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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 문장가가 없다?

정옥자 서울대 명예교수

2008년 3월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이 된 직후였다. 청와대 비서관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문장을 좀 다듬을 일이 있는데 아무리 알아봐도 우리나라에 문장가가 없는 것 같다. 문장 잘 하는 사람 좀 추천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나 역시 아무리 생각해 봐도 머리에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다시 "왜 이렇게 문장가가 없는지 궁금하다. 옛날에도 그랬느냐?"고 물었다. 나는 "이 시대에는 문·사·철을 함께 하지 않아서 문장가가 나올 수 있는 토양이 안 되어 있다. 옛날에는 문·사·철을 겸수하는 학문체계였기 때문에 문장가가 많았다."고 대답하였다.

 

문장이란 화려한 수사만 나열해서도 안 되고 알맹이가 있어야 한다. 메시지가 없는 문장은 빈껍데기에 불과하다. 그 알맹이, 다시 말하면 메시지는 철학과 역사를 공부해야 생긴다. 그런데 철학만 공부하면 공허해지고 역사만 공부하면 사건의 나열이나 현상만을 제시하고 만다. 그래서 철학과 역사는 상호보완해서 연구해야 한다.

 

그 방법을 전통시대에는 경경위사(經經緯史)로 표현했다. 경경의 앞의 경(經)자는 날줄을 말하고 뒤의 경(經)자는 경전을 공부하는 경학을 말한다. 경학을 날줄로 한다는 뜻이다. 뒤의 위사에서 위(緯)자는 씨줄을 말하고 사(史)자는 역사를 말한다. 역사를 씨줄로 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경경위사란 경학을 날줄로 삼고 역사를 씨줄로 삼아 입체적으로 진리를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학에서는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또 인간답게 사는 길은 무엇인가를 말한다. 예컨대 사람은 참되고 착하고 아름답게 살아야 한다는 진선미(眞善美)라던가, 사람은 효도를 해야 한다던가, 사람은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등등 삶의 지표는 시간이 경과해도 변함없는 동서고금의 진리임에 틀림없다.

 

역사는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제반 양상을 밝히는 학문이다. 그래서 역사에서 시간개념을 빼면 역사로 성립할 수 없다. 다시 말하면 인간 삶의 구체적인 모습을 시간에 따라 추적하는 하는 학문이 역사다. 역사는 인간 군상들이 살아가는 하나하나의 예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경학과 역사를 날줄과 씨줄로 삼아 직조하듯이 입체적으로 세상의 진리인 도(道)를 파악해도 좋은 문장이 없으면 표현력에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바로 그 도를 담는 좋은 문장이라는 그릇이 필요하다. 이를 도기론(道器論)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리하여 경경위사와 도기론은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한 기초이자 인문학의 방법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문·사·철에 대입해 보면 경학은 바로 오늘날의 철학이다. 역사는 물론 오늘날도 역사이다. 문(文)은 오늘날의 문학이라기보다 문장학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오늘날은 문·사·철이 문학과 역사와 철학의 약칭으로 해석되고 세 학문분야는 각기 전공이라는 이름으로 따로따로 놀고 있지만 전통시대 세 분야는 경학과 역사와 문장으로서 경경위사의 학문방법과 도기론적으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상호보완의 틀을 확보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학문이 전문성으로 무장한 각론에 치우쳐 나무는 보지만 숲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의 늪에 빠져 시너지 효과를 상실하고 학제 간에 소통이 안 되는 이유는 통합성을 상실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효율성은 인문학에서 가장 문제가 되어 인문학 발전의 저해요인이 되고 있다.

 

결국 인문학의 문제가 문장가의 배출을 막고 있다는 결론이다. 문장은 소통의 중요한 수단이면서 예술적 향기가 중요하다. 아름다운 문장을 쓰되 확실한 메시지가 있어야 하니 예술성과 실용성을 두루 갖춰야 제대로 된 문장이 되고 문장가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옛 선현들은 만권의 책을 읽어야 그 책에서 나오는 기운이 흘러넘치고 문자의 향기 그윽한 좋은 문장을 쓸 수 있다고 하였다. 결국 훌륭한 문장가는 독서가 생활화되고 문·사·철이 통합된 인문학이 융성하고 나서야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인문학의 발전이 좋은 문장가를 배출할 수 있는 토대이다. 하루 빨리 대한민국에 문운(文運)이 열려 좋은 문장가가 줄줄이 배출되는 성세(盛世)가 오기를 고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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