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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세웅 신부의 은퇴

▲ 박 석 무 다산연구소 이사장·단국대 석좌교수
얼마 전 우리시대의 사제 함세웅 신부님이 만70세로 성당의 주임신부직에서 은퇴하였다. 은퇴미사가 있다는 소식을 촉박해서 들었던 탓으로 꼭 참석해야 할 그 자리에 참석하지 못하고 말았다. 지난주에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신부님과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 모여 은퇴기념 만찬을 하자는 통보를 받고도 오래 전에 약속된 긴급한 일 때문에 부득이 참석하지 못하는 애석함을 느껴야 했다. 아쉽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이래서 미안하고 저래서 죄송한 신부님의 은퇴 행사, 어떻게 해야 그 미안한 마음을 달랠 수 있을까.

 

그래서 책꽂이에 넣어두고 제대로 읽지도 못했던 함신부의 책을 읽기로 하였다. 지난 해 여름 10년을 넘게 써오던 〈선포와 봉사〉라는 사목지의 서문으로 쓴 글을 묶어 〈"심장에 남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간행한 책이다. 함신부는 1999년 연말 여러 사제들과 함께 「기쁨과 희망사목연구원」이라는 단체를 결성하여 우리의 시대를 하느님의 말씀으로 성찰하고 세상에 하느님의 뜻을 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 단체의 기관지가 바로 〈선포와 봉사〉였고, 그 책의 서문을 도맡아 쓰신 분이 함신부였다. 악하고 불의한 세상에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여 그 뜻에 맞게 행하여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에게 봉사하자는 함신부의 기본 마음이 그렇게 표현되었다고 책의 서문을 쓴 김병상 신부는 말하고 있다.

 

그런 함신부가 주임신부직을 은퇴하는 일은 우리를 슬프게 해준다. 그가 누구인가. 서울에서 태어난 함신부는 가톨릭대학을 졸업하고 로마에 유학을 가 신학석사와 신학박사의 학위를 취득하고 1973년 이래 성당의 주임신부로, 가톨릭대학의 교수로 서울대교구의 홍보국장으로 사제직을 수행하였다. 문제는 바로 1974년이었다. 유신독재가 백성의 자유와 인권을 무참히 짓밟고, 무고한 사람들을 고문에 의해 범죄자로 조작해 투옥하고 극형에 처하는 등 악랄한 짓을 감행하였다. 이 무렵 원주교구의 지학순 주교가 민주화운동으로 구속되는 등 극악한 참상에 사제의 신분으로 괴로워하던 함신부는 마침내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이라는 저항단체를 결성하여 독재정권에 항거하는 민주화운동에 투신하고 말았다.

 

1976년 한국정의평화위원회 인권위원장으로 일하던 함신부는 그해 3·1구국선언에 앞장서다 감옥에 갇히게 된다. 그 뒤에도 또 구속되어 함신부는 신자나 비신자를 떠나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에게 독재타도의 기수였으며, 민주화운동의 전국적인 대부로서 이름이 나라 안과 밖에 가득한 사제의 지위에 오르게 되었다. 1987년 6월항쟁을 이끌던 용감한 사제로 여러 본당의 주임신부를 역임하였고 평화신문과 평화방송을 창설하여 초대 사장을 역임하였으며, 약간의 민주화가 이룩된 2004-2010년 사이에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이사장으로 일하면서 뒷걸음질치는 민주주의를 붙잡으려고 온 힘을 기울였다. 천주교 사제라는 기득권층의 신분이면서도 자신의 안위는 돌보지 않고 세상과 사회의 정의를 위해 70평생을 바친 그분의 노고에 어떤 찬사를 바쳐도 적합한 말은 없을 것이다.

 

본당의 주임신부야 은퇴했지만, 사제에게 무슨 은퇴가 있는가. 사제로 서품되는 날부터 하늘나라로 하느님을 만나러 가는 그날까지, 신부는 신부이고 사제는 사제가 아닌가. 그래서 함신부는 은퇴 뒤에도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이사장직을 맡아 뜨거운 안의사의 의혼을 선양하는데 앞장서고 있으며, 인혁당 사법살인 희생자 유족이나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후원 사업에 쉼 없이 일하고 있으며, 억울한 사람이 없는 세상을 만들고 국민의 자유와 인권이 보장받고, 민주정권으로서의 정권교체에도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고 일하고 있다.

 

함신부는 계속해서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선두에 서서 약한 우리 모두를 인도해 줄 것이다. 함신부와 필자는 같은 나이다. 우리는 지난 2005년 6·15공동선언 5주기를 맞아 남측 대표단의 일원으로 평양에 가서 성대한 기념식을 올렸다. 그때 함신부와 필자는 고려호텔의 룸메이트가 되어 몇 밤을 함께 숙박하면서 민족의 통일에 대하여, 완전한 조국의 민주화에 대하여 깊고 넓게 담론을 펼친 바 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도 우리는 함께 뜨겁게 일하기도 했다.

 

우리 시대의 사제, 신부님! 우리 신부님! 더욱 힘차게 우리를 이끌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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