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인 오해가 없길 바라지만 나는 '복원'된 청계천을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 수도권 신도시에 살며 서울을 무시로 들락거리면서도 말이다. 사진이나 영상을 통해 접하게 되는 청계천의 새로운 풍경이 내게는 먼 이국처럼 낯설기만 하다. 미관상 좋아진 것은 틀림없겠으나 어쩐지 정이 가지 않는다. 잘 알고 지내던 여자가 어느날 갑자기 성형 미인이 되어 나타났을 때의 기분이 이럴까. 달라진 청계천을 찾아가 걷노라면 70년대의 그 복잡하고 지저분하던 옛 청계천이 그리워질 것만 같다. 수구레 노점상이며 박보장기 야바위꾼들이며 포르노물 입간판들까지도 보고 싶어 콧날이 시큰해질 것만 같다. 값싸고 퇴행적인 정서라고 비웃는다 해도 어쩔 수가 없다. 내 청춘의 기억들은 그런 풍경들 속에 녹아 있다. 말이 났으니 말이지만 청계천 '복원'이란 표현은 맞지 않는다. 청계천은 지금의 모습과 같았던 적이 결코 없으니까 '정비'나 '정화'라고 해야지 '복원'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한사코 '복원'했노라고 우기는 그 청계천은 더이상 서민들의 삶의 무대가 아니다. 거대한 조형물이요 일종의 테마파크일 뿐이다.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도 요즘 '공사중'이다. 원래의 위치로 옮기기 위해서라고 한다. 차제에 현판도 바꿔야 한다며 논란을 벌이고 있기도 하다. 버스로 그 앞을 지날 때마다 나는 또 혼자 고개를 갸웃하곤 한다. 거창하게 제까지 올리면서 내세운 명분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과연 막대한 예산을 써가면서 강행해야만 하는 일일까. 경복궁 창건 당시 문이 있던 자리에 표석이라도 하나 세워 후세인들이 바로 알도록 하면 되는 일이 아닐까. 문 하나를 옮겨짓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닐 뿐 아니라, 그로 인해 도로의 흐름이 달라지고 주변의 도시계획도 바뀔 수밖에 없다. 옛것을 되찾자는 마음을 누가 모르랴. 하지만 그 '옛것'들이 '지금 여기'의 삶을 끊임없이 간섭하는 현상도 바람직하지는 않다.
모든 것을 원래의 자리에 원래의 모습대로 돌려놓자고 들면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상상하기도 어렵다. 가능한 일도 아니려니와 꼭 옳은 일도 아니다. 지난주에는 남쪽으로 여행을 떠난 김에 호남지방의 유명한 한 사찰에 들러보았다. 매표소를 지나 10분 남짓 걸어가는 진입로 오른족을 펜스로 가려놓고 공사가 한창이었다. 자랑스럽게 써놓은 이 프로젝트의 이름은 '생태숲 조성공사'였다. '생태숲'을 '조성'한다는 것이다. 사전적으로 '생태'란 '생물이 살아가는 모양'이며 '생태계'란 '생물과 그 생물을 둘러싼 환경'을 말한다. 우리는 그 '생태'와 '생태계'마저도 공사로 '조성'해버린다. 공사부지가 되어버린 그 자리에는 조촐한 과수원도 있고 실개천도 있어서 찾을 때마다 한갓진 오솔길의 정취를 느끼곤 했었다. 그것은 그것대로 하나의 '생태계'다. 그 '생태계'를 깔아뭉개고 새로운 '생태계'를 크고 모양 좋게, 심하게 말하자면 돈이 될 수 있게 '조성'하고 있는 것이다.
돌아보면 멀리 갈 것도 없다. 내가 사는 신도시에는 해발 200m쯤 되는 작은 산이 하나 있어서 가끔 산책을 나가곤 하는데 요즘 그 산을 둘러싸고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만들고 있다. 산책로의 출발점으로 삼던 야산자락이 뭉텅뭉텅 잘려나가는 모양에 마음이 아프면서도 애써 이해를 하려고 했다. 어쩌겠는가. 서민들이 들어가 살 싼 집을 많이 짓겠다는 데야…. 그런데 야산을 깎아낸 그 자리에 들어선 것은 아파트가 아니라 단지에 딸린 공원이었다. 잔디를 깔고 나무와 바위를 가져다놓고 정자를 올려서 어디서나 흔히 보는 녹지공간을 만들어놓은 것이다. 나는 알지 못한다. 자연 그대로인 야산보다 돈을 들인 인공녹지가 왜, 얼마나 좋은지. 세월이 흐른 뒤 또 누군가는 옛 야산을 복원해야 한다고 나설 지도 모른다.
한편에서는 '옛것'을 되찾아야 한다며 때려부수고 다른 한편에서는 '새것'을 만들어야 한다며 뭉개버리고…. 우리의 '지금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고 심하게는 부당하기까지 하다는 말인가. 어쩌면 우리는 지금 범국민적으로 또다른 '새마을운동'을 벌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잊지 말라. '지금 것'들도 예전에는 '새것'이었으며 언젠가는 '옛것'이 된다. 그러므로 당연하게도 우리에게는 '지금 것'이 가장 소중하다. '지금'이 우리의 시대고 우리의 '생태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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