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전 11시 전주시 중앙동 전라감영 복원지. 전라감사의 집무실 역할을 했던 선화당 자리에 굵은 소나무 기둥 30여개가 주춧돌 위에 위용을 드러내며 곧게 서 있었다.
1896년부터 일제에 의해 유실되기 시작한 전라감영은 1951년 한국전쟁 전란 속에 완전히 소실됐다.
일제부터 이뤄진 부분 유실 122년, 완전 유실 67년 만에 전북과 전남, 제주까지 관할했던 전라감영은 이렇게 다시 돌아오고 있었다.
대부분 전통방식인 끼워 맞추기 식으로 진행되는 선화당의 복원 기둥은 민흘림 방식이다. 기둥 나무를 전체적으로 평평하게 깎는 민흘림은 조선시대 건물에 쓰인 방식이다.
선화당의 높이는 다음 달 중순 이후 상량식까지 이뤄지면 지상 3층 정도인 6.8m에 달한다.
기둥과 각종 나무 부속품은 모두 강원도에서 자란 육송이 사용됐다. 둘레는 40cm~45cm에 달한다. 주춧돌은 익산의 황등에서 난 돌(황등석)을 사용했다는 것이 현장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날 선화당 기둥 주변으로 비계를 설치해놓고 기둥과 기둥을 연결하는 공사가 한창이었고, 선화당 왼쪽에는 소나무를 켜는 대패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총괄 책임을 맡고 있는 도편수는 우리나라 3대 대목장 중 한 명인 최기영 대목장이 맡고 있으며, 부편수는 김종석 전수자(65)가 맡고 있다.
김 부편수는 “기둥과 모든 나무 부품을 합하면 2000여 개가 훨씬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선화당 오른쪽에는 높이 2.4m의 관풍각 주춧돌 20개가 놓여 있었다. ‘높은 곳에서 민생을 살펴본다’는 취지로 기존 누각 보다 높게 설계됐다.
김행수 현장소장(47·(주)영화문화재)은 “지난 12일 기둥들을 크레인으로 세웠는데, 전라도와 전주의 자부심을 다시 세우는 것 같아 감회가 깊었다”며 “다른 지역의 감영은 일부 흔적이라도 남아 있지만 전라감영은 무에서 유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라고 소감을 말했다.
전주시는 단순히 감영만 있는 타 지역의 박제화된 복원과 달리, 10억원에 달하는 예산을 들여 전라감영 스토리텔링과 증강현실 어플리케이션 개발, 3D콘텐츠 제작 등 전라감영 공간활용과 실감형 콘텐츠를 제작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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