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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주재기자를 하고 싶다

한반도 평화의 새싹 보며 통일 꿈꾸던 18년전 시절 취중 망상이 아니었기를

▲ 윤승용 서울시 중부기술교육원장

마치 치킨게임을 하듯 일촉즉발로 치닫던 한반도의 핵 위기가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언제 그랬냐 싶게 극적 반전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다. 북한의 전격적인 올림픽 참가와, 이와 함께 전개된 잇단 남북간의 접촉, 이어진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 합의는 한반도 핵 위기가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을 가능케 하고 있다.

이러한 사태 추이를 지켜보며 잠시 18년 전 시절을 되돌려본다.

그러니까 새 밀레니엄이 시작된 2000년 10월. 당시 한국일보 워싱턴특파원으로 재직 중이던 나는 타사 워싱턴 특파원 동료들과 한때 행복한 고민을 한 적이 있었다. 당시는 그해 6월 분단 이래 처음으로 역사적 6·15 남북정상회담이 평양에서 열리는 등 한반도가 탈냉전의 훈풍으로 후끈 달아오르던 시절이었다.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북한의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워싱턴을 방문해 빌 클린턴 미 대통령과 백악관 집무실에서 만나 북미관계 정상화를 논의하고, 미국의 메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 김정일과 면담했다. 곧 이어 북미관계 정상화를 매듭짓기 위해 클린턴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평양을 방문하려고 내부적으로 준비를 하던 시기였다.

복기해 보자면 당시 상황은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 중지(모라토리엄)→남북 정상회담→북한 조명록 특사 방미→미국 올브라이트 국무장관 방북→클린턴의 방북과 북미정상회담 등의 순서가 예정돼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취재원 가운데 북한돕기운동 등을 하며 북한과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던 한 재미동포는 나중에 “뉴욕의 북한 대표부 요원으로부터 북미 수교 후 사용할 북한의 워싱턴대표부 사무실용 건물을 알아봐 달라는 부탁을 받고 워싱턴D.C.의 외교가인 매사추세츠 애비뉴 일대의 빌딩을 물색했었다”고 털어놓기도 했었다. 북한도 그만큼 대미관계 개선에 적극적이었음을 보여주는 예화다.

이처럼 정말 조만간 한반도에서의 비정상적 군사적 대치상태가 해소되고 통일이 현실화할 듯한 분위기였다. 약 20여명 달하는 한국 언론의 워싱턴 특파원들은 백악관, 국무부, 펜타곤을 오가는 숨가쁜 취재 와중에도 즐거운 마음으로 워싱턴 내셔널프레스센터 인근 선술집에서 향후 한반도 정세의 추세에 대해 희망어린 전망을 하며 맥주를 기울이곤 했다.

당시 나는 남북관계가 개선되어 북한 취재가 가능해지면 초대 평양주재기자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어느 동료 기자가 “평양 특파원이 아니라 평양 주재기자라고?”라며 의아해했다.

주재기자와 특파원,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큰 차이가 있다. 주재기자는 진정한 통일이 되어서 남북한이 단일 정부 체제에 속해 평양도 한국의 일부라는 전제가 깔려있는 반면 특파원은 남북이 별개국가이지만 외교관계를 맺고 있을 때 가능한 경우일 것이다. 이 경우 물론 주재기자는 언론사의 편제상 지방취재부 소속이고, 특파원은 국제부(혹은 외신부) 소속일 터이다.

하지만 당시의 상상은 뒤이어 등장한 부시 행정부의 네오콘들이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며 경수로 건설을 골자로 하는 제네바합의를 파기하고 이에 맞서 북한이 탄도미사일 시험발사와 핵실험을 하는 등 다시 북미 간 갈등이 고조됨으로써 한낱 취중 공상으로 끝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한반도에 조금씩 머리를 내미는 평화의 새싹을 보며 당시의 공상이 한낱 취중 망상이 아니었기를 바라는 마음은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남북관계가 정상화한다면 현역으로 복귀해 초대 평양주재기자를 해보고 싶다는 몽상이 봄날과 함께 다시 스멀스멀 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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