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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를 꿈꾸며

미국 사회에서 가장 존경받는 법조인이자 ‘위대한 반대자’로 칭송받는 홈즈는 1919년 Abrams v. U.S.A 판결에서 ‘진리의 가장 궁극적인 선은 시장의 자유로운 경쟁 속에서 달성될 수 있다’라고 설시하였고, 이 법리는 소수의견에서 출발하였지만 현재 미국 헌법이론을 대표하는 판시가 되었다. 현재의 정치지형도에서 충청이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그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필자 생각으론 다양성이라고 본다. 여당과 야당이 번갈아가면서 당선되는 충청에서는 어느 한쪽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여·야의 모든 역량이 집중되니, 인구도 늘고 정부지원도 집중되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 이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통합진보당 사건이 헌재에 계류 중일 때에는 결론이 어떻게 날 것 같으냐면서 은근 슬쩍 의견을 떠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이 드신 분들 중엔 북한을 이롭게 하는 정당은 마땅히 해산되어야 한다고 자기의견을 피력했다. 그 후 헌재에서 해산결정이 난 뒤 자기견해가 맞았다고 만족스러워 했을지도 모르겠다. 해산결정 이후에도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이른바 국정원 댓글 사건의 1심에서 국정원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가 선고되자 법원이 그럴 수 있느냐며 듣기에 민망한 공격이 계속되었고, 1심 재판장을 잘 아는 나로서는 마치 무슨 죄인이라도 된 양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최근 항소심 재판에서 1심과 다르게 유죄가 선고되자 그러면 그렇지 라면서 법원이 정의를 바로 세웠다는 사람도 많고, 그에 반대하는 사람도 많다. 아직 대법원 결론이 남아 있다.국민들이 많은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그만큼 법원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점에서 고마운 일이지만, 실제 재판하는 법관 입장에서는 부담스럽기 그지없다.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해야 하는데도 여론에 따라 그 결론이 좌우된다면 누가 그 재판을 신뢰하겠는가. 재판은 용광로에 비유할 수도 있다. 재판은 살아 움직이는 생물체다. 법정에서 다양한 의견이 표출되고 법관들이 그 의견들을 심사숙고하여 결론을 냈다면 일응은 존중되어야 하고, 그 결론에 수긍을 못하면 항소를 하며, 또 이에 대해서 불복이 있으면 상고를 하면 된다. 입맛에 맞는다고 칭찬하고,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비판만 하는 것은, 모든 사람은 다른 이들과 다른 자신의 의견을 표출할 수 있다는 민주주의의 핵심가치를 흔드는 일이다.법관 3명이서 합의부 사건을 처리할 때 쟁점이 많이 부딪치는 사건에서 내가 생각하는 결론과 다른 견해가 나오지 않을 때는 왠지 불안하다. 오히려 반대의견이 제시되어 치열한 난상토론을 거치고, 하나의 통일된 의견으로 결론이 날 때 그 결론이 단단하고 제대로 되었음을 느낄 때가 많았다.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절대 진리란 없다. 종중 구성원의 자격을 성년 남자만으로 제한하는 종래의 관습법을 변경하여 여성의 종중원 자격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이나 호주제도의 위헌성을 들어 폐지를 이끌어낸 헌재의 결정 등은 시대가치의 변화에 따라 소수의견이 다수의견으로 변한 사례이다. 어떤 사람의 의견이 나와 다르다고 해서 그 사람의 의견이 반드시 잘못된 것은 아니고, 무언가가 옳다고 믿는다면 그것을 옹호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배웠다는 힐러리 클린턴의 얘기는 많은 시사점을 던져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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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2.26 23:02

아름다운 우정과 正道

전주북중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고등학교 입시 날이 다가올수록 친구의 얼굴이 어두워만 갔다. 완주군 봉동읍 생강마을에 사는 친구인데 이유를 물었더니 “중학교 때도 보결로 입학했는데 고등학교 입학할 일이 걱정”이라며 한 숨을 쉬었다.“너무 걱정 마라. 혹시 네가 재수가 좋아 시험장에서 내 뒤에 앉게 되면 답안지를 보여주마.”나는 걱정하는 친구가 너무 딱해 보여 다만 위로삼아 ‘립(lip)서비스’를 해 주었다. 그러나 그 말이 소위 컨닝을 모의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런데 말이 씨가 되고 말았다. 시험 당일 수험표를 받고 보니 그 친구가 바로 내 뒤에 앉아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로서는 참으로 난감한 일이었다. 이윽고 시험 첫 시간, 나는 시험지 문제를 풀고 뒷자리 친구에게 약속대로 답안지를 보여 주었다. 비록 위로의 말이었지만 친구와의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둘째 시간에도 나는 답안지를 친구가 볼 수 있도록 슬그머니 밀쳐놓았다. 그런데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줄로만 알았던 시험감독 선생님이 그 사실을 알고 나에게 1차 경고를 주었다. 그런데 셋째 시간에도 친구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참으로 고민스러웠다. 친구를 외면하자니 지금까지 보여준 것이 허사가 되고, 계속 보여주자니 이번에는 선생님이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고민 끝에 ‘부정행위’ 그 자체는 나쁜 일이지만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는 일도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답안지를 보여주었다. 이번에도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선생님이 갑자기 “학생, 답안지를 놓고 나가!”라고 소리치며 답안지에 빨간 색연필로 ×표를 치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와 친구는 시험장에서 쫓겨나고 말았다.우리는 시험장을 쫓겨나 학교 앞 중국식당에 마주 앉았다.“걱정할 것 없다. 너는 전주에 남아 2차 고등학교를 가면 될 것이고, 나는 기왕에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서울에 가서 2차 고등학교를 알아봐야겠다.” 그렇게 친구를 위로해 주고 다음 날, 나는 서울로 상경하여 고모님 댁에 의탁하며 서울중동고등학교에 입학했다.나를 시험장에서 쫓아낸 분은 천 건 선생님이었다. 서울중동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나는 친구들과 함께 천 건 선생님을 찾아갔다. 그러나 선생님은 반가움보다는 내가 앙심을 품고 찾아 온 것은 아닐까 경계하는 눈치였다. 나는 고개 숙여 정중히 인사를 드렸다. “선생님의 가르침을 늘 가슴에 담고 정직하고, 정도를 따르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선생님은 따뜻하게 내 손을 잡아주셨다.만약에 전주고 입시장에서 우리의 부정행위가 발각되지 않았다면 나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부정을 두려워하지 않고 더 큰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었다. 천 건 선생님께서 정말 큰 교훈을 주셨다는 생각에 지금도 늘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내가 대통령 비서실장 재임 시절, 청와대로 손님이 찾아왔다. 천 건 선생님께서 결혼한 의사인 아들과 며느리를 인사차 내게 보내신 것이었다. 나는 참으로 반갑고, 고마운 마음에 진심어린 격려를 해 주었다.어느덧, 58년의 세월이 지나 그 일은 나에게 아련한 추억이 되었다. 그때 그 친구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소식을 알 수 없다.입시위주의 교육이 인성교육을 실종시키고 극심한 경쟁이 윤리와 도덕의식을 마비시키는 요즘과 같은 세태에서 천 건 선생님의 엄격한 교육이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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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2.12 23:02

정치의 신뢰 회복 위한 제언

세계경제포럼(WEF)의 최근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한국은 144개 국가 중 26위였다. 지난 20년간 줄곧 20위권 안이었는데, 많이 밀려났다. 더 충격적인 것은 ‘정부 정책 결정의 투명성’이 133위로 최하위권이며 ‘정치인에 대한 공공 신뢰’가 97위로, 베트남(49위)과 우간다(94위)보다도 아래라는 점이다. 정부와 정치인 불신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참담한 급추락이다. 왜 이렇게 됐고,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문제는 정치권의 극한 대결이다. 정치 불신과 미래 국가경쟁력 저하의 주요 원인이다. 국민 눈에는 권력다툼과 싸움질만 보이는 정치다. 국회는 대통령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전투장일 뿐이고, 정당과 정치인들은 국민은 뒷전인 채 사생결단식 대결정치를 반복한다는 부정적 인식이 굳어지고 있다.정부는 나은가. 대통령 후보 때와 취임 후의 말과 행동이 다르다. 사과도 하지 않는다. 정책의 일관성 유지는 커녕 국정의 사령탑 기능도 작동되지 않는다. 국민생활에 악영향을 미치는 데도 국민을 위한 정책이라고 강변하고, 세금을 늘리면서도 증세정책은 아니라고 말한다. 돌아보면, 우리 정치는 많이 투명해졌다. 선거 부패도 개선됐고 공직후보자 추천과 정책 결정과정의 투명성과 공정성도 높아졌다. 특히 민주정부 10년을 거치면서 절차적 민주주의를 확립했으며 인권, 복지, 평화, 균형발전 같은 진전된 가치들도 수면 위로 끌어올려졌다. 어떤 면에서는 우리 정치가 일본보다 낫다고 본다. 그러나 정치에 대한 국민의 의식만은 과거보다 더 비판적이다. 80년대 군부독재 시절이나 90년대 초반까지도 야당 정치인은 시민 집회에서 박수받고 다녔다. 지금은 박정희, 전두환 독재시절보다 정치에 대한 불신과 조롱이 심한 듯하다.정치불신을 심화한 고질적 문제는 첫째, 지역주의 구도이고 둘째, 권력의 과도한 대통령 집중이다. 많은 토론과 합의를 통해 해결방안을 찾아야 하지만 요즘 언론의 행태와 뉴 미디어를 통해서는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종편 등을 통해 정치인은 연예인화하고, 정치적 이슈는 가십처럼 다뤄지고 있다. 정치가 국민신뢰를 얻으려면, 비상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 단방약은 없다. 근본적으로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입법부기 자율성을 확보하는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 대화와 타협의 능력을 기르고, 국회의원 개개인이 헌법기관으로서 자긍과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여당이 대통령 눈치 보기를 탈피하면 야당과의 협상이 가능해진다. 그동안은 대부분 대통령 권력이 하라는 대로 따를 뿐이었다. 그제 여당 원내대표 선출때 반란표가 몰렸다고 한다.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기를 바란다. 여건 야건 강경파가 득세하면 무한대결이 벌어지고 국민불신은 증폭된다. 악순환을 극복하려면 지도자들의 특단의 노력과 리더십이 필요하다. 필자는 2008년 5월, 17대 국회 고별 연설에서 여당에게는 소수의견 포용을, 야당에게는 물리적 저지의 자제를 권고했다. 당시엔 연목구어(緣木求魚)처럼 여겨졌지만, 후일 ‘국회선진화법’으로 반영돼 작년 정기국회때는 사실상 처음으로 물리적 충돌 없이 타협의 성과를 이뤄냈다. 이런 일이 지속될지는 누구도 장담 못한다.근본적 개혁방안으로 ‘제왕적 대통령제의 혁파’가 필수적이다. 이른바 ‘87년 체제’의 순기능은 놔두고 역기능, 특히 국가경쟁력을 좀먹는 권력의 과도한 집중과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대결적 정치가 종식되도록 해야 한다. 현 정부 출범 후 2년간 확실해진 것은 국정혼란과 정치적 갈등의 진원지가 대통령과 청와대라는 점이다. 정치권 원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 동시에 사심 없는 위치에서, 이 나라를 정치불신의 늪에서 건져내야 한다는 사명감도 느낀다. 광복 70년, “이 과제를 포기하지 말고 함께 집중 노력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내자”고 모든 정치인, 언론, 국민에게 제안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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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2.05 23:02

수구초심

안양지원에서 근무한지도 벌써 10개월이 넘었다. 관할이 안양, 군포, 의왕, 과천 합하여 115만 가량 되니 책임이 무겁다. 대학교 때 안양에 계시는 친척들을 뵈러 왔을 때는 서울 근교의 조그만 소도시였다. 안양에 평촌이라는 신도시가 들어서면서 논밭으로 있었던 땅들이 번듯한 관공서와 빌딩 등으로 변해 60만이 넘는 큰 도시가 되었다. 내 고향은 남원이다. 남원 시내에서도 운봉 쪽으로 20리가 넘게 들어간 쪽들 〈남평(藍坪), 섬진강 상류로서 홍수 때마다 개활지에 푸르른 쪽이 많이 자라서 지어진 이름이다〉이고, 최명희 작가의 소설 혼불에도 나온다. 언제 들어도 정겨운 이름이다. 예전에 전주로 유학 왔을 때 내세울게 없었던 남원에 대해서 부끄러워한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어디 가나 내 고향을 물으면 전북 남원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가난한 대학생이었던 나는 학교로부터 학비와 생활비를 지원받아 서울생활을 시작했다. 객지에서의 생활은 사람의 성격까지 바꾸게 했다. 조용하고 말이 없던 나는 낯선 타향에서 새로운 자아를 찾아야만 했다. 나는 어디쯤 서 있는지,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인지? 숨어있는 나의 본성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했던 덕분인지 점점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변해가는 자신을 발견했다.나는 가난한 집의 6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때는 대부분 세끼 밥 챙겨먹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밥 때를 놓치면 굶기 쉬웠고, 식사 때도 음식을 남기는 일이 거의 없었다. 덕분에 규칙적인 식사가 습관화되었고, 무슨 음식이든 잘 먹는다. 고시공부 할 때나 낯선 환경에 가서도 잘 적응했던 비결인 것 같다.나는 운동을 열심히 하는 편이다. 지금도 틈나면 등산, 축구, 테니스 등을 즐긴다. 초등학교 때 1학생 1구기운동에 따라 핸드볼을 했는데 덕분에 공을 가지고 노는 감각이 길러진 것 같다. 운동을 잘한다는 것은 사람을 사귀거나 사회생활을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어려서 산으로 나무하러 다니거나 들판으로 냇가로 놀러 다니면서 단련된 체력이 역설적이게도 고시공부나 판사 생활을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나이가 들어가고 주변 여건이 안정되면서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 자랑스러워졌다. 외롭고 힘들 때마다 고향 들녘이나 냇가의 방천 둑을 거닐면서 마음을 다잡던 시절이 생각나고, 도시 사람들이 갖지 못하는 고향 산천을 가지고 있음에 자부심을 느꼈다. 아무리 바빠도 1년에 최소한 4번 이상은 고향을 간다. 명절 2번과 여름휴가 그리고 법원 동료들과 지리산 등산하러 갈 때이다. 부모님이 계셔서이기도 하지만 내 고향만큼 포근하고 정이 가는 곳도 없다. 지리산이 가까워서 내려갈 때마다 등산을 하거나 둘레길을 걷거나 정 시간이 없을 때는 차로 성삼재에 올라 노고단까지 산책 정도는 해야 마음이 후련하다. 눈앞에 펼쳐진 지리산의 실루엣은 서울에 올라와서도 오랫동안 머릿속에 맴돈다. 반갑고도 그리운 내 고향 전북!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떠나고 경제력도 다른 도·시에 비해 다소 뒤지지만 머지않아 많은 사람들이 찾아가 북적이는 고향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고향을 떠나 살면서도 아련하게 고향을 바라보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기에…지면으로나마 고향 분들께 인사드리고 싶다. 새해에는 청양의 기운을 듬뿍 받아 뜻하시는 일 모두 이루시길 빌어 본다. △박희승 지원장은 남원 출신으로 제28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서울중앙지방법원 판사,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부장판사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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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1.29 23:02

리모델링에 대한 생각

우리나라 최초의 실내 돔 구장이자 한국 실내스포츠의 성지라고 불릴만한 장충체육관이 최근 2년 8개월의 공사 끝에 리모델링을 마치고 재개관하였다는 뉴스에 많은 국민들이 환호와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신문 보도에 의하면 장충체육관은 1963년 문을 연 이래 한국스포츠와 함께 호흡했다. 김기수는 1966년 6월 장충체육관에서 세계복싱협회(WBA) 주니어미들급 세계챔피언이 됐다. 한국 프로복싱 사상 첫 세계챔피언이었다. ‘박치기왕’ 김 일은 1967년 4월 세계 프로레슬링 헤비급 챔피언이 됐다. 1983년도 출범한 농구대잔치와 민속씨름도 장충체육관에서 열렸다. 1984년 시작된 대통령배 배구대회 역시 장충체육관에서 열전을 펼쳤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노후 시설로 인해 많은 문제점이 드러났다. 농구는 잠실체육관과 잠실학생체육관으로 터를 옮겼다. 배구만이 장충체육관을 사용했다. 결국 서울시는 2012년 5월 장충체육관 리모델링에 들어갔고, 2년 8개월 만에 새로운 모습을 드러냈다. 리모델링은 오래된 건축물을 최신 유행의 구조로 바꿔주는 작업을 말하는 것으로 90년대 초반부터 서울 강남의 저층아파트를 중심으로 유행하여 고층아파트나 단독주택까지 확산되었다.리모델링을 보다 넓게 해석하면 건축물의 노후화 억제 또는 기능향상 등을 위하여 증축 개축 뿐 아니라 건물을 대수선을 하는 모든 행위까지를 일컬을 수 있을 것이다.건물의 어떤 공간을 대수선하는 리모델링은 그 공간이 제 기능을 못할 정도로 노후되거나 심각한 결함이 발견된 후 수리하는 차원이 아니라 제 기능을 하고 있을 지라도 항상 가꾸고 새롭게 하는 의미에서 미리 고치고 바꾸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필자는 대학을 운영하면서 이러한 수선 리모델링을 시행하여 많은 공간을 새롭게 탄생시킨 경험이 있다. 새롭게 리모델링된 공간을 접하는 구성원들은 신선한 느낌을 받으며 좋아하게 되었는데 그 효과는 기대했던 이상이었다. 그래서 강연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람들에게 리모델링은 아직은 쓸 만할 때, 미리해야 효과가 있다고 말하곤 하였다. 그 이유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첫째,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채 젖어있는 타성에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다. 특별하게 생각하지 못했던 주변 환경이 간단한 조치만으로 새롭게 다가올 때, 다른 과제도 이렇게 미리 손을 본다면 훨씬 효과적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타성에 젖지 않고 새로운 사고를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줄 수 있다.둘째, 공간이 그 역할을 바꾸지 않으면서도 항상 새로운 모습을 지닐 수 있다. 어떤 공간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낡아지고 유행과 시대에 뒤처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항상 조금씩 고쳐나가면 낡거나 노후되는 시간을 더디게 하기도 하고, 조금씩 유행과 시대에 맞춰나가게 되어 항상 새로운 느낌으로 사용할 수 있다.셋째, 건물이나 공간을 전면 개 보수하는 것보다 경제적이다, 공간이 노후되거나 훼손되어 전면적인 개 보수를 하는 것보다 조금씩 고쳐나가는 것이 돈이 덜 드는 것 뿐 아니라, 낡은 공간이 아닌 새롭고 쾌적한 공간에서 일을 하는 것이 주는 업무의 효율성이나 구성원의 행복감이 주는 무형의 경제효과까지 생기게 될 수 있다.이러한 리모델링에 대한 생각을 건물이나 공간만이 아닌 사람에게도 적용해 보면 어떻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우리도 자신이 뭔가 잘못되고 문제가 생기기 전에 습관이나 자신만의 사고의 틀을 리모델링하는 작업을 해 보면 좋지 않을까? 어느 틈엔가 때묻고 이끼가 낀듯한 양심과 예의 염치도 한번 손보고, 더불어 사는 삶과 배려도 다시 세우고, 밋밋한 일상이 향기나는 멋짐으로 다시 태어나는 리모델링을 다 함께 해 보았으면 좋겠다. 2015년이 시작된 지는 어느새 많은 시간이 지나갔지만 우리에게는 아직 설날이 남아있지 않은가?△신항균 총장은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서울협회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통일준비위원회 통일교육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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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1.22 23:02

국민대통합, 우리 시대 사명이자 정신적 자산

지난 2013년, 우리나라의 권위 있는 경제연구소가 ‘갈등으로 인해 우리 사회가 치르는 사회적비용이 년 82조에서 246조에 이른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여 큰 충격을 주었다. 작년 말 국회를 통과한 2015년도 예산규모가 375조라는 사실을 고려할 때, 실로 엄청난 금액이 사회갈등 비용으로 허비되고 있는 것이다.지금 우리나라는 경제성장이 2007년 이후부터 크게 둔화되어 국민소득 3만불 시대로 진입하지 못하고 선진국 문턱에서 제 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딜레마에 처해 있다. 우리나라가 본격적인 선진국가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갈등으로 인한 비용을 부가가치 창출과 국민복지 증대로 전환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그러나 현재 우리나라는 계층, 이념, 세대, 지역갈등과 같은 다양한 갈등이 공존하고 있어 국가의 역량을 제대로 결집시키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우리 대한민국은 일본의 가혹한 식민 지배와 6·25전쟁으로 인한 폐허를 딛고, 세계사에 유례없이 60년 만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루었지만, ‘압축 성장’으로 인한 ‘압축 갈등’이 사회 각 곳에서 분출되고 있기 때문이다.분단의 현실로 인한 이념갈등이 존재하고, 경제사회적 양극화 심화과정에서 계층과 지역갈등이 증가하고 있다. 최근에는 가치갈등인 환경과 세대갈등이 복합적으로 충돌하고 있다.따라서 우리나라가 ‘갈등과 분열’을 넘어 ‘화합과 통합’으로 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국민대통합이 필요하다. 즉, 우리 사회에 내재된 상처와 갈등을 치유하고, 공존과 상생의 문화를 정착하며, 대한민국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일이 시급한 과제이다. ‘국민대통합’은 단순히 관념적인 구호나 선언적 의미가 아니라 우리나라를 발전시키는 주요 원동력인 사회자본(social capital)이다. 지금까지는 자본과 노동이라는 경제적 요인만으로도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지만 이제는 국민대통합 기반을 통해서 경제성장과 국가발전이 이루어지는 시대가 도래 한 것이다.또한 국민대통합은 남북통일을 앞당기는 선결과제이다. 전문가들은 통일에 대한 준비로 자유민주주의 신장, 경제정의 실현, 빈부격차의 완화, 그리고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모두 국민대통합과 관계된 요소들이다. 남북통일에 앞서 남한의 갈등을 해소하는 일이 선결과제인 것이다.이처럼 우리에게 지금 간절히 필요한 것이 ‘국민대통합’이다. 지역, 세대, 이념, 계층 간의 격차와 위화감을 줄이고 기회가 균등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그리고 우리의 아픈 과거사를 치유하고 화해하는 것과 비정상을 정상화하고 국민 모두가 상생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바로 국민대통합이다. 국민대통합은 대변혁과 도전의 시대에 우리의 길을 잃지 않도록 인도해 주는 ‘우리 시대의 사명이자, 정신적 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국민대통합은 정부의 힘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 사회갈등은 여러 요인과 힘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해관계자들의 소통과 참여, 그리고 협력 없이는 달성되기 어렵다.따라서 존경하는 도민 여러분께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대한민국 사회갈등 해소와 국민대통합 발전을 위해 앞장 서 주실 것을 간절히 희망한다.△한광옥 위원장은 제11, 13, 14, 15대 국회의원, 제1기 노사정위원장, 대통령비서실장, 새천년민주당 대표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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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1.15 23:02

'전북 홀로서기 운동'이 낳은 새만금

지난 연말 전북 출신 중앙언론인 모임인 전언회(全言會) 송년회에 초청된 송하진 지사가 “국토교통부 산하로 되어있는 ‘새만금 개발청’을 국무총리 산하로 격상해 새만금사업을 범정부 차원에서 종합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며 언론인들의 협력을 호소했다. 송 지사는 지난 5일 열린 재경 전북도민 신년인사회에서도 이같은 호소를 거듭했다. 단군 이래 가장 대규모 국가 역사(役事)라 불리는 새만금사업의 효율적인 추진을 위해 우여곡절 끝에 ‘새만금 특별법’이 만들어졌고 ‘새만금 개발청’도 생겨났다. 그러나 이 개발청이 한 개 관련 부처에 속하는 바람에 범정부 차원의 추진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에 공감이 간다. 전북 출신 정계, 관계, 언론계, 재계 등이 힘을 모아 총리실 이관을 관철해야 하리라고 본다. 필자도 새만금사업이라는 옥동자를 낳는 데 적어도 산파 역할은 했던 인연이 있는 만큼 최대한 노력할 생각이다.새만금사업은 지난 1970년대 초 ‘옥서(전북 옥구, 충남 서천)지구 농업개발사업 계획’으로 처음 구상되었고, 1987년 ‘새만금 간척 종합개발사업’으로 발표되었다. 제7대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당시 노태우 민정당 후보가 전주 유세(1987년 12월 10일)에서 “새만금 사업을 최우선사업으로 선정해 임기내 이룩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나 취임 후 1년이 되도록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고 경제부처들은 ‘사업타당성이 없다’는 판단으로 새만금사업 공약을 휴지통에 넣은 상황이었다.이런 가운데 1989년 3월 10일 당시 노태우대통령과 김대중 평민당 총재간의 영수회담에서 김 총재가 경제사안으로는 오직 한 가지, 바로 새만금사업의 추진을 강력히 요청했고 영수회담 합의에 따라 사업추진이 가능하게 되었다. 필자는 당시 평민당 원내총무로서 김대중 총재에게 정부의 새만금사업 포기 결정에 따른 전북 인심의 악화를 전하고, “새만금 사업 재추진을 실현시켜야만 전북 인심을 되돌릴 수 있다”고 진언했다. 실제로 전북 인심은 악화될 대로 악화되어 있었다. 전북도민들에게 새만금사업은 신앙이나 종교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도민들 사이에는 특히 정부가 호남을 배려한다고 할 때 그 과실(果實)은 전남, 광주가 가져가고 전북은 매번 소외된다는 불만이 팽배해 있었다. 이러다 보니 한 유력 신문사는 사옥 건물에 ‘전북 홀로서기 운동’이라는 대형 현수막을 내걸고 이 운동의 추진을 선언할 정도였다. 필자는 정치인으로서 고향 전북의 이같은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고, 때마침 열린 영수회담을 통해 이 문제의 ‘정치적 결단’을 추진한 것이었다. 다행히도 잘 성사된 것을 정치역정의 큰 보람중 하나로 여 있다.새만금은 무궁무진한 가능성의 국가적 자산이다. 무엇보다 여의도의 140배인 4만여 헥타르(ha), 1억 2000만평의 땅이 아닌가? 그것도 사유지(私有地)라고는 없어 정부가 수용 부담 없이 마음껏 멋진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땅이다. 경제적으로 취약한 전북이 탄소산업, 관광산업, 식품클러스트 등에 집중하는 것에 희망을 건다.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영본부가 전북에 온 것도 큰 축복이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전북은 새만금사업에 운명을 건다 할 만큼 총력을 모아야 한다. 새만금 개발청의 총리실 이관과 함께 대형 외국자본 투자 유치를 위해서도 더욱 힘을 모아야 한다. 지난 1980년대 말 국가 부도위기를 맞았을 때 국민들이 ‘금 모으기 운동’을 벌여 위기극복에 기여하고 외국인들에게 감동을 준 바 있다. 새해부터 우리 도민 전체가 금 모으기 때의 간절한 심정으로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정부와 정치를 설득하는 작업, 외국투자를 유치하는 일에까지 손잡고 나서야 한다.△김원기 전 국회의장은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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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1.08 23:02

희망의 새해를 꿈꾸며

2014년 갑오년 한해가 저물어간다. 돌이켜보면 올해는 유난히 다사다난한 한 해였다.새해 초부터 경주에서 폭설로 강당이 무너져 학생회 행사에 참가 중이던 대학 신입생들이 변을 당했고, 온 나라를 충격과 슬픔에 빠뜨린 세월호 참사 외에도 판교 환풍구 추락사고, 고양 터미널 화재 등이 연이어 발생해서 안전 불감증과 관리 감독의 소홀, 제도와 법령의 미비로 인한 우리 사회의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났다.또한 계모가 의붓딸을 때려 사망하게 한 사건을 비롯해 여성, 아동, 노인 등 사회적 약자를 상대로 한 범죄와 한층 잔혹해진 청소년 범죄가 국민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고, 집단 및 계층 간의 갈등도 사그라지지 않고 있어 여전히 우리 사회의 통합과 발전을 가로막아 왔다.이런 여러 사건·사고를 겪으면서, 이번을 마지막 기회로 삼자는 철저한 반성 하에 안전 부처의 신설, 관피아 척결 등 구조적인 문제 개선을 위한 국가 차원의 노력이 진행되고 있고, 인면수심의 범죄에 대한 엄중한 처벌과 신속한 보호조치 등을 내용으로 하는 법령도 제정되었으며, 사회갈등 영역에서의 국민 통합을 위한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이제 우리를 힘들게 했던 2014년을 떠나보내며, 보다 희망차고 행복한 새해를 맞이하기 위한 몇 가지 제안해본다.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각자 스스로 올바른 가치 기준을 정립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올바른 생각과 반듯한 삶, 이웃과 더불어 사는 나눔과 베풂의 가치를 외면한 채 각자 돈과 출세만을 궁극의 가치로 삼는다면 치열한 경쟁과 갈등만 있을 뿐 배려와 상생이 토대가 되는 더불어 사는 행복한 삶은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또한 안전하고 행복한 삶의 토대를 만들기 위해 모든 분야에서 원칙과 기본이 지켜지는 문화를 만들고, 관련 법규를 준수함으로써 더 이상 안전을 무시한 불법과 편법이 끼어들 여지가 없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다가오는 2015년 새해에는 더 이상 비극적인 대형사고가 반복되지 않고, 계층 간의 갈등도 지혜롭게 해결되어 보다 밝고 희망찬 한해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경제문제에 있어서도 최근 세계적인 경기침체의 지속, 미국의 금리 인상, 일본의 엔저정책, 급작스런 유가 하락 등으로 인한 수출 부진과 경쟁력 저하 등을 이유로 우리 경제가 저성장 체제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예측하며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외환위기 등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발전과 성장의 기회로 만들어낸 저력이 있다. 또한 국민의 창의성을 바탕으로 신기술 개발과 미래 성장동력을 만들어 내는 창조경제 노력이 꾸준히 진행 중에 있으며, 일자리 창출, 노사갈등, 경제구조 개혁 등 현안들은 노사정을 비롯한 각계각층이 함께 지혜를 모으고 협조해 나감으로써 얼마든지 해결해 나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얼마 전 개봉한 ‘인터스텔라’라는 영화를 1000만에 가까운 관객이 보았다고 한다. 위 영화는 유독 우리나라에서 특별히 많은 관심을 받았는데, 우리나라의 높은 교육열과 과학에 대한 지적 호기심, 가족애 등이 그 이유로 언급되고 있다. 여기에 한 가지 이유를 더 든다면, 어렵고 불가능해 보이는 현실을 딛고 기적처럼 미지의 영역을 개척해 나가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지난날 역경을 이겨내고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이루어온 우리와 너무도 닮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라는 영화 속 명대사처럼, 우리 스스로 희망을 갖고 부단히 노력한다면 어떠한 어려움도 극복하고 다시 한 번 새롭게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모두가 행복하고 꿈을 이루는 을미년 새해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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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12.25 23:02

행복도 연습이 필요하다

유능한 목수는 항상 톱을 잘 갈고 연장을 좋은 상태로 보관한다고 한다. 그리고 꾸준한 반복 연습을 통해 지속적으로 기술을 연마한다고 한다. 훌륭한 무용수 역시 무대 위에서 쉽게 도약하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매일 연습을 하고 엄청난 훈련을 하였기 때문에 숙련된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다. 목수가 유능한 목수가 되는 것처럼, 무용수가 훌륭한 춤을 선보이는 것처럼 행복에도 연습이 필요하다고 한다.법상 스님은 저서 ‘날마다 새롭게 일어나라’에서 좀 가난하여 먹고 살 끼니 걱정으로 힘들더라도 마음만은 스스로 만족하는 연습을, 그리고 스스로 부자라고 마음먹는 연습을 하라고 한다.이를테면 ‘하루 세 끼를 먹을 수 있으니 부자구나’, ‘잠잘 곳이라도 있으니 행복 하구나’ 라고, 아주 작은 것에서 만족하는 연습을 해보라고 한다. 설사 돈이 없더라도 남들이 물으면 ‘가난해요’ ‘돈이 없어요.’ 라고 하지 말라는 거다.자꾸 가난하다고 되풀이하다 보면 그 가난하다는 마음이 딱 내 마음에 눌러붙어 진짜로 더 가난해진다는 것이다. 조금 가난하더라도 이렇게 살아 숨 쉴 수 있음에 감사해 하고, 그리고 설사 누가 일 잘되느냐고 물으면 ‘안 된다’ ‘죽겠다’ 하지 말고 ‘잘 ~ 됩니다.’ 라고하고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말해보라는 것이다.자꾸 입으로라도 마음으로라도 ‘잘 되는’ 연습을 하고, ‘부자’인 연습을 해 놓으면 그 마음이 법계를 그대로 울려 정말로 부자가 되고, 행복해지는 방도(方道)가 있다고 한다. 그렇게 내 스스로 행복해하고, 부유해 하는 마음으로 자꾸 연습해야 그 한 생각으로 인해 현실도 그렇게 변하게 된다는 것이다. 제리 민친톤은 저서 ‘잘나가는 사람, 생각이 다르다’에서 우리가 얼마만큼 행복한가 하는 것은 각자의 인생관에 따라 다르다고 하였다. 행복이라는 것은 좋은 일이 있어서 기분이 좋은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자발적으로 솟아나는 마음의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한다.그리고 행복을 느끼는 정도는 꾸준한 연습에 의해 늘릴 수 있다는 것이다. 먼저, 자기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날의 일을 떠오려 보고, 그리고 그때 내가 어떤 기분이었는지를 상기해 보고, 그때의 기분을 다시 한 번 체험해 보라고 한다.이 훈련을 계속하다 보면 자신이 행복해지고 싶을 때, 언제든지 행복해질 수 있고, 매일 매일을 보다 행복한 기분으로 지낼 수 있다고 한다.행복은 자존심과 마찬가지로 개인의 책임이라고 본다. 다른 사람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일도 있겠지만, 결국 행복은 내가 어떻게 마음을 먹느냐에 달린 것이기 때문이다. 행복은 결코 세상 속에 있는 것이 아니고, 또한 손으로 잡을 수 있는 것도,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어느 누구도 영원히 불행하다거나 아니면 영원히 행복하다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마음속으로 내가 불행하다 생각하면 한없이 불행해지는 것이요, 행복하다 생각하면 말할 수 없는 기쁨이 넘쳐날 것이다.올해는 유난히도 사회적으로 우울한 일들이 많았다. 그리고 경기침체가 장기화 되고 있는 가운데 대부분 사람들이 ‘삶의 여유가 없고 힘들어’ 한다. 이럴 때일수록 ‘잘 될 거야’, ‘행복해 질 거야’라는 생각을 하고 생활하다 보면 우리에게 곧 즐겁고 행복한 일들이 많이 다가오리라 생각한다.우리 모두 즐겁고 행복한 삶을 위해 부지런히 행복해지는 연습을 하자. 그리고 희망을 갖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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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12.18 23:02

익산 식품산업 클러스터의 미래

스위스는 국토면적이 4만여㎢로 세계 136위이며 인구는 8백만여명에 불과한 작은 나라지만 2014년 현재 1인당 GDP는 8만 4344달러로 세계 4위를 자랑한다. 이 나라의 한 작은 도시에서 1866년에 네슬레 회사가 설립되었다. 설립자 앙리 네슬레는 모유와 가장 유사한 제품인 ‘페린 락테’를 개발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네슬레는 시장의 흐름을 잘 포착해서 초콜릿과 간편하게 마실 수 있는 네스카페 개발로 사업영역을 확장하였고, 해외시장에 진출하면서 해당 국가에 맞춤형 지역특화전략을 구사하여 세계적인 회사로 성장하였다. 흔히 농업을 6차 산업이라고 한다. 6차산업화란 전통적인 농산물(1차)에 식품제조와 가공(2차)을 덧붙이고 유통과 판매(3차)까지도 연계시키면서 나타나는 상호작용(6차=1차×2차×3차)으로 부가가치가 크게 올라가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쌀을 즉석밥으로 가공하면 부가가치가 5배, 술로 가공하면 부가가치가 10.7배 상승한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선정한 6차산업화의 우수사례 중 임실 치즈마을이 있다. 이 마을에서는 1차산업인 우유를 이용하여 2차 산업인 치즈를 포함한 유가공품을 제조한다. 3차 산업인 치즈만들기 체험에는 연간 7만 명의 체험객이 방문한다. 이 마을에서는 치즈산업으로 연간 17억 원의 성과를 올린다고 한다. 정부는 미래의 성장동력 중 하나로 식품산업의 잠재력에 주목하고 한국에도 미국의 나파밸리, 이탈리아의 에밀리아 로마냐, 네덜란드의 바헤닝 등과 같은 세계적인 식품산업도시(food polis)를 육성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마침내 2008년에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일대 70만평이 ‘국가식품클러스터’단지로 지정되었다. 전북은 우리나라 최대의 평야지대로 농산물이 풍부하고 지정된 식품단지 바로 옆에 호남고속도로가 있는 등 교통여건도 우수하다. 또한, 최근에 이주한 농촌진흥청과 대학도 지근거리에 있다. 정부는 이 지역을 산업, 연구, 주거, 문화가 조화된 명품 식품문화도시로 개발할 계획이다. 지난 11월 24일에 익산에서 세계적인 식품문화도시로 발돋움하기 위한 첫걸음인 ‘국가식품클러스터’기공식이 있었다. 이 자리에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은 “2013년 세계 식품산업의 시장규모는 5조 4000억달러로 정보기술(IT)과 자동차 시장을 합한 것보다 크고 2017년이 되면 6조 3000억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2017년 기업입주가 완료되고 산업단지가 본격 가동되면 생산유발효과 4조 원, 2만 2000여 개의 일자리 창출이 기대된다. 계획의 실현을 위해서는 몇 가지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본다. 먼저, 식품산업단지의 세계화이다. 이를 위해서는 세계적인 명성이 있는 기업이나 연구소를 선도적으로 유치하여 다른 기업과 연구소들도 자연스럽게 입주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둘째, 한국만이 가지는 고유한 브랜드의 창출이다. 예를 들면 익산 식품클러스터에서 생산하는 제품은 전 세계 소비자들에게 적어도 안전하고 건강에 좋은 친환경 제품이라는 확신을 주어야 한다. 즉, 여기서 생산하는 제품의 명성을 소비자들로부터 인정받아야 한다. 셋째, 연구개발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연구개발은 제품의 부가가치 높이고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다. 새롭게 만들어지는 국가식품클러스터가 전북과 익산 경제에 희망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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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12.11 23:02

국경선 이야기

“왜 나라마다 국경선이 전부 삐뚤삐뚤하나요? 아프리카와 북아메리카는 국경선이 반듯반듯해서 보기 좋은데....” 한 초등학생이 네이버 지식iN에 올린 질문이다.국경선은 강이나 산맥 등을 경계로 삼거나, 지도나 해도의 위경도를 기준으로 하거나, 민족이나 문화·언어 등을 고려하여 정해진다. 첫 번째 유형으로, 중국과 북한은 압록강과 두만강을, 프랑스와 스페인은 피레네산맥을 국경으로 삼고 있다. 아프리카나 북아메리카의 많은 국경들이 두 번째 유형에 해당한다. 유럽과 아시아의 오래된 국가들의 국경선은 세 번째 유형이거나 첫 번째와 세 번째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결정된 경우가 보통이다. 국경선은 영토의 경계를 나타내므로 국제정치의 산물이며 때로는 국가 간 분쟁의 원인이자 결과이기도 하다. 국가 간 역학관계의 변동이 심할수록 국경선의 변화도 자주 일어난다. 독일의 국경선 변화가 대표적 예인데, 독일의 서쪽, 즉 독일과 프랑스의 국경선을 보자. 알퐁스도데의 소설「마지막 수업」의 배경이 된 알자스로렌 지방은 30년 전쟁 후 1648년 체결된 베스트팔렌 조약에서 프랑스 영토로 되었다가 보불전쟁에서 프랑스가 패배함에 따라 1871년 프로이센에 할양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의 패배로 이 지역은 1919년 다시 프랑스에 반환되었으나 히틀러가 1940년 강제로 병합하였다가 2차대전 이후 1945년에 프랑스로 반환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나라마다 제도, 경제수준 등에 차이가 있어 국경선을 둘러싸고 재미있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벨기에 바를레헤르토흐(Baarle Hertog)는 26조각의 벨기에 영토를 합친 지역인데 역사적 이유로 네덜란드 영토 안에 자리를 잡고 있다. 마을의 어떤 집들은 국경선의 양쪽에 걸쳐 있기도 하다. 집의 국적은 앞문이 어디 있는지에 따라 결정되는데, 이 지역 주민들은 세법이 바뀔 경우 문을 바꿔 달아서 ‘이민’을 가기도 하고, 네덜란드에 있는 술집과 음식점에서 문을 닫아야 할 시간이 되면, 탁자를 가게의 벨기에 쪽으로 옮겨서 장사를 계속하기도 한다(켄 제닝스, 『맵헤드』 111쪽). 국경선 양쪽의 정책과 제도가 다르고 결과적으로 경제적 수준과 생활상이 달라짐에 따라 눈에 띄는 대조를 보이는 경우도 있다. 중앙선이 선명한 매끈한 2차선 포장도로가 국경선을 지나면서부터 중앙선 없는 1차선의 탈색된 포장도로로 좁아지는 경우가 종종 있고, 미국 몬타나주와 캐나다 서스캐처원 주 사이의 국경선 같이 끝없이 이어지는 목초지와 관개수로가 격자무늬를 이루는 농경지대가 뚜렷하게 대비되는 경우도 있다. 한밤중에 위성에서 한반도를 내려다 보면 남한 쪽은 휘황하게 밝은 반면 북한 쪽은 평양을 제외한 전 지역이 깜깜한 암흑 자체여서 남한은 반도가 아니라 영락없이 섬으로 보인다.아프리카의 반듯한 보기 좋은 국경선은 제국주의 시대에 서구열강들이 해당 지역을 위도와 경도에 따라 임의로 선을 그어 식민지로 나누어 가진 데서 비롯되었다. 그 식민지들이 독립하면서 원래의 영역이 그대로 영토로 확정된 경우가 많았다. 보기 좋을지는 몰라도 아프리카의 국경선에는 슬픈 역사가 있다. 우리나라의 38선도 1945년 얄타회담에서 일본군의 무장해제 책임 지역을 미·소간에 나눈 경계선이었다. DMZ는 청산하지 못한 38선의 유산이다. 반듯하지 않고 꾸불꾸불하지만, 우리의 휴전선에도 아픔이 배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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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12.04 23:02

행복한 삶을 위한 성찰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한 삶을 살기를 원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마지막 한 장만 남아있는 달력을 바라보면서 모두가 원하는 행복한 삶이란 어떤 것인지 곰곰 생각해 보게 된다.행복을 수치화할 수는 없지만, OECD가 발표한 ‘2014 더 나은 삶 지수’에 의하면 우리나라 국민들이 느끼는 삶의 만족도는 10점 만점에 6점으로 조사대상 36개국 중 25위라고 하니 우리가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자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실제 주변을 둘러봐도 자신의 삶을 행복해하고, 감사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회생활을 하는 어른은 어른대로, 학교와 학원을 전전하는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치열한 경쟁에 내몰려 매일 매일 앞만 보고 달려가기 때문이다. 이는 재산이 많은 사람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재산이 많으면 남보다 더 풍족한 생활은 하겠지만, 재산을 지키고 증식시키기 위해 더 많은 노력과 번민에 싸여 있는 것을 많이 보아왔다. 이처럼 사람은 너나없이 행복을 추구하면서도 삶을 살아가면서 진정한 행복을 느끼기 어렵기 때문에, 예로부터 수많은 성인과 철학자들이 행복한 삶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고민하여 왔다. 이들이 도출한 일치된 결론은 바로 ‘욕심을 줄이고 베푸는 삶을 실천하라’는 것이다. 현대 경제학의 아버지 폴 새뮤얼슨은 “행복=소유/욕망”이라고 도식화해서 설명하고 있는데, 개개인이 갖고 싶어하는 소유를 마냥 늘려갈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각자의 마음을 잘 다스려 분모가 되는 욕심을 줄여야만 행복이라는 만족을 느낄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욕심을 줄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기 때문에 뭔가를 이루면 이룰수록 더욱 큰 무언가를 갖고 싶은 욕망이 커지기 때문이다.따라서 그 해답은 행복의 본질에서 찾아야 한다. 행복은 ‘즐겁고 만족을 느끼는 상태’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므로 평소 생활이 만족스럽고 보람되어야만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부나 명예를 가지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착각하지만 그로 인한 기쁨은 잠시일 뿐이며, 마음 속에 더 큰 욕심이 차게 되면 그 안에 행복을 담을 수 없게 된다. 허황된 꿈이나 순리에 맞지 않는 과욕은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사람의 마음을 병들게 할 뿐이다.그렇기 때문에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세속적인 성공에만 몰두한 채 나 자신을 되돌아보지 못하고, 주변의 소중한 가치를 놓치는 일이 없는지 수시로 반문해 보아야 한다. 현실이 아무리 바쁘고 힘들더라도 조금만 마음의 여유를 갖고 주변을 둘러보면 진정 나에게 필요한 것을 발견할 수 있고,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발견할 수도 있다. 그 과정에서 삶을 힘들게 하는 욕심은 조금씩 비워가고, 주변에 어렵고 소외된 사람들을 찾아 작은 도움을 전달하고 재능을 나누어주는 나눔과 베풂을 실천한다면 삶 자체가 행복해지게 된다.도덕경(道德經)에는 ‘하늘의 도는 편애함이 없고, 항상 착하게 사는 사람과 함께 한다(天道無親 常與善人)’는 말이 있는데, 결국 삶은 우리 자신이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지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마음을 비우고 베풂을 실천하는 행복한 삶은 어느 날 문득 깨달아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마치 운동선수들이 일정한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 매일 매일 훈련을 반복하는 것처럼 평소 마음을 비우고 가다듬는 노력을 계속해야만 결실을 맺을 수 있다. 얼마 남지 않은 갑오년 한해를 마무리 하면서, 평소 바쁜 일상에 묻혀 주변을 둘러볼 기회가 없었던 우리 모두가 행복한 삶에 대해 성찰해보고 어려운 이웃과 주변에 봉사하면서 나눔과 베풂을 실천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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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11.27 23:02

평화를 위한 화해

프랑스 파리에서 북동쪽으로 142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렝스(Reims)라는 작은 도시는 샴페인으로도 유명하다. 필자는 십여 년 전 우연히 렝스에 있는 노트르담(Notre Dame) 대성당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성당은 고딕양식의 걸작으로 아름답고 장엄한 모습이다. 프랑스 전역에 대성당들이 꽤 있지만, 이 성당은 역사적인 측면에 있어서 독특한 지위에 있다. 옛날 프랑스에서는 이 성당에서 왕위에 오르는 의식인 대관식을 치러야만 정식 왕이 될 수 있었다고 한다. 5세기 프랑크 왕국을 창시한 클로비스(Clovis) 1세가 렝스 성당에서 처음으로 대관식을 올렸다. 노트르담 대성당 안에는 잔 다르크의 동상도 보이는데, 그녀는 영국과의 백년전쟁에서 프랑스를 구하고, 1429년 샤를 7세를 이 성당으로 모셔와 대관식을 거행하기도 했다. 또한 2차 대전 당시 유럽연합군의 최고사령관이었던 미국의 아이젠하워 장군이 독일군의 항복신고를 이곳 렝스에서 받았다고 한다. 성당 앞마당에는 둥근 동판이 박혀있는데, 1962년 7월 프랑스 샤를 드골과 독일 콘라드 아데나워가 함께 방문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샤를 드골(De Gaulle) 대통령은 프랑스인들이 제일 존경하는 인물 중의 한 분이다. 프랑스 관문인 공항의 이름도 그의 이름을 딴 샤를드골 공항이다. 그는 독일침략에 맞서서 싸운 독립운동가이자 장군이었으며, 프랑스 5공화국 초대 대통령으로 정치·외교·경제 등 여러 방면에서 그의 조국 프랑스의 영광을 재현한 인물이다. 콘라드 아데나워(Adenauer) 서독 초대 총리는 2차 대전으로 폐허가 된 독일의 경제를 이른바 ‘라인강의 기적’으로 일으켜 세웠으며 우파인 기독교민주연합(CDU) 출신이면서도 최초로 ‘사회적 시장경제’를 주창하였다.아데나워는 프랑스와 독일 간의 적대관계를 청산하지 않고는 유럽에 평화를 가져올 수 없다고 확신했다. 드골과 아데나워는 1958년부터 1962년 중반까지 40여 차례 편지를 주고 받았으며 열다섯 차례나 만났다. 드디어 1963년 1월 독일과 프랑스는 상호우호조약을 체결하기에 이른다. 드골 대통령은 독일 총리를 프랑스에 초청하여 프랑스-독일군대의 장대한 열병식을 받았다. 이어서 렝스 대성당을 방문하여 신 앞에 무릎을 꿇고 ‘유럽에서 다시는 전쟁의 참화가 발생하지 않고 평화가 지속되기’를 함께 기도하였다고 한다. 이 두 명의 역사적인 인물은 지금의 유럽연합(EU)을 만드는 초석을 다진 분들로 평가받고 있다.남북이 분단된 지도 60년이 넘는다. 남북한이 참혹한 전쟁을 치렀기 때문에 미움과 적대감을 지울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유럽은 남북한이 체험한 것 이상의 잔혹한 전쟁을 여러 번 겪었지만 마침내 동일한 화폐를 가진 경제통합을 이루어냈고, 유럽의 평화를 확고히 담보할 수 있는 유럽연합이라는 독자기구도 가지고 있다. 독일의 통일을 위해 동방정책을 펼쳤던 서독 총리 빌리 브란트(Willy Brandt)는 ‘역사가 과거에서 우리를 풀어놓지 못하는 맷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 평화가 모든 것은 아니지만 평화 없이 모든 것은 무의미하다’고 하였다. 더 늦기 전에 남북한이 화해와 평화로 나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 실천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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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11.13 23:02

지명의 내력

나일강 유역의 알렉산드리아는 기원전 4세기에 이집트를 정복한 알렉산더 대왕이 새로 도시를 건설하여 자기 이름을 붙인 것이다. 알렉산더 대왕은 정복지 곳곳에 수많은 알렉산드리아를 건설하였으나 오늘날까지 이름이 유지되고 번성한 도시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뿐이다.도시의 이름은 시대에 따라서 변화한다. 특히 왕조나 정치체제의 변동에 따라서 달라지는 일은 종종 있다. 서울은 통일신라시대에 한양으로 불리워지다가 고려시대에는 남경으로 불리워지기도 했으며, 조선시대에는 공식적으로는 한성부로 칭해졌다. 일제 강점기에는 경성으로 불리워지다가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더불어 지금의 서울로 불리워지게 되었다. 중국의 북경은 금나라 도읍이었을 때에는 연경(燕京), 쿠빌라이 칸 이후의 원나라 수도일 때에는 대도(大都)로 불리어지다가 명나라 영락제가 천도한 이후 북경으로 불리워졌다. 중화민국 시절 남경이 수도일 동안 잠시 북평(北平)으로 불리다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후 다시 수도가 되어 북경으로 부르게 되었다. 수도가 되었을 때 ‘경(京)’, ‘도(都)’ 등의 글자가 들어가는 점이 눈에 띈다.새로 도시가 건설되면서 건설한 사람의 이름이 붙여진 경우에 그 변화는 좀더 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스탄불은 기원전 7세기 초 그리스 장군 비자스가 식민지 개척을 위해서 건설한 도시로서 그의 이름을 따서 비잔티움으로 불리다가 330년 로마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로마의 수도를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콘스탄티누스의 도시’라는 뜻의 콘스탄티노플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1453년 오스만 터키제국의 메메드2세가 이곳을 점령하면서 ‘도시로’라는 뜻을 가진 그리스어 ‘이스틴폴린’에서 유래한 이스탄불이라는 지금의 이름을 붙였다.한편, 지명에는 그 도시의 기능이나 성격을 나타내는 접미어가 붙어있는 경우가 많다. 노량진, 삼랑진의 경우에 ‘-진(津)’은 나루터나 포구를 나타내고 장호원, 조치원, 사리원의 ‘-원(院)’은 역참이 있었던 교통의 요지를 뜻한다. 유럽의 도시에는 인스부르크, 함부르크, 아우구스부루크와 같이 ‘-부르크(burg)’라는 접미어가 붙어있는 경우가 많다. ‘부르크’는 중세에 건설된 성채도시 또는 요새도시를 뜻한다고 한다.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의 ‘-부르(bourg)’나 영국의 미들스버러, 에든버러의 ‘-버러(borough 또는 burgh)’도 같은 뜻이라고 한다. 슬라브어로는 ‘-그라드(grad)’가 같은 뜻을 나타내는데, 예를 들어 볼고그라드는 ‘볼가강가에 있는 도시’,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는 ‘하얀 도시’라는 뜻이라고 한다.러시아의 제 2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서구문화의 도입을 지상과제로 삼았던 러시아의 피요트르 대제(피터 1세)가 ‘유럽으로 열린 창’을 지향하여 1712년부터 건설한 도시로서, 이 도시의 수호성인인 사도 베드로(피터, 페테르)의 이름을 따서 도시명을 붙였다. 러시아 공산혁명 이후 잠시 페트로그라드로 칭해졌고 1924년 레닌이 죽은 후에 그의 이름을 따서 레닌그라드로 불리워지다가, 러시아의 개혁 개방의 물결을 타고 1991년 다시 상트페테르부르크라는 옛 이름을 되찾았다.우리나라 도시에는 사람의 이름을 따서 도시명을 붙인 경우가 드물다. 행정중심복합도시로 설계되어 건설된 세종시가 거의 유일한 예가 아닌가 생각된다. 세종시가 앞으로 어떠한 변화를 겪을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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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11.06 23:02

고민하는 청춘을 위하여

가끔 서점가를 둘러보면 예전에 빼곡하게 진열대 앞줄을 차지하고 있던 자기계발 서적들이 저만치 뒤로 밀려나 있다.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이 어떤 책들인지 유심히 살펴보니, 상당수가 우리 사회의 젊은이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책이었다.대학을 졸업하고도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88만 원세대’, 돈이 많이 들어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다는 ‘삼포세대’ 등 최근 우리 사회 청년들이 처한 어려운 현실을 대변하는 신조어들이 양산될 만큼 청년실업문제는 사회적으로 많은 걱정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런 현상은 최근 경제성장이 둔화되면서 취업문은 좁아지는 반면에, 학업이나 구직을 위한 비용은 더욱 증가하고 있어 젊은이들의 삶이 암울하고 팍팍하다는 의미가 아닌가 싶어 기성세대로서 책임감도 느끼고 마음도 아파진다.물론 청년 일자리 창출문제는 사회구조적 문제로서, 정부를 비롯한 각계각층에서 지대한 관심을 갖고 다양한 대책을 세워 추진해 나가고 있다. 하지만 기성세대도 젊은 시절에 나름의 어려움이 있었던 만큼, 오늘을 살아가는 청년들 역시 이를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만 치부하지 말고, 현실적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적극적인 자세를 가졌으면 하는 마음에서 몇 마디 조언을 하고자 한다.우선 미래를 향한 각자의 꿈이 있어야 한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꿈꾸지 않는 사람은 그 꿈을 이룰 수도 없다.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면에는 누구보다 분명한 꿈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중요한 점은 미래의 인생을 설계하는 꿈은 구체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성이 결여된 꿈은 그야말로 상상속의 헛된 꿈에 불과하므로, 인생의 목표라고 할 수 있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현실과 결부된 구체적인 일정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 즉 꿈을 이루기 위해 준비하고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인지, 그 중에서 당장 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다음 단계는 무엇인지를 차분히 고민해야 한다. 다음으로 자신만의 다양하고 개성있는 꿈을 꾸어야 한다. 얼마 전 특성화고등학교의 취업률이 13년 만에 대학진학률을 앞질렀다는 소식을 접하였는데, 이러한 추세가 반영된 탓인지 고등학생 전체 대학진학률도 2009년 77.8%까지 치솟았다가 서서히 감소하여 지난 해에는 70.7%까지 떨어졌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맹목적으로 많은 비용이 드는 대학을 진학하려고 했던 과거의 잘못된 병폐가 사그라지는 것 같아서 다행스럽게 여겨졌다.앞으로는 이처럼 특성화고등학교에 진학하거나, 차별화된 과를 선택해서 남과 다른 다양한 경험을 하며 자신만의 장점과 특기를 살려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이 미래를 설계하고 준비하는데 더욱 중요할 것이다.그리고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목표를 향한 노력의 페달을 계속 밟지 않으면 안 된다. 잠깐의 고생을 통해 평생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꿈은 오랜 시간을 들여 부단한 노력을 계속해 나갈 때, 비로소 천천히 이루어지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세상의 모든 일은 계획대로만 진행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도중에 시련을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힘든 상황을 맞더라도 좌절하지 않고 계속 노력한다면 이내 새로운 길을 찾아 나아갈 수 있는 법이다.일찍이 맹자도 “샘이 깊은 물은 끝없이 용솟음치기에 밤낮을 쉬지 않고 흐를 수 있다. 흐르다 웅덩이에 갇히면 그 웅덩이를 채우고 다시 흘러 온 세상으로 흘러갈 수 있다(源泉混混 不舍晝夜 盈科後進 放乎四海)”고 하였다. 당장 현실이 어렵게 느껴지더라도 우리 사회의 젊은이들이 차분히 노력해서 이를 극복하고, 자신만의 꿈을 꼭 이루기를 기대하고 성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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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10.30 23:02

인생관과 가치관

인생에서 세 가지의 선택이 있다고 한다. 첫째는 직업의 선택이고, 둘째는 배우자의 선택이며, 셋째는 인생관과 가치관의 선택이라고 한다. 한 평생을 살면서 이 세 가지의 선택을 잘 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서 인생의 성패가 결정되고, 행복과 불행이 좌우된다고 한다.지나가던 행인이 열심히 돌을 쪼고 있는 석공 세 사람을 보고, “당신들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하고 물었더니 첫 번째 석공은 “보시다시피 돌을 쪼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였고, 두 번째 석공은 “저는 돈을 벌고 있습니다.”라고, 세 번째 석공은 “저는 역사에 길이 남을 대성당을 짓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이 세 사람의 석공 중에 누가 가장 의미 있는 삶을 사는 사람일까요? 라고 묻는다면 어느 누구의 삶이 가장 의미 있는 삶이라고 쉽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유는 각자의 인생관과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생의 목표와 의미를 어디에 두고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사는 것이 바람직한 인생인가? 무엇이 소중하고 무엇이 소중하지 않은가? 라고 물었을 때 이런 문제에 대한 판단과 선택의 기준을 가치관이라고 한단다.그래서 인간은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서 행동하고 평가하고 생활을 한다고 한다. 소크라테스 왜 독배를 마셨는가? 이순신장군은 왜 백의종군을 하였는가? 간디는 왜 비폭력 운동으로 투쟁의 삶 을 살았는가? 라고 의문한다면 우리는 이들 모두가 각자의 확실한 인생관과 가치관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답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만의 이상적인 인생관과 가치관을 가졌기 때문에 그러한 인생의 행로를 택했다고 본다. 돈밖에 모르는 사람의 눈으로 볼 때 소크라테스가 마신 독배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고, 또 권력이나 쾌락밖에 모르는 사람이 예수나 석가의 사상과 철학을 바로 깨달을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사람에 따라 인생관과 가치관이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그리고 눈앞에 돈과 권력·향락·미인·건강 등 여러 가지를 놓고 어느 것을 먼저 선택하고 어느 것을 버리겠는가를 묻는다면 누구나 그 선택과 결정에 주저함을 느낄 것이다.셰익스피어가 길을 걸어가고 있는데 한 청소부가 말을 걸었다고 한다. “셰익스피어 선생, 당신은 그렇게 화려한 인생을 사는데 나는 이렇게 길바닥에서 청소나 하는 인생이니 세상이 너무 불공평합니다.” 그러자 셰익스피어가 “당신과 나는 별 차이가 없어요. 당신은 길을 닦고 나는 글을 닦고 있지 않소? 결국 당신이나 나나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의 일부를 아름답게 닦는 것은 똑같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결국 인생관과 가치관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 한다….인생은 누구에게나 한 번씩 똑같이 주어진다. 한때는 화창하게 맑았다가 다시 흐려지고, 한때는 비가 왔다가 해가 뜨고, 한때는 바람 불다가 개이고, 개었다가 다시 바람이 부는 게 인생이란다. 이렇게 인생의 날씨는 누구에게나 비슷하지만, 살아가는 유형은 다양하다. 그것은 각자의 인생관과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 일 것이다.올바른 인생관과 가치관을 갖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본다. 한 개인이 보람 있게 살기 위해서, 한 나라가 번영을 이루기 위해서, 그리고 온 인류가 평화와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이 건전한 인생관과 가치관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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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10.23 23:02

꿈과 건강

한 지인이 나에게 물었다. ‘얼마 전에 제 오빠가 저에 관한 꿈을 꾸었는데, 돼지꿈이었대요. 저도 꿈을 꾸었는데 대통령과 함께 차를 타고 제가 운전하는 꿈이었어요. 오빠는 저에게 당장 복권을 사라고 권해서 샀는데 하나도 맞지 않았어요. 무슨 꿈인가요?’ 나는 웃으면서 꿈의 내용에 대해 구체적으로 질문한 다음 설명해 주었다.필자는 젊은 시절부터 꿈 해석에 대하여 흥미를 가지고 오랜 기간 동안 공부해왔다. 이제는 스스로 전문가 반열에 들었다고 생각하지만, 아직도 해석이 쉽지 않은 꿈도 있다. 꿈 해석이 어려운 이유 중의 하나는 다양한 유형의 꿈들을 정확하게 분류하기가 쉽지 않고 보통은 자신이 아는 한 가지 기준만을 적용하기 때문이다. 대개 꿈풀이 책을 보면, 예컨대 ‘꿈속에서 돼지를 보면 현실에서 재물이 생긴다.’ 와 같이 해석한다. 이 꿈이 미래를 예고해주는 꿈인 경우에는 이렇게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종류의 꿈이라면 전혀 다르게 해석되어야 한다. 어른은 8시간 수면을 기준으로 하루 4차례, 2시간가량 렘(REM, Rapid Eye Movement)수면을 거친다.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이는 렘수면 동안에 뇌는 깨어 있을 때 못지않게 열심히 활동한다. 그리고 누구나 렘수면 시간 동안에는 어김없이 꿈을 꾼다. 꿈을 전혀 꾸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은 깊게 잠이 들어 깨어난 후 기억을 하지 못할 뿐이다. 사람은 렘수면 시간을 빼앗기면 다음날 몹시 피곤해 하며, 렘수면 시간은 육체와 정신건강에 꼭 필요하다.꿈은 지난 수천 년 동안 많은 전문가들에 의해서 연구되어 왔다. 나의 꿈 공부에 크게 영향을 준 몇 분을 소개하면, 먼저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꿈 사례를 수집하고 경험칙에 입각하여 꿈을 분석한 2세기 리디아 출신 아르테미도로스(Artemidoros)가 있다. 프로이트(Freud)는 그를 고대 후기 꿈 해석의 최고 권위자로 칭송하였다. 1900년 프로이트는 “꿈은 무의식에 이르는 기름길”이라고 선언하고 자신이 꿈의 모든 비밀을 풀었다고 확신하였다. 앨런 홉슨(Allan Hobson)은 한 때 프로이트의 열렬한 추종자였으나 나중에는 프로이트의 꿈 이론을 앞장서서 공격했다. 그는 꿈꾸는 동안 사람의 뇌 부위의 활성화 정도를 측정하여 꿈의 생성경로를 밝히는 업적을 세웠다. 동양에는 16세기 중국 명나라 진사원(陳士元)과 한국의 한건덕이 있다. 진사원은 중국 고대부터 내려온 수백 건의 예지적인 꿈들을 수집하여 책으로 집필하였고 한국의 한건덕은 예지몽을 해석할 수 있는 방대한 백과사전류의 책을 저술하였다. 불안이나 걱정스러운 상태에서 꾸는 꿈은 대체로 불쾌하고 깨어나서도 마음이 찜찜해진다. 건강을 해치지 않는 꿈을 꾸려면 잠자리가 편안해야 한다. 먼저, 낮 동안의 근심과 걱정은 떨쳐내고 침상에 올라가야 한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여주인공 스칼렛 오하라처럼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는 낙관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그래도 마음을 다스리기 힘들면 가벼운 운동이나 심리적 안정을 주는 음악이라도 감상하면서 기분을 전환시켜주어야 한다. 둘째, 잠들기 몇 시간 전에는 뇌나 몸에 지나친 자극을 주는 음식물을 삼가야 한다. 특히, 지나친 술은 뇌를 아프게 하는 성분이 있어 불쾌하거나 기괴한 꿈을 만든다. 과다한 식수의 섭취도 수면 중 생리작용을 촉진시켜 잠을 깨우거나 부담스러운 꿈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같이 하면, 적어도 자극이나 심리상태에서 유발되는 기분 나쁜 꿈은 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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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10.16 23:02

달력 이야기

올해도 달력이 3장 밖에 남지 않았다. 나이 들수록 시간이 더욱 빠르게 흘러감을 실감한다. 지금 우리가 쓰는 달력 체계의 큰 틀은 기원전 46년 로마의 군인이자 정치가였던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이집트의 태양력을 도입하여 마련한 것이다. 1년을 365일과 1/4일로 정하여 3년은 365일, 4년마다 1년은 366일인 윤년으로 하였다. 홀수 달을 31일로, 짝수 달을 30일로 하되, 2월은 평년에는 29일, 윤년에는 30일로 하였다. 12달의 형태가 갖추어진 기원전 8세기 이후 1월부터 6월까지는 주로 로마 신들의 이름이, 7월부터 12월까지는 숫자 이름이 붙어 있었다. 예컨대, 1월은 문의 신인 야누스의 형용사형인 야누아리우스(Januarius), 3월은 전쟁신 Mars에서 온 마르티우스(Martius)라는 이름으로 불리어졌고, 7월에는 다섯 번째를 뜻하는 퀸틸리스(Quintilis), 8월에는 여섯 번째를 뜻하는 섹스틸리스(Sextilis), 9월부터 12월까지는 지금과 같은 Septe mber, October, November, December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7월 이후 달 이름에 2가 적은 숫자가 붙은 것은 한동안 로마에서는 3월을 한해가 시작하는 첫 달로 여겼기 때문이다.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새로 달력체계를 정비하면서 자신이 태어난 7월의 명칭을 퀸틸리스에서 자기 이름인 율리우스로 바꾼다. 율리우스가 암살된 후 뒤를 이은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정적이었던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연합군을 격파한 악티움해전을 기념하기 위해 전승일이 들어있던 8월의 이름을 아우구스투스로 바꾸는데, 한 술 더 떠서 원래 30일이던 달의 길이를 31일로 늘리고, 대신 2월에서 하루를 줄인다.이렇게 좋은 선례들을 후대의 권력자와 아첨꾼들이 흉내 내지 않을 리 없었다. 악명 높은 네로황제(AD 54-68 재위)도 4월을 네로네우스로 고쳤고, 자신을 “주 하느님”으로 부르도록 강요한 도미티아누스(81-96)도 10월을 자기 이름으로, 9월은 자기가 경애한 선대 폭군 칼리굴라(37-41)의 이름을 따서 게르마니쿠스로 고쳤다. 그러나 이달의 이름들은 그들이 죽은 후 곧 원래대로 환원된다. 결국 신이 아닌 인간 중에서는 달력을 새로 도입한 율리우스, 로마 초대황제 아우구스투스만이 자신들의 이름을 달력에 남기게 된다(July, August).아첨꾼의 감언에 휩쓸리지 않고 냉정하게 절제심을 유지한 로마 황제도 있었다. 아우구스투스에 이어 제위에 오른 티베리우스(14-37)는 9월의 이름을 티베리우스로 고치라는 원로원 의원의 제안을 “황제가 13명이 되면 어찌할 것인가?”라고 일언지하에 거절하였다. 말년의 공포정치로 인해 폭군이라고 지칭되기도 하지만, 티베리우스는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기획하고 아우구스투스가 구축한 로마제국을 반석 위에 올려놓은 가장 훌륭한 황제 중의 한사람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에서 티베리우스에 대해 “중요한 것은 그가 새로운 정치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전 황제인 아우구스투스가 구축한 체제를 견고하게 다지는 일에만 전념하여 제정로마를 반석에 올렸다.” 라고 적었다. 전임 지자체 장이 벌여 놓은 사업들이 백지화되는 일을 종종 본다. 자치단체장들이 임기동안 드러날 과시적 업적보다 미래를 위한 주춧돌을 놓는데 힘써주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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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10.09 23:02

우리 사회의 바람직한 공직자상

세월호 참사로 드러난 우리 사회의 적폐와 부조리에 공직자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깊어진 지금, 관피아 척결을 비롯해 사회 전반을 개혁하기 위한 국가개조 수준의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그렇다면 개혁 대상으로 지목되고 있는 공직사회에 있어서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바람직한 공직자의 모습이란 어떠한 것일까. 무엇보다도 공직자는 청렴하여야 한다.예로부터 청렴은 공직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꼽혀왔고, 다산 정약용 선생의 목민심서 청심(淸心) 편에서도 청렴이 목민관의 근본적인 책무이고 모든 선의 원천이며 모든 덕의 근본이므로 청렴하지 않고는 목민관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하였다(廉者牧之本務 萬善之源 諸德之根 不廉而能 牧者未之有也).부정부패와 비리가 국가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범죄행위에 해당하는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따라서 공직자라면 깨끗한 손으로 바르게 업무를 처리하는 것이 본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공직은 국가와 국민에 봉사하는 자리이며 국민으로부터 위임된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므로, 이를 자기 자신만을 위하거나 치부의 수단으로 삼아서는 아니 되기 때문이다. 또한 모든 공직자가 청렴을 지켜야만 국민의 신뢰를 유지하고 공직자의 권위가 설 수 있다. 국민이 신뢰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정책을 추진한다고 하더라도 의미가 없게 되는 만큼, 공직자는 공무수행 과정에서 청렴을 실천하는 것은 물론이고 더 나아가 평소 언행에 있어서 오해를 받을 일조차 만들지 않는 반듯한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다음으로, 공직자는 이와 같은 청렴을 바탕으로 국민에게 봉사하고 헌신하는 자세로 공정하게 일을 처리하여야 한다. 공직은 단순히 밥벌이를 하거나 명예, 권력을 누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공공의 복리를 수행하기 위한 자리인 만큼, 이른바 ‘무사안일’, ‘복지부동’으로 일관하면서 일상에 안주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매사를 민원인이나 국민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이들의 애로와 억울함을 해결해 주기 위해 늘 적극적으로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 따라서 관련 규정이 없다거나, 늘 처리해오던 관행적인 업무가 아니라는 이유로 혹시 모를 책임추궁을 모면하기 위해 업무수행을 거절하거나 지체해서 국민의 불편을 초래해서는 안된다.조선 중기의 명대신이자 청백리로 알려진 이원익은 고을 수령으로 부임하는 아들에게 “廉則公, 公則明, 爲政, 以仁民愛物爲心”이라는 가르침을 주었는데, 이는 청렴해야만 공정성을 유지할 수 있고 공정하면 사물을 보는 눈이 치우치지 않고 바르게 되어 올바른 결정을 할 수 있으며, 행정을 함에 있어서 백성을 사랑하고 만물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는 과거 관료 주도 하의 압축개발 정책을 통해 고도성장을 이룩한 시기를 지나, 지금은 선진사회 진입을 바로 눈앞에 두고 있다. 이에 맞춰 공직사회도 고도의 청렴성을 유지하며 애민정신을 바탕으로 능동적, 적극적으로 일할 수 있는 인재가 필요하다. 따라서 공직자들은 자신이 잠시 위임받은 권한이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나온 것임을 잠시도 잊지 말고, 법을 만들고 적용하고 집행함에 있어서 항상 겸손한 자세로 국민을 섬기며 소외된 국민까지 보살필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해야 한다. 여기에 한 가지 덧붙이자면, 과거에는 공직 분야의 엘리트들이 국가발전을 선도하였지만 이제는 글로벌 기업 등 민간 영역이 눈부시게 발전하여 이를 따라가기도 버거운 실정이다. 그러한 만큼 공직자 개개인도 자신의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고 시대를 선도할 수 있도록 공무를 수행하고 있는 해당 분야의 전문성을 확보하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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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10.02 23:02

광화문광장 앞에서

지난달에 나는 오랜만에 광화문광장 거리를 걷다가 예전에 보지 못했던 광경을 보았다. 그것은 긴 칼을 차고 위엄 있게 서있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어린아이들이 웃통을 훌렁 벗고 힘차게 뿜어대는 분수대 물을 뒤집어쓰고 좋아라고 소리치며 천진난만하게 노는 모습이었다.“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면 살 것이고, 살려고 전투를 회피하면 죽을 것이다(死卽生 生卽死)”라고 이순신 장군께서 하신 말씀의 의미를 알고나 있는지, 어린아이들은 시원한 물줄기를 맞으며 여름 더위를 식히기에 여념이 없었다.조금 지나서“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니 근본이 튼튼해야 나라가 평안하게 된다.”라는 통치철학을 실천하신 조선 4대 임금 세종대왕이 앉아계신 동상에 있었다. 그렇다면 왜 광화문광장에 수많은 역사속의 위인들 중에서도 이순신장군과 세종대왕의 동상이 세워져 있을까?필자가 생각하기에 이순신 장군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있는 나라를 위하여 자신의 안위나 영광은 뒤로하고 목숨을 바쳐 나라를 구하려고 한 것은 후손들에게 이러한 평화로운 모습의 세상을 물려줄 것을 꿈꾸고 염원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또한 세종대왕은 만인지상의 가장 높은 자리인 왕이 되어서도 가장 낮고 힘없는 백성들을 항상 걱정하고 그들의 편에서 그들이 잘살 수 있도록 사랑하는 마음을 항상 가슴속에 품고 있었기에 수많은 업적을 남기셨고 그래서 오늘날까지도 존경받고 있다고 본다.그리고 지난 8월에 광화문광장에서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거대한 행사가 열리기도 했다. 다름 아닌 교황이 대한민국을 방문하여 한국 천주교 순교자 124위에 대한 시복식을 거행한 것이다. 시복식이란 가톨릭교회에서 거룩한 삶을 살았거나 순교한 이를 공경의 대상인 복자로 교황이 공식으로 선언하는 의식을 말하는데, 이날 복자로 선포된 순교자 124명 속에는 양반 뿐 아니라 상민과 여성은 물론 당시의 하층민들이 많이 포함돼 있었다.이렇듯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이곳 광화문광장에는 항상 백성들의 안녕과 평안을 우선시했던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의 동상이 모셔져 있고, 그리고 이곳에서 자기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을 위한 성스러운 의식을 거행하기도 했다. 광화문광장에 대표적으로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 동상이 모셔져 있는 것처럼 대한민국이 세계인들이 부러워하는 대표적인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국민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자기본분을 다해서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나가도록 노력해야 되리라고 본다. 그러기 위해서 가정에서는 가장의 모범과 어머니의 큰 사랑으로 따뜻한 가정을, 직장에서는 상사의 권위보다는 따뜻한 배려와 지도를 그리고 부하는 겸손과 성실로 임하는 자세를, 현자는 고고한 독선 보다는 가슴에 닿는 이야기를, 강자는 약자를 배려하고 약자는 강자의 배려에 감사하는 사회를 만들어 가야할 것이다. 그리고 일등만이 살맛나는 세상보다는 꼴찌에게도 시선이 가고, 승자가 천하를 독식하기 보다는 여럿이 더 나누어 가져 모두가 공존할 수 있는 세상이 만들어져 가야 할 것이다. 이런 세상이 바로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이 꿈꾸었던 세상이 아닐까 한다.광화문광장에서 천진난만하게 물놀이하며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면서 이들이 앞으로 올바른 시민정신과 애국심을 가진 청년으로 성장하여 이웃과 함께 풍요롭고 밝은 미래사회로, 그리고 더 큰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주역으로 커 나가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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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9.25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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