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은 1842년 아편전쟁에서 승리한 영국이 홍콩섬을 분할 받고, 1860년 다시 구룡반도를 분할한 데 이어, 1898년 신계(新界) 및 부속도서를 99년간 조차하면서 오늘날의 경계가 형성되었다.
1949년 사회주의 중국 정권 수립 후 동서 냉전시기 홍콩은 낙후된 중국의 외국 선진기술 및 자본도입 창구 역할을 하면서 국제 금융센터와 자유무역항으로 발전하며 인구 740여 만 명의 대도시가 되었다.
1982년 영국은 중국과 신계지역 조차 만료에 관한 협상을 진행, 1984년 12월 ‘전 홍콩지역을 중국에 반환하고 50년간 기존 법과 자치권을 유지하는 특별행정 구역으로 설정’하는 협정을 체결, 1997년 7월 1일 공식 반환되었다.
155년간 영국 통치 속에 살아온 홍콩인들은 대부분 자신들이 사회주의 대륙의 중국인들과는 달리 자유·민주주의 제도하에서 부유하게 잘 살고 있다는 우월의식을 가져왔다. 2017년 홍콩대학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자신을 중국인이 아닌 홍콩인이라고 답한 사람이 63.3%, 특히 18~29세 젊은 층은 93.7%에 달했다.
그러나 반환 이후 중국 경제의 고속 발전과 함께 중국 의존도가 갈수록 커졌으며, 막대한 중국자금 유입으로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고 빈부 차가 심화되었다. 홍콩의 집값은 3.3㎡당 1억 원을 넘어선 반면, 시간당 최저임금은 약 5200원에 불과하다. 작년 소득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 계수는 0.53으로 심각한 수준이다.
홍콩인, 특히 반환 이후 태어난 젊은이들을 더욱 좌절케 한 것은 미래에 대한 불안이다. 반환 당시 홍콩 GDP는 중국의 18.4%를 차지했으나 작년에는 2.7%로 축소됐으며, 국제 금융도시로서의 홍콩의 위상도 중국 상하이와 선전에 밀리고 있다. 또한 2047년 50년간의 자치기간이 끝난 뒤 과연 현재의 지위를 누릴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6월 홍콩 의회가 ‘외국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들어온 홍콩인 인도법(송환법)’을 제정하려 하자, 동 법에 의거 ‘홍콩 내 반 중국 인사들이 중국에 강제 송환될 수 있다’는 우려가 증폭, 최대 200만 명이 모인 ‘송환법 철폐’ 요구 시위를 전개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시위 요구가 “강경 진압 경찰에 관한 독립적 조사, 현 행정장관 사퇴 및 직선제 실시”등으로 확대· 장기화 되고, ‘중국 국기 훼손, 홍콩 독립 주장’ 등 중국의 권위에 도전하는 양상을 보이자, 중국이 ‘미국의 배후 조종설’을 제기하면서 시위를 ‘외세 개입 색깔혁명’으로 규정, 강경 대응에 나섰다.
중국으로서는 이번 시위에 굴복할 경우 경기침체에 빠진 인접 광동성 지역 동요는 물론, 티베트·신장 소수민족들의 독립 요구를 촉발할 뿐 아니라, ‘1국 2제’에 의한 대만 통일도 차질을 빚게 될 것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중국은 홍콩 인접 선전에 대규모 시위진압 병력과 장비를 대기시켜놓는 한편, 홍콩 대신 선전을 금융?무역 중심지로 발전시키고 홍콩 시민의 선전으로의 이주 장려 계획을 밝히는 등 무력진압 압박과 경제적 봉쇄 위협을 가하고 있다.
그러나 시위대는 시내 집회를 계속 열면서 경찰과 충돌하고 9월부터 학교 동맹휴학을 하는 등 강경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불안이 한층 고조되고 있다.
홍콩의 장래 문제는 2047년 자치가 끝나기 전 언젠가 해결해야 할 일이다. 모쪼록 이번에 위기를 서로 슬기롭게 대처, 예전의 평온을 빨리 되찾기 바란다.
/송승엽 한반도 미래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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