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22일 맑음. 낮에는 삼례역 장리의 집에 가고, 저녁에는 전주 남문 밖 이의신의 집에서 묵었다. 판관 박근(朴勤)이 와서 만났고, 부윤도 후하게 대접해주었다. 판관이 유둔(기름종이)과 생강 등을 보내왔다.(‘난중일기’중)
판관이 보내온 유둔은 비올 때 사용하는 기름먹인 두꺼운 종이이고, 생강은 약성이 좋은 식품이다. 장군이 백의종군하는 동안 건강을 잘 챙기고 요긴하게 쓰라는 마음이 은근히 느껴진다. 본래 전주시장 격인 전주부윤은 전라도관찰사(전라감사. 지금의 도지사)가 겸임을 하였고, 부윤의 업무는 판관(종5품)이 맡아서 처리하였다. 그런데 임진왜란과 같은 비상시는 물론이고, 그 이전과 이후에도 가끔 전주부윤을 별도로 임명하는 경우가 있었음이 확인된다.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하며 만난 전주부윤은 박경신(朴慶新)이다. 그는 임진왜란 강화협상기인 1595년 10월에 부임하였으며, 후일 정유재란기에 남원성이 함락되었을 때 전주성을 버리고 도망갔다는 이유로 파직을 당하게 된다. 그의 후임이 바로 충경공(忠景公) 이정란(李廷鸞)이다. 1592년 임진왜란 개전 초기의 ‘이치(梨峙)전투’ 때에는 수성장이 되어 전주성을 지켰고, 1597년 8월 하순 전주성 함락 이후에는 69세의 고령의 나이에 다시 전주 부윤이 되어 민심을 수습하고 전열을 재정비한 전주의 인물이다. 그리고 장군이 하룻밤을 묵은 집의 주인인 이의신(李義臣)에 대하여는 명종실록에 1561년(명종16년) 윤5월 ‘호조정랑으로 삼았다’라는 짧은 기사가 보이는데, 기대승과 안방준 같은 유학자들과 교류를 하였다고 전해진다. 한편 백의종군 당시 전라도관찰사는 박홍로였고, 칠천량해전 직후인 1597년 7월 25일 황신으로 교체되었다.
이번 답사는 완주군 삼례역에서 출발하여 전라감영이 있었던 전주로 들어선 후, 완주군 상관면 신리로 들어서는 길을 걷게 된다. 5월의 중순이 끝날 무렵 완주군 삼례역을 찾았다. 모처럼 내린 비와 세찬 바람에 이팝나무와 아카시아도 온통 흰색 꽃비를 뿌려놓았다. 이번 답사에는 경남 하동군청의 김성채 학예사도 동참을 하여 외롭지 않은 걸음을 하게 되었다. 삼례역 옆으로 이어지는 생태탐방로에서 답사를 시작한다.
‘삼례 상생 나무숲’ 공원 옆으로 난 길을 따라 공원 조성 기념석 있는 곳에 이르면 만경강과 강 건너 멀리 전주 시가지의 모습이 보인다. 완주 8경의 하나인 ‘비비낙안(飛飛落雁)’은 ‘한내천 백사장에 내려앉은 기러기 떼를 비비정(飛飛亭)에서 바라본 풍경’을 일컫는다. 한내는 너른 강이라는 뜻으로 이곳의 만경강을 달리 부르는 이름이다. 비비정이 지척에 있지만, 백의종군로는 이곳을 들르지 않고 공원 기념석 맞은편 이정표 있는 곳에서 강변의 마을로 내려선다. 마을을 벗어나 4차선 도로인 ‘삼례로’ 비비정버스정류소 앞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삼례교로 향한다.
삼례교를 지나면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만경강 제방 위의 도로 ‘한내로’로 들어선다. 차선도 없는 좁은 도로이지만, 차량 통행이 그리 많지 않고 만경강의 풍광과 싱그러운 벚나무 가로수와 함께하는 예쁜 길이다. 한내로로 들어서서 약 30분 정도 진행하니 ‘평리’라는 마을 입석이 보인다. 오른쪽에 작은 글씨로 ‘쥐업정’이라는 글과 입석 하단에는 ‘춘향전의 이도령이 밟고 한양간 다리’‘라는 설명도 새겨 놓았다. 어느덧 만경강의 본류와 헤어져 있는 전주천을 뒤로하고 전라선 철길과 동부대로 아래를 차례로 지나 팔복동 산업단지로 들어선다. 백의종군로는 중고차 시장 옆의 작은 하천 왼쪽으로 이어지는 좁은 도로(감수길)를 걷게 된다. 전주연탄 앞 폐선된 철길을 지나 만나는 삼거리에서는 왼쪽 ’신복로‘로 진행하고, GS충전소 있는 곳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전주시를 관통하는 ‘기린대로‘에 이르며 공단지역을 벗어난다. 이제 길은 왼쪽으로 방향을 잡고 전주천을 가로지르는 추천대교로 향한다. 추천(楸川)은 전주천에 삼천이 합수되며 전주천을 달리 부르는 이름이다.
백의종군로는 추천대교를 건너 전주천 옆의 가리내로를 따라 진행하다가 터미널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진덕교를 건너 ‘전주천 동로’에서 다시 전주천을 만난다. 이제 서신교, 진북교, 어은교, 도토리골교 앞을 차례로 지나고, 다가교 사거리에 이르러 왼쪽의 ’충경로‘로 방향을 튼다. 차이나타운과 약전거리가 있는 전라감영2길로 들어서서 일제강점기 때에 헐린 전주부성의 서문이 있었던 곳(서문지西門址)을 지나 풍남문에 닿는다.
이번 답사는 가리내로 아래 전주천을 따라 나있는 ‘생태탐방로’와 ‘천년전주 마실길’을 이용하여 다가교까지 이동하였다. 생태하천으로 잘 복원된 도심 속의 전주천은 충분히 아름다웠고, 지역의 자부심까지 느껴질 정도로 잘 관리되고 있었다. 예전 전주부성의 남문인 풍남문에 이르면 이번 답사구간의 2/3 정도를 진행한 셈이다. 풍남문 정면 방향으로 나있는 좁은 시장 길을 걸어 한옥마을 앞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싸전다리’를 지난다. 이곳에서는 전주천을 남천으로 부르기도 한다. 길은 전주교대 앞의 서학로로 들어서서 국립무형유산원을 지나 17번국도인 춘향로를 만나는 오거리로 이어진다. 여기서는 차량 통행이 많고 소음이 심한 춘향로 대신에, 정면 승암교를 건너서 전주천변의 ‘바람쐬는 길’과 ‘아름다운 순례길’로 이어지는 뚝방길을 걸어 상관면 신리로 향한다. 전주천을 사이에 두고 춘향로와 나란히 걷는 길이다.
치명자산성지, 색장교, 은석교 옆을 차례로 지나 왼쪽으로 전라선 철길이 뚝방길과 나란히 이어질 즈음, 정면으로 신리의 아파트단지가 많이 가까워져 있다. 어둠이 찾아들 무렵 정여립 생가터 입구의 월암마을정류소에서 힘겨운 걸음으로 상관면행정복지센터 앞에 닿으며 답사를 마친다. 구간 거리는 약 25km이고, 식사시간 포함 8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조용섭 협동조합 지리산권 마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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