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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자들의 사회

▲ 안톤숄츠

 

코리아컨설트 대표

한국 사회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주로 농촌에 살았던 인구는 서울과 그 인근으로 옮겨 이제는 전 나라의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모여 살게 되었고 부산, 대구, 대전, 인천과 광주와 같은 그 외 다른 주요 도시는 누구라도 기회만 있으면 옮겨가는 곳들이 되었다.

 

한국에 처음 발을 내디딘 지 20년이 지난 지금 이제껏 보아오던 급격한 도시화는 생각보다 더욱 무섭게 느껴진다. 설연휴 서울에서 있었던 이웃 살해사건은 이런 급속한 사회 발전의 부작용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한 남자가 두 명의 이웃을 살해한 이유가 층간의 소음 때문이라고 했다. 이 섬뜩하고 잔인한 범죄로 온 나라 사람들이 경악했고 모두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지에 놀랐다. 사건 발생 이후 공동 주택의 층간 소음을 줄이기 위해 건축관련 또는 입주민 준수 규제 항목 등에 관한 논의가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사건에 대해서는 미친 사람이 한 일이라고, 또 세계 다른 도시에서 일어날 수도 있었을 한 번의 사건이라고 쉽게 얘기할 수도 있겠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맞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서울은 이방인들의 거대한 도가니다. 지난 수십 년간을 지나오면서 보다 나은 근무 환경, 급여, 그리고 자녀의 교육 등을 위해 모두들 서울로 모여든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위에 언급한 그런 범죄를 보다 쉽게 야기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어느 다른 곳으로부터 오고 새로운 고향에 완전히 뿌리를 내리지 못하면 거리에 아무리 사람들로 넘쳐나도 외로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사실 이해하지 못한 낯선 자들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아파트에서 사는 우리네의 라이프 스타일은 명백히 이런 상황을 호전시키지 못한다. 한 예로 광주에 처음 왔을 때 방림동의 한 주택가에서 살게 되었다. 올망졸망 모여 있는 작은 집들과 간혹가다 남아 있는 한옥이 전부인 마을이었다. 우리는 동네 이웃들을 잘 알았고 나이 많으신 이웃 어른들은 햇빛 좋은 날이면 어김없이 길가에 나와 앉아서 한나절 내내 얘기를 나누며 함께 시간을 보내곤 하셨다. 동네 곳곳 어디서고 일체감을 느낄 수 있었고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우리를 알고 우리도 그들을 잘 알아 서로가 인사를 나누지 않고는 지나칠 수 없었다. 이후 아파트가 모여 있는 곳으로 이사를 오면서 이웃 간의 정겨움은 찾기 힘들었다. 몇 미터 떨어지지 않은 곳에들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방인과 더불어 사는 나도 그들에게 한낱 이방인에 불과하단 생각에 슬픈 느낌마저 든다.

 

한국 사회에서는 어디 출신인가가 중요하다. 사람들은 어느 김씨인지, 이씨인지 서로에게 물어보고 출신지역이 크게 같기라도 하면 친척이나 가족을 만난 듯 반가워한다. 서로가 어디에서 태어나고 어디에서 자라왔는지에 대해 연관짓는 것은 사회적 일체감을 느끼기 위해 중요하리라. 현재 서울은 어디에서도 어떻게든 모두가 가고 싶어 하는 도시가 되었다. 명절 연휴로 비어 있는 도시는 그것을 증명해 준다. 그리고 큰 도시들에서의 익명성은 이방인들 사이에서 존재하며 익명성은 범죄를 야기할 수 있는 환경이 되기도 한다. 당신이 아는 사람에게 또는 아이들에게 칼을 들이댈 수 있겠는가. 절대 아닐 것이다. 만약 당신이 그들을 안다면 그들도 당신에게 얼굴 없는 낯선 자로 행세하진 않을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나의 단순한 이론은 어쩌면 이번 사건에 부적절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공동생활에서의 소음으로 빚어내는 문제들을 줄이기 위해선 규제를 만들어 시설을 보강하고 공동생활 준수 강령이라도 만들어 시행하는 것이 우선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옛날 한 지붕 아래에도 여러 가족이 모여 살지 않았던가. 좁은 골목, 지금보다 좋지 않은 건축 자재 및 기술로 만들어진 집들이 모인 한 동네에서도 이웃과 정겹게 살지 않았는가. 충격적인 사건 이후 근래 더욱 극성스러워진 5살배기 아들이 우리 집 아파트에서 뛸 때마다 하는 것은 뛰지 말라고 다그치는 것이 전부가 되어선 안 될 것 같다. 엘리베이터에서 나의 이웃들과 가깝게 서 있으면서도 어색한 침묵 속에 우두커니 있을 것이 아니라 인사를 건네며 적어도 누군가가 먼저 내려야 할 그때까지 몇 초간이라도 말을 걸어 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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