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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혁명정신을 계승하자

정옥자 서울대 명예교수

1960년 4월 내가 다니던 동대문 밖 숭인동의 동덕여고는 온갖 봄꽃이 피어나면서 소녀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그 평온한 일상을 뒤흔든 사건이 18일 고려대학교 대학생들의 함성이었다. 안암동에 있던 고려대 학생들이 시내로 들어가기 위하여 신설동을 거쳐 우리 학교가 있던 숭인동을 경유하여 동대문 쪽으로 향했던 것이다.

 

이 후 전개된 상황은 그야말로 천지가 개벽하는 느낌이었다. 이승만 정권의 독재와 정권연장을 위한 3.15 부정선거에 대한 젊은이들의 항거는 시민은 물론, 교수사회까지 합세하게 만들었다. 경무대로 향하던 학생들에게 발포명령까지 떨어지고 결국 피를 보고나서야 이승만 대통령은 26일 하야성명을 발표하였다.

 

4.19는 그야말로 학생들의 순수한 의거였다. 정권을 탈취하려는 목적이 없는 자연발생적인 혁명이었다. 정치권은 외무부장관 허정을 수반으로 과도정부를 구성하여 정권을 야당이던 민주당에 넘겼다. 야당은 파벌싸움에 얼룩지고 수권능력이 부족하였다. 더구나 직전에 조병옥 신익희 같은 거물 지도자들을 잃은 상태여서 구심점이 약했고 사회전반에 팽배한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추슬러 국가동력으로 묶기엔 역량이 미약하였다.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은 컸으나 아직 훈련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 후 개혁 열풍은 국가전체, 사회전반으로 확산되었다. 그 열풍을 비껴간 분야는 거의 없었던 듯싶다. 나는 공교롭게도 학생회장이 되어 있었다. 나는 고려대 학생회장의 부름을 받고 고등학교-대학교 학생회장 모임에 참석하였지만 여고생도 참여한다는 명분과 머릿수를 채우는 역할에 불과하였다. 정작 문제는 학교 안에서 일어났다. 학생회에는 학생들의 개혁 요구가 물밀듯이 터져 나왔다. 나는 그 중에서 감정이 보이는 것은 회의를 통해 걸러내고 학교에 보고하고 건의하는 방식을 취했다.

 

개교한지 50년이나 된 학교라 오래된 문제점들이 누적되어 있었지만 학교당국은 미온적으로 대처하였고 한번 터진 봇물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그 와중에서 나는 갈피를 잡으려고, 중심을 잃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사태는 악화되어 결국 동맹휴학으로 치달았다. 사태를 악화시킨 것은 정체를 알 수 없는 협박편지였다. 학생들의 사상이 불온하다느니 빨갱이들의 사주를 받고 있다느니 하는 황당한 내용이었다.

 

10월 어느 날 교장선생님을 비롯하여 모든 선생님들, 그리고 전교생이 도열한 가운데 그 동안의 경과를 보고하고 학교의 조치를 받아들이는 일종의 의식을 치르고 나서야 데모는 끝났다. 내가 시작한 일도 아니고 학생회의 요구사항을 공식적으로 처리하는 과정에서 시작된 일인데 모두 내 개인의 책임으로 돌아왔다.

 

대학입시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학생회 간부들은 하나 둘 중도 하차하고 나 홀로 남았다. 나의 문제는 남들이 물러설 때 슬그머니 물러서지 못하고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강박증이었다. 그러나 이 일은 개인의 영역에서 맴돌던 나의 의식을 확대시켜 사회정의에 대한 최초의 각성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20년도 훨씬 지나서 서울대 교수시절 군부독재타도를 외치던 제자들을 이해하게 된 열쇠가 되었다.

 

4.19혁명은 민족자존에 대한 깨달음을 몰고 왔다. 또한 우리 사회가 나아갈 이정표를 제시하였다. 학생과 지식인이 주도한 아래로부터의 혁명인 4.19혁명은 그 후 지속적으로 전개된 학생운동과 민주화운동에 정당성을 부여하였다. 3.15 부정선거에서 촉발되었지만 자유, 민주, 정의에 대한 열망이었으며 통일, 자주, 변혁 등으로 그 지향점은 계속 확대되면서 민주화운동의 초석이 되었다.

 

미완의 혁명인 4.19혁명은 지금도 진행형이고 앞으로도 그 완성도를 높여나가야 할 우리의 과제이다.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갈망, 정의에 대한 높은 관심, 타성에 젖은 기성의 질서나 기득권세력에 대한 통렬한 비판의식, 민족자존의식, 통일에 대한 열망 등 그 정신만은 오늘날에도 맥맥히 살아있어서 우리를 지켜주는 구심점이 되고 있으니 4.19혁명 정신을 계승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혼을 지키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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