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광자의 제철 음식 이야기] ⑦호박조림
시내에서 살고 있는 동이네가 올라온다는 전화다. 밭에 "뭐 있냐"고 묻는다. "없는 것 빼 놓고 다 있다" 고 했더니 우리집으로 시장을 보러 온단다. "우리집이 슈퍼요?"하니, "돈 주면 되잖아." 한다.동이 엄마는 장화을 신고, 장갑에 장대까지 들고 나선다. 호박 따러 가는데 중무장을 했다. 혹 뱀이 나올까 겁이 나서다. 개울 건너 밭에 호박을 따러 가려면 그렇지 않아도 긴 장대가 필요하다. 언덕 위에 심어놓은 호박구덩이는 풀숲이라 호박을 찾으려면 긴 장대로 호박넝쿨을 이리저리 뒤져야 하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대로 애호박, 중호박, 늙은 호박을 딴다.이 밭 저 밭을 다니면서 고구마순 뜯고, 깻잎 따고, 꽈리고추 옥수수 가지랑 두 사람이 들고 내려오기가 버겁다. "좀 쉬어 갑시다." 하고 그 자리에서 반찬값 흥정을 한다. 호박은 크기대로 1000원에서 시작한다. 모두 합해서 7000원이다. "싸다, 싸." 하며 "만 원 줄게." 한다. "아니여, 흥정은 흥정이지 7000원 줘." 그런데 머리통만한 호박은 값을 쳐주지 않는다. 흥정할 품목도 못된 것이다. "너무 늙어서 못 해먹는다."는 것이다. "그려, 그럼 이것은 내 것이여." 이런 호박으로 조림 하면 맛이 좋다. 씽크대 앞이 갑자기 분주해진다. 수도 꼭지에서 흐르는 물 소리, 도마 위 칼질 소리가 요란하다. 가스렌지 위에 호박조림 냄비를 올려 놓고 불을 켠다. 지글지글 끓는 소리에 배가 고파진다.여러 가지 반찬을 놓을 필요가 없다. 금방 끓인 냄비를 통째로 올려놓고, 세 사람 밥만 차린다. 밥 한 숱가락 위에 뜨거운 김이 서린 호박조림을 올려놓고 입을 쩍 벌려서 먹으면 제 맛이다. 새로운 요리법을 알았다며 늙은호박 한 덩이를 더 달라고 한다.이제 "슈퍼로 시장 보러 갈게."가 아니고 우리집으로 오겠다는 거다. 요즘 물가가 올라 시장 가기가 무섭다고 한다. 두 사람은 도농교류 직거래 장터행사를 한 셈이다. 서로가 만족할 만한 부자가 된 기분이다. 농부의 밥상에 대해 한참이나 떠들어 댄다. 요즘 제일 흔한 호박하나라도 쉽게 얻어지는 밥상의 재료는 없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오늘 흥정은 대성공이다.호박에는 당질이 많기 때문에 소화가 잘 된다. 또한 호박을 꾸준히 먹으면 부기 제거에도 큰 도움이 된다. 그래서 산후에 붓기가 빠지지 않는 산모나 평소에 잘붓는 사람에게 좋다. "호박이 넝굴째 굴러 온다"는 말이 있다. 잎, 줄기, 꼭지, 열매, 종자 등 모든 부분이 식용 또는 약용으로 이용되고 있어,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 한의학에서는 '남과(南瓜)'라 하는데, 맛은 달고 성질은 따뜻하며 소화기관인 비위(脾胃)의 경락에 작용하는 음양오행에서 '토(土)'의 기운을 지닌 약재로 분류된다. 오장을 편안하게 해주고, 비위의 기능을 튼튼하게 하여 입맛을 좋게 한다. 소화를 돕고, 기운을 좋아지게 하며 출산 후의 어혈이 풀어지지 않아서 발생되는 복통과 부종을 치료하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우리 동네는 대문이 없는 행량채에 뭐가 걸려있는지 다 볼 수 있다. 처마밑에는 말린쑥, 시래기, 마늘, 양파, 말린 나물 등이 가지런히 걸려 있다. 오랫동안 먹을 수 있는 보관법이다. 일년 내내 먹을 양념들을 자급자족해서 처마 밑에 슈퍼를 열어 놓은 것이다. "후한 인심은 곳간에서부터 나온다."는 말은 옛 이야기인줄 알았는데 아직도 우리동네에 해당되는 말이다. 아들, 딸들은 물론이고 지나가는 행인이 "맛있겠다." 라고 한마디하면 한 들금씩 처마 밑 슈퍼에서 내어 주신다. 아직도 이런 후한 인심으로 농촌생활은 풍요롭다.▲ 만드는 방법재료 = 호박, 멸치, 양파, 장, 청고추, 고추가루, 마늘1. 호박, 양파을 알맞게 썬다.2. 장, 청고추, 고추가루, 마늘을 넣고 조림양념장을 만든다.3. 재료에 조림양념장을 넣고 알맞게 물을 넣어 배합을 한다.4. 10분쯤 끓인 후에 멸치를 넣고 알맞게 졸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