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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땅, 다른 사람

출세 욕망이 망가뜨린 세상 더이상 용납해서는 안 된다 / 정의와 진실을 지켜야 한다

▲ 최강욱 변호사·법무법인 청맥

고향을 생각한다. 타향에서 떠올리는 고향은 언제나 따뜻하고 정겨운 곳이다. 골목길과 뒷동산은 물론이고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도 남다른 존재다. 그렇다면 고향에서 바라보는 출향민은 어떨까. 소위 ‘중앙’에 진출하여 ‘지역’의 위신과 명예에 어떤 영항을 미치는지, 고향을 위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가 관심사 가운데 하나가 되어왔다.

 

같은 땅에서 같은 하늘을 보며 같은 쌀과 물을 먹고 자랐지만 자란 후에 보이는 모습은 하늘과 땅 차이인 경우를 종종 본다. 하긴 같은 시냇물을 먹어도 소가 마시면 우유가 되고 뱀이 마시 면 독이 된다 했으니.

 

우리 영화사에 길이 남을 수작 ‘1987’을 통해 민주화의 소중함과 현대사의 어두움, 인간의 양면성을 보여주고 있는 영화감독이 전북에서 자랐고, 탐욕의 화신으로 점점 그 죄상이 드러나고 있는 전직 대통령의 최측근이라는 집사도 전북에서 자랐다.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다. 경상도 두메산골에서 수석을 다투며 같은 고교를 다닌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검사가 되어 절대권력을 탐하다 국정농단의 주역으로 기어이 감옥에 갔고, 한 사람은 치열한 학생운동을 거쳐 촛불이 가득한 광장에서 불려진 노래 ‘헌법 제1조’,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등을 만들어 역사를 바꾼 주역들에게 용기를 주었다.

 

시대가 변해도 절대 변하지 않아야 할 정의가 있다. 상황이 달라도 놓치지 말아야 할 진실이 있다. 하지만 역사에선 정의와 진실이 당대에 성공하는 모습보다는 도태되는 모습을 많이 접한다. 궁형(宮刑)이라는 치욕을 겪고 세상을 기록하던 사마천의 저 유명한 탄식을 다시 떠올리는 이유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하늘의 이치는 사사로움이 없어 항상 착한 사람과 함께한다.’ 백이와 숙제는 착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러나 그들은 어진 덕망을 쌓고 행실을 깨끗하게 하였건만 굶어 죽었다. (중략) 하는 일이 올바르지 않고 법령이 금지하는 일만을 일삼으면서도 한평생을 호강하고 즐겁게 살며 대대로 부귀가 이어지는 사람이 있다. 그런가 하면 걸음 한 번 내딛는 데도 땅을 가려서 딛고, 말을 할 때도 알맞은 때를 기다려 하며, 길을 갈 때는 작은 길로 가지 않고, 공평하고 바른 일이 아니면 떨쳐 일어나서 하지 않는데도 재앙을 만나는 사람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이런 사실은 나를 매우 당혹스럽게 한다. 만약에 이러한 것이 하늘의 도라면,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사기(史記) ‘백이열전’, 김원중 역]

 

시골의 신산한 삶이 이어질수록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출세하여 큰 사람이 되라고 축원했다. 좀 더 가운데로, 좀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가 집안을 돌보고 가문을 일으켜 금의환향할 것을 기도했다. 착취당하고 주눅드는 삶보다는 떵떵거리며 베푸는 삶을 바란 것이다.

 

그 바람이 너무도 간절하고 무거웠던 탓일까. 우리의 삶과 현실은 고금을 막론하고 정의와 진실을 종종 외면했다. 고향을 자신의 출세를 막는 굴레로 생각하는 이들도 많고, 영달을 위해 고향을 팔아먹는 이들도 많았다.

 

이제는 달라야 한다. 그저 맹목적인 출세의 욕망이 망가뜨린 세상을 더 이상 용납해선 안 된다. 그저 자리만을 탐하고 권력 앞에 주눅들던 역사도 청산되어야 한다. ‘고향을 빛낸 인물’이 되고 ‘자랑스러운 동문’으로 기록되려면 정의와 진실을 지켜야 한다. 그래서 고향의 땅을 딛고 하늘 아래 진솔하고 당당하게 설 수 있어야 한다.

 

△ 최강욱 변호사는 대한변협 인권위원, 민변 사법위원장, 국회 윤리심사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현재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경찰개혁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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