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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갯감' 새만금의 공약

받으면 주는 게 삶의 기본이다. 선거판도 예외일 수 없다. 표심을 얻으면 약속한 공약은 이행해야 한다. 새만금사업은 그런 점에서 한갓 정치적인 놀이갯감으로 전락했다. 선거 때마다 지역의 최대 현안으로 제기하면서 어느 정권도 공약을 지켜내지 못한 것이다. 그러고서도 이번 대선에서 여야후보들은 새만금 개발을 한 목소리로 웅변하고 있다. 정치풍향의 변화를 기대하는 여당과 함께 야당의 단일화 정국이 열리면서 몸값이 솟고 있는 전북이 다시 공약진단의 시험대를 맞게 됐다. 선언적인 약속에 그쳤던 공약들을 생각하면서 지나온 시절을 돌아보아야 할 때다.사업계획이 발표된 이후 새만금사업에 대한 지원을 약속하지 않은 대선 후보들은 없었다. 1987년12월 민정당 노태우 후보는 전주 코아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서해안 지도를 바꾸게 될 새만금 방조제 축조사업을 최우선 사업으로 선정, 신명을 걸고 임기 내 완성하여 전북발전의 새 기원을 이룩하겠다며 법석을 피웠지만 1991년에야 기공식을 치렀다. 민자당 김영삼 후보도 1992년10월 전주에서 열린 필승 결의대회에서 임기 중에 전북의 지도를 바꿔놓겠다고 큰 소리를 쳤지만 그의 재임기간에 전북의 지도는 바뀌지 않았다. 1997년 대선에서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는 내부개발 특별법 제정 및 제4차 국토계획 반영을 통해 환황해권 생산교역물류 전진기지로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당선자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이 사업을 지난 정권의 3대 부실사업의 하나로 지목하고 감사원 특별감사까지 받게 해 전북인들을 혼란에 빠지게 했다. 민주당 노무현 후보도 2002년3월 익산 실내체육관 연설에서 결정된 것은 흔들림 없이 밀고 나가야 한다. 제가 대통령이 되면 새만금, 확실하게 밀겠다며 유세장을 열광시켰다. 하지만 임기 상당기간 소송에 휘말려 공사가 중단되는 사태를 겪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어떠했는가. 한나라당 후보시절인 2007년12월 익산문화원의 기자간담회에서 새만금을 중심으로 전북과 국가발전의 성장 동력을 만들어낼 계획이라고 밝히고 다음해 3월 헬기로 방조제를 순시하면서 관광객이 오면 호텔서 자고 가야 하니 (방조제 공사를) 내년까지 기다리지 말고, 할 수 있는 곳부터 금년 안에 서둘러 하도록 약속하라고 지시했지만 작년 3월에 종합개발계획이 확정되는 부진을 면치 못했다. 4대강 사업이나 여수엑스포에는 짧은 기간에 막대한 예산을 쏟았지만 새만금에는 찔끔찔끔 투입했을 뿐이다.이런 엉터리 공약으로 표를 호소했던 후보들의 사고방식은 유권자를 얕보는 행태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전북을 얼마나 하찮게 보았으면 그런 공약을 20년 넘게 반복해 왔을까. 그런데도 식상한 공약집을 들고 동분서주하고 있는 모습들이 재연되고 있는 게 걱정스럽다. 새만금사업은 국책사업이 아닌가. 이 사업은 정부가 책임지고 추진하도록 하고 지역발전을 위한 국가차원의 비전이 새롭게 제시돼야 한다. 새만금이 더 이상 정치놀음의 희생사업이 될 수는 없다. 사업을 질질 끌어온 리더십에 대해 먼저 반성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공약들이 공감을 주지 못한다.그저 표를 받고 보자는 설익은 공약이라면 차라리 걷어치우는 게 낫다. 선명한 사업계획과 어떤 방식으로 추진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 말과 행동이 다른 위선의 모습으로 유권자들을 감동시킬 수 없다. 낡은 청사진을 들이대서는 그들이 돌아오지 않는다. 실천의지가 담긴 진정성만이 설득력을 가진다. 그간 5년의 선거마디가 몇 번씩 지나갔지만 아직도 많은 이가 과거 정치인들의 새만금 공약을 기억하고 있다. 후보들은 전북인의 기억력을 시험해서는 안 된다. 유권자들도 어리석지 않다는 점을 보여줘야 한다. 그것조차 못한다면 전북은 미래가 없는 지역이 될 것이다. /총무국장 겸 논설위원

  • 오피니언
  • 최동성
  • 2012.11.12 23:02

왜 나눔이어야 하나

한가위 달이 보름달로 차 오르고 있다. 올 추석은 윤달이 들어 햇과일과 곡식을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차례상이 더없이 풍성할 듯했다. 그런데 이를 시샘이나 하는 것처럼 대형태풍과 폭우의 피해를 입었고 경기는 불황의 터널에서 쉽게 헤어날 줄 모르고 있다. 쉼표 없는 생활에 지친 서민들은 대선정국에도 가려 다시 맞는 명절이 두렵고 괴롭기조차 할 따름이다. 며칠 전 출장을 다녀올 적에 택시기사는 "한 달 전부터 손님이 확 줄었다"며 타 들어가는 속가슴을 보였다. 경제가 어렵다는 푸념과 경고음은 이미 우려의 수위를 넘어섰다. 경제가 위기라는 말이 이렇게 무성한데도 행동은 보이지 않는다. 경제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국회가 할 일이 많다. 이를테면 소비진작을 위해 세금을 줄여줄 것인가, 아니면 세금을 더 걷어 사회복지망을 넓혀야 하는가를 의논해야 한다. 대학을 졸업하는 신규 노동력을 흡수하기 위해 기업에 지원금을 줄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기업규제를 풀어 활성화시킬 것인가를 토론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돌아가는 국면을 보라. 한때는 온통 경제민주화 얘기뿐이었다. 요즘은 대선 후보군을 놓고 여야가 맞붙었다. 심각한 경제침체로 조마조마 가슴조이는 국민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다. 물론 정부가 모든 책임과 부담을 질 수는 없다. 오늘날 유럽경제가 당면하고 있는 곤경이 바로 반면교사(反面敎師)다. 그럼 이 위기상황에서 그런 정치인들에게 도덕성만 요구한다고 서민문제가 해결이 될까. 물론 아니다. 민간부문을 중심으로 복지지원 확대를 최대한 모색할 필요가 있다. 10월 6~7일 열리는 '대한민국 나눔문화 대축제'가 주목받고 있는 것이 그 이유다. 남다른 나눔정신이 기부 문화를 활성화하는 데 불쏘시개 역할을 하길 바라서다. 그간 "못 먹고 잘 데 없는 이들에 비하면 난 행복한 사람"이라며 마음만큼은 '부자'인 기부자들의 모습은 감동적이었다.전북에서도 자기보다 못한 처지의 이웃을 도우려는 보통사람들의 기부가 늘긴 했다. 2년전 34억5700만원에 머물던 개인 기부가 지난해엔 44억1700만원으로 증가했다. 그 바람에 53대 47이었던 개인 대 법인의 기부 비율이 58대 42로 더 기울었다. 하지만 선진국에 비하면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러니 전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이번에 어려운 이웃 5000세대를 대상으로 5억원 규모의 차례상비와 물품을 지원하는 데도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다. 기부의 저변이 튼튼하지 않다는 게 문제다. 1억원 이상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의 회원수만 봐도 단 한명에 그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개인의 기부 문화 확산은 사회갈등을 치유하는 소중한 샘물과도 같다. 그것이야말로 우리 사회를 보다 살 만한 세상으로 만들고 건강하게 하는 밑거름이기 때문이다. 소득분배 관련 지표들이 악화되고 자살·폭력 범죄가 급증하는 것도 서로 깊이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돼 더욱 그렇다. 기부가 구조적인 문제를 온정주의로 돌린다는 지적도 있지만 순수한 나눔은 값지고 소중하다. 나눔은 안정시키고 다독이는 성질이 있다. 기부를 통한 연대의식과 시민적 우정을 공유한 시민정신이 넘쳐흐를 때 우리 사회는 분열성을 넘어 통합성을 지향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추석이 코앞이다. 소외된 이웃에 대한 온정이 어느 때 보다 절실해진다. 기업인과 정치인의 '기부 마케팅'이 움직이는 계절이기도 하다. 이런 기부가 있어야 소외된 이웃에게 실질적 도움으로 연결된다. 하지만 정(情)과 감동은 금액으로 결정지진 않는다. 나부터 내 주머니에서 조금 덜어 이웃과 나누는 기부릴레이에 동참한다면 세상은 한결 행복하고 따듯해질 것이다. 우리 사회에 기부문화 확산의 계기가 되길 바라는 기대가 크다. 아름다움도 자란다고 하지 않는가.

  • 오피니언
  • 최동성
  • 2012.09.17 23:02

빚진 우리들

전북양궁훈련장을 찾은 1일 오후 땡볕은 내내 꺾일 줄 몰랐다. 폭염의 기세가 전주종합경기장 뒤편 훈련장에 내리꽂히고 있었다. 한낮 매미소리들은 런던올림픽 경기장의 함성처럼 우렁찼다. 올림픽에서 거푸 기적 같은 드라마를 엮어낸 곳,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다. 전북 양궁의 힘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한데 현장은 부끄럽고 창피했다. 선수들이 용케 견뎌 낸 것이다. 그 땀과 눈물이 고마울 뿐이다. 메달을 딸 때마다 기쁘고 감사하면서도 우리는 메달만 기다리는 철없는 존재로 여겨져 빚진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전북이 배출한 궁사들이 고맙다. 박성현(31·전북도청 감독)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낚아 고장의 명예를 세계에 올려놓았다. 4년후 베이징 올림픽에서도 단체전 금메달과 개인전 은메달을 추가해 기염을 내뿜었다. 이성진(27·전북도청)은 아테네 대회에서 단체전 금메달과 개인전 은메달을 수확하고 이번엔 단체전에서 금빛 활시위를 당겼다. 또 이번 대회에서 고창 출신의 기보배(24·광주광역시청)가 단체전과 개인전의 금메달을 거머쥐고, 전주출신 최현주(28·창원시청)도 단체전 금메달을 놓치지 않았다. 한국 여자양궁 7연패의 주역들이다.전북에선 1998년에야 도청 양궁팀이 생겼다. 경이적인 발전 속도다. 절차탁마(切磋琢磨)를 아끼지 않은 지도자들의 노력과 세계 최강권인 선수들의 조력이 만들어낸 금자탑이다. 이변 가능성을 높이자는 시각이 있지만 메달행진을 막을 수 없다. 그러나 양궁계에서는 "전북 양궁에도 위험 신호가 켜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훈련장에서 만난 전북양궁협회 강만수 전무는 "공인 양궁장 하나 없는 게 말이나 되느냐"며 대회결과들이 신기할 정도라는 것이다. 도내 선수가 100여명에 이르고 2개 실업팀이 있지만 합동훈련은 그만두고 시뮬레이션 경기는 엄두조차 못내는 상황이다.이들 선수들이 공동으로 이용하는 훈련장은 무허가 건물에다 장소도 협소해 전북이 '양궁의 메카'란 명성에 맞지 않는다. 작은(3703㎡) 훈련장은 국제대회 과녁거리가 나오지 않고 표적판간 거리도 좁아 훈련이나 대회를 제대로 치를 수 없다. 허름한 건물(183.6㎡)도 비가 오면 피해 다녀야 하고, 활 쏘는 사대(射臺)와도 바짝 붙어 그곳이 전북양궁의 산실이란 사실을 의심케 했다. 그뿐 아니다. 활터가 큰 도로와 벽을 나누고 있지만 키 작은 나무 울타리만 심어져 보행인들이 안전 위협에 노출돼 있다. 그나마 이 시설도 종합경기장 재개발에 맞물려 얼마 있지 않으면 내줘야 한다.전용 양궁장 건설이 더 이상 늦어져선 안 된다. 열악한 훈련환경이 연장되는 건 관계당국의 방관자적 직무유기가 아닐 수 없다. 그동안 올림픽 경기에서 메달소식이 전해졌을 때도 숙원사업으로 제기됐지만 반짝 관심에 머물렀다. 경북 예천군의 '김진호 양궁장'과 충북 청주시의 '김수녕 양궁장'이 국제적 규모로 세워져 굵직한 대회를 유치하고 있는 것과 비교가 된다. 전북은 올림픽, 세계선수권, 아시안게임, U대회를 석권하면서 그랜드 슬램(grand slam)을 달성한 세계적인 명궁 박성현이 태어난 곳이다. 그의 이름을 붙여 양궁장을 지어줘야 한다. 양궁은 저변이 약하고 환경이 초라해도 정말 잘 해왔다. 그래서 우리는 여간해서 이 지역을 '불모지'라 생각한 적이 없다. 금메달을 따는 건 당연하게 생각하고 그렇지 못하면 의아하게 볼 정도였다. 하지만 여궁사의 가냘픈 어깨에만 짐을 지워 양궁의 위업과 전설을 이어갈 수는 없다. 박수치고 좋아했던 것으로 끝낼 수 없다. 언제까지 불모지에서 꽃을 피울 것인가. 우리도 빚을 갚으며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 오피니언
  • 최동성
  • 2012.08.06 23:02

민주당에 전북은 있는가

대선이 가까워지면서 민주당이 '호남 민심'을 다시 들먹대고 있다. 텃밭에서 자신들의 기득권이 위협받을 때 나타났던 전형적인 구태(舊態)와 유권자에 대한 기대가 중첩돼 있다. 민심 쏠림 현상이 약화되고 있는 현실을 부인하기 어렵다는 뜻일 게다. 민심이 변하면 그에 걸맞게 변신이 따라야 살아남을 수 있다. 문제는 여전히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미망(迷妄)의 늪에서 맴돌 건지, 자기희생과 쇄신으로 오만과 편견의 껍질을 깨고 새로 태어날 것일까 하는 점이다. 호남 민심을 얻지 못하고 대통령 되기가 쉽지 않다는 통계가 있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된 1997년과 2002년 당시 이회창 후보는 호남에서 각각 3.3%, 4.8%의 득표에 그쳤다. 그에 비해 이명박 대통령은 2007년 대선 때 8.9%에 올라섰다. 호남 민심이 수도권 표심의 상당부분을 견인한다고 볼 때 시사점이 적지 않다. 민주당 대선 주자들의 요즘 지역 나들이도 그 추진력을 호남으로부터 끌어내려는 절박감 때문일 것이다.이해찬 대표와 손학규 상임고문은 지난달 13일과 18일 첫 방문지로 광주를 택했다. 문재인 상임고문도 출마 선언 후 첫 방문지역으로 역시 호남을 찾았다. 20일 광주에 들른 그는 "광주·전남 시·도민들에게 가장 적임자로 평가받고 싶다"고 말했다. 김두관 경남지사도 언론에서 "호남을 얻는 후보가 결국 야권의 대선주자가 될 것"이라며 선거에서 호남의 높은 비중을 확인했다. 광주·전남이 이처럼 호남의 간판으로 전략적 선택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전북의 역할이 주목받고 있다.과거에는 선거만 하면 전북에서 거의 절대적인 표가 나왔다. 적어도 그때는 그걸 이해해 주려는 사람이 많았다. 소위 호남차별에 대한 저항으로 일종의 자위권 행사쯤으로 치부해 줬다. 차별로부터 오는 피해를 막기 위한 결속으로 봐 준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성격이 다르다. 스스로 차별을 선택해 기득권을 지켰던 인식이 달라졌다. 지역 대립을 들쑤시며 지지층을 볼모로 삼아온 기존 정치에 식상한 유권자들은 새로운 정치질서를 찾고 있다. 실제로 제11,12,14대 국회 때 황인성 양창식과 15대 국회에서 강현욱을 입성시켰다. 4·11총선에서는 통합진보당과 무소속에 2석을 내주었고, 새누리당 정운천 후보가 36%를 득표하며 기염(氣焰)을 올렸다. 이러한 민심기류의 변화는 민주당의 책임이 크다. 그런데도 이를 망각하고 '안심 모드'에 빠져 있는 것 아닌가. 민주당은 정권을 잡은 뒤에도 탈(脫)호남·전국정당을 외치며 오랜 지지자를 홀대했다. 호남을 얘기할 때는 전북을 배제했다. 그리고 또 다른 정국을 맞고 있다. 지금 많은 전북인들은 이 나라의 제1야당에 질문을 던진다. 현 정권을 심판하여 정권을 교체해야 한다고 하는데 민주당이 보여줄 '새 나라'는 어떤 모습인가. 전북을 살리기 위해 어떻게 하려는가. 이 지역이 감동할 수 있는 정책대안들을 제시해야 한다. 전북에 대한 차별과 소외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그 이후의 일은 불문가지(不問可知)다. 그렇게까지 악화되지 않도록 민주당의 분발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지역문제에 소홀한 도내 정치권에도 경종이 되고 있다. 전북을 따돌리고 호남을 끌고 가는 모습으로는 지지를 받을 수 없다. 이를 돕기 위해 민주당 지도부의 자세가 변해야 한다. 말뿐인 껴안기, 겉모습만의 포장이 언제까지 통할지 깊이 생각해 보기 바란다. 전북은 더 이상 호남의 변방이 아니기 때문이다. 싸늘해진 민심을 되돌리려면 결자해지(結者解之) 차원에서 결단이 필요하다. 몸을 낮추고, 몸을 던져야 한다. 정치공학이나 기교로 재미를 보던 시절은 지났다.

  • 오피니언
  • 최동성
  • 2012.07.02 23:02

새누리당의 전북

새누리당 대선 주자들의 전북 찾기가 한창이다. 저마다 오가는 길은 달라도 마음들은 12월 민심 잡기의 한곳에 가 있다. 그걸 한번쯤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로 보는 시각이 있지만 그렇게 탓할 일만은 아닐 것이란 생각도 만만치 않다. 그런 점에서 선거철이면 부산을 피우는 양태를 보며 새누리당이 과연 어떤 도식적인 이념의 틀로 전북에 접근하는지 주목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엊그제 이재오 의원이 방문 한 달 만에 다시 민생탐방에 나섰다. 일찌감치 대선 출마를 선언한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대선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된 직후 이곳을 다녀갔다.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과 정몽준 의원도 1주일 간격을 두고 차례로 구애행각을 벌였다. 앞사람 발자국을 따라 지나가듯 전통시장과 마을회관 등을 돌며 주민들과 손을 잡는 행각들이었다. 이들 예비후보들의 행적에 관통하는 것이 일면 유별나다. 새만금 3대 현안인 개발청 건립과 특별회계 설치, 분양가 인하에 공감하고 앞다퉈 지원을 약속한 것이다. "차기정부에서 할 일이면 챙기겠다"거나 "새만금을 동시대에 완성하려면 특별회계를 설치해야 한다", 그리고 "외국은 기업 유치를 위해 땅도 무상으로 주는 상황"이라는 등 지역의 요청에 호의적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이런 반응을 보고도 안타깝고 씁쓸하기조차 하다. 특별법 제정과 경제자유구역 지정 등 새만금 관련 현안이 2007년 제17대 대선 국면에서도 지역의 최대 이슈였기 때문이다. 중국 동부권에 대규모 특구가 속속 들어선다는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한 것이 언제 일인가. 그런데도 전북의 꿈인 새만금사업은 5년의 간극을 뛰어넘지 못하고 세월의 크레바스(crevasse)에서 정권의 잔해를 찾고 있는 것이다. 이러고도 각종 정보로 넘쳐날 것 같은 집권세력이 전북민심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건 뭐가 잘못돼도 아주 크게 잘못된 일이다. 그렇게 된 것은 아무리 많은 정보가 있어도 제 식으로 여론을 읽으려고 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래선지 그동안 지역발전과 직결되는 주요 정책에 대해서도 공허한 이념의 틀로 판단하려는 경향을 보여 왔다. 현실에는 관심이 없고 이념 자체가 목적이 되어 버렸다. 이처럼 이념의 프레임에 갇혀 있다 보니 현장을 있는 대로 이해하거나 이에 적절히 대응할 수도 없었다. 그러면서 다음 선거는 준비한다. 하지만 낡은 이념을 고치지 않고 선거를 장담하는 건 허세일 수 있다. 지금 새누리당에 가장 시급한 일은 갇혀 있는 이러한 이념의 프레임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새누리당이 그들 말대로 진심으로 대한민국을 사랑한다면 그 안에 있는 이 지역의 아픔과 고통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지난 총선에서 나는 살아있는 전북을 보았다. 우리 정치가 물줄기가 바뀌었다. 박 전 위원장이 "전북도민이 마음을 열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고 말한 대목과 얼추 상통한다. 한 때는 지역감정이, 그 다음은 이념문제가 한국 정치의 지형을 형성했지만 이제는 정치가 현실로 돌아왔다. 도민 각자가 "누가 우리의 현실 문제를 위해 나설 줄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어떤 정당에 볼모가 되는 것을 거부하고 스스로 자신의 편에 서는 것이다. 우리는 누가 되었든 바꿀 수 있다. 최소한 떨리는 마음으로 답답한 현실을 함께 바라볼 수 있는 정치인이 나와 주기를 기대한다. 정치공학적 이념만으로는 복잡한 현실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전북이 더 이상 새누리당의 '산토끼'로 남아서는 안 되는 이유다. 진정성을 갖고 전북을 찾고 움직여야 정권이 산다.

  • 오피니언
  • 최동성
  • 2012.05.28 23:02

정세균 다시 보기

선거가 광폭으로 휩쓸고 간 자리에 전북 출신 국회의원 26명이 새롭게 탄생했다. 수도권과 전북지역구, 비례대표를 모두 아울러서다. 인재들이 절실한 지역과 정치 현실에서 비교적 역량 있는 인물들의 낙선사태는 안타깝다. 그래선지 당선자 면면이 돋보인다. 그 중 민주당 정세균 전 대표가 여러 면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정세균은 대한민국의 '정치 1번지' 서울 종로에서 6선의 홍사덕 새누리당 후보를 꺾어 파란을 일으켰다. 게다가 이곳은 장면, 박순천, 윤보선, 김두한, 유진오, 장기영, 정일형, 민관식, 이종찬, 이민우, 이명박, 노무현 등 한국의 지도자 내지는 중진 정치인들이 역대 국회의원으로서 굵직한 정치행보를 보였던 지역이다. 그만큼 이번에 입지가 더 탄탄해졌다. 그는 그물눈처럼 촘촘하게 잘 짜인 정치인이다. 한국 정치판에서 그런 지도자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가난했지만 공부에 충실했고, 고려대 총학생회장을 지냈으며, 육군 병장으로 군복무를 마쳤다. 종합무역상사인 쌍용에서 실물경제를 익혔고, 같은 지역구에서 내리 4선을 낚았다. 재경과학기술정보농림해양수산건교통일외교통상국방위와 산자부 장관을 거쳐 식견을 쌓았다. 따라다니는 스캔들도 없다. 정치인 정세균의 강점은 이처럼 차근차근 기반을 다졌다는 점이다. 고집스럽게 한 계단 한 계단을 밟아 올라가는 계단형 전략을 써왔다. 정책 역량과 경력이 쌓이면 또 다른 도전을 하는 그런 꿈을 그려냈다. 수많은 정치인이 그랬던 엘리베이터 전략을 쓰지 않았다. 신중하고 지혜로운 처신이 아닐 수 없다. 최고의 국회의원에게 주는 '백봉 신사상'을 8차례나 수상했다.김대중-노무현 정권시절에는 정책위의장, 원내대표, 대표 등 주요 보직을 맡아 합리적인 리더십으로 당을 끌어오면서 친노(親盧)486 그룹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다. 친노-비노(非盧), 주류-비주류 사이에서 완충적인 활동이 기대되는 대목이다. 스스로 "통합과 연대는 내 전매특허"라고 밝혀 대선을 향한 시점에서 야권연대에도 힘을 싣고 있다.그러나 이런 긍정적인 인식에도 불구하고 대선도전 의사가 분명한 그에게 넘어야 할 벽이 있다. 아직은 '호남 출신'에다 관리형 리더라는 이미지가 강하다는 것이다. 수도권 입성으로 전국적 위상을 가진 잠룡으로 뛰어올랐지만 더욱 치열한 승부사 이미지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는 주변의 속마음을 읽어내야 한다. 대중적 지지도를 올리는 것도 과제다. 리더십을 보다 강화하기 위해서다. 역대 최장 기간 당을 이끌면서 제대로 공천권을 행사해 보지 못했다. 뚜렷한 계파도 없다. 튀는 발언도 자제해 왔다. 지지율이 좀처럼 오르지 않는 것은 판을 키우고 '자기 정치'를 안 했기 때문이라는 비판과 지적을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된다. 여기서 묻지 않을 수 없다. 계단의 추억만으로 과연 당의 변신과 국가번영의 불길을 지필 수 있을까. 그렇게 해서는 민주당과 한국정치에 국민공감의 충격을 줄 수 없다고 본다. 인삼이 홍삼으로 변하려면 한번 솥단지에 찌는 법제(法製)의 과정을 거쳐야 하듯 정치법제를 거쳐야 한다. 전북 최다 선수(選數)인 5선 당선자로도 앞에 놓인 계단은 높고 험하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 유치 실패와 새만금 사업 등에서 드러난 문제를 혁파할 수 있도록 새 리더십을 구축해야 한다. 신인들의 열정과 중진들의 경륜을 조화시키고 정치력을 결집해야 한다. 그것이 411민심을 따르는 길이자 전북정치인의 좌장 격으로 고향 발전과 국정에 책임을 지는 자세다. 그 성적표는 12월 대선이 될 것이다.

  • 오피니언
  • 최동성
  • 2012.04.23 23:02

박근혜의 사과

411 총선의 여야 요동이 치열하다. 권력의 자장(磁場)에 진입하려고 날개싸움을 벌이는 텃새와 철새들도 가관이다. 언제부터인가 이 나라는 선거에 목을 매었다. 선거가 최고의 가치인 나라로 변했다. 선거 때만 되면 나라가 뒤집어지듯 소용돌이친다. 표가 된다는 판단이면, 권력을 잡을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저지른다.새누리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엊그제 부산에서 말한 발언도 파장이 적지 않다. 그는 "산업화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피해를 입은 분들께 저는 항상 죄송한 마음을 가져왔다"며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집권시절에 대해 사과의 뜻을 밝혔다. 자신의 정치적 자산이면서 부채인 선친의 비판을 털고 가려는 의도가 보인다. 대선주자로서의 입지도 그만큼 확고해지기 때문이다.이런 언급은 상황에 따라 인식의 정도가 각별하고 민감해진다. 그래서인지 박 위원장은 지금의 시대정신 중 하나가 국민통합이라고 전제하고, "계층지역세대 간 격차가 자꾸 벌어지고 있어 국민이 하나가 되는 통합으로 가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면서 손잡을 일이 있다면 언제든 그러하겠다는 심경을 드러냈다. 선거철에 나온 발언이지만 아픈 과거를 짊어진 지역으로서 그 말맥을 되짚어 볼 대목이 있다. 전북은 시대의 통증을 앓는 황야의 이리처럼 낙후와 침체의 혐오스러운 고정관념들로 쇠잔의 길을 걸어왔다. 1960년대 이후 국가 산업화 과정에서 철저히 소외돼 왔다. 지역발전의 기반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것이다. 경부 축 위주의 국가정책과 수도권 일극 중심의 편중 개발정책 탓이 크다. 그간 정권마다 지역균형발전정책의 기조에서 공평성이 강조돼 왔지만 현실은 여전히 그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다른 지역에 비해 농림어업분야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도 그런 정책의 발로(發露)가 아닐까 싶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발효로 값싼 미국산 농수산물이 우리 시장을 잠식하면 이 분야의 피해도 클 수밖에 없다. 스스로의 노력 부족 보다는 누적된 국가정책의 결과로 개발 기회를 갖지 못해 소외감과 지역갈등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것은 공정성의 원칙에 배치된다. 불균형에 정의로운 처방이 내려질 때 사람들은 감격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박 위원장의 사과 발언이 진정성이 훼손되거나 왜곡되어서는 안 된다. 그가 추구하는 정치의 핵심이 '신뢰의 정치'와 '지역균형발전'이 아닌가. 테크닉도, 제스처도, 정치공학도 아니란 걸 보여줘야 한다. 그러려면 공정사회를 지향하는 생각을 총선과 대선에서 공약사항에 포함시켜야 한다. '신뢰'란 덕목은 매우 소중한 가치다. 그래서 불신의 파도는 배를 뒤집기 마련이다. 전북은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집단 사고의 중압감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갈등과 분열의 사회, 대결 일변도의 정치는 넌더리가 난다. 이번 총선에서 세대교체와 선거구도 변경을 통해 지역정치력을 한 단계 높이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기대한다. 바라는 미래가 분명히 온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모순과 불평등을 시정하여 공정한 사회로 틀을 바꾸려는 지역의 의지가 더할 나위 없이 팽배하다.박 위원장은 이에 맞춰 산업화 과정의 피해현상을 신비롭게 조명할 것이 아니라 휘장을 벗기고 실체를 볼 수 있게끔 해야 한다. 야당과 무소속의 검객들도 버티고 있다. 전북은 이 새 물결 위에 배를 띄워야 한다. 환경은 늘 변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변화하지 못한다면 외부로부터 또 다른 충격이 닥친다. 그렇게 되면 오도 가도 못하고 개펄에 얹힌 배가 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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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동성
  • 2012.03.19 23:02

화장발에 속으면 안 된다

"나는 그가 있기 때문에 아름다워지고 싶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내가 '완전'을 지향했던 것도 그를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 완전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가 없어야 된다는 것, 이것이 무엇보다도 나의 영혼을 당황케 하는 것이다." 앙드레 지드의 소설 '좁은 문'에 나오는 구절이다. 411 선거전에 뛰어든 사람들이 이 책을 다시 읽었으면 좋겠다. 그들은 좁은 문 아닌 큰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약자를 위해 지혜와 용기로 정권과 경쟁하고, 지역발전에 관해서는 진실을 과감히 수용하며, '선민 구락부(俱樂部)' 스타일 대신 질박한 서민의 생활방식을 실천하는, 그래서 위선과 권력싸움에 지친 사람들이 흔쾌히 다음 자리를 선사하는, 그런 멋있는 선거풍토를 우리는 정말 가질 수 없는 것일까. 현실은 시민의 목소리를 눈으로 듣고 있는, 지극히 눈에 띄지 않는 존재에 분노하고 있다. 못마땅한 지난날의 역정과 현 실태는 답답하고 스스로 비참하게 여겼을 뿐 아니라 회한(悔恨)처럼 마음속에 솟아오르는 과거에 쫓겨 정치를 향한 분노는 이미 차고 넘칠 정도다. 선거가 가까워지면서 '공정한 룰이 없다'는 불신과 불만이 적지 않다. 이런 불신과 불만은 분노의 또 다른 표출인 것이다.여야 모두 공천개혁을 통해 그 분노를 삭여주겠다고 분주하다. 그러나 선거를 두 달 남겨놓고 딴판으로 흐르고 있는 양상은 한심하고 우려스럽다. 석패율제 등 정치개혁안들의 도입이 사실상 좌절됐고, 국민에게 공천권을 돌려주자는 '오픈 프라이머리'(여야 동시 완전 개방형 경선제) 등 다른 개혁과제들이 무산됐다. 저마다 공천심사에 관심이 쏠려 있고 정치쇄신은 강 건너 불같다.현역 물갈이는 전북에서도 단연 핵심이다. 최대 기반으로 삼아온 민주당이 지탄을 받아왔던 이유에서다. 그래서 기득권을 내려놓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한 인적 쇄신작업은 국민적 공감대를 갖기 어려울 것이다. 정세균정동영 의원이 험지(險地)를 택했고, 장세환 의원이 출마를 접어 물갈이론은 무게가 실리고 있다. 민주당에서 정치를 계속해온 다른 중진들도 책임을 공유해야 마땅하다.그것만으로는 미흡하다. 총선은 단순한 세대교체가 아니라 지역정치 질서 재편의 계기가 돼야 한다. 현안들이 줄줄이 틀어지거나 꺾이고 있다. 하지만 정치권은 자신의 입신양명(立身揚名)이나 대선에 빠져 있다. 매니페스토(구체적인 선거 공약) 선거를 주도해 왔던 시민사회 영역마저 당사자로 나서면서 정책검증도 한계다. 한데, 애석하게도 '어느 파는 안 된다' '다선은 물러나라'는 소리뿐이다. 편 가르고, 찢고, 내쫓을 궁리만 하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얼마나 선거후유증에 시달려 왔는가. 바로 그런 행태로 인해 실패했던 기억이 생생한데 그 전철을 또 밟고 있다. 이제 정치인들의 오만이 '묻지마 투표'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되돌아봐야 한다. 습관적 투표가 반복되면서 미련과 후회도 그만큼 누적돼 왔다. 유권자가 깨어 있음을 보여줘야 할 때다. 그렇지 못하면 힘겨운 시기를 이어가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정치판의 화장발에 속으면 안 된다. 약점은 감추고, 강점은 살려 자신만의 매력을 돋보이게 하는 게 화장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정치에 큰 물결을 일으키려면 상황이 끄는 대로 끌려갈 수는 없다. 완전을 이룩하기 위해 '없어야 되는' 후보를 지금부터 솎아내야 한다. 그러지 않고는 전북은 언제까지나 분노의 땅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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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동성
  • 2012.02.13 23:02

관광전북을 위하여

며칠 후면 새로운 삶과 새로운 세상이다. 스멀스멀 피어나는 호기심이 새것을 잇대려는 의욕으로 변한다. 이 새롭고 신선한 시간대를 관광으로 누리려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성탄절 전야(前夜)가 만들어낸 설경도 기어이 이들을 밖으로 끌어내고야 말았다. 관광은 인간의 욕망을 억제하지 못하게 하는 마술적인 효과가 있어 보인다. 새해는 정부가 공식 지정한 '전북 방문의 해'이다. 성공적인 해로 만들기 위해 민관은 벌써부터 머리를 싸매고 있다. 지역의 유력한 관광자원을 되돌아보고 관광객들을 불러올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닐 수 없다. 과거에는 자연풍경이나 풍습문물 등을 구경하는 관광이었지만, 이제는 그 외연도 넓어지고 있다. 전북은 지금 어느 것으로 방문 묘책을 내걸고 있는가. 그동안 관광객들은 새만금 방조제와 전주한옥마을 변산반도국립공원 등 일부 장소에 치우친 감이 없지 않았다. 새만금 관광레저단지도 정부부처마다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지만 계획이 반복되거나 중복되면서 '그림만 그리다 날 새겠다'는 지적을 면치 못하고 있다.그러나 누가 뭐래도 관광산업은 21세기 전략산업이다. 물건이 아닌 사람의 이동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엄청난 부가가치가 기대된다. 전략은 실행이 없다면 그저 종잇장에 불과하듯 전북의 관광산업도 더욱 선진화되고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이에 걸맞은 관심과 투자가 뒤따라야 한다. 대책과 말뿐으로서는 관광전북의 미래를 보장받을 수 없다. 전북은 자연관광 자원과 문화적 자원을 중심으로 하드웨어 개발에 힘을 쏟았다. 하지만 현대적 관광은 단순한 자연관상이 아니라 인간생활의 어떤 목적을 위해 사회적경제적 관련을 가지고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의욕을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바탕으로 한 관광 상품에 주력해야 한다.전북은 우선 정부정책의 곁불을 쬐면서 수도권에 집중된 외래 관광객을 분산시키는 접근방안이 필요하다. 도시 관광이 일반화된 현상이지만, 지역관광에서 세계를 찾을 수 있는 전략추구가 바람직할 것이다. 그리고 인트라 바운드(intra-bound), 곧 내 나라 국민들이 내 나라를 더 자주, 더 편리하게 돌아보도록 해야 한다. 내 나라 국민들이 자주 찾지 않는 곳은 외국인들도 찾지 않는다. 헌데 우리 현실은 이를 체계적으로 활용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관광이나 레저차원에서 잠재가치가 높아도 단절된 폐쇄적 공간으로 남아있는 경우가 있다. 구슬은 꿰어야 보배다. 전북에는 옥구슬 같은 매력적인 명소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완만한 산자락과 잔잔한 호수의 경치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옥정호를 꼽을 수 있다. 정부는 최근 이곳을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이어 '낭만의 도로'로 선정했다. 새로 건설된 운암대교도 명물로 거듭난다. 이에 맞춰 10년째 상수원 보호구역에 묶인 옥정호 주변을 개발하기 위해 전북도가 연차별 국가예산 확보 계획에 나섰다는 언론보도는 그런 점에서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옥정호를 사진작가들에게만 보여줄 일은 아니다. 다음달 11일이면 운암~순창간 확장도로가 시원스럽게 뚫린다. 마땅한 관광휴양지가 없는 전주시민과 주변 도민들은 쉽게 접근할 수 있어 많은 관광객이 예상된다. 인근 모악산만 다닐 수 없는 일 아닌가. 최고의 생태관광지로 탈바꿈한 춘천 남이섬의 사례를 접목시켜 볼 필요가 있다. 관광산업은 지역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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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동성
  • 2011.12.26 23:02

기부의 마중물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기부가 가히 충격적이다. 수천억원대 재산의 절반을 뚝 잘라 사회에 내놓았다. 현 주가로 따지면 1500억원 1규모다. 무료백신을 만든 대가로 절로 모인 재물이다. 우리사회의 기부문화 확산을 자극하는 또 하나의 움직임으로 신선하다. 환영할 만한 일이다. 오랫동안 가슴에 품어온 결심을 실천에 옮겼다는 점에서 감동으로 다가온다. 무엇보다 많은 혜택을 받은 입장에서 앞장서서 공동체를 위해 공헌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책무)가 필요한 때라고 말한 지적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자신의 작은 생각이 마중물이 되어 많은 동참자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대로 기부문화의 디딤돌이 되길 기대한다.이번 예상치 못한 기부 행보를 지켜보는 정치권은 각종 정치공학적 풍문으로 무성하다. 폭발적인 지지율을 보이는 상황에서 그의 진의와 무관하게 정치적 시각에서 이런저런 해석이 나오는 건 무리가 아니다. 다만 정치권에 진출하려는 계산 깔린 포석이라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편협하고 작위적이다. 기부를 낡은 좌우이념의 틀에 집어넣지 말고 단순 자선사업으로 묶어두었으면 한다. 설령 정치인의 기부라 해도 꼭 나쁘게 볼 이유가 없다. 대통령 자격이 기부와 선행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걸 국민들은 잘 알 것이다. 우리나라는 미국 등 서구와 달리 유달리 개인 기부가 적다. 이번 행위가 정치적 풀이와 관계없이 나눔의 문화가 각계각층으로 퍼지는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같은 맥락에서 지역에서도 개인 기부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데 이바지 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 전북에서의 기부는 어떠한가. 우리 주위엔 기부자체를 행복으로 여기고 불우한 이웃에게 따뜻한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많다. 법정 모금기관인 전라북도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집계한 기부금액을 보면 지난 4년간 1.6배 늘었다. 2006년 모금액이 39억9천여만원이었던 것이 지난해엔 65억4천여만원이 모여들었다. 전체 규모와 개인 기부금이 늘어난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으로 변화된 기부의식을 설명하기는 부족하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부유층의 참여가 여전히 소극적이라는 사회적 평가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지난달, 2008년부터 누적 기부액 1000만원 이상 개인 고액 기부자 모임인 나눔리더스 클럽을 22명으로 구성했는데, 3년전까지 이런 개인은 거의 없었다. 이 기간 1억원 이상 개인 기부자들도 별도 그룹으로 분류하고 있지만 도내는 아직 등록자가 없다. 물론 기부를 양극화 문제의 해결책으로 바라보는 건 경계해야 한다. 근본적 대안 없이 부자의 선의에 기대서는 구조적인 문제를 풀어갈 수 없다. 바람직하지도 않다. 하지만 기부를 통한 순수한 나눔은 값지고 소중하다. 미래의 기부가 가진 자의 시혜적 차원이 아닌 모든 사람이 함께 참여하는 관점에서 볼 때 서로 협력해야하는 이유다. 우리 사회엔 정치인의 재산기부에 대해 부정적인 기억들이 적지 않다. 지금은 기부하는 자연인 안철수와 안철수의 정치적 현상을 각각 설명할 수 있을 만큼의 성숙도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고단한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을 보듬으려는 제2, 제3의 안철수들이 마중물을 따라 등장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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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동성
  • 2011.11.21 23:02

[최동성 칼럼] 미안해, 순자씨

제92회 전국체육대회가 폐막한 12일 군산 은파유원지는 잠잠했다. 그 호숫가에서 길러낸 카누종목이 전국체전 12연패의 위업을 달성했다는 특별한 분위기는 없었다. 하늘이 낮게 내려앉아 찌푸린 오후였지만 산책이나 운동하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부산하고, 또 다른 계절을 끌고 가는 갈바람만이 황량하게 지나쳤다.우리나라 카누의 대들보 이순자(34전북체육회)가 고마웠다. 태극기와 전북의 깃발을 몸에 두르고 경기장을 돌 때마다 우리는 모두 행복했다. 전북이 자랑스러웠다. 해준 것도 없는데 이 나라, 우리 지역 이름을 떨쳤구나. 당신의 눈에 눈물이 맺혔을 때는 가슴이 아팠다. 얼마나 힘들었나. 벽돌보다 단단한 굳은살 손바닥을 만들기 위해 흘린 땀은 또 얼마나 될까. 곧 끊어질 듯한 긴장, 몰려오는 중압감, 그걸 용케 견디어 주었구나. 그 땀과 눈물에 고마울 따름이다.그러나 호수 언저리 '전라북도 카누 전용훈련장'에서 만난 이순자는 의외로 냉소 섞인 태도였다. 웬 호들갑이냐고 뜨악해 한다. 그런 저런 고민이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읽혀졌다. 이번 체전에서 주 종목인 여자일반부 K1-500m와 K4-500m 경기에서 각각 금, 은메달 1개씩을 낚아 노장의 세월을 무색케 한 선수다. 지난달 전국카누선수권대회에서는 한국 신기록을 냈다. 2009년엔 이란 아시안 게임 K4-1000m에서 가장 빠르게 골인하는 등 14년간 태극마크의 자존을 지켜왔다.그런데도 그는 왜 그렇게 유쾌하지 않을까. 어설픈 현실을 드러내는 게 즐거운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엘리트 선수가 갖출 시대소명을 토로하면서도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에 기가 질렸다. 열악한 훈련환경이 무작정 연장되는 걸 가냘픈 어깨에 짐을 진 채 지켜볼 따름이었다. 임시 성장 호르몬처럼 주입되는 지원체계가 제한적이어서 허망한 실제모습을 충격 없이는 차마 혀끝에 올리지 못했다.훈련장에 세워진 무허가 철제(60여㎡)와 슬레이트 블록(130여㎡) 두 건물은 체육전북을 꿈꾸는 자들의 누추한 욕망을 적나라하게 파헤치며 스스로 성찰하도록 이끌었다. 지붕과 벽면 곳곳이 무너지고 망가져 하늘과 외부로 바로 연결됐다. 땅에 처박힌 출입구 문은 줄로 묶어 오갈 땐 풀고 다시 맨다. 전기시설은 아예 볼 수 없다. 비바람 몰아치는 공간은 쓸모가 없을 광경이었다. 패들(노)과 카누는 야외보관으로 코팅이 벗겨지고 뱃바닥이 갈라진다. 수년째 긴 터널을 이렇게 황망히 걸어왔을 뿐이다.미래 불안에서 탈출할 생각으로도 선수들은 마냥 불안하다. 실업팀이 없어 다른 지역으로 진출하든지, 중도 포기할 수밖에 없다. 선수층이 탄탄한데도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지 괴로움의 연속이다. 비인기종목으로 해석하는 입장은 이에 대해 무어라 응답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런 방관자적 자세가 이런 상황을 초래하게 했을지도 모른다.우리가 얻을 수 있는 당장의 이익과 우리가 잃을 수 있는 가치의 무게를 저울질해 볼 필요가 있다. 애매한 변론으로 얼버무리고 지나쳐선 안 된다. 그때그때 쏟아내는 정책메뉴들과 운영체계의 변덕을 감당하면서 여기까지 버텨온 것이 경이롭다. 대부분 지역에 설치된 카누훈련원과 실업팀 창단이 과제다. 선수들을 잘 대접해 전북카누가 힘차게 물살을 가르게 해야 한다. 체육은 결코 진공 속에서 자라지 않는다./ 최동성(기획사업국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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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10.17 23:02

[최동성 칼럼] 조상숭배의 형식

추석이 다가온다. 종교의식 치르듯 올해도 고향 길에 오른다. 실물경제 경고음이 귀성객들의 마음을 바닥으로 내려놓지만 민족 대이동은 변함없을 것이다. 그곳엔 조상이 있고 반가운 부모 형제와 친척들이 있기 때문이다. 한 데 모여 차례와 성묘를 통한 산 자와 죽은 자의 공동체 확인은 자신과 공동체를 성숙하게 만들어 새삼 '민족의 명절'을 실감하게 한다.그렇지만 말이 명절이지 대물림 행사를 치러야 하는 그 시간은 누구에게나 흐뭇하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는 명절이 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들게 제례(祭禮), 특히 조상 제사로 일관되는 국가라는 이유에서다. 유교 문명의 종주국인 중국과 주변국인 일본에서도 조상 제사가 목격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조상 제사를 지내는 유일한 나라가 된 까닭, 오늘날까지도 후손들이 위패와 지방(紙榜) 앞에 은덕을 비는 까닭을 정작 잘 알지 못하겠다. 감격스럽고 위엄스러운 분위기가 있을 것이다. 반면 남녀의 불합리한 역할, 가족 간 불공평한 노력봉사와 비용조달에 가슴앓이를 하고 품앗이해야 하는 번거로움에 소소한 갈등이 나오는 게 요즘 추세다. 안쓰러운 몸짓들이다.고려 말까지도 명절은 하늘과 자연을 경외하는 집단축제였다. 불교에서 유교로 전환한 조선은 창궐했던 무속과 민간신앙을 일소하고 제천(祭天)과 제사(祭祀)로 전격 대치했다. 15세기 말 성종은 '경국대전'을 편찬해 이것을 국법으로 반포하기에 이르렀다. 조상숭배가 통치 이데올로기의 중심에 놓이자 봉제사는 곧 가문의 위세경쟁으로 변한 것이다.21세기 우리나라는 다종교사회로 바뀌었다. 그런 과정에서 유교는 제천기능을 다른 종교에 넘겨주고 주로 생활의례인 제례로 살아 있다. 명절이라는 축제를 상차림 형식의 의례로 종종걸음 쳐야하는 역사적 배경이다. 하지만 충군효친(忠君孝親) 시대의 규율 수단이었던 봉제사가 새로운 환경에 직면하고 있다. 이제는 그런 중압감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사회란 한 시점에서 완성되거나 끝나는 것이 아니라 늘 끊임없는 변화 속에 있다. 추석은 자신을 되돌아보는 때이다. 근원적인 자기성찰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명절은 그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다. 포기하든, 지키고 싶든 이 시점의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다음 명절은 또 달라지는 것이다. 진정으로 지키고 싶은 가치가 뚜렷하게 부각될수록 조상숭배의 형식은 그만큼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실용성과 더불어 산업사회의 핵심가치로 떠오른 편의성을 뒷받침 할 수 있는 것은 분별력이다. 실용성편의성이 만나야 할 무대는 우리들의 평가영역이다. 이를 판단하는 데는 세월이 필요하다.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분별력 발휘를 앞당기기 위해서는 결국 사회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물론 누구나 과거의 방식에 익숙해 있다. 가문의 전통과 정신을 찾는 풍속이나 관행에서는 더욱 집착한다. 그러나 환경이 달라졌는데도 과거 패턴과 똑같이 반응한다면 새 환경에서 그 소중한 가치를 유지하기 어렵다. 위험하다고 가지 않으면 미래세대에 대한 모욕이다. 조상숭배의 형식적 의미가 많이 퇴색했다. 절차와 횟수가 간결해지고 제사음식 대행업소도 생겨났다. 이런 변화의 시기에 '명절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형식의 변화가 관심사다./ 최동성(본지 기획사업국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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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동성
  • 2011.09.05 23:02

[최동성 칼럼] 실패의 덫

더위가 불덩어리 같다. 여름이 고비를 지나고 있다. 가을이 오면 꺾일 것이다. 계절처럼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시기를 잘못 알아 망가지는 사람을 흔히 본다. 지역도 마찬가지다. 기왕의 일을 붙잡고 있다면 때를 모르는 짓이다. 시대를 너무 앞질러도 문제다. 때의 선택이 그런 결정의 핵심이다. 지혜만이 그 때를 구별하게 한다.전북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덫에 걸린 듯하다. 2009년 통합이후 본사유치가 줄곧 도정의 중심이었다. 압도적인 이슈로 지속됐다. 종합실천계획이 확정된 새만금사업과 함께 두개의 트랙으로 펼쳐졌다. 결과는 무산이고 실패다. 2개월이 지나도록 후유증에서 벗어나지도 못하고 있다. 이럴 때 실패는 덫과 같다.우리 사회는 실패를 쉽게 용인하지 않는 문화가 있다. 천재도 10개쯤 시도하다 하나를 건진다는데 하나만 실패해도 가만두지 않는다. 다들 말로는 '실패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도 행동은 다르다. 한두 번의 실패에 대해서도 상당수가 '잘난 척하더니'하는 반응부터 나온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문화가 한국의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되는 걸 막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 실패가 용납되지 않으면 누가 새로운 일에 도전하겠는가.전북은 LH문제에 너무 매몰돼 있다. 실패라는 짐이 무겁다. 전진할 수 없다. 유치실패의 원인은 이미 드러났다. 전술과 전략에서 부실했고 정치권의 응집력 역시 허술했다는 것이다. 비상대책위원회와 전북애향운동본부가 사과의 자리를 마련하고 도지사와 국회의원, 도의원, 시장군수, 시군의장단이 한꺼번에 큰절로 사죄했다.그럼에도 사태를 비판하는 쪽은 여전히 책임론을 붙들고 있다. 사죄 자체가 형식적이고 진정성이 떨어진다는 판단에서다. 총력전을 폈지만 결국 도민들에게 상실감과 피로감까지 안겨줬다는 차원이다. 공감이 간다. 추진측은 잘못을 확실하고 겸허하게 시인해야 한다. 그래야 또 하나의 강을 건널 수 있다는 건 당연하다.문제는 전북이 잘 살기 위한 국면 전환에 있다. 대규모 국책사업 발굴이 절박한 과제다. '제2의 새만금'이 없다. LH의 확실한 후속대책도 기대해야 한다. 다른 지역은 내년 총대선을 앞두고 정책발굴에 혈안이다. 이리 뺏기고 저리 놓치는 경우가 우려스럽다. 설상가상(雪上加霜)은 경계해야 한다.언제까지 이렇게 매달려 있어서는 안 된다. LH 말고는 걱정할 일이 없는가. 시급히 해야 할 일이 쌓여 있다.한 발 전진하기 위해서는 실패의 과거를 끊어야만 한다. 단절의 결단 없이는 미망(迷妄)의 늪에서 탈출하기 어렵다. 이른바 '일꾼'들이 자책감에 젖어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면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이젠 실패의 덫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물론 때를 안다는 건 쉽지 않다. 분명한 것은 충동적이어서는 안 된다. 감정에 치우쳐 결정한 일은 잘 될 수가 없다. 냉철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오기로는 결코 때를 볼 수 없다. 분수에 맞는 일이 어떤 것인가를 곰곰이 생각해야 한다. 지역부흥에 관한 일이기 때문이다.이 덫을 푸는데 우리는 지혜를 모아야 할 의무가 있다./ 최동성(본지 기획사업국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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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8.01 23:02

[최동성 칼럼] 회문산에 가면 6·25가 보인다

순창 회문산 길은 적막했다. 가파른 골짜기 곳곳이 울창한 숲 따라 엄숙한 정적이 흘렀다. 장맛비 사이로 내린 햇살은 따가울 정도로 선명했다. 625전쟁 61주년을 이틀 앞둔 23일. 일상을 털고 우리 민족의 역사적 비극을 거슬러 찾아 나섰다. 거기엔 이념의 전선(戰線)이 살아 있었다.당연히 잘 안다고 생각했던 회문산(해발 837m)이었지만 그곳 역사의 발자취를 더듬으면서 그걸 너무 몰랐고, 잊고 살았던 내가 부끄러웠다. 스스로 박제화 된 전쟁 이미지에 젖어 있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었다. 허나 어떤 역사적 사건도 이념과 정치적 현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걸 체험한 점에서 답사의 위안을 삼는다.회문산은 625전쟁 당시 지리산과 함께 최대의 빨치산 근거지였다. 남한을 공산화하려고 했던 무장 게릴라들의 본거지로서 실화소설 '남부군'의 무대가 될 만큼 유난히 민족상잔의 상처가 깊게 파인 곳이다. 어쩌면 '빨치산 아이콘'이 아닐 수 없다.빨치산은 1948년 10월 여순반란사건에서 패퇴한 남로당 계열 패잔병으로 일부가 산세 험한 이 산에 은거했다. 본격적인 활동은 625전쟁 발발 이후다. 700명 이상을 헤아렸던 이들은 국군과 경찰을 기습하고 민간인 약탈과 살인을 일삼았다. 그러나 토벌작전 끝에 1954년 1월 사실상 종말에 이르렀다.빨치산은 이 과정에서 정상 부근 가막골에 조선노동당 전북도당 유격대 사령부와 임시 간부학교인 정치훈련원을 세워 활동의 근거로 삼았다. 가보려고 했어도 실체가 없어 접근이 불가능했다. 그곳 가는 길에는 빨치산들이 썼음직한 비트들이 실감났다.산림청과 순창군은 11년 전 중턱인 회문산 자연휴양림에 유격대 사령부를 복원했다. 회문산의 상징물로서 탐방객에게 전쟁의 상처와 아픔을 반공차원에서 기억해 내려는 취지였다. 그러나 이게 어긋났다. 왜곡되어 문제점을 노출시킨 것이다.비전향장기수들이 '남녘 통일 애국열사(빨치산) 추모제'를 이곳에서 열고 모중학교 교사가 학생들을 인솔해 파문을 일으켰다. 일부 빨치산 출신자들은 추종자들을 동반해서 의식화 장소로도 악용했다. 회문산 일대를 그들의 성역화하자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판국이다.그런 빨치산 사령부 모형물을 걷어냈다. 산림청은 그 자리에 '회문산 역사관'을 짓기로 하고 막바지에 있다. 새롭게 탈바꿈한다는 시도다. 역사관에는 빨치산의 생성소멸과정과 이들로 인한 피해내용을 담은 영상시설 등을 갖추고 있었다. 건전한 역사안보의식을 기르는 산 교육장이 주목적이다. 하산하면서 비목공원과 양민희생자 위령탑에 들러 1만여 회의 빨치산 토벌 전투에서 숨져간 넋들을 위로하고 돌아왔다.625는 휴전으로 끝난 전쟁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단순한 과거가 아니다. 현재 진행형으로 보아야 한다. 천안함 폭침연평도 포격사태야말로 이에 대한 산증인이 아닌가. 625와 닮은꼴이다. 북한이 몰래 기습하고 자신과 무관하다고 잡아떼는 꼴이 똑 같다. 그런 것들이 우리 사회에서조차 괴담수준의 유언비어(流言蜚語)로 덧칠되고 있어 유감이다. 어떤 이념과 논리도 국가안보 보다 우선일 순 없기 때문이다.역사관의 영상물 클로징 멘트가 머릿속에 생생하다. "회문산의 빨치산은 사라졌지만 아직 사라지지 않는 빨치산을 기억해야 한다. 아직도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최동성(기획사업국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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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6.27 23:02

[최동성 칼럼] LH갈등, 수습이 중요하다

온 나라가 찢어져 싸우는 갈등양상이다. 국책사업을 벌일 때마다 나타나는 갈등구조가 반복되는 게 걱정스럽다. '불복종운동'까지 이어지는 탈락지역 저항이 예상수위를 넘고 있다. 사태가 이렇게 악화된 데는 일단 정부 책임이 크다. 갈등의 전조(前兆)를 알고도 제대로 대응치 못했기 때문이다.대개의 나쁜 일에는 조짐들이 있다. '하인리히 법칙'이라고 한다. 정부도 국책사업을 추진하면서 그런 전조들을 경험했을 것이다. 물론 대형 국책사업에 대한 입지 선정은 본질적으로 지역간 갈등 유발적 요소를 안고 있다. 그래서 정부의 확고한 원칙과 일관성, 절차적 투명성과 공정성이 요구되는 것 아닌가.그러나 정부의 모습은 그렇지 못하다. 백지화된 동남권 신공항 건설과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과학벨트) 입지, 한국토지주택공사(LH) 본사 이전 등 '빅3'사업에서 난맥상을 드러냈다. 기회주의적이다. 이런 무원칙과 일관성 결여는 필연적으로 '돌려 막기'식 이나 '윗돌 빼서 아랫돌 괴기'식의 행정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 점에서 LH 일괄이전 결정이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에 성난 경남을 무마하기 위한 포석으로 비춰진 것이다.지역발전위원회 위원단은 바지저고리로 만들었다. 정부는 확정 전에 왜 미리 "일괄 배치다" "진주로 간다"며 흘리고 다녔는가. 결정 배경도 "통합시킨 회사를 다시 둘로 쪼개면 경영효율성이 크게 떨어진다"고 이유를 내놓았다. 그러고선 사흘 후 발표한 과학벨트 입지선정은 경영효율성 잣대가 아닌 '분산배치'라는 지역적 안배가 이뤄졌다. 적용 기준의 진정성을 찾기 어렵다.정부 약속만 믿고 분산배치를 요구해온 전북의 자존심은 아랑곳없다. 그러니 '사전 각본' 의혹을 제기하고 삭발하는 장면이 반복되지 않았는가. 반발 초점이 계획을 수정한 정부 불신에 맞춰져 있다. 정부는 절차 시비를 자초했다. 원칙과 약속을 뭉개는 행태들이 용렬하다. 그렇게 뻔한 결론을 위해 왜 그리 머나먼 길을 돌아왔는지 이해할 수 없다. 진작 결정을 못 내리고 질질 끌어온 정부의 리더십에 문제가 있다.지방자치시대에 정부의 일방적 통행은 옳지 않다. 이번에도 불가피한 경우라면 전북과 경남의 상호 유익한 관계를 위한 과학적 설득이나 상호이해를 증진시키는 상황을 마련해야 했다. 그래야 갈등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었다. 이른바 홍보를 넘어선 PR(Public Relations. 공중관계성) 정신을 고민해야 했던 것이다.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전북엔 결국 상처만 남겼다. 격앙된 감정을 누그러뜨리고 갈등과 혼란에 대한 수습이 중요하다. 그건 결자해지(結者解之)해야 맞다. 맺은 정부가 풀어야 한다. 총리 담화문에도 정부 사과는 빠졌다. 통치는 선택이지만 혼선을 초래한 정부가 진심으로 사과할 필요가 있다. 스스로 제 풀에 떨어질 것이라고 바라는 형국이라면 그건 망상이다.전북의 항변 또한 절제가 필요하다. 그것이 지나치면 국가정책의 왜곡을 낳기 쉽다. 높은 산은 돌아갈 줄 아는 지혜도 가져야 한다. 국민연금관리공단 재배치와 세수(稅收)보전 방안을 보면 헛물만 켠 건 아니다. 과제는 투쟁 포기의 진정성과 투지다. 이것이 결합되면 감동의 리더십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책임론은 그다음 일이다./ 최동성(본지 기획사업국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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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5.23 23:02

[최동성 칼럼] 도지사 삭발

전북 도지사가 또다시 삭발했다. 강현욱 전 지사가 2003년 새만금 사업의 지속추진을 주장하며 삭발한지 8년만의 일이다. 김완주 지사가 지난 6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 분산배치를 위한 범도민 비상시국 선포식에서 삭발한 것은 절박감 섞인 호소의 이유에서다. 극단과 위기가 첨예하게 중첩된 사안이기에 지역 반응도 예사롭지 않다.도지사는 도정 최고 전략가다. 그 자리는 지역의 발전과 장래를 위해 결단한다. 결단은 고뇌와 용기를 반영하게 된다. 고뇌 끝에 선택하는 결단은 지도력의 핵심으로 리더십의 매력을 생산하기도 한다. 고뇌의 치열함과 결단의 비장함만큼 리더십은 빛난다는 것이다. 이런 리더십의 신뢰는 반전의 묘미가 있다. 도지사 삭발도 그 사례다.물론 삭발의 단안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김 지사가 주장하는 "LH 본사를 껴안고 죽을지언정 결코 내놓을 수 없다"는 강경한 결심은 특유의 '냉혈'적 성품도 담겨있다는 인상이 짙다. 그러나 지난 반세기 동안 정부정책에서 소외된 지역의 억울함과 박탈감이 민심바닥에 깔려있다는 게 맞다. 삭발은 이런 멍든 상황의 새로운 출구를 외치는 도민의 염원과 의지가 함께 한 투혼이라고 본다.비난반발 가능성을 무릅쓰고 삭발까지 갈 수밖에 없는 지역분위기도 안타깝다. 하지만 일상적으로 서로 양보 없는 싸움에선 극적 긴박감과 승부사의 비장함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게 다반사다. 민심은 또한 양면적이다. 다수 주민은 도지사가 조용히 대응하길 바라면서 한편 결단의 결연함을 원한다. 문제는 갈수록 전북과 경남 두 곳의 전방위 압박이 맹렬해지고 있다는 점이다.여기에는 정부 책임이 크다. 그처럼 어설펐다. 우선 원칙이 없다. LH의 지방이전은 2005년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한국토지공사는 전북에, 대한주택공사는 경남으로 이전키로 한 계획이다. 2009년 이들 공기업이 통합되고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은 그해 몇 차례 '분산배치가 기본 방향'이라고 확인처럼 밝혔다. '사내 독립(CIC Company in Company)제도'를 통한 분산배치의 차원이다. 그런 방침을 지난해엔 정운찬 전 총리와 정 장관 등이 '한곳으로 옮기는 게 바람직하다'며 얘기를 바꿨다. 약속을 스스로 깼으니 앞으로 정부의 말을 누가 믿겠는가.게다가 이 결정을 차일피일 끌고 있는 것도 문제다. 정 장관은 지난해 9월 '연말 문제 매듭'을 밝혔지만 지금껏 해법이 늦어지고 있다. 지역발전위의 구성, 협상재개, 의견청취 등 번다한 절차를 거쳐 6월말까지 결판낸다고 한다. 이건 지역을 더욱 지치게 만든다. LH통합 이후 2년 동안 양측 의견을 들어왔고, 입장 내용도 검토될 만큼 진행돼 왔다고 생각한다. 미룰 이유가 없다.문제해결은 쾌도난마(快刀亂麻)에 있다. 엉킨 실은 칼로 끊어야 한다. 더 이상 미망의 모습은 신뢰의 위험을 겪는다. 약속은 지켜가야 한다. 지역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정책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하는 것은 책임 있는 당국이 할 일이 아니다. 그때그때 시류만 이용하려 해서도 안 된다. 더군다나 지역이기주의로 몰아가는 접근방식은 달라져야 한다. 분산배치가 상생과 공존을 감안한 현실적 대안이라고 본다. 그것이 "정부 약속의 번복으로 전북 도지사가 삭발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있는 길이다./ 최동성(본지 기획사업국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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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4.18 23:02

[최동성 칼럼] 이제 협상은 포기했나

전주 버스파업이 또 하나의 지역 갈등사태로 기록되고 있다. 새만금사업과 부안 방폐장(방사성폐기물관리시설) 및 2009년 전주완주 통합추진에 이어 새로운 갈등상황을 겪고 있는 것이다. 누구는 울화통이 터지고, 누구는 답답함을 호소하고, 성깔 있는 시민들은 곧장 촛불광장으로 몰려갔다.문제는 파업 국면이 3개월 넘도록 퇴로를 찾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이번 파업의 최대 쟁점은 '노조 인정'이지만 서로 피해야 할 파국의 길로 행군을 언제까지 해야 하는가? 애꿎은 서민들의 불편은 아예 아랑곳없는가 싶다. 각계에서 내놓은 처방들도 무용지물 격이다. 갈수록 당사자들에 대한 사회적 압박수위만 높아가는 양상이다. 그래도 출구전략은 보이질 않는다. 노사가 업계의 공공성 보다는 복수노조의 주도권 확보와 노조불인정을 염두에 둔 정치공학적 선택이었기 때문이다.올 7월 복수노조 시대가 얼마 안 남고 여론은 더욱 악화되고 있으니 안타까울 것이다. 그러니 단기적인 성과를 노리게 되고 힘의 유지를 위해 무리를 하게 된다. 이것이 노사분쟁의 덫이다. 이 덫에 걸리지 않으려면 현실을 냉철하게 살필 수 있는 현명함이 필요하다. 그간 노사관계를 돌아보면 너무나 쉽고 간단하게 생각했다가 장애물에 부딪혀 온 상태의 연속이었다. 그러니 신뢰가 떨어진 것이다.시대의 변화를 깨닫는 일도 중요하다. 노동자의 위상이 달라진 것이다. 1960, 70년대의 노동자를 가신(家臣)적 노동자이었다고 말한다면 지금의 노동자들은 동반(同伴)적 노동자이다. 동반적 권리를 주장하는 노동자에게 가신적 일방주의는 통하지 않는다. 채찍과 당근만으로 조종할 수 있는 단순한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몰아붙이고 끌고 가려는 것 보다는 설득하면서 함께 가는 법을 찾을 수밖에 없다.우리는 이런 일을 할 때 원칙과 타협이라는 상반된 두 가치 때문에 고민하곤 한다. 원칙을 지켜야 할 문제는 원칙을 지키고, 타협해야 할 문제는 타협을 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법을 지키는 문제에서는 원칙을 고수하되, 새로운 환경을 만드는 문제에서는 협상을 통해 타협을 해야 한다. 힘으로 밀어붙이기 위해 작위적 수단을 불러들이거나 법정을 선호하는 일은 사태를 한층 어렵게 만들 뿐이다.버스운행 정상화가 급선무다. 이제는 노사가 협상의 자리로 돌아와야 한다. 대표세력이 모여 정상화를 위해 진정한 태도를 보여주길 바란다. 갈등구조에서 합의도출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게다. 그러나 손 잡고 사업장으로 돌아가야 할 상대가 아닌가. 세계적 협상가인 허브 코헨은 자신의 저서 '협상의 법칙'에서 "협상은 당신에게 무엇인가를 원하는 상대로부터 당신에 대한 호의 그리고 당신이 원하는 무언가를 얻어내는 일"이라고 했다. 우리는 종종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 상대를 철저하게 파괴시키지만, 나에 대한 호의까지 이끌어내야 한다는 것이다.이번 파업은 정말 사용자측이 어떻게 하는가에 달렸다. 이 상황에서라면, '조건부적 관용'을 택할 만하다. 아무래도 그것이 '최소한의 공익'을 건지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자꾸 싸움질하게 되면 장기적으로도 손해 볼 일이 많다. 협상은 승부가 아니라 협력게임으로 여길 줄 아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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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3.14 23:02

[최동성 칼럼] '전북인' 의 깃발

세상에는 두 가치관이 존재한다. '빼앗기며 산다'는 생각과 '덕을 보며 산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전자는 사회적 갈등을 빚어내고, 후자는 공생환경을 만들어 낸다. 이런 집단사고(group think)는 가치관이 충돌하면서 그 외침이 군중의 깃발로 분출되는 게 다반사다. 문제는 모골이 송연해지는 광경들이 반복적으로 목격되는 데 있다.그런 점에서 LH(한국토지주택공사) 본사 이전문제와 전주 시내버스 파업, 부안 방폐장 사태, 새만금사업 추진과정에서 등장한 깃발들이 내가 섞여있는 '전북인'을 되돌아보게 한다. 아무리 갈등과 분열이 민주주의의 꽃이고 비용이라지만, 이 지역에 남겨진 피해의식과 반목이 엄청나기 때문이다.이들 갈등의 현장은 저마다 격랑을 이뤘다. 이 복잡다단한 퍼즐을 쉽게 풀 묘수는 없다. 그러나 삐딱하게 바라보는 쪽은 전북인의 기질과 관련지어 그 원인으로 내놓기 일쑤다. '부정적이고 폐쇄적'이라는 시각과 '눈치를 잘 본다'는 전래의 심성에서 이런 현상들이 나온다는 얘기다. 예컨대 깃발에는 지역사에 흐르는 어떤 정신적 패러다임이 담겨 있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절대적인 잣대일 수는 없지만 그 편향적 시각을 과거에서 읽어내는 데 주목하고 싶다. 차제에 전북인에 대한 담론의 함정을 막을 수도 있다고 본다.우선 고려 태조 왕건의 '훈요십조'의 관점이다. 도내 향토문화계는 이런 주장을 무엇보다 인식의 모순으로 갈파한다(전북학연구1. 1997). 공주강 이남지역에 대한 경계를 자손에 훈계한 이 기록은 당시 후백제의 세력이 강성했다는 반증이라고 한다. 후백제 잔존세력들의 반항을 미리 막아보려는 조처가 왜곡됐다는 것이다. 조선조 이중환의 '택리지' 내용도 마찬가지다. '인심이 교활하고 옳지 않은 일에 쉽게 부화뇌동(附和雷同) 한다'는 혹평은 논리성과 합리성이 배제된 문제작이라는 평가다.역사는 기억해야 할 것이 있고 잊어야 할 것이 있다. 무엇을 기억해야 할지는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다. 전북이 처한 역경은 외부와 내부의 두 요인으로 볼 수 있다. 그간 우리의 시각은 정부에 대한 원망이 더 우세했다. 역대 정부의 차별정책으로 이 고장 낙후의 최대 원인이 됐고, 그것은 지역을 패배주의로 찌그러지고 지치게 했다는 판단이다.그러나 원인은 내부에도 있다. 자신의 잘못은 덮어두고 다른 탓만을 하는 마음이 올바를 수는 없다. 역대 정권에서 총리, 국회의장, 감사원장, 국가정보원장, 대통령 비서실장 등 실세들을 배출했지만, 제대로 소신을 펴지 못한 채 그 자리를 떴지 않았는가. 주어진 여건에서 할 일이 무엇이었으며, 무엇을 소홀히 했나를 돌아보는 마음들이 많아질 때 지역도 건강해진다. 전북이 발전하고 성숙하려면 스스로 깨어 있어야 한다. 이 시점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바로 이 점이다.마냥 '빼앗기며 산다'는 가치관에 갇혀 있을 수는 없다. 정당한 몫을 챙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편 지역의 이미지를 훼손하는 일은 없는가도 생각해 볼 일이다. 깃발 하나를 받들어도 전북의 소중한 자존심과 정체성을 생각하는 고민이 담겨 있길 바란다. 무한경쟁시대에서 이미지는 경쟁력 제고뿐 아니라 기업유치, 청년취업 등에 영향을 미치는 지역마케팅의 주요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는 이유에서다./ 최동성 (본지 기획사업국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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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2.07 23:02

[최동성 칼럼] 전북의 정치를 생각한다

우리는 지난주 한 해의 마지막과 새해의 첫 자락을 동시에 통과했다. 이런 시간의 마디에서 어떻게든 낡은 것을 끊고 새로운 것을 잇대면서 악몽과 단절하고 희망과 접선하려는 자기 의례(儀禮)를 행했을 것이다. 송구영신(送舊迎新)은 현실을 변혁하려는 의욕과 소망의 표현이고, 새 것이 헌 것에 오염되지 않게 하려는 경계의식이기도 하다.지금 우리는 새로운 10년으로 들어섰다. 그 원년인 올해는 단순한 한 해가 아니다. 이 10년에 전북은 선진지역으로의 진입여부가 판가름 나는 명운이 달렸다고 본다. 2009년 기준 1인당 지역총생산 소득이 1천573만원(잠정치)으로 전국 하위권에 맴돌아서는 미래가 암담해 질 수밖에 없다.정치사회적인 시각으로 돌아볼 때 전북의 경제위기는 정치패러다임의 근본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이제라도 성장 기틀을 새로 짜야 한다. 이 시점에서 내가 기대하는 것은 새로운 정치구도다. 전북은 정치에 발목이 잡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방자치 이후 전북의 정치는 좀 더 높은 단계로 진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 않다. 민주당을 비판하는 쪽은 특정정당 일색에서 지역현안이 무기력에 빠지고 정국은 경색과 답보를 겪는 잘못된 피드백 과정이 반복돼 왔다고 지적한다. 입법과 행정의 권력이 견제와 균형 보다는 '자기들끼리'의 단선적인 행동에 물들어 있다는 것이다.지역언론인으로서 새만금사업이 20년 넘게 지역의 주요이슈로 남아있고, 신문 1면에 해를 넘겨 특필해야 하는 LH(한국토지주택공사) 본사 이전문제 등을 생각할 때 미덥지 못한 정치역량의 자괴감이 겹쳐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포퓰리즘이란 것이 주민의 진정한 갈망을 책임 있게 담아내지 못하고 표만 낚아채려는 정치적 속임수에 불과한 것이고 보면, 전북의 정치권은 도민과의 올바른 소통을 위해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된다. 도민을 '미봉책이나 바라고, 속임수에 넘어가는' 우중(愚衆)으로 여기지 않으면 말이다.전북의 정치가 이대로 가서는 안 된다. 항아리도 그 주둥이 높이가 같아야 물을 가득 채울 수 있다. 한쪽은 높고 다른 쪽 높이는 그 절반이라면 물은 절반밖에 차지 않는다. 편향적인 정치구도 아래서는 선진정치가 보여주는 정책을 둘러싼 이성적인 경쟁이 펼쳐질 수 없다.그런 점에서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장관의 한나라당 최고위원 입성은 대번에 주목받았다. 비록 원외의 지명직이지만 6.2 지방선거에서 18.2%라는 당내 호남지역 최대 득표력이 선거판과 지역발전의 변수로 등장한 것이다. 한나라당의 전북정치에 대한 도전이고, 그의 지렛대 효과에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그는 자신의 저서 '박비향(撲鼻香)'에서 "의식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결과가 달라진다"고 했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준다는 뜻이다. 정운천에게는 선택이 없다. 강을 건너려면 격류에 뛰어들어 헤엄쳐야 한다.새해 벽두에 정치권의 구도변화를 통한 우리 전북 성장에 기대를 걸고 싶다. 정치는 최종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만큼 그 진화 없이는 지역발전도 사실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올해는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몰입할 태세다. 전북정치권은 도민의 신년기대에 맞도록 2차원적 산술 이상의 3차원적 벡터적 역량을 보여줄 것을 요청한다./ 최동성(본지 기획사업국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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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1.03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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