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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모’를 강요하지 마세요

김지윤 청춘부보상 홍보담당 얼마 전 강원도로 내일로 여행을 다녀왔다. 내일로 여행은 기차를 이용하여 전국 곳곳 여행을 다니는 것이다. 무궁화호, 새마을호를 포함한 ITX-청춘 등 KTX와 관광전용열차를 제외한 거의 모든 노선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전국 구석구석을 여행할 수 있었다. 내일로 티켓은 지정석이 없어 빈자리에 앉더라도 누군가 그 자리를 예매했다면 얼른 일어나 비켜줘야 하고, 카페칸에는 사람이 가득해 앉을 수 없을 때도 많다. 하지만 그마저도 경험이라고 여길 수 있을 정도로 좋은 사람들과 함께 즐긴 강원도의 낭만은 더 할 나위 없이 좋았다. 내일로 특성상 기차 외에도 버스나 택시를 많이 이용하게 된다. 묵호에서 저녁 식사 후 택시를 타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경상도 출신이셨던 택시기사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던 중 기사님께서 대학생들이 문제가 많다.며 현 시대의 대학생들에게 일침을 날리셨다. 기사님은 방학만 되면 놀러 다닐 생각을 하고 정치에 무관심한 청춘들을 안타까워하셨다. 우리에게 더 힘들어져서 위기를 느껴야한다고 하셨다. 예를 들어 반값 등록금을 하고 싶으면 한 달만 데모하면 된다고 하셨다. 정치인들이 서로 해주고 싶어 하지만 명분이 없어서 못해주고 있는 거란다. 한 번 해보면 그 다음엔 일자리를 만들어주려고 난리일 것이라며 이 나라는 대학생들이 이끌고 나가야한다고 말씀하셨다. 그 후에 들려주신 본인의 대학시절 데모 이야기를 듣는 중 친구가 요즘은 그러다가 잡히면 취업 못하잖아요.라며 입을 뗐다. 그러나 기사님은 사람은 다 쓸모가 있다.며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는 꼴이라고 강하게 말씀하셨다. 여행이 끝난 후에도 그 기사님의 말씀이 계속해서 맴돌았다. 나를 포함한 현시대의 대학생들은 정말 권리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밥상을 차려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걸까? 그렇다면 왜 그렇게 된 것이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고민들을 하다가 문득 그 시절의 데모와 반값 등록금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사님이 대학생이셨던 시절의 데모는 불합리한 정부에 대한 시위였다면, 반값 등록금시위는 더 많은 혜택을 바라는 시위이기 때문이다. 더 많은 혜택이 필요 없어서 데모를 하지 않겠다는 건 아니다. 불과 몇 년 전 이화여대 학생들은 최순실 게이트에 기름을 부었다. 우리도 불합리한 공권력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낼 줄 안다는 것이다. 뉴스를 보지 않는다고 해서 무관심하다고 할 수 있을까. 오히려 어른들이 청년들을 값어치 있다고 여기지 않고 그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작년부터 내일로 여행 중 코레일 앱이 실행되지 않아 큰 불편함을 겪었다. App Store에 들어가 보니 나와 같은 사람들의 이용후기가 정말 많았다.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부분이 고쳐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크게 실망했었다. 그러나 역마다 여행자센터에서는 서로의 QR코드를 찍게 하고, 카카오톡 플러스 친구를 추가하게 하는 등 이익을 챙기는 데에만 급급했다. 이렇게 데모를 겪어 왔다는 어른들이 대학생들의 이런 사소한 목소리에도 귀기울여주기는커녕 대학생들을 이용해 이익을 얻으려만 하는데 어떤 값어치를 느끼고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단 말인가. 그 시절의 대학은 지식인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래서 대학생들의 시위는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아무나 마음만 먹으면 대학에 갈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시대가 변했다. 그 시절의 대학생들이 변화시킨 대한민국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다. 그 힘들었던 시절 본인들의 대학생활을 우리가 반복하길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런 꼰대같은 말들은 더 이상 우리에게 어떤 열정도 느끼게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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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3.17 19:45

적당히 벌고, 잘사는 사회

김지연 문화기획자 불과 몇 년 전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이 열풍이었을 때가 있었습니다. 인기가 많은 책이면서도 일부 언론, 사람들 사이에서는 조롱거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에서는 책 제목과 일부 내용을 언급하며 아프면 환자지 무슨 청춘이냐 라고 통쾌한 이야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들 하고, 열심히 열정적으로 일하다 보면 분명 얻는 것도 많고, 그러다 보면 먼 미래를 준비할 수 있게 된다고들 이야기합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저도 대학졸업 후 다녔던 첫 직장에서 5년 동안 근무하면서 나름 청춘을 바쳤습니다. 칼퇴근을 포기하면서 야근에 숙박에 몸과 마음이 힘들 때가 많이 있었지만, 저의 선택이었습니다. 직장을 그만두며 생각해보니 정말 열심히 했기에 전혀 후회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5년이라는 어찌 보면 짧은 시간을 보내고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는 것이 참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했습니다. 왜 우리는 적당히 일할 수 없는 것일까. 적당히라는 말은 대충이라는 말과는 다른데 왠지 같은 어감으로 느껴져서일까요. 선택과 집중을 통해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의 목표와 가치를 분명히 하고 나의 생활이 가능한 만큼 벌고, 휴식과 나의 시간을 즐기는 것. 전주 청년몰의 초기 슬로건이었던 적당히 벌고 잘살자 이 말이 전 정말 많이 와닿았습니다. 일과 삶을 분리할 것인가 말 것인가와는 별개로 말입니다. 각자가 하는 일에 좀 더 집중하고 오래 유지할 수 있으려면 위와 같은 조절이 더욱 필요해 보이지만 야근이 익숙한 우리나라는 참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갑자기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여행을 떠나거나 휴식을 취하거나 창업을 하는 청년들도 늘어나고 있구요. 조직 내에서 이런 이유들로 선배들과 충돌하는 이야기도 종종 듣습니다. 선배의 말이 이해가 가면서도 몇 년, 몇십년 전과는 많이 달라진 환경이기에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나 때는 말이야~, 원래 다 그런거야와 같은 이야기들은 더이상 할 말을 없게 만듭니다. 저는 혼자 일을 하면서도 적당히 벌고 잘살자라는 말을 항상 생각합니다. 그래야 애초에 내가 꽃일을 시작한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으며, 더 오래 이 일을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욱 정신을 바짝 차려서 집중하고 선택하고 준비하게 됩니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만큼 일하려고 하고 그렇기에 스스로 내 몸을 챙기게 됩니다. 혼자여서 가능한 것일까요? 이제는 서서히 조직 내에서도 이런 적당히, 선택과 집중의 문화가 많이 퍼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본인의 일을 더 사랑하고 오래 일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너무 힘들어서, 나와 내 가족을 챙기지 못해서 직장을 떠나는 일이 줄어들길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직의 최고경영자와 중간관리자들의 마인드 변화가 필요합니다. 청춘이기에 열정적으로 해야 한다는 당연한 마음과, 본인이 그 시절 분리하지 않았던 삶과 일의 경계를 주입시키지 않아야 합니다. 청춘의 열정과 잘 하고 싶은 마음을 먼저 봐주고, 나 때와는 다른 부분의 지적 보다는 잘 할 수 있다는 지지와 격려도 필요합니다. 일하는 시간이 길어야 일을 잘 하는 것으로 비춰지는 사회가 아닌 정말 선택과 집중을 잘 할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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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3.10 20:01

우리는 어떤 여행을 떠나는가?

김현두 여행작가 얼마 전 우연히 여수관광, 위기를 예감한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우연히 본 기사에서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관광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푸른 바다와 오동도, 이순신, 엑스포, 심지어 KTX노선까지 이렇게 수많은 교통 관광인프라가 있는 여수도 관광객이 감소추세라고 한다.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요인들은 다양하겠지만, 계절마다 진행하는 축제들도 한 몫 하고 있다. 봄이 성큼 찾아 온 요즘 본격적으로 예열을 준비하는 여행객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과연 여행자들에게 내가 사는 지역을 만나게 해줄 준비가 되어있을까? 서른 이후 떠난 어느 여행에서 지리산을 벗 삼아 살아온 한 여행자가 내게 이런 말을 들려준 적이 있었다. 지리산에는 세 부류의 사람이 산다. 지리산을 팔아먹는 사람, 지리산을 짝사랑하는 사람, 지리산과 함께 하는 사람이 있다고 말이다. 지리산은 수십 년 동안 많은 지자체들의 경계에 걸친 채 과거나 현재에도 여전히 가장 큰 관광 인프라가 되어주고 있다. 계속해서 내가 사는 곳을 기준으로 글을 써보려 한다. 진안은 마이산이 모든 관광의 구심점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관광객의 유입도 줄어들고 지자체마다 치열한 관광객유치 경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지자체 마다 SNS에 산발적으로 축제를 나열하고, 영화 같은 홍보를 찾아 떠나왔지만 결국 속빈강정처럼 후회를 안기는 모습을 자주 본다. 홍보예산은 급증하지만 새로운 경쟁력은 글쎄 잘 모르겠다. 그렇다면 무엇이 경쟁력을 길러 줄 수 있을까? 나는 사람이 그 몫을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새로운 여행의 패러다임을 인정해야 하는 시점이다. 마이산만이 아닌 진안을 대표 할 공간과 사람을 발굴해야 한다. 가위박물관에는 가위만 있을 뿐 이다. 케이블카는 머무는 여행이 아니라. 오히려 인근 여행지로 더 빨리 여행객을 유출하는 수단이 될 것이다. 수년 전 지자체마다 명산에 구름다리를 놓고 몰려들었던 수많은 등산객들, 하지만 그 인기는 몇 해 가지 못했다. 구름다리 하나를 만나러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왔었지만 그들이 머물 공간도 이야기도 부족했던 탓이다. 진안에는 모래재라는 옛 길이 하나있다. 채 500m 도 안되는 메타세콰이어길에 주말이면 많은 이들이 찾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길 만으로 끝나서 는 안 된다. 이 모든 것들의 시작과 끝에 사람이 살고 향기 나는 공간들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한 농부가 생산한 농산물로 만든 음식을 먹기 위해 떠나는 사람들, 한옥마을에 즐비한 멋스럽고 고즈넉한 식당은 아니지만, 농부와 쉐프의 이야기를 먹고 즐기는 것이다. 그 한 끼의 식사를 찾아 떠나게 하는 힘을 가지자는 것이다. 오직, 마이산을 오기위해 진안을 오는 시대는 미안하지만 이제 끝났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누구의 밥 한 끼를 먹기 위해, 누구의 파스타 한 접시를 먹기 위해, 농부의 고구마를 사기 위해, 어느 카페를 찾아 그렇게 멋진 사람을 먹고 마시기 위한 여행, 누군가의 공간을 만나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시대가 온 것이다. 그런데 그곳에 마이산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야말로 마이산이 계속해서 사랑받을 수 있는 방법이며, 마이산이 여전히 우리 곁에 그대로 머문다는 것은 가장 큰 관광자원이고 큰 힘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공간이 가진 힘 그리고 그 공간을 채울 이야기들을 찾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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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3.03 19:36

부모 돌봄이란 무엇인가?

소해진 사회복지사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이라면 부모 돌봄을 했거나, 하고 있거나, 할 예정일 것이다. 물론 다른 사정이 있을 수 있다. 나 또한 부모 돌봄을 경험한 적이 있다. 아버지가 치매로 쓰러지신 후부터 임종까지 돌봄을 했다. 이런 경험은 사적이면서도,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공적이다. 2017년 우리나라는 노인이 전체 인구의 14%를 웃도는 고령사회에 진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막상 노인 돌봄 당사자가 겪는 고충, 갈등, 해결 방법을 듣기는 쉽지 않다. 지난 2월 16일 여성생활문화공간비비협동조합에서 주관한 비혼 여성, 부모 돌봄을 말하다라는 주제로 부모 돌봄 당사자가 사례 발표를 했다. 나는 이 자리에 사례 발표자로 참여하였다. 당시 현장의 참여자들은 20여 명이었고, 열기는 뜨거웠다. 사례 발표는 크게 3가지였는데, 일과 돌봄의 양립/ 독박 돌봄, 전업(재가) 돌봄/ 노인 요양기관 이용이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언니가 있어 돌봄 노동을 적절히 분배했지만, 다른 두 명의 사례 발표자는 오빠가 있음에도 도움을 거의 받지 못한 채 독박 돌봄하고 있었다. 한 참여자의 질문, 저는 남동생이랑 멀리 떨어져 있는데 동생은 돈만 주고 제가 다 처리하거든요. 앞으로 동생이랑 어떻게 부모 돌봄을 나눌 수 있을까요? 서로 전화로 대화하면 감정이 상할 수 있어요. 카톡으로 했던 일을 공유하고 해야 할 일에 대한 도움을 요청하는 방법이 좋아요라고 사회자의 깨알 팁을 나누자, 탄성을 터뜨리며 좋은 해결책이라고 입을 모았다. 비혼 여성이 돌봄을 하는 경우 돌봄 노동에 대한 평가 절하뿐만 아니라 또 다른 낙인이 존재한다. 네가 시집도 안 가고 쯧쯧쯧 느 오매를 모시고 살아서 쯧쯧쯧 사례 발표자가 동네 어르신한테 들었던 말이다. 사람 구실도 못하는 것이라고 동정하거나, 부모를 돌보고 있음에도 역으로 부모한테 의지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비혼 여성은 자녀 세대의 돌봄 분배에 있어, 1순위임에도 이들을 보는 편견은 강고하다. 그 사이 국가 차원에서는 여성의 노동력을 값싸게 쓸 수 있다는 점에서 커다란 이득을 보고 있다. 이 자리에 참여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부모 돌봄을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다행이다라고 했다. 가족한테 털어놓았을 때, 부담스러워하거나 책임의 문제로 돌아가기 때문에 말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홀로 떠안는 괴로움과 분노, 부모와 일상을 보내며 느껴지는 친밀감과 애정, 인간의 쇠락을 지켜보는 슬픔과 비애 등 복잡한 감정을 나누었다. 부모 돌봄을 하며 겪는 가장 큰 고통은 경력 단절, 소득 감소, 신체적인 고통 있지만 상대적 박탈감과 심리적 고립감이 크다. 한국보다 앞서 고령사회를 겪었던 일본은 가족회라는 자조 모임이 전국에 3만 개나 될 정도로 활성화되어있지만 우리나라는 개개인 경험으로 국한되어 있다. 정부가 2017년부터 치매 국가 책임제를 주요 국정과제로 시행하고 있다. 노인 돌봄을 국가적 의제로 설정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지만, 여러 문제 또한 산적해있다. 무엇보다 돌봄 노동에 대한 재평가를 바탕으로 하여 제도를 점검해 볼 일이다. 우리의 모든 삶은 누군가의 돌봄을 통해 지금 여기 존재한다. 아프거나 아프지 않을 때와 상관없이 일상의 삶은 돌봄으로 채워져 있고, 그 역할이 특정인에게 쏠리지 않도록 감정과 물리적 자원을 분배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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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2.24 18:35

도마뱀이 되지 말기를

김지윤 청춘부보상 홍보담당 개강을 앞둔 요즘, 휴학생으로 보냈던 지난 한 해를 돌아봤다. 참 많은 새로운 것들에 도전했고,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때로는 지치고 때로는 포기하고 싶었지만 나를 재충전해주는 것들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 나를 힘나게 하는 여러 가지 것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 가장 힘이 되는 것은 여행이다. 어렸을 적 여행작가를 꿈꾸기도 했다. 여행은 떠나기 전부터 그 여행이 끝나고 한참의 시간이 흐르도록 설렘에서 추억에 이르기까지 큰 힘이 되어준다. 그래서 나는 여행이 좋다. 여행은 많은 것들을 배우고 느끼게 해준다. 내가 여행을 하면서 배운 가장 중요한 것은 세상에 많은 다른 사람들이 있을 뿐, 열등한 사람들은 없다는 것이었다. 다른 나라에 대한 편견이 없어졌고,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는 곳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곳은 어떻게 찾아가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사실 어렸을 적 유럽여행에서 나는 인종차별을 몸소 느꼈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나 역시 중국이나 동남아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 편견은 중국 교환학생 시절 경찰도 찾지 못했던 택시에 두고 내린 내 가방을 룸메이트의 아버지가 찾아줬을 때, 베트남의 바닷길에서 자전거 사고가 났을 적 길가의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았을 때, 또 라오스의 다리에서 오토바이 사고가 났을 적 호텔 직원의 도움을 받았을 때 이미 완전히 사라졌다. 자유여행을 통해 얻은 경험들과 소중한 추억들은 내가 어떤 일에 도전할 때 두려움을 갖지 않도록 했다. 그래서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편이고, 새로운 것들을 좋아하는 편이다. 무엇이든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은 내 소중한 여행 덕분이다. 일상을 빛나고 힘차게 만들어 주는 것은 나에겐 여행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또 다른 어떤 소중한 것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이라는 벽 앞에 사정없이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누군가의 꿈, 친구, 가족, 운동, 사랑 등 수많은 것들이 있다. 나는 결코 그것들을 포기한 채 현실에만 열중해서는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일, 꿈꾸는 일을 통해 무엇이든 배우고, 경험하며 얻는 것들이 반드시 일상에 돌아왔을 때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그런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과 많은 차이가 날 것이다. 도마뱀은 생명에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자신의 꼬리를 끊고 도망간다. 꼬리를 끊어냄으로써 자신에게 위협을 가하는 존재의 시선을 분산시키고, 그 순간 멀리 도망가는 것이다. 도마뱀의 꼬리는 재생이 가능하지만, 이런 점이 결코 다행인 것은 아니다. 꼬리재생에 많은 에너지를 집중시켜야 하므로 다른 신체 성장과 생식 활동 등을 멈춰야하고, 꼬리를 완전히 재생했다고 하더라도 기존에 가졌던 꼬리와는 모양과 구조 등이 달라진다. 모양은 볼품없어지고, 뼈 없이 힘줄만이 남는다. 그리고 한 번 재생된 꼬리는 다시는 재생할 수 없다. 무엇보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꼬리의 역할이 막중하다. 몸의 균형을 잡아주고, 구애와 짝짓기에도 이용하며, 에너지를 저장하는 창고로도 사용하기도 한다. 이렇게 소중한 꼬리를 끊어내면 재생된 이후에도 기존 기능의 일부만 보존할 수 있다. 그런데도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소중한 꼬리를 끊고 도망가는 선택을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도마뱀 같은 선택을 하는 것 같다. 도마뱀처럼 생명이 위험한 상황에서는 정말 소중한 것을 포기해가며 다른 어떤 것을 선택할 수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면 도마뱀 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 정말 나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어떤 일을 해야 내가 힘이 나고 추진력이 생기는지 고민해보고 실천했으면 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만큼 많은 것을 배우고 지친 일상을 깨워주는 건 없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여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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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2.17 18:56

남이 아닌, 나에게 좋은 직업을 선택할 권리

김지연 문화기획자 설 연휴 오랜만에 친구들과 만나 잠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다가 최근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새로운 직장을 구하고 첫 출근을 앞두고 나눈 이야기. 직원이 친구 한 명 뿐이라 부담과 걱정도 되지만, 본인이 생각하는 방향으로 자율적이고 도전적으로 일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선택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직업적 가치에 대한 부분을 이야기하게 되었죠. 아주 예전부터 직업적 가치에 대해 관심이 많고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친구와 그런 대화를 나누는 순간 저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할 일이지만 생계와 연결된 직업이다 보니 직업적 가치관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하는 것은 낭비가 되어버렸는지도 모릅니다. 어렸을 때부터 수없이 들어온 장래희망, 진로, 꿈의 질문들. 이런 질문의 대답은 직업이 됩니다. 성인이 된 이후 학교 대신 직장을 다니며 생계를 유지하고 소속감을 느끼며, 사회적인 역할을 수행하면서 살아가니 직업은 우리 인생에 있어 정말 중요한 부분이죠. 하지만 위 질문의 대답은 단순히 직업으로만 작성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입니다. 직업을 생각하기 이전에 어떤 어른이 될 것인가,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직업을 가지고 어떤 것들을 이루면서 살아갈 것인가와 같은 고민들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청소년기에 이런 질문들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나 물음을 던져주는 어른이 얼마나 있을까요. 좋은 직업을 가져야 돈을 많이 벌고, 명예롭고, 존경받고 잘 산다는 이야기, 그러니깐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을 받아야 한다고, 다 너를 위해서 그러는 거라고들 합니다. 그런데 정작 힘들게 청소년기를 보내고 청년이 되면 혼란스럽습니다. 대학교를 다니긴 하는데 이게 정작 나한테 맞는건지 모르겠고, 어떻게 내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어렵기만 합니다. 뉴스에서는 어려운 취업난에 대해 떠들어대고, 어른들이 말하는 좋은 직업(임금이 높고, 복지도 좋고, 인정 받는)을 가지기 위해서는 작은 고시원에 박혀 더 노력하고 공부해야합니다. 정작 내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어떤 직업을 선택해야 내가 행복하게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은 저 멀리 둔 채,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낭비처럼 느껴지게 말입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 자신이 선택한 일을 하는 사람을 보면 빛이 납니다. 매일이 행복하고 좋을수 만은 없지만, 적어도 직업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적이 있기에 도전하고, 기대하고 가끔 벅차오르기도 합니다. 우리는 남이 아닌, 나에게 좋은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창직할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남들과 다르다고, 남들이 가는 길로만 가야한다고 강요받아서도 안되며, 남들보다 느리다고 비난받아서도 안됩니다. 청년사춘기의 시간을 보내며 삶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고 직업 가치관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시간과 여유를 존중해주세요. 직장 어디 다니냐, 얼마 버냐 라는 질문보다는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청년기를 보내고 있는지에 대해 질문해주세요. 이제는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직업이 아닌 나에게 좋은, 가치 있는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청년들이 더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더 이상 뉴스에서 직업적 가치가 전혀 없는 사람들의 구속 소식에 혀를 내치며 안타까워하지 않도록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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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2.10 18:39

비혼을 선택한 이유는 딱히 없습니다만

소해진 사회복지사 내 나이 30대 중반, 주변에서 하는 소리들이 있다. 자기는 언제 결혼해? 부모님한테 효도해야지. 나중에 가면 생각이 바뀌어 결혼 안한 여자들은 이기적이야. 저는 비혼입니다.라고 말했을 때 원색적이거나 애정으로 포장한 비난은 끝이 없다. 직접 대항해 몇 번 얘기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결혼을 디폴트(기본값)으로 놓고, 모든 사람의 삶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공적인 자리나 직책이 있는 사람한테는 차별적 발언이라고 알려주지만, 보통은 상대와 거리를 두려고 노력한다. 내 정신 건강을 위해서 말이다. 2000년대 초반 비혼이라는 말이 태어나기 전에 쓰였던 대표적인 명사는 미혼이다. 결혼해야 하는데, 아직 못했다는 뜻이다. 사실 결혼 이외에도 내가 아직 못한 것은 수두룩하다. 세계 일주, 영어 마스터, 세기의 사랑, 비혼 여성 노인 공동체 만들기 등. 왜 유독 생애 주기 과업으로 결혼만이 부각되는 걸까? 2000년대부터 저출산 문제가 심각해졌는데, 비혼이 자주 뭇매를 맞고 있다. 자녀를 원하는 이들의 한결같은 이야기는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는 것이다. 독박 육아, 유치원 대란, 아동 성폭력, 결혼 밖 출산에 대한 낙인, 안전하지 않은 사회. 그 모든 사회적 비용을 비혼에게 요구하는 것은 안일하고 치졸한 방법이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혼자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 번은 늦은 새벽, 누군가 현관문 번호 키를 미친 듯이 눌러댔는데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 행여 내가 여자인 게 들통나면 더욱 위험해질까 봐, 술 취한 아저씨가 어서 사라지기를 소망했을 뿐이다. 내 주변 지인들에게 털어놓았을 때, 바로 경비실에 연락하라며 대처 방법을 알려주었다. 하지만 그 때 가장 힘들었던 것은 나를 통째로 압도했던 공포감이었다. 성폭력 피해자에게 왜 저항하지 못했냐고 묻는 것은 그 공포감을 1도 몰라서 하는 얘기다. 그러니까, 결혼해야지! 혼자 살면 무섭잖아.라고 채근할 것 같은 당신. 이진송 작가의 말처럼 우리 사회 안전 비용을 남편에게 아웃소싱하는 게 가능한 걸까? 그것은 불가능할뿐더러(성폭력 범죄자의 80%가 아는 사람) 바람직하지도 않다. 혼자 살든, 둘이 살든, 그것과 상관없이 안전은 사회적 시스템의 문제다. 비혼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딱히 없다. 누군가와 결합보다 나를 돌보고, 키우는 것에 더 관심이 많다. 게다가 한국 사회에서 결혼한 여성들의 삶이 행복해 보이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엄마, 아내, 며느리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포기하는 일이 다반사다. 한마디로 결혼은 손해 보는 장사! 엄마처럼 살지 않겠어!라고 다짐한 딸의 세대인 나는 불행의 자장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겠으나 굳이 그런 결심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냥 나답게 살고 싶을 뿐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1인 가구는 2016년 기준 539만 8000가구다. 1인 가구 비중이 30%에 육박했다. 인구 고령화와 더불어 N포 세대의 좌절로써 결혼을 포기하는 세태도 반영됐지만, 우리와 비슷한 일본을 보더라도 4인 가구 체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결혼이 필수가 아닌 옵션이 되는 사회, 누구와 함께 사느냐는 자격의 문제보다 함께 산다는 것의 의미로서 타인과의 친밀성, 책임감, 돌봄 같은 덕목이 중요해지는 사회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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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1.27 19:21

청춘의 값으로

김지윤 청춘부보상 홍보담당 소중한 것들을 포기한 채 어떤 일에 열중해본 경험이 있다. 많은 것들을 잃었지만 또 많은 것들을 얻었다. 정말 하고 싶었던 활동도, 소중한 사람도 나를 스쳐갔지만 이따금 성장한 나도, 또 다른 소중한 사람도 얻을 수 있었다. 유난히 추웠던 지난겨울 나는 청춘부보상에 겁 없이 뛰어들었다. 청춘부보상은 전북지역 청년들이 운영하는 비영리단체이다. 사회적 기업의 물품을 전국의 온 지역에서 발로 뛰며 세일즈 하고, 그 금액의 일부만으로 숙식을 해결해 기부금을 조성한다. 그렇게 모인 기부금은 도움이 필요한 지역 기관의 햇살이 되고, 그 활동 자체만으로도 사회적 경제조직의 활성화를 가져다준다. 청춘 부보상의 기획단들은 3개월 동안 대장정을 기획하고 100여명의 대원들을 이끌게 된다. 나는 그런 청춘부보상의 기획단이었다. 일주일간의 대장정을 위해 3개월을 고생도 사서 하는 젊음으로, 돌도 씹어 먹는 패기로 달려왔다. 그렇게 온 열정을 바친 대장정엔 웃음도, 눈물도 많았다. 씻는 시간도, 화장하는 시간도 아까웠다. 나를 믿고 따라 온 대원들을 보니 더 잘하고 싶었다. 매일 밤 기획단들의 방에는 불이 꺼질 날이 없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마음대로 되지는 않았다. 속이 상해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래도 힘이 됐던 건 우리였다. 혼자였다면 절대 하지 못했을 일들이었다. 함께라서 때로는 쓰라렸고 때로는 뿌듯했다. 우린 그렇게 청춘의 값으로 하나씩 극복해나갔고 서로가 참 힘이 됐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나의 소중했던 1년이 꽉 채워진 듯한 활동이었다. 청춘부보상은 2012년 시작된 1기부터 1년에 두 번, 여름과 겨울 대장정을 떠난다. 10기 겨울 대장정의 기획단이었던 나는 1년이 지난 지금 12기의 운영단이 되었다. 정말 많은 지원서를 봤다. 기획단이든 대원이든 청춘부보상의 문을 두드리는 많은 사람들은 하고 싶었던 것들을 포기하기도, 여행을 미루기도 하면서 찾아온다. 몇 년 전부터 모집 기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도, 청춘부보상을 위해 취업을 잠시 미루던 사람도 있었다. 왜 이 사람들은 이렇게까지 모든 걸 바치는지 궁금했다. 도대체 취업의 문턱을 넘기도 벅찬 청춘들에게 청춘부보상은 무슨 의미일까? 그것이 바로 청춘부보상의 발걸음이 계속되는 이유이고, 그것이 바로 청춘이다. 그들의 도전엔 이유가 없다. 더 많은 것들을 경험해보고 더 성장하고 싶은 청춘만이 있을 뿐이다. 언제부턴가 마냥 즐겁던 나의 하루에 현실이라는 그림자가 드리워졌고, 짧아진 하루가 마음을 점점 조급하게 했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게 겁이 나기 시작했다. 세상을 너무 많이 알게 된 탓인지 아니면 한치도 모르는 탓인지 고민이 됐다. 지금 청춘은 그렇다. 경험은 하고 싶지만 현실은 조급하다. 그래서 많은 것들을 포기한 채 새로운 도전으로 향한다. 사회적 경제조직의 활성화를 위한 활동이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이어가는 것은 청춘들만이 할 수 있는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청춘의 도전은 응원 받아야 마땅하다. 청춘의 값으로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는 건 아니다. 그 값을 흔쾌히 지불한 청춘들에게 고난이란 나무엔 행복이란 열매가 반드시 열린다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 청춘의 한 계절을 바쳐 지역을 위해 안간힘을 쓰는 청춘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며 그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 본다. 하고 있는 게 맞는 지도 모른 채 뒷걸음질 치지 못해 앞으로 나아가는 청춘들에게 너무나 잘 가고 있다고 말해주길 바란다. Everythings gonna be al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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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1.20 18:19

청년, 로컬 지향의 시대

김지연 문화기획자 전주에서 태어나 군산으로 대학교를 오게 되면서 자연스레 취업도 하고 창업도 하게 됐습니다. 5년의 직장생활과 3년의 매장운영을 하면서 자연스레 지역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역에 머물고 있는, 지역으로 다시 돌아오는 청년들에 대해서도 말입니다. 심지어는 군산에 연고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여행을 왔다가 이 곳에 자리를 잡고 창업을 하는 경우도 꽤 있습니다. 물론 큰 지역이나 도시로 떠나고 싶은 청년들이 더 많이 있겠지만, 요즘은 자신의 고향이나 자신이 매력을 느끼는 작은 지역으로 와서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청년들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처럼 지역, 지방에 와서 새롭게 시작하는 것을 고민하면서 쉽지 않은 선택을 하는 청년들의 움직임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작년, 동네 서점에서 로컬 지향의 시대라는 책을 발견하고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에 구입했습니다. 일본의 사례들을 보며 현재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습과 닮은 부분이 있다는 생각을 하며 공감했습니다. 큰 도시로 젊은세대들이 많이 떠나면서 남겨진 작은 지역이나 마을에 다시 청년들이 들어오면서 변화된 이야기와 사례들을 보며 최근 몇 년 사이 느끼는 우리나라 청년들의 움직임과 비슷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청년들이 지역에서 머물거나 다시 돌아오는 움직임이 단순한 이유는 아니겠지요. 큰 도시로 가게 될 경우 그만큼 많이 경쟁해야 하고 치열하게 살아나가야 한다는 부분이 큰 것 같습니다. 나와의 경쟁보다는 남과 경쟁해야 한다는 생각과 그 안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이 더욱 큰 부담을 주기도 합니다. 경제적인 부분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지역에서는 상대적으로 적은 금액으로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좀 더 자신의 가치와 목적을 담은 일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여기서 가장 큰 매력을 느낍니다. 청년들이 로컬을 지향하면서 생겨나는 매력적인 공간과 주인을 닮은 매장들. 그 안에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지역에 머물게 된 이야기, 지역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 이야기, 익숙하지 않은 지역에서 자리 잡게 된 이야기 등. 어느 지역 구석에 있지만 찾아서 가고 싶게 만드는 힘 말입니다. 제가 지역을 여행할 때 크게 중점을 두고 보는 것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조금 불편한 점은 있습니다. 자신의 가치과 목적을 중심으로 혼자 운영하다보면 매일 똑같은 운영시간이 아닐 수도, 갑작스러운 휴무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기존에 있던 주변 어르신들은 청년들을 게으르다, 베짱이 같다 라고 말하는 경우를 종종 듣기도 합니다. 새벽 같이 문을 열고 하루종일 땀 흘리며 일하고, 늦은 시간에 문을 닫았던 어르신들의 세상에서는 이해가 어려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아침 일찍 문을 열고 저녁 늦게 문을 닫지는 않지만 일을 하는 시간 만큼은 집중하고 고민하고 지역까지 찾아와주는 사람과 소통합니다. 직접 소통과 SNS를 통한 간접 소통도 합니다. 도시에서 느꼈던 물리적인 치열함과 경쟁이 아닌, 정서적인 치열함과 나와의 경쟁을 통해 스스로 성장하기도 합니다. 저는 청년이라는 시간을 나와 내 주변 사람들에게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지역에서 보내고 있는 것이 참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더 많은 청년들이 지역을 지향하길, 더 멋진 로컬 지향의 시대를 우리나라 청년들이 만들어가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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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1.13 18:38

더 이상 새만금에 바칠 청년의 미래는 없다

김현두 여행작가 전라북도에 살아가면서 새만금을 볼모로 허비 할 시간 따위는 더욱 없을 것이다. 촛불의 힘으로 무너진 정권 그리고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서 화두로 떠오르는 게 있다면 바로 청년이지 않을까? 싶다. 선거 때면 청년단체들을 만나고 지자체마다 청년관련 사업을 내세우고 있지만, 청년은 언제나 세상의 관심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투표를 행사 하지 않는 세대로 낙인찍히고, 여전히 정치에 대해 무관심하게 지내는 세대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청년들에게 닥친 문제들을 모두 청년들의 탓으로 돌리기에는 지금 세상이 과연 공정한 기회를 청년에게 주고 있는가? 라는 반문을 하고 싶다. 청년세대들도 대통령탄핵과 그 속에서 만난 촛불의 역사를 통해 스스로 정치에 대한 생각들도 진지하게 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전라북도에서 청년의 흔적을 찾아보고자한다면 무엇이 있을까? 전라북도 청년정책포럼4H지자체 마다 하나 둘 씩 들어서는 청년몰그 중에서 청년몰은 어느 날부터 관광 난개발 못지않게 지자체들이 서로 나서서 난 발되는 사업이 되고 있다. 충분한 고민과 지역 상권에 대한 이해 없이 청년들답게 험지로 내 몰고 있는 것은 아닌지도 모르겠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들에게 잊혀 진 공간과 지역에 들어가 청년의 그 무엇(알 수 없는)으로 그 곳을 살려내라고 말하는 것이다. 예) 상권과의 분리, 교통 불편, 또는 지역의 색깔이나 청년들의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는 예산분배식의 청년몰(청년정책)이 너무 많다. 중앙정부의 청년예산을 지자체에서는 가져다 쓰는 것에 급급할 때 가 있다. 그렇다보니 건물을 짓거나 리 모델링을 하는 식의 보여 지는 정책투자들이 난무하고, 프로그램이나 컨텐츠에 쏟아야 할 예산이 터무니없이 부족하게 된다. 아무리 많은 예산을 가져다 준 들 고민 없고, 준비 없이 어떻게 그 예산을 쓸 수 있나? 그렇게 사용되면 그 예산은 휴지조각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새만금을 우리의 미래라고 생각하지 않는 세대이다. 선거 철 마다 정치권에서 내뱉는 새만금 정책들은 청년이 생각하는 전북의 미래가 아니다. 우리는 전라북도에 남은 루저가 아니라 내 고향을 사랑하고 지켜내는 청년으로서 전라북도를 바라보고싶다. 재정자립도의 수준이나 인구의 규모로 내가 있는 곳을 평가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내 삶의 주인공으로 진짜가 되어서 살고 싶다. 세상에 실패하고 싶어 안달 난 사람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주겠다는 헛된 약속 따위는 청년들에게 하지 않기를 조심스레 바래본다. 청년들이 원하는 것은 어쩌면 안정적인 주거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일 수도 있다. 여기서 다시 주거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고민하는 여러 활동가들이 생겨나고 그 활동가들이 하는 일들이 새로운 직업의 분류로 인정되면 어떨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일상에서 고민과 문제를 풀어내는 리빙랩처럼 직업의 다양성을 인정하며 접근하고, 지자체는 정책적으로나 물질적으로 도와준다면 그 곳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일이 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한마디로 다양성을 가지고 도전하는 청년들에게 아낌없이 도움을 주자는 것이다. 더 이상 청년은 아프니까 청춘일수 만은 없는 일이다. 청년의 시선과 생각으로 삶의 터전을 만들어 갈 때 전라북도를 떠나라라는 말 보다는 너의 오늘을 응원해! 너의 도전을 지지해! 이렇게 안부를 물어주는 당신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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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1.06 19:20

소수지만 확실한 디딤판이 될 당사자를 위한 전주달팽이집

김창하 민달팽이주거협동조합원 2월 말부터 입주를 시작한 전주달팽이집이 벌써 2018년의 끝자락 까지 와있다. 누가 봐도 무모했고, 사업으로서의 지속가능성, 공공으로서의 효과 둘 중 어느 하나 장담할 수 없었지만, 이번 사업이 시도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해 끝까지 책임을 다하고 있는 구성원과 도전한다는 사실 만으로도 도움을 주었던 많은 분들 덕에 올 한해를 무사히 넘긴 것 같다. 물론 쉐어하우스가 뭔지도 모르고 들어와 잘 살아준 식구들이 제일 신기하고 고맙다. 마치 지역의 청년의 모든 주거문제를 해결할 것 같은 마음으로 시작했고, 협동조합으로서는 나름 거액의 돈을 들인 것과 다르게 입주를 시작한 시점부터 전주달팽이집은 전주 청년을 위한 달팽이집 이 아닌 전주의 직장인 청년을 위한 달팽이집으로 시작했다. 사회주택이라는 공공성을 가진 사업이지만, 서울처럼 사회주택을 통해 시중가보다 싼 월세를 제공하고 있다고 보긴 힘들었다. 독립을 경험해보고 싶은 지역 청년 누구나 살 수 있도록 월세의 문턱을 낮추고 싶었으나, 지역에서 민간단체에서만은 풀 수 없다는 한계를 체감했다. 살아보니 월세를 낼 수 있다고 해서 청년 누구나 살 수 있는 집도 아니었다. 마당, 옥상 거실, 부엌, 화장실 등 공용공간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집은 손이 많이 가서, 식구들과 살림을 적절히 나눠서 하지 않으면, 누군가에게 살림에 대한 부담이 전가되던지, 누구도 살림을 안하면 집이 망가지고 불쾌해지는 공간이 되 버린다. 적어도 살림을 나누는데 동의하고 자신의 몫은 할 수 있는 사람만이 전주달팽이집에 살 수 있다. 집안의 따뜻함과 안정감도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닌, 매일매일 사는 사람들의 손길로 만들어 진다는 것을 살림을 경험해 보며 알았다. 반상회에 참여하지 않으면 살기 불편한 곳이기도 하다. (가족도 마찬가지이지만) 다양한 사람,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달팽이집에 살고 있고, 저마다 주거공간에서 살아가는 방식이 제각각이다. 함께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적어도 한달에 한번 반상회 자리에서는 다른 식구들이 이해 할 수 있게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충분히 대화하고, 서로가 인정할 수 있는 수준에서 협의하고, 협의된 내용을 이행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이를 통해 자신의 습관이던지 사고방식이던지 변화를 겪게 된다. 결국 한 사람을 이해 한다는 것은 자신의 이해해의 폭을 넓히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반상회에 참여는 달팽이집 살이의 필수요소이다. 이외에도 민달팽이협동조합에 대한 이해를 통해, 거주하고 있는 달팽이집이 조합원의 자산이며 조합원들을 위해서 집을 소중히 다루었으면 하는 당부와 월세는 조합의 자산으로 다음 달팽이집을 제공하는데 보탬이 되며, 월세의 일부는 조합의 자산을 관리하는 상근자가 마땅이 받아야 하는 일에 대한 보상이자 생계를 위한 비용이므로 월세를 내는데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살아 보기도 전에, 당부와 책임을 이야기하는 것이 문턱을 만들어 내는 것 같지만, 1년을 지내보니, 전주달팽이집은 모두를 위한 집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다가오는 해에는 주거환경과 관계의 변화를 통해 당사자가 긍정적인 변화를 줄 수 있는 확실한 디딤판이 될 수 있도록, 발을 닫기 전에 명확히 보이고 디딘 후 올라 설 수 있는 안전하고 분명한 안전망 중의 하나로 다듬으려 한다. 2019년도 달팽이집살이를 통해 당사자의 삶이 조금 더 긍정적으로 변화 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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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2.30 19:08

편의와 불편

최아현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자 이런 뉴스를 본 적이 있다. 도시의 미관을 해치기 때문에 시각장애인용 노란 보도블록을 제거했다는 뉴스 말이다. 시각장애인용 보도블록은 비장애인에게는 전혀 필요가 없다. 오히려 몇몇 비장애인들은 보도블록의 여기저기 튀어나온 노란 발판이 도시의 미관을 해치니 없애거나 기존 보도블록과 같은 색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다 아예 없애버린 것이다. 하지만 발판이 노란색인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시각장애인에게 가장 구분이 잘 되는 색상이 노란색이기 때문이다. 시각장애인의 이동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도시의 미관을 해치기 때문에 불편하다는 의견은 관철되었어야 한다. 어떤 요구가 타인의 기본권을 해칠 우려가 있다면 다수의 기분이나, 불편이 먼저 고려되어서는 안 된다. 그 선택이 누군가의 생을 위협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 필요와 불편함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사람이 사람에게만 이런 위협을 가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자연에도 위협을 가하고 있다. 최근 환경단체 그린피스가 플라스틱 빨대의 사용을 금지하자고 했다. 어떤 음료 체인점에서 플라스틱 빨대의 사용을 철회하고, 종이 빨대를 도입했다. 종이 빨대는 플라스틱 빨대보다 내구도가 낮고, 사용감도 불편하다. 사람들은 종이 빨대로는 음료를 섞을 수도 없고,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종이가 눅눅해져 빨대의 기능도 잃어버린다며 푸념했다. 효율성이 떨어지는 불편함을 선택한 것이다. 왜 플라스틱이라는 좋은 발명품을 두고 흐물거리는 종이를 선택했을까? 몇 년 전, SNS를 통해 화제가 되었던 동영상은 여러 사람의 공분을 샀다. 바다 거북의 코에 플라스틱 빨대가 아주 깊숙이 끼어있었다. 그것을 사람들이 힘겹게 제거하고 바다로 다시 보내주는 영상이었다. 몇 분이나 지속되는 영상을 보고 사람들은 거북이 불쌍하다,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자와 같은 말을 남겼다. 비슷한 영상으로 무인도에 플라스틱이 가득 떠내려가 쓰레기 섬이 되어버린 영상 역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분명 그때 사람들은 편의를 위해 인간들이 사용했던 플라스틱이 쓰레기이자 무기가 되어 자연과 생태계를 위협하는 모습을 봤다. 꼭 저 두 가지의 영상이 아니더라도 수없이 다양한 영상을 통해 기억해왔다. 무리한 일회용의 사용은 자연을 해치고 있다고. 그리고 얼마 전 종이 빨대가 도입되었다.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또 화를 냈다. 불편한 것이 이유였다. 지난 영상과 같은 이야기가 수없이 반복되는 동안 불쌍하다며 목소리를 냈던 사람들은 그 대안에 대해 다시 불편해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누군가의 불편은 때때로 어느 생명에게 존재 자체에 대한 위협을 가한다. 물론 현재의 대안으로 나온 종이 빨대 역시 바다 대신 산을 갉아먹고 있다. 아마 종이 빨대가 최종적 대체제가 되어버린다면 우리는 또 다시 나무가 사라지는 것에 대해 걱정하고 말 것이다. 근본적으로 우리는 생활에서 점차 일회용품 사용을 줄여나가는 것이 맞다. 나 하나 줄인다고 티가 나겠어? 라는 생각이 든다면 말을 조금만 바꿔보자. 나 하나 더 보태보자. 사람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시각장애인용 보도블록 철거, 더빙 영상에 대한 불만, 노년의 디지털 소외를 고려하지 않은 오프라인 매장의 변화와 같은 사례들은 삶에서 기본적인 것조차 공유하지 못하게 되는 위협이 될 수 있다. 때로는 나의 불편이 누군가의 편의와 효율을 제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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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2.23 19:28

한복 입지 않은 지역 미디어는 가능한가

김신철 마시즘 에디터 한복 입고 나오면 채널 돌린다 자주 보는 프로그램이 지역 방송국의 프로그램 편성에 밀리자 친구가 말했다. 그는 조건을 이어 붙였다. 한옥마을 가면 돌린다, 판소리 부르면 돌린다. 친구의 불평도 이해할 법하다. 왜 우리 방송은 한복을 입고, 한옥마을에 가며, 판소리를 부르는 걸까? 그것은 관광객이 느끼는 전주의 이미지일 뿐, 우리가 한복의 핏을 가지고 감탄하고 전율하는 사람은 아닐 텐데 말이다. 하지만 제작자의 입장에서는 이런 말을 들으면 과연 전주다운 것은 무엇인지, 전주다운 것을 바라는 사람은 있을지 근본적인 고민이 되기 마련이다. 지역 미디어 관련 컨퍼런스들에 참가하면 비슷한 고민을 느낄 수 있다. 답은 없는데 숙제만 쌓여가는 느낌이랄까. 젊은 독자층은 텔레비전과 신문을 보지 않는다. 그렇다고 인터넷에서 지역의 뉴스를 보는 것도 아니다. 이런저런 고통배틀을 하고 나면 결국 그래도 지역 미디어가 필요해라는 구호로 끝이 난다. 뿌듯하긴 했는데 돌아가다 보면 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아니! 지역 미디어가 필요하다는 건 원래도 알고 있었잖아! 문득 생각해본다. 우리의 그 비장함이 오히려?지역 미디어를 살리지 못한 독이 되기도 하지 않을까? 오히려 지역 미디어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지역이라는 키워드에 너무 연연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지금의 인터넷 환경을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단군 이래 콘텐츠를 이렇게 대충 만들어도 성공할 수 있는 시대. 많은 고민과 의미를 치열하게 짜낸 콘텐츠 보다도 쉽고 부담 없이 접할 수 있는 재미있는 콘텐츠에 열광하는 때다. 한 편의 다큐멘터리보다 현장의 스마트폰 동영상이 설득력도 전파력도 높은 시대다. 이제 제작비와 파급력은 비례하지 않는다. 그저 약간의 감각이 필요할 뿐이다. 그러니 우후죽순 작은 미디어들이 생겼다가 사라지고, 남은 녀석은 성장한다. 물론 이런 인터넷 미디어 환경에서지역은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서울도 메리트가 없다. 비싸. 마실 수 있는 모든 것을 다루는 마시즘은 딱히 지역성을 드러내지 않지만 지역 미디어다. 사무실이 점점 집으로 가까이 가고 있다. 가끔 서울에 미팅을 가면 왜 전주에서 하냐고 묻는 분들이 있다. 집이 편해서요 우리 콘텐츠는 만드는 사람이 편하게 만들어야 보는 사람도 편하다. 그러니 멀리 떠날 일이 없다. 한 가지 더. 기존의 미디어들도 조금 더 가볍게 생각한다면 좋겠다. 꼭 청소년부터 어른까지 모든 독자를 잡아야 하는 걸까? 본인 업무만 소화하기에도 벅찬 인력을 사진과 포토샵과 동영상까지 제작해서 터미네이터로 만들어야만 하는가에 대한 회의감이 들 것이다(물론 이렇게 말하는 나도 다 한다는 게 함정. 그래도 재밌어서 한다). 더욱 힘을 빼야 한다. 그래서 더욱 내가 좋아하는 것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가 다 할 수 없다면 젊은 대학생들에게 그들만의 미디어 실험을 만들어 보라고 기회를 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한 해를 마무리짓고 있다. 많은 것이 변했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는 문제가 있다. 초인적인 능력으로 지역 미디어를 지키고 있는 분들에게 존경과 함께 걱정의 메시지도 드리고 싶다. 내년에는 고민도 부담 없이, 재미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이웃들을 많이 만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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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2.16 19:44

지역을 살리는 천명의 기적

김은총 이상한계절싱어송라이터 잡지 [Wired]의 창간자 케빈 켈리는 「천명의 진정한 팬(1000 True Fans)」이란 책을 통해 개인 창작자는 골수팬 1000명만 있으면 먹고 산다고 주장한다. 성공하는 소수 20%들만 누리는 블록버스터급 히트, 소위 대박을 터트리지 못하더라도 천 명의 골수팬들이 미적지근한 팬들에 비해 더 많이 구매하고, 창작자에게 직접 구매하고, 새로운 후원 모델을 지지해준다면, 창작자들은 굶어죽지 않고 지속가능한 창작활동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내가 지역에서 음악을 시작하고 가장 많은 시간 고민해온 주제 중 하나도 지역에서 음악하며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이다. 독립적인 주체로서 내 삶을 영위하는 방법을 찾는 건, 한 사회구성원으로서 필수적이고 이 시대 청년들이 앓는 공통과제로써 모두에게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음악창작을 업으로 하는 뮤지션에게 먹고 사는 문제는 단순히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만이 아닌 직업으로서 음악활동의 지속유무가 달려있는 난제다. 그동안 지역에서 음악을 지속하는 방법은 레슨이나 다른 일용직 일을 병행하거나 창작을 최소화하고 공연수익에 의존하는 것이었다. 순수하게 음악창작활동만으로 이룬 성공사례는 매우 드물다. 음원수익은 소수에게만 편중되어있고, 지역은 최소한의 지역음악시장조차 매우 요원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우리 지역에서는 여유 있게 음악활동 하는 것을 바라거나 상상할 수 없고, 10년 이상 지속적으로 창작하며 활동하는 팀을 찾아보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케빈 켈리의 골수팬 모델을 지역에서 이룰 수 있다면 얘기는 달라질 것이다. 지역 내 골수팬들을 확보하고, 그들의 소비를 통해 창작자들의 작업이 지속가능하도록 할 수 있다면, 더 많은 창작자들이 안정적으로 창작을 이어갈 수 있고, 지역만의 독창적인 창작물이 탄생할 확률도 높아질 것이다. 고무적인 것은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과 같은 새로운 유형의 창작자 후원 모델이 최근 꽤 많은 성공사례를 낳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지역에서도 천 명의 힘이 발휘된 사례가 있다. 바로 천년전주사랑모임에서 매년 연말 가장 활발하고 유의미한 활동을 한 문화예술가에게 수여하는 천인갈채상이다. 천 명의 시민들에게 1인당 1만원씩의 후원금을 모금하고, 후원한 시민들이 직접 후보를 추천, 모바일 투표로 수상자를 선정한다. 그렇게 시민들 천 명이 자발적으로 예술가들에게 상과 상금을 수여함으로써 지역예술가들을 지지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상의 의미를 넘어선다. 상을 수여하는 시민들에게는 직접 지역예술가를 후원하는 특별한 경험을 갖게 하고, 지역예술가들은 지역민들에게 자신의 활동성과를 인정받는 자부심을 갖게 한다. 그렇게 시민들과 예술가는 상을 매개로 만나게 되고, 그 속에서 진정한 골수팬도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상을 통해, 케빈 켈리가 말하는 천명이 한 창작자를 살리는 사례를 어렴풋이나마 경험할 수 있었다. 우리 개개인이 천 명의 수를 모으기엔 쉽지 않지만, 우리 모두는 얼마든지 천 명 중의 한 명이 될 수 있다. 골수팬 모델은 지역의 다양한 창작자들에게 얼마든지 적용가능하고,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하다. 다양한 분야의 창작물을 지속적으로 소비해주는 것만큼 지역문화와 예술을 살리는 확실한 길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문화를 통해, 지역민들이 더 풍요로워지고 풍족해질 수 있다면, 1000명이란 숫자는 결국 우리 모두를 살리는 숫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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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2.09 19:52

오롯이 나를 위한 삶을 살아보자

김창하 민달팽이주거협동조합원 토요일 아침, 주말치고는 이른 시간 옥상을 청소하기 위해 빗자루를 들고, 옥상으로 올라 간다. 분주히 옥상을 청소하는게 거슬렸는지 아침 일찍 방문한 페인트공의 초인종 소리에 잠이 달아 났는지, 자고 있던 식구들이 하나 둘 각자의 방에서 나오기 시작한다. 한명은 잠이 깬 김에 부엌과 거실을 청소하고, 또 한명은 옥상을 혼자 청소하는 것이 힘들어 보였는지, 빗자루를 챙겨 옥상에 온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실내 청소를 마친 사람, 이제야 잠이 깬 사람도 각자 빗자루를 들고 옥상으로 올라온다. 낮 일정이 있는 나는 서둘러 오늘 집에 있을 다른 식구에게 페인트칠 공사를 잘 봐달라고 부탁하고 나갈 채비를 한다. 일찍 집을 나서, 행사에 맞춰 전주에 온 친구와 함께, 먹음직스런 요리와 시원한 맥주로 점심 식사를 하고 오후1시 달팽이집 사례를 이야기 하는 발제 준비를 한다. 달팽이집이나 사회주택이 궁금한 분들이 삼삼오오 모이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느라 정해진 시간을 조금 넘긴다. 이후 관심있는 강의를 듣고, 동료들과 전주시의 차없은 거리 행사장을 방문하여, 아는 분들과 인사하고 행사장 이곳저곳을 기웃거린다. 3일간 바빴던 외부 활동을 마치고, 다시 달팽이집으로 들어간다. 옷을 갈아입고 부엌에 가니, 오전에 페인트칠 공사를 부탁했던 식구에게 페인트칠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진행과정에 어떤 일들을 조정했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는다. 샤워를 하고 부엌에 다시 오니 2층에서 쉬고 있던 식구가 내려와 저녁을 먹고 있다. 저녁을 먹을 생각은 없었는데, 괜히 먹는 모습을 보니 식욕이 생긴다. 대충 내가 먹을 밥과 수저만 챙겨서 식사에 합류하여, 예전 기숙사 생활의 불편했던 이야기, 요즘 직장 생활에 생겨나는 이야기를 주제로 대화를 한다. 영화제작 수업의 시나리오를 쓰던 친구는 조언을 구하기 위해 2층에 쉬던 식구들 데려와 시나리오에 대해 이것 저것 질문하고 수정해 나간다. 그 와중에 서울방문 일정이 있는 식구는 갔다와서 보자며 인사를 나눈다. 인사를 나누는 중에 조만간 있을 반상회 전달사항을 혹시 잊을세라 나가는 식구에게 전달한다. 이후 전날 있었던 함께채움 세미나 이야기한다. 서로의 토론내용을 이야기하며 어떤 점이 좋았고 어떤 점이 아쉬웠는지 대화한다. 포럼이란 공식행사에 직접 참여하면서 본인들이 처한 현실의 무게와 행정의 결정권자들이 생각한 무게가 많이 다름을 인지했는지, 앞으로 지역 청년의 주거 상황을 알리고, 주거환경을 개선시키는 일에는 반드시 참여하겠다고 의지를 보인다. 어느덧 밤 10시가 다 되어가고 한 식구가 요즘 새로 만든 레시피라며 바나나와 유자차를 갈아만든 주스를 해준다. 3일동안 피곤했던 난 주스를 마시고 일찍 잠이 든다. 글을 쓰는 지금, 어제의 일상을 적어본다. 달팽이집 일상속에서 살림을 나누는 모습에 서로에 대한 배려와 이해 그리고 달팽이집이란 공간을 소중하게 여김을 느낄 수 있다. 달팽이집을 통해 안전을 느낀 청년들이 바깥에 나가서는 마치 유능한 영업사원처럼 달팽이집을 홍보하고 이야기 한다. 그리고 다른 청년들도 안전한 공간에 살고 싶음 바람에 토론회 같은 자리에 자기 역할을 하겠다고 다짐한다. 자신의 충족을 통해 다른 이들도 충족했으면 하는 마음, 앞으로의 달팽이집의 생활도 자신과 타인을 만족시키는 삶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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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2.02 20:52

사랑의 몽둥이

최아현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자 모든 사람은 자유로운 존재로 태어났고, 똑같은 존엄과 권리를 가진다. 사람은 이성과 양심을 타고났으므로 서로를 형제애의 정신으로 대해야 한다. 세계인권선언문 제1조의 내용이다. 이 당연한 이야기가 통하지 않는 시대가 왔다.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수많은 약자가 상대적 강자에게 폭력을 당했다는 뉴스를 접하고 있다. 놀랍게도 뉴스를 본 사람들은 왜 맞았는지에 대해 집중한다. 혹자는 맞을 만한 짓을 한 것 아니냐고, 폭력에 대한 원인을 제공했으니 맞아도 되는 것 아니냐고 묻기도 한다. 도대체 그럴만한 짓이 무엇이기에 맞을 만한 짓이 되는 것일까? 대부분의 사람이 맞을 짓이라는 단어를 처음 만난 것은 학교였을 것이다. 얼마 전,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청소년 문제가 나날이 심각해지는 이유는 아이들이 더 이상 맞지 않게 되어서라고, 체벌이 부활해야 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우리는 체벌하지 않은 역사보다 체벌한 역사가 훨씬 길다. 고로 체벌로 교육을 받고 자라온 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가 뒤죽박죽 엉켜있는 셈이다. 같은 나이의 사람들, 같은 시기에 학교와 사회 안에 사는 사람들만 봐도 그렇다. 비슷한 나이더라도 누구는 맞고 자랐고, 누구는 맞지 않고 자랐다. 그런데 또 누군가는 여전히 다시 때려야 한다고 외친다. 오랜 시간 축적되어온 낭설이 정설이 되어버린 것이다. 때리면 말을 잘 듣는다. 한국은 무엇이든 때려야 된다. 젊은 세대조차 우스갯소리로 작동이 되질 않는 기계를 두드리며 하는 말이다. 하지만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 체벌에 관해 이상한 것이 한 가지 더 있다. 과연 맞을 짓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맞을 짓을 도표화할 수 있을까? 그럼 그것을 도표화하고 그 수준에 맞게 어떻게 맞을 것인지 체벌 수위를 정하고 그것에 순응하면 되는 일일까. 그 모든 순서를 상상해보면 이만한 지옥도가 없다. 무엇보다 그 과정에서 맞는 사람의 입장은 거의 고려되지 않을 것이다. 소위 맞을 짓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들은 모두 상대적으로 힘과 권력에서 앞선 사람들이다. 부모가 아이들에게, 선생이 학생에게, 상사가 부하에게, 선배가 후배에게. 당장 맞아서 해결되는 것은 면피용 반성뿐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폭력을 통해 문제가 소강상태에 접어든다면, 때리는 사람은 문제가 해결됐다고 믿을 수 있다. 하지만 맞는 사람은 다르다. 이 눈만 피한다면 그만이다. 구체적으로 내 실수나 잘못에 관해 어떤 부분을 시정하고 앞으로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는 생략된다. 직접적 경험을 통해 학습할 기회를 빼앗기는 것이다. 그저 다음번에 맞지 않기 위한 행동을 할 뿐이다. 이런 교육을 받은 사람은 자신보다 약자를 만났을 때 그런 기회를 제공할 것인가?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같은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흔히 듣는 우리 땐 다 그러고 자랐어. 나? 잘 자랐잖아. 폭력은 계속해서 그럴듯한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다시 인권 선언문으로 돌아가 보면, 우리는 존엄을 존중받아야 할 가치가 있다. 이 명제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당연히 나도 남의 존엄을 존중해야 한다. 억압과 폭력을 통해 지켜지는 존엄 같은 건 없다. 누군가에게 허용되는 폭력이나 체벌의 방향은 언제나 나를 향할 수 있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남의 존엄을 지켜야 내 존엄도 지켜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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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1.25 19:58

마시즘, 요즘 것들의 미디어 소비

김신철 마시즘 에디터 북스포즈 서점의 휴업 소식이 전북일보 지면에 실린 후 많은 연락을 받았다. 하나같이 한겨울의 핫팩처럼 가슴에 품고 싶은 이야기들이었다. 다만 나의 앞날을 계속 지켜봐야 하는 가족들은 달랐다. 마시즘 뭐 음료수에 대해 글을 쓴다고 어릴 때부터 맨날 콜라를 달고 살더니 기어코!! 모두 걱정에서 튀어나오는 말이었다. 그럴 줄 알고 마시즘으로 번 돈으로 선물을 드렸다. 부모님은 말했다. 그럼 열심히 마셔거라! 부모님을 설득할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선물... 아니 1년 반 동안 음료미디어마시즘을 운영하며 얻은 확신이었다. 하루 조회수 17짜리(중에 10건은 나의 것) 사이트가 10만이 되고, 50만이 되고, 100만 이상을 찍기도 한다. 무엇보다 마시즘을 일부러 찾아오는 분들이 많이 생겼다. 그중에는 우리 지역의 대학생들도 있다. 그들은 묻는다. 어떻게 서울에 가지 않고 이런 것을 운영할 수 있죠? 음료수 마시고 글을 쓰는 일인데, 굳이 서울까지 가서 해야 하나요? 그렇다. 우리는 인터넷이라는 환경으로 장소적인 제약을 넘어설 수 있다. 문제는 모두가 콘텐츠 제작자이자 소비자인 이 아수라장에서 어떻게 기억에 남는 콘텐츠를 만드는 가다. 나는 그들에게 1년 반의 경험을 말했다. 미디어의 세계는 매일같이 신상이 터져 나오는 곳이다. 카드뉴스, 유튜브, VR, AR이름 모를 형식까지 흥미롭고 배워야 할 것들이 많다. 그런데 마시즘에서 사용한 형식은 텍스트. 그것도 엄청나게 긴 글이 되었다. 어떤 전략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할 줄 아는 게 그거밖에 없었다. 새로운 시도와 미디어를 한다더니 겨우 글이라니! 많은 분들의 한숨소리가 스테레오로 들리는 듯하다. 실제로도 그랬다. 요즘 애들이 누가 긴 글을 읽어? 하지만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정말 잘 읽는다. 인터넷, 모바일 환경에서 사람들이 읽게 되는 텍스트의 양은 엄청나다. 너무 많다 보니까 골라서 읽게 되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 아닐까? 콘텐츠와 독자의 사이는 연애 같다.내가 널 좋아하면 열심히 읽어줄게, 하지만 모르는 사이라면 일단 무시당할 각오하고 내 마음을 빼앗아보렴 너무 걱정하지 말자. 꾸준함을 가지고 있다면 형식은 필요 없다. 오직 진심만이 남을 뿐이다. 실제로 요즘 독자들은 미디어나 콘텐츠를 어떤 성격을 가진 캐릭터로 느끼는 듯하다. 그들은 이 콘텐츠에서 광고인지, 진심인지를 구분한다. 만약 진심으로 만들어진 콘텐츠라면 모자란 부분도 매력적으로 볼 정도로 너그럽다. 마시즘 역시 그랬다. 트와이닝 홍차 이름을 순간 아이돌 걸그룹 트와이스라고 잘못 적었는데도, 댓글로 트와이스 노래를 불러주면 말을 다 한 것이다. 물론 오타를 내서 죄송합니다. 결국 미디어를 시작하는 친구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다. 유행에 따라서, 벌이에 따라서 미디어를 만드는 것은 할 수도 있고 괜찮은 일이지만 괴로운 일이다. 물론 좋아하는 것을 가지고 미디어를 만든다고 꽃길이 열리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힘든 작업 중에서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에 대해 깊게 볼 수 있는 기쁨이 기다리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 당신을?알아봐 줄?많은 사람들이 생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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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1.18 19:35

우리의 일은 음악입니다!

김은총 이상한계절싱어송라이터 2015년 즈음 홍대 클럽 공연을 다닐 무렵이었을 것이다. 우리의 일은 음악입니다. 한 뮤지션의 기타에 적힌 표어는 나의 가슴에 깊게 와 박혔고, 벌써 3년여의 시간이 지났지만 그날로부터 조금도 흐려지지 않고 선명하다. 그 표어는 내 가슴속에 늘 일렁였지만 차마 말하지 못했던 혹은 말할 용기가 나더라도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방법을 몰랐던, 나의 음악활동과 음악 노동의 처우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일은 음악입니다(Music is Work)는 노동조합 <뮤지션 유니온>의 캠페인이다. 우리는 흔히 노동이라 했을 때 어떤 제품을 만드는 공장 노동자나, 농작물을 재배하는 농부, 혹은 사무직의 노동자들을 떠올리지만, 뮤지션 유니온은 모든 노동이 종류와 관계없이 평등하다면서 음악을 만드는 작업 또한 노동이라고 선언했다. 그를 통해 음악이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고 그에 합당한 대가를 받는 것이 당연하고도 필요한 일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이 같은 뮤지션 유니온의 시도는 국내에서는 아직 낯설고 생경한 것이지만, 해외에서는 꽤 다양한 사례가 있다. 미국의 과 영국의 등의 노동조합이 100여 년 전부터 음악인들의 노동보호를 위해 활동 해왔고, 가까운 일본의 경우에도 50여년의 역사를 가진 음악인 노동조합 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반면 국내에서는 뮤지션 유니온의 캠페인이 낯선 만큼 음악활동이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뮤지션의 음악노동을 인정하는 것은 음악의 대가 지불의 근거가 되기에 뮤지션이 음악생활을 지속적으로 영위하기 위해서 필수적이다. 하지만 개인화된 작업방식과 음악 산업의 특성상 음악을 값싸게 또는 무료로 소비하려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합리적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그 결과 음악노동은 뚜렷한 급여기준이 확립되지 못한 채 제각각 천차만별이다. 나 역시 음악이 노동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해 겪는 곤란한 상황을 아주 빈번히 겪어왔다. 이를테면 무대를 마련해줄테니 와서 그냥 놀아 달라거나, 저마다 고결한 취지를 봐서 재능기부 해달라는 식의 노동의 가치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 요청들을 말이다. 어느 정도 커리어를 쌓은 후에도 여전하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공연시간에 맞춰 최저시급으로 공연료를 주겠다는 제의나 음악 그룹을 인원수에 맞춰 일당제로 산정한 공연료 책정은 허망하다. 물론 무대에서 갖는 공연시간은 하루 일당을 받는 노동자들의 노동 시간에 비해 매우 짧다. 짧으면 십여 분에서 길게는 한 시간 가량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우리는 대개 그 하나의 공연을 위해서 일반적인 노동 시간 이상의 시간을 쓴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다. 운동선수들이 매일 훈련을 하듯 무뎌지거나 녹슬지 않도록 연습하고, 공연취지에 맞춰 셋리스트를 짜고, 멘트를 준비 하는 일들이 그 근거다. 다만 그 노력은 무대에서 크게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많은 이들이 음악을 즐기고, 음악의 가치를 말하지만 정작 음악노동의 가치는 인정하지 않는다. 심지어 뮤지션조차 속물로 취급될까봐 자신의 음악 노동에 대해서 쉽게 얘기할 수 없는 분위기다. 그러나 명백히 음악은 우리의 일이다. 고도의 기술과 노하우를 집약하고, 어쩌면 예술의 영역에까지 가 닿을 수 있도록 공력을 들이는 전문 직업이다. 뮤지션의 음악노동이 가치를 인정받고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어야 더 많은 뮤지션들이 나타나고 더 양질의 음악이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그게 우리사회가 꿈꾸는 문화적 풍요로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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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1.11 16:16

겨울을 이겨내지 못하면, 봄은 오지 않는다

김창하 민달팽이주거협동조합 조합원 올해 봄, 입주를 시작으로 이제 달팽이집에 겨울이 오고 있다. 무더웠던 여름 열기와 습기 탓에 집의 온 문을 활짝 열어 놨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 문을 제때 닫지 않으면, 한기에 잠이 깬다. 귀가 후, 비교적 따뜻한 부엌 식탁에 삼삼오오 식구들이 모여 든다. 이야기의 시작은 밖에 춥지? 너 방은 따뜻해? 이런 질문으로 시작으로, 큰 창문에서 흘러오는 한기를 어떻게 막을지, 보일러 온도는 어떻게 할지, 더 추워지면 어떻게 할지 이런저런 구체적인 고민들을 이야기하고 함께 대책을 고민하고 있다. 앞으로 겨울을 맞아 이런저런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보일러 점검도 한번하고, 하루 날을 잡아 창문에 뽁뽁이와 문풍지를 붙일 예정이다. 이 글을 다 쓰고나면, 여름 화단에 심어 놨던 로즈마리도 화분에 옮겨 실내에 둘 예정이다. 혹시 동파 될 수 있는 수도는 있을지, 집 앞에 눈이 많이 와 얼면 어떡할지, 집에 자주 방문하는 길고양이는 괜찮을 지까지 겨울이 오는 데 많은 생각도 함께 오는 것 같다. 이렇든 겨울은 오고, 우리는 겨울을 지낼 준비를 해야만 한다. 저마다 다른 온도, 각각 다른 방의 상태처럼, 각자의 겨울은 조금씩 다르지만, 우리는 저마다의 겨울나기를 준비해야 한다. 근래에 집에 퇴사를 하고 취업을 준비하거나, 쉬고 있는 식구들이 늘었다. 필자는 퇴사 후 이런저런 일을 할 조건이 되지만, 다른 식구들은, 아직 퇴사라는 여유를 즐기고, 자기만의 시간을 삶의 전환으로 삼기에는 통잔 잔고가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퇴사 후 시간의 여유는 있을지 모르지만, 잔고는 전혀 여유가 없다. 결국 답답하고 수치스런 마음에 퇴사를 했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마음이 꽁꽁 얼어 있다. 입사를 준비하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과연 이 회사가 나의 미래를 책임 질 수 있을까? 나의 경력에 어떤 도움이 될까? 라는 이야기 보다는,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까? 좋은 상사를 만날 수 있을까? 야근, 주말 근무를 하더라도 수당이나 제대로 받을 수 있을까? 근로조건을 지켜줄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근로기준법 정도의 이야기지만, 정작 취업 당사자인 친구들은 근로기준법을 지켜주는 소위 제대로 된 회사를 경험해 보지 못했다곤 한다. 회사에 불만과 문제가 있어도, 무직자의 삶이 두려워, 이내 잘못된 회사에 버티고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삶의 대부분의 시간이, 행복은커녕, 스트레스와 우울증이 생기게 하고, 자존감을 밑바닥까지 끌어내린다. 회사의 잘못된 방식과 여러 가지 문제를, 신입사원인 청년에게 너가 아직 몰라서 그래 이런 것도 못해? 혼나면서 배우는 거야 넌 왜 융통성이 없니? 이렇게 말하며, 문제의 원인은 당신이 능력이 모자라거나, 노력하지 않아서야. 라는 식으로 몰아간다. 가장 안타까운 건, 많은 청년들이 이런 환경 속에서 자존감이 바닥을 치면서 자살충동까지 경험한다. 경직되고 단절된 사회, 여전히 근로기준법도 사업주의 이익에 따라 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지역의 상황은, 청년들이 회사를 다니든 다지니 않든지 간에, 이미 생존을 위협받는 겨울이다. 청년의 겨울이 따뜻해야만, 비로소 봄을 꿈꿀 수 있다. 겨울을 이겨내지 못하면, 봄은 오지 않는다. 추운 겨운 식구들과 함께 봄을 기다리며, 따뜻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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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1.04 19:12

폭풍눈물 눞옾곡롬

최아현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자 폭풍눈물 눞옾곡롬 이 단어의 뜻은 무엇일까요? 언뜻 보기에 창의력 문제나 난센스 문제일 것 같은 저 질문의 답은 같은 말이다 이다. 눞옾곡롬이라는 단어를 거울에 비추듯이 돌려보면 폭풍눈물이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인터넷에서는 폭풍눈물과 같은 의미로 눞옾곡롬이라는 말을 쓸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기발한 상상력의 언어를 모두가 신기하게만 보는 것은 아니다. 일부에서는 한글을 파괴하는 것이라며 부정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인터넷 용어와 젊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신조어에 대한 지적은 한글날이면 매번 되풀이되는 이야기다. 외계어와 같은 한글 사용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펼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이미 한글은 창조와 동시에 전통을 깨부순 언어다. 국가에서 반포했으나, 널리 통용되기까지 국내외로 많은 반발을 얻었다. 조선사회가 완전히 붕괴하고 나서까지도 대부분 인쇄된 문서에서 국한문 혼용은 통상적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전통의 한글 사용법이 무엇인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엄밀히 말하면 한자도 외국어 아닌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언어에서도 한자어는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한글의 창제 자체가 신종 국어 표기법이 아니었나 하는 주장을 해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조선시대 한복판에 살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한글 반포 직후의 어느 사대부이거나, 아니라면 아예 한자를 모르던 사람이다. 난데없이 나타난 직선과 곡선이 뒤엉킨 이 모양이 문자라고 한다. 익히기 쉽고, 들리는 대로 쓸 수 있다. 첫째로 사용하기 아주 편리했으며, 둘째로 배우기도 쉽다. 셋째로 새로 창조된 것이다. 한글 반포 당시해 마주하며 느꼈을 이 세 가지의 감상이 인터넷 용어를 마주하는 기성세대의 감정과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낯설고 외계어 같으나 젊은이들 사이에서 쉽고 빠르게 배우며 간편하다. 무엇보다 그 세대 안에서 새롭게 창조된 언어다. 어쩌면 신조어를 매 순간 만들고 있는 세대들이 한글의 전통적 가치를 되새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글은 배우고 사용하기에 쉽다는 장점 이면에 몇 가지 난해함을 가지고 있다. 불규칙 변형이 많고, 구어의 대부분이 표기법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교육의 빈도와 강도를 떠나 국민 대부분이 사용하는 말씨가 조금씩 다르다. 세대가 변할 때마다 조금씩 억양과 언어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자주 사용하게 되는 단어는 살아남고 사용되지 못한 단어는 조금씩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간다. 언어의 일부를 잃어버리는 것은 애석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세대 간에 자란 환경이 변하는 것조차 막을 수는 없다. 구어와 표기법의 틈이 마냥 벌어지도록 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런 이유로 국립국어원에서는 끊임없이 맞춤법에 대해 고민을 하는 것일 테다. 사실 줄임말과 신조어는 예전에도 있었다. 다만 그 언어에 대한 표현과 배경지식이 변화하는 것뿐이다. 옥떨메(옥상에서 떨어진 메주)와 같은 단어도 줄임말이 아닌가. 시대와 세대를 대변하는 것 중의 하나는 언어다. 당장 언어의 파괴를 걱정하기보다 통용되고 있는 언어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일이 더 먼저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 가장 자주 사용하고 창조해내는 단어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숨어있는지 관찰할 필요가 있다. 그 모든 것을 무시한 채 옛것의 소중함을 깨달아야 한다며 다그치는 것만큼 답답한 일이 있을까. 그것이야말로 눞옾곡롬 흘릴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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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0.28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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