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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약사(藥師)와 약장수-이용우

약사와 약장수는 어감으로 보면 매우 유사한 직종이다. 구체적으로는 다를지 몰라도 둘 다 분명 약을 다루고 약을 판다. 그런데 약사와 약장수를 받아들이는 문화와 감성의 차이는 판이하다. 두 직종을 가르는 가장 큰 이슈는 면허의 문제이다. 약사는 일정한 자격에 따라 주무관청의 면허를 받아 의약품에 관한 일에 종사하는, 이를테면 전문 직종 종사자를 말하지만 약장수는 면허와 상관이 없다. 약장수가 면허가 필요한 직종이라면 그것은 이미 약장수가 아니다.

 

약사나 약장수나 둘 다 나름대로 심각한 직업이지만 약장수는 오늘날 현대사회 들어 본래의 의미가 크게 퇴색하였다. 구성진 가락을 내세운 만담을 들을 기회도 적어졌고, 약장수의 서식처인 재래시장이 점점 사라져가기 때문이다. 약장수의 단골메뉴인 몸보신용 동물의 거시기 등을 파는 행위도 보기 힘들어진지 오래이다.

 

약장수는 오래 전부터 역할보다는 의미의 전환이 이루어져 전혀 다른 의미로 통용된다. 과거 유사 인생 상담사이자 재간꾼으로서의 약장수 역할은 능숙한 화술로 사람들을 현혹하는 매우 부정적인 화술꾼의 이미지로 바뀌었다. 과거 우리 주변에 소비자가 그토록 관대한 직종은 아마도 약장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문제는 약사는 동네 어귀마다 있지만 인생 상담사이자 재간꾼인 약장수는 하나 둘씩 없어져 이제는 약에 쓰기도 어렵게 되었다. 대신 약장수의 화술만 사회 각층에 떠돌아다니면서 사회 곳곳에 유사 약장수가 창궐하게 되었다.

 

의료제도가 정착되지 않아 약사와 의사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던 시절, 그리고 국민건강이 체계화되지 않았던 시절에 약장수는 대중의 건강은 물론 접대요소까지 곁들인 엔터테이너로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은 안 되었지만 인삼, 녹용, 뱀, 웅담을 팔고 성인 남녀들의 남녀열혈지사에 관하여 너스레를 떨던 시절의 약장수는 시장바닥의 명인들이었으며, 의약적 판단은 제쳐두고라도 사회적 추억거리였다.

 

오늘날 약사와 약장수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갭이 있다. 만약 약사(pharmacist)를 약장수로 불렀다가는 호되게 당할 가능성이 많다. 진짜 약장수는 거의 소멸한 대신 직종별 유희적 약장수가 늘었으나 누구도 후자의 약장수로 불리기를 꺼려한다. 진짜 약장수는 기껏해야 지방의 서커스 정도를 구경 가야 한, 두 명을 만날 수 있을 정도이지만 가짜 약장수는 어디에나 있다. 기막힌 아이러니이다.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약사보다 약장수를 그리워하는 사람들도 있다. 국민건강을 고려해서가 아니라 추억과 추억의 재생산을 위하여, 과장하자면 국민의 정신건강을 생각하여 약상(藥商)의 존재감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산업화는 대도시를 쉴 새 없이 탄생시키지만 약장수와 같은 인간 친화적이고 설명적인 직종은 하나 둘 씩 사라져간다. 그 대신 약장수는 특정한 직업이라기보다 도처에서 약장수와 같은 기능자들이 약장수를 대신하고 있다.

 

과거 약장수의 말에 속아 인생을 망치거나 건강을 심하게 망친 경우는 사실상 드물다. 기껏해야 약간의 금전적 손해를 보거나, 효험이 적은 약재를 달여 먹고 후회한 정도가 최대의 피해일 것이다. 그 정도라면 약장수의 너스레에 대한 팁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그러나 그럴듯한 화술이나 언어의 조작, 과장광고, 과대포장 등 현대사회의 약장수들이 뿜어내는 독소는 상상 이상이다.

 

진짜 약장수가 사라지는 동안, 우리 사회는 유사약장수의 터전을 제공할 가공의 무대들이 생겨난 것이다. 깨닫지 못하는 사이 우리는 분별없이 너도 나도 약장수가 되어 간다. 정치인 약장수, 기업인 약장수, 예술인 약장수, 공무원 약장수, 노조원 약장수, 언론인 약장수, 법조인 약장수, 교육자 약장수, 지식인 약장수 등….

 

제발 진짜 약장수만큼만 되어라!

 

/이용우(광주비엔날레 상임부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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