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이장의 안내방송이 나온다. 내일 모래 부귀 농협에서 장수사진을 찍어 준다하니 필요하신 분들은 모두 찍으란다. 이장에게 장수사진이 뭐냐고 물었더니 찍어 놓으면 장수하는 사진이란다. 사진 찍어 놓고 너무 오래 살면 어떻게 하느냐는 나의 농담에 그래도 오래 살아야한다며 꼭 찍어두라고 권고했다.
여러 가지 생각이 맴돈다. 오래 산다는 말은 그냥 하는 말일 테고 조금이라도 젊어서 찍어 두는 게 보기에 괜찮지 않을까? 임종 후 자식들의 작은 짐 하나라도 줄여주는 것이 아닐까? 사진이 천지인데 꼭 찌거야하나? 에이 뭐 궁상맞게 사진을 찍나? 쉽게 결정을 못하고 저녁 식사시간에 남편 운을 떼며 무료로 찍어 준다던데 당신 찍을 거야? 라구 운을 뗐다.
“당신 장수 사진이 영정사진이야.” 남편은 별 감정 없는 듯 무심히 말하지만 내 감정은 상당히 착잡했다. 내 생이 70년을 넘게 살다 보니 그 동안 여러 관문을 통해서 오늘에 이르렀다. 굵직한 것만 꼽아 보아도 초, 중, 고 과정을 거쳐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에서 퇴직까지 숨가쁘게 내 딛었다. 결혼이라는 문에 들어서서는 이제까지의 여정과 좀 다른 무대가 펼쳐졌다. 생이라는 진미를 만끽하는 무대였으며 씨를 맺고 튼실한 결실을 위하여 전력으로 쏟아붓는 숙명을 완수해야 하는 임무가 주어졌고 임무를 수행하다 보니 힘든 나날이었지만 행복했다.
그동안 여러 관문을 통과하며 이력서나 증명서 등을 제출했다. 그런데 죽음의 문을 통과 하기 위해서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영정사진 없이도 통과는 될 것이라 생각되는데, 그 어떤 사람도 영정사진 만큼은 있었던 것 같다 싶어 미리 준비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으로 우리 부부는 영정 사진을 찍으러 갔다. 제법 치밀한 준비기 되어있었다. 미용사도 와서 머리를 곱게 만져주고 한복도 몇 벌 구비해 놓고 무도 친절하게 대해 준다.
마치 이별하는 사람들에게 마지막 친절을 베푸는 듯했다. 그동안 사진들은 나를 만족시키지 못했지만 이 번만은 예쁘게 찍혔으면 하는 마음으로 찍었다. 핑크빛 상의와 검은 치마를 입고 칠순 때 시누이가 선물한 금목걸이도 하고 인자한 얼굴의 표정을 지으며 찍었다.
그런데 사진을 찾아와서 보니 마음에 안 들었다. 옷과 금목걸이는 잘 찍혔지만 입을 앙다물고 있어서 어색했다. 남편은 실물보다 좋게 찍혔고 나는 실물보다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례식장에 놓여 그 동안 알고 지냈던 사람들의 인사를 받아야 할 사진이라는 의미를 부여하자면 아주 긴요하기 그지없다.
아마도 태어나서 이 문턱에 서기까지 살았던 일들이 기록되어 있을 지도 모른다. 이것이 내 생의 이력서인가? 아마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읽을 것이다. 내 생의 이력이 사진 한 장으로 증명 되어 무사히 통과되는 걸까? 혹시 병력 증명서를 제출하라 할 것 같다. 그 병력의 과중이 죽음의 문을 통과하는데 기본일 것이라 생각된다.
요즘 대학 입학에 수시합격이 있는데 우리 죽음에도 수시통과자가 는 것 같다. 나는 수시보다 정시에 통과되기를 소망해 본다. 아무튼 우리는 여행을 가더라도 큰 가방을 준비한다. 그런데 영영 돌아오지 못할 긴 여행길을 떠나려는데 준비 없이는 안 될 것이다. 우선 모든 걸 내려놓으며 앞으로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을 해 본다. 영정사진은 준비했으니 이제 조문객들에게 내 생애가 아름다웠다는 후일담을 준비하고 싶다. /송영수 수필가
송영수 수필가는...
교직에 몸담아 오다가 <예술세계> 로 등단했으며 진안문협 회장을 역임했다. 전북교사 백일장 특상, 전주 MBC ‘친절생활수기’ 대상 작가다. 예술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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