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를 갖춘 리더인가?
얼마전 모일간지에 게재된 탤런트 최수종씨의 인터뷰기사를 읽고 적지 않은 감동을 받았다. 부인인 하희라씨는 물론이고, 14살, 13살짜리 두 아이에게도 존댓말을 사용하고 이름도 민서씨, 윤서씨라고 부른다고 한다. 또, 아이들에게 "공부해라, 이것해라."라고 강요하지 않고 뭐든지 아이들하고 상의를 해서 결정한단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부인과 어린 자녀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고 한 사람의 인격체로 인정한다는 것은 일상에서 말과 행동을 참으로 조신하게 한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세상살이라는 것이 사람과 관계를 맺고 부대끼며 살아가는 것일진대 살아오면서 내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고민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한자문화권에서 인간이해의 핵심은 인(仁)이다. 인의 개념이 어질고, 연민하며, 수양하고, 너그러운 마음등을 포괄하는 의미로 확장되었지만 본래 뜻은 두 사람이다. 즉, 사람 인(人) 둘 이(二) 모였으니 관계가 형성된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공자님은 인간관계를 다양한 방법으로 설명하지만, 그 중 으뜸은 자기가 하기 싫은 것은 남에게도 시키지 말라는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慾 勿施於人)'이다. 상대방이 싫어하는 일을 시킬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겠지만, 적어도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보자는 얘기다. 얼마전 IMF등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우리사회 도덕윤리의 기둥인 예(禮)의 본질을 수직적 상하관계로만 파악하고, 왕과 신하, 아버지와 아들, 남편과 아내, 선생님과 학생으로 나눠 규율하는 명령과 복종의 굴레를 없애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이 크게 주목받은 적이 있다. 예라는 형식의 껍데기를 벗어 던지고 인간에 대한 진정한 이해와 겸손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커피나 진통제 같은 순간적인 위로와 아름다운 말만으로 우리의 아픔과 상처를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는 없다.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문제의 본질에 가까이 다가서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서로 의지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사회의 속성을 인정하고 사태를 객관적으로 보자는 것이다. 우리보다 이 문제를 앞서 고민했던 선각자들의 성찰은 인간사회에서 제기되는 문제의 핵심을 '나'라고 파악했다.'너 자신을 알라'고 했고,'모든 만물은 너로 인해 존재한다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했으며, '개인적 삶에 충실한 연후에야 훌륭한 정치인이 될 수 있다고도 했다.공직자로서의 첫 보직이 구청 민방위과장이었다. 24명의 직원들 가운데 여직원만 한 살 아래고 나머지는 모두 연장자였다. 리더십이론을 열심히 공부했지만 현장에서 활용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물론, 공직생활을 시작하면서 관리자로서 나름의 생활철학을 마련했다. 첫째, 직원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목표와 비전을 제시할 것. 둘째, 직원들에게 존댓말을 쓰고 의견을 끝까지 들어 줄 것. 셋째, 솔직하고 공부하는 공무원이 될 것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 소박한 잣대로 재단하기엔 세상이 그렇게 녹녹치 않았고 하루해가 지면 오늘도 무사했구나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하루는 동향선배 한분이 '모르는 것을 아랫사람한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아라'라는 공자님말씀을 인용해서 조언해 주셨다. 이때부터 모르는 것은 완전히 이해될 때까지 물었다. 공자님은 '군주는 신하를 예를 갖추어 부리고 신하는 군주를 충성으로 섬긴다는 군사신이예신사군이충(君使臣以禮臣事君以忠)' 라고 했다. 아랫사람으로부터 마음에서 우러나는 충성을 기대하기 위해서는 왕이 먼저 예를 갖추어서 신하를 부려야 한다는 말이다. 내가 아랫사람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할지 이 구절에 비추어 다시 자문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