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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문화의 건강한 진화를 위하여

이용우 (광주비엔날레 상임부이사장)

휴대폰은 사람들을 매우 바쁘게 하지만 그 정도의 번거로움 때문에 휴대폰이 가져다주는 '정보 황홀경'을 포기할 사람은 없다. 냉장고의 프레온가스는 오존층을 파괴하고 온실효과를 가져오지만 우리는 냉장고가 선사하는 서늘하고 시원한 맛의 환상을 포기하지 못한다. 자동차의 공해는 더욱 결정적이다. 그렇다고 누가 예전처럼 말을 타거나 걸어 다니겠는가?

 

인간은 기계문명을 선택하면서 유기적 삶과 멀어져 갔다. 평화보다는 매력적 고통을 선택한 것이다. 즉 문명은 인간에게 삶의 평화보다는 매력을 선사하였으며, 기계문명이 가져다 준 온갖 편이성들은 삶을 매력 덩어리로 보이게 하였다. 게다가 문명의 속성인 집단주의는 숙명적으로 도시를 탄생시켰고, 과거 전원적이고 친환경적인 것들로부터 인간을 격리시키기 시작하였다. 인간은 그것이 문명의 짓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재앙임을 잘 알고 있다.

 

텔레비전은 반세기 이상 활자문화, 독서문화를 타격하다가 정보를 무한대로 확장시킨 인터넷에 의하여 거꾸로 타격 당하고 있다. 대중문화의 황제는 이제 더 이상 텔레비전이 아니라 실시간 인간의 두뇌를 빠르게 확장시키는 온갖 정보매체이다. 텔레비전을 24시간 켜 놓아야 심리적 위안감을 갖던 인간들은 이제 텔레비전 대신 인터넷을 하루 종일 켜 놓고 정보 황홀경에 탐닉한다. 그들이 훨씬 재미있고 현실적이며, 유익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문명은 흡사 대중문화의 속성과 같아서 과거 시대의 우상을 가차 없이 청소해버린 뒤 새로운 우상을 탄생시키고, 신앙처럼 숭배한다.

 

명예나 긍지, 민족애는 참 소중한 것이다. 한 나라의 문화는 이를테면 명예나 긍지, 민족의 뿌리 같은 것이라서 그것이 말살당하는 일에는 누구나 분노한다. 그런데 그 문화가 붙박이처럼 화석화되거나 천 년 만 년 변함없이 돌덩이가 되는 것은 누구도 좋아하지 않는다. 문화가 민족의 긍지임에도 불구하고 시대정신에 맞는 진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독립기념관은 민족의 자주성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가르치는 매우 중요한 장소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단 한 명이 찾아오던 말든 그 존재가치는 지고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왜 독립기념관에 관객이 없다는 사실을 우려하고 흥분하는가. 전쟁기념관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역사적, 민족적으로 중요한 장소라 하더라도 그것은 당연히 사람을 위한 장소이다. 그리고 그 곳에 사람이 찾아오지 않는다면 그것은 죽은 장소가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는 문화의 미래지형도와 그 생생한 가치를 다시 고민해보아야 한다. 독립기념관이나 전쟁기념관을 더 재미있고 유익하게 꾸밀 방법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 장소를 과거의 독트린에 가두어 지키려는 사람들의 선택이 그 곳을 화석화시키는 것이다. 만약 사람들이 더 많이 찾을 건강하고 재미있는 방법이 있다면 장소부터 먼저 살리고 더 재미있게 역사공부를 시킬 수 있는 산 교육의 장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교훈은 아시아 문화중심도시를 추진하고 있는 광주나 기타 국가 차원의 대형 문화 프로젝트를 진행시키고 있는 부산, 대구, 인천 등에도 바로 적용된다. 만약 우리가 이념적 건물을 짓고, 쟁취의 역사를 기념하는 이념적 민주주의의 성지를 만들어낸다면 살아 있는 생생한 문화의 생기는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자칫 사당이 될 가능성도 있다. 우리는 전대의 역사를 숙명적으로 계승하여 살고 있는 후대들의 생각과 입장을 간과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문화는 과거의 향수가 아니다. 이 착각이 불러오는 의식의 참사가 문화를 화석화 시키는 경우가 많다. 특히 정치적 명분을 위한 민족주의는 문화를 매우 위태롭게 한다. 세계적 사고를 반민족주의, 반지역주의 쯤으로 인식한다면 문화는 가망성이 없다. 가령 광주가 세계 문화의 중심도시가 되려면 광주사람들이 먼저 토호의식을 버려야 한다. 이는 어느 도시나 마찬가지다.

 

/ 이용우 (광주비엔날레 상임부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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