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 무·김치밥 - 항아리 속 김장김치로 따뜻한 밥상
밖에서 눈 쓸어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벌떡 일어나 빗자루를 들고 나간다. 서울할머니께서 "힘이 없어 눈을 못 쓸겠네"하신다. '제가 할게요 들어가세요'했더니 "천황봉에서 칼바람이 불어"하시며 빨리 끝내고 들어가자고 하신다. 사방을 둘러보니 눈으로 둘러 쌓여있다. 잠시 할머니랑 빗자루를 들고 주위를 둘러본다. 첩첩산중에 두 사람뿐이다. 눈옷을 입은 소나무들이 힘겨워 보인다. 무섭게 부는 칼바람은 눈옷을 털어낸다. 여기저기에서 옷벗는 소리가 들린다. 계곡마다 소복이 쌓인 눈은 평화로운 산골마을 풍경이다.아래뜸에서 인기척 소리가 들린다. 남실할머니께서 눈길에 조심조심 올라오고 계신다. "사람 꼴보기가 어려워"하신다. 골목길에서 서로 반가운 인사를 나눈다. 이 겨울을 어떻게 지낼지 걱정들이시다. 산골마을에 겨울은 어르신들 보양식이 중요하다. 봄부터 농사일에 바쁘셔서 건강을 챙기지 못하셨다. 산골 보양식은 봄부터 준비해둔 산나물이랑 더덕장아찌, 산초장아찌, 고추부각, 된장, 고추장등이다. 집집마다 준비해준 음식들을 회관으로 가지고 오신다. 오늘 점심에는 서울할머니집 청양고추장아찌다. 매운맛이 칼칼하니 좋다며 하얀 쌀밥에 쓱쓱 비벼 드셨다.상신마을에는 집집마다 처마밑에 겨울에 먹을 음식재료들이 매달려있다. 부녀회장님 처마밑에 무청시래기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고, 산동할머니네는 호박을 말려 비닐봉투에 매달아 놓았다. 남실할머니네 작은방에는 고구마를 보관해 두셨다고 한다. 서울할머니집 창고에는 보물들이 가득하다. 국거리로 감자, 토란, 시래기 등이 있고, 밥에 놓아먹을 검정콩, 밤, 호두, 은행들이 있다. 영산댁 창고에는 음료로 먹을 산야초효소, 발효식초, 약초차들을 준비했다. 봄부터 준비해둔 음식들은 집집마다 창고에 가득하다. 겨울철 보양식은 집집마다 창고에서 나온다.부녀회장님은 우리마을 영양사역할을 하신다. 매일매일 음식 매뉴얼을 정하신다. 매뉴얼이 정해지면 필요한 음식재료들은 각자의 창고에서 가져오신다. 매일 특별식이다. 오늘저녁에는 서울할머니네집 특별식이 정해졌다. 땅속에 묻어놓은 김장김치 항아리, 무 항아리는 눈이 쌓이지 않도록 볏짚을 덮어 놓으셨다. 무 항아리를 열어보니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맛나게 생긴 김장김치랑 무를 꺼내 오셨다. 산동할머니께서는 미리 쌀을 씻어 놓고 회관방으로 들어오신다. 추운데 손이 얼었다며 아랫목에 산동할머니 손을 넣어 어루만지신다. 따뜻한 마음들이 오고간다. 저녁에도 특별히 맛난 밥을 먹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신다.한 끼 먹는 음식에는 사계절 기운이 들어있다. 봄의 따뜻한 기운은 씨앗의 촉을 틔우고, 여름의 무성함은 양분을 넉넉하게 받아 자연의 기운을 담는다. 가을에는 열매와 뿌리를 맺게 한다. 이렇게 계절 마다 자연은 농부에게 농사일을 하게 했다. 겨울철에는 대지와 농부들을 편안한 휴식을 제공한 것이다. 농부는 자연을 역행하지 않는다. 자연에 맞춰 농사일을 하고, 자연이 주는 만큼만 받아드린다. 노력하는 농부에게 곡식을 내렸다. 자연이 주는 만큼 먹으며 이 겨울을 날 것이다.[만드는 방법]△ 재료 = 김장김치, 무, 쌀, 표고버섯, 은행, 밤① 김장김치를 송송 썰어 놓는다.② 무는 채로 썬다.③ 무를 바닥에 깔고, 쌀(표고버섯, 은행, 밤)김치를 올린다. ④ 물은 일반적으로 조금 적게 한다.⑤ 밥을 한 다음 나물을 넣고 비벼먹는다. '하늘모퉁이'발효식품 대표※고광자 제철음식 이야기는 이번 회로 끝을 맺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