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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어머니의 태극기 - 장인순

장인순(한국원자력연구원 고문)

광복 63주년과 대한민국 건국 60주년을 맞은 8월이다. 연구실에서 내려다보이는 한국원자력연구원 언덕의 대형 태극기는 하늘에 계신 어머님과 태극기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이와함께 태극마크를 단 한국 선수들이 올림픽에서 조국의 명예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새삼 조국의 의미를 생각한다.

 

과거 우리나라는 수없는 외침으로 짓밟히고 갈갈이 찢겨 상처투성이가 되었지만, 우리 국민 특유의 민족혼이 자유민주주의와 맞물려 그 많은 상처를 치유했다. 아직은 분단의 아픔은 있지만 세계 11번째 경제대국이 된 그 힘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바로 이 땅에서 살아온 우리들의 어머니의 희생과 헌신이었다고 생각한다.

 

보릿고개와 배고픔이 상식으로 통했고 국민소득 100불 시대였던 1960년대, 한국 젊은이들에게 외국유학은 꿈을 이룰 수 있는 최고의 목표였다. 결핵으로 힘들었던 것을 털고 1969년 유학을 떠나는 아들에게 쥐어줄 100불(당시 정부에서 허용한 돈)을 마련할 길이 없어 힘들어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은 아직도 내 기억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어쩌면 아들의 유학은 유일한 희망이었고, 가난을 떨쳐 버릴 수 있는 삶의 전부였을지도 모른다. 어렵게 마련해주신 100불은 나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어머님의 애틋한 사랑 그 자체였다.

 

그해 겨울 유난히 눈이 많았던 유학길에 오르기 전날 밤 어머니께서 내방에 들어오셨다. 떠나기 전 어머니께서는 내게 눈물과 정감을 나누어 주시는 대신 하얀 종이에 곱게 싼 것을 건네주시고는 조용히 방을 나가셨다. 순간 내 손안에 들려진 무게를 짐작할 수 없을 만큼 가벼운 것은 무엇일까?

 

평소에 말씀이 적으셨고, 아무리 힘들어도 7남매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으셨던 어머니가 주신 종이를 풀면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전혀 생각지 못한 '깨끗한 태극기' 한 장이 얌전히 접혀 있었기 때문이다. 태극기를 펼쳐들고 오랫동안 어머니 마음 앞에서 가슴이 메는 통증을 느꼈다. 교육을 받지도 못한 어머니가 단돈 100불을 가지고 유학을 떠나는 아들에게 주신 태극기에는 어떤 의미와 소망이 담겨 있는 것일까? 지금 생각해보면, 십여 년 이상 일본에 사시면서 국가가 없는 국민의 슬픈 비애를 몸소 체험하셨던 어머니이기에, 더 큰 땅에 가서 공부 마치고 빨리 귀국하여 조국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하라는 어머님의 민족혼이 아니었던가 생각된다. 내가 학위를 받을 때 그렇게 기뻐하시던 어머니! 그 후 일 년 만에 이국땅에서 세상을 떠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머리카락이 하얗게 변한 이 나이에도 변하지 않았다. '어머니'란 언어는 인간이 살아가는 동안 가장 많이 사용하고 우리들의 삶에 가장 가까운 단어이기 때문 아닐까!

 

1999년 한국원자력연구소(현 한국원자력연구원) 소장으로 취임하고 가장 먼저 한 것이 연구원 입구 언덕 위에 12X9m짜리 대형 태극기를 걸 수 있는 국기 게양대를 만든 것이었다. 태극기는 지금도 1년 내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대한민국의 얼과 함께 휘날리고 있다.

 

미국에서 태어난 두 딸을 유학 보낼 때 가방 속에 몰래 태극기를 하나씩 넣어 보낸 적이 있다. 그 후 딸아이들이 머무른 곳에 가보니 놀랍게도 아이들 공부방 벽에 태극기가 걸려있지 않는가. 내가 그 시절 어머니께 전해 받았던 그 마음이 고스란히 그 곳에 걸려 있는 듯 숙연함에 목이 멨다. 유학을 떠나는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마음의 선물은 무엇일까!

 

어느 시인의 "엄마는 눈물을 진주로 만든다"는 말처럼 여리면서도 따뜻한, 그러면서도 한없이 강한 우리들 어머니들의 헌신과 사랑 그리고 뜨거운 교육열이 있었기에 조국근대화가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태극기는 하나인데 왜 이렇게 분열되고 촛불집회 속에 반국가, 반민주주의 구호가 나오는 걸까. 참으로 안타깝다.

 

8월 광복절, 올림픽 경기장에서 가슴에 태극기를 달고 뛰는 우리 선수들과 함께 하나가 되어 이 땅의 민주주의 꽃을 피우는, 그러면서 남을 배려하고 질서있는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 마련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하나의 태극기 아래 힘을 합쳐서 작지만 강한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저력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장인순(한국원자력연구원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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