 미안함을 느꼈다. 내가 얼마나 많은 세월동안 아내를 힘들고, 외롭게 했으면 암에 걸려 행복하다는 말을 할까? 라는 자책감 때문이었다.지난 2010년 8월, 건강하게만 보였던 아내가 갑자기 쓰러졌다. 놀란 마음으로 병원에 달려갔는데 뜻밖에도 폐암이라는 진단이 나왔다.그야말로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었다. 아내와 나는 이 엄청난 현실 앞에서 ‘왜 우리에게 이런 엄청난 불행이 닥쳤을까?’라는 절망감에 하늘을 원망했다.그러나 절망과 원망만 하고 있기에는 우리에게 닥친 현실이 너무 절박했다. 우선 환자인 아내가 병마와 싸워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하는 일이 급선무였다. 병은 약의 처방이나 의사의 치료도 중요하지만 환자 본인이 ‘병을 이겨낼 수 있다.’는 강한 정신력과 의지력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아내가 폐암에서 완치되었다는 확신이 있을 때까지 평생을 걸어온 정치활동을 중단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런 우리 부부에게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따뜻한 격려를 보내주셨고, 무엇보다도 아내의 수술을 담당하신 의료진의 세심하고 따뜻한 정성으로 수술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그러나 암이란 것이 수술만으로 완치되는 병이 아니다. 나는 폐암수술을 마친 아내를 부축하여 공기 맑은 곳을 찾아 항암치료를 위한 요양생활을 시작했다.그 요양생활은 아내와 나에게 너무나도 힘든 시간이었다. 절망과 희망, 그야말로 희비(喜悲)가 엇갈리는 시간이었다.어느 날 아내는 제주도 바닷가 편백나무 아래서 “하나님 살려 주세요. 편백나무야! 나를 살려다오.” 라며 절규했다. 또한 밤마다 심한 기침으로 인한 고통을 못 이겨 “나는 이제 가망이 없는 것 같아요.”라며 힘없이 돌아눕는 아내의 모습을 바라 볼 때는 형언할 수 없는 절망감을 느껴야 했다.그런가 하면 아내가 언제부터인지 “한 발자국이라도 더 걸어야 내가 살 수 있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4~5㎞씩을 걷는 모습을 볼 때는 ‘아내는 꼭 이겨낼 것’이라는 희망에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던 때도 있었다.아내의 병은 정치인의 내조자로서 모진 비바람을 맞으며 가시밭길 같았던 인생길을 함께 걸으며 겪었던 고통이 폐암으로 나타난 것이다. 한마디로 내가 아내를 폐암의 고통 속으로 몰아넣은 것이다.그래서 나는 늘 아내에게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아내가 폐암 수술을 받은 지 언 5년이 다가온다. 그동안 내게는 별명이 하나 생겼다. 내가 아내를 극진하게 병간호를 해 주었다고 주위 사람들이 ‘수간호사’라는 별명을 지어 주었다.그렇게 아내와 함께했던 지난 언 5년의 세월이 나에게는 너무나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아내는 지난 시절, 나에게 느꼈던 섭섭한 마음을 지난 5년 동안 이미 모두 용서한 것 같다.아직 아내의 병이 완치된 것은 아니다. 요즘도 병원을 찾아 항암치료를 받는다. 아내의 건강을 함께 걱정해 주셨던 많은 분과 특히 의료진 여러분께 고향의 지면을 통해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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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4.09 23:02

정치 지도자의 신념과 자세

요즘 일부 지도급 정치인들이 오로지 자신의 정치적 영달에만 목적을 둔듯한 정치행태를 보면서 정치인들의 바람직한 자세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게 된다.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국시에 맞는 존경할만한 대통령은 김대중 노무현 두 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내가 직접 겪은 바.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지도자로서의 진면목을 알리는 몇 가지 감동적인 일화를 널리 알리는 것이 정치인들의 자세를 바로잡는데 필요하다고 생각했다.1970년대 엄혹했던 박정희 독재시대 김대중 대통령의 생명을 건 반독재투쟁과 통일방안 주창등은 잘 알려진 일이지만 우리가 지금 향유하고 있는 지방자치제 또한 김대중 대통령의 정치를 당장의 이해가 아니라 멀리 내다보는 정치적 혜안과 확고한 정치신념이 쟁취한 산물이었다.1989년말 제1야당 평민당총재였던 김대중 대통령은 원내총무인 나에게 노태우 대통령과의 여야영수회담에서 지방자치제실시를 가장 중요한 사안으로 합의할 수 있도록 협상하도록 지시했다.당시 시대적 상황은 야당이 총선거에서는 한번 해볼 수 있지만 지방자치제 선거는 전혀 승산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 대한 지적에 대하여 김대중 총재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민정당 후보가 거의 다 당선되더라도 정부에서 임명한 사람들보다는 선거에서 뽑힌 사람들이 낫다. 지방자치제를 깔지 않고는 평화적 정권교체는 불가능하다.이런 김대중 총재의 확고한 신념이 지자제 실시를 부활시켰다. 노무현 정몽준 후보의 단일화 협상 때 일을 잊을 수 없다.여론조사 방법을 통해 간발의 차이로 노무현후보가 승리했지만 정몽준후보 측은 노무현 후보선거운동에 전혀 협력하지 않았다. 당시 여론은 정몽준이 적극 협력해주면 한번 해볼 수 있지만 협력하지 않으면 승산이 없을것으로 나와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대통령 말고는 모든 것을 다 내어주고라도 협력을 얻도록 독촉했다.양 진영사이에 절박한 막후협상이 진행되었다.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어떤 자리를 줄것인가였다. 그것도 처음에는 서면합의를 요구했다. 양진영사이에 합의를 도출하지 못한채 선거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그때 정몽준 진영에서 마지막 사자가 나한테 왔다.어떤 서면합의도 요구하지 않겠다.다만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후보 두사람만이 밀실에서 만나 대통령에 당선되면 어떻게 대우하겠다는 구두약속을 해달라는 것이었다.그분은 이렇게 덧붙였다. 구두로 말해달라는 것은 아무런 법적 구속력이 없는 것이 아니냐 참여의 명분을 위해 덕담을 해달라는 것 아니냐.나는 그 밀사의 말을 그대로 노무현 후보에게 전달했다.그런데 노무현후보의 답변은 단호했다.나나 그나(정몽준) 단일화를 위해서 자리흥정은 않겠다고 국민들에게 약속했습니다. 아무리 밀실에서 단둘이 얘기해도 국민과의 약속을 어기는 것이 아니겠습니까.그렇게 해야 대통령이 될 수 있다면 그런 대통령은 하지 않겠습니다.차라리 원칙을 지키다 낙선하는 것을 통해 정치발전에 기여하겠습니다.당장의 이해관계에 구애되지 않는 이런 단호한 용기가 그를 거인으로 만들었다.개인적으로 험난하고 불편하더라도 시대적 과제에 몸을 던지고 대의를 쫓는 정치인을 미래의 지도자로 밀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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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4.02 23:02

개명에 관한 단상

법원의 기관장이 하는 업무인 개명(이름 변경) 과정을 진행하다 보면 다양한 사유들을 접하게 된다. 과거에는 개명허가를 결정함에 있어서 바뀐 이름으로 초래될 수 있는 사회적 혼란과 부작용 등 공공적 측면을 강조하여 허가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요즈음은 2005년 대법원 결정에 따라 이름이 가지는 공공적 측면뿐만 아니라 개인의 인격권과 행복추구권 등을 고려하여 개명신청권의 남용으로 볼 수 있는 경우가 아닌 한 폭넓게 허가하고 있다.각 법원마다 사정이 비슷하지만 안양지원의 경우에도 1년에 약 3000건 정도의 개명신청 사건을 처리하고 있고, 한 번에 한해서는 대부분 허가해 주고 있다. 문제는 한번 개명을 한 후에도 다시 개명신청을 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어려서 개명을 한번 허가받았음에도 성년이 되기 전에 다시 개명을 신청하는 경우에는 심문기일을 잡아 왜 다시 신청을 하는지 그 이유를 묻는다. 대개는 부모의 의사에 따라 재차 개명 신청하는 경우가 많아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아이의 의사를 존중하여 그때 변경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유하면 대부분 수긍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간혹 아이의 의사가 완강하여 꼭 이름을 다시 개명하고 싶다는 부모들을 만나면 난감할 때가 많다. 이런 사건의 경우 부모와 아이를 같이 심문하다 보면 부모가 아이 뜻에 맞추려고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볼 때가 있다. 아이를 따로 불러 이유가 뭐냐고 물으면 아이들이 자기 이름을 가지고 놀린다고 한다. 학창시절에 의례 서로의 이름을 가지고 별명을 만들어 불렀던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 이야기하면서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해도 그다지 수긍하는 것 같지 않다. 학생이 성년이 돼서 신청하면 그땐 허가해 줄 수도 있다고 해도 믿지 못하는지 그때도 판사님이 여기 계속 계시냐고 물을 때면 나도 웃음이 나온다.개명신청을 하는 사람들의 이유를 보면 대부분 자신의 불행을 이야기한다.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해서인지 이름에 걸고 기대는 심리가 많은 것 같다. 대학진학을 못 해서, 취직을 못 해서, 결혼을 못 해서, 사업이 어려워서, 가족이 중병에 걸리거나 사망해서 등 사연도 가지가지이다. 내가 보기에는 괜찮은 이름인 것 같은데 점쟁이나 작명가가 대개는 이름의 획수가 맞지 않거나 액운이 끼었거나 손재수가 있다고 설명하는 것 같고, 점집이나 작명소의 설명서를 첨부하여 법원에 개명신청을 하는 것을 자주 본다. 우스갯소리로 개명을 폭넓게 인정해 주었더니 점집과 작명소만 돈을 버는 것 같다는 말까지 나온다. 사람의 운명이 이름을 바꾼다고 나아지고 행복해질 수만 있다면 몇 번이라도 허가해 주고 싶은 심정이다. 지난 20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행복의 날’이었다고 한다. 여론조사기관인 갤럽이 세계 143개국을 상대로 행복도를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는 118위로 최하위권에 머물렀다고 한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되었음에도 우리는 왜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 걸까. 지나친 경쟁심 때문이 아니겠냐라는 생각도 든다. 우리나라도 하루 빨리 행복해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이름 변경에 자신의 운명을 걸기보다는 좀 더 예쁜 이름을 갖고 싶어서라거나 행복해지기 위해서라는 신청자가 많아져서 기꺼운 마음으로 허가할 수 있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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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3.26 23:02

한국어 몰입교육

서울의 사립 초등학교 입학 경쟁률이 올 들어 하락했다고 한다. 서울시교육청이 공개한 ‘2015학년도 사립초 모집 현황’에 따르면 서울의 39개 사립초의 전체 경쟁률은 2.2대 1로 지난해 경쟁률은 2.4대 1보다 낮아졌다. 신문 보도에 따르면 가장 큰 이유로 영어몰입교육의 폐지를 들고 있다. 지난해 교육부와 17개 시도교육청은 사립 초등학교의 영어교육 정상화를 위해 영어 몰입교육을 정규 교육과정에서 폐지시키고, 1, 2학년 대상 영어수업도 할 수 없게 한 바 있다. 언어 몰입 교육(Language immersion)은 제2 언어를 가르치는 방법 가운데 하나로, 가르칠 언어를 이용하여 다른 일반 교과목 수업을 하는 것을 말하며 1960년대 캐나다의 영어 사용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프랑스어를 가르치기 위해 처음 시도되었다고 한다.교육열이 남다른 한국 학부모의 지대한 영어교육에 대한 관심으로 그동안 일부 사립초등학교에서 해왔던 영어 몰입교육이 논란이 된 것과 달리 한국어 몰입교육을 잘 운영해 오는 미국의 공립학교가 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인 클레어 릴리엔탈 학교(Claire Lilienth al Alternative School)에서는 한국어 몰입교육 프로그램 KIP(Korean Imme rsion Program)을 20년 넘게 운영해 오고 있다. 이 학교는 샌프란시스코의 중류층 가정이 밀집해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학부모들이 교육에 대한 관심이 많고 한국어와 한국에 관심이 많아 이 프로그램을 운영해 오고 있다고 한다. 릴리엔탈 초등학교는 이 프로그램의 목적으로 두 언어와 문화를 잘 이해할 수 있는 것, 긍정적인 다문화 태도와 높은 자존감을 가질 수 있게끔 하는 것 등을 들고 있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한 학년 4개 학급 중 한 반은 한국어 몰입교육을 하는 학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반은 영어 이외의 과목을 한국어로 가르친다. 한국어 몰입 반 학생들의 1/3 정도는 한국어와 영어를, 1/3 정도는 한국어만을, 3/1 정도는 영어만을 말할 수 있지만 한국어로 설명하는 수업을 열심히 따라서 하고, 학년이 오를수록 한국어 실력이 향상된다고 한다.지난 1월 중순부터 서울교육대학교 재학생 6명이 4주 동안 이 학교에서 한국어 몰입프로그램 보조교사로 봉사활동을 펼치고 돌아왔다. 한국의 영어 몰입교육과 다르게 이곳은 원어민 교사가 없기 때문에 서울교대 학생들이 한국어 원어민 강사의 역할을 한 것이다. 봉사를 마치고 돌아온 학생들의 말에 의하면 미국의 공립학교에서 한국어 몰입교육을 한다는 것이 가슴 벅찬 일이었으며, 학교와 교사, 학부모들의 열정으로 한국어 몰입 프로그램이 아주 잘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다만 이것을 지원해 줄 수 있는 교재와 강사들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한다.이를 지원하고 이러한 프로그램을 확산시킬 수 있는 방안을 정부와 국민 모두 함께 모색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을 보다 잘 이해하고 한국 문화에 친숙해질 수 있는 더 없이 좋은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그 방안의 하나로 교육대학이나 사범대의 역할을 들고 싶다. 대학이 나서서 교재개발이나 강사를 보내주는 일에 앞장서면 어떨까? 교육대나 사범대의 교육과정을 생각하면 교재의 제작이나 방학을 이용한 재학생 교육봉사 등이 어렵지 않을 것 같다.우리에게는 세계적으로 우수한 예비교사가 교육대학과 사범대학에 많이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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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3.19 23:02

기린봉의 꿈

전주사범부속초등학교 시절 나는 공부보다는 운동에 더 흥미를 느꼈다. 특히 축구와 탁구를 좋아하고 운동에 소질이 있었는지 여러 대회에도 나갔다. 그러나 대회에서 큰 상을 받지는 못했다.6학년 때는 전교 어린이 회장 선거에 출마하여 회장에 선출되었다. 직선제로 전교 어린이 회장에 뽑힌 나는 자부심이 대단했었다.학교와 동네에서 친구들이 잘 따르는 타입 이었던 나는 친구들과 기린봉에 자주 올라가곤 했다.기린봉은 전주 팔경의 하나로 손꼽히는 산이다. 기린은 키가 크고 재주와 지혜가 많은 동물인데, 재주와 지혜가 뛰어난 젊은이를 가리키는 ‘기린아’라고 하는 것은 아마 여기에 근거가 있는 듯하다. 기린은 성군이 이 세상에 나올 전조로 나타난다는 상서로운 상상의 동물을 뜻하기도 한다. 전주 일대에서 아름다운 곳을 고른 전주 10경 가운데 제 1경이 기린토월(麒麟吐月)인데, 동쪽 기린봉 위로 보석처럼 떠오르는 아름다운 달을 가리킨다.한마디로 기린봉은 전주 시민에게 상서로운 산이다. 전주 시내에서 익산 쪽으로 20리쯤 떨어져 있는 기린봉 큰 바위에 사람들은 소망을 써 붙이고 간절히 기도를 하곤 했다.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친구들이랑 기린봉에 올랐던 나는, 사람들이 소원을 써 붙이는 바위 앞에 이르러서 어린 나이에 나의 장래희망으로 무엇을 쓸까 고민했다. 그러다가 나는 종이에 ‘국회의장’이라고 써서 바위에 붙이고 기도를 드린 다음 그 종이를 바위 아래 파묻었다.그때만 해도 학교 선생님이나 동네 어른들이 어린이들한테 “장래 무엇이 되고 싶으냐?”라고 물으면 십중팔구 ‘대통령’ 아니면 ‘국회의원’, ‘장관’ 등을 꼽을 때였다. 그런데 웬일인지 내게는 당시 이승만 대통령보다는 야당을 이끌고 있는 국회의장 신익희 선생이 더 멋있고 훌륭한 사람으로 보였다. 그때 나는 신익희 의장이 했다는 연설 내용을 어른들로부터 간간이 들으면서 무슨 뜻인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호감이 많이 갔다. 특히 선생의 수려한 외모가 마음에 들었다.그날 바위에 ‘국회의장’이라고 소원을 쓴 것은 국회의장이라는 지위나 감투보다 당시 국회의장이던 ‘신익희’라는 사람의 인격을 닮고 싶다는 소년다운 소박한 뜻이었다.나는 지금도 어떤 지위나 힘의 유무보다는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역사와 국민에게 어떤 평가를 받을까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인생은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바르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즉 ‘무엇이 되느냐’라는 타이틀(title) 보다는 원칙을 가지고 가치 있게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훗날 나는 우직하게 국민행복과 통일을 지향하며 ‘정도(正道)의 길’을 걸어온 정치인으로 기억되고 싶다.눈앞의 이익보다는 멀리 국가의 미래를 바라보고 역사의 평가를 두려워하면서 바르게 가고자 하는 것이 정도의 길이다. 역사를 두려워하지 않는 정치인은 미래의 장기적인 비전과 국민의 뜻을 외면하고 오직 당장 이해관계에만 집착한 나머지 나라를 망칠 가능성이 크다.국민과 함께 호흡하며 역사를 두려워하는 정치인이 바른 길을 가는 정도의 정치인이다. 역사를 의식한다는 것은 올곧은 현실을 창조해 나간다는 뜻이다. 국민과 역사를 두려워 한다는 것은 정의롭게 국민의 편에 선다는 것을 의미한다.그리고 이제 분단 70년을 마감하고 평화로운 통일조국을 이루어 후손에게 물려줄 의무가 우리 모두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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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3.12 23:02

권력독점의 틀, 분권의 틀로 바꿔야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불신이 거의 한계점에 이르러 있다.우리나라에서 통합의 상징이어야 할 대통령은 계층적 지역적 갈등의 원천이 되고 있고, 정치의 중심에 서야 할 국회는 대권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사생결단의 전투장이 되어있다. 민주정치의 중추여야 할 정당 역시, 오직 대통령권력 쟁취에 대한 유·불리를 중심으로 끊임없이 생성과 소멸, 이합집산을 거듭하고 있다.그 결과 국민을 위한 생산적인 정치가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모든 국가권력을 대통령 1인에게 집중시킨 제왕적 대통령제 헌법으로 인해, 대통령직을 차지하면 모든 것을 다 갖게 되고 대통령직을 잃으면 모든 것을 다 잃게 되기 때문이다.’이 글은 2008년 7월. 17대 국회를 마지막으로 30년간의 현역정치인생을 마감한 제가, 정치원로로써 해야 할 소명을 모든 정치적 폐단의 근본원인인 제왕적 대통령제의 개혁에 있다고 생각해서 그 개혁운동에 국민들의 동참을 호소하는 호소문의 서두이다.그때로부터 어언 7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정권도 바뀌었고 많은 일이 있었고 많은 변화도 있었다.그러나 긍정적인 발전은 거의 없었다. 대화와 타협 협상의 정치보다는 전투적 대립의 정치가 주류를 이루고 당연한 귀결로 국민의 정치에 대한 불신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계층적 지역적 갈등과 세대적 갈등도 심화되고 있다. 국가발전의 업그레이드를 위해 절대 필요한 사회적 통합과 사회적 자본축적이 위험수위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정권을 맡은 사람, 정치를 이끄는 사람, 경제를 책임진 사람들의 잘못과 책임에 대해서도 반성하고 추궁하고 따져야겠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권력구조의 기본 틀에 대해서도 심각히 따져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대통령제는 미국 국경을 넘어서는 순간, 죽음의 키스를 만난다’는 세계적 정치학자 칼 뢰벤슈타인의 경고를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세계선진국 집단이라고 하는 OECD국가 중에서 미국과 한국, 멕시코 말고는 대통령제를 가진 나라가 거의 없다는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바꾸어 말하면 미국 이외에는 대통령제를 채택하여 성공한 나라가 거의 없다는 것을 웅변해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한국의 대통령제는 건국 초 미국의 제도를 모방한 것이라고 하지만 미국제도에 비해서도 터무니없이 많은 권력이 대통령 한 사람에게 집중되고 있다.군대, 경찰, 검찰, 국세청, 감사원, 국가정보원 등 모든 권력의 칼자루가 대통령 한사람에게 집중되어 있다. 독재국가 말고 정상적인 국가에서 우리나라처럼 권력이 대통령 한사람에게 집중된 나라는 없다.특히 우리나라처럼 지역감정과 지역주의가 심각한 나라의 경우는 권력집중의 폐해는 더 심각할 수밖에 없다.다수지역은 다수지역대로 소수지역은 소수지역대로 하나밖에 없는 대권을 쟁취하기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투쟁을 반복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 정치의 본질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권력독점은 우리 국민 모두에게 폐해를 주어왔지만, 우리 전북과 같은 소수지역의 경우 그 폐해가 더 클 수밖에 없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광복 70주년이 되는 2015년에는 정치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권력독점의 틀을 분권의 틀로 바꾸는 문제가 정치권과 국민 사이에 적극적으로 논의되는 한해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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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3.05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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