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4-12-01 16:42 (일)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chevron_right 김승일 칼럼

평생을 분노속에 보낼 것인가

화(火)는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불이다. 사람들은 마음의 불을 어떻게 다룰것인가. 그 근원부터 한번 찾아 올라 가보면 고대 로마의 철하자 세네카(BC 4~AD 65)에 다다른다. 그의 심화(心火)에 대한 처방은 그 울림이 비교적 단순하면서도 강렬하다. 2000년이란 긴 세월을 뛰어 넘어 인간의 본성과 한계를 생각해보게 한다. 비슷한 증상으로 우울증이라는 병증도 있다. 모든 일에 의욕이 없고 불안하거나 짜증이 난다. 잠을 잘 이루지 못하고 심장이 두근거린다. 장래 희망이 보이지 않고 죽고 싶은 생각만 든다. 이런 증상이 바로 의학계에서 흔히 진단하는 우울증이다. 어느날 잘 다니던 회사에서 구조조정으로 쫓겨난 실업자, 개혁이라는 칼바람에 눌려 명예퇴직 당한 공무원, 적격심사라는 고답적 판단으로 희생된 기관 단체 종사자, 갱년기 전업주부 같은 약자층에서 이런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과도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젊은 직장인이나 수능시험을 코앞에 둔 고교생들, 집안에서조사 숨돌릴 틈 없이 따돌림 당하는 노인들에게도 우울증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그러나 우울증은 자신의 무력감이나 심리적 변화와 함께 찾아오는 신체적 증상으로 느낄뿐 폭발력은 그리 크지 않다. 정작 참을 수 없는 것은 한방(韓方)에서 말하는 울화병이다. 울화증 울화통이라고도 하는 이 병은 한마디로 화병(火病)을 말한다. 심리적인 갈등으로 몸속에 흐르는 기(氣)가 막혀 화병이 생긴다는 것이 한의학적 설명이다. 흔히 기가 막힌다든지 열 받는다 울화통 터진다는 말들ㅇ느 바로 이 화병의 초기 단계가 되는 셈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특히 많은 이 화병은 인내와 절제, 양보와 관용을 미덕으로 삼는 우리의 문화적 전통과 사회환경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웬만하면 참고 넘기려는 심리적 갈등이 우울증을 넘어 울화통을 키우고 이것이 누적되면서 화병으로 발전하는 것이다.사실 사적이건 공적이건 사회생활을 하면서 욱하고 격하게 올라오는 경험은 누구나 언제 어디서는 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일상적 다반사에 대해 세네카는 적당히 감정을 조절하라는 식으로 얼버무리지 않는다. 오히려 어떤 경우에도 화를 내지 말라고 제안한다.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고 이성의 동의 없이는 화가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바로 그 이성으로 화를 제어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언뜻 현실적으로 동의하기 힘든 듯한 세네카의 제안은 그가 살았던 시대를 연상하면 이해가 갈 법도 하다. 그는 역대 최악의 폭군으로 불리는 네로 황제의 가정교사와 보좌관까지 13년간을 지내다가 끝내 네로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세네카의 철학적 이상형은 평정심을 유지하는 현자(賢者)로 표현된다. 아무리 현자라도 눈 앞의 비열한 행동엔 화가 나지 않을까? 아슬아슬 하지만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책망해야 할 일이 현자의 눈에 띄지않는 순간이 단 한순간이라도 있을까? 집을 나설때마다 그는 죄짓는 자들, 탐욕스러운 자들, 방탕아들, 파렴치한들, 그리고 그런 악덕에 편승하여 이익을 챙기는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걸어가야 할 것이다. 도처에 범죄와 악덕이 득실득실한 세상에서 그 모두에 화를 내지 않으려면 아예 처음부터 그 모두를 한꺼번에 용서해야 한다는 게 세네카의 생각이다.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을 당하고 대선도 눈앞에 닥친 요즘 우리 정가(政街)나 사회현상을 보면 그런 울화통 터질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경선을 앞둔 각 당의 대선 주자들끼리의 치고 받기는 그렇다 치자. 선거때마다 불거지는 각종 부정비리도 도토리 키재기 식으로 거기서 거기다. 정(政)자에 근접하지도 못하는 포의(布衣)들은 그저 떡도 못얻어 먹고 굿장단이나 쳐야 할 신세다. 이래저래 한심할 뿐이다. 더군다난 저 민족과 국가의 상징인 태극기의 처량한 신세는 무슨 말로 위로해 줄 수 있을까. 세네카가 볼때 화는 솔직함이 아닌 분별없음의 표현이다. 그의 책에 쓴 마지막 말이 되새길만 하다. 화를 내며 보내기에는 우리 인생은 얼마나 짧은가

  • 오피니언
  • 기고
  • 2017.03.15 23:02

그래도 탄핵시계는 간다

지난 주말에도 박근혜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가 전국 각지에서 이어졌다.올 겨울들어 가장 추운 날씨였음에도 14만6000여명이 집회에 참가한 것으로 주최측은 추산했다. 참가자들은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 이른바 공작정치의 주범으로 국민적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우병우 전 민정수석, 조윤선 문화체육부장관 등에 대한 엄정한 수사도 강력히 촉구했다.1987년 민주항쟁에 불을 당긴 박종철이한열 열사의 추모와 분신한 고 정원스님에 대한 시민사회장도 광화문 광장의 집회 열기를 뜨겁게 달궜다.이쯤 됐으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탄핵 요구는 그 정당성이 충분히 입증됐다고 보여진다. 헌정사상 부당한 권력에 대한 민중의 항쟁 열기가 지금처럼 뜨거운 때가 있었던가 되돌아 보면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 한 구석에 밀려드는 일말의 불안감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한 때 추진 동력이 떨어진 듯 보이던 보수단체측 탄핵반대 집회가 점차 그 강도를 높여가고 있기 때문은 아닌지 스스로 반문해 본다. 적어도 촛불집회 쪽에서 보면 그들의 주장이 허구와 궤변에 불과하다고 무시해 버릴 수 있을지 모른다.하지만 법률적 논리 말고도 막가파 식으로 몰아 부치는 과격한 주장이 자칫 여론을 호도할수 있다는 우려를 지울수 없는 것이다.국민 80% 이상이 탄핵에 찬성한다는 여론에도 불구하고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결국 정치적인 판단으로 이루어 질수 밖에 없다는 것이 많은 법률 전문가들의 견해다.국민이 선거로 선출한 대통령을 선출되지 않고 정치적으로 임명된 헌법 재판관들이 그들의 정치적 판단과 결정만으로 축출할수도 있다는 사실은 어떻게 보면 모순일수도 있다.그러니 만약 헌재가 기각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 날 경우 그 충격파를 어떻게 완충시킬지는 또다른 과제다.그러나 그동안 분출된 촛불민심은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 인용을 기정 사실화 하고 있다.정치권도 이를 바탕으로 앞당겨질 정치일정에 대비하는 모습이다.특검 또한 어제 김기춘 비서실장과 조윤선 문체부장관을 소환하여 문화예술계 인사들에 대한 블랙리스트 작성에 관여했는지 수사에 착수했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뇌물공여 혐의로 구속영장 발부 여부도 오늘 중 결정될 예정이다.특히 법꾸라지김 전 실장에 대한 추궁과 우병우 전 수석에 대한 특검의 앞으로 수사 강도가 주목을 끌고 있는데 문제는 이 모든 국정농단 사태의 중심에 있는 박 대통령의 태도다.그는 지난 1일 예고도 없이 출입기자들을 춘추관에 모아 놓고는 간담회 형식을 통해 자신과 연관된 온갖 비리의혹에 대해 말도 안되는 변명을 늘어 놓았다. 대기업 강제 모금은 선의의 통치행위일뿐 사익을 챙기지 않았다고 발뺌했고 최순실의 국정농단은 사실 자체를 몰랐다는 낯 뜨거운 해명으로 일관했다.그러면서 설 전에 또 한번 기자간담회를 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도 한다. 참 염치도 없는 대통령이다.어쨌거나 탄핵심판은 지금 속도를 내고 있다. 그저께 재판정에는 최순실과 안종범 전 경제수석도 증인으로 출정했다.이제 촛불이나 태극기로 세를 과시하기 보다는 법과 원칙에 따른 공정한 판정이 내려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싶다.헌법재판관들은 결국 민심을 거스를수 없을 것이며 그것이 천리라고 나는 믿는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7.01.18 23:02

권력자에 주는 충고

박근혜 대통령이 제18대 대선(大選)에서 승리한 지 보름쯤 되는 날, 나는 이 난에 다음과 같이 썼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5년 임기의 통치 로드맵을 다듬을 정권인수위도 골격을 갖추고 있다. 박근혜를 지지한 1500만 명(51.6%)의 환호와 문재인을 찍은 1400만 명(48%)의 좌절감도 차츰 사위어 갈 때다. 박근혜 당선인이 화해와 대통합을 강조한 대목이 그나마 멘탈 붕괴에 빠졌을 문재인 지지자들의 허탈감을 달래줄 작은 위안이 됐을 터다.내가 민주화 이후 13대부터 여섯 번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찍은 후보가 당선된 것은 두 번 뿐이다. 짐작하겠지만 스스로 진보를 자처하는 내 이념성향으로 볼 때 18대 대선 결과가 아쉽고 허탈하기란 누구 못지않았다. 개표 전 보수성향의 친구와 내기까지 걸었다가 패배한 것은 곱으로 열패감을 안겨준 마음의 상처(?)로 남기도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하룻밤을 자고 나니 세상이 바뀌고 내 생각도 바뀌었다. 매사 긍정적으로 보면 긍정이요, 부정적으로 보면 부정이란 부처님 말씀이 옳았다. 어차피 던져진 주사위, 역사의 물줄기가 그를 따라 간다고 생각하니 준비된 대통령임을 내세운 박근혜가 새삼 돋보이는 것이었다. 그때까지 부글부글 끓던 속앓이를 드디어 접을 수 있게 해준 내 사고(思考)의 전환이 고맙기조차 했다.그랬다. 그녀의 아버지 박정희에 대한 부정적 잠재의식을 털어 내면서 역사상 첫 여성대통령으로서 위상과 믿음과 기대가 싹트니까 더불어 새누리당에 대한 신뢰도 쌓여갔다. 박 대통령은 집권 초기 국민행복과 국가발전이 이룩되는 희망의 새 시대를 열겠다고 다짐하면서 잘못된 관행이나 비리, 부정부패를 뿌리 뽑아 비정상을 정상화하는 등 반듯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우기도 했다.그런데 그처럼 화려한 국정 청사진을 내걸고 출범한 박근혜 정권 3년 7개월, 지금 나라 사정은 어떤가. 세월호 비극이나 메르스 사태는 말할 것도 없고 그저 기업 발목 비틀기나 부적격 장관 만들기, 농민들의 분노를 물대포로 다스리기, 심지어 대통령의 졸개임을 자부하는 여당 대표의 단식투쟁에 친일파들의 흔적을 지우기 위한 역사교과서 국정화 획책이 진행되고 있지 않은가. 어디 그뿐인가. 십상시 못지않은 권력 부역자들의 개인적인 국정농단과 엉덩이에 뿔 난 못된 강남 아줌마의 끝 간 데 모르는 농탕질에 온 국민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지 않은가. 이미 다섯 차례나 주말 촛불시위로 수백만 국민들이 하야를 외치고 있으나 청와대는 아직까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으니 더욱 분통 터질 노릇이다. 하기야 이제 와서 나는 선의에 의해서 국가를 위해서 한 일이라고 아무리 변명해봤자 누가 믿어줄리 없으니 대통령도 답답하고 억울하달 수 있겠다. 하지만 나는 대통령이 지적인 능력이 모자라고 콘텐츠가 부족하며 대화에 자신이 없는 분이라고 단정하기에 결국 나라의 운명을 잘못 맡긴 것으로 한단할 수 밖에 없다. 더욱이나 아쉽고 두려운 것은 대통령의 막가파식 버티기가 얼마나 더 계속될 것인가이다. 혼을 다 해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고 믿는 대통령이 왜, 어쩌다가, 자기 주변을 이토록 엉망으로 다뤄 스스로 몰락의 길을 재촉했는지 안타깝기 그지 없다. 불확실한 것은 운명이 지배하는 영역이고 확실한 것은 인간의 재주가 관할하는 영역이라는 라틴어 격언이 있다. 박 대통령이 아직도 생각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면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가 권력자에게 준 충고를 들려주고 싶다.최고 권력자는 모든 것을 누리지만 죽을 때까지 추구해야 할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좋은 추억을 남기는 일이다. 명성을 경멸하는 자는 덕을 경멸하는 자가 된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6.11.30 23:02

못 버리는 것도 병이라는데…

나와 내 아내는 집안 살림 정리정돈 문제로 자주 다툰다. 아니 다투는 정도가 아니라 때로는 극렬하게 싸운다. 아파트 앞뒤 베란다에 그득한 장독양은 그릇소쿠리 등은 말할 것도 없고 거실이건 주방이건 식탁이건 온갖 잡동사니들이 발길에 차일 정도다. 방 안 사정은 어떤가. 단독주택 살 때 들여놓은 자개농이 여전히 안방을 차지하고 옷장장식장책장가전제품 나부랭이들이 입추의 여지없이 들어차 위용(?)을 뽐내고 있다.20여 년 전에 지인(知人)을 돕겠다고 들여놓은 실내 운동기구 한 개가 고철 덩어리로 거실 한쪽을 버젓이 지키고 있을 정도다.그뿐이 아니다. 결혼 이후 40여 년 동안 안 입었던 옷가지며 아이들 중고등학생 때부터 대학 졸업 이후까지 입었던 각종 캐주얼까지 옷장 속은 물론 에이드에까지 담겨 알뜰히(?) 보관돼 있다.그중에는 한두 번 입어 봤거나 아예 개봉도 안 된 채 상자 속에서 잠자는 것들도 수북하다. 신발장 속에는 내가 신는 몇 켤레의 구두나 운동화등산화 정도를 빼고 아내의 신발만 50켤레가 넘는다.아예 중고 신발가게 수준이라 해도 틀리지 않다. 오래된 냉장고를 대체해서 새로 들여놓고도 그것을 그냥 버리지 않고 묵혀 두며 전기료만 물고 있는 것은 또 어떤가. 퇴직 후 서재로 이용하고 싶어 책장을 갖춰뒀던 방은 아예 식료품박스생활도구 저장 창고가 된 지 오래이니 더 말해 무엇하랴.자, 사정이 이러하니 살림살이 정돈 문제로 다툼이 없을 수 있겠는가? 이걸 좀 치우고 정리하면서 살자는 게 내 주장이고 살림살이는 내 소관이니 단 한 가지도 손도 대지 말라는 게 아내의 주장이다. 도대체 좋게 사정하고, 호소해도 아내는 막무가내다. 한 번 집에 들어온 것은 포장지 한 장, 상자 한 개, 하다못해 비닐 끈, 봉투 한 장도 그냥 버리지 못하는 게 아내의 고집이다. 한 번은 아내가 집에 없을 때 몰래 내다 버린 잡동사니 속에 압력 밥솥이 들었었는가 보다. 좌우간 한낮 동안 싸웠고 지금도 내 경거망동(?)은 지청구 덩어리로 남아 있다.어떤 책자에서 보니까 아내의 이런 못 버리는 습관을 저장강박증 때문이라고 한단다.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욕심으로 아무리 작고 볼품없는 물건도 버리지를 못하고 끌어안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정신의학적으로는 이런 습관이 일종의 병이라고 할 수도 있나보다. 70줄들을 넘겨 이제는 며느리 눈치도 봐야하고 혹시라도 모를 치매(?) 걱정도 해야 할 나이에 이런 하찮은 일로 좁쌀 영감 소리까지 들어가며 다투다니 내 자신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싸울 때마다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남편에게 대드는 아내의 고약한 버릇 때문에 울화통이 터지긴 할지라도 그래도 내 아내인데하는 측은지심으로 참고 지낸다.이제 무더위가 물러가면서 가을 문턱을 넘어섰다. 지난 여름동안 입었던 캐주얼이며 등산복 나름을 챙기면서 가을 옷을 찾아보다가, 아니 아내가 집을 비운 사이 점심을 챙겨 먹으려다가 문득 이 널브러진 잡동사니 때문에 속을 끓이며 상념(想念)을 옮겨 본다. 좌우간 이제 계절도 바뀌었으니 버려야 할 것을 미련 없이 지금 버리고 조금 더 환하고 정리 정돈된 집안 분위기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모르면 몰라도 내 집안 말고도 비슷한 환경, 비슷한 골칫거리를 가진 집이 수월치 않게 많으리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법정(法頂) 스님이 그랬다. 무소유는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것이라고. 그 어른 말씀이 이 글에 맞는 것인지 어찌했는지는 잘 모르겠고.

  • 오피니언
  • 기고
  • 2016.10.12 23:02

한우·굴비의 제자리 찾기

한 7~8년 전쯤 되나 보다. 가까운 친구와 서울에 문상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승용차를 내 준 후배와 운전기사까지 일행 4명이 강남의 한 일식집에서 저녁식사를 하게 됐다.그런데 메뉴판을 보고 깜짝 놀랐다. 복어탕 한 그릇에 겨우 6500원이라니. 당시 전주에서도 생선탕류는 보통 7000~8000원 할 때였다. 복어찜에 소주까지 한 잔 걸치면서 속으로 그랬다. 서울 강남이라는 곳이 무조건 비싼 것은 아니구나. 진짜 싼 것은 시골보다 더 싸다더니만.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식사를 끝낸 후 친구가 받아든 계산서엔 자그마치 일금 47만원이 찍혀 있는 게 아닌가. 깜짝 놀라 다시 한번 들여다보니 복어탕 한 그릇 값은 6500원이 아니라 0이 하나 더붙은 6만5000원이었던 것이다. 복어탕 한 그릇에 6만5000원이라. 덕분에 백수 신세에 한 끼 십몇만원 짜리 고급 음식을 먹어본 경험은 얻었지만 0 한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내 불찰(?)은 친구들에게 와룡선생 상경기로 두고두고 농담거리가 되고 있다.느닷없이 7~8년전 강남 복요리집 탕 음식값이 생각난 것은 요즘 한창 논란을 빚고 있는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때문이다.이 법에 따르면 앞으로 공직자(사립학교 교원언론인까지 포함)들은 식사 등 접대비로 3만원 이상을 초과할 수 없고 명절때 선물값도 5만원을 넘길수 없으며 각종 경조사비도 10만원 미만으로 제한 받도록 돼있다. 한마디로 공직사회의 지나친 소비성낭비성뇌물성 접대문화를 바로 잡겠다는 취지다.나는 공직자도 아니고 주머니 사정이 넉넉한 편도 아니어서 한 끼 식사에 몇만원짜리 접대받을 일도 없고 내 돈내고 사먹기도 어려우니 관심을 꺼도 그만이다.그런데 그 때 강남의 그 일식집 밥값이 갑자기 떠오른것은 지금까지 그 정도는 보통(?)으로 여겨왔을 공직자들의 접대 입맛이 이를 어떻게 견뎌낼까 염려스러워서이다.사실 그동안에도 공무원의 경우 행동강령을 제정하여 접대비 3만원을 초과하지 못하도록 규제를 강화해 왔지만 어디 제대로 지켜져 왔던가? 사실상 유명무실화한 이런 규제로 공직기강을 바로 잡기가 매우 어려우리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오는 9월28일부터 시행에 들어갈 김영란법에 대해 공직사회에서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대신 외식업계나 농축산물 생산 농어민들이 반발하고 나선 점이다. 높은 자리 공직자들은 엊그제 청와대 오찬 메뉴에 오른 화려한 식단을 보고 대통령도 저 정도인데 우리야 어쩌려고(?)하는 안도감 때문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외식업계에서는 이 법이 시행될 경우 식사자리가 위축돼 막대한 매출 손실이 우려된다고 걱정하고 있다. 선물값 축소에 대해서도 한우 농가나 굴비 생산업자들의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명절 때 선물세트로 가장 인기있는 한우나 굴비는 보통 10만원~몇십몇백만원 짜리가 즐비한데 이를 과다하게 제재하면 이 분야 생산업자들은 다 죽으란 말이냐고 항변하고 있기도 하다.김영란법은 사실 민간영역까지 지나치게 규제하고 적용 범위도 실효성이 떨어진다거나 배우자 보고의무 조항까지 두는 것은 문제점이 있다는 지적에 나는 동의한다. 부패는 못 막고 소비만 위축시켜 내수경기 침체는 물론 모든 인간관계까지 얼어붙게 할 것이라는 관련 업계의 우려도 귀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본다.그러나 그런 여러 문제점 지적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까지의 한국 사회의 고질과 병폐로 지적되어온 학연혈연지연, 정실과 금품수수로 얽히고 설킨 부패문화의 청산을 위해서는 이 법은 반드시 시행되고 결실을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어떤 통계를 보면 일반 직장인은 점심값으로 1만원 이상을 지출하는 비율이 겨우 1.5%에 불과하다고 한다. 뱃살에 기름이 많이 낀 고위 공직자들은 95%의 개돼지들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지 잘 살펴야 할 것이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6.08.17 23:02

고등어가 기가 막혀…

나는 생선 중에서 고등어를 가장 좋아한다. 생고등어를 무나 감자와 함께 지저 먹거나 간고등어를 식용유에 튀기거나 구워 먹는 맛이 그만이다. 가장 흔하게 소비되는 통조림 중에서도 나는 고등어만 골라서 사먹는다. 내가 젊었을 때인 60~70년대는 모두 살기가 힘들어 값비싼 생선들을 먹기가 쉽지 않았다. 그때 서민들이 가장 즐겨 먹었던 생선이 바로 고등어꽁치갈치 등등이었다. 비교적 값도 싸고 살이 통통했으며 맛도 좋았던 고등어가 평생 내 입맛의 동행자가 된 연유다.고등어는 대표적인 다획성 어종으로 가정의 식탁에 흔히 오르지만 식당에서도 자주 만나는 찬 중의 하나이다. 각종 수산물 관련조사에서도 고등어는 선호도나 매출 면에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정약전이 펴낸 자산어보에 보면 고등어에 대해 맛은 달콤하며 탁하다. 국을 끓이거나 젓을 담글수 있으나 회나 어포는 만들지 못한다고 했다. 고등어는 성질이 급해 잡히자마자 금방 죽고 지방 함량이 높아 살아서도 부패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쉽게 상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고등어는 불포화 지방산과 뇌세포 활성화 물질인 DHA, 오메가3 지방산 등이 풍부해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 동맥경화나 뇌졸중 예방에 효과가 크다고 한다. 또한, 혈액을 깨끗이 해 심장병 예방에도 도움이 될뿐 아니라 다이어트에도 효과가 있다고 하니 요즘 사람들의 최대 관심사인 웰빙식품으로서도 한 몫을 단단히 한다고 할수 있을 것이다.그처럼 서민들과 친숙한 고등어인 만큼 굳이 80년대 가수 김창환이 부른 어머니와 냉장고의 가사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특히 남성들이라면 고등어와 얽힌 한두 개의 추억들은 있을 것이다. 학창시절이나 군대생활 때, 등산이나 야영할 때 먹어본 고등어통조림 김치찌개의 그 맛을 어찌 잊을 수 있을 것인가. 그런데 그렇게 몸에 좋고 맛 좋은 등 푸른 생선 고등어가 한달새 고초를 겪고 있는 것 같다. 지난달 말께 환경부가 난데없이 고등어를 구우면 나쁨 수준을 훨씬 넘는 미세먼지가 발생한다면서 환경공해의 주범으로 몰아붙인 것이다. 이런 발표가 나오자 어판장에서 고등어 경매가가 급락하고 대형마트의 자반 주문량도 순식간에 20~30%가 감소했다고 한다. 당연히 어민들이 서민 죽이기라고 들고 나서기도 했으니 결코 찻잔속 태풍이라고 방관할 일이 아니게 됐다.뒤늦게 환경부는 집안에서 고등어를 굽거나 직화구이 음식점의 환풍시설 등을 미세먼지 발생 원인으로 규정하면서 주방 요리 시 실내공기 관리 가이드를 내놓은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한때 지구온난화의 주범은 온실가스이고 온실가스 중에 소가 내뿜는 가스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함으로 세금을 물리자는 주장과 비슷한 넌센스가 아닌가 싶다. 논란이 빚어지자 환경부는 고등어를 굽고 15분간만 환기시키면 공기 질은 회복된다고 발표하면서 공연한 오해(?)를 수습하려고 진땀을 빼는 모습이다.하지만 진짜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한 노력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중국발 오염원이나 경유 차량 같은 근본적인 문제에서 찾아야지 서민들에게 가장 친숙한 고등어 굽기에 착상하는 어리석은 관료들의 얕은 꼼수에 맡겨둘 일이 아닌 것 같다. 지난 413 국회의원 선거를 전후해서 정치권이나 재벌가, 법조계에서 풍겨져 나오는 각종 부패와 비리의 악취가 진동하는 마당에 애꿎은 고등어에게 네 죄를 네가 알렷다고 호통(?)쳐봐야 결국은 제 얼굴에 뱉은 침으로 되받을 뿐이다. 그러니 설령 고등어 직화구이 때 미세먼지가 그리 많이 나온다 한들 썩은 방귀 냄새보다 독한 가스를 내뿜는 저 잘난 각계 권세가들의 철면피에 비기지는 말 일이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6.06.29 23:02

동네 공원 이래서야…

전주 시내 곳곳에 있는 각종 공원들마다 OO공원이란 팻말들이 그렇듯 하게 서 있다. 이 표지판 덕분에 공원의 품격(?)이 한 단계 높아진 것 같아 보기에 괜찮다.그런데 그런 기분은 거기까지다. 표지판까지 산뜻하게 세웠으면 관리도 그만큼 정성을 쏟아야 할 텐데 전혀 그렇지가 못한듯하기 때문이다.내가 살고있는 아파트 주변으로 초등학교가 두 군데 있고 거기에 잇대어 근린 또는 어린이 공원도 두 군데 조성돼 있다. 소규모 운동시설과 어린이 놀이터, 파고라 등 휴게시설이 모두 갖춰져 아파트 입주민들이나 초등학교 학생 등이 편히 이용하고 있다.특히 화장실 같은 경우는 웬만한 호텔 화장실 못지않게 깔끔하다. 화장실이 그 나라 문화 수준의 척도라고 한다면 우리나라는 벌써 선진국에 들어서고도 남았을 정도다.자 그런데 이 공원들의 관리 상태는 어떤가. 어린이 놀이터나 파고라 등 휴게시설엔 온갖 잡동사니 쓰레기들이 그득하다. 매일 아침 반려견을 데리고 산책하러 나가보면 음료수 페트병, 라면 봉지, 빈 술병, 담배꽁초, 먹다 남긴 음식물 찌꺼기 등이 널려 있다. 화장실의 경우는 정도가 더 심하다. 세면대에 비치해 놓은 벽걸이용 비누가 나 뒹굴고 변기의 물을 내리지 않거나 담배꽁초 등 오물을 그냥 버려 놓기 일쑤다. 악취가 진동하는 화장실 바닥을 들여다보면 도대체 시민의식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남몰래 낯이 뜨거워진다.사실 내가 데리고 다니는 애완견도 아무데나 함부로 배변하지 않는다. 가만히 보면 꼭 구석진 곳, 사람들의 통행이 빈번하지 않은 곳을 골라 다니며 일을 본다. 말 못하는 짐승도 이럴진대 하물며 사람들이 이렇게 지저분해서야 어디 문화 시민이라고 명함을 내밀 수 있을까.전주 시내에는 모두 230여 개의 공원이 조성돼 있다 한다. 그중 대부분이 어린이공원(139개) 이고 근린공원(57개) 소공원(28개) 주제공원(7개)이 뒤를 잇는다. 공원 주변 거주자들과 학교 학생, 어린이들이 보건휴양과 정서 생활 향상에 목적을 두고 자치단체가 설치 관리하도록 도시공원법에 명시돼 있다. 그러니 당연히 이들 공원의 시설관리나 청결유지는 시 당국의 책임이다.물론 매일 내가 목격하는 것은 우리 아파트 옆의 두 개 미니공원의 경우이지만 모르면 몰라도 시내 근린생태공원의 경우도 거의 틀림없이 이 정도 수준일 것으로 나는 믿는다.궁금한 것은 초등학교가 두 군데나 있는 이 일대 어린이들의 청결의식이나 공준도덕심이 왜 이다지도 미약한가이다. 등하교 때 주의사항으로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좀 더 신경을 써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여기에다가 철없는 어른이(?)들의 몰지각도 한몫을 한다. 이제 슬슬 날씨가 풀리니까 파고라 등에 떼로 몰려나와 화투판, 술판을 벌이는 일이 자주 목격된다. 거기서 나오는 소음쓰레기 공해는 또 어떤가.그러니 동네 공원의 낯뜨거운 무질서를 굳이 들춰내 불편을 늘어놓을 자격도 우리에겐 없는지 모른다.그러나 그래도 시민 모두가 이용하는 동네 공원은 우리들이 관심을 갖고 잘 가꿔 나가야 한다. 결국, 시민들의 혈세로 조성된 소중한 우리들의 생태문화환경시설로서 우리의 건강과 휴양 및 정서 생활 향상에 도움을 주는 곳 아닌가.시 당국도 겉만 번지르한 녹색 청결의 도시 운운하지 말고 시민들이 체감할 수 있도록 좀 더 세심한 관리와 배려가 있어야 할 것으로 믿는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6.05.04 23:02

직간이 어려우면 풍간이라도…

중국 춘추시대 오패(五覇) 가운데 한사람으로 초나라 장왕(壯王)이 있었다. 왕의 권위와 상징을 뜻하는 세발솥(鼎)의 경중(輕重)을 묻는다 라는 고사로 잘 알려진 왕이다. 그는 목왕(穆王)의 뒤를 이어 즉위하자마자 나에게 간(諫)하는 자는 죽음으로 다스리겠다고 살벌한 포고를 했다. 그 뒤부터 장왕은 3년 동안 정사를 돌보지 않고 환락에 빠져 백성들의 원성이 높았다.이에 초나라 장래를 위해 더 이상 두고 볼수 없다고 생각한 오거(伍擧)라는 신하가 죽음을 각오하고 간 하려고 나섰다. 오거는 직간(直諫)을 하는 대신 다른 사례를 들어 우회하는 방법으로 풍간(諷諫)을 택하여 장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한 가지 의문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언덕 위에 새가 있습니다. 그 새는 3년 동안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습니다. 이새는 어떤 새입니까? 얼핏 들으면 선문답 같이 들리지만 장왕은 이미 그 뜻을 알아차리고 이렇게 대답했다. 3년을 날지 않았지만 한 번 날면 하늘에 오를 것이다. 3년을 울고 있지 않지만 한 번 울면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할 것이다. 그대가 한 말의 뜻은 알겠으니 그만 물러 나도록 하라오거는 직간 대신 풍간을 함으로써 목숨을 잃지는 않았다. 그러나 장왕은 오거의 간언을 듣고도 환락을 거두지 않고 오히려 그 정도가 심해지기까지 했다. 보다 보다 못해 이번에는 소종(蘇從)이 라는 신하가 죽기를 각오하고 직간을 했다. 폐하 난행을 거두고 정사를 돌보셔야 하옵니다 그러자 왕이 물었다. 그대는 내게 간하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는 포고를 잊었는가? 소종이 대답했다. 폐하께서 정신을 차리시고 올바른 정사를 펴신다면 소신은 지금 죽어도 두렵지 않습니다그제서야 장왕은 그대야말로 진정으로 훌륭한 신하이다라고 치하하면서 그 즉시 환락을 중지하고 올바르게 정사에 임했다.왕이 3년동안 그렇게 한것은 중히 써야 할 신하와 제거해야 할 신하를 가려내기 위한 공작이었던 것이다. 장왕은 그동안 자기에게 아부만 하던 수백명의 신하를 죽이고 간언을 한 오거와 소종에게 정치를 맡겨 이후 초나라를 춘추오패가 되도록 이끌었다. 십팔사략(十八史略)에 나오는 일화다.413 총선을 앞두고 여의도 정치권이 후끈 달아 오른 마당에 난데없이 직간풍간 소리가 왜 나오는가. 지난 1월 전경련 등 38개 경제단체가 주도한 민생구하기 입법 촉구 1000만명 서명운동이 시들해지고 있다는 언론 보도 때문이다. 이 서명운동에는 박근혜 대통령도 거리에서 직접 서명에 나서는 등 관심을 기울이면서 독려했는데 이제 겨우 161만명이 참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한다.총선을 앞둔 19대 국회에서 이 법이 통과되기는 힘들게 된 것이다. 나는 애당초 민간단체에서 벌이는 운동에 대통령까지 나서서 독려하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라고 생각했었다. 바로 이런 대목에서 대통령이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보좌하는 게 정부여당의 참모들이 할 일 아닌가. 레이저 눈빛 때문에 직간이 어렵다면 풍간이라도 할 수 있어야 할 텐데 말이다.사실 박근혜 정권 출범 후 국정 패러다임은 여러가지 난맥상을 보이고 있다. 경제민주화 공약의 실종, 세월호 참사, 역사교과서 국정화, 개성공단 폐쇄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파열음이 들리고 국민들의 스트레스와 계층 간 갈등, 국론분열 현상도 우려할만한 수준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3년간 날지 않고 울지 않은 새가 아니었다. 충분히 만기친람하여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할 만큼, 때로는 주먹을 흔들거나 책상을 내려치며 결기를 보여왔다. 그러니 올곧은 진실도 때로는 힘과 지위 앞에 속절없이 굽어지거나 굴절되는 일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어쩌랴 그것이 곧 권력의 속성이기도 한것을.한비자(韓非子)는 임금은 지혜를 버려야 신하를 바로 살피는 총명을 얻게 되고 현명함을 버려야 신하들이 저마다 능력을 발휘하여 공적을 세우게 되며 용맹을 버려야 신하들이 저마다 용기를 다하여 나라를 강하게 할 수 있다고 했다. 2000년 전이나 오늘날이나 권력의 속성은 변함이 없지만 한비자의 이 말을 박근혜 대통령의 경우에 대입시킬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6.03.16 23:02

노인이 어르신 되려면…

난데없이 사타구니(思他救泥)함몰자지(緘沒自志)라니 이게 무슨 말인가. 순수하게 우리 말 발음으로만 들으면 망칙하기 짝이 없는 단어들 아닌가. 그래서 전혀 예상치 않았던 망신살이 뻗힌 것이다. 지난 일요일 평소 함께 다니는 등산 멤버들이 학산에 오르던중 중간 쉼터에서 나온 얘기가 예의 사타구니함몰자지다.일행중 한 명이 스마트폰을 꺼내더니 요즘 폰에서 유행하는 사자성어(四字成語) 점괘라면서 들려준 내용은 이렇다. 먼저 사타구니란 항상 타인을 생각하고 진흙탕처럼 어려운 상황에 빠졌을 때 구해 주는데 힘 쓸 괘라고 했다. 다른 사람들을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는 선행을 베풀 수라는 것이다. 함몰자지 또한 그렇다. 자신의 깊은 뜻을 감추고 때로 굽힐 줄 아는 것은 커다란 용기라는 뜻이란다. 한자의 뜻 풀이대로라면 그저 가볍게 웃고 넘길 개그성 농담들이었는데 장소가 문제였다. 주변에 다른 등산객들도 있었고 개중에는 나이 지긋한 중년여성도 있었다.아니나 다를까. 나잇살이나 먹은(?) 노인네들이 지나치게 떠드는 꼴이 별로 곱게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지나가던 장년의 등산객이 한마디를 독하게 내뱉는다. 에이 그런 소리 그만좀 하시오. 사람들도 많은데 뒷 말은 이어지지 않았지만 노인네들이 점잖지 못하게시리했을 것이다. 순간 일행은 모두 입을 닫았다. 틀린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 친구 말대로 70줄 넘어 어르신 소리 들어야 할 노인네들이 품위없이 와이담이나 주절대는 꼴을 보인 셈이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게 된게 아닌가. 돌아오는 길에 일행은 아무리 그래도 손 아래 젊은 사람이라거나 세상에 노인 공경이 어쩌구하면서 서운한 감정을 감추지 않았지만 나잇값 못한 반성문은 마음속에 꼼꼼히 써 둬야 했다.어르신은 원래 남의 아버지를 높여 이르는 말이다. 옛날 말로는 춘부장(春府丈) 또는 춘당(春堂)이라고 하지만 요즘엔 노인의 높임말로 흔히 사용되고 있다. 꼬장꼬장 하다거나 고집불통 같은 수식어가 붙으면 노인이고 어르신이라고 하면 웬지 인자하고 점잖은 느낌을 준다. 그래서 노인과 어르신은 잘 가려 써야 한다는게 요즘 사람들의 생각이다. 한번 구분해 보자. 주는것 없이 받기만 좋아하면 노인이고 댓가없이 베풀기를 좋아하면 어르신이라고 한다. 더 이상 배울게 없다고 생각하면 노인이고 아직도 배울게 많다고 생각하면 어르신이란 말도 있다. 매사 간섭하기 좋아하면 노인이고 인내하며 지켜보면 어르신이라고 한다. 무엇보다도 노인과 어르신을 구분하는 주안점은 입과 귀다. 듣기보다 말하기를 좋아하면 노인이고 말하기보다 듣기를 좋아하면 어르신이다. 자기가 항상 옳다고 우기면서 말로써 상대를 가르치려 들면 노인이고 상대의 말을 끝까지 경청하고 이해하려고 애쓰면 어르신이다. 무엇보다도 노인은 고독하고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이고 어르신은 주변에 좋은 친구를 많이 두고 활달한 모습을 잃지 않는 사람이다.프랑스의 문호 빅토르 위고는 그의 소설 레미제라블에서 인생을 아름답게 늙는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행복한 노인은 인생의 위대한 예술품이다. 눈에는 자비가 빛나고 입술에는 미소가 서리고 얼굴에는 지혜가 풍기고 인격에는 향기가 넘치는 노인을 보라. 그것은 곧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이다라고 했다. 나는 그런 경지에 이른 사람을 바로 어르신이라고 생각한다. 위고가 예찬한 그런 정도에 이르는 어르신이 우리 주변에는 과연 얼마나 될까. 아니다. 그런 사람을 헤아려 보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두레박의 끈이 짧으면 깊은 샘의 물을 길을수 없고 마중물이 없으면 작두 물을 품을수 없다고 했다. 내 스스로를 갈고 다듬어 스스로의 품격을 높이는 일에 게으르지 않아야한다. 지혜는 자신의 수양과 경험에서 우러나는 도덕적 자질이고 노인의 가치라고 한 사람은 몽테뉴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6.01.20 23:02

꼬쟁이에 '매달린' 곶감

해마다 이 때 쯤이면 또 한 해를 보내는 송년(送年) 감상이 쏟아진다. 특히 늙은이들의 센티멘탈리즘은 때로 읽는 이들의 코 끝을 시큰거리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이든 어른들이 세월이 빠르고 인생이 덧없다는 푸념을 해도 유심히 새겨 들어야 한다. 나이가 든게 아쉬워서 그런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은 인생이 그리 기쁘지 않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중국 고전(古典)에 인생이란 백마가 달리는 것을 문틈으로 내다보는 것처럼 순식간에 지나간다는 말이 있다. 젊어서는 인생이 꽤 길게 느껴지지만 나이가 들면 화살처럼 달리는 백마를 문틈으로 얼핏 본 것처럼 인생이 정말 빠르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사람은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나이를 먹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세월이 기다려줄 거라는 착각에 쉽게 빠지곤 한다. 세월을 붙잡고 더디게 가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신뿐이고 바로 즐겁게 사는 것이 세월을 더디게 가게하는 묘책이다.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냐고 할지 몰라도 김홍신 작가의 소설 <인생사용 설명서>는 바로 이런 이야기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우리는 한 번밖에 살지 못한다. 두 번 살 수 없다. 두 번 살 수만 있다면 한번은 연습처럼 살겠지만 한 번밖에 살 수 없으니 살아 있는 동안은 참으로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나 자신이 소중하기에 오늘이 생애 최고의 날인 듯 최선을 다해 살고 지금이 생애 최고의 순간인듯 행복해야 한다.그렇다면 행복한 삶은 어떤 것일까. 제따와나 선원(禪院) 일묵 스님의 칼럼 중 이런 대목이 나온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재미있고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건 돈을 많이 소유하고, 좋은 집과 차(車)를 가지고, 마음에 드는 이성과 데이트하고, 결혼해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 등일 것이다. 이런 종류의 행복은 본질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충족함으로써 생긴다. 그러나 이는 적당하면 문제가 없지만 집착하면 욕망이 된다. 욕망이 되면 행복을 얻더라도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욕망은 만족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욕망의 항아리는 밑 빠진 독처럼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욕망의 노예에서 과감히 벗어나야 한다. 수많은 짐을 지고 산을 오른 사람이 짐을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몸이 가벼워지고 행복해지는 것처럼 욕망의 짐을 내려놓을수록 마음은 안정되고 행복해지는 것이다. 지혜가 있는 사람은 삶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할 뿐만 아니라 지혜의 힘으로 욕망의 중독성을 이해하고 욕망에서 벗어난 삶을 살게 할 수 있는 것이다.그렇다. 석가모니 부처님도 그렇게 말씀하셨다. 족함을 모르는 자는 아무리 부유해도 가난하고(不知足者 雖富而貧) 족함을 아는 자는 아무리 가난해도 부유하다(知足之人 雖貧而富)고. 그러면서 나는 오직 족함을 알 뿐이다(吾唯知足)고 설파했다. 행복이 무엇인가. 욕망을 억제하고 겸손하며 남을 존중하는 세상, 자신과 남을 차별없이 사랑하는 세상, 적은 것에 만족하는 세상, 다툼이 없는 세상, 평화로운 세상을 만나는 것이라고 하지 않는다.늙어서 원숙해지는 것이 노숙(老熟)이요 늙어서 풍성해지는 것이 노성(老成)이요 늙어서 무르익는 것이 노련(老鍊)이요 늙어서도 기운이 왕성한 것이 노익장(老益壯)이다. 이것이 바로 늙음의 바람직한 모습이다. 그러나 험난한 세파를 헤쳐 나가면서 많은 사람들은 인생을 자신도 모르게 추하게 늙어가기도 한다. 기력은 쇠약하고 정신은 몽롱해지고 얼굴은 생기를 잃고 마음은 빈약해진다. 그것은 곧 노추(老醜)가 되는 것이다. 젊은이가 가지고 있고 마음의 짐은 남에게 나눠주면 그만큼 가벼워 지지만 늙은이는 아무리 그 슬픔을 나눠주어도 여전히 똑같은 슬픔이 남아있는 법이라고 작가 오 헨리(O. Henry)는 서글퍼 했다.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어느 것 하나 따뜻하게 우리 주변을 감싸주는 것이 없는 것 같이 느껴지는 세밑이다. 그러니 새삼 노년이라 다 빼 먹었기 때문에 없어진 맛의 기억만 남아있는 곶감같은 것이고 겨우 꼬쟁이 끝에 남은 한두 개로 야금야금 과거를 되살리면서 연명해가는 신세(소설 <오래된 정원>)라고 탄식한 작가 황석영의 넋두리에 수긍이 간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5.12.09 23:02

"당신네 아파트는 안녕하신가?"

사례1: 최근 아파트 입주자대표를 맡았다가 몸을 망치고 친한 후배마저 잃어버린 김모씨(63). 광주시 북구의 모 아파트에 사는 김씨는 주변의 권유로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이 됐다. 하지만 김씨가 회장이 된 후 친하게 지내던 전(前) 회장 박모씨(56)와 갈등이 생겼다. 박씨가 뒤늦게 선거 서류를 제 때 내지 않았다며 자신이 회장직을 계속 맡겠다고 했다. 서로 시비가 붙었고 박씨가 김씨의 멱살을 잡았다가 고소를 당했다.이 과정에서 박씨의 비리가 드러나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박씨가 방수공사를 하면서 업체에서 돈을 받은 것이다. 마침내 박씨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대표자회의 임원들에게 시인서를 쓰는 모욕을 당했다. 그런데 박씨가 시인서를 쓰다말고 갑자기 밖으로 나가더니 흉기를 들고 들어와 김씨와 감사 정모씨(60)를 마구 찔러 중상을 입혔다. 박씨는 범행후 흥분한 상태에서 차를 몰고 나갔다가 사고를 내 목숨을 잃었다. 끔찍한 비극이 아닐 수 없다.사례2: 서울 노원구의 모 아파트 주민들은 2개의 입주자대표회의를 만들어 서로 정통성을 주장하는 법정다툼을 벌였다. 이 바람에 아파트 주민들은 지난해 겨울 난방도 못한채 벌벌 떨어야 했다. 이 모 회장과 정 모 회장이 서로 밀고있는 관리업체 문제로 소송을 벌이면서 아파트관리비 통장의 지급이 정지됐기 때문이다. 관리비를 통장에서 꺼내 쓰지 못하자 아파트 관리가 부실해졌고 겨울에 난방기 부품이 고장이 났는데도 제대로 고치지 못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참다 못한 주민들이 아파트 관리업체를 쫓아내고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었다. 결국 이 아파트단지는 비상대책위까지 포함해 세개의 입주자대표회의가 다툼을 벌이며 배가 산으로 올라가는 이전투구(泥田鬪狗)를 이어가고 있다.사례3 : 최근 전주의 한 아파트에서 관리업체 선정을 둘러싸고 입주자대표회의가 내홍을 겪었다. 회장을 비롯한 몇몇 대표들은 8년간이나 위탁관리를 해온 기존 업체에 수의계약으로 관리를 연장하려 했고 다른 2명의 대표들은 입주자 이익을 위해 수의계약이 아닌 경쟁입찰을 주장했으나 다수결로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이들은 주택법 시행령에 따라 입주민 10분의1 이상의 동의를 받아 완산구청에 이의민원을 제기했고 수의계약은 물건너 갔다.해마다 연말이 다가오면 전국의 아파트에서 입주자대표회의를 새로 구성하거나 위탁관리업체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잡음이 잇따르고 있다. 입주자대표회의 회장 선거를 둘러싸고 흑색선전이 난무하고 전현직 회장간, 입주민간 갈등을 증폭시키기도 한다. 이런 갈등은 결과적으로 고스란히 입주민들의 피해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경계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이다.사실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은 아파트의 예산을 다루는 실세다. 이들은 아파트 규모에 따라 1년에 3000만원~10억원에 이르는 예산을 심의하고 관리소장을 통해 집행한다. 사실상 아파트 살림살이를 쥐락펴락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대부분 관리업체와 관리소장, 회장간 삼각먹이사슬이 형성되고 각종 비리부정행위가 저질러 지는 것이다. 각종 공사입찰을 둘러싼 리베이트 챙기기, 관리비보험료 등의 횡령, 청소소독오물수거 등 용역 독점은 물론 장기수선충당금을 불법 전용하거나 전기수도료 등의 과다 산정 등 입주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부정행위가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 전국적으로 연간 1만2000여건의 각종 민원과 고발이 국토부와 지방자치단체에 접수되고 있다는 당국의 발표만 봐도 비리의 사슬이 얼마나 견고한지를 입증하고 있다.지금 우리나라는 국민의 절반이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연간 관리비만 12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이런 아파트 살림살이에 주민들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너무 무책임하다. 관리비 비리는 입주자 대표들이 멍청하면 관리소장이 해먹고 회장이 똑똑하게 밝히면(?) 직접 해먹는다는 말이 있다. 앞의 사례에서 보듯 가장 청렴한 체(?) 하면서 입발림으로 봉사를 운운하는 대표는 절대 믿을 바가 못된다. 내가 내는 관리비가 얼마나 된다고 하면서 뒷짐만 지지말고 입주민들이 적극 나서 감시견(監視犬 ; watch-dog)이 돼 지켜야 한다. 그래야 도둑놈들이 무서워 도둑질을 함부로 못한다. 참고로 나도 내가 사는 아파트 대표인데 제 구실을 다 못하는 것 같아 항상 자괴감을 느끼고 있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5.10.28 23:02

'욕심이 지나치면'

농사를 짓는데 쟁기질처럼 중요한 것은 없다. 어떤 농부가 있었는데 쟁기질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쟁기를 끄는 소가 제멋대로 행동하는 바람에 곧게 가는 길이 없었던 것이다. 화가 난 농부가 외쳤다. 이 못된 놈의 소야! 너를 늑대에게 주어버리겠다. 네놈을 보는 것도 이제 끝장이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던 늑대가 그 소리를 들었다. 아이고 이게 웬 떡이냐. 오래 살고 볼 일이네.늑대는 벌써 군침이 돌았다. 농부가 쟁기에서 소를 풀자 늑대는 자신의 먹이를 가지려고 나섰다. 곧장 농부에게 가서 소를 달라고 했다. 이런 미친놈의 늑대가 있나? 내 소가 어떻게 네 것이냐? 농부는 펄펄 뛰었고 늑대 또한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말싸움이 끝이 없자 그들은 재판관을 찾기로 했다. 그때 떠돌이 여우가 그곳을 지나가다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다투느냐고 물었다. 농부는 여우에게 일의 전말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농부의 하소연이 끝나자 여우가 말했다. 좋아요. 내가 바로 당신들이 찾는 재판관이오. 올바른 판결을 내리기 전에 당신들 각자와 은밀히 할 얘기가 있소. 그러고는 농부를 따로 불러 속삭였다. 만약 내가 당신을 도와주면 닭 한 마리를 주시겠소? 그리고 내 아내에게도 한 마리 주면 도와드리겠소. 농부는 여우가 원하는 것을 모두 약속했다.여우는 이번에는 늑대를 불러 말했다. 늑대 친구, 내가 당신을 도와준다면 보답을 하시겠지? 저 농부가 당신을 쫓아주면 나에게 치즈를 주겠다고 약속했단 말씀이야. 의심나면 나하고 같이 가자고. 그리하여 여우와 늑대는 함께 떠났다. 이윽고 밤이 되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걸어 마침내 한 우물에 이르렀다. 둥근 달이 하늘에 떠 있었다. 여우가 늑대를 보고 말했다. 늑대 친구, 저 우물 바닥에 있는 멋진 치즈를 보라고. 저걸 먹고 싶으면 그냥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고. 늑대는 우물 속에 반사된 달을 보았다. 아주 둥글고 멋진 치즈였다.늑대가 군침을 삼키며 말했다. 좋아 그런데 저 치즈는 너무 커서 혼자서 들고 올 수가 없겠군. 그러니 우리 둘이 함께 내려가자. 내가 네 뒤를 따르마. 마침 양쪽 끝에 물통이 하나씩 매달린 밧줄이 우물 위에 걸려 있었다. 그건 한 쪽 물통이 내려가면 다른 쪽 물통이 올라오도록 된 도르레식이었다. 먼저 여우가 물통을 타고 우물 속으로 내려갔다. 위에서 늑대가 소리쳤다. 치즈를 가져와야 해. 그러자 여우가 대답했다. 치즈가 너무 무거워서 나 혼자 들어올릴 수가 없다고. 그러니 내려와서 나를 도와줘. 그렇지 않으면 치즈를 못 가져.그리하여 늑대도 물통을 타고 우물 속으로 내려갔다. 늑대의 물통이 내려가자 여우의 물통이 올라왔다. 우물 속 중간쯤에서 서로 만났을 때 여우가 웃으며 말했다. 늑대 친구, 어서 내려가서 너의 치즈를 먹으라고. 나는 필요 없으니까. 그렇게 해서 늑대는 아직도 우물 속에 갇혀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있다고 한다. -프랑스의 풍자 작가 장 드 라퐁텐의 우화집(寓話集) 중에서 욕심이 지나치면에 나오는 농부와 늑대와 여우의 이야기이다.이 쯤 읽었으면 내가 왜 이렇게 평범한 이야기를 장황하게 인용하면서 사설(辭說)을 늘어 놓았는지 독자들은 눈치 챘을 것이라 믿는다. 요즘 정치판 돌아가는 폼이, 특히 새정치민주연합의 다툼이 꼭 이 우화와 들어맞지 않는가 싶다. 과연 누가 농부이고 누가 늑대이고 누가 여우가 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오늘 열리는 중앙위가 일차 고비가 되는 모양이지만 흔한 말로 정치는 생물인지라 달 같이 둥근 치즈로 늑대를 속인 여우의 미소를 점치기는 누구도 속단하기 힘들다.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은 상대편으로 하여금 패자(敗者)로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게 승자(勝者)가 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했다. 회남자(淮南子)에도 욕심이 지나쳐서 망하는 사람은 있어도 욕심이 없어서 위급에 몰리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새삼스러울 것은 없지만 정치하는 사람들이 새겨들을만한 경구(警句) 아닌가.

  • 오피니언
  • 기고
  • 2015.09.16 23:02

입도 몸도 거칠어지는 사회

90년대 중반 현직에 있을 때 입 거칠어지는 사회라는 내용의 칼럼을 쓴 일이 있다.당시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각종 차량들로 인해 겪는 교통난과 인성(人性) 마저 변해 가는 세태를 비유적으로 지적한 것이다. 요약하면 이렇다.〈전주시내 모 종합병원에 근무하는 30대 초반의 내과의사 H씨.그는 자가용 승용차를 구매한 후부터 말투가 매우 거칠어졌다는 주위의 타박을 듣고 있다. 가정이나 직장에서 일상 대화 중 욕설이 쉽게 튀어 나오고 때로는 환자와 간호사에게까지 상스러운 말을 입에 담아 본의 아닌 실수를 범할 때도 많다. 의사 체면에 말이 아니라는 주위의 충고를 받고 내심 얼굴 붉힐 때가 없지 않으면서도 쉽게 고쳐지지 않아 고민이라는 하소연이다.신망 받는 의사 H씨를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그는 자신의 이런 타락(?)을 날로 심해지는 도시 교통난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있다.손수 운전하면서 자동차와 사람들에게 매일 시달린 결과라는 것이다. 자고 나면 늘어나는 차량, 답답하기만 한 도로사정, 마음대로 못 세우는 주차 시설, 여기에다 실종된 시민들의 질서의식까지 겹친 짜증 유발성 교통피해 증상이라는게 그의 그럴듯한 진단이다. 사실 H씨의 이런 푸념은 승용차를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겪는 일들이다. 도심에서 운전하다 보면 교통법규를 무시한 채 끼어들기나 과속 추월을 일삼는 차량들 때문에 혼쭐이 나보지 않은 운전자가 없을 것이다. 사소한 접촉사고나 운전미숙으로 입에 담지 못할 욕을 얻어먹는 것은 그렇다 치자.시내버스나 대형 트럭, 일부 택시, 영업용 차량들의 난폭운전에는 그저 원초적인 욕설로라도 대항할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이다.〉이게 벌써 20여 년 전 상황이다. 그렇다면 차량 2000만대 시대를 훌쩍 넘은 지금은 어떤가. 칼럼 내용 중 어디 한 대목 고쳐 쓸 필요가 없을 정도로 판박이다. 아니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욕설을 주고받는 입만 거칠어 진 게 아니라 걸핏하면 주먹다짐이 앞서는 행동까지 거칠어 지고 있는 세태다. 시비가 생길 경우 레이저 눈빛(?)으로 상대방을 째려보거나 욕설을 주고 받는 정도로는 이미 성에 차지 않는 모양이다. 주먹질, 발길질에 야구방망이까지 휘둘러 대는 마당이니 이런 폭력 현장에 공중도덕이나 법규 지키기 따위 고상한 시민의식은 실종 된지 오래다.실제로 근래 들어 시내외나 고속도로 등을 불문하고 자주 벌어지는 교통폭력 사태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각종 언론 매체나 TV화면 등을 통해 비치는 사건 현장은 충격적이다. 대형 차량의 겁주기 난폭운전, 소형 차량의 겁 없는 끼어들기 방해운전은 아슬아슬한 정도를 넘어서 위험천만이다.이 뿐이 아니다. 화를 참지 못한 운전자가 고속도로 주행선에 차를 세운 채 너 죽고 나 죽자 식 막가파 폭력을 휘두르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목격된다.이 중 심각한 것이 바로 분노나 화를 억누르지 못하는 충돌 조절장애에 의한 폭력이다. 자동차 폭력에 쉽게 전이되는 이 현상은 비단 교통사고 뿐 아니라 일상생활 중에 문제가 원만히 해결되지 않거나 다툼, 또는 마음의 불편함으로 인해 폭발하는 심리적 병증(病症)의 일종이라고 전문가들은 풀이하고 있다.경제 성장이 멈추고 패자부활전 자체가 어려워지면서 거칠고 위험한 사회로 치닫고 있는 게 현재의 우리 상황이다. 좌절감과 불안감에서 우발적이고 폭력적인 형태로 표출되는 충돌조절 장애범죄는 비단 교통폭력에 국한되는 게 아니다. 우리 사회 전반에 지뢰밭처럼 깔려 있으니 더욱 두렵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5.08.05 23:02

소설 '28'·메르스 사태

한 달 넘게 계속된 메르스 사태는 아직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중동(中東)쪽에서 건너온 낙타 한 마리 없는 우리나라에서 지금까지 듣도 보지도 못한 중동호흡기증후군이란 질환으로 온 나라가 뒤숭숭하다. 아니 공포와 두려움에 떨고 있다고 해야 옳을 것 같다. 그렇지 않은가. 첫 확진 환자가 나온지 한달 이상이 넘었는데도 증상이 잡혀 간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고 오히려 확진환자는 182명으로 늘어나고 사망자도 31명(27일 현재)이라니 두려운 일이 아닌가. 거기다가 지금까지도 격리자가 3000명에 가깝고 병원 폐쇄도 이어지는데다가 이제 가족 감염, 지역 감염 우려까지 커지고 있다고 한다.■ 메르스에 대한 공포·두려움 많지만아무리 의료 전문가들이 메르스는 결코 두려워 할 질병이 아니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겁에 질려 있다. 지나친 알레르기 반응으로 성한 사람조차 ‘혹시 나는?’이라는 의구심과 이어지는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듯 하다. 나 역시 그 두려움의 장본인이다. 처음 서울에서 메르스 환자가 발생하고 전염원이 환자의 기침 비말(飛沫)때문이라고 했을 때만해도 그리 마음에 두지 않았다. 여기에서 서울까지 거리가 얼마이며 설마 내 주변에서 환자와 접촉한 사람과 부딪칠 일이 있을까 하는 막연한 안도감 때문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이웃 순창읍에서 확진 환자가 나오고 마을이 통째로 봉쇄된데 이어서 김제에서도, 전주에서도 환자가 발생하는 지경이 되니까 이게 보통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이런 과정을 지켜보며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이 비단 나만의 경우는 아닐 것이다.그렇다고 이제 와서 정부의 무능이나 우리나라 최고 병원이라고 자부(?)하는 삼성병원의 오만과 실수를 질책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메르스가 가져온 불신(不信) 사태에 대한 뼈저린 반성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해 두고 싶은 것이다. ‘낙타와 접촉하지 말고’ ‘낙타의 젖을 먹지 말라’는 식의 보건복지부 초기 ‘메뉴얼’은 네티즌들의 지적대로 코미디로 쳐주자. 최초 환자 발생 후 대통령에게 보고한 것이 언제이고 보고후 후속대책을 얼마나 신속히 했는지가 이번 메르스 사태 진압의 관건임에도 불구하고 청와대 사람들은 별로 뾰족하고 실효성 있는 조치를 취하지 못한 것 아닌가. 그러면서 기껏 국민들에게 홍보한답시고 보여준 것이 대통령의 동대문 상가 방문 때 ‘상인들이 열렬히 환영했다’는 동영상 정도였으니 답답하다고 할 수 밖에…. 그러니 네티즌들이 개그콘서트 프로그램에서 패러디한 ‘그런데 뭐~’할 정도롤 폄훼해도 할 말이 없게 된 것이다.이번 메르스 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격리·봉쇄·진료 과정이 언뜻 지난해 발표된 정유정 작가가 쓴 ‘28’이라는 소설 내용을 떠올리게 했다. 개와 사람, 사람과 사람끼리 옮기는 광견병의 변형같은 인수(人獸)공통전염병이 한 중소도시를 덮치고 그 재앙의 중심에서 28일간 사투를 벌이는 수의사·신문기자·소방대원·늑대개와 썰매개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언제 우리에게 닥칠지 모르는 극에 달한 인간 공포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근원적 질문이 이 소설의 주제다. 그런데 메르스는 이미 28일을 훨씬 넘게 버리고도 아직 진행형이니 그 종말의 해답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다.■ 세상에 극복 못할 병이 어디 있는가내가 나가고 있는 복지관에서 오늘부터 정상 운영한다는 메시지가 왔다. 우리 복지관에서 직선거리로 200m쯤 되는 아파트에서 메르스 확진 환자가 발생하여 그 동안 폐쇄했었는데 그 환자가 완치됐다는 소식과 함께 다시 오픈한다는 것이다. 2주전 메르스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 복지관에 매일 출근(?)하던 노인 회원들의 얼굴에 그늘이 지던 모습을 생각하면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아직 사람들은 메르스 두려움으로부터 완전 해방된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너무 움츠러들 필요는 없다. 세상에 극복 못할 병이 어디 있는가.

  • 오피니언
  • 기고
  • 2015.06.29 23:02

나부끼는 세월호 현수막

10여년 전 쯤 집에서 기르던 애완견과 슬픈 이별을 한 경험이 있다. 생후 1년 된 강아지였다. 어느 겨울날 밤 산책을 하려고 아파트 출입구를 나서는 순간 마침 주차장으로 들어 오던 승용차에 치이고 말았다. 집 아이가 퇴근길이었는데 그 차를 보고 무작정 달려 가다가 뒤따르던 차에 받힌 것이다. 동물병원 수의사는 회생 불능이니 그냥 안락사 시키라고 권했다. 그러기로 했다. 아내와 아이와 셋이서 지켜보는 가운데 애완견은 꼬리를 흔들며 우리에게 마지막 인사를 한 후 눈을 감았다. 그날 밤 꽁꽁 얼어붙은 중인리 산자락에 사체를 묻어준 후 우리 세 식구는 삼천(三川) 천변에서 대성통곡 했다. 지금도 그날을 생각하면 가슴 먹먹하게 저려오는 아픔을 견디기 힘들다.더 나은 사회 위한 역사적 전환점장황하게 반려동물 사고를 떠올린건 다름 아니다. 벌써 한 달이 지났지만 지난달 16일 세월호 참사 일주년 날 기억이 떠올라서다. 그날 새벽 방송에서 한 희생자 유족 어머니는 아직도 딸 아이의 방을 치우지 않았고 딸이 쓰던 학용품·책장·휴대폰도 그대로 보관하고 있다고 했다. 벽에 걸린 딸의 사진 액자를 보면 당장이라도 엄마를 부르며 돌아올 것 같은 환영(幻影)에 시달린다는 그녀는 집을 나서면서 환하게 웃던 모습을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은 고통을 참을 수 없다며 소리 내어 울었다. 아직 침대에 엎어져 방송을 듣던 나는 베개가 다 젖도록 눈물을 쏟았다. 애완견을 잃었을 때의 내 슬픔이 그랬을진대 하물며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북받치는 슬픔과 분노, 상실감으로 한동안 감정을 추스르기 힘들 지경이었다.세월호 참사 1년이 지났다. 그 비극의 현장에서 304명 망자들의 원혼이 구천을 헤매고 있지만 우리는 겨우 ‘통한의 반성문’이나 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히 자괴감이 든다. 그동안 세월호 특별법이 제정되고 그 시행령이 국무회의까지 통과됐지만 유가족들의 동의를 이끌어 내지는 못하고 있다. 희생자들에 대한 구체적인 보상계획이나 세월호 인양계획 등도 마련되긴 했지만 역시 실행되기까진 숱한 난관이 가로놓인듯이 보인다. 그날의 비극에 눈물까지 보였던 대통령은 아직까지 침묵 속에 잠겨있으며 정치권은 당리당략에 따라 세월호를 이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일부 극단 세력들은 유족들의 단식 농성을 악의적으로 왜곡 폄하하고 그 옆에서 피자를 먹으며 조롱하는 패악질도 서슴지 않았다.그러나 이런 가운데도 많은 자원봉사자들이나 시민사회단체 등이 유족들과 슬픔을 함께 나누며 공감과 배려로 상처를 어루만지려는 노력을 보여준 점은 우리사회의 성숙도를 한단계 높인 긍정의 계기가 되기도 했다. 결국 세월호 사고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미래지향적으로 시민의식을 함양하고 승화시켜 나가야 할 과제를 우리에게 안겨준 역사적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그러기 위해 이 시점에 꼭 한 번 되돌아 볼 사소한 행위들을 짚어 봤으면 한다.진상규명 촉구 메시지 충분히 전달전주시내 주요 간선도로변에 나부끼는 저 세월호 추모 현수막은 이제 걷어 들였으면한다. 지난해 9월부터 게시되기 시작해서 현재 내걸린 숫자가 군산·정읍·남원지역까지 합치면 몇 천 개나 된다는데 이 현수막을 보고 시민들의 생각이 한결같지 않다는 사실을 대책위는 모르는가? 주로 민주노총이나 전교조 회원 중심으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호소가 담겨 있는데 이미 게시자들의 주장을 이해 못할 시민들은 없으리라고 본다. 의지를 메시지로 전했으면 결과는 시민들의 감정·인지능력에 맡겨 두면 된다. 불법 게시물이라는 지적을 받으면서까지 시야에 걸림돌이 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5.05.11 23:02

거짓말의 심리학

범죄자나 일반인들도 일상생활에서 기억하는 것이 서로 맞지 않아 곤혹스러웠던 기억을 하게 된다. 부부간이나 부모 자식 간, 형제·친구들 간에 과거의 사건들이 머릿속에 다르게 입력되어 때로 서로 의심도 하고 의가 상하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우리의 기억이 복잡한 모습으로 입력되어 있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우선 외부의 사건들은 정신적 여과 장치를 지나 상당히 다른 모습으로 뇌세포에 저장된다. 말한 것이나 행동한 바가 대본이나 영화 필름처럼 있는 그대로 입력되는 것이 아니라 대략의 골조로 기억되기 때문에 전체 맥락과 상관없이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한다는 것이 정신 의학자들의 분석이다.증거 충분해도 거짓말하는 강심장물론 공적인 관계에서도 기억의 왜곡이 문제를 일으킨다. 가령 어떤 사건을 두고 논쟁이 벌어졌을 때 한쪽에선 앞뒤 자르고 전혀 다른 의미로 짜깁기 해서 보도한다며 펄펄 뛰고 다른 쪽에선 분명히 그렇게 말해 놓고 왜 뻔한 거짓말을 하느냐고 비난한다. 하지만 이럴 때 정신의학자들은 그들의 눈으로 보면 양쪽 모두의 입장이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면서 누구의 손도 확실히 들어주지 않는다. 그러니 아무리 훈련받고 열심히 공부했더라도 작심하고 거짓말 하는 머리 좋고 돈이나 힘이 센 사기꾼을 당해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사고나 사건에서 DNA 증거나 CCTV·비디오 등 증거가 충분하더라도 거짓말을 그럴듯 하게 하는 강심장들한테는 아무도 당해 낼 재간이 없는 것이다.멀리 갈 것도 없다. 바로 엊그제 북한의 평양방송이 보여준 대북 간첩의 기자회견 장면도 그런 류의 본보기 중 하나라고 본다. 지금까지 그런 식의 대남 선전 선동 책동은 한 두번이 아니었지 않은가. 남북대화의 물꼬를 하루라도 빨리 터야 한다는 국민적 여론이 익어가는 마당에 사회 전체를 전율케 하는 이런 일이 벌어진 점이 매우 안타깝다.말이 옆으로 흘렀지만 사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정치가나 경제인들의 거짓말은 단골 농담이나 풍자의 소재가 될 정도라 누구 하나를 꼭 집어서 핏대를 올리며 비난할 필요는 없다. ‘인간의 DNA에는 거짓말 능력이 포함돼 있다’거나 ‘우리의 몸과 마음도 우리 자신을 속인다’든지 ‘경제 발전도 거짓말이 없다면 이뤄질 수 없다’는 주장도 있는가 하면 심지어 해맑은 눈동자의 어린아이들도 곧잘 거짓말을 한다는 연구 결과도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심리학자가 거짓말과 잔머리에 능한 아이들에 비해 외부에서 감시하는 눈이 없어도 스스로 도덕적이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아이들이 학업 성취도와 자기 만족도가 높다는 실험 결과를 공통적으로 보고하고 있다. 권선징악이나 인과응보 같은 좀 낡아 보이는 가치에 진리가 있다는 얘기가 아닌가 싶다.스스로 도덕적이어야 만족도 높아요즘 종합편성 TV채널에서 가수 태진아의 도박설을 놓고 진실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시사저널 USA 보도에 따르면 그가 LA의 도박장에서 1억원 대 판돈이 오간 도박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태 씨는 새빨간 거짓말로 오히려 돈을 요구했다가 거절 당하자 협박조로 나왔다고 펄펄 뛰고 있다. 물증이 있으며 추가 폭로를 하겠다는 시사저널 측이나 한 발 물러 섰다가 다시 공세에 나선 태진아나 둘 중 한 쪽은 분명히 거짓말을 하고 있다. 사람들이 바른 영혼을 가진 주인공이 우여곡절 끝에 승리하는 드라마에 열광하는 것은 그동안 ‘잘난 거짓말쟁이’들이 어지럽게 지면이나 화면을 점령하는 꼴 사나움에 진저리를 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디 종말이 어떨지 관심 좀 가져보자.

  • 오피니언
  • 기고
  • 2015.03.30 23:02

드라마 '펀치'에 비친 검찰

한 보육원 미니버스가 원아들을 태우고 아파트 앞을 출발한다. 여검사 신하경(김아중)이 딸을 차에 태워 보내고 돌아 서는데 이 버스가 굉음을 내며 질주한다. 무서운 속도로 도심을 휘젓던 버스는 운전사의 응급 대처로 겨우겨우 가로등을 들이받고 멈춰선다. 신검사는 자신의 소형 승용차로 이 버스를 뒤따르고 사고 현장의 확실한 목격자로서 누가 봐도 급발진이 분명한 이 교통사고의 수사에 착수한다. 지난해 12월 시작하여 방송내내 시청률 1위(특히 젊은층을 중심으로)를 기록하고 있다는 SBS 월·화 드라마 ‘펀치’의 첫 방송 내용이다.출세 위해 저지르는 온갖 부조리이 드라마는 출발은 급발진 사고를 보여주고 있지만 기둥 줄거리는 검찰 고위 권력을 정조준하며 비리의 커넥션을 파헤치려는 젊은 검사 부부의 활약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 과정에서 양심과 정의를 지키려는 용기있는 검사들과 욕망에 사로잡혀 상사의 끄나풀 노릇을 서슴치 않는 출세 지상주의 검사들 간에 경쟁과 음모, 갈등 등이 리얼하게 묘사되고 있다.어려운 환경을 딛고 검사가 된 박정환(김래원)은 이태준(조재현) 검찰총장에게 충성을 다바쳐 대검 고위 간부에 오른다. 그러나 거듭되는 배신과 공작·조작으로 추락을 거듭하고 뇌종양으로 시한부 인생 판정까지 받는다. 그의 부인 신하경 검사는 이 총장의 친형이 연관된 운수회사의 급발진 사고를 수사하려 하지만 총장의 방해로 되레 이 회사 연구원의 죽음에 연루되고 살인 혐의로 구속되기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검찰이 어떻게 사건을 조작하고 어떻게 범인을 은폐까지 할 수 있는지 그 수사 메커니즘을 세세하게 보여줘 시청자들의 공분을 사게 한다.그 뿐이 아니다. 법무장관 윤지숙(최명길)은 가장 고고한 척, 원칙주의자인 척 하지만 자신 아들의 병역비리를 감추기 위해 온갖 악을 행하고 검찰총장 이태준은 그의 심복이었던 박정환 검사가 자신의 뒤를 캐자 역으로 그를 비리 혐의로 옭아 맨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박검사가 비상시에 대비해 확보해 둔 진통제 캡슐을 깨트리며 “네가 빨리 가야 내가 편하겠다”고 조롱하는 장면에 이르러서는 소름마저 끼칠 정도다.드라마는 이밖에도 검찰권력의 온갖 부조리를 백화점 식으로 보여준다. 대통령 비서실장의 대학 강사 취업비리와 이를 꼬투리 잡아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이 커넥션을 이뤄 그를 공격하기도 하고 회유하기도 한다. 윤지숙 법무부장관은 특별검사로 임명되고도 사건을 공정히 처리하기는커녕 뒷거래를 위해 원로 법조 선배들을 불러 모으는데 그 원로라는 법조인들이 보이는 노회하면서도 비열한 모습들 또한 도무지 우리 법조의 민낯이 이 정도인지 영 속이 불편하다. 그러나 이런 장면들에 너무 실망할 일은 아니다. 이 드라마는 매회마다 자막으로 실제 상황이 아니고 드라마의 재미를 돋우기 위해 가상으로 꾸민 이야기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실제로 이 드라마 속에는 온갖 에피소드가 가득하고 반전(反轉)에 반전을 거듭하는 빠른 진행과 배우들의 리얼한 연기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양심 정의 지키려는 용기있는 검사그동안 17회째 방영했던 ‘펀치’는 오늘과 내일로 대미를 장식할 모양이다. 정의감으로 똘똘 뭉친 여검사 신하경과 선(善)과 악(惡)을 적당히 섞어가며 불의에 도전했던 노련한 검사 박정환의 결말이 어떻게 날지 주목된다. 임종이 임박한 박검사가 그가 여러차례 공언한대로 악의 화신처럼 보이는 검찰총장 이태준과 법무부장관 윤지숙을 교도소로 보내고 생을 마감할지 아니면 세상사 결국 ‘세라비’라면서 대단원의 막을 내릴지 궁금하다. 결론은 권선징악(勸善懲惡)일테지만….

  • 오피니언
  • 기고
  • 2015.02.16 23:02

노인 삶의 질

을미년이 밝았다. 새해 들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중 첫번째는 나이 먹음이다. 남녀노소가 다르지 않다. 두 말 할 것도 없이 그 중에서도 가장 나이에 관심이 많은 이가 노인들이다. 나이를 먹을 수록 신체기능 뿐만 아니라 정신기능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대개 기억력 감퇴가 가장 먼저 온다. 처음에는 사람의 이름, 다음에는 얼굴을 잊어 먹고 이어서 바지 지퍼 올리는 것을 잊고 다시 내리는 것을 잊어 버린다고 한다. 독일의 어느 학자가 한 말이라는데 그동안 나는 이 말을 인터넷 개그 정도로 알고 있었으니 묵한건가 답답한건가 모르겠다.얼마나 즐기며 사느냐가 중요지난해 2월부터 노인복지관에 등록을 하고 컴퓨터 공부를 시작했다. 직장에 있는 때는 그런대로 다루긴 했지만 나이 들어 가며 손을 뗐더니 영 헷갈린다. 강사의 설명을 열심히 듣고 필기까지 해가며 자판을 두드리지만 도대체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한 해 동안을 배우고도 기초를 끝내지 못해 지난 연말 또 다시 기초반에 등록했다. 좀 창피한(?) 마음에 담당자에게 물어 봤더니 대답이 괜찮다.어르신 뿐 아니에요. 등록생 열 명 중 일곱여덟 명은 똑같아요한다. 그게 그나마 내 자존심(?)을 지켜주긴 했다. 물론 그렇다고 신체정신기능에 100점을 받지 못했으니 앞으로도 터덕거리긴 매한가지일 테지만 말이다.지금은 전세계적으로 노령화 사회다. 우리나라 인구구조도 출산율 급감과 노령 인구 급증으로 2019년이면 노령인구가 대략 14%에 이르는 고령사회가 될 것이라는 게 통계청의 추정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고령화 진입 속도는 유럽이나 미국 일본보다도 여섯 배나 빨라 2016년이면 20%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기도 하다. 농촌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사라졌다거나 도시에서 초등학교 입학생 수가 해마다 감소한다는 따위의 위기 신호는 영유아 보육이나 유치원 교육과제에 묻혀 뉴스로 자리잡기도 힘들다.그러므로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은 노인들이 얼마나 더 사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사람답게 즐기며 사느냐가 관심사가 될 수 밖에 없다. 수명보다는 삶의 질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각급 교육기관이나 사회단체, 복지관 시설 등에서 노인들을 위한 각종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서예음악운동독서컴퓨터요가무용 등 노인들이 여가 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온갖 편의시설과 기자재들도 충분히 마련되어 있다. 이런 곳에서 제2의 인생을 즐기며 노익장을 과시하는 노인들의 모습도 얼마든지 목격할 수 있다.문제는 스스로 기회를 찾지 못하거나 그럴 능력이 없는 소외계층이다. 이들은 가정이나 사회에서 냉대받아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거나 뒷짐 진 뒷방 늙은이로 따돌림 당하는 설움을 속으로 삭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마땅한 위안거리나 문화적 프로그램을 관계 당국이 제공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야 복지정책이나 선진국 진입이니 하는 장밋빛 전망을 기대할 수도 있는 것이다.나이든다는 것은 덕 깊어지는 과정인생을 아름답게 늙는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행복한 노인은 인생의 위대한 예술품이다. 프랑스의 시인이자 정치가소설가인 빅토르 위고가 한말이다. 그의 작품 레미제라블에는 이런 말도 있다. 주름살과 더불어 품위를 갖추면 경애(敬愛)를 받는다. 행복한 노인에게는 말할 수 없는 빛이 있다고.나이가 든다는 것은 덕이 깊어지고 성숙해가는 과정이라고 한다. 죽음도 인간의 성숙이 완결 상태에 이르는 것이라는 게 동양의 사유(思惟)다. 새삼스레 노인 공경 운운할 생각은 없다. 다만 우리 사회의 어른이란 점만은 잊지 말았으면 한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5.01.05 23:02

선배 공무원들은 침묵이 금인가

몇 년 전(2008년)에 연금 스트레스라는 제목으로 이 난에 칼럼을 쓴 일이 있다. 당시 국민연금 가입자는 1700만 명, 적립기금 200조원 대를 넘어섰을 때다. 여기에 공무원 연금 가입자가 따로 100만 명을 헤아렸다. 당시 필자가 받는 국민연금은 월 45만원 선으로 그야말로 쥐꼬리에 불과했다. 필자 주변의 친구들 중 일반 기업체 근무 경력자, 자영업을 했던 친구들도 비슷한 수준의 연금을 받은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거의 같은 시기만큼 공무원이나 교직에 근무했던 친구들은 연금 수령액이 월등히 높았다. 대략 국민연금 수령액에 비해 4~5배 이상 차이가 나는 것 같았다.공무원연금 개혁, 국민 여론 커져물론 국민연금 도입은 1985년이고 불입기간이 짧기 때문에 연금 수령액을 수평적으로 단순 비교하긴 어렵다. 하지만 공무원 연금의 경우 1960년 도입 당시 평균 급여율 40%가 90년대 초 76%로 수혜폭이 꾸준히 오른 것을 고려하면 공직 프리미엄이 평균치를 넘은 것만은 분명하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실제로 노무현 정부 당시 국민연금을 개혁하고 공무원연금 개혁도 강력히 주장했던 유시민 복지부장관의 우려가 그대로 적중한 것이 오늘의 공무원연금 현실이다. 누적 적립금의 적자로 해마다 1~2조원씩 국가예산을 투입하면서 공무원들의 철밥통을 두고두고 지켜주는 현행 공무원연금은 하루라도 빨리 개혁돼야 맞다.마침 박근혜 대통령이 금년내로 개혁을 마무리 해 달라고 당부하자 새누리당이 개혁안을 마련했고 행정자치부도 개정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이명박 정부에서 미적거리던 공무원연금 개혁에 발동이 걸린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과단성 있는 추진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국민들의 호응도 크다. 엊그제 중앙일보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찬성이 65%를 넘어서 여론은 성숙된 게 분명하다.그런데 개혁 당사자들인 공무원들의 반응은 어떤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극렬하고 조직적인 반대에 부닥치고 있다. 전국공무원노조원의 98.64%가 새누리당 개정안에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물론 더 내고 덜 받자는 데 순순히 응할 공무원들이 얼마나 있을 것인가. 그들의 반발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반대 투쟁의 강도가 너무 세고 궤도를 벗어난 것 같다. 그들은 부산, 춘천, 광주, 대전 등 네 곳에서 열린 행정자치부 주최 포럼을 물리력으로 무산시켰다. 장관에게 면박을 주거나 개혁안을 기초한 대학교수를 친일파라고 인터넷에 올려 망신주기도 서슴지 않았다. 한마디로 지금 이대로가 좋은데 왜 남의 밥에 숟가락을 올리려 하느냐는 심술인 것 같다.공무원들은 단결하고 투쟁해서 공직연금을 지키고 정권을 심판하자는 거친 구호까지 쏟아내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그런데도 공무원들의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 따끔하게 한마디 충고하는 원로선배 공무원 출신이 별로 안 보인다는 점이다. 여기서 고액 연금 받으면 호의호식하는 연금 귀족도 적지 않다는 세간의 여론을 옮길 생각은 없다. 다만 매년 수 조원의 세금으로 연금 구멍을 계속 메워야 한다면 이는 미래 세대에게 빚을 떠안기는 부도덕한 실책이라는 점만은 분명히 해야 한다.연금 구멍, 세금으로 메워야 하나지금 국민들은 고위 공무원들이 연금 개혁에 동참하겠다고 결의문에 서명한 것을 두고 쇼라고 비하하는 공무원노조의 만용을 지켜보고 있다. 또한 한국납세자연맹이 집회를 갖고 공무원연금 적당히 받아가라거나 공무원연금도 철밥통이냐는 규탄에 소리 없이 응원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박봉과 열악한 근무여건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는 공무원들의 엄살(?)에도 불구하고 9급 공무원 공채에 수만 명씩 몰려드는 현상을 뭐라고 설명할 것인지 듣고 싶어 한다. 대통령 말대로 이번 기회에 공무원연금 개혁을 제대로 못하면 역사에 죄를 짓는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4.11.24 23:02

변호사는 허가 낸 도둑?

이번 글 소재를 뭘로 할까 궁리중인데 마침 방송사에서 일했던 지인(知人)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얼마전 형사사건으로 변호사를 선임해야 할 일이 있어 알아봤더니 수임료가 엄청 비싸더라면서 도대체 변호사 선임료는 치외법권지대냐?고 열을 올리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옛날부터 변호사를 허가 낸 도둑(?)이라고 하지 않느냐며 웃고 넘어 가려 했더니 그는 내가 직접 작성한 글을 보내 줄테니 당신 칼럼에 꼭 실어 달라고 압력(?)을 넣기까지 했다. 다음은 그가 보내온 글 내용이다.국민 3분의 2가 나홀로 소송《석탄을 캐는 광산의 갱도가 무너져 구조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는 광부가 있다고 치자. 이럴때 우리는 119구급대원들의 몸을 사리지 않는 구조소식을 듣곤 한다. 그리고 광부가 생환할 때 우리는 박수갈채를 보내고 위험을 무릅쓴 구급대원들의 노고에 찬사를 보낸다. 위의 사례를 변호사의 수임료와 빗대어 논한다면 변호사를 모욕하는 것일까? 갱도에 갇힌 광부를 형사사건의 피의자라고 가정하고 119구급대원을 변호사로 가름한다면 현행 법체계안에서 변호사의 수임료가 얼마나 황당한지 쉽게 이해되리라 믿는다. 자칫 구속될지도 모르는 피의자는 갱도에 갇힌 광부가 한 병의 생수와 한 끼의 허기를 채울 라면 한 봉지가 필요한 것처럼 외부의 도움이 절실하기 마련이다.이런 상황에서 변호사가 생수 한 병에 100만원, 라면 한 봉지에 200만원을 주지 않으면 생수와 라면을 줄 수 없다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 광부는 우선 살아 남기 위해서 변호사와 계약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같은 계약이 과연 계약 자유의 원칙을 내세워 사회 통념상 용인될 수 있는 것일까? 서울을 제외한 지방의 변호사 선임료는 대략 형사가건의 경우 착수금 명목으로 330만원, 그리고 성공 보수는 선임료와 별도로 사안에 따라 적게는 500만원에서 3000만원 내지 그 이상의 보스를 약정하고 법률 서비스가 이루어지고 있다. 배보다 배꼽이 훨씬 더 큰 이런 약정이 과연 계약자유의 원칙과 관행이라는 이유 하나로 그냥 용인될 수 있는 것일까? 성공보수는 어떤 형태로든 기준이 있어야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거래에 있어서도 불공정거래를 막기 위해 공정거래위원회가 있듯이 폐쇄적인 법률 서비스 분야에서도 뭔가 규제와 제한이 있어야 할 것이다.》다양한 사람이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는 사회가 정의사회다. 그러려면 당연히 법앞에 만인이 평등해야 하고 보통 사람이 법률지식 부족으로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어려운 상황에 처할 경우 변호사로부터 최소한의 도움이라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떠한가. 소송과 관련하여 비싼 변호사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서 국민 3분의 2가 변호사 도움없이 나홀로 소송을 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턱없이 비싼 보수를 제공하고 변호사를 선임했다 해도 그만큼의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게 법률적 약자들의 일반적 항변이다.법률적 약자들 적극 도와줘야지난 2009년부터 로스쿨 졸업생 배출로 한 해 법조인 2500명씩이 쏟아지고 있어 우리나라 변호사 시장도 곧 포화상태가 우려된다고 한다. 메뚜기 떼로 까지 폄하되는 미국 변호사들처럼 사건 수임에 혈안이 된 앰블런스 뒤쫓기 변호사를 우리나라라고 못 볼 이유가 없는 세상이 된다는 것이다.그러니 내게 글을 보내 불공정한 수임료 문제로 분통을 터뜨린 지인의 속이 풀릴 수 있도록 변호사님들 좀 더 덕과 아량을 베풀어 주면 어떨는지.변호사들은 자신의 업무를 제외하고는 모든 면에서 가장 무식하고 가장 비열한 말투를 사용한다. 다른 문제에 대해서 토론할 때에도 자신의 직업에서와 같이 이성을 악용한다. 작가 조나단 스위프트가 그의 소설 〈걸리버 여행기〉에서 한 독설이다. 지난 17세기 때 사람이 한 말이지만 오늘에 비추어 봐도 그리 설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4.10.13 23:02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