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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이불변 응만변,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이여!

동학농민혁명 국가기념식 개최 기념

송하진 전북도지사
송하진 전북도지사

지난 11일 광화문 광장에서 동학농민혁명 국가기념식이 열렸습니다. 발발 125년 만에 드디어 국가기념일로 제정되어 열린 첫 행사였습니다. 2년여 전 겨울,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촛불들이 켜졌던 그 자리에 작지만 야무진 녹두의 꿈이 우뚝 솟아올랐습니다. 동학농민혁명이 시작됐던 125년 전처럼 그곳의 주인공은 바로 전북인이었습니다.

고창 우도농악의 신명나는 판굿이 펼쳐지고, ‘의로운 깃발을 들어 보국안민을 생사의 맹세로 삼겠다’던 무장기포지의 포고문이 울려 퍼졌습니다. 전주기접놀이가 광장을 누비며 모두를 하나로 만들었고, 녹두장군 전봉준의 삶을 담아낸 절창(絶唱)이 이어졌습니다. 슬픔과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았던 선조들의 꿈이 한 세기를 건너와 생명력을 되찾는 순간이었습니다.

지배세력의 수탈과 외세의 억압이 거세지던 1894년, 우리 선조들은 동학농민혁명을 일으켰습니다.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이루고자 온 몸을 때로는 일생을 내던졌습니다. 온 삶을 걸어야만 제대로 살 수 있었기에 그 어떤 두려움도 그들의 의지를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전북도민들은 혁명의 주역이며 고갱이였습니다. 정읍과 고부 무장, 태인과 전주 일대는 동학농민혁명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무대가 되었습니다. 전봉준과 김개남, 손화중 등 동학농민혁명을 이끈 주요 지도자들도 농민들과 함께 전북 곳곳을 누볐습니다. 전북에서 시작된 혁명의 불꽃은 전북도민들의 담대한 활약에 힘입어 들불처럼 전국으로 번져나갈 수 있었습니다.

선조들의 용기는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든 바탕이 되었습니다. 동학농민혁명은 자유민주주의국가, 자주적 민족국가 대한민국의 시원(始原)이 되었습니다. 안으로는 봉건제를 혁파하고 밖으로는 당당한 주권국가를 꿈꿨던 동학농민혁명은 굳건한 저항의식과 개혁사상, 이를 이루기 위한 단단한 연대와 참여 의지를 우리 국민의 정서적 유전자에 새겨 넣은 역사적 변곡점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동학농민혁명은 미완이었을 뿐 실패하지는 않았습니다. 혁명은 깨어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힘이 그 어떤 위정자나 권력보다 위대하고 강하다는 교훈을 남겨주었습니다. 이러한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은 3.1 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독립 무장 투쟁에 깊숙이 영향을 주었고 해방 후 4.19혁명과 5.18민주화운동, 6월민주항쟁과 촛불혁명으로 면면히 이어져 왔습니다.

‘이불변 응만변(以不變·應萬變, 변하지 않는 것으로 만 가지 변화에 대응한다)’

광복 후 환국을 앞두고 김구 선생이 쓰신 글입니다. 선생의 유묵처럼 동학농민혁명을 통해 발산된 자유와 평등, 개혁의 정신이야말로 그 어떤 변화에도 우리를 하나로 만들 동력이며, 흔들리지 않아야 할 우리의 근본입니다. 평범한 우리를 가장 위대하게 만드는 힘입니다. 무엇보다도 동학농민혁명의 발상지 전북에 사는 사람이라면 더욱 자랑스럽게 여기고 반드시 지켜나가야 할 가치입니다.

동학농민혁명 국가기념일 제정을 계기로 전라북도는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을 계승하고 후대에까지 이어가는 데 적극 나설 것입니다. 역사적 의미를 조명하고 문화유산으로 육성하는 일뿐 아니라 안으로는 평범한 사람들이 행복을 누리는 사회, 밖으로는 평화롭고 당당한 나라를 만들어가는 데에 온 지혜와 정성을 모을 것입니다. 그것이 동학농민혁명의 중심에 있던 선조들께서 우리에게 남기신 책무이며 미완의 혁명을 완성하는 길이 되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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