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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의 관계?

안톤숄츠코리아컨설트 대표

국제행사에 관련된 일을 하다 보니 행사 개최 준비를 위해 한 해 중 꽤 많은 시간을 국내 여러 도시에서 보내게 되는데 이것은 언제나 내게 큰 행운이었다. 가장 자주 가는 곳은 아무래도 서울이지만 올해 들어선 대구에 갈 일이 잦아지고 있다. 최근에 대구와 왕래가 잦아지다 보니 광주와 대구를 연결하는 88고속도로에서 대해 한 번 생각해 볼 만한 시간을 갖게 되었다.

 

도로의 제한 속도가 시속 80㎞인 데다 약 30㎞ 내의 구간에선 차로 변경이 불가능한 이 특별한 '고속도로' 위에서 커다란 트럭 사이로 샌드위치가 되어 달리다 보면 이런저런 생각이 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88고속도로는 그야말로 한국의 역사를 반영한다. 거의 바뀌지 않은 오늘날의 광주와 대구 간의 좋지 않은 관계의 상징물로 이어오는 듯하다. 부산, 대구, 울산 그리고 포항 등이 위치한 영남 지역은 서울과 경기지역 다음으로 국내에서 가장 개발이 잘된 지역이다. 반면에 호남 지역은 경제적 기적을 만들어 낸 지난 40년 동안 다른 지역들에 비해 발전이 뒤따르지 않았다. 정치적으로도 더 앞서 나갈 수가 없었다.

 

경상도 지역을 기반으로 한 보수 세력들이 힘을 갖고 있는 동안 전라도는 늘 혁명적인 좌익의 기지였었다. 최근의 대통령선거는 이러한 두 지역의 정치적 균열이 전혀 나아지지 않았음을 보여 주었다. 현 박근혜 대통령이 경상 지역에서 80% 이상의 지지를 받은 반면, 전라 지역에선 5% 미만의 지지율을 획득했다.

 

그래서 88고속도로 역시 두 지역이 서로 친해지는 데엔 무관심한 것으로 여겨진다. 상하행선이 일차로인 데다 시속 80㎞가 제한속도인 이 고속도로는 한국의 빠른 현대 사회 생활상에 비해 터무니없이 부족하단 느낌이다. 원래 이 도로는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직후 전두환 전 대통령이 화해의 제스처로 내어 놓은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대구와 광주를 연결하게 된 도로의 모습을 살펴보면 꽤 흥미롭다. 1984년 개통된 이후 거의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예전과 거의 다를 바가 없다. 온 나라가 공사 현장임에도 돈이 부족하다는 이유 등으로 한국의 대표적인 대도시들인 대구와 광주 사이에 제대로 된 고속도로 (심지어 철도 등 다른 교통편도 없이)하나 만들지 못했다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아마도 그 이유는 훨씬 더 깊은 곳에 있지 않나 싶다.

 

사실 요즘엔 88고속도로에서 공사가 한창이라 가까운 미래에 두 도시 간의 원활한 교류와 소통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생각보다 공사 진행이 더디어서 완공이 2015년으로 미뤄졌다. 그나마 약속이 지켜질지는 두고 봐야 하겠다.

 

외국인인 나로서도 지역감정은 한반도를 자르는 마치 넘을 수 없는 산처럼 받아들이기 힘들다. 향후 5년간 영남지역은 박근혜 정부로부터 밝은 미래를 보장 받은 듯하다. 그리고 박 대통령이 선거기간 동안 호남 사람들에게 내세웠던 많은 선거공약이 계획대로 실현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나라에서는 대통령으로 재선하기 위해선 누구도 걱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법적으로 재선이 불가능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관심마저 없어서인지, 오랜 오해와 균열을 극복하고 진정한 화해의 손길을 뻗어 균형과 조화가 있는 나라로 만들어가는 엄청난 위업에 누구도 손에 담그려 하지 않는다.

 

며칠 전 박 대통령이 발표한 장차관 임명 명단은 전체적인 균형보다는 위상 강화에 중점을 둔 듯하다. 그 결과 새로운 도로가 개통된다고 해도 두 지역 간의 관계가 개선될지는 의문이다. 사실 올 가을에 개최될 국제 행사 준비를 위해 최근 대구를 방문하면서 두 도시 간의 불신을 개인적으로도 느낄 만한 계기가 있었다. 행사 준비를 위해 대구시 관계자들과 토론을 하던 중 모두들 나를 만나게 되어 무척 반갑다며 앞으로 있을 다른 국제 행사들에도 도움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 후 그중 한 사람이 나의 명함을 다시 보고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 이제서야 봤네요. 회사가 광주에 있으시네요. 음, 그럼 아마도 함께 일하기는 힘들 것 같네요…."

 

거리가 문제라는 것일까. 거리로 보자면 대구에서 광주가 서울보다 더 가깝다. 그게 아니라면 두 도시 간에 결코 메울 수 없는 엄청난 틈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새롭게 고쳐질 88고속도로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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