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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도하는 사람과 불효하는 사람

민족의 명절 추석이 지났다. 아직도 추석을 맞아 고향을 찾고, 부모 친척을 찾는 이들이 많다. 인심이 각박해지고, 자신 밖에 모르는 세상이라고 한다. 귀향행렬이 줄지 않는 걸 보면, 우리나라는 공동체정신이 살아있는, 아직은 살만한 나라인 것 같다. 추석이면 제일 생각나는 분이 어머니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제대로 효도하지 못했다는 자괴심이 언제나 가슴에 사무친다. 나름 할만큼 했다는 생각도 하지만, 어머니가 내게 베풀어주신 사랑에 비하면 내가 한 게 얼마나 될까? 9남매를 키우셨던 어머니는 내게 많은 가르침을 주셨다. 어렸을 때 집이 가난해서 거의 구걸하다시피 살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남에게 베풀고 살라는 큰 가르침을 주셨다. 어머니는 매년 쌀 100가마를 동네에 내놓으셨다. 한번도 빠트리지 않으셨다. 동네 사람들은 어머니가 빨리 돌아가시면 안된다고 했다고 한다. 돌아가시면 그 쌀이 없어질 것같아서였다고 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동네사람들은 모두 나와 상여를 매고 만장을 드는 등 따뜻하게 어머니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배웅했다. 은혜 갚겠다고 나서주었다.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에 "내가 죽더라도 쌀 100가마 주는 것을 그치지 말라"고 유언 하셨다. 내가 그 유언을 지키고 있다. 죽을 때까지 그 유언을 지킬 생각이다. 내가 죽으면, 내 자식들이 그 유언을 지킬 것이다.사람은 경제적으로 잘 살 수도 있고, 못 살 수도 있다. 물질본위의 자본주의사회에서 남에게 물질적인 도움을 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군들 자기 노력으로 벌어놓은 게 아깝지 않으랴. 누군가 말했다. "돈 있다고 누구나 베푸는 건 아니다"라고. 베푸는 것을 감히 '예술'이라고 말하고 싶다. 어머니 하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구니오 나카무라, 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팔라우의 대통령이다. 1996년 중반 팔라우에 갔을 때 만났다. 대화중 어머니가 95세라고 얘기하니, 그가 놀라서 "우리는 70 밖에 못사는데, 95세에도 살아계신다고요? 한번 뵙고 싶다"고 했다.1997년 6월 내가 작사하고 노래 부른 '오래오래 살아주세요' 노래비 제막식 때 그를 초청했다. 처음에는 참석하겠다고 했는데, 갑자기 못오겠다는 연락이 왔다. 15일 제막식에 참석하려면, 13일에는 비행기를 타야 되는데, 하필 그날은 '13일의 금요일', 움직여서는 안되는 불길한 날이었다. 못오겠구나 했는데, 15일 아침 7시에 도착하면 되겠느냐는 연락이 14일에 왔다. 그는 15일 아침에 도착해서 정부가 내준 방탄리무진으로 2시간만에 정읍에 도착했다. 12시의 제막식에 참석해서 나와 함께 테이프를 끊었다. 덕분에 제막식은 더욱 성대하게 끝났다. 작은 나라라고는 해도 쉽게 몸을 뺄 수 있는 위치가 아니기에 그런 정성을 보여준 것이 정말 고마웠다.나이 들수록 어려진다고 했던가? 추석 같은 명절이 오면 어머니가 더욱 그립다. 내가 다못한 효도를 다른 사람들은 꼭 했으면 하는 생각이 절실해진다. 부모에 효도하는 사람은 남에게 악한 일을 하지 않고, 부모에게 불효하는 사람은 남에게 선한 일을 하지 못한다는 게 내 믿음이다. '효',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살만한 사회를 만드는데 필요한 마음가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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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9.26 23:02

추석단상

1주일 후면 추석연휴가 시작된다. 매년 어김없이 추석은 찾아오건만 세월이 흐르면서 추석의 의미도 시간의 무게와 함께 달라짐을 느끼게 된다. 나의 기억에 아른거리는 먼 어릴 적 추석의 모습은 새 옷, 새 신발에서 시작된다. 어머니는 일년에 두 번, 추석과 설날에 새 옷을 사주셨다. 추석 전날쯤 전주 남부시장에서 사 오시는 보따리에는 우리 4남매의 옷과 신발이 가지런히 담겨 있었다. 아이들 옷을 입혀 보면서 미소 짓던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옷 선물을 받던 우리보다 더 흐뭇해하시던 마음을 지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추석에 차례를 지내고, 송편과 평소 먹지 보지 못했던 음식에 즐거워했던 기억도 새롭지만, 추석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새 옷에 대한 기대였던 것이다. 너무나 쉽게 새 옷을 사는 요즈음 아이들은 추석 때 무엇에 가슴 설레일까 궁금하기도 하다. 또 하나 어린 시절 추석을 생각할 때에 빠지지 않는 것이 영화관이다. 성묘에 빠지고 어떻게 해서든지 영화를 보러 가려고 이리 저리 궁리했던 것이 기억에 생생하다. 새 옷과 영화, 이 두 가지가 어릴 적 추석을 돌아볼 때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인 것이다. 또한 추석 둥근 보름달을 보고 남몰래 소망을 빌었던 모습도 잊혀지지 않는다. 아마도 중학교 때일 것이다. 중학교까지는 무시험으로 진학하고 고등학교부터 입학시험을 보는 시절이었으니까. "추석 보름달을 보고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덧없는 말에 의지하여 추석날 늦은 밤에 혼자 나와 달을 보고 많은 이야기를 했었는데,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생각이 나지 않아도 그때의 간절함만은 지금도 느껴진다. 대학 시절부터 추석의 모습이 서서히 변화되었던 것 같다. 생활의 근거지는 서울이지만 거의 대부분의 추석은 부모님이 계신 전주에서 보내게 됨에 따라 추석은 쉽지 않은 명절이 되었다. 기차표나 고속버스 승차권을 구하기 위하여 밤새워 기다리기도 했고, 승용차로 10시간 넘게 운전하여 집에 오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전주집에 머무르는 시간보다 오고 가면서 운전하는 시간이 많았던 적도 적지 않았다. 특히 결혼 후에는 추석때 집에 가는 문제로 아내와 갈등을 일으킨 것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몸이 약한 아내는 추석때 전주를 다녀오면 몇일을 끙끙 앓는 것을 알고 있지만, 추석 귀향을 미룰 수는 없었다. 이렇게 추석이면 으레 집으로 향하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 부모님과 추석을 같이 보내고, 성묘를 해야 한다는 의식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 물론 가장 큰 이유일 것이지만, 힘든 타향생활을 벗어나 고향의 품에서 위안을 받고자 하는 바람도 적지 않았던 것 같다. 좋은 친구들, 다정한 친척들, 어려서부터 알고 지내 익숙한 이웃 등 이해관계에 억매이지 않는 편한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세상사에 피곤해진 심신을 달래보고 싶었던 것이다. 나이를 먹고, 세월이 흐르면서 이러한 추석의 의미도 점차 흐려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친척 어른분 들은 돌아가셔 안 계시고, 전주에 부모님이 살고 있지 않은 친구들은 추석이 되도 전주에 오지 않는다. 따뜻한 정을 같이 나눌 사람이 하나 둘 사라지니 전주에 와도 옛날 같은 고향의 내음을 맡기 쉽지 않다. 내가 간직해왔던 소중한 것이 사라져 가는 것 같은 허전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추석 귀향이 없었다면 이제까지의 타향에서의 30년 넘는 삶이 얼마나 삭막했을까를 생각해 본다. 그래서 옛날의 정겨웠던 추석 귀향을 다시 찾고 싶다. 그러려면 내가 먼저 정성을 쏟아야 한다. 어머니 안 계신 추석을 처음 맞이하시는 아버지의 쓸쓸함을 달래드릴 수 있으면 좋겠다. 또 그 동안 못 보았던 친구, 친척을 찾아보아야겠다. 가능하면 내가 어릴 적 살던 추억이 깃든 곳도 천천히 걸어보겠다. 내 삶의 밑바탕이 되어준 고향의 따뜻함을 느끼면서 종반부로 들어선 인생의 다음 설계를 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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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9.12 23:02

문화융성시대와 무주 태권도원

한국 사회에서 '문화산업'이라는 의제가 시대정신으로 거론된 지도 10년이 넘었다. 21세기 전후 김대중 정부의 막대한 지원으로 문화는 이제 예술을 넘어 산업의 영역으로 확장됐다. 이후 역대 정부도 문화산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다각적인 정책을 벌여왔다. 그 중 하나가 바로 태권도 진흥 사업이다. 오늘날 태권도는 단순히 체육 종목 중 하나가 아닌, 한반도 반만년 역사의 무술 혼을 상징하는 기호로 통한다. 더욱이 한국의 대표 문화브랜드로 자리매김하며 '강남 스타일' 이전의 원조 한류로 재조명되고 있다. 70년대 아그레망 없는 외교사절로 활약했던 태권도 사범들의 역사는 이제 고전이 됐다. 과거 국가대표 사격선수로 활동하며 외국을 방문했을 때에도 이국인들이 태권도를 통해 한국을 알아보았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내세울 게 없던 가난했던 그 시절, 한국인의 자부심을 세워준 것은 바로 '태권도'였다.그리고 지난 7월 '태권도원'이 완공됐다. 2009년 9월 4일 '태권도의 날'에 전라북도 무주군의 광활한 대지에서 첫 삽을 뜬지 5년 만이다. 세계에 유례없는 대규모 태권도 전문 시설의 탄생이 있기까지 많은 이들의 땀방울이 모였다. 태권도원 건립·운영사업의 주체인 태권도진흥재단은 올 하반기 시범운영을 거쳐 2014년 3월 개원을 향해 막바지 힘을 쏟고 있다.태권도원의 부지면적은 231만 4천 제곱미터(m²)로 여의도 면적의 1/3에 이른다. 백두대간을 연상케 하는 기다란 조성 공간은 체험과 수련, 상징 등 3개 구역으로 나뉜다. 체험과 수련 공간에는 세계 유일의 태권도 전용 경기장과 박물관 외에도, 최첨단 과학기술을 적용한 태권도 체험관과 연수시설 등이 들어선다. 태권도 원로들을 기리는 상징 공간은 아직 용의 눈으로 남아있다. 이곳의 핵심시설인 태권전과 명인관이 기부금으로 조성되는 까닭이다. 그 동안 국내·외 많은 태권도인들의 정성을 모아 왔지만 두 시설을 완성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지난 4월 태권도원을 직접 방문했을 때에도 그 부분이 안타까웠다. 상징지구는 태권도원의 시작과 끝이다. 태권도 역사의 무게와 미래의 영광이 공존하는 곳이다. 상징지구 조성에 차질이 없도록 다각도의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태권도원을 채울 콘텐츠의 역할도 중요하다. 태권도원에서 선보일 운영 프로그램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태권도 전공자를 위한 전문 프로그램과 비전공자를 위한 일반 프로그램이다. 특히 태권도 전문 수련생을 대상으로 한 세계태권도아카데미(World Taekwondo Academy, WTA)는 국기원이 맡아 전문성을 책임진다. 태권도 수련생은 태권팝스(태권체력측정평가)와 폭포 수련, 고단자·국가대표 선수와의 만남 등 다양한 심신 수양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일반인들도 태권도 수련·체험은 물론 이를 접목한 문화·치유 프로그램 등을 선택해 즐길 수 있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 달 문화융성위원회를 출범시켰다. 태권도원은 문화융성사업을 중시하는 새 정부의 국정기조와 통하는 중요한 사업이다. 태권도원이 새로운 태권도 문화 창출의 장이 될 가능성도 여기에 있다. 개원 후 태권도원이 태권도 문화 콘텐츠 개발의 허브가 되어 태권도인 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태권도 문화를 전파하는데 기여하길 바란다. 이를 위해선 전 세계 태권도인의 관심과 참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전북도민께 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 예부터 전라도에는 나라를 지키려는 의로운 투쟁이 많았다. 무주에 태권도원이 들어서게 된 역사적 배경에도 조선시대 호국 승려의 얼이 깃든 '안국사'와 '설천면 전설'이 있다. 이제는 종주국의 자부심을 지켜줄 '태권도원'에 앞으로도 많은 애정을 부탁드리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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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9.05 23:02

추석, 감이 주렁주렁 달린 고향길을 걷노라면…

나이가 들면 생각이 많아진다는 어른들의 얘기를 젊은 시절에 들었다. 처음엔 그 말의 의미가 잘 이해되지 않았다. 한창 일 하는 나이 때에 고민도 많고 생각이 많지, 은퇴한 나이에 무슨 하실 일이 있다고 생각이 많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혹시 잠이 없으시다보니 가진 게 시간 밖에 없어 괜히 이런저런 생각을 하시는 게 아닌가 하는 시건방진 진단을 내리기도 했다.이제 내가 그런 나이가 됐다. 생각이 많아졌다는 걸 느낀다. 할 일은 없는데, 시간이 많아져서 생각이 많아진 걸까? 그 건 아니다. 살아온 세월의 축적을 반추하면서 눈 앞의 일을 바라보면 생각이 많아질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모든 언행은 살아온 인생의 총화(總和)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이 든 사람들의 언행은 대개 그 사람의 인생궤적과 일치한다. 나이가 들면서 고향에 대한 애착이 예전보다 더 커졌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요즘은 고향에 가도 내가 거의 최고령층에 속한다. 인생이 이렇게 흘러가는가 하는 생각과 함께 고향을 위해, 또 나라를 위해 내가 할 일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간 고향을 위해 나름대로 작은 일들을 해왔다고 생각한다. 이름을 남긴다거나, 사람들이 나를 기억했으면 하는 생각에서 한 건 아니다. 고향을 다니면서, 고향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게 뭘까를 생각하고 작은 실천을 했을 뿐이다. 남들보다 조금의 성취가 더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에, 받은 만큼이라도 돌려줘야 될 의무도 있다.특히 변변한 자원도, 뒷배경도 없는 고향 전북을 위하는 일이 뭘까를 고민하는 시간도 길어졌다. 전북의 미래는 사람 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재경전라북도민회장 취임 후 제일 먼저 한 일이 도민회 장학금 대폭 확충이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나도 작은 기여를 했지만, 여러 향우들의 협조가 정말 고마웠다. 그 분들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장학금 혜택이 비약적으로 늘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또 5년 전부터 고향 마을과 이웃 마을에 가구당 1주씩 감나무를 심어 드렸습니다. 작은 나무가 자라 감이 열리면, 적지만 소득도 가능하고 고향을 찾는 후손들이 작은 추억이라도 만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이다. 감나무를 선택한 것은 기르기 쉽고, 소출이 있다는 점 외에도 임실과 우리 동네가 감이 잘 된다는 조사 덕분이다. 또 태인-칠보-산외까지의 10km 국도변에도 감나무를 가로수로 심었다. 처음에 큰 나무를 심었는데, 활착률이 나빠 2011년부터는 어린 묘목을 심었다. 50% 정도만 제대로 커도 큰 수확이 아닐 수 없다. 곧 추석이다. 많은 향우들이 고향을 찾을 것이다. 사랑하는 부모형제들과 친척 친구들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낼 것이다. 내 경우, 고향에 가도 반갑게 맞아주던 친구들 보기도 힘들다. 같이 뛰놀던 친구들 대부분이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이제는 여린 가지를 꿋꿋하게 내민 감나무들이 나를 반겨준다.우거진 감나무 사이로, 또 감이 주렁주렁 매달린 고향길을 걷는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그 감나무들이 거목으로 자라나 고향의 상징이 되고, 그 나무 밑을 넉넉한 마음으로 걸을 사람들을 생각하면 더 흐뭇해진다. 그렇게 클 때까지 잘 키우고 싶다. 도민과 향우들이 모두 나서서 고향집, 고향길에 나무 한그루씩 심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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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8.29 23:02

예를 갖춘 리더인가?

얼마전 모일간지에 게재된 탤런트 최수종씨의 인터뷰기사를 읽고 적지 않은 감동을 받았다. 부인인 하희라씨는 물론이고, 14살, 13살짜리 두 아이에게도 존댓말을 사용하고 이름도 민서씨, 윤서씨라고 부른다고 한다. 또, 아이들에게 "공부해라, 이것해라."라고 강요하지 않고 뭐든지 아이들하고 상의를 해서 결정한단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부인과 어린 자녀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고 한 사람의 인격체로 인정한다는 것은 일상에서 말과 행동을 참으로 조신하게 한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세상살이라는 것이 사람과 관계를 맺고 부대끼며 살아가는 것일진대 살아오면서 내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고민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한자문화권에서 인간이해의 핵심은 인(仁)이다. 인의 개념이 어질고, 연민하며, 수양하고, 너그러운 마음등을 포괄하는 의미로 확장되었지만 본래 뜻은 두 사람이다. 즉, 사람 인(人) 둘 이(二) 모였으니 관계가 형성된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공자님은 인간관계를 다양한 방법으로 설명하지만, 그 중 으뜸은 자기가 하기 싫은 것은 남에게도 시키지 말라는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慾 勿施於人)'이다. 상대방이 싫어하는 일을 시킬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겠지만, 적어도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보자는 얘기다. 얼마전 IMF등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우리사회 도덕윤리의 기둥인 예(禮)의 본질을 수직적 상하관계로만 파악하고, 왕과 신하, 아버지와 아들, 남편과 아내, 선생님과 학생으로 나눠 규율하는 명령과 복종의 굴레를 없애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이 크게 주목받은 적이 있다. 예라는 형식의 껍데기를 벗어 던지고 인간에 대한 진정한 이해와 겸손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커피나 진통제 같은 순간적인 위로와 아름다운 말만으로 우리의 아픔과 상처를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는 없다.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문제의 본질에 가까이 다가서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서로 의지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사회의 속성을 인정하고 사태를 객관적으로 보자는 것이다. 우리보다 이 문제를 앞서 고민했던 선각자들의 성찰은 인간사회에서 제기되는 문제의 핵심을 '나'라고 파악했다.'너 자신을 알라'고 했고,'모든 만물은 너로 인해 존재한다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했으며, '개인적 삶에 충실한 연후에야 훌륭한 정치인이 될 수 있다고도 했다.공직자로서의 첫 보직이 구청 민방위과장이었다. 24명의 직원들 가운데 여직원만 한 살 아래고 나머지는 모두 연장자였다. 리더십이론을 열심히 공부했지만 현장에서 활용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물론, 공직생활을 시작하면서 관리자로서 나름의 생활철학을 마련했다. 첫째, 직원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목표와 비전을 제시할 것. 둘째, 직원들에게 존댓말을 쓰고 의견을 끝까지 들어 줄 것. 셋째, 솔직하고 공부하는 공무원이 될 것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 소박한 잣대로 재단하기엔 세상이 그렇게 녹녹치 않았고 하루해가 지면 오늘도 무사했구나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하루는 동향선배 한분이 '모르는 것을 아랫사람한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아라'라는 공자님말씀을 인용해서 조언해 주셨다. 이때부터 모르는 것은 완전히 이해될 때까지 물었다. 공자님은 '군주는 신하를 예를 갖추어 부리고 신하는 군주를 충성으로 섬긴다는 군사신이예신사군이충(君使臣以禮臣事君以忠)' 라고 했다. 아랫사람으로부터 마음에서 우러나는 충성을 기대하기 위해서는 왕이 먼저 예를 갖추어서 신하를 부려야 한다는 말이다. 내가 아랫사람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할지 이 구절에 비추어 다시 자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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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8.22 23:02

현명한 기후변화 대응법

길게 만 느껴졌던 중부지방 장마가 끝나자 더위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 장마가 짧았던 남부지방은 무더위가 더욱 기승을 부리는 것 같다. 지난 주말에 전주에 갔었는데 말 그대로 찜통 더위였다. 기온이 37도를 넘었다고 하니 과거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더위인 것이다. 저녁에는 앞마당 평상에 모여 수박을 먹고, 누워서 시원한 바람에 몸을 맡겼던 어릴 적 여름이 그리워진다. 이제 우리는 기후변화의 한 복판에서 살고 있다. 남의 일처럼 여겼던 지구온난화 문제가 이제 생활 깊숙이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지구촌 전체가 가뭄과 홍수, 이상 고온 등 기상 이변으로 신음을 앓고 있고, 빙하가 녹으면서 해수면이 올라가고 있어 앞으로 또 무슨 일이 있을지 전전긍긍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면 기후변화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까? 지구 온난화를 방지하려면 대기 속의 이산화탄소를 줄이면 되는데 그것이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니다. 이산화탄소는 화석연료를 연소할 때에 주로 배출되는데 석유, 석탄과 같은 화석연료는 인류의 대표적인 에너지원이고, 특히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에너지를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다. 따라서 이산화탄소를 줄이려면 에너지 소비를 줄여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냉난방 같은 생활 속의 에너지보다는 산업계에서 사용하는 에너지가 월등히 많다. 즉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려면 산업생산이 줄고, 경제성장이 낮아지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중국 등 개발도상국이 온실가스에 대한 국제적인 규제에 적극 반대하는 것도 경제성장에 걸림돌이 된다는 이유에서이다. 특히 중국은 세계 제일의 이산화탄소 배출국가로서 2010년 72.6억톤을 배출하였는데 이는 우리나라 배출량의 13배 수준이다. 중국과 인도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전 세계의 1/3 가까이 되는 상황에서 이들을 제외하고 온실가스 배출을 규제하는 것은 실효성이 없다. 교토기후협약 이후 새로운 기후변화협약을 위한 협상에 진전이 없는 것도 탄소규제에 대한 선진국과 개도국간 첨예한 이해관계 대립이 주요 원인인 것이다.지난 이명박정부는 저탄소 녹색성장을 핵심 국가 아젠다로 추진하였다. 지구를 살리기 위한 저탄소를 선도하면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자는 것이었다. 녹색성장위원회가 만들어지고 녹색성장기본법이 제정되는 등 각종 정책이 쏟아졌고, 홍보도 체계적으로 이루어졌다. 2020년까지 BAU 대비 온실가스 30% 감축이라는 의욕적인 감축목표도 세계에 제시하였다. 그러나 각종 구호와 정책에도 불구하고 2010년 우리나라 온실가스 배출양은 전년대비 9.8% 증가하여 2000년대 들어서서 가장 높은 증가율을 기록하였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GDP당 온실가스 배출량이 2002년부터 지속적으로 줄어왔는데, 저탄소 녹색성장 정책이 추진된 2008년부터 오히려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경제가 내세우는 것과는 달리 더욱 화석연료 의존적인 경제구조로 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볼 때에 국제사회에 제시한 온실가스 감축목표는 달성하기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우려되는 것은 이러한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국제사회에 제시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무리한 정책이 추진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그러므로 지금이라도 변화된 여건을 점검하여 국가감축 목표를 현실성있게 재산정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재산정한 감축목표와 어려운 경제여건 등을 감안하여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정책과 규제도 국민과 산업계의 의견을 반영하여 재설계 할 필요가 있다. 특히 중국·미국 등 온실가스 과다 배출국가가 자국의 경제성장을 고려하여 온실가스 규제정책에 적극 나서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만 앞서 갈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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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8.15 23:02

한국 스포츠 발전과 국가 브랜드

국가대표선수 출신으로 최초로 체육 주무부처 차관을 맡기까지 필자는 평생을 스포츠와 함께 해 왔다. 우리나라 스포츠가 발전하고, 이를 통해 국가 브랜드가 높아지는 역동적인 순간을 늘 함께 해 왔다. 때로는 현장의 선수였고, 때로는 선수들을 지원하는 감독이나 체육 행정가였다. 돌이켜보면, 맡은 역할은 시기에 따라 달랐지만, 스포츠를 통해 국민들에게 기쁨과 감동을 선사하고, 세계 무대에서 우리나라의 위상을 드높이겠다는 각오만은 늘 한결같았던 것 같다.익산에서 태어난 필자는 어린 시절에는 학교 선생님을 꿈 꿨으나, 이리동중, 이리농림고 등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군인의 길에 매력을 느껴 해병학교를 거쳐 해병대 장교가 되었다. 체육인과는 거리가 먼 길이었다.그런데, 1970년 베트남전 참전을 앞두고 갑자기 국가대표 사격선수로 발탁되면서 운명처럼 체육인의 길을 걷게 되었다. 우리나라가 '제 2회 아시아사격선수권대회(1971년)'를 유치하면서, 당시 경호실장이자 대한사격연맹회장을 맡고 있던 고 박종규씨가 몇 차례 군대 사격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필자를 사격선수로 지목한 것이다. 이후 국가대표 사격선수로 78년 방콕, 82년 뉴델리, 86년 서울 등 아시안게임 3연속 금메달을 기록하는 등 적지 않은 수상의 영예를 누렸고, 선수생활을 은퇴한 뒤에도 국가대표 사격팀 감독, 대한체육회 임원 등으로 체육인의 삶을 떠나지 않았다. 2011년부터는 2년여 간 태릉선수촌장을 맡기도 했다. 지난해 런던올림픽에서 한국선수단 총감독을 맡아 역대 원정 대회 최고 성적인 종합 5위를 달성한 것은 가장 뜻 깊은 기억이다.오늘날 세계적인 무한경쟁 시대에 스포츠는 국가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중요한 수단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스포츠를 통해 통해 국가 브랜드를 세계에 각인시킨 대표적인 나라다. 88년 서울올림픽과 2002년 한·일 월드컵은 우리 국민들의 통합된 힘과 우리나라의 발전된 모습을 세계에 널리 각인시키면서 국가브랜드 가치를 획기적으로 높인 계기가 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동·하계올림픽, 월드컵,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등 4대 스포츠 축전을 모두 여는 세계 6번째 국가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올림픽을 비롯한 각종 국제스포츠대회에서의 경기력도 세계 상위권에 섰다. 아마 우리나라가 스포츠 강국이라는 데는 아무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그러나, 스포츠를 통해 국가브랜드를 한 단계 더 높이기 위해서는 이제 스포츠 강국을 넘어 스포츠 선진국으로서의 면모를 세계에 보여주어야 할 때가 되었다. 그러면, 스포츠 선진국은 어떤 모습일까? 필자는 '국민 누구나 스포츠를 통하여 건강하고 즐거운 삶을 누리는 나라'가 스포츠 선진국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이는 국정의 중심을 국가가 아닌 국민 개개인에 두고 국민행복을 추구하는 박근혜정부 체육정책의 핵심이기도 하다.새 정부는 생애주기별 맞춤형 스포츠 프로그램을 보급하고, 종합형 스포츠 클럽과 스포츠 교실은 물론 각종 생활체육시설을 연차적으로 늘려나가는 등 100세까지 누구나 집 가까이에서 건강하게 스포츠를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필자는 국민 모두가 1인 1기 이상의 스포츠를 즐기며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를 제안한다. 이는 새 정부 체육정책의 지향점이며, 우리나라가 스포츠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지름길이다. 스포츠를 통해 또 다시 국가브랜드를 높일 새로운 기반이기도 하다.△ 박 차관은 고려대 교육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쳤으며 국가대표 사격감독, 대한체육사 이사, 태능선수촌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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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8.08 23:02

사무치게 그리운 어머니, 그리고 고향

누구에게나 어머니란 단어는 남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시고, 홀어머니 사랑 속에서 나이 먹은 나에게는 그 느낌이 더욱 남다를 수밖에 없다. 칠순이 넘은 이 나이에도 어머니라는 단어를 접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어머니가 세상을 뜨신지 벌써 12년이 지났다. 그럼에도 서울에서 내려오는 아들을 기다리시던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슴이 무너진다. 더 잘 모셨어야 했는데 하는 후회가 가슴을 친다. 내가 온다는 날이면, 어머니는 새벽부터 마당에 나와 대문만 쳐다보셨단다. 기다리는 어머니가 안계시는 지금은 귀향길도 바쁘지 않다. 어머니를 모시고 홍콩과 일본을 다녀오기도 했다. 비행장에 도착하면 구순의 어머니를 내가 업었다. 길게 늘어선 입국장 줄 뒤에 서면 사람들이 어서 먼저 가라고 자리를 양보해줬다. 내 등에 업히신 어머니 덕분에 일찍 수속을 마쳤다. 그 걸 노리고 한 일은 아니었지만, 사람들의 마음이 고마웠다. 나라는 달라도 효도하는 마음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가 95세 되시던 1997년 6월, 나는 어머니가 살고 계신 곳이자 내가 태어나서 자란 곳(정읍시 칠보면 시산리 시기마을)에 노래비를 세웠다. 어머니가 저 돌처럼 100세까지 건강하게 살아계셨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전문 음악인은 아니었지만, 내가 작사하고 노래도 직접 불렀다. 평상시 나와 어머니와 주고 받던 말씀을 갖고 작사한 노래 「오래 오래 살아주세요」가 바로 그 노래다. 그 후 어머니 앞에만 서면 그 노래를 불렀다.'세상살이 고달프고 괴로울 때면 마음은 달려가네 어머님 품속으로/사랑스런 눈빛으로 나를 보며 두 손으로 안아주었죠/세월따라 변해가는 어머님의 그 모습이 이 자식의 가슴 속을 울려줍니다// 흐르는 세월을 아쉬워하며 나를 사랑하고 키워주신 어머님/이 몸이 잘 되라고 두 손 모아 그 얼마나 빌었습니까/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은 어머님 그 은혜를 무엇으로 갚으리까/어머님 어머님 오래 오래 살아주세요/어머님 어머님 오래 오래 살아주세요'좀 면구스러운 일이지만, 내가 가수라고 하면 사람들이 잘 믿지 않는다. 그렇지만 나는 엄연히 가수다. 사단법인 한국연예협회 회원증(가수분과 380호)을 가진 진짜 가수다. 회원증이 있어야 정식 가수로 인정된다.나는 요즘도 작사료를 받는다. 방송이나 노래방에서 내 노래를 틀면 사후 70년까지 보장되는 작사료가 나온다. 금액이야 얼마 되지 않지만, 받을 때마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게 되고 매우 재미가 있다. 작사자가 죽으면 그 권리는 배우자와 후손에게 귀속된다. 집사람에게, 또 자식들에게까지 상속되는 '돈벌이' 권리다. 내가 직접 부른 노래이기도 하지만, 내가 작사했기에 더욱 값지고, 자랑스럽고, 재미 있다.노래비를 세운 것은 내가 한 일중 가장 보람 있는 일로 생각된다. 덕분인지, 어머니는 102세까지 건강하게 사시다 돌아가셨다. 102세도 자식 입장에선 아쉽지만, 병원 한번 안가시고 돌아가신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다. 하늘에서 어머니를 돌봐주셔서 그리 된 것같다. 그로하여금 나는 나라에서 국민훈장을 받게 됐다.어머니 얘기를 하는 것은 내가 효자라서가 아니다. 누구나 비슷하겠지만, 대개의 경우 스스로를 불효자라고 생각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다만 모든 사람이 가지는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이다. 효도하는 마음은 고향사랑 마음과 통하고, 이웃사랑 마음과도 통하기 때문이다. 이런 마음이 있을 때 이웃과 고향을 더욱 따뜻하게 대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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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8.01 23:02

거울 하나를 더 걸면서

이른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침실을 나와 거실에 걸려있는 거울에 얼굴을 비춰본다. 엊저녁에 모처럼 만난 예전 동료들과 늦은 시간까지 회포를 푼 덕에 얼굴이 푸석하다. 각자들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며 사회 돌아가는 이야기들 나누다가 모의원이 했다는 귀태(鬼胎) 이야기가 화제로 등장했다. 평소 손빠르고 재치있는 친구가 잽싸게 인터넷을 검색하더니만 번역서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라는 책에서 인용한 '태어나지 않아야 할 사람'이라는 뜻이란다. 박정희 전대통령은 태어나지 않았어야 할 사람이라는 뜻으로 한 얘기란다. 글쎄 아무리 이념과 지향하는 정치적 소신이 다르다고 공인이 그렇게까지 험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느냐고 혀를 찬다. 그 사례를 계기로 본인들의 말실수 경험과 구설수에 올랐던 동서고금의 일화들로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헤어져 돌아온 기억이 아침까지 새롭다.요즈음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말을 너무 쉽게 많이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우리 주변에 난무하고 있는 현란하고 저속한 말들이 정치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사회의 오피니언 리더들은 물론이고 방송인, 운동선수, 연예인들도 심심치 않게 지상에 오르내린다. 보통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지인들과 얼굴 맞대고 얘기하는 것도 모자라 모르는 사람에게 문자까지 보낸다. 그 중에는 상대방을 위로하고 감동을 주는 따뜻한 말도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 상처와 피해를 주는 막말도 적지 않다. 막말의 경우 사회적 책임과 지위가 낮은 사람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지도자일 경우엔 한 조직이나 국가의 운명이 달라질 수도 있다. 힐링전도사로 귀감이 되는 말만 골라서 하기 위해 노력하던 혜민스님이 너무 많은 말을 했다며 당분간 묵언수행을 하시겠다니 참 아이러니하다. 한마디 말로 천냥 빚을 갚기도 하지만, 말 한마디로 살인도 할 수 있는 것이니 '말의 무서움'을 새겨서 조심하고 또 삼가해야 할 일이다. 불가에서는 사람에게 네 개의 거울이 필요하다고 한다. 첫째는 얼굴과 몸등 보이는 것을 비추어 보는 거울이다. 집, 사무실, 자동차, 버스정류소나 지하철역, 상가건물에 비치된 거울은 물론이고 휴대폰에도 거울앱을 다운받아 들고 다니면서까지 사용하고 있다.둘째는 우리가 사용하는 말과 언어를 비추어 보는 거울이다. 이 거울은 유형의 거울일 수도 있고 아니면 각자의 마음에 간직하고 있는 무형의 거울일 수도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정제되어 있는지, 그 상황에 적정한지, 거짓말하거나 속이는 것은 아닌지 등을 점검하는 그런 거울이다. 우리얼굴에 때가 묻어 있거나 옷이 지저분하면 주위사람들을 불쾌하게 하거나 조금 기분 나쁘게 할 수는 있다. 하지만 막말은 타인의 가슴에 못을 박거나 때로는 온 나라를 시끄럽게 만든다. 셋째는 내재된 의식세계, 다시 말하면 프로이드가 이야기한 에고의 표상을 살펴보는 거울이다. 말이 입밖으로 나오기 전에 자의식이 생성하는 마음씀씀이가 고약하지는 않은지, 상대방에게 편견이나 악감정을 품고 있지는 않은지를 점검하는 거울이다. 낯설은 상대방을 첫인상이나 감각으로만 평가하지는 않는지 경계하고 또 살펴볼 일이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볼 수는 없지만 각자가 살아온 삶의 자취를 비추어 보는 거울이 그것이다. 업경대라고 해서 우리같은 보통사람들은 죽은 뒤에나 확인해 볼 수 있다고 하니까 언감생심 현생에서 이 거울까지 갖자고 욕심낼 수는 없는 일이다. 무의식세계야 우리가 어찌할 수 없을 테고 의식세계인 마음만이라도 점검해 볼 수 있으면 좋겠지만 이 또한 적지 않은 욕심이다. 그래서 집과 사무실에 매일매일 얼굴을 비추어 보는 첫 번째 거울 옆에 두 번째 거울을 걸기로 했다. 이제부터라도 정말 좋은 말만 골라서 사용했는지 얼굴 볼 때마다 점검할 것이다. 내 가족들은 물론, 주위에 아프고 힘들어 하는 사람들한테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고 희망을 줄 수 있는 말들로 골라서 해야겠다.△ 김 위원장은 리버풀대학교대학원 행정학 석사를 마쳤으며 제주특별자치도 행정부지사,행안부 대변인, 정부청사관리소 소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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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7.25 23:02

창조경제는 생산성 혁신으로

요즘 창조경제가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우리경제는 선진국의 원천 기술을 도입하여 이를 개량하고, 저렴한 인건비와 우수한 생산기술을 접목하여 발전해 왔다. 그러나 임금상승과 중국 등 개도국의 빠른 추격으로 이러한 방식으로는 더 이상 국제경쟁력을 가질 수 없게 됐다. 경쟁력 약화로 수출이 부진하고 가계 빚 등에 내수마저 어려워져 지난해부터 2%대의 저성장 기조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한 처방이 창조경제다. 우리 경제를 추격형·모방형에서 선도형·창조형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창조경제가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정부 각 부처마다 창조경제를 하겠다고 정책을 쏟아내고 있고, 언론계·학계 등에서도 창조경제에 대한 제언이 잇따르고 있지만 주장하는 바는 제 각각이다. 일부에서는 창조경제는 민간의 자유롭고, 창의로운 사고와 활동을 기반으로 하는 만큼, 정부의 직접적인 개입은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같이 창조경제는 의미하는 바도 다양하고, 해석도 입장에 따라 여러 가지로 이뤄지고 있다.필자는 창조경제가 생산성 혁신과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생산성이라는 용어가 우리사회에서 종종 잘못 사용되는 경우가 있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하여 특근을 한다"는 말은 잘못 사용된 대표적인 사례이다. 생산성이란 제품생산이나 서비스 제공에 있어 투입 대비 얼마만큼의 산출이 이루어졌는지를 의미하는 것이므로, 특근을 하면 생산은 늘어나도 생산성이 높아진다고는 할 수 없다. 생산성 혁신은 생산성이 획기적으로 높아지는 것으로 우리경제가 노동, 자본 등의 생산요소 투입에 비하여 제품 산출이 훨씬 많아지는 경제로 변화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투입 대비 산출이 많아질 수 있을 것인가?. 첫째, 새롭고 획기적인 기술이나 공정, 디자인 등을 적용하는 것이다. 새로운 기술로 부가가치가 높은 신제품을 생산하거나, 공정혁신으로 원가를 절감하는 것, 그리고 매력적인 디자인으로 제품의 가치를 높이는 것 모두가 투입량 이상으로 산출량을 증가시키는 경우다.둘째로 인적자원의 질이 높을 때에 생산성이 높아진다. 교육, 직무훈련 등을 통한 인적자원개발과 함께 조직에서 의욕을 가지고 창조적으로 일할 수 있는 여건조성이 생산성 혁신의 중요한 조건이 된다. 셋째로 기업이나 사회시스템이 효율적이고 공정해야 한다. 기업의 경우 경영자가 리더십을 발휘하여 경영혁신을 이루고, 노동자가 경영성과에 대하여 정당한 보상을 받았다고 생각하여 의욕과 사기가 높을 때에 생산성이 높아진다. 정부는 합리적이고 예측가능한 규제와 효율적인 자원배분 등으로 기업의 경영활동을 뒷받침해야 한다. 중소기업도 대기업과 정당한 거래관계를 보장받을 때에 의욕을 가지고 기업활동에 전념할 수 있다. 이러한 사회시스템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 신뢰이다. 경제주체 간 신뢰관계가 확고히 구축되어야만 사회적 거래비용이 최소화되는 가운데 활발한 경제활동을 기대할 수 있다. 창조경제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지금이 우리경제 각 부문의 생산성 혁신전략을 치밀하게 수립하고, 일관성 있게 실천해 나갈 시점이다.△ 진 회장은 전주고와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으며 지경부 무역위원회 상임위원 정책기획관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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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7.18 23:02

전북인으로 산다는 것

내 고향은 정읍 칠보다.지금까지 한번도 고향을 잊은적이 없다. 벌써 60년도 더 지난 이야기지만, 칠보초를 다닐 때 가슴에 새겼던 꿈과 희망은 지금도 생생하기만 하다.그때는 지금 우리가 TV에서 보는 최빈국의 모습보다도 훨씬 더 심한 가난이 어린이들의 마음을 훑었다.하지만, 춥고 배고프면서도 가족간에는 깊은 사랑과 정이 있었고, 교정에서 함께 뛰놀던 친구들과는 잊을 수 없는 우정을 나눴다.지난달 28일, 나는 서울에 있었지만 소리없이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바로 그날, 내 모교인 칠보초에 '송현섭 도서관'이 건립됐기 때문이다. 고향을 찾을때마다 "도서관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들을 들으면서 뭔가 후배들에게 기여했으면 하는 생각에서 기꺼이 건립 결심을 해서 결실을 맺었다. 자칫 선배가 얼굴을 내기 위해 그런일을 하는 것처럼 보일까봐 개관식에는 일부러 참석하지 않았다.손자뻘되는 후배들이 멋 훗날 지역은 물론, 국가의 큰 인재로 성장해주기를 바라는 마음만은 간절하다. 사실 개인적으로 보면 나는 너무나 많은 복을 받았다. 서울에 있는 유수의 대학을 다닐 수 있었고, 공직을 거쳐 남들이 한번 하기도 힘든 국회의원을 3번이나 지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이 가능했던 것은 나를 낳아주신 소중한 어머니와 나를 키워주신 든든한 고향이 있었기 때문이다.국회의원이 돼서 맨 먼저 받은 세비를 어머님께 드리고, 두번째 받은 세비는 모교인 전주고 동창회에 쾌척했던 것도 바로, 나를 있게했던 근본이 무엇인지 잘 알았기 때문이다. 어머니를 위해 할 수 있는 나름의 노력을 다하고, 고향을 위해 남다른 기여를 했다지만, 더 헌신하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350만 재경 전북인들의 모임인 재경전북도민회는 부족한 본인을 두 번씩이나 회장으로 뽑아줬고, 전북인들은 또 과분하게도 첫 명예도지사의 직함을 안겨줬다.이러한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고향을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다시금 다져본다.대학시절 이후 나는 줄곧 서울에서 생활했다. 오랫동안 수도권에서 생활하면서 '전북인으로 산다는 것'에 대해 수없이 많은 고민을 했다. 전라도 사람이라면 무조건 내려다보는 '전라도 하와이'란 말이 있는 시대상황에서 살아남고, 더 성장하기 위해서 남보다 잠을 줄이고, 땀을 더 흘렸다. 국회의원 시절엔 전북의 자존심을 곧추세우기 위해 목청을 돋우기도 했다.DJ정권때는 사상 첫 여야 정권교체의 주역이라는 자부심을 느끼기도 했다.하지만 요즘 전북의 위상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미래 성장동력을 마련하기 위해 뭔가 한번 해보려하지만, 중앙무대에서 전북은 항상 뒷전임을 실감하기 때문이다.순망치한(脣亡齒寒)이라던가.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린법이다. 지역에서 생활하는 200만 도민과 수도권의 350만 출향인은 그야말로 이와 입술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굳이 각종 통계 수치를 들이대지 않더라도 오늘날 전북은 왜소하다.그래서 서울에서 전북인으로 산다는 것은 고단한 일이다.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지금 이 순간 우리 전북인들이 하나로 뭉치고, 새로운 사고로 무장해야 하는 이유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이들과 출향인들은 결코 남일 수 없다.부모형제요, 선후배며, 친구들이다.전북도라는 큰 울타리에서 정을 나누며 살자.전북이 더 번창했으면 좋겠다.전북인들이 서울에 있건, 전북에 있건 어깨 좀 쭉펴고 멋지게 사는 풍토를 만들어가자.△송 회장은 전주고, 성균관대를 졸업했으며, 3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현재 초대 명예도지사와 재경전북도민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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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7.04 23:02

카르페디엠, 하쿠나마타타

재작년 12월, 32년에 걸친 공직생활을 마치고 백수생활을 하게 되었다. 마지막 자리가 대통령을 모시며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힘든 자리여서 그랬는지 공직을 그만 두게 되었다는 아쉬움 보다 큰 짐을 덜었다는 홀가분한 마음이 더 컸었다. 그만 둔 다음날은 일어나자마자 배낭을 메고 전철을 타고 나홀로 산행을 갔다. 평일 출근시간이어서 전철 안에는 직장인들과 학생들이 가득하였고 나처럼 등산복 차림은 눈에 띄지 않았다. 그 시간에 등산복 차림으로 나섰다는 게 나는 백수요 라고 알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민망하였다. 다음부터는 조금 늦게 움직였지만 산에 가지 않는 날에는 늦은 아침을 먹고 동네 골프 연습장에 가서 몇 년 동안 손대지 않던 골프채도 휘둘러보고 오후에는 피트니스 센터에서 운동을 하는 게 일과였다. 친구나 지인들이 밥이나 한 끼 하자고 해서 점심, 저녁 약속이 많았다. 이렇게 한 달여를 지내다보니 앞으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공직에 있을 때부터 알고 지내던 대학교수 한 분과 언젠가 시간이 되면 히말라야 트레킹을 같이 가자고 약속을 하였었는데 그 때가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여 해발 4130미터 높이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목적지로 열흘 일정의 트레킹을 가게 되었다. 지나온 삶을 돌이켜 보고 앞으로의 삶을 구상해보는 성찰의 시간을 갖는다는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면서 길을 떠났다. 열흘간의 일정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식사시간과 중간 중간 휴식시간외에 하루 6,7시간을 계속 걷는 것이었다. 평소 산행으로 단련된 사람에게는 크게 힘든 일정이 아니겠지만 나로서는 수천 개의 돌계단을 오르내리고 해발 3천 미터 이상의 눈길을 오르는 것이 만만치가 않았다. 자기 성찰은 고사하고 이리 힘든 길을 왜 왔나 하는 후회를 하기도 하였다. 숙소에 도착해 저녁식사를 마치면 8시도 안돼서 곯아떨어지기 일쑤였다. 힘든 일정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따뜻한 노천 온천에 몸도 담그고 여유를 찾게 되면서 스스로에게 물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 이번 여정에서 답을 얻고 가는가라고. 열흘간 걷고 또 걸으면서 끼니 때 되면 밥 먹고 해 떨어지면 자는 단순한 생활을 해보니 인생이란 게 별개 아닌데, 하루 세끼 밥 먹고 살아가는 것인데 왜 복잡하게 생각하고 미래를 걱정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까지 살아 온 수준에 맞게 품위 있게 살고 체면도 유지해야 하고 주변 사람들의 시선도 의식해 가면서 살려니 고민을 하게 되고 걱정이 많아지는 것이 아닌가? 집착과 욕심을 버리면 된다. 물론 그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계절이 오고 가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고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 없는 것처럼 우리네 인생도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법이다. 현재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만족하고 사는 것이 현명한 삶이 아닐까? 두 달간의 짧은 백수생활 후 다시 공직의 길을 걷고 있지만 이때 얻은 교훈은 앞으로도 나의 삶의 지표가 될 것이다. "카르페디엠!" (오늘을 즐겨라 또는 오늘에 충실하라), "하쿠나마타타!" (걱정 하지 마 다 잘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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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6.20 23:02

반딧불로 하나 되는 세상

소백산맥의 덕유산에서 발원한 구리향천이 금강으로 흘러드는 산자수려한 명승의 고장 무주에서 천연기념물 제322호인 반딧불이를 소재로 한 자연 축제이자 2013년 문화체육관광부 최우수축제로 선정된 반딧불 축제가 지난 1일부터 9일까지 개최되었다. 깨끗한 환경보존과 녹색 생명의 존엄성을 전파하고 반딧불이와 함께 농촌을 알차게 체험하며 지역민과 관광객이 함께 어우러지는 추억의 감동축제이기도 했다.연분홍, 연자주 빛을 띠며 무리를 지어 주변을 맴도는 개똥벌레를 잡으러 뛰어다니던 어릴적 생각이 난다. 옛날에는 반딧불이가 개똥처럼 흔하다고 해서 개똥벌레라 불렀다. 밤하늘의 별과 함께 반짝이던 개똥벌레 생각에 밤을 새우며 개똥벌레가 밝히는 빛으로 호롱불 삼아 책을 읽어 보는게 꿈이던 나에게 반딧불이 이야기 "형설지공"을 들려주시든 어른들의 말씀이 생각난다. 개똥처럼 흔하던 반딧불이가 요즘은 청정지역에서만 볼 수 있고 아주 귀한 대접을 받으며 천연기념물 제322호로 지정 받았으니 반딧불이를 지키고 보호하려는 지역주민들의 자부심이 대단하다."자연의 빛, 생명의 빛, 미래의 빛"이라는 주제와 "사랑의 반딧불! 축제의 불을 밝히다" 를 부재로 삼은 이번 축제는 반딧불 빛으로 범지구적 네트워킹 체제를 구축하여 세계를 하나로 결속하고 무주가 구심적 역할을 수행한다는 의미에서 그 의미가 깊다.반딧불이가 밝히는 불빛으로 그동안 도시화, 산업화로 인해 무분별하게 파헤쳐지고 소외 되어버린 지구환경을 복원, 보존하고자 하는 노력과 몸부림을 하나의 축제로 승화시켰다.특히 환경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형성하고자 마련한 축제라고 한다.반딧불이 신비탐사와 낮에도 반딧불이의 발광 모습을 관찰할 수 있도록 마련한 반딧불이 주제관, 반디워터파크, 불 ·물벼락 페스티벌, 남대천 워터파크, 낙화놀이와 섶 다리 행렬, 남대천 송어 잡이와 뮤지컬 형식의 주제 공연 등이 마련됐다.그리고 반디극장 등 다양한 환경, 문화, 체험, 전시 행사도 진행됐다. 지구환경 보전 및 인류평화에 기여하는 의미에서 맑은 물, 깨끗한 공기, 무공해 청정지역 특성을 살린 환경 축제, 꿈과 고향과 추억 만들기가 피어나는 희망축제가 됐다.또한 재미와 테마가 살아 숨 쉬는 이미지축제, 자연과 함께 얘기하며 살아가는 사랑의 만남축제, 형설지공의 역사성에 바탕을 둔 역사축제, 차별화된 문화+환경+관광+경제의 복합 축제였다.앞으로 있을 후손만대에 복된 세상을 물려주고자 하는 우리들의 생존문제와 직결 되어있는 환경문제를 범지구적 차원으로 한 단계 격상시키고자 출발한 무주반딧불 축제가 이제 새천년 의 빛, 반딧불이! 그 생명의 불빛이 생명의 시대를 앞으로 열어 갈 것이라 의심치 않는다.하늘과 땅, 물이 때 묻지 않은 아름다운 무주의 대자연 품 속에서 반딧불이와 더불어 소중한 추억을 간직하고 반딧불 하나로 하나 되는 세상을 만들고자 마련된 환경의 축제에 내년에도 그 후년에도 온 국민의 온 세계 사람들의 축제의 장이 되길 바란다.풍요롭고 알찬 결실을 거두는 대축제의 한마당이 되어 더욱 발전 될 수 있는 관광전북의 견인차 역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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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6.13 23:02

갑을 문화

대기업 임원이 항공사 승무원에게 무례한 행동을 하다가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는가 하면 식품회사가 대리점에 밀어내기를 강요하고 폭언을 퍼붓다 소비자의 불매운동으로 매출이 급락하는 등 비뚤어진 갑을관계에 대한 사회적인 분노가 고조되고 있다. 사실 비뚤어진 갑을 문화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오래된 병폐지만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경제민주화와 관련해 여론이 더 크게 들끓고 있는 것이다. 갑을이라는 말은 본시 계약서를 작성할 때 쌍방의 이름을 일일이 반복해 적기가 불편해서 이를 간략하게 대체하고자 사용한 것에서 비롯됐다. 계약이란 것이 집이나 물품의 거래를 하거나 공사계약을 하거나간에 쌍방이 필요에 의해서 서로의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어느 일방이 우위에 있고 다른 일방은 열위에 있을 이유가 없는 것이 정상이다. 그래서 합리적인 계약문화가 정착된 서양사회에서는 우리와 같은 약탈적 갑을문화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외국의 기업들은 납품업체가 적정이윤을 확보해 거래관계를 지속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서로 간에 이익이 된다고 생각할 뿐만 아니라 납품업체가 기술적·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할 경우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는 경우도 많이 있다.우리의 잘못된 갑을문화는 비즈니스 관계에 국한되지 않는다. 일상생활에서 자기보다 약자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에게 함부로 대하고 횡포를 부리는 일이 빈번히 일어난다. 최근 대통령의 방미시 성추행 물의를 빚은 전 청와대 대변인 사건도 개인의 품성 탓도 있겠지만 인턴여직원 정도는 막 대해도 된다는 비뚤어진 갑을문화 의식에 젖어 있었기 때문에 발생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런 특별한 사건이 아니더라도 보통 사람들도 음식점에서 또는 매장에서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애꿎은 종업원에게 행패를 부리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콜센터 상담원이나 114 안내직원들에게 희롱과 폭언을 해 괴롭히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인간관계에서는 갑과 을이 언제 어느 때나 고정돼 있는 게 아니다. 직장에서 비정규직으로 을의 입장에 있는 사람도 식당에 가서는 종업원에게 갑으로서 상처를 줄 수 있다. 현대차의 사내하청 근로자도 정규직과 비교하면 스스로를 을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들보다 처우가 열악한 3차·4차 협력업체 직원들과 비교하면 갑의 입장에 있는 것이다. 사용자를 갑으로, 자신들을 을이라 생각하는 정규직 근로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에 맞지 않는다 해 주말특근을 거부함에 따라 또 다른 을인 협력업체 근로자들이 고통을 겪는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갑이라고 생각하는 공무원들도 사무실에 와서 막무가내로 행패를 부리는 민원인들에게는 을이 될 수밖에 없다. 정치인들도 선거 때가 닥치면 국민들을 갑으로 모시는 시늉을 한다. 비즈니스석을 타는 고객은 우월한 인간이고 승무원은 열등한 인간인가? 그렇지 않다. 인간 자체가 갑과 을로 나눠져 있는 것이 아니고 때와 장소에 따라 서로의 역할이 다를 뿐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행동해야 비뚤어진 갑을문화를 바로 잡을 수 있다. 계약서에 갑과 을이라는 표현을 안 쓴다 해서 갑을문화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인격이 고매해서가 아니라 내가 을의 입장에 있을 때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기 위해서 갑의 위치에 있을 때 상대방을 배려하는 행동을 해야 한다. 역지사지의 정신이 절실히 필요하다. 물질적으로 잘 살고 못사는 것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서로를 배려하는 따뜻한 인간관계는 우리가 마음먹기에 따라 충분히 가능하다. 우리 고향에서 부터 잘못된 갑을문화를 떨쳐 버리고 이웃과 약자를 배려하는 살 맛 나는 세상을 만드는데 앞장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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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5.23 23:02

선생님 모두에게 힘을

지난주에 첫 발령지 제자들을 40여년 만에 처음으로 만났다. 오십이 훨씬 넘은 중년으로 전국방방곡곡 요소요소에서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대부분 한몫을 하는 이들로 자랑스럽게 성장했다. 이들의 생활은 70여명의 학생들이 한 교실에서 배우고 너나할 것 없이 눈물겹도록 가난했다. 선생님께 혼 줄을 나면서도 꿈을 잃지 않고 열심히 공부했던 교실은 꿈이 있고 늘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시작종이 울리면 떠들썩했던 교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해지면서 공부할 수 있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졌고, 되고 싶은 것이 많아 매일 매일 장래 희망도 바꿀 줄 아는 학생들로 넘쳐났다. 그러나 지난 1월말에 끝난 청소년 드라마'학교 2013'을 보면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교실에서 아우성치는 학생, 공부시간 내내 잠자는 학생 그리고 흡연하는 학생. 이뿐만 아니라 학생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진과 왕따, 갈취와 폭력, 이를 방관하는 선생님들의 무기력한 모습, 학부모들의 전횡에 휘둘리는 학교와 그로 인해 희생당하는 선생님, 입시만능주의, 사교육을 맹신하는 우등생 등. 이처럼 학교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문제들이 드라마란 특성상 과장된 부분도 없지 않아 있지만,"이것이 오늘날 학교의 현실이구나."라는 생각도 해 보았다. 오랜 시간 교직에 몸담고 있었던 한사람으로 교권이 실추돼가는 지금의 현실이 정말 안타까울 뿐이다. 우리교육이 처한 이 암울한 시점에 사회구성원들이 모두 나서야 되겠지만 결국 궁극적인 해결책은 선생님들에게서 찾을 수밖에 없다. 학생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있기에, 학생 개인에 대한 진정성을 찾는 안목을 키워야 하고, 학생들의 인성교육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 활동을 진행해야 하며, 옳지 않은 교실문화를 바꾸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선생님들에게 주어진 과제이다. 하지만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이렇게 궁극적인 해결책과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선생님들이 꿈과 희망이 있는 학교를 만들 수 있도록 먼저 권위를 세워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을 위해 헌신하는 선생님들의 숨은 노력은 주목받지도 못한 채 무기력한 모습으로 의욕마저 떨어져가고 있으니, 선생님들께서는 어찌 열심히 할 수 있는 힘이 생기겠는가? 선생님들의 권위를 찾아주는 것이 무엇보다도 먼저며 힘을 실어주는 거다. 선생님들께서 권위를 찾고 학생교육에 열정을 쏟을 때, 학교는 꿈과 희망이 담긴 면학분위기가 조성될 것이며, 학생들의 실력이 향상되고 인성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는 임금과 스승과 어버이는 곧 하나라는 뜻으로, 스승을 어버이처럼 섬겨야한다는 옛 선조들의 스승에 대한 존경심을 엿볼 수 있는 말이다. 지금도 여전히 스승을 존경하는 제자도 있을 것이고 학부모도 계실 것이다. 또한 드라마에서와 같이 아이들의 고민에 먼저 귀 기울이고, 아이들을 위해 애쓰는 선생님과 같은, 존경받을 수 있는 스승도 있을 것이다. 존경심이 실추된 현사회가 선생님의 권위와 명예를 살리는 길부터 마련해주고 힘을 실어 주길 스승의 날을 맞이해 절실히 바란다. 오늘날 우리가 이만큼 발전할 수 있었던 것도 어려운 환경 속에서 희생적으로 봉사해 온 수많은 선생님들 덕분이라는 것을 깨닫고 존경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삶의 지혜를 깨우쳐주고 바른길로 이끌어주신 스승의 은혜에 보답 하는 길은 언제나 스승의 사랑을 가슴에 새겨 바르고 참되게 살아가는데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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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5.16 23:02

창업 열기 넘치는 나라, 타이완

정부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벤처기업이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창조경제 생태계 조성에 힘을 쏟고 있다. 창업국가의 대표적인 모델은 이스라엘을 꼽는다. 실제 이스라엘에서 뿐만 아니라 미국의 실리콘 밸리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벤처기업가들의 상당수가 유대인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이와 비슷하게 벤처 창업 열기가 왕성한 곳이 대만이다. 필자가 대만 상무관으로 근무할 당시 한국과 대만 학생들의 장래 희망에 큰 차이점을 볼 수 있었다. 한국 학생들은 안정적이고 대우가 좋은 대기업에 취직하는 것을 최고 목표로 삼는 데 비해 대만 젊은이들은 라오빤(老板), 즉 사장이 되는 것을 최종 목표로 삼는다. 크든 작든 내가 주인이 되는 회사의 사장이 되기 위한 경험을 축적하고 인적 네트워크를 확보하기 위해 직장생활을 한다. 따라서 좀 더 조건이 좋은 회사로의 이직율도 높고 회사에서도 이러한 현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대만 최고의 재벌인 포모사(Formosa)그룹 창업주 고(故) 왕용칭(王永慶) 회장의 딸인 왕쉐홍(王雪紅)은 부친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창업해 성공했다. 그녀는 대학 졸업 후 부친이 경영하는 회사에 들어갔지만 월급쟁이 생활에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이에 모친의 주택을 담보로 은행에서 500만 대만 달러(1.8억원 상당)를 빌려 실리콘밸리의 칩 제조사를 인수했고, 1997년에는 스마트폰 전문기업인 HTC를 설립해 한 때 점유율 면에서 삼성보다 앞서기도 했다. 칩 개발 초기 인텔의 견제와 특허소송 등에도 굴복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것은 15세의 나이에 샌프란시스코의 한 유대인 가정에서 홀로 보내면서 '독립심'을 기를 수 있도록 한 부친의 힘이 컸다고 한다.부친인 왕회장은 경영의 신(神)으로 불린다. 그는 고(故) 정주영 회장과 공통점이 매우 많다. 모두 어린 시절 가난한 집안에서 8남매의 장남이었다. 배를 곯지 않기 위해 쌀집 점원에서 시작해 성실성과 새로운 아이디어를 통해 쌀가게의 주인이 됐다. 어느 정도 돈을 모아서는 새로운 분야에 회사를 창업해 자동차, 화학, 전자, 중공업 등 수십 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그룹으로 도약했다.대만은 '창업 천국'이라 할 정도로 창업이 쉽고 이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 프로그램도 잘 돼 있다. 대학뿐만 아니라 기업과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창업보육센터가 중심이 된다. 입주사 선정기준도 엄격한데 대만 최고의 대학인 '국립대만대'의 스타트업 인큐베이션 센터는 아이템이 혁신적여야 하며 기존에 출시돼 있는 기술로 창업한 회사는 입주를 할 수 없다. 회사 경험이 있는 사람이 창업해야 성공가능성이 크다는 인식이 있어 재학 중 창업은 많지 않다. 이 곳 입주사의 경우 창업자의 95% 가량이 직장생활을 경험했다고 한다. 이에 비해 한국은 어떠한가? 부모들은 자녀들이 변호사나 의사와 같이 안정된 직업을 갖기를 바란다. 해외 유학까지 다녀온 아이가 창업을 한다고 하면 걱정스런 눈으로 바라보는 현실이다. 그만큼 창업이 성공하기도 어렵고 한 번 실패하면 재기하기도 어려운 사회적 분위기다. 새로운 아이디어 하나만으로도 도전할 수 있는 시스템과 지속적으로 창업이 이루어지는 생태계도 구축되지 못한 게 사실이다. 정부는 참신한 아이디어를 가진 벤처를 육성하고 창의적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정책적 시스템을 구축해 나갈 계획이다. 이미 문제점과 개선 방향에 대해서는 충분한 검토가 됐다. 새로운 도전을 꿈꾸는 젊은 예비 창업가들에게 모처럼 맞는 창업 활성화 분위기가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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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5.09 23:02

전북, 기업 유치에 더욱 힘써야할 때

기업유치로 인한 효과는 다양하다.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고 연관 산업도 발전하게 되며 세수도 늘어난다. 이외에도 지역경제에 많은 효과들을 주고 있다. 이러한 결과 많은 나라들은 투자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특히 세계화와 정보통신의 발전은 기업으로 하여금 투자영토를 넓히게 했다. 우리 기업들은 저렴한 인건비를 찾아 타국으로 이전하는가 하면 외국의 기업들은 국내에 공장을 세우기도 한다. 세계화는 기업뿐만 아니라 국가에게도 많은 선택과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데 최근 기업유치에 적극적인 나라들이 부쩍 늘고 있다.스위스하면 우리는 빼어난 자연환경 때문에 관광산업을 떠올리게 된다. 그래서 GDP에서 관광수입이 매우 높을 것이란 착각을 하게 되지만 예상과 달리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7%대에 머문다. 산악지역인 스위스는 수출로 먹고 살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내수시장이 작아 수출로 먹고살아야만 하는 구조적인 한계가 있다. 그들이 선택한 전략은 무엇이었을까? 해답은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고 투자유치를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었다. "Life is sweet, Switzerland!" 이는 스위스에서 해외 투자유치를 위해 사용하는 슬로건이라 한다. 낮은 세금 및 노사분규, 높은 삶의 질과 질서로 정돈된 나라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인지 유엔공업개발기구(UNIDO)의 제조업경쟁력 지수를 보면 스위스는 세계 6위다.한편 스위스는 남한의 절반보다 작은 나라이지만 1인당 국민소득은 약 8만달러로 세계 4위다. 이들은 과거의 요들송과 알프스에만 머물지 않고 하이디의 나라에서 하이테크의 나라로 변화했다. 이러한 스위스의 노력은 우리 전라북도에게는 시사 하는바가 크다. 전북은 국내의 대표적인 농업지역이다. 드넓은 지평선은 과거 풍요로움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스위스의 관광산업처럼 전북의 농업은 더 이상 전라북도의 미래일 수는 없었다. 산업화사회로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전북은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였다. 정치적 요인 등 다양한 외생변수도 작용했겠지만 미래를 철저하게 준비 못한 우리의 탓도 컸다. 반면, 창원, 울산, 구미, 안산, 여수, 인천 등 많은 지역이 산업도시로 탈바꿈했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전북도 산업화를 위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4만100ha에 이르는 새만금이 조성되고 있고, 77개 산업단지가 지정되었다. 여기에 국가식품클러스터가 익산에 새롭게 들어선다.산업입지의 공급뿐만 아니라 기업유치를 위한 노력도 열심이다. 지난 9년 동안 65개사의 굵직한 기업들을 수도권에서 전북으로 이전시켰다. 전국 지자체중 세 번째로 좋은 실적이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다. 기업이 원하는 입지환경 조성을 위해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한다. 기업지원기관의 유치에도 모두가 힘을 모아야 된다. 여기에 근로자들의 삶의 질을 높을 수 있는 고민도 빼놓아선 안 될 중요한 요소다. 전북은 무한한 성장잠재력가능성을 지녔다. 그리고 잘 발달된 사회간접자본 시설도 보유하고 있고 우수한 인재와 전국에서 가장 안정된 노사문화 등 좋은 투자유치 여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세계화의 진전에 따라 앞으로 우리 전북은 새로운 위협과 기회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다가오는 시대환경 변화를 전북은 슬기롭게 대처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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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5.02 23:02

축제의 계절을 맞이하여

4월과 5월은 전국 각지에서 갖가지 지역축제가 열린다. 봄꽃이 만발하고 따스한 햇살이 나들이 하기에 좋은 계절이기 때문에 이맘때 축제가 집중되는 것이리라. 그런데 문제는 대부분의 지역축제의 행사내용이 비슷비슷 하다는 것이다. 대동소이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된 축제가 여러 지역에서 한꺼번에 열리다 보니 외부 손님들을 끌어 들이는데 한계가 있다. 물론 모든 축제가 관광객을 염두에 둘 필요는 없다. 지역민들이 한데 모여 즐기면서 지역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동질성을 다지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예전 조상들이 봄·가을에 벌이는 마을 잔치들이 그러했을 것이다. 그러나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많은 외지 사람들이 찾아와서 보고 즐기면 지역경제에 훨씬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지역 축제에 적지 않은 예산이 소요 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서양의 축제를 보면 별별 희한한 프로그램들이 많다. 접시를 들고 달리거나 하이힐을 신고 달리기를 하기도 하고 어떤 곳은 도시 전체에 소를 풀어 놓고 사람들이 달아나는 놀이를 하기도 한다. 이런 축제들의 특징은 모든 사람들이 직접 참여해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지방마다 독특한 개성을 살려 축제를 관광 상품화 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지역축제는 인기가수를 초청해 노래자랑 대회를 하거나 OO미인선발대회, 어설픈 문화 행렬 등 행사를 개최하고 참여자들은 구경꾼에 그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먹거리에 있어서도 빈대떡, 족발, 해물파전 등 거기서 거기다. 그 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는 먹거리와 직접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이벤트를 제공해야 단순 관광객이 아닌 마니아층을 끌어 들일 수 있다. 브라질의 리우 카니발이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축제로 자리 잡게 된 것도 그곳에 가면 누구나 흥에 겨워 춤추고 즐길 수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보령 머드축제가 외국인들로부터 사랑받는 이유도 뒹굴며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경기도 가평의 자라섬에서 열리는 국제재즈페스티발도 외국인들과 젊은 층으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천혜의 자연경관과 어우러지는 여름밤의 재즈의 향연에 참석자의 95%가 다시 찾고 싶은 축제라고 반하는 것이다. 외국인들을 많이 유치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단지 방문객 수 때문이 아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의 라이프스타일이 국제화 되어 있어 외국인들이 흥미를 느낄 수 있어야 젊은 사람들도 끌어 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전통적인 사고로는 토마토 농사를 잘 지어서 농산물 시장에 내다 팔아야지 소중한 농산물을 가지고 서로 던지고 노는 것을 이해하기 힘들지만 지금은 토마토를 서로 던지고 온 몸이 토마토 범벅이 되는 놀이가 더 큰 부가가치를 가져다 줄 수 있다. 발상을 바꿔야 한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공무원의 머리에서 축제의 콘텐츠가 결정되면 젊은이들의 관심을 끌 수가 없다. 서울의 계동과 삼청동 지역에 걸쳐 있는 북촌이 외국인들에게 인기 관광지가 되고 있다. 전주 한옥마을도 관광객이 크게 늘고 있다는 소식이다. 북촌에는 올망졸망한 카페, 공방, 갤러리들이 자연발생적으로 모여들어 우리의 전통 한옥과 더불어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예술적인 안목이 있는 젊은 세대의 덕분이다. 전주 한옥마을도 공무원의 시각이 아닌 문화 예술인들이 저마다 개성을 살려 아기하게 꾸며 나가야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다. 물론 전통을 살려 나가면서 말이다. 전북의 각 시·군에서 개최하는 지역축제가 저마다 개성을 살려 연중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 관광전북의 견인차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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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4.25 23:02

친정이 잘 살아야

햇살이 참 좋고, 스치는 바람에도 봄 냄새가 느껴지는 지난달 재경 전북도민회 여성위원회 위원 40여명은 우리들의 고향 전북을 방문했다. 두근거림이 있고 아름답고 벅찬 고향 방문 길이었다. 고향집에 가면 그리운 부모님이 계시고 형제자매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연휴가 아닌 평일이라 더 여유롭고 멋진 여행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도청에 도착하니 '하나 되어 전북을 바꿉시다'라는 슬로건이 한 눈에 들어 왔다. '전라북도를 바꾸겠다.' '가난한 집 가장이 된 심정으로 전북경제를 살리겠다.' '전라북도를 가난에서 구할 수만 있다면 도둑질 빼고는 다 하겠다.'고 공언한 지사는 우리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도청 종합상황실에서 발전하는 전북의 모습을 홍보영상물을 통해 감명 깊게 보았다. 일자리를 원하는 도민들의 열망, 민생경제를 살려내라는 염원, 새만금 조기개발에 대한 꿈을 이루기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가장이 된 심정으로 앞장서서 일하는 지사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전북 도민의 한사람으로 그동안 고향을 위해 친정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 여성위원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전북 경제를 살리는 일에 도움이 되도록 고향 특산품을 적극적으로 구매하고 귀농·귀촌을 홍보해 인구를 모으는데 노력하겠다며 지역경제 활성화에 뜻을 함께 했다.가장 한국적인 글로벌 명문으로 도약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 전북대학교도 방문했다. 총장은 전북대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 성과를 낼 수 있는 좋은 여건을 조성하고 있으며 학생 교육 역시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 최고를 지향할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 우수한 연구 성과로 지역과 국가의 이름을 빛내고 한국을 대표하는 명문대학의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하고 있음을 영상물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오늘의 전북대가 반드시 '세계 100대 대학'으로 비상할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세계적 대학으로 웅비하는 모습을 보고 출향도민 한사람으로서 자랑스럽고 뿌듯했다.미소가 아름다운 전주시장과 붉은 장미송이로 우리들을 친절하게 맞이해 준 완산구청장의 안내를 받으며 완산구청 상황실에서 전주시 홍보영상물을 봤다. 21세기 지식경제시대에 부합하는 창의정신과 시대감각으로 신 성장 동력을 발굴·육성하고 있으며, 고품격 도시개발 전략으로 지역발전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는 전주시의 '불위호성(弗爲胡成-행동하지 않으면 어떤 일도 이루어지지 않는다.)'의 진념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100만 대도시를 향해 새롭게 웅비하는 전주가 되길 기대한다. 또한 여성위원들은 경제 살리기 도민회 직원들의 안내로 완주군 로컬 푸드 직매장을 방문해 지역 농·특산품을 한 아름씩 구입, 지역 경제도 살리고 고향 사랑을 실천하기도 했다. 우리들의 친정이 잘 살 수 있도록 열정과 사랑을 다해 불철주야 애쓰시는 여러 도민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300만 재경 전북인 모두가 하나 돼 고향발전에 힘을 실어준다면 어떠한 일이든 모두 이룰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어느 지역보다도 우리 전북이 잘 살아야 한다. 친정이 잘 살아야 한다. 친정이 잘 살아야 어디를 가든지 기를 펴고 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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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4.18 23:02

전통 문화와 첨단 기술을 비벼 내면

전주비빔밥에 들어가는 재료는 30여 가지나 된다고 한다. 각종 나물과 고기, 양념 등등…. 그런데 생각할수록 묘한 것이, 이들 재료가 어우러지면 하나하나 따로 먹을 때와는 또 다른 새로운 맛이 생겨난다. 그게 전주비빔밥이다. 이렇게 서로 다른 것들이 어우러져서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낼 때 우리는 이를 '융합'이라고 부른다. 융합은 반드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낸다는 측면에서 단순한 '결합'과는 구별된다. 융합은 이미 세상을 바꾸는 거대한 트렌드가 됐다. 휴대폰과 컴퓨터가 융합해 스마트폰을 만들어내더니 여기에 많은 기술과 서비스가 계속 융합해 새로운 무언가가 끊임없이 생겨나고 있다. 융합은 기술과 산업분야는 물론 학문, 예술, 사회, 문화 등 전 분야에 걸쳐 일어나고 있는 급속하고 보편적인 현상이다.하나의 문화가 다른 문화 또는 기술과 융합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내는 것도 드물지 않은 일이다. 슈렉, 라이온킹 등의 애니메이션으로 크게 흥행에 성공한 드림웍스의 창업자 제프리 카젠버그는 성공비결에 대해 "콘텐츠를 변화시킬 미래기술에 주목하고, 무엇보다 스토리가 중요하며 소비자를 상사(上司)로 여기는 것"이라고 했다. 인터넷을 강력한 전달 수단으로 보고 이를 잘 활용한 것도 크게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우리나라의 캐릭터 한류의 대표주자인 '뽀로로'는 초기 TV 방영물로 시작했으나, 3D 애니메이션이라는 첨단기술과 융합해 세계 120개국 어린의 사랑을 받으며 5조7000억 원의 경제효과를 냈다고 한다. 문화콘텐츠의 시대, 융합의 시대인 것이다.전북지역은 다양한 유·무형 문화가 살아있는 전통문화의 중심지이다. 전통가옥의 아름다운 선을 간직한 한옥을 비롯해 사군자와 산수화로 미술적 가치를 높인 합죽선, 고전 문양의 섬세함이 살아있는 옻칠공예가 대표적이다. 또한 오색 재료의 향연 전주비빔밥과 민족의 한과 얼이 담긴 대서사시 판소리까지 그 양과 질이 다른 어느 지역보다 뛰어난 명실 공히 문화예술의 본고장이다. 우리 고장의 아름다운 전통문화를 전 국민, 나아가 전 세계인과 공유하고 지역경제 발전으로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전통문화와 다른 문화 또는 첨단디지털 기술과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본다.예를 들어 판소리를 벨칸토 창법이나 재즈로 노래하면 어떨까. 오페라나 K-팝을 판소리 창법으로 부르면 어떨까. 판소리 다섯마당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는 것은 또 어떨까.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것들을 유튜브 등 SNS매체에 노출해 내·외국인들이 빠르고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이렇게 보다 창의적이고 다양한 시도가 필요하다고 본다. 문화와 문화, 문화와 IT기술이 융합된 콘텐츠산업 육성이야말로 지역경제 발전은 물론 국가성장에 기여하는 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파란 눈의 지구 반대편 소년·소녀들이 한국말로 된 노래를 따라 부르며 울고 웃는 모습은 그다지 놀랍지 않은 광경이다. 우리 고장의 아름답고 살아 숨 쉬는 전통문화가 첨단디지털 기술과 만나 문화융성의 구심점이 돼 주기를 기대해 본다. 전통문화와 첨단기술을 정교하게 비벼내면 새로운 먹거리 산업이 일어날 수 있다. 전주는 비빔밥의 본고장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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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4.11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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